自寫眞贊[자화상 찬]

-위 사진 상단.

* 두번째 사진은 젊은날의 자화상.

*이땅에서 자화상을 그리는 것도 드문 일이거니와 스스로 '贊'을 붙여 자신을 예찬한다는 건 자신이 당당하게  살아온 길에 대한 자부심의 표현으로 해석된다. '自讚'에서 겸양의 미덕도 보였지만 최치원 이후 자신의 천재성과 독창성, 그리고 정의로운 삶의 드러난 궤적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다고 감히 단언한다. 물론 만해 한룡운 선생께서 佛心에 기초한 시적 천재성과 정의로운 삶의 바톤을 이어 받으셨지만.

俯視李賀

(부시이하) 이하(李賀)*도 내려다 볼 만큼

優於海東

(우어해동) 조선에서 최고라고들 했지.

騰名謾譽

(등명만예) 높은 명성과 헛된 칭찬

於爾孰逢

(어이숙봉) 네게 어찌 걸맞겠는가.

爾形至眇

(이형지묘) 네 형체는 지극히 작고

爾言大閒

(이언대동) 네 언사는 너무도 오활하네.

宜爾置之

(의이치지) 네 몸을 두어야 할 곳은

丘壑之中

(구학지중) 금오산 산골짝이 마땅하도다.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80323023002&wlog_tag3=naver#csidx5cb1eef2c190ffca8ad78f9df6ab14d

* 이하 李賀, Li He (791-817)

26세에 요절한 唐代 천재시인.

 

[참고]

生六臣

서산서원은 1703년(숙종 29)에 경상도 유학 곽억령(郭億齡) 등이 조려(趙旅), 원호(元昊), 김시습(金時習), 이맹전(李孟專), 성담수(成聃壽), 남효온(南孝溫) 등의 병향(幷享)을 사육신의 예에 따라 이루어짐이 마땅함을 국왕에게 상소하여 윤허를 받고 여섯 사람의 제향을 위하여 창건한 서원이 되었다.

死六臣

성삼문(成三問:1418~56)·하위지(河緯地:1387~1456)·이개(李塏:1417~56)·유성원(柳誠源:?~1456)·박팽년(朴彭年:1417~56)·유응부(兪應孚:?~1456) 등을 일컫는다

거렬당한 이분들의 시신을 거둔 분은 거둔 분은 김시습이라 전한다.

https://ko.wikipedia.org/wiki/%EC%82%AC%EC%9C%A1%EC%8B%A0%EA%B3%B5%EC%9B%90

 

사육신공원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사육신 공원(死六臣公園)은 서울특별시 동작구 노량진동에 있는 사육신묘와 그 외 사육신비 등이 안장된 공원이다. 원래 이곳에 있던 성삼문·이개·박팽년·김문기의 묘에, 하위지·유성원의 가

ko.wikipedia.org

수양대군이 조카인 단종(1445년)으로부터 왕위를 빼앗고, 왕이 되자 이에 불복하고 단종 복위에 힘 쓰다 목숨을 잃은 성삼문하위지이개유성원박팽년김문기를 현창하여 모신 곳이다. 이들은 단종 3년(1455년)에 수양대군의 왕위찬탈에 분개하여 단종의 복위를 노리던 중, 1456년 6월 명나라 사신의 환송연에서 성삼문의 아버지 성승(成勝)가 세조 일파를 처단하기로 계획하였으나, 이 사실이 사전에 누설되어 실패하였다. 이들의 계획이 좌절되자 거사 동지이며 집현전 출신인 김질(金礩) 등이 세조에게 단종복위 계획을 밀고하여 연루자들이 모두 붙잡혔다.

성삼문은 시뻘겋게 달군 쇠로 다리를 꿰고 팔을 잘라내는 잔혹한 고문에도 굴하지 않고 세조를 ‘전하’라 하지 않고 ‘나리’라 불렀으며, 나머지 사람들도 진상을 자백하면 용서한다는 말을 거부하고 형벌을 받았다. 성삼문박팽년이개는 단근질로 죽음을 당하였고하위지는 참살 당하였다. 유응부는 잡히기 전에 자기 집에서 아내와 함께 자살하였다. 이밖에 사육신의 가족으로 남자인 경우는 모두 죽음을 당하였고, 여자의 경우는 남의 노비로 끌려가는 등 70여명이 모반 혐의로 화를 입었다.

출처: https://kydong77.tistory.com/18008 [김영동교수의 고전& life] 사육신공원 내용추가

출처: https://kydong77.tistory.com/18573?category=487462 [김영동교수의 고전 & Life:티스토리]

 

https://kydong77.tistory.com/21713

 

눈발 날리는 영윌 장릉(莊陵,단종 릉)/ 엄흥도의 정려각(旌閭閣)

https://www.youtube.com/watch?v=UE0k3MfT59Q https://www.youtube.com/watch?v=r_o1zVGvNGA https://www.youtube.com/watch?v=OBCb9y2rR8Q 눈 ㅡ김수영 눈은 살아 있다.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마당 위에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기침

kydong77.tistory.com

 

생육신 김시습

1455년(세조 1년) 21세 때

삼각산(三角山) 중흥사(重興寺)에서 글을 읽다가 단종(端宗)이 왕위를 빼앗겼다는 변보를 듣고 문을 닫고 3일 동안 밖에 나오지 않았다. 읽던 서적을 다 불에 태우고 거짓 미친 채 변소에 빠졌다가 도망하여 중이 되어 이름을 설잠(雪岑)이라 하였다.

 

경주 금오산 용장사지 마애불

용장사지 삼층석탑

 

 

茸長寺有懷(용장사 유회)

ㅡ 김시습

 

茸長山洞幽

용장산동유, 용장산 골짜기 깊고 깊어서

不見有人來

부견유인래, 사람이 오는 것이 보이지 않네.

細雨移溪竹

세우이계죽, 가랑비는 시냇가 대나무를 찾아가고

斜風護野梅

사풍호야매, 스쳐가는 바람은 들의 매화를 감싸주네.

小窓眠共鹿

소창면공록,  작은 창에서 잠드니 꿈은 사슴을 따라 나서고         

枋椅坐同灰

방의좌동회, 낡은 의자에 앉으니 몸과 마음 식은 재로다

不覺茅簷畔

부각모첨반, 초가집에 딸린 밭두둑이 알지 못하는 사이

庭花落又開

정화낙우개, 뜨락의 꽃밭에는 꽃이 지고 또 피누나.

출처: https://kydong77.tistory.com/8087 [김영동교수의 고전 & Life]

 

<금오신화>의 금오는 경주 남산의 주봉을 지칭하고, 신화란 새로운 이야기의 뜻인데, 소설은 기본적으로 소재든 주제든 문체든 새로운 것이어야 한다. 굳이 금오를 덧붙인 것은 작품을 창작한 장소를 의미한다고도 볼 수 있다. 21세때 삼각산 중흥사에서 과거시험 준비중 세조의 왕위찬탈 소식에 과거공부를 포기하고 20대엔 방랑생활의 연속이었고, 31세때 정착한 곳이 위의 거대한 마애불이 있는 경주 남산에 위치한 용장사였다.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은 용장사 거처에서 집필되었다.

그가 선택한 新話는 명나라 구우의 <剪燈新話>에서 시도했던 人鬼交歡說話였다. 인귀교환이란 살아 있는 사람과 죽은 사람의 영혼인 귀신이 만나 사랑을 나누는 이야기다.

<전등신화>의 '전등'이란 등불 심지에서 그을음이 나서 심지를 자른다는 의미다. 다시말하면 밤이 깊도록 잠도 안 자고 읽는 재미난 이야기를 기술한 소설이란 의미다.

<금오신화>의 경우엔 귀신과 시를 수작하는 장면이 잦은 걸로 보면, 그와 시를 수작할 만한 사람이 현실에 없다는 것도 한 가지 이유라고 운영자는 추정한다.

 

김시습 년보

http://www.maewd.com/

1435년(세종 17년)

시울 반중 북쪽에 있는 충순위(忠純衛) 일성(日省)의 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강릉 (江陵)이요, 자는 열경(悅卿), 휘는 시습(時習), 호는 매월당(梅月堂),

동봉(東峰),

청한자(淸寒子), 벽산청은(碧山淸隱)·췌세옹(贅世翁),법호는 설잠(雪岑)이다.

대대 무인의 집에서 태어났으며 어릴 때부터 문장이 뛰어나 귀여움을 받았다.

고려조 (高麗朝) 시중 김태현(金太鉉)의 십삼세 손이다.

그이 외조가 맡아서 글을 가르쳤는데 말은 가르치지 않고 천자만 가르치어

어려서부터 말로 하는 것보다 글로 표현하는 것이 더 빨랐다고 하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논어(論語)에 [자왈 학이시습지면 불역열호아(子曰 學而時習之 不亦悅(設)乎)]에서 시습(時習)을 따서 휘(이름)로 하고 경(卿)자를 넣어서 열경(悅卿)이라고 자를 지었다고 한다.

세살 때 한시를 능히 지었다.

유모가 맷돌에 보리 가는 것을 보고 ,

[無 雨 黃 雲]

[비도 없이 천둥소리 어디서 나나,

누런 구름 조각이 각 사방에 흩어지네]

하고 소리 높이 읊으니 사람들이 모두 그를 신기하게 여겼다.

 

1439년(세종 21년)

5세 때에 수찬(修撰) 이계전(李季甸)의 문하에서 중용과 대학을 배워 능통하였다.

정승 허 조 (許稠)가 그를 찾아가서 불러 말하기를

[나는 늙었으니 늙을 로(老)자로 운을 달아 지어라]라고 하니 

[늙은 나무가 꽃 피는 것은 마음이 늙지 않았기 때문입니다.]라고 답하니

허 조는 문득 무릎을 치면서, [정말 신동이구나!]하고 탄복하였다 한다.

세종께서 이 소문을 듣고 시습을 불러 지신사(知申事) 박이창(朴以昌)에게 그의 재주를 시험하게 하여

[동자의 학문하는 태도가 흰 학이 푸른 하늘 끝에서 춤추는 것 같구나( 子之學 白鶴 靑空之末)] 싯귀를 주어 댓귀를 지으라 하니

[子之學 白鶴 靑空之末]

聖主之德 黃龍 海之中

[성스러운 임금님의 덕은 누런 용이 푸른 바다속에 꿈틀거리는 것 같습니다.]라

답하여, 세종께서는 크게 칭찬하시고 비단 50필을 상으로 내렸다.

이로부터 이름은 온 나라에 떨쳐 사람들에게서 5세 신동으로 불리게 되었다.

 

5세부터 13세까지

이웃에 사는 대사성(大司成) 김 반(金泮)의 문하에서 논어(論語).맹자(孟子).시경(時經).춘추(春秋)를 배웠으며, 이웃에 사는 사성(司成) 윤상(尹祥)에게 나아가 역경(易經).예기(禮記)와 여러 사서(史書)에서 제자백가(諸自百家)에 이르기까지 배웠다.

 1449년(세종 31년)

15세 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 외가에서 양육을 받았다.

 1454년(단종 2년) 20세 때,

훈련원도정(訓練院都正) 남효례(南孝禮)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였다.

 

1455년(세조 1년) 21세에,

삼각산(三角山) 중흥사(重興寺)에서 글을 읽다가 단종(端宗)이 왕위를 빼앗겼다는 변보를 듣고

문을 닫고 3일 동안 밖에 나오지 않았다. 읽던 서적을 다 불에 태우고 거짓 미친 채 변소에 빠졌다가

도망하여 중이 되어 이름을 설잠(雪岑)이라 하였다.

 

1458년(세조 4년) 24세 때,

관서지방을 여행하였다.

가을에 <탕유관서록후지>를 저술하였다 .

 

1463년(세조 9년) 28세 때

방랑 여행으로 호남지방을 여행하였고 그해 가을에 <탕유호남록후지(宕遊湖南錄後志)>를

저술하였다. 가을에 서적 구입차 서울에 올라왔다가 효령대군(孝寧大君)의 권고를 받아 열흘 동안 법화경(法華經)을 교정하였다.

 

1465년(세조 11년) 31세 때,

경주(慶州)에 정착하였고, 봄에 남산의 주봉인 금오산 용장사 아래 계곡에 금오산실을 지어 살았다.

3월말에 효령대군의 초청을 받아 서울로 나와 원각사(圓覺寺)의 낙성식에 참석하였다.

 

1468년(세조 14년) 34세 때,

겨울에 금오산에 거처하고 <산거백영(山居百詠)>을 저술하였다.

이즈음 한국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를 저술하다. 경주 남산의 주봉이 금오산이다.

명나라 구우의 『전등신화』를 모방하여 인귀교환설화를 수용하여 ‘신화(新話)’라 붙이다.

 

[참고]

https://kydong77.tistory.com/19585

 

구우(瞿佑), 전등신화(剪燈新話)/ 한문과 국역

명청대의 문언소설 (0) 2013.06.01 명청대의 문언소설 명청시대(明淸時代)의 문언소설 (文言小說) http://kh99.kll.co.kr/gen/main_0602.html?kkk=5&sss=1&sl=1&id=kh99&no=4621&sno=45734&n=23 문학사 - 김경미 중국소설사에

kydong77.tistory.com

 

*人鬼交歡설화 - 사람과 귀신의 사랑이야기

https://kydong77.tistory.com/14011

 

최치원설화 or 쌍녀분(雙女墳)설화

雙女墳 江蘇省高淳縣 최치원설화/崔致遠傳 또는 쌍녀분(雙女墳)설화 雙女墳記 임명덕본, 한국한문소설전집, 권7,p.261. 국역은 김현양 외, (박이정, 1996) 을 참고하여 약간 부분 윤색하였다. 본문

kydong77.tistory.com

 

1471년(성종 2년) 37세 되던 해

봄에 금오산으로부터 서울로 돌아와 도성 동쪽 수락산 기슭에 폭천정사를 짓고 은거하였다.

 

1476년(성종 7년) 42세 때,

<산거백영후지(山居百詠後志)>를 저술하다.

 

1481년(성종 12년) 47세 때,

다시 속인이 되었다. 고기를 먹고 머리를 기르며 안씨(安氏)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다.

 

1482년(성종 13년) 48세 때,

이 해 이후부터 세상이 쇠진해짐을 보고는 세상일에 전혀 관계하지 않았다.

 

1483년(성종 14년) 49세 때,

육경(六經).자사 등의 많은 서적을 싣고 관동유람의 길을 떠났다.

 

1485년(성종 16년) 51세 때,

봄에 <독산원기(禿山院記)>를 지었다.

 

1493년(성종 24년) 59세 때,

3월에 충청도 홍산현(鴻山縣, 현재는 부여군 외산면 만수리) 무량사(無量寺)에서 세상을 떠났다.

 

<사후>

1511년 (중종 6년)

세상을 떠난지 18년만에 왕명으로 유집(遺集)을 찾아 모아서 간행케 하였다.

1582년 (선조 15년)

세상을 떠난 지 89년만에 선조께서 이 이(李珥)에게 영을 내리어 김시습전(金時習傳)을 지어 바치게 하였다.

1703년 (숙종 29년)

세상을 떠난지 210년만에 유생 곽억령 등이 김시습 등 6인의 절의를 추모하여 사우를 세울 것을 상소하여

대왕께서 윤허하였다.

1782년 (정조 6년)

세상을 떠난 지 289년만에 이조판서(吏曺判書)에 추증하였다.

1784년 (정조 8년)

세상을 떠난 지 291년만에 청간(淸簡)이란 시호를 내렸다.

 

[참고]

무량사 (無量寺)에 선생의 부도(浮屠)가 있고 또 영정이 있다.

경주시 기림사 일주문 안에도

사찰 경내에 경주 남산에서 옮겨온 사당이 중수되어 있다.

이 영정은 선생이 자신의 초상을 자필로 그리셨다는 설이 전해 온다 .

선생은 유학과 불교에 능통한 저명한 학자이시다.

 

김시습전-율곡 이이 (0) 2011.03.12

 

김시습전-율곡 이이

[주]세조의 왕위찬탈로 파탄난 인생, 그는 장부의 표상이라며 수염을 기른 중으로 일생을 방랑했다. 47세때 환속하여 조부신께 사죄문도 올렸지만 충신불사이군의 유교적 이데올로기는 태생의 역마살을 자극하여..

kydong77.tistory.com

 

http://blog.naver.com/kwank99?Redirect=Log&logNo=30029487601

 

이율곡 : 전기 <김시습전(金時習傳)>

<김시습전(金時習傳)> 【해설】 이이(李珥)가 지은 전(傳). 김시습에 대하여 지은 전이다. 작자의 문...

blog.naver.com



https://ko.wikipedia.org/wiki/%EA%B9%80%EC%8B%9C%EC%8A%B5

 

김시습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김시습(金時習, 1435년 ~ 1493년)은 조선 초기의 문인, 학자이자 불교 승려이다. 생육신의 한 사람이다. 한성부에서 출생하였고 지난날 한때 경상도 김해를 거쳐 강원도 강릉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

ko.wikipedia.org

김시습(金時習, 1435년 ~ 1493년)은 조선 초기의 문인, 학자이자 불교 승려이다. 생육신의 한 사람이다. 한성부에서 출생하였고 지난날 한때 경상도 김해를 거쳐 강원도 강릉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적이 있는 그의 본관은 강릉, 자(字)는 열경(悅卿), 호는 매월당(梅月堂)·동봉(東峰)·벽산청은(碧山淸隱)·췌세옹(贅世翁), 불교 법명은 설잠(雪岑)이다. 충순위(忠順衛)를 지낸 김일성(金日省)의 아들이다.

수양대군이 자행한 단종에 대한 왕위 찬탈에 불만을 품고 은둔생활을 하다 승려가 되었으며, 벼슬길에 오르지 않았다. 일설에는 그가 사육신의 시신을 몰래 수습하여 경기도 노량진(현재의 서울 노량진 사육신 공원)에 암장했다고도 한다. 1493년 조선 충청도 홍산군 무량사에서 병사하였다. 이계전(李季甸), 김반(金泮), 윤상(尹祥)의 문인이다.

 

 

천재의 광기 - 김시습 금오신화 (0) 2018.08.29

 

천재의 광기 - 김시습 금오신화

Do-Re-Mi - Julie Andrews https://www.youtube.com/watch?v=L1l1KUuTNlk Do-Re-Mi - Julie Andrews [가사번역 자막] https://www.youtube.com/watch?v=b7Slk-6CYd4 https://www.youtube.com/watch?v=jITsImZdl..

kydong77.tistory.com

 

 

금오신화 정리 (0) 2012.08.31

 

금오신화 정리

이 블로그 운영자가 정리한 금오신화 자료는 다음과 같다. 김시습전 -율곡 이이 http://kydong77.tistory.com/8088 만복사저포기 상 -김시습 http://kydong77.tistory.com/8087 만복사저포기 하 -김시습 http://k..

kydong77.tistory.com

 

금오신화 작품 요약 (0) 2009.11.22

 

금오신화 작품 요약

금오신화 [참고]금오신화 vs 구우/전등신화 http://blog.paran.com/kydong/34822337 현존하는 5편은 만복사저포기, 이생규장전, 취유부벽정기, 용궁부연록, 남염부주지 등 다섯편이다. 이들은 각기 소재가

kydong77.tistory.com

 

 

김시습전 -율곡 이이 (0) 2008.08.05

 

김시습전 -율곡 이이

[주]세조의 왕위찬탈로 파탄난 인생, 그는 장부의 표상이라며 수염을 기른 중으로 일생을 방랑했다.47세때 환속하여 조부신께 사죄문도 올렸지만 충신불사이군의 유교적 이데올로기는 태생의

kydong77.tistory.com

 

만복사저포기 상 -김시습 (0) 2008.08.05

 

김시습, 만복사저포기 上

[주]금오신화 5편중 <만복사저포기>와 <이생규장전>은 인귀교환설화를 소재로 하였다. 산 사람이 죽은 사람의 영혼과 생시처럼 육체적 관계를 나누는 것을 인귀교환설화라 한다. 얼마나 지독한

kydong77.tistory.com

 

만복사저포기 하 -김시습 (1) 2008.08.05

 

김시습, 만복사저포기 下

만복사저포기 萬福寺摴蒲記 下 2]무덤에서 사흘간 처자 환신과 지내다 1)처자 환신을 따라 개령동 처자의 집에 가다 生執女手, 經過閭閻, 양생이 여인의 손을 잡고 마을을 지나가는데, 犬吠於籬,

kydong77.tistory.com

 

이생규장전 상 -김시습 (0) 2008.08.05

 

김시습, 이생규장전 上

[주]담장은 현실세계와 이상세계의 경계다. 담장 안은 이생이 경험하지 못한 이상세계였다. 담장을 넘어 최랑과 시를 창수하니 신선세계에서 선녀를 만난 기분이었다. 어떻게 빠져들지 않을 수

kydong77.tistory.com

 

이생규장전 하 -김시습 (0) 2008.08.05

 

김시습, 이생규장전 下

[주]연애[풋사랑]-울산 농장, 결혼-홍건적의 난에 피살, 인귀교환-명수 다해 영별. 이 작품은 세 차례에 걸친 만남과 이별의 변주곡이다. 2]이생, 최랑과 이별하다 1)이생의 행동이 탄로나 울주로

kydong77.tistory.com

 

취유부벽정기 -김시습 (0) 2008.08.06

 

김시습, 취유부벽정기

[주] 이 작품은 부벽루에서 시를 창수할 짝을 만난 홍생과 기씨녀의 회고시의 향연이다. 홍생의 칠률 6수, 기씨녀의 칠률 6수, 40운 80구의 기씨녀의 오언고시 <강정추야완월(江亭秋夜玩月)> 등이

kydong77.tistory.com

 

남염부주지 상 -김시습 (0) 2008.08.07

 

김시습,남염부주지 上

이 작품에는 매월당이 20년에 걸친 정신적 방황에서 도출하려 했던, 삶과 죽음에 대한 존재론적 회의와 불교의 세계관 및 의식의 오류에 대해 염왕과 대화하는 형식을 통해 정리하고 있다. 박생

kydong77.tistory.com

 

남염부주지 하--김시습 (0) 2008.08.07

 

김시습, 남염부주지 下

3]염왕과의 담론 1)유불을 비교하다 生問曰(생문왈) : 박생이 물었다. 周孔瞿曇(주공구담) : "주공과 공자와 석가는 何如人也(하여인야) : 어떤 사람들입니까?" 王曰(왕왈) : 임금이 말하였다. 周孔(

kydong77.tistory.com

 

용궁부연록 -김시습 (0) 2008.08.07

 

김시습, 용궁부연록

[주]한생이 용궁의 상량식 잔치에 초대되어 상량문 짓고, 용궁의 풍류잽이들과 초대받은 사람들이 돌아가며 재주를 보이며 시를 지은 후, 한생은 용궁을 두루 구경하고, 진주 두 알과 비단 두 필

kydong77.tistory.com

 

금오신화 원문과 번역 목록 (0) 2009.11.22

 

금오신화 원문과 번역 목록

[용장사지 위 마애불과 석탑들] [은자주] 이 블로그에 실은 금오신화의 원문과 번역 주소창을 소개한다. [참고]금오신화 vs 구우/전등신화 http://kydong77.tistory.com/5413 이 블로그 운영자가 정리한 금오신화..

kydong77.tistory.com

 



구우 / 전등신화 (0) 2009.11.17

 

구우 / 전등신화

[은자주]전등신화의 목차를 정리해 본다. 하단에 금오신화와 연관된 작품을 적시하고 걸작을 발췌해 본다. 전등신화(剪燈新話)_구우(瞿佑) 작자소전_주릉가(周楞伽) 서문 1. 구우(瞿佑)의 '전등신화서(剪燈新話..

kydong77.tistory.com

 






[오른쪽 산봉우리가 금오산 원경]


출처: https://kydong77.tistory.com/5414 [김영동교수의 고전 & Life]

 

금오신화 원문과 번역 목록

[용장사지 위 마애불과 석탑들] [은자주] 이 블로그에 실은 금오신화의 원문과 번역 주소창을 소개한다. [참고]금오신화 vs 구우/전등신화 http://kydong77.tistory.com/5413 이 블로그 운영자가 정리한 금

kydong77.tistory.com

 

題金鰲新話後

-금오신화를 짓고

 

矮屋靑氈暖有餘

(왜옥청선난유여) 오두막집에 자리를 까니 두루 따스한데

滿窓梅影月明初

(만창매영월명초) 막 떠오른 달빛에 매화 그림자 창에 가득하구나.

挑燈永夜焚香坐

(도등영야분향좌) 등불 돋우며 밤 늦도록 향을 사루고 앉아서

閑著人間不見書

(한저인간불견서) 사람들이 못 보던 글 한가롭게 지어내네.

 

玉堂揮翰已無心

(옥당휘한이무심) 옥당에서 붓을 휘두르는 데에는 마음 없어진 지 오래고

端坐松窓夜正深

(단좌송창야정심) 소나무 어리는 창가에 단정히 앉아 있노라니 밤 정히 깊네.

香揷銅甁烏几淨

(향삽동병오궤정) 청동 향로에 향 꽂고 검은 책상 정갈히 하여

風流奇話細搜尋

(풍류기화세수심) 멋들어지고 기이한 이야기를 찾고 또 찾노라

 

 

 

https://kydong77.tistory.com/19586

 

김시습, <금오신화> / <금오신화>와 <전등신화>의 관련 작품 비교

kydong77.tistory.com/18799 김시습 - 천재의 당위론적 삶 [상단은 젊은 날의 초상화, 하단은 "자사진찬"까지 쓴 주름진 늙으막의 초상화] *심경호 교수는 '천재의 광기'란 제목으로 동영상을 올렸지만,

kydong77.tistory.com

 

[관련작품 비교]

<금오신화> vs  <전등신화>

만복사저포기-등목취유취경원기

이생규장전 1부-연방루기

이생규장전 2부-애경전

취유부벽정기-금호야범기

남염부주지-영호생명몽록

용궁부연록-수궁경회록

출처: https://kydong77.tistory.com/19586 [김영동교수의 고전 & Life:티스토리]

 

https://kydong77.tistory.com/21174

 

同安常察,十玄談/김시습,십현담요해 &한룡운, 십현담주해/南銘,北銘

[상단은 젊은 날의 초상화, 하단은 "자사진찬"까지 쓴 주름진 늙으막의 초상화] https://kydong77.tistory.com/18574 同安常察,十玄談/ 김시습,십현담요해 & 한룡운, 십현담주해 십현담 [十玄談] ​https://term

kydong77.tistory.com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