洛山二大聖 관음. 정취, 조신

정취보살 -굴산조사 범일

後有굴山祖師梵日. 大和年中入唐. 到明州開國寺. 有一沙彌截左耳. 在衆僧之末.

그 후에 굴산조사 범일이 태화 연간(827-835)에 당나라에 들어가 명주 개국사에 이르니

왼쪽 귀가 잘린 한 중이 여러 중들의 끝자리에 앉아 있었다.

與師言曰.

그는 조사에게 말했다.

吾亦鄕人也. 家在溟州界翼嶺縣德耆坊. 師他日若還本國. 須成吾舍.

"저도 또한 고향사람입니다. 집은 명주의 경계인 익령현 덕기방에 있습니다.

조사께서 후일 고향에 돌아가시거든 반드시 내 집을 지어주어야 합니다."

旣而遍遊叢席. 得法於鹽官.[事具在本傳.]

이윽고 조사는 총석(叢席-많은 승려들이 모여있는 곳)을 두루 돌아다니다가

염관(중국 항주 염관현 진국해창원에 있었던 제안禪師)에게서 법을 얻고 [사적은 모두 본전에 있다.]

以會昌七年丁卯還國. 先創崛山寺而傳敎.

회창(會昌-당나라무종의 연호, 841-846년) 7년 정묘년(847, 당나라 선종 대중원년이 맞다)에 본국으로 돌아오자 먼저 굴산사를 세워서 불교를 전했다.

大中十二年戊寅二月十五日. 夜夢昔所見沙彌到窓下. 曰.

대중 12년 무인(858) 2월 보름날

밤에 꿈을 꾸었는데, 전에 보았던 중이 창문 밑에 와서 말했다.

昔在明州開國寺. 與師有約. 旣蒙見諾. 何其晩也.

"지난 날 명주 개국사에서 조사와 약속하여

이미 승낙을 얻었는데, 어찌 이리 늦는 것입니까?"

祖師驚覺. 押數十人, 到翼嶺境. 尋訪其居.

조사는 놀라 꿈에서 깨자 사람들 수십 명을 데리고

익령 경계로 가 그가 사는 곳을 찾았다.

有一女居洛山下村. 問其名. 曰德耆.

낙산 아랫마을에 한 여인이 살고 있었는데, 이름을 물으니 덕기라고 했다.

女有一子 年才八歲. 常出遊於村南石橋邊.

그 여인에게는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나이 겨우 여덟 살에

늘 마을 남쪽 돌다리 가에 나가 놀았다.

告其母曰.

그는 어머니에게 말했다.

吾所與遊者. 有金色童子.

"나와 같이 노는 아이 중에 금빛이 나는 아이가 있습니다."

母以告于師.

아이의 어머니는 그 말을 조사에게 알렸다.

師驚喜. 與其子尋所遊橋下.

조사는 놀래고 기뻐하며 그 아이가 함께 놀았다는 다리 밑을 찾았다.

水中有一石佛. 舁出之 截左耳. 類前所見沙彌. 卽正趣菩薩之像也.

물 속에 돌부처 하나가 있었다. 마주 들어 꺼내보니 왼쪽 귀가 끊어져 있고 전에 만난 중과 같았다. 바로 정취보살의 불상이었다

乃作簡子, 卜其營構之地. 洛山上方吉. 乃作殿三間安其像.

이에 간자(簡子-점치는 대나무 조각)를 만들어 절을 지을 곳을 점쳐보니 낙산 위가 가장

좋으므로 그 곳에 불전 세 칸을 짓고 그 불상을 모셨다.

[古本載梵日事在前. 湘曉二師在後.

[고본에는 이 일을 실었으되, 범일의 일은 앞에 두고, 의상 원효의 일은 뒤에 두었다.

然按湘曉二師미□於高宗之代. 梵日在於會昌之後. 相去一百七十餘歲. 故今前却而編次之.

그러나 상고해 보건대 의상과 원효는 고종 때이고, 범일은 회창 뒤에 있던 사람인 만큼 서로 거리가 170여 년이나 되므로 이제 앞으로 물려 편차하였다.

或云. 梵日爲湘之門人. 謬妄也.]

혹은 이르기를 범일은 의상의 문인이라 하나 그릇된 것이다.]

두 성인의 불상과 두 보주

後百餘年. 野火連延到此山. 唯二聖殿獨免其災. 餘皆煨燼.

그후 백여 년이 지나 들에 불이 나서 이 산까지 번졌으나

오직 관음, 정취 두 성인을 모신 불전만은 그 화재를 면했으며, 나머지는 전부 다 타버렸다.

及西山大兵已來. 癸丑甲寅年間. 二聖眞容及二寶珠. 移入襄州城.

몽고의 병란 이후 계축 갑인연간(1253-54)에

두 성인의 참모습과 두 보주를 양주성으로 옮겼다.

大兵來攻甚急. 城將陷時.

몽고 군사가 심히 급하게 공격하므로 성이 바야흐로 함락될 위기에 처했다.

住持禪師阿行[古名希玄.]以銀合盛二珠. 佩持將逃逸.

주지인 선사 아행[古名希玄]이 은으로 만든 함에 두 보주를 넣어 가지고

몸에 차고 도망하려고 했다.

寺奴名乞升奪取. 深埋於地. 誓曰.

이것을 절에 있는 중 걸승이 빼앗아 땅속 깊이 묻고 맹세했다.

我若不免死於兵. 則二寶珠終不現於人間. 人無知者.

'내가 만일 이 병란에 죽음을 면치 못한다면

두 보주는 끝내 아는 사람이 없어 인간세상에 나타나지 못할 것이요,

我若不死. 當奉二寶獻於邦家矣.

내가 만일 죽지 않는다면 마땅히 이 두 보물을 받들어 나라에 바칠 것이다.'

甲寅十月二十二日城陷.

갑인(1254) 10월 22일에 이 성은 함락되었다.

阿行不免而乞升獲免.

아행은 죽음을 면치 못했으나 걸승은 죽지 않았다.

兵退後掘出. 納於溟州道監倉使.

적의 군사가 물러가자 그는 이것을 파내어 명주도 감창사에게 바쳤다.

時郎中李祿綏爲監倉使. 受而藏於監倉庫中. 每交代傳受.

이때 낭중 이녹수가 감창사였는데

이것을 받아 감창고 안에 간직해 두고 교대할 때마다 서로 이어받았다.

至戊午十月. 本業老宿祗林寺住持大禪師覺猷奏曰.

무오(1258) 11월에 이르자 본업의 늙은 중 지림사 주지인 대선사 각유가 임금께 아뢰었다.

洛山三珠. 國家神寶.

"낙산사의 두 보주는 국가의 신보입니다.

襄州城陷時. 寺奴乞升埋於城中. 兵退. 取納監倉使. 藏在溟州營庫中.

양주성이 함락될 때 절의 중 걸승이 성안에 묻었다가

적군이 물러간 뒤 파내어 감창사에게 바쳐서 명주영 창고에 간직하여 왔습니다.

今溟州城殆不能守矣. 宜輸安御府.

이제는 명주성도 지킬 수 없사오니

마땅이 어부(御府)로 옮겨 모시는 것이 옳겠습니다."

主上允可.

임금은 이를 허락했다.

發夜別抄十人, 率乞升. 取於溟州城. 入安於內府.

야별초 10명과 걸승이 명주성에 가서 두 보주를 갖다가 내부에 안치해 두었다.

時使介十人各賜銀一斤, 米五石.

그 때 사자로 간 10명에게는 각각 은 1근과 쌀 5섬씩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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