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문만 제시하면 의미를 알 수 없고, 국역만 처리하면 중요한 부분을 놓치기 쉬워

한문을 짧게 끊고 국역으로 대역(對譯)하였다.

 

금오신화 5편중 <만복사저포기>와 <이생규장전>은 인귀교환설화를 소재로 하였다.

산 사람이 죽은 사람의 영혼과 생시처럼 육체적 관계를 나누는 것을 인귀교환설화라 한다.

얼마나 지독한 사랑이기에 그런 판타지를 만들어 낸 걸까?

우리나라 최초의 것은 최치원 설화[쌍녀분설화]이고

명나라 구우의 전등신화에도 상당수 작품이 이 설화를 사용하였다.

31세부터 용장사지 서고에 거처하던 시절 창작하였다.

 

https://kydong77.tistory.com/19751

 

김시습, <금오신화> 5편 원문과 국역 총정리/ 김시습 년보

自寫眞贊[자화상 찬] -위 사진 상단. * 두번째 사진은 젊은날의 자화상. *이땅에서 자화상을 그리는 것도 드문 일이거니와 스스로 '贊'을 붙여 자신을 예찬한다는 건 자신이 당당하게 살아온 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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萬福寺摴蒲記

만복사저포기:만복사에서 저포놀이를 이긴 이야기

-金時習

 

만복사저포기 萬福寺摴蒲記 上

-만복사에서 저포놀이하다

 

1]양생, 만복사에서 처자 환신(幻身)을 만나다

1)양생, 조실부모하고 혼자 만복사 동쪽 방에서 살다

 

南原有梁生者, 早喪父母, 未有妻室, 獨居萬福寺之東.

전라도 남원에 양생이 살고 있었는데, 일찍이 어버이를 잃은 데다 아직 장가도 들지 못했으므로 만복사(萬福寺)의 동쪽에서 혼자 살았다.

房外有梨花一株, 方春盛開, 如瓊樹銀堆,

방 밖에는 배나무 한 그루가 있었는데, 마치 봄이 되어 꽃이 활짝 피었다. 마치 옥으로 만든 나무에 은 조각이 쌓여 있는 것 같았다.

生每月夜, 逡巡朗吟其下. 詩曰:

양생은 달이 뜬 밤마다 나무 아래를 거닐며 낭랑하게 시를 읊었다.

 

一樹梨花伴寂廖,

한 그루 배꽃이 외로움을 달래 주지만

可憐辜負月明宵.

휘영청 달 밝은 밤은 홀로 보내기 괴로워라.

靑年獨臥孤窓畔,

젊은 이 몸 홀로 누운 호젓한 창가로

何處玉人吹鳳簫.

어느 집 고운 님이 퉁소를 불어 주네.

 

翡翠孤飛不作雙,

외로운 저 물총새는 제 홀로 날아가고

鴛鴦失侶浴晴江.

짝 잃은 원앙새는 맑은 물에 노니는데,

誰家有約敲碁子,

바둑알 두드리며 인연을 그리다가

夜卜燈花愁倚窓.

등불로 점치고는 창가에서 시름하네.

 

吟罷, 忽空中有聲曰:

시를 다 읊고 나자 갑자기 공중에서 말소리가 들려 왔다.

“君欲得好逑, 何憂不遂.”

"그대가 참으로 아름다운 짝을 얻고 싶다면 어찌 이뤄지지 않으리라고 걱정하느냐?"

生心憙之,

양생은 마음속으로 기뻐하였다.

 

2)부처님과 저포놀이하여 이기다 

明日卽三月二十四日也.

그 이튿날은 마침 삼월 이십 사일이었다.

州俗燃燈於萬福寺祈福, 士女騈集, 各呈其志.

이 고을에서는 만복사에 등불을 밝히고 복을 비는 풍속이 있었는데, 남녀들이 모여들어 저마다 소원을 빌었다.

日晩梵罷人稀,

날이 저물고 법회도 끝나자 사람들이 드물어졌다.

生袖摴蒲, 擲於佛前曰:

양생이 소매 속에서 저포를 꺼내어 부처님 앞에다 던졌다. (소원을 빌었다.)

“吾今日, 與佛欲鬪蒲戱,

"제가 오늘 부처님을 모시고 저포놀이를 하여 볼까 합니다.

若我負, 則設法筵以賽,

만약 제가 지면 법연(法筵)을 차려서 부처님께 갚아 드리겠습니다.

若不負, 則得美女, 以遂我願耳.”

만약 부처님이 지시면 아름다운 여인을 얻어서 제 소원을 이루게 하여 주십시오."

祝訖, 遂擲之, 生果勝,

빌기를 마치고 곧 저포를 던지자, 양생이 과연 이겼다.

卽跪於佛前曰:

그래서 부처 앞에 무릎은 꿇고 앉아서 말하였다.

“業已定矣, 不可誑矣.”

"인연이 이미 정하여졌으니, 속이시면 안 됩니다."

遂隱於几下, 以候其約.

그는 불좌(佛座) 뒤에 숨어서 그 약속에 이루어지기를 기다렸다.

 

3)불전에서 배필을 구하는 처자 환신(幻身)을 만나다

 

俄而有一美姬, 年可十五六,

얼마 뒤에 한 아름다운 아가씨가 들어오는데, 나이는 열대 여섯쯤 되어 보였다.

丫鬟淡飾, 儀容婥妁,

머리를 두 갈래로 땋고 깨끗하게 차려 입었는데,

如仙姝天妃, 望之儼然,

아름다운 얼굴과 고운 몸가짐이 마치 하늘의 선녀 같았다. 바라볼수록 얌전하였다.

手携油甁, 添燈揷香,

그 여인은 기름병을 가지고 와서 등잔에 기름을 따라 넣은 다음 향을 꽂았다.

三拜而跪, 噫而歎曰:

세 번 절하고 꿇어앉아 슬피 탄식하였다.

“人生薄命, 乃如此邪?”

"인생이 박명하다지만, 어찌 이럴 수가 있으랴?"

遂出懷中狀詞, 獻於卓前. 其詞曰:

그리고는 품속에서 축원문을 꺼내어 불탁 위에 바쳤다.

 

“某州某地居住, 何氏某,

아무 고을 아무 동네에 사는 소녀 아무개가 (외람 됨을 무릅쓰고 부처님께 아룁니다.)

竊以曩者, 邊方失禦倭寇來侵,

지난번에 변방의 방어가 무너져 왜구가 쳐들어오자,

干戈滿目, 烽燧連年,

싸움이 눈앞에 가득 벌어지고 봉화가 여러 해나 계속되었습니다.

焚蕩室廬, 盧掠生民,

왜놈들이 집을 불살라 없애고 생민들을 노략하였으므로,

東西奔竄, 左右逋逃,

사람들이 동서로 달아나고 좌우로 도망하였습니다.

親戚僮僕, 各相亂離,

우리 친척과 종들도 각기 서로 흩어졌었습니다.

妾以蒲柳弱質, 不能遠逝,

저는 버들처럼 가냘픈 소녀의 몸이라 멀리 피난을 가지 못하고,

自入深閨, 終守幽貞,

깊숙한 규방에 들어 앉아 끝까지 정절을 지켰습니다.

不爲行露之沾, 以避橫逆之禍,

윤리에 벗어난 행실을 저지르지 않고서 난리의 화를 면하였습니다.

父母以女子守節不爽,

저의 어버이께서도 여자로서 정절을 지킨 것이 그르지 않았다고 하여,

避地僻處, 僑居草野, 已三年矣.

외진 곳으로 옮겨 초야에 붙여 살게 해주셨습니다. 그런지가 벌써 삼 년이나 되었습니다.

然而秋月春花, 傷心虛度,

가을 달밤과 꽃 피는 봄날을 아픈 마음으로 헛되이 보내고,

野雲流水, 無聊送日,

뜬구름 흐르는 물과 더불어 무료하게 나날을 보냈습니다.

幽居在空谷, 歎平生之薄命,

쓸쓸한 골짜기에 외로이 머물면서 제 박명한 평생을 탄식하였고,

獨宿度良宵, 傷彩鸞之獨舞,

아름다운 밤을 혼자 지새우면서 (짝 잃은) 채란(彩鸞)의 외로운 춤을 슬퍼하였습니다.

日居月諸, 魂銷魄喪,

그런데 날이 가고 달이 가니 이제는 혼백마저 사라지고 흩어졌습니다.

夏日冬宵, 膽裂腸摧,

(기나긴) 여름날과 겨울밤에는 간담이 찢어지고 창자까지 찢어집니다.

惟願覺皇, 曲垂憐愍,

오직 부처님께 비오니, 이 몸을 가엽게 여기시어 각별히 돌보아 주소서.

生涯前定, 業不可避,

인간의 생은 태어나기 전부터 정해져 있으며 선악의 응보를 피할 수 없으니,

賦命有緣,

제가 타고난 운명에도 인연이 있을 것입니다.

早得歡娛, 無任懇禱之至.”

빨리 배필을 얻게 해주시길 간절히 비옵니다.

 

女旣投狀, 嗚咽數聲.

여인이 빌기를 마치고 나서 여러 번 흐느껴 울었다.

生於隙中, 見其姿容,

양생은 불좌 틈으로 여인의 얼굴을 보고

不能定情, 突出而言曰:

마음을 걷잡을 수가 없었으므로, 갑자기 뛰쳐나가 말하였다.

“向者投狀, 爲何事也?”

"조금 전에 글을 올린 것은 무슨 일 때문이신지요?"

見女狀辭, 喜溢於面, 謂女子曰:

그는 여인이 부처님께 올린 글을 보고 얼굴에 기쁨이 흘러 넘치며 말하였다.

“子何如人也, 獨來于此?”

"아가씨는 어떤 사람이기에 혼자서 여기까지 왔습니까?"

女曰: “妾亦人也, 夫何疑訝之有,

여인이 대답하였다.

"저도 또한 사람입니다. 대체 무슨 의심이라도 나시는지요?

君但得佳匹, 不必問名姓, 若是其顚倒也.”

당신께서는 다만 좋은 배필만 얻으면 되실 테니까, 반드시 이름을 묻거나 그렇게 당황하지 마십시오."

 

4)처자와 절안 판자방에서 운우지락을 나누다

 

時寺已頹落, 居僧住於一隅,

이 때 만복사는 이미 퇴락하여 스님들은 한쪽 구석진 방에 머물고 있었다.

殿前只有廊廡, 蕭然獨存,

법당 앞에는 행랑만이 쓸쓸하게 남아 있고,

廊盡處, 有板房甚窄.

행랑이 끝난 곳에 아주 좁은 판자방이 있었다.

生挑女而入, 女不之難,

양생이 여인의 손을 잡고 판자방으로 들어가자, 여인도 어려워하지 않고 들어왔다.

相與講歡, 一如人間.

서로 즐거움을 나누었는데, 보통 사람과 한 가지였다.

 

將及夜半, 月上東山, 影入窓柯,

이윽고 밤이 깊어 달이 동산에 떠오르자 창살에 그림자가 비쳤다.

忽有跫音, 女曰:

문득 발자국 소리가 들리자 여인이 물었다.

“誰耶? 將非侍兒來耶?”

"누구냐? 시녀가 찾아온 게 아니냐?"

兒曰: “唯. 向日娘子, 行不過中門, 履不容數步,

시녀가 말하였다.

"예. 평소에는 아가씨가 문 밖에도 나가지 않으시고 서너 걸음도 걷지 않으셨는데,

昨暮偶然而出, 一何至於此極也?”

어제 저녁에는 우연히 나가셨다가 어찌 이곳까지 오셨습니까?"

女曰: “今日之事, 蓋非偶然,

여인이 말하였다.

"오늘의 일은 우연이 아니다.

天之所助, 佛之所佑,

하느님이 도우시고 부처님이 돌보셔서,

逢一粲者, 以爲偕老也.

고운 님을 맞이하여 백년해로를 하게 되었다.

不告而娶, 雖明敎之法典,

어버이께 여쭙지 못하고 시집가는 것은 비록 예법에 어그러졌지만,

式燕以遨, 亦平生之奇遇也.

서로 즐거이 맞이하게 된 것은 또한 평생의 기이한 인연이다.

可於茅舍, 取裀席酒果來.”

너는 집으로 가서 앉을 자리와 술안주를 가지고 오너라."

 

5)처자는 술자리를 마련하고 시를 수작하다

 

侍兒一如其命而往,

시녀가 그 명령대로 가서

設筵於庭, 時將四更也.

뜨락에 술자리를 베푸니, 시간은 벌써 사경(四更)이나 되었다.

鋪陳几案, 素淡無文,

시녀가 차려 놓은 방석과 술상은 무늬가 없이 깨끗하였으며,

而醪醴馨香, 定非人間滋味.

술에서 풍기는 향내도 정녕 인간 세상의 솜씨는 아니었다.

生雖疑怪, 談笑淸婉,

양생은 비록 의심나고 괴이하였지만, 여인의 이야기와 웃음소리가 맑고 고우며

儀貌舒遲 意必貴家處子, 踰墻而出, 亦不之疑也.

얼굴과 몸가짐이 얌전하여, '틀림없이 귀한 집 아가씨가 (한때의 마음을 잡지 못하여) 담을 넘어 나왔구나' 생각하고는 더 이상 의심하지 않았다.

觴進, 命侍兒, 歌以侑之,

여인이 양생에게 술잔을 올리면서 시녀에게 명하여 '노래를 불러 흥을 도우라' 하고는,

謂生曰: “兒定仍舊曲,

양생에게 말하였다.

"이 아이는 옛 곡조밖에 모릅니다.

請自 製一章以侑, 如何?”

저를 위하여 새 노래를 하나 지어 흥을 도우면 어떻겠습니까?"

生欣然應之曰: “諾.”

양생이 흔연히 허락하고는

乃製滿江紅一闋, 命侍兒歌之曰:

곧 「만강홍(滿江紅)」 가락으로 가사를 하나 지어 시녀에게 부르게 하였다.

 

惻惻春寒羅衫薄, 幾回腸斷金鴨冷.

쌀쌀한 봄추위에 명주 적삼은 아직도 얇아

몇 차례나 애태웠던가, 향로불이 꺼졌는가 하고,

晩山凝黛, 暮雲張繖.

날 저문 산은 눈썹처럼 엉기고

저녁 구름은 일산처럼 퍼졌는데,

錦帳鴛衾無與伴, 寶𨥁半倒吹龍管.

비단 장막 원앙 이불에 짝지을 이가 없어서

금비녀 반만 꽂은 채 퉁소를 불어 보네.

可惜許光陰易跳丸, 中情懣.

아쉬워라, 저 세월이 이다지도 빠르던가

마음 속 깊은 시름이 답답하여라.

燈無焰銀屛短, 徒收淚誰從款.

낮은 병풍 속에서 등불은 가물거리는데

나 홀로 눈물진들 그 누가 돌아보랴.

喜今宵, 鄒律一吹回暖.

기뻐라, 오늘밤에는

피리를 불어 봄이 왔으니,

破我佳城千古恨, 細歌金縷傾銀椀.

겹겹이 쌓인 천고의 한이 스러지네

「금루곡」 가락에 술잔을 기울이세.

悔昔時抱恨, 蹙眉兒眠孤館.

한스런 옛시절을 이제 와 슬퍼하니

외로운 방에서 찌푸리며 잠들었었지.

 

歌竟, 女愀然曰:

노래가 끝나자 여인이 서글프게 말하였다.

“曩者蓬島, 失當時之約,

"지난번에 봉도(蓬島)에서 만나기로 했던 약속은 어겼지만,

今日瀟湘, 有故人之逢,

오늘 소상강(瀟湘江)에서 옛 낭군을 만나게 되었으니

得非天幸耶.

어찌 천행이 아니겠습니까?

郞若不我遐棄, 終奉巾櫛,

낭군께서 저를 멀리 버리지 않으신다면 끝까지 시중을 들겠습니다.

如失我願, 永隔雲泥.”

그렇지만 만약 제 소원을 들어주지 않으신다면 저는 영원히 자취를 감추겠습니다."

生聞此言, 一感一驚曰:

양생이 이 말을 듣고 한편 놀라며 한편 고맙게 생각하여 대답하였다.

“敢不從命?”

"어찌 당신의 말에 따르지 않겠소?"

然其態度不凡, 生熟視所爲,

그러면서도 여인의 태도가 범상치 않았으므로, 양생은 유심히 행동을 살펴보았다.

時月掛西峯, 鷄鳴荒村, 寺鐘初擊,

이때 달이 서산에 걸리자 먼 마을에서는 닭이 울고 절의 종소리가 들려 왔다.

曙色將暝. 女曰

먼동이 트려 하자 여인이 말하였다.

“兒可撤席而歸” ,

"얘야. 술자리를 거두어 집으로 돌아가거라."

隨應隨滅 不知所之.

시녀는 대답하자마자 없어졌는데, 간 곳을 알 수 없었다.

女曰: “因緣已定, 可同携手.”

여인이 말하였다.

"인연이 이미 정해졌으니 낭군을 모시고 집으로 돌아가려 합니다."

 

출처: https://kydong77.tistory.com/8087 [김영동교수의 고전 & Life:티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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