선암사

ㅡ 정호승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

해우소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으면

죽은 소나무 뿌리가 기어 다니고

목어가 푸른 하늘을 날아다닌다.

풀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고

새들이 가슴 속으로 날아와 종소리를 울린다.

눈물이 나면 걸어서라도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 앞

등 굽은 소나무에 기대어 통곡하라.

 

“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 창작과비평사, 1999년 초판”

 

https://www.youtube.com/watch?v=u87I6NCY1go

 

 

https://www.youtube.com/watch?v=SHjtZpVonu4

 

 

 

山中問答(산중문답)
ㅡ 李白(이백, 701~762)

問余何事棲碧山
(문이하사서벽산) 왜 산에 사냐고 내게 묻기에
笑而不答心自閑
(소이부답심자한) 대답 않고 웃으니 마음 절로 한가로워
桃花流水杳然去
(도화유수묘연거) 복사꽃 물에 떠서 아득히 흘러가는 곳
別有天地非人間
(별유천지비인간) 여기는 신선이 사는 세상이지, 인간 세상 아니라오.

출처: https://kydong77.tistory.com/21276 [김영동교수의 고전 & Life:티스토리]

 

비탈이 고목인 홍매는  아직 새봄맞이 준비중 

삼지닥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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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I7ot4YCoCxQ

 

https://namu.wiki/w/%EC%84%A0%EC%95%94%EC%82%AC

 

선암사

한자 : 仙巖寺 / 로마자 : Seonamsa 전라남도 순천시 승주읍 조계산 (曹溪山) 동쪽 기슭에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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仙巖寺 / 로마자 : Seonamsa

전라남도 순천시 승주읍 조계산(曹溪山) 동쪽 기슭에 위치한 사찰이며, 현재 한국불교 태고종의 유일한 수행 총림이다. 진입로는 경사도 완만하고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아름다운 운치있어서 사찰보다 진입로를 더 좋아하는 방문객들도 있다. 그리고 다른 산 속의 절들을 찾아보면 알겠지만 오히려 선암사의 진입로는 다른 절에 비하면 적당한 편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결정하는 세계유산위원회(WHC)는 2018년 6월 30일 바레인 수도 마나마에서 열린 제42차 회의에서 한국이 신청한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했다. 우리나라가 등재 신청한 산사는 양산 통도사, 영주 부석사, 안동 봉정사, 보은 법주사, 공주 마곡사, 순천 선암사, 해남 대흥사이다.#

2. 상세

백제 성왕 5년(527년) 현재의 비로암지에 초창주(初刱主) 아도화상(阿度和尙)이 처음 사찰을 창건하였고, 산 이름은 청량산(淸凉山), 사찰 이름은 해천사(海川寺)라 하였다.

신라 말 이창주(二刱主)[4] 도선국사가 현 가람 위치에 절을 중창하고 지금까지 쓰이는 이름 선암사로 지었고 1철불 2보탑 3부도를 세웠으며, 지금도 이들 중 1철불 2보탑 3부도가 전한다.

고려 중기 삼창주(三刱主)인 대각국사 의천이 대각암에 주석하면서 선암사를 중창하였다. 대각국사는 천태종을 널리 전파하였고 선암사는 호남의 중심 사찰이 되었다. 대각국사 중창건도기(重創建圖記)에 의하면 당시의 중창은 법당 13, 전각 12, 요사 26, 산암 19개소 등의 방대한 규모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고려 명종 때의 문인 김극기(金克己 1171-1197)는 시(詩)에서 "적막하고 고요한 수행의 사찰"이라고 묘사했다.

이후 조선 전기 선암사가 어떠했는지는 모른다. 중종 35년(1540년) 일주문을 중수했다는 기록만 남았을 뿐이다. 또한 조선 중기 왜란 시기 선암사도 다른 절과 마찬가지로 1597년 정유재란 때 큰 피해를 입었는데 모든 전각이 불에 타고 철불, 보탁, 부도, 문수전, 조계문, 청측만이 남았다고 전한다. 현종 1년(1660년) 경준(敬浚), 경잠(敬岑), 문정(文正) 등 세 승려가 대웅전을 세우는 등 8년간 크게 중창했지만 전쟁 이전의 사세를 복구하기에는 무리였다.

선암사의 중창불사를 마무리한 이는 호암약휴(護巖若休) 스님이었다. 호암은 승선교를 비롯하여 원통전, 불조전 등을 만들었다. 중창 이후 법당 8채, 전사(殿舍) 12차, 중료(中寮) 16채, 산암 13채를 갖추고 선적암(善積菴), 도선암(道詵菴) 등을 부속암자로 두었다. 그러나 영조 35년(1759년) 봄에 선암사는 또다시 화재를 만나 큰 피해를 입었다. 상월새봉(霜月璽封) 스님과 서악(西岳) 스님이 이듬해(1760년) 재건불사를 시작하였다. 이는 초창주 아도화상 이래 도선-의천-경잠-경준-문정-호암의 뒤를 이은 오창(五創)이라 할 수 있다.

상월새봉 스님은 중창불사뿐만 아니라 1734~35년에 두 차례 화엄대법회를 개최하였는데 이때 참가한 1287명의 명단이 선암사 해주록(海珠錄)에 전한다. 그리고 상월스님은 화재를 예방하기 위하여 1761년 산 이름을 청량산, 사찰명을 해천사로 개칭하였다.

정조 13년(1789년)에 임금이 후사가 없자 눌암(訥菴)스님이 선암사 원통전에서, 해붕(海鵬) 스님이 대각암에서 백일기도를 하여 1790년 순조 임금이 태어났다. 이후 왕위에 오른 순조 임금은 인천대복전(人天大福田)이라고 쓴 편액[5]과 은향로, 쌍용문가사, 금병풍, 가마 등을 선암사에 하사하였다.

순조 22년(1798년)에는 승중문음(僧中文音)으로 유명한 해붕전령(海鵬展翎)이 칠전(七殿)을 중창하였다. 순조 23년(1823) 3월 30일 실화로 대웅전을 비롯한 여러 동의 건물이 불에 타자 다음해부터 해붕(海鵬), 눌암(訥庵), 익종(益宗) 스님 등이 6번째 중창불사를 하여 현재의 가람 구조를 갖추었다. 그리고 산명과 사명을 다시 예전의 조계산, 선암사로 복칭(複稱)하였다.

조선 말기에는 호남을 대표하는 함명태선(涵溟太先)-경붕익운(景鵬益運)-경운원기(景雲元奇)-금봉기림(錦峯基林) 등 4대 명강백을 배출하였다.
 
1919년 조선총독부가 본말사법(本末寺法)[6]으로 전국의 사찰을 30본산(本山)으로 지정했을 때 선암사는 전남의 4본산 중 하나로 지정되어 순천, 여수, 광주 지역의 사찰을 관장하였다.

전성기 시절에는 건물 100여 동이 있었으나 여순사건 당시 40여 동이 소실되었고, 남은 건물들도 이후 6.25 전쟁으로 꽤 많이 소실되어 지금은 20여 동만 남았다. 게다가 후술되는 조계종과 태고종과의 갈등으로 지금까지 몸살을 앓고 있지만, 그 갈등 때문에 예전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선암사 일원은 2009년 12월 21일 사적 제507호로 지정되었고, 2018년 6월 30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https://namu.wiki/w/%ED%95%9C%EA%B5%AD%EB%B6%88%EA%B5%90%ED%83%9C%EA%B3%A0%EC%A2%85

 

한국불교태고종

한국불교태고종 (韓國佛敎太古宗)은 대한민국 의 불교 종단 중 하나로, 1970년 1월 15일 승려 진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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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선희 - 이선희의 아버지는 대처승으로, 범패 전수자.
  • 조정래 - 조정래의 아버지가 선암사의 대처승이었다. 父 조종현은 시조시인이기도 하다
  • 조정래 처 시인

 

 

https://ko.wikipedia.org/wiki/%EC%A1%B0%EC%A0%95%EB%9E%98

 

조정래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조정래(趙廷來, 1943년 8월 17일~)는 전라남도 순천시 출신의 소설가이다. 서울 보성고등학교와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나왔다. 대표작으로 《태백산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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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래(趙廷來, 1943년 8월 17일~)는 전라남도 순천시 출신의 소설가이다. 서울 보성고등학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나왔다. 대표작으로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등의 대하소설이 있다.

조정래의 작품은 문학계에 큰 영향력을 미쳤는데, 실제로《태백산맥》의 경우 무혐의 처분을 받을 때까지 11년이나 국가보안법 위반 논쟁을 일으켰다. 현재는 모교인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의 석좌교수로 재직 중이며, 2007년 《오, 하느님》(문학동네)을 저술하였다.[1]

 

 김초혜

 김초혜 시인

동국대 국문과를 졸업했다. 1964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했다. 시집 『떠돌이별』, 『사랑굿1』, 『사랑굿2』, 『사랑굿3』, 『섬』, 『어머니』, 『세상살이』, 『그리운 집』, 『고요에 기대어』, 『사람이 그리워서』, 시선집 『빈 배로 가는 길』, 『편지』, 수필집 『생의 빛 한줄기 찾으려고』, 『함께 아파하고 더불어 사랑하며』,『행복이』 등이 있다. 

https://ko.wikipedia.org/wiki/%EA%B9%80%EC%B4%88%ED%98%9C

 

김초혜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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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굿 48

ㅡ 김초혜

 

다르다 하면
하나로 되고
같다고 보면
거리가 있어지는
그대
누구시오

가까이 있을 땐
가까와 못 가고
멀리 있을 땐
멀어 못 가
맘 졸이며
그대신가 기다리고

잊지도 않고
구하지도 못하며
네 속에 네가 숨어도
내 속에 내가 숨어도
감추어지지 않는
사랑이란 말
차마 쓰기 어려워
더디게 울어 보내오.

 

 

 

 

 1차  '24년3월2일

출처: https://kydong77.tistory.com/22455 [김영동교수의 고전 & Life:티스토리]

 

순천 선암사 팔상전& 선암매/ 정호승, 선암사

降仙樓(강선루) 우측 바위 위에에 신선들이 하강하여 바둑두었다는 전설이 있음. 선암사 ㅡ 정호승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 해우소에 쭈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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