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양주 최치원 기념관 얖 백옥석상

 

https://kydong77.tistory.com/3613

 

최치원,격황소서(檄黃巢書)

최치원(崔致遠) ,격황소서(檄黃巢書)동문선 제49권 격서(檄書) http://www.minchu.or.kr/index.jsp?bizName=MK [고전번역서] 廣明二年七月八日。諸道都統檢校太尉某告黃巢。 광명 2년 7월 8일에, 제도도통검교

kydong77.tistory.com

최지원, 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

 

https://kydong77.tistory.com/19525

 

최치원, 사산비명(四山碑銘)/ 격황소서(檄黃巢書) · 雙女墳傳記

 

kydong77.tistory.com

최치원, 사산비명(四山碑銘)/ 격황소서(檄黃巢書) · 雙女墳傳記

 

 

 

https://kydong77.tistory.com/18588

 

최치원, 쌍녀분기(雙女墳記 ) or 최치원전(崔致遠傳)

https://www.youtube.com/watch?v=eWIxclVd1_s https://www.youtube.com/watch?v=0zqjMTVKtaE [참고] 인귀교환설화의 첫 작품으로는 최치원의 〈쌍녀분전기〉(雙女墳傳記)이다. 으로 명칭하기도 한다. 실상 최치원이 쌍녀

kydong77.tistory.com

최치원, 쌍녀분기(雙女墳記 ) or 최치원전(崔致遠傳)

 

최치원, 쌍녀분(雙女墳)/ 인귀교환(人鬼交歡)설화 - 산 사람이 죽은 이와 시를 수작함.

> 김시습(金時習)의 『금오신화』 중의 「만복사저포기」나 「이생규장전」에도 동일한설정임.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othugi&logNo=70148464471

 

최치원 설화

최치원 설화   인물 전설 설화. 신라 말의 문장가인 최치원이 당나라에 있을 때의 일화에 관련된 문헌...

blog.naver.com

 

[논문]

현승환, 최치원설화의 형성

https://oak.jejunu.ac.kr/bitstream/2020.oak/2613/2/%EC%B5%9C%EC%B9%98%EC%9B%90%20%EC%84%A4%ED%99%94%EC%9D%98%20%ED%98%95%EC%84%B1.pdf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8644

 

선녀홍대설화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ncykorea.aks.ac.kr

권문해(權文海)의 『대동운부군옥(大東韻府群玉)』 권15 거성(去聲) 대(隊)조에는 ‘선녀홍대(仙女紅袋)’란 제목으로 되어 있으나, 내용이 거의 비슷한 이야기가 성임(成任)의 『태평통재(太平通載)』 권68에는 ‘최치원’으로 되어 있다. 또 중국 남송 때의 장돈이(張敦頤)가 편찬했다는 『육조사적유편(六朝事迹類編)』의 분릉문(墳陵門) 제13에는 ‘쌍녀분(雙女墳)’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태평통재』에 수록된 내용은 『대동운부군옥』의 수록 내용에 비하여 훨씬 내용이 길 뿐만 아니라 문학화되어 있어 설화보다는 소설 작품으로 인정되고 있다. 아마도 중국 현지에 지금까지도 남아 있다는 ‘최치원과 쌍녀분’에 관한 전설이 『육조사적유편』으로 기록되었던 것을 바탕으로, 『대동운부군옥』 수록분과 같은 기록문학 작품으로 발전하였다가, 다시 『태평통재』 수록분과 같은 단편소설로까지 승화된 것이 아닌가 한다.

『대동운부군옥』에 수록된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최치원이 중국으로 유학갔을 때 초현관(招賢館)에서 놀았는데, 그 앞 언덕에 ‘쌍녀분’이라는 오래 된 무덤이 있어, 그 석문에다 시를 써 놓고 돌아왔다. 그 뒤 갑자기 손에 홍대를 쥔 여자가 최치원에게 와서 “팔낭자와 구낭자가 화답하여 삼가 바칩니다.”라고 하였다. 최공이 깜짝 놀라 그 낭자가 누구인지 물었더니, 여자는 말하기를 “공께서 아침에 시를 지으셨던 곳이 바로 두 낭자가 사는 곳입니다.”라고 하였다.

공이 홍대를 받아 보니 두 낭자가 화답한 시가 들어 있었고, 뒷폭에는 한 번 만나기를 청하는 내용이 쓰여 있었다. 공이 여자의 이름을 물으니 ‘취금’이라 했다. 공이 또 시를 짓고, 끝에다 역시 만나자는 내용을 써 취금에게 주어 돌아가게 했다. 한참 후 한 쌍의 구슬 또는 두 송이 연꽃과 같은 두 여자가 나타났다. 공이 두 여자를 맞아 근본을 물으니, 두 여자가 들려주는 내력은 이러했다.

그들은 원래 부호인 장씨집의 딸들로서, 언니가 18세, 아우가 16세 때에 각각 소금장사와 차장사에게 시집가기를 부모가 권유하였다. 그러나 자매의 마음에 차지 않아 울적한 마음이 병이 되어 마침내는 요절하였는데 다행히 최공과 같은 수재를 만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자매는 오늘 같은 좋은 밤에 시나 지으며 즐기기를 간청하였다. 그리하여 공이 먼저 시를 짓자 이어 두 낭자가 차례로 시를 지어 읊었다. 마침내 그들의 간 곳은 알지 못했다.

이와 같은 내용을 『태평통재』의 것과 비교하여 보면, 전체적인 줄거리는 거의 같으나 「선녀홍대」에는 등장인물들이 주고받은 시들이 거의 생략되어 있다. 또 작품 말미에 남녀 주인공들이 하룻밤을 동침하고 나서 이튿날 새벽에 작별한 뒤 최공이 다시 쌍녀분을 찾아가 지난 밤 일을 회상하며 장가(長歌)를 불렀고, 그 뒤 신라로 돌아와 명승지를 유람하다가 가야산 해인사에 숨어 버렸다는 「최치원」의 내용이 없다.

이 설화는 당나라 때의 전기소설인 장문성(張文成)의 『유선굴(遊仙窟)』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생자와 사자와의 교정(交情)이 중심 모티프이고 산문 작품 속에 삽입시가 다수 포함되어 있어, 내용적인 면에서나 형식적인 면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소설이라 하는 김시습(金時習)의 『금오신화』 중의 「만복사저포기」나 「이생규장전」 등에 비교될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이 설화의 문학사적 의의는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JgtI0F0b0gs&t=655s 

 

내초도 금돈시굴(金豚始窟)

경주 최씨의 시조로 신라 말기의 대석학인 고운 최치원을 든다. 최치원은 그 높은 학문이 이 나라는 물론 멀리 중국에까지 널리 알려진 한학자일뿐 아니라 동방문학을 처음으로 만든 문장가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최치원은 기이한 전설을 남기고 있다. 원래 경주 최씨의 시조는 금빛 나는 돼지에서 낳았다하여 일명 「돼지 최씨」라고 불리어 오는데 이것은 단군이 곰에서 낳았다는 전설과 또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가 박속에서 낳았다는 민족 설화와 함께 이 경주 최씨에 관한 것도 중요한 민족 설화의 하나가 되고 있다. 그 설화가 지금은 군산시에 속해있는 고군산 열도의 하나인 내초도에서 있었던 일로 전해진다.

최치원의 아버지가 하루는 내초도라는 섬으로 사냥을 나갔다가 누런 황돼지한테 붙들려 바위 밑 토굴로 끌려가서 몇 달 동안을 사는 동안에 황돼지에 태기가 있어 열 달 후에 아들을 낳았다. 그 아들이 점점 자라나자 아버지는 아들을 데리고 육지로 나오려고 해도 못나오고 황돼지와 같이 짐승처럼 살게 되었다. 하루는 어미돼지가 이웃 섬으로 사냥을 나가고 없는 새에 다섯 살 난 아들에게 아버지는 사실 이야기를 다하면서 치원이 너를 육지로 데리고 나가 공부를 시키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나 빠져나갈 재주가 없다고 한탄을 했다. 이 말을 듣고 있던 아들은 어미돼지가 날마다 해다 놓은 나무토막을 몰래 엮어서 배를 만들어서 타고 나가자고 했다.

어느 날 돼지가 또 산에 나무를 하러 나간 사이에 나무를 발처럼 엮은 뗏목을 타고 육지로 나오는데 어느새 어미돼지가 알고서 헤엄을 쳐 쫓아오고 있었다. 금새 앞발이 배에 닿을 듯 하자 아들이 미리 잘라서 실어 놓은 나무토막 하나를 던져 주었다. 욕심이 많은 돼지는 나무토막이 떠내려 갈까봐 아까워서 얼른 물어다가 섬에다 갖다두고 또 쫓아오자 아들은 계속 나무토막을 던져 주어 끝내는 어미 황돼지가 기진맥진해서 죽었다.

가까스로 살아서 육지에 닿은 아들은 머리가 총명해서 아버지의 가르침에 따라 열심히 공부해서 뒷날에 훌륭한 인물이 되었으니, 그가 바로 경주 최씨의 시조요 신라의 대문장가였던 최치원이라고 한다.

이러한 설화에 의해서 옥구군 일대에서는 경주 최씨는 금돼지의 자손이라는 말이 지금까지 전해 오고 있으며, 내초도에는 금돈시굴(金豚始窟)이라는 굴이 아직도 그 흔적을 나타내고 있다.

「삼국유사(三國遺事)」나 「여지승람(輿地勝覽)」에는 그의 뛰어난 업적을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 담고 있고 또 그만큼 뛰어난 인물이기에 그만한 전설적인 이야기를 남기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다만 그가 오늘날에는 믿기 어려운 금돼지에서 태어났다는 것인데 이것이 내초도에 있는 금돈시굴과 묘한 일치를 보이고 있다는데 흥미를 끌고 있는 것이다.

아닌게 아니라 이와 같은 사실을 뒷받침이라도 하듯 군산 지역의 인근인 옥구 일대는 최치원과 얽힌 사연을 여러 가지 글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지금 옥구 상평마을에 있는 자천대가 바로 그것이다. 「옥구군지」에 나타난 이 자천대는 최치원이 일찌기 당나라에서 큰 벼슬과 학문을 닦고 나라에 돌아왔을 때 세상이 너무 어지러워 민심이 흉흉하자 홀로 이 자천대에 올라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책을 읽으며 시름을 달랬다는 것인데 애당초 이 자천대는 옥구의 비행장 안에 있던 것을 상평마을에 옮겼다는 것으로 원래 자천대 부근에 있는 곧고 매끄러운 암석 위에는 최치원의 무릎 자국과 먹을 갈았던 흔적이 남아 있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는 것이다.

「옥구군지」에는 또 그가 당나라에서 귀국하여 이 고을의 태수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고 이보다 더 큰 벼슬을 내렸어도 그는 이를 거절하고 이곳 태수만을 지냈다고 한다.

아무튼 최치원과 옥구땅은 이러한 전설을 통해 기이한 인연을 맺고 있는 것이 틀림없고 그래서 내초도의 금돈시굴에서 최치원이 낳았다는 설화를 더욱 밑받침하고 있는 것이다.

 

 

https://ko.wikipedia.org/wiki/%EC%B5%9C%EC%B9%98%EC%9B%90%EA%B8%B0%EB%85%90%EA%B4%80

 

최치원기념관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최치원기념관은 신라 말기 문신인 최치원(崔致遠, 857년 ~ 908년 이후)을 기리기 위한 기념관으로 중화인민공화국 장수성 양주시에 2007년에 건립되었다. 최치원

ko.wikipedia.org

최치원기념관은 신라 말기 문신인 최치원(崔致遠, 857년 ~ 908년 이후)을 기리기 위한 기념관으로 중화인민공화국 장수성 양주시에 2007년에 건립되었다.

 

 

중국 양주에서 최치원 기념관이 있는 당성유적지를 찾아서

https://hyeanj.tistory.com/18354789

1층 양쪽 벽에 동판으로 그려진 그림들

 

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

1
1. 광명(廣明) 2년(881년, 신라 헌강왕 7년) 7월 8일, 제도도통검교태위(諸道都統檢校太尉) 아무개(某: 고변(高騈)을 일컬음)는 황소(黃巢)에게 알리는 바이다.

廣明二年七月八日。諸道都統檢校太尉某。告黃巢。
 
광명 2년 7월 8일에, 제도도통검교태위(諸道都統檢校太尉) 아무는 황소(黃巢)에게 알린다.
 
2
대범 바른 것을 지키고 떳떳함을 행하는 것을 도(道)라 하는 것이요, 위험한 때를 당하여 변통할 줄을 아는 것을 권(權)이라 한다. 지혜 있는 이는 시기에 순응하는 데서 성공하게 되고, 어리석은 자는 이치를 거스르는 데서 패하게 되는 것이다. 비록 백 년(百年)의 생명에 죽고 사는 것은 기약할 수가 없는 것이나, 만사(萬事)는 마음이 주장된 것이매, 옳고 그른 것은 가히 분별할 수가 있는 것이다.
 
3
이제 내가 왕사(王師)를 거느리고 정벌(征伐)은 있으나 싸움은 없는 것이요, 군정(軍政)은 은덕을 앞세우고 베어 죽이는 것을 뒤에 하는 것이다. 앞으로 상경(上京)을 회복하고 큰 신의(信義)를 펴려 함에 공경하게 임금의 명을 받들어서 간사한 꾀를 부수려 한다. 또 네가 본시 먼 시골의 백성으로 갑자기 억센 도적이 되어 우연히 시세를 타고 문득 감히 강상(綱常)을 어지럽게 하였다. 드디어 불측한 마음을 가지고 높은 자리를 노려보며 도성을 침노하고 궁궐을 더럽혔으니, 이미 죄는 하늘에 닿을 만큼 극도로 되었으니, 반드시 크게 패하여 망할 것이다.
 
4
아, 요순(堯舜) 때로부터 내려오면서 묘(苗)나 호(扈) 따위가 복종하지 아니하였으니, 양심 없는 무리와 불의불충(不義不忠)한 너 같은 무리의 하는 짓이 어느 시대인들 없었겠나. 먼 옛적에 유요(劉曜)와 왕돈(王敦)이가 진(晉)나라를 엿보았고, 가까운 시대에는 녹산(祿山)과 주자(朱泚)가 황가(皇家, 당나라)를 향하여 개가 짖는 듯하였다. 그것들은 모두 손에 강성한 병권도 잡았고, 또는 몸이 중요한 지위에 있었다. 호령만 떨어지면 우레와 번개가 달리듯 하고, 시끄럽게 떠들면 안개나 연기처럼 깜깜하게 막히게 된다. 그러나 오히려 잠깐 동안 못된 짓을 하다가 필경에는 더러운 종자들이 섬멸되었다. 햇빛이 활짝 펴니 어찌 요망한 기운을 그대로 두겠으며, 하늘의 그물이 높이 베풀어져서 반드시 흉한 족속들은 없애고 마는 것이다.
 
5
하물며 너는 평민의 천한 것으로 태어났고, 농민으로 일어나서 불을 지르고 겁탈하는 것을 좋은 꾀라 하며, 살상(殺傷)하는 것을 급한 임무로 생각하여 헤아릴 수 없는 큰 죄만 있고, 속죄될 조그마한 착함은 없었으니, 천하 사람들이 모두 너를 죽이려고 생각할 뿐만 아니라 아마도 땅 가운데 귀신까지 가만히 베어 죽이려고 의론하리라.
 
6
비록 잠깐 동안 숨이 붙어 있으나, 벌써 정신이 죽었고, 넋이 빠졌으리라. 대범 사람의 일이란 것은 제가 저를 아는 것이 제일이다. 내가 헛말을 하는 것이 아니니, 너는 모름지기 살펴 들으라.
 
7
요즈음 우리 국가에서 덕이 깊어 더러운 것도 참아주고 은혜가 중하여 결점을 따지지 아니하여 너에게 장령(將領)으로 임명하고 너에게 지방 병권(兵權)을 주었거늘 너는 오히려 짐새[鴆]와 같은 독심만을 품고 올빼미의 소리를 거두지 아니하여 움직이면 사람을 물어뜯고 하는 짓이 개[犬]가 주인에게 짖는 듯하여 필경에는 몸이 임금의 덕화를 등지고 군사가 궁궐에까지 몰려들어 공후(公侯)들은 위태로운 길로 달아나고 임금의 행차는 먼 지방으로 떠나게 되었다.
 
8
너는 일찍 덕의(德義)에 돌아올 줄을 알지 못하고 다만 완악하고 흉악한 짓만 늘어간다. 이에 임금께서는 너에게 죄를 용서하는 은혜가 있었는데, 너는 국가에 은혜를 저버린 죄가 있다. 반드시 얼마 아니면 죽고 망하게 될 것이니, 어찌 하늘을 무서워하지 아니하는가. 하물며 주(周)나라 솥[鼎]은 물어볼 것이 아니요, 한(漢)나라 궁궐이 어찌 너 같은 자가 머물 곳이랴. 너의 생각은 마침내 어떻게 하려는 것이냐. 너는 듣지 못하였느냐.
 
9
도덕경(道德經)》에 이르기를, “회오리바람은 하루아침을 가지 못하는 것이요. 소낙비는 하루 동안을 채우지 못한다.” 하였으니 천지도 오히려 오래가지 못하거늘 하물며 사람이랴.
 
10
또 듣지 못하였느냐. 《춘추전(春秋傳)》에 이르기를, “하늘이 잠깐 나쁜 자를 도와주는 것은 복이 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의 흉악함을 쌓게 하여 벌을 내리려는 것이다.” 하였다.
 
11
이제 너는 간사한 것도 감추고 사나운 것을 숨겨서 악이 쌓이고 앙화[禍]가 가득하였는데도 위험한 것으로 스스로 편케 여기고 미혹하여 뉘우칠 줄 모르니, 옛말에 이른바 제비가 막(幕) 위에다 집을 지어 놓고 불이 막을 태우는데도 방자히 날아드는 거나 물고기가 솥[鼎] 속에서 너울거린들 바로 삶아 데인 꼴을 보는 격이다.
 
12
나는 웅장한 군략(軍略)을 가지고 여러 군대를 모았으니, 날랜 장수는 구름 같이 날아들고 용맹스런 군사들은 비 쏟아지듯 모여 들어 높고 큰 깃발은 초새(楚塞)의 바람을 에워싸고 군함은 오강(吳江)의 물결을 막아 끊었다.
 
13
진(晉)나라 도태위(陶太尉)는 적을 부수는데 날래었고, 수(隋)나라 양소(楊素)는 엄숙함이 신(神)이라 일컬었다. 널리 팔방을 돌아보고 거침없이 만 리(萬里)에 횡행(橫行)하였다. 맹렬한 불이 기러기 털을 태우는 것과 같고 태산(泰山)을 높이 들어 참새알을 눌러 깨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
 
14
서늘바람 나는 가을에 강에 물귀신이 우리 군사를 맞이한다. 서풍이 불어 숙살(肅殺)하는 위엄을 도와주고 새벽이슬은 답답한 기운을 상쾌하게 하여 준다. 파도도 일지 않고 도로도 통하였으니, 석두성(石頭城)에서 뱃줄을 푸니 손권(孫權)이 뒤에서 호위하고 현산(峴山)에 돛을 내리니 두예(杜預)가 앞장선다. 경도(京都)를 수복하는 것이 열흘이나 한 달 동안이면 기필할 수 있을 것이다.
 
15
다만 살리기를 좋아하고 죽임을 싫어하는 것은 상제(上帝)의 깊으신 인자(仁慈)함이요, 법을 굴하여 은혜를 펴려는 것은 큰 조정의 어진 제도다. 나라의 도적을 정복하는 이는 사사로운 분(忿)을 생각지 않는 것이요, 어둔 길에 헤매는 자를 일깨우는 데는 진실로 바른 말을 하여 주어야 한다.
 
16
나의 한 장 편지로써 너의 거꾸로 매달린 듯한 다급한 것을 풀어주려는 것이니, 고집을 하지 말고 일의 기회를 잘 알아서 스스로 계책을 잘하여 허물을 짓다가도 고치라.
 
17
만일 땅을 떼어 봉해 줌을 원한다면, 나라를 세우고 집을 계승하여 몸과 머리가 두 동강으로 되는 것을 면하며, 공명(功名)의 높음을 얻을 것이다. 겉으로 한 도당(徒黨)의 말을 믿지 말고 영화로움을 후손에까지 전할 것이다. 이는 아녀자(兒女子)의 알 바가 아니라, 실로 대장부의 일인 것이다. 일찍이 회보(回報)하여 의심 둘 것 없느니라. 나의 명령은 천자를 머리에 이고 있고, 믿음은 강물에 맹세하여 반드시 말이 떨어지면 그대로 하는 것이요, 원망만 깊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18
만일 미쳐 덤비는 도당에 견제(牽制)되어 취한 잠이 깨지 못하고 여전히 당랑(螳螂)이 수레바퀴를 항거하기를 고집한다면, 그때는 곰을 잡고 표범을 잡는 군사로 한 번 휘둘러 없애버릴 것이니, 까마귀처럼 모여 소리개 같이 덤비던 군중은 사방으로 흩어져 도망갈 것이다. 몸은 도끼에 기름 바르게 될 것이요, 뼈는 융거(戎車, 군용차(軍用車)) 밑에 가루가 되며, 처자도 잡혀 죽으려니와 종족들도 베임을 당할 것이다.
 
19
생각하건대, 동탁(董卓)의 배를 불로 태울 때에 반드시 후회하여도 때는 늦으리라. 너는 모름지기 진퇴(進退)를 참작하고 잘된 일인가 못된 일인가 분별하라. 배반하여 멸망되기보다 어찌 귀순하여 영화롭게 됨과 같으랴.
 
20
다만 바라는 것은 반드시 그렇게 하라. 장사(壯士)의 하는 짓을 택하여 갑자기 변할 것을 결정할 것이요, 어리석은 사람의 생각으로 여우처럼 의심만 하지 말라.
 

 

21
아무는 알린다.
 
 
 
 
 

최치원의 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 1 국민뉴스

 

kookminnews.bstorm.co.kr

 
1. 광명(廣明) 2년(881년, 신라 헌강왕 7년) 7월 8일, 제도도통검교태위(諸道都統檢校太尉) 아무개(某: 고변(高騈)을 일컬음)는 황소(黃巢)에게 알리는 바이다.

廣明二年七月八日。諸道都統檢校太尉某。告黃巢。

대저 바른 것을 지키고 떳떳함을 닦는 것을 도(道)라 하고,위험한 때를 당하여 변통할 줄을 아는 것을 권(權)이라 한다. 슬기로운 자는 시기에 순응하는 데서 성공하게 되고, 어리석은 자는 이치를 거스르는 데서 패하게 되는 것이다.

비록 백년(百年)의 생명에 죽고 사는 것은 기약할 수가 없는 것이나, 만사(萬事)는 마음이 주장된 것이매, 옳고 그른 것은 가히 분별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대는 어찌 옳고 그름을 판별치 못하는가?)


夫守正修常曰道。臨危制變曰權。智者成之於順時。愚者敗之於逆理。然則雖百年繫命。生死難期。而萬事主心。是非可辨。

이 글의 서문에 해당하는 첫 부분은, 현명한 자와 어리석은 자에 대한 구분으로 시작되고 있습니다.먼저 첫 번째 부분인 ‘바른 것을 지키고 떳떳함을 행하는 것을 도(道)라 하고, 위험한 때를 당하여 변통할 줄을 아는 것을 권(權)이라 한다(守正修常曰道。臨危制變曰權。)’이란 대목은 북제(北齊)시대 유주(劉晝)의 <신론(新論).명권(明權)>에 나오는 “이치를 쫒아 떳떳함을 지키는 것을 도(道)라 하고, 위험한 때를 당하여 변통할 줄 아는 것을 권(權)이라 한다(循理守常曰道,臨危制變曰權。)”는 구절을 약간 고쳐 인용한 것입니다.

이 문장에서 나오는 ‘권(權)’이란 개념은 <맹자(孟子). 이루장(離婁章)>에서 나오는 것으로,제(齊)나라 변설가인 순우곤(淳于髡)이 “남녀가 유별한 데, 제수나 형수가 물에 빠지면 어찌해야 합니까?”란 질문에 맹자가 “남자와 여자가 손을 닿지 않는 것은 예이고, 형수나 제수가 물에 빠지면 손으로 끌어내는 것은 권(權)입니다.”라고 한 데서 유래됩니다.

이때 맹자가 대답한 권(權)은 ‘저울추’를 의미하는 것으로, 저울추는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물건의 위치에 따라 이동하는 것이므로 ‘상황에 따라 달리 대처해야 하는 행동원리’를 가리킵니다.즉 이 세상에 절대의 원칙은 없는 것이며, 그 상황에 따라 가변적으로 최선의 행동원리를 취하는 것 또한 허용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다음 문장인 ‘슬기로운 자는 시기에 순응하는 데서 성공하게 되고,어리석은 자는 이치를 거스르는 데서 패하게 되는 것이다(智者成之於順時。愚者敗之於逆理。)’는 <후한서(後漢書)‧주부전(朱浮傳)>에 나오는 ‘슬기로운 자는 세력에 순응하여 일을 도모하고, 어리석은 자는 이치를 거슬러 행동한다(智者順勢而謀, 愚者逆理而動)’는 구절을 또한 변형하여 표현 한 구절입니다.

이어서, 최치원은 ‘살고 죽는 것은 비록 알 수 없으나,옳고 그른 것은 알 수 있는 법, (그대는 어찌 옳고 그름을 판별치 못하는 가?)’라고 일침을 가하며 서문을 마치고 있습니다.황소격문(討黃巢檄文)>의 서문에 이어,이어지는 본문 내용입니다.


2. 지금 나는 황제가 내려 준 군대를 거느리고 역적을 정벌(征伐)하려는 것이지,너와 같은 역적을 상대로 싸우려는(戰爭) 것이 아니다. 군정(軍政)은 은덕을 앞세우고 베어 죽이는 것을 뒤에 하는 것인즉,(토벌을 하기에 앞서 한 번 더 은혜로써 회유하여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려는 것이다).

(우리의 목적은) 앞으로 장안(長安)을 회복하여 큰 신의(信義)를 펴려 하는 것이며, 공경하게 황제의 명을 받들어서 백성을 편안케 하고 간사한 꾀를 막으려 하는 것이지, (너희와 싸우려는 것이 아니다).

今我以王師則有征無戰。軍政則先惠後誅。將期剋復上京。固且敷陳大信。敬承嘉諭。用戢奸謀。

본문 문장의 첫머리를 최치원은 전쟁의 명분을 내세우며 시작하고 있습니다.먼저, 그는 ‘정벌(征伐)’과 ‘전쟁(戰爭)’의 개념을 구분하고 있습니다. <서경(書經). 윤정(允征)>편에, ‘정벌(征伐)이란, 황제의 말씀을 받들어 죄인을 징벌하는 것이다(奉辭伐罪曰征)’라고 풀이하였다.
 
 
 
 

최치원의 천하명문 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 2

한주동안몽골을여행하고돌아왔습니다.여러가지를배우고왔습니다만,한문과관련하여서는제가평소품고있었던골치아픈점이한가지해소되는계기가되어

www.kookminnews.com

 
3. 또 네가 본시 먼 시골의 백성으로 갑자기 억센 도적이 되어 우연히 시세를 타고 문득 감히 상규(常規)를 어지럽히더니, 드디어 불측한 마음을 품고, 황제의 자리를 넘보면서, 도성을 침노하고, 궁궐을 더럽혔으니, 이미 죄는 하늘에 닿았고, 반드시 크게 패하여 다시 일어날 수 없게 될 것이다.

且汝素是遐甿。驟爲勍敵。偶因乘勢。輒敢亂常。遂乃包藏禍心。竊弄神器。侵凌城闕。穢黷宮闈。旣當罪極滔天。必見敗深塗地。

이 문장에서 최치원은 황소(黃巢)의 출신을 거론하며 이미 지은 죄가 지극히 크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주목할 첫 번째 단어는 ‘하맹(遐甿)’인데, ‘멀다’는 뜻의 ‘하(遐)’와 ‘무지한 백성’이란 훈의 ‘맹(甿)’을 조합하여 만들어진 단어입니다.

즉, ‘먼 시골의 무지랭이 백성’이란 뜻인데,당(唐)나라 어소(於邵: AD 713~793)란 문인이 <唐檢校右散騎常侍容州刺史李公去思頌序>란 공덕을 기리는 글에서 ‘백성에게 베푼 이익의 혜택이 먼 땅(裔土)까지 미치고, 도(道)에 의한 교화가 시골의 무지렁이 백성(遐甿)들까지 미쳤다(利澤施於裔土,美化被乎遐甿。)’라는 글에서 처음 사용되었던 것을 인용한 것입니다.

그 다음 눈여겨 볼 단어는 ‘경적(勍敵)’입니다.‘강적(強敵)’이란 뜻의 단어인데, <좌전(左傳)>의 희공22년에 나오는 단어로, ‘宋襄之仁(송양지인)’으로 유명한 고사에 나오는 단어입니다.

춘추시대(春秋時代) 송(宋)나라 양공(襄公)은 초(楚)나라와 싸움이 일어났을 때 아들 목이(目夷)가 초나라의 허점을 공격하자고 하였습니다.
“적이 강을 반쯤 건너왔을 때를 타서 공격을 가하면 적은 수로 많은 적을 이길 수 있습니다.”
“그건 정정당당한 싸움이 될 수 없다. 정정당당하게 싸워 이기지 못한다면 어떻게 참다운 패자(覇者)가 될 수 있겠는가?”

초나라 군사가 진을 벌리고 있을 때 또 목이가 말하길,
“적이 진을 미처 다 벌이기 전에 이를 치면 적을 혼란에 빠뜨릴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양공이 대답하길,
“군자는 사람이 어려운 때 괴롭히지 않는다” 하고 말을 듣지 않다가, 결국 송나라는 크게 패합니다.

이후 스스로를 변명하길,
“과인이 비록 망국의 후손이나 대열을 정비하지 못한 적군에게 진격의 북을 칠수가 없었노라”라고 하자, 신하인 자어(子魚)가 대답하길,
“임금께서는 전쟁을 모르십니다.강한 적(勍敵)이 험한 곳에서 대열을 정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하늘이 우리를 돕는 것이니 이렇게 막혔을 때 북을 쳐서 진격하는 것이 어찌 가하지 않다는 말씀입니까?

(君未知戰,勍敵之人隘而不列,天贊我也。阻而鼓之,不亦可乎?)”라고 하는데,여기에서 등장하는 단어가 바로 ‘경적(勍敵)’입니다.

그 다음은 ‘난상(亂常)’이란 단어입니다.‘상규(常規)를 어지럽히다’란 뜻인데, <사기(史記) 원앙조조열전(袁盎晁錯列傳論)>에 나오는 단어로, ‘예로부터 내려오는 풍습을 없애고 세상의 변치 않는 상규(常規)를 어지럽히면, 죽지 않으면 망하는 법입니다(變古亂常,不死則亡)’라고 진언한 내용 중 나오는 단어입니다.

그 다음은 ‘하늘에 닿는다’란 의미의 ‘도천(滔天)’이란 단어인데,<서경(書經).요전(堯典)>에 ‘말은 잘하나 행동은 위배되고, 외양은 공손하나 마음은 오만하기가 하늘에 닿는다(靜言庸違,象恭滔天)’라고 요(堯)임금이 공공(共工)이란 사람을 평할 때 사용된 단어입니다.

마지막으로 살펴볼 단어는 ‘패심도지(敗深塗地)’입니다.이 단어는 <사기(史記)> 〈고조본기(高祖本記)〉에 나오는 ‘일패도지(一敗塗地)’, 즉 ‘항우와의 싸움은 워낙 중요해서 한 번이라도 싸움에 패하면 땅에 떨어져, 다시는 일어설 수 없다’는 의미의 단어인데,이것을 최치원이 살짝 바꾸어 표현한 것입니다.

비록 한 구절의 표현인데도, 사용되는 단어 하나하나가 장중하고도 적절한 전고(典故)를 가지고 있는 명문입니다.

4.
噫。唐虞已降。苗扈弗賓。無良無賴之徒。不義不忠之輩。爾曹所作。何代而無。
아! 요순(堯舜)시대 이래로 묘족(苗族: 동정호 주변 남방에서 활동한 고대민족)이나 호족(扈族: 협서성(陝西省) 호현(戶縣) 북쪽에 위치했던 고대국가) 따위가 복종하지 아니하였으니,양심 없는 무리와 불의불충(不義不忠)한 너희 같은 무리의 하는 짓이 어느 시대인들 없었겠나.
 
 
遠則有劉曜,王敦覬覦晉室。近則有祿山,朱泚吠噪皇家。
 
먼 옛적에 유요(劉曜: 오호십육국시대 전조(前趙)의 5대 황제)와 왕돈(王敦: 동진(東晉)의 건국공신. 이후 난을 일으킴)이가 진(晉)나라를 엿보았고, 가까운 시대에는 안녹산(安祿山: 당 현종시대 안녹산의 난을 일으킴)과 주자(朱泚: 당나라 덕종시대 난을 일으킴)가 황가(皇家, 당나라)를 향하여 개가 짖는 듯하였다.
 
 
彼皆或手握強兵。或身居重任。叱吒則雷奔電走。喧呼則霧塞煙橫。然猶暫逞奸圖。終殲醜類。
 
그들은 모두 손에 막강한 병권(兵權)을 쥐었고 또한 몸이 중요한 지위에 있어서, 호령만 떨어지면 우레와 번개가 치닫듯 요란하였고,시끄럽게 떠들면 안개와 연기가 자욱하듯 하였지만, 잠깐 동안 못된 짓을 하다가 필경(畢竟)에는 더러운 씨조차 섬멸(殲滅)을 당하였다.
 
 
日輪闊輾。豈縱妖氛。天網高懸。必除兇族。
 
햇빛이 활짝 펴니 어찌 요망한 기운을 그대로 두겠으며,하늘의 그물이 높이 베풀어져서 반드시 흉한 족속들은 없애고 마는 것이다.

 


이 문장에서는 요순(堯舜)시대 이래 이런 저런 여러 반란들이 있어왔지만 종국에는 비참한 결말을 면치 못하였다는 것을 역사적으로 지적하고 있습니다.

먼저, ‘당우(唐虞)’란 단어는 요순(堯舜)을 의미합니다.요(堯)임금께서 당(唐)이라는 곳에서 봉(封)함을 받은 데서 ‘당요(唐堯)’라 불리고, 순(舜)임금께서는 조상이 우(虞, 산서 우향)땅에 살았기 때문에 ‘우순(虞舜)’이라 불리므로, 요순(堯舜)이란 이름을 직접 부르는 것을 휘(諱)하여 일반적으로 중국문헌상 ‘당우(唐虞)’라 자주 표현됩니다.

다음 이어지는 문장은 최치원의 문필력이 돋보이는 구절입니다.‘唐虞已降(당우이강) 苗扈弗賓(묘호불빈)’, 이 문장을 우리가 쉽게 알수 있게 바꾼다면 ‘唐虞已來(당우이래) 苗扈不服(묘호불복)’, 즉 ‘요순시대 이래로, 묘족및 호족등 따위가 복종하지 않았다’는 뜻인데,‘已來(이래)’를 ‘已降(이강)’으로 바꾸고 ‘不服(불복)’을 ‘弗賓(불빈)’으로 바꾸므로서 문장의 격을 한차원 높여 놓았습니다.

‘빈(賓)’은 보통 ‘객(客)’을 나타내지만, <이아(爾雅). 석고(釋詁)>에 의하면 ‘복종한다’는 ‘복(服)’의 의미가 있습니다. <신서(新序)>란 글에, ‘선왕께서 예를 갖추어 지휘하니, 사해(四海)가 복종하는 까닭은 성덕(誠德)의 지극함이 밖으로 드러남입니다(先王所以拱揖指揮,而四海賓者,誠德之至已形于外)’등이 그 용례인데, 최치원은 이러한 드문 용법을 사용하여 문장의 격을 높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 주목할 단어는 ‘이조소작(爾曹所作) 하이무대(何代而無)’,즉 ‘너희 같은 무리의 하는 짓이, 어느 시대인들 없었겠나?’라는 문장 중 나타나는 ‘이조(爾曹: 너희 무리들)’이란 단어입니다.<후한서(後漢書).조희전(趙憙傳)>에 ‘너희 무리들이 만약 건강하다면, 먼곳으로 피해야 할 것이다(爾曹若健,遠相避也)’라고 이 단어가 처음 등장하는데, 이후 이 단어는 최치원의 <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에 이어,아래와 같이 두보(杜甫)의 <戲爲六絕句>의 두 번째 시등에서 나타납니다.

王楊盧駱當時體
(왕양노락당시체) 초당사걸(왕발, 양형, 노조린, 낙빈왕) 시인들이 쓰던 시체를,

輕薄爲文哂未休
(경박위문신미휴) 경박한 글이라 비웃기를 그치지 않네.

爾曹身與名俱滅
(이조신여명구멸) (비웃는) 너희들은 몸과 이름 다 없어지나,

不廢江河萬古流
(불폐강하만고류) (그들의 이름과 문장은) 강물이 그치지 않듯 만고에 흐름을 그치지 않으리.

그 다음, ‘기유(覬覦)’란 단어는 ‘분수에 넘치는 야심으로 기회를 노리고 엿봄’이란 뜻으로,<좌전(左傳)>및 후한서(後漢書)>에 나오는 단어를 전고(典故)하였으며, ‘폐조(吠噪)’란 단어는 최치원이 만든 조어(造語)로서, ‘개가 짓는다’는 뜻의 ‘폐(吠)’와 ‘벌레가 시끄럽게 한다’는 뜻의 ‘조(噪)’를 붙여서 만든 단어입니다.

마지막으로, ‘천망(天網)’은
‘천망회회 소이불실(天網恢恢 疎而不失: 하늘의 그물은 크고 커서, 엉성하게 보여도 놓치는 게 없다)’이라는 <노자도덕경(老子道德經)> 73장의 단어입니다.
이 유명한 문장은 이후, 삼국지의 <위서(魏書).임성왕전(任城王傳)>에 ‘천망회회 소이불루(天網恢恢,疏而不漏: 하늘의 그물은 크고 커서, 엉성하게 보여도 새는 게 없다)’라고도 바꾸어 표현되는데,최치원은 바로 이 단어를 사용하여 ‘천망고현 필제흉족(天網高懸 必除兇族: 하늘의 그물이 높이 베풀어지니, 흉한 족속들은 반드시 없어질 수밖에 없다)’라고 표현하여 그 필연성을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하태형/수원대 금융공학대학원장/경제학 박사(뉴욕주립대)/고전(古典) 칼럼니스트>
 
 
 
 

국민뉴스

 

kookminnews.bstorm.co.kr

 
5.
況汝出自閭閻之末。起於隴畝之間。以焚劫爲良謀。
以殺傷爲急務。有大愆可以擢髮。無小善可以贖身。
不唯天下之人皆思顯戮。抑亦地中之鬼已議陰誅。
 
하물며 너는 평민의 천한 것으로 태어났고, 농민으로 일어나서 불을 지르고 겁탈하는 것을 좋은 계책이라 여기며,
살상(殺傷)하는 것을 급한 임무로 생각하여, 헤아릴 수 없는 큰 죄만 있고, 속죄될 조그마한 착함도 없었으니,
천하 사람들이 모두 너를 죽이려고 생각할 뿐만 아니라 아마도 땅 가운데 귀신까지 이미 너를 베어 죽이려고 의론하리라!


縱饒假氣遊魂。早合亡神奪魄。
凡爲人事。莫若自知。吾不妄言。汝須審聽。

설령 숨이 붙어있다 해도 혼(魂)은 이미 나갔고, 벌써 정신이 죽고 넋이 빠졌으리라.
대저 사람의 일이란 제 스스로 아는 것 만한 것이 없다. 내가 헛말을 하는 것이 아니니, 너는 모름지기 살펴 들으라.




이어지는 문장은, 황소(黃巢)가 침상에 누워 읽다가 놀라서 굴러 떨어졌다는 다소 미신적인 설화(說話)의 대상이 되는 바로 그 대목입니다.

먼저 최치원은 황소(黃巢)의 신분이 ‘여염지말(閭閻之末)’, 즉 소금장사를 하였으므로 평민 가운데서도 가장 천하고, ‘농묘지간(隴畝之間)’, 즉 논두렁(隴)과 밭이랑(畝)사이에서 농사를 짓던 신분임을 다시 환기시킵니다. 여기서, ‘여염(閭閻)’이란 단어는 오늘날에도 쓰이는 단어로서,본래의 의미는 ‘여(閭)’는 ‘마을의 문(里門)’이고, ‘염(閻)’은 ‘마을의 중문(里中門)’을 나타내어서, 평민이 살던 곳, 즉 ‘평민’이란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천한 신분출신이, ‘분겁(焚劫: 집을 불태우고 재산을 빼앗는 일)’을 좋은 계책이라 여기며(以焚劫爲良謀), 함부로 ‘살상(殺傷)’하는 일을 최우선 임무로 생각하고(以殺傷爲急務), ‘대연(大愆: 큰 죄)’이 ‘탁발(擢髮: 머리카락을 하나하나 뽑는다는 말로 지극히 많음을 의미)’처럼 많으며(有大愆可以擢髮), ‘속신(贖身)’, 즉 속죄할 조그만 착함도 없었다(無小善可以贖身)라고 황소(黃巢)의 그간의 행적을 논죄합니다.

여기서 사용된 ‘속신(贖身)’이란 단어중 ‘속(贖)’의 의미는 ‘몸값을 받고 노비의 신분을 풀어 주어서 양민이 되게 하던 일’을 뜻하는데, 오늘날까지 ‘속량(贖良)’, ‘대속(代贖)’등 기독교에서도 흔히 사용되는 단어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천한 신분에 온갖 나쁜 짓만 일삼으니,‘천하 사람들이 모두 너를 죽이려고 생각할 뿐만 아니라(不唯天下之人皆思顯戮)’, ‘아마도 땅 가운데 귀신까지 이미 너를 베어 죽이려고 의론하리라!(抑亦地中之鬼已議陰誅)’라고 질타합니다.황소(黃巢)가 침상에서 굴러 떨어졌다는 대목이 바로 이 대목입니다.

이 문장중 ‘불유(不唯)’는 ‘비단 ~그 뿐만이 아니라’란 의미의 부사이며, ‘억역(抑亦)’이란 단어 또한 추측을 나타내는 부사어로서, ‘혹시, 아마도, 혹은’등으로 해석합니다. ‘현륙(顯戮)’이란 단어는 ‘죄인을 죽여서 그 시체를 여러 사람에게 보이던 일’을 뜻합니다.

이어지는 문장은 ‘縱饒假氣遊魂(종요가기유혼)’입니다.먼저, ‘종요(縱饒)’란 단어는 ‘설령~할지라도’란 뜻의 부사어인데, ‘종령(縱令)’,또는 ‘가령(假令)’, ‘가사(假使)’등과 같이 쓰이는 단어입니다.그 다음 ‘가기유혼(假氣遊魂)’이란 표현인데, 문장은 위(魏) 명제(明帝) 조예(曹叡: 위나라(魏)의 초대 황제인 세조(世祖) 조비(曹丕)의 장남이며, 위나라의 제2대 황제)의 <선재행(善哉行)>이란 시에서 처음 등장하는 표현입니다.
....

備則亡虜。(아무리 전쟁을) 준비하여도 도망다니는 포로의 신세가 되니,
假氣遊魂。숨이 붙어있다 해도 혼(魂)은 이미 나갔고,
魚鳥為伍。물고기와 새만이 뒤를 따르며,
虎臣列將。산짐승만이 호위하는 신세가 된즉,
怫鬱充怒。분노가 가득하여 가슴이 터질 것 같다네.

따라서, ‘황소(黃巢), 너는 설령 숨이 붙어있다 해도 혼(魂)은 이미 나갔고(縱饒假氣遊魂)’,또한 ‘벌써 정신이 죽고 넋이 빠진 것과 같다(合) (早合亡神奪魄)’, 즉 이미 죽은 목숨과 진배없다는 무시무시한 표현으로 압박하고 있습니다.

이어지는 문장, ‘범위인사(凡爲人事) 막약자지(莫若自知)’,즉 ‘대저 사람의 일이란 제 스스로 아는 것 만한 것이 없다.’란 표현은 <노자도덕경(老子道德經)> 59장, ‘치인사천(治人事天) 막약색(莫若嗇)’,즉 ‘백성을 다스리고 하늘을 섬김에는 아끼는 것 만한 것이 없다’란 구절을 원용한 표현법입니다.

마지막으로, 최치원은 ‘내가 헛말을 하는 것이 아니니,너는 모름지기 살펴 들으라(吾不妄言 汝須審聽)’라고 이 문단을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6. 比者我國家德深含垢。恩重棄瑕。授爾節旄。寄爾方鎭。爾猶自懷鴆毒。不斂梟聲。動則齧人。行唯吠主。乃至身負玄化。兵纏紫微。公侯則犇竄危途。警蹕則巡遊遠地。

요즈음 우리 국가에서 덕이 깊어 더러운 것도 참아주고, 은혜가 중하여 결점을 따지지 아니하여, 너에게 벼슬을 주고, 또한 너에게 지방 병권(兵權)을 주었거늘 너는 오히려 짐새[鴆]와 같은 독심만을 품고, 올빼미의 소리를 거두지 아니하여, 움직이면 사람을 물어뜯고, 하는 짓이 개(犬)가 주인에게 짖는 듯하여, 필경에는 몸이 임금의 덕화를 등지고, 군사가 궁궐에까지 몰려들어, 공후(公侯)들은 달아나거나 숨어서 위험한 여정을 겪게 되고, 황제의 행차는 먼 지방으로 떠나게 되었다
.

이 문장에서는, 당나라 조정이 황소(黃巢)의 세력이 강해짐에 따라 그에게 벼슬을 주어 회유하려 했다는 사실이 나타납니다.

첫문장은 ‘근자(近者)’란 의미와 같은 ‘비자(比者)’란 단어로 시작합니다.이 ‘비(比)’란 글자가 ‘근래’란 의미로 사용되는 용례는 <진서(陳書)>나 <여씨춘추(吕氏春秋)>에 나타나고 있는데,사소한 단어 하나하나도 주의깊게 골라 사용하므로서 문장의 격을 높이려는 최치원의 노력이 엿보입니다.

이어서, ‘당나라 조정이 덕이 깊어(德深), 더러운 것도 참아주고(含垢),은혜가 중하여(恩重), 결점을 따지지 않아서(棄瑕), 벼슬을 주고(授爾節旄), 지방의 병권을 맡겼다(寄爾方鎭)’라고 기술하고 있습니다.여기서 사용된, ‘함구(含垢)’란 단어는 요즘도 흔히 쓰이는 ‘함구(緘口)’란 단어와 우리말 발음은 같으나 의미는 다른 단어인데, ‘더러운 때(垢) 같은 허물도 참고 포용한다’란 의미의 단어로,<좌전(左傳). 선공15년(宣公十五年)>에 나오는 단어를 용전(用典)한 것이며, 또 ‘기하(棄瑕)’란 단어는 ‘허물(瑕)을 물리치다’란 의미의 <구당서(舊唐書).문원집(文苑傳)>상의 표현을 전고(典故)한 것입니다.

‘절모(節旄)’란, 천자가 임명의 표적으로서 출정하는 장군이나 사절(使節)에게 주던 기(旗)를 의미하며, ‘방진(方鎭)’은 당나라때 주(州)의 상급기관으로 군사상 중요지역에 설치한 행정구역을 뜻합니다.

이어지는 문장은, “이러한 당나라 왕실의 은혜에도 불구하고 황소(黃巢),너는 ‘짐독(鴆毒)’같은 독심을 품고, ‘올빼미 소리(梟聲)’를 거두지 않아, 움직이면 사람을 물어뜯고(動則齧人),하는 짓이 개(犬)가 주인에게 짖는 듯하다(行唯吠主)”라고 하여, 황소(黃巢)를 견자(犬子)에 비유하는 최대의 모욕적 언사를 구사합니다.

여기서 사용된 ‘짐독(鴆毒)’의 ‘짐(鴆)’은 중국에 살고 있는 독조(毒鳥)를 말하는데,그 깃으로 술을 담그면 독주(毒酒)가 되어 마시면 죽는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어지는 ‘올빼미의 소리를 거두지 아니한다(不斂梟聲)’란 표현은, ‘왜 하필 올빼미 소리인가?’라는 의문이 들수 있는데,바로 다음의 고사를 인용한 것입니다.

<안자춘추(晏子春秋)>에 의하면, 제(齊)나라 경공(景公)이 노침대(露寢臺)란 궁궐을 짓고도 출입하지 않았다 합니다
 
 
 
 
 
 

최치원의 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

당나라 말기인 당 희종(僖宗: 873~888)이 즉위한 이듬해인 875년,유명한 황소(黃巢)의 난(875~884)이 발생...

blog.naver.com

 

http://busan.grandculture.net/Contents?local=busan&dataType=01&contents_id=GC04202497 

 

최치원(崔致遠) - 부산역사문화대전

 

busan.grandculture.net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고운(孤雲) 또는 해운(海雲). 아버지는 숭복사의 전신인 곡사(鵠寺)의 중창 사업에 참여한 최견일(崔肩逸)이고, 형은 해인사 승려 현준(賢俊)이다. 당제(堂弟)는 헌강왕(憲康王) 대 견당 사절단의 녹사(錄事)였던 최서원(崔栖遠)이다.

최치원(崔致遠)[856~?]은 경주 사량부(沙梁部)에서 태어나 12살 때인 경문왕 8년(868) 당나라에 유학하여 국자감(國子監)에서 공부하였다. 18세 때인 874년 외국인 대상의 과거 시험인 빈공과(賓貢科)에 급제하여 선주(宣州) 율수현(溧水縣)[지금의 강소성 율수현]의 현위(縣尉)가 되었다. 황소(黃巢)의 난[875~884]이 일어나자 회남 절도사 고병(高騈)의 종사관으로 나가 「격황소서(檄黃巢書)」[토황소 격문(討黃巢檄文)]을 지어 문장가로 이름을 떨쳤다.

29세 때인 헌강왕 11년(885) 귀국하여 시독 겸 한림학사 수병부시랑 지서서 감사(侍讀兼翰林學士守兵部侍郎知瑞書監事) 벼슬을 받았다. 하지만 왕실 귀족들의 경계와 질시로 중앙 관직에서 물러나 대산군(大山郡)[지금의 전라북도 정읍시], 천령군(天嶺郡)[지금의 경상남도 함양군], 부성군(富城郡)[지금의 충청남도 서산시] 태수 등 외직을 전전하다가 하정사(賀正使)로서 당나라에 한 차례 다녀왔다. 진성 여왕 8년(894) 어지러운 정치 질서를 바로잡기 위해 임금에게 「시무 10조(時務十條)」를 올려 채택되고, 아찬 관직을 받았으나 나라 안팎의 사정으로 개혁이 무산되었다.

최치원은 당에서 익힌 학술과 식견을 바탕으로 큰 뜻을 펼치려 했으나 번번이 좌절되자, 만년에 관직에서 물러나 전국의 산천을 노닐며 책 읽고 시 짓는 일로 소일하였다. 최치원이 전국을 방랑할 때 부산의 바닷가에 잠시 머물렀는데, 이때 동백섬 인근 바위에 자신의 자(字)를 따서 ‘海雲臺’라는 글씨를 새겼다. 해운대라는 이름은 여기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당나라 국자감에서 공부하여 유학과 사장학(詞章學)에 뛰어났고, 불교와 도교, 풍수지리설에도 이해가 깊었다. 최치원이 지은 책은 『계원필경(桂苑筆耕)』, 『중산 복궤집(中山覆簣集)』, 『금체시(今體詩)』, 『오언 칠언 금체시(五言七言今體詩)』, 『잡시부(雜詩賦)』, 『사륙집(四六集)』, 『제왕 연대력(帝王年代曆)』, 『부석존자전(浮石尊者傳)』, 『법장 화상전(法藏和尙傳)』, 『석이정전(釋利貞傳)』, 『석순응전(釋順應傳)』 등이 있었다고 한다. 일명 사산비명(四山碑銘)으로 불리는 「성주사 낭혜 화상 백월보광탑비(聖住寺朗慧和尙白月葆光塔碑)」, 「쌍계사 진감 선사 대공영탑비(雙磎寺眞鑑禪師大空塔碑)」, 「초월산 대숭복사비(有唐新羅國初月山大崇福寺碑)」, 「봉암사 지증 대사 적조탑비(鳳巖寺智證大師寂照塔)」 등의 글씨도 최치원이 썼다. 이 가운데 『계원필경』과 『법장 화상전』, 사산비명의 내용만이 온전하게 전해지고 있다.

고려 현종 14년(1022)에 문창후(文昌侯)라는 시호를 받았고, 국자감과 향교의 문묘에 배향되었다. 부산에서는 동래 향교에서 배향하고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eWIxclVd1_s

 

https://www.youtube.com/watch?v=0zqjMTVKtaE 

 

[참고]

인귀교환설화의 첫 작품으로는 최치원의 〈쌍녀분전기〉(雙女墳傳記)이다. <최치원전> <쌍녀분설화>으로 명칭하기도 한다. 실상 최치원이 쌍녀분에 묻힌 여인들의 영혼과 시를 수작한 것으로 설정되었으나 여인들의 시작은 최치원의 작품인데다 마지막 최치원의 장편시에다 귀국후 자신의 행적을 기록한 것을 감안하면 운영자가 부여한 제목 <雙女墳記> 또는 <崔致遠傳>이 이 글의 내용에 부합한다. 전자가 소재를 기준으로 정한 제목이라면 후자는 자신의 생애에 대한 기록의 관점에서 부여한 제목이다.

어쨌거나 죽은 자의 영혼과 사랑의 시를 수작(酬酌)하는 아이디어는 한국문학의 비조(鼻祖)로서 그의 천재성과 독창성, 그리고 文才를 유감없이 발휘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자신의 고독과 자신의 능력에 대한 중국 제왕의 푸대접까지도.

쌍녀분전기〉(雙女墳傳記)는 최치원이 쓴 전기소설(傳記小說)이다. 중국의 많은 사서(史書)와 육조사적편류(六朝事蹟編類)에 〈쌍녀분기담〉(雙女墳記談)으로 기록되어 당(唐), 송(宋), 원(元)나라에 이어 오늘날까지 전해온다.

최치원이 당나라에 있을 때 무덤 속 두 여인(혼령)과 하룻밤의 환락을 시(詩)로써 즐기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한 편의 설화이기는 하나 내용 구성면에서 다분히 소설적 면모를 띠고 있어 소설로 보는 경우도 있다. 이 설화는 원래 《수이전》(殊異傳)에 수록되었던 것이 뒤에 성임(成任)의 《태평통재》(太平通載) 권68에 〈최치원〉(崔致遠)이라는 제목을 달고 전재되어 있고, 그 뒤 권문해(權文海)의 《대동운부군옥》 권15에 〈선녀홍대〉(仙女紅袋)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전한다. 같은 내용이기는 하나 〈선녀홍대〉가 〈최치원〉보다 약 5분의 1 정도로 축약되어 있다.

 

https://ko.wikipedia.org/wiki/%EC%B5%9C%EC%B9%98%EC%9B%90

 

최치원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최치원(崔致遠, 857년 ~ 908년 이후)은 신라 말기의 문신, 유학자, 문장가이다. 본관은 경주(慶州)이고 자는 고운(孤雲), 해운(海雲), 해부(海夫)이며, 시호는 문창(文昌)이다. 868년 당나라로 건너가 과거에 급제한 후 당나라의 관료로 생활하였다. 신라 말 삼최(三崔) 중 한 사람으로, 문묘에 종사된 해동 18현 중의 한 사람이다. 6두품 출신으로서 12세의 나이로 당에 유학하여 6년 만에 당의 빈공과에 장원으

ko.wikipedia.org

 

https://kydong77.tistory.com/14011

 

최치원설화 or 쌍녀분(雙女墳)설화

雙女墳 江蘇省高淳縣 최치원설화/崔致遠傳 또는 쌍녀분(雙女墳)설화 雙女墳記<太平通載 卷68> 임명덕본, 한국한문소설전집, 권7,p.261. 국역은 김현양 외, <수이전 일문> (박이정, 1996) 을 참고하여 약간 부분..

kydong77.tistory.com

 

https://kydong77.tistory.com/2290

 

쌍녀분설화

[주]쌍녀분 설화의 주인공은 최치원이다. 그래서 최치원설화라고도 한다. 원문과 국역을 대역(對譯)하였다. 오랜 동안 별러오던 일이라 기분이 좋다. 원문은 임명덕본 한국한문소설전집 권7의 <쌍녀분>에 있다...

kydong77.tistory.com

[경 개]

(1) 최치원이 당으로 유학을 가서 과거에 급제한 뒤 율수의 현위에 임명된다.
(2) 현위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남쪽 경계에 있는 招賢館(초현관)에 머물던 중 앞 언덕에 있는 쌍녀분을 찾게 된다.
(3) 무덤의 石門에다 죽은 두 여인을 꿈에라도 만나고 싶다는 내용의 시를 썼다.
(4) 저녁 무렵 아릿다운 여자가 팔낭자, 구낭자가 준 붉은 주머니 2개를 들고 나타난다.
(5) 이 주머니에는 두 여인의 답시가 들어 있었다. 시의 내용은 최치원이 만나자는 제의에 응낙하는 것이었다.
(6) 심부름 온 여자는 두 여인의 시녀로 이름을 취금이라 하였다.
(7) 취금이 최치원의 답시를 가지고 사라진지 얼마 후에 두 여인이 나타났다. 두 여인은 자매로 율수현 楚城鄕 張씨의 두 딸이었다. 그들은 부모가, 언니는 소금장사에, 동생은 차장사에게 강제로 정혼을 시켰으나 이를 받아들일 수가 없어 울화병에 걸려 요절했다고 하였다.(747년)
(8) 최치원이 두 여인에게 술을 권해 서로 마시면서 시를 지었는데 이 세상에는 없는 빼어난 시들이었다.
(9) 최치원이 시를 읊조리다가 음악을 곁들이자고 하였고 이에 구낭자가 시비 취금에게 노래를 시켰다.
(10) 셋이 취하게 되자 그는 노충과 완조(죽은 여인과 연분을 맺음)의 경우를 들면서 두 여자에게 연분을 맺자고 하였다.
(11) 두 연인은 순임금과 주유도 두 여인을 받아들였다며 허락하였다.
(12) 세 개의 베개에 하나의 이불을 깔아 셋이 동침하였는데 그 사랑의 곡진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13) 그는 살아있는 미인의 배필은 되지 못하고, 무덤의 죽은 여인들을 껴안게 되었음을 탄식하며 이를 기연으로 돌렸다.
(14) 달이 지고 닭이 울자 두 여인이 떠나면서 쌍녀분에 다시 오게되면 무덤이나 잘 보살펴 달라고 청하면서 이별하였다.
(15) 최치원은 그 다음날 아침 무덤가로 가서 탄식하며 장문의 시를 읊어 자신을 위로하였다.
(16) 그 뒤 최치원은 귀국해 속세를 벗어나 전국을 유람하였고 말년에는 해인사에서 은거하다가 세상을 떠났다.

[주 제]

① 현실계의 남주인공이 비현실계의 영혼과 나누는 사랑의 곡진함

② 이국 땅에 벼슬하면서 정상적인 사랑 체험을 하지 못한 젊은 지식인이, 영혼의 여성들을 만나 사랑을 나누면서 대리만족을 느껴보는 신비체험의 감회

 

한문, 독음, 국역 처리

https://kydong77.tistory.com/2290

 

최치원, 쌍녀분(雙女墳)설화 or 최치원설화

[주]쌍녀분 설화의 주인공은 최치원이다. 그래서 최치원설화라고도 한다. 원문과 국역을 대역(對譯)하였다. 오랜 동안 별러오던 일이라 기분이 좋다. 원문은 임명덕본 한국한문소설전집 권7의

kydong77.tistory.com

 

雙女墳[또는 崔致遠]

崔致遠 字孤雲

최치원은 자가 고운이다.

年十二 西學於唐.

나이 열 두 살(서기 868년)에 서쪽 당나라에 유학을 갔다.

乾符甲午 學士裴瓚掌試 一擧登魁科 調授溧水縣尉.

건부 갑오년(서기 874년)에 학사 배찬이 관장하던 과거시험에서 장원급제하여 율수현의 현위에 임명되었다.

※登魁科: 괴과에 오르다:갑과에 장원으로 급제한 사람.

嘗遊縣南界招賢館

일찍이 현의 남쪽 경계에 있는 초현관에 놀러 간 적이 있었다.

(··· 이하 생략 ···  )/포스트 참조

출처: https://kydong77.tistory.com/2290 [김영동교수의 고전& life]

 

https://www.youtube.com/watch?v=2oaQjaHQDhw

 

최치원설화/崔致遠傳

또는

쌍녀분(雙女墳)설화

雙女墳記<太平通載 卷68>

 

임명덕본, 한국한문소설전집, 권7,p.261.

국역은 김현양 외, <수이전 일문> (박이정, 1996) 을 참고하여 약간 부분 윤색하였다.

본문의 청색 글씨는 주석 부분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이 인귀교환설화는 금오신화 중 <만복사저포기>와 <이생규장전>의

모티프가 되었다.

 

최치원 [崔致遠]

857(문성왕 19)∼? . 신라 하대의 학자,·문장가.

 

[국역]최치원(崔致遠) 설화 /쌍녀분(雙女墳) 설화

최치원설화/해괴망측한 사랑 이야기

http://kydong77.tistory.com/8611

 

최치원설화/해괴망측한 사랑 이야기

[사진](상)런던 대영박물관 전경(前景). (하)대영박불관의 대리석 여인상 [주]최치원 설화 또는 쌍녀분 설화로 일컬어지는 이 설화는 해괴망측(駭怪罔測 )한 사랑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곧, 최치원(崔致遠)이..

kydong77.tistory.com

 

* 아래에서는 원문과 국역을 함께 정리해 본다.

 

崔致遠 字孤雲

최치원은 자가 고운이다.

 

年十二 西學於唐.

나이 열 두 살(서기 868년)에 서쪽으로 당나라에 유학을 갔다.

 

乾符甲午 學士裴瓚掌試 一擧登魁科 調授溧水縣尉.

건부 갑오년(서기 874년)에 학사 배찬이 관장하던 과거시험에서 장원급제하여

율수현의 현위에 임명되었다.

 

괴과:갑과에 장원으로 급제한 사람.

 

嘗遊縣南界招賢館

일찍이 현의 남쪽 경계에 있는 초현관에 놀러 간 적이 있었다.

 

館前岡有古塚 號雙女墳

초현관 앞 언덕에 오래된 무덤이 있어 쌍녀분이라 불렀다.

 

古今名賢遊覽之所.

고금의 명현들이 유람하던 곳이었다.

 

致遠題詩石門曰,

치원이 (그 무덤의) 석문에 시를 써서 붙였다.

 

誰家二女此遺墳

수가이녀차유분 어느 집 두 여인이 이 무덤을 남겼을까,

寂寂泉扃幾怨春

적적천경기원춘 쓸쓸한 구천에서 얼마나 봄을 원망하겠는가.

形影空留溪畔月

형영공류계반월 모습은 부질없이 시냇가의 달빛아래 머무는데,

姓名難問塚頭塵

성명난문총두진 먼지 덮인 무덤 앞에 이름조차 묻기가 어렵구나.

芳情儻許通幽夢

방정당허통유몽 꽃다운 정이 혹시라도 아련히 꿈에라도 이어진다면,

永夜何妨慰旅人

영야하방위려인 기나긴 밤 나그네 위로함이 무슨 허물이 되겠는가.

孤館若逢雲雨會

고관약봉운우회 외로운 이 초현관에서 운우의 정을 이룰 수 있다면,

與君繼賦洛川神

여군계부락천신 그대들과 함께 조식에 이어 낙천신을 노래 부르리라.

 

※ 洛川神: 魏나라 曺植이 甄后(견후)를 사모했는데 견후가 洛水에 투신했다.

견후가 꿈에 나타나 조식에게 베개를 주었다. 이에 조식은 洛神賦를 지었다.

 

題罷到館.

(최치원은) 글 쓰기를 마치고 관으로 돌아왔다.

 

是時月白風淸 杖藜徐步.

이 때 달은 밝고 바람이 시원하여 명아주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거닐었다.

 

忽覩一女 姿容綽約

갑자기 한 여인을 보았는데, 그 자태와 용모가 아름다웠다.

 

手操紅帒 就前曰,

손에는 붉은 주머니를 쥐고 곧장 앞으로 나와 말했다.

 

“八娘子 九娘子 傳語秀才.

“팔낭자와 구낭자는 수재에게 말을 전하라 하였습니다.

 

朝來特勞玉趾 兼賜瓊章 各有酬答 謹令奉呈.”

아침에 귀한 발걸음을 하시어 훌륭한 글을 주셨기에 각각 화답한 글이 있어 삼가 저로 하여금 바치도록 하였습니다.”

 

公回顧驚煌 再問何姓娘子.

공이 뒤를 돌아보며 놀라고 당황해서 다시 무슨 성씨의 낭자인가 물었다.

 

女曰, “朝間披榛拂石題詩處 卽二娘所居也.”

여인이 말했다.

“아침나절에 덤불을 헤치고 돌을 쓸어 시를 써 놓은 곳이 곧 두 낭자가 거처하는 곳입니다.”

 

公乃悟 見第一帒 是八娘子奉酬秀才.

공이 곧 깨닫고 첫 번째 주머니를 열어보니, 이는 팔낭자가 수재에게 화답한 글이었다.

 

其詞曰,

그 시에 적었다.

 

幽魂離恨寄孤墳

유혼이한기고분 그윽한 영혼과 이별의 한이 외로운 무덤에 묻혀 있어도,

桃臉柳眉猶帶春

도검유미유대춘 복숭아 빛 뺨과 버들 잎 눈썹은 아직도 봄날 같습니다.

鶴駕難尋三島路

학가난심삼도로 학을 타고 신선 사는 곳으로 가는 길은 찾기가 어려웠고,

鳳釵空墮九泉塵

봉차공타구천진 봉황이 그려진 비녀는 공연히 구천에 먼지로 떨어졌다네.

當時在世長羞客

당시재세장수객 당시 세상에 있었을 때는 언제나 낮선 사람보고 부끄러워했지만,

今日含嬌未識人

금일함교미식인 오늘은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도 사랑을 품게 되었답니다.

深愧詩詞知妾意

심괴시사지첩의 시로 하신 말씀이 부끄럽게도 제 마음 알아주시니,

一回延首一傷神

일회연수일상신 한 번씩 머리를 돌려 고개를 늘일 때마다 마음이 아프답니다.

 

次見第二帒 是九娘子 其詞曰,

다음으로 두 번째 주머니를 열어보니, 이는 구낭자의 것이었다.

그 시에 적었다.

 

往來誰顧路傍墳

왕래수고로방분 오가며 누가 길가의 무덤을 돌아보겠는가,

鸞鏡鴛衾盡惹塵

난경원금진야진 난새의 거울과 원앙의 이불 모두 먼지만 쌓여 있다네.

一死一生天上命

일사일생천상명 한번 죽고 한번 사는 일이 모두 하늘이 정한 운명인데,

花開花落世間春

화개화락세간춘 꽃이 피고 꽃이 지는 일은 이 세상 봄의 일이라네.

每希秦女能抛俗

매희진녀능포속 늘 진나라 여인 농옥처럼 속세를 버리기를 희망하였는데,

不學任姬愛媚人

불학임희애미인 임희처럼 사람 사랑하는 것을 배우지를 못했다오.

欲薦襄王雲雨夢

욕천양왕운우몽 모셔서 양왕처럼 운우의 꿈을 드리고자 하는데,

千思萬憶損精神

천사만억손정신 천가지 생각 만가지 추억이 마음만 상하게 합니다.

 

*농옥:진나라 목공의 딸 弄玉은 피리를 잘부는 소사라는 사내의 아내가 되었는데 어느 날 둘이는 하늘로 날아갔다. <열선전>

*임희:주나라 문왕의 어머니. 부덕이 높아 유교의 이상적 인물.

*송옥의 <고당부>

 

又書於後幅曰,

다시 그 뒤쪽에도 다음과 같이 써 있었다.

 

莫怪藏名姓

막괴장명성 이름과 성을 감춘 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마소서.

孤魂畏俗人

고혼외속인 외로운 넋이 속인을 두려워해서 입니다.

欲將心事說

욕장심사설 마음속에 묻어둔 이야기를 털어놓고자 하오니,

能許暫相親

능허잠상친 잠시라도 서로 친해질 수 있기를 허락해 주오.

 

公旣見芳詞 頗有喜色 乃問其女名字

曰, “翠襟.”

공이 아름다운 글을 다 보고 나서, 자못 기쁜 얼굴빛으로 그녀의 이름을 물었다.

“취금이라고 하옵니다.”

 

公悅而挑之 翠襟怒曰,

공이 기뻐하며 그녀를 유혹하려 하자, 취금이 성을 내어 말했다.

 

“秀才合與回書 空欲累人.”

“ 수재께서는 답장을 써서 주실 일이지, 부질없이 다른 사람에게 누를 끼치려 하십니까?”

 

致遠乃作詩 付翠襟曰,

치원이 곧 시를 지었다. 취금에게 부친 시는 다음과 같다.

 

偶把狂詞題古墳

우파광사제고분 우연히 미친 듯한 노래로 옛 무덤을 읊은 것이,

豈期仙女問風塵

기기선녀문풍진 어찌 선녀들이 풍진 세상에 찌든 사람의 일을 물으리라 기약했겠소.

翠襟猶帶瓊花艶

취금유대경화염 취금이 옥과 꽃 같은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으니,

紅袖應含玉樹春

홍수응함옥수춘 두 주인께서는 봄날의 아름다운 나무 빛을 머금고 있으리라.

偏隱姓名欺俗客

편은성명기속객 이름을 숨기고 속세의 나그네에게 시를 써서 보내는,

巧栽文字惱詩人

교재문자뇌시인 교묘한 문자를 보니 시인이 번뇌에 쌓이는구나.

斷腸唯願陪歡笑

단장유원배환소 애끊는 마음은 오직 웃고 즐기는 일 함께 하고자 하니,

祝禱千靈與萬神

축도천령여만신 모든 신령들에게 축원 올리고 기도 드립니다.

 

繼書末幅云,

이어서 끝 폭에다 시를 덧붙였다.

 

靑鳥無端報事由

청조무단보사유 청조가 뜻밖에도 사연을 알려주어,

暫時相憶淚雙流

잠시상억루쌍류 잠시동안 서로의 생각에 두 줄기 눈물 흘렸답니다.

今宵若不逢仙質

금소약불봉선질 오늘밤에 만약 선녀들의 모습을 만나지 못한다면,

判郤殘生入地求

판극잔생입지구 반드시 남은 생을 지하에 가서라도 찾아 볼 것입니다.

 

*청조: 세 발 달린 새. 使者 또는 서간의 듯으로 사용함.

 

翠襟得詩還 迅如颷逝.

취금이 시를 받아 돌아가는데, 바람처럼 사라졌다.

 

致遠獨立哀吟

치원은 홀로 서서 슬피 읊조리고 있었다.

 

久無來耗 乃詠短歌.

오랫동안 기다려도 오지 않아 짧은 노래를 지어 읊조렸다.

 

向畢 香氣忽來 良久二女齊至

읊기가 끝나갈 무렵 갑자기 향기가 엄습해오더니, 한참 뒤에 두 여인이 함께 나란히 나타났다.

 

正是一雙明玉 兩朶瑞蓮.

정말로 한 쌍의 밝은 옥이요, 두 줄기 서기 어린 연꽃과 같았다.

 

致遠驚喜如夢 拜云,

치원은 꿈인 듯 놀라 기뻐 절하며 말했다.

 

“致遠海島微生 風塵末吏

“치원은 바다건너 반도에서 태어난 미미한 사람이며, 보잘것없는 말단 관리인데,

 

豈其仙宮猥顧凡流

어찌 외람 되게 선녀들이 평범한 사람들을 돌아볼 것이라고 기대나 했겠습니까?

 

輒有戱言 便垂芳躅?”

문득 농담 삼아 한 말인데 아름다운 발걸음을 하셨군요.”

 

二女微笑無言.

두 여인은 말없이 미소지었다.

 

致遠作詩曰,

치원이 시를 지었다.

 

芳宵幸得暫相親

방소행득잠상친 아름다운 밤에 다행히 잠시라도 서로 친해졌는데,

何事無言對暮春

하사무언대모춘 무슨 일로 말없이 저무는 봄만 보며 마주하고 있는가.

將謂得知秦室婦

장위득지진실부 장차 진나라의 지조 있고 아름다운 여인인 줄 알았는데,

不知元是息夫人

부지원시식부인 원래가 식부인인줄은 알지 못했네.

 

*맥상상 [陌上桑]

나부행(羅敷行)이라고도 한다. 전국시대 조(趙)나라의 왕인(王仁)의 처 진나부(秦羅敷)가 지었다고 전한다. ‘맥상’은 원래 노상(路上)이라는 말인데, 뛰어난 미모를 지닌 나부가 뽕을 따러 나가면 지나가던 남자들이 정신을 잃고 바라보았다. 때마침 조왕(趙王)이 지나가다가 대상(臺上)에서 나부를 보고 첫눈에 반하여 유혹을 하였으나 그녀는 이를 거절하고 자기에게는 훌륭한 남편이 있다 하여 남편을 자랑하는 줄거리의 노래를 불렀다. 뽕 따는 여인의 건전한 마음씨를 나타낸 건강하고 명랑한 노래이다. 많은 유사작이 있다.

使君自有婦 나으리에겐 아내가 있고

羅敷自有夫 나부에게도 남편이 있소.

 

*王維 - 息夫人[식부인]

莫以今時寵

막이금시총 오늘날 특별한 사랑을 받는다 하여,

能忘舊日恩

능망구일은 지난날의 그 은덕을 잊을 수는 없어라.

看花滿眼淚

간화만안루 꽃을 보고도 두 눈 가득 눈물 흘리며,

不共楚王言

불공초왕언 초왕과는 말 한 마디 아니하였다네.

 

*息夫人;춘추시대의 한 작은 나라였던 식국(息國)의 군주부인, 당시 초나라 문왕이 식나라를 멸망시키고 식부인을 강제로 빼앗아 차지 하였으다. 아이를 두 명이나 낳았으나 초나라에 와 줄곧 문왕과는 말 한 마디 하지 않았다. 연유는 `한 사람의 여인으로서 두 지아비를 섬기니, 죽지는 못할지언정 어찌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라고 하여 지조와 절개를 지켰다는 고사.

 

於是 紫裙者恚曰,

이에 자주색 치마를 입은 여인이 화를 내며 말했다.

 

“始欲笑言 便蒙輕蔑

“처음에는 웃으면서 말하려 하였는데, 곧 경멸을 당했습니다.

 

息嬀曾從二壻 賤妾未事一夫.”

息嬀(식규)는 일찍 두 남자를 섬겼지만, 저희는 아직 한 남자도 섬기지 않았습니다.”

 

公言, “夫人不言 言必有中.” 二女皆笑.

공이 말하기를, “대체로 사람이 말을 못할지언정, 말을 하면 반드시 법도에 맞아야 한다.”라고 하니, 두 여인이 모두 웃었다.

 

致遠乃問曰, “娘子居在何方 族序是唯?”

치원이 곧 물었다. “낭자의 거처하는 곳은 어디이며, 집안은 어떻게 되는지요?”

 

紫裙者隕淚曰,

자주색 치마를 입은 여인이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

 

“兒與小妹 溧水縣 楚城鄕 張氏二女也.

“저와 언니는 율수현 초성향 장씨의 두 딸입니다.

 

先父不爲縣吏 獨占鄕豪 富似銅山 侈同金谷.

돌아가신 아버지께서는 현의 관리는 아니 하시고 세력을 독점한 지방 호족으로 부유하기로는 銅山(동산)과 같았고, 사치함은 金谷(금곡)과 같았습니다.

 

銅山(동산)

『장경』에는, <서촉(西蜀)에 있는 동산(銅山)이 붕괴되니, 한나라 동쪽의 미앙궁에 있던 종이 저절로 울렸다. 밤나무에 봄기운이 오르니, 창고 속에 넣어둔 밤에서 싹이 돋는다.(是以銅山西崩 靈鐘東應. 木華於春 粟芽於室〉라고 하였다.

종이 저절로 울리자, 황제가 동방삭(東方朔)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동방삭은,'이 종은 동산에서 캐낸 동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동질의 기가 서로 감응을 일으켜서 저절로 울린 것입니다.'라고 대답했고, 황제는 '미천한 물질도 서로 감응을 일으키는데 만물의 영장인 사람은 조상과 후손 사이에 얼마나 많은 감응을 일으킬 것인가!'라고 말하고, 또 봄이 되면 앙상하던 나뭇가지에서 새싹이 돋고, 창고에 저장했던 곡식도 봄이 되면 발아한다. 이것은 봄날의 따뜻한 기운에 감응을 일으키는 결과로 보아 조상과 후손이 서로 뼈의 기로써 감응받음을 인정하였다.

 

금곡원(金谷園) -석숭 [石崇 ]

석숭(石崇)은 매우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였는데, <진서(晉書)>와 <세설신어(世說新語)> 등에는 황제의 인척인 왕개(王愷)와 부를 다투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는 뤄양[洛陽] 서쪽에 금곡원(金谷園)을 지었는데, 집안을 매우 호화롭게 꾸며 뒷간도 화려한 옷을 입은 십여명의 시녀들이 화장품과 향수를 들고 접대하게 하여 손님들은 침실인 줄 알고 놀라 돌아올 정도였다고 한다. 그는 금곡원(金谷園)에 관리와 문인들을 초대하여 주연(酒宴)을 자주 열며 풍류를 즐겼는데, 주연(酒宴)에서 시를 짓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벌로 세 말의 술을 마시게 하였다고 한다. 이 고사에서 '금곡주수(金谷酒數)'라는 말은 '술자리에서 받는 벌주'를 가리키게 되었다.

석숭에게는 녹주(綠珠)라는 애첩(愛妾)이 있었는데, 피리를 잘 불 뿐 아니라 악부(樂府)도 잘 지었다. 그는 녹주를 총애하여 '원기루(苑綺樓)' 또는 '녹주루(綠珠樓)'라고 하는 백장(百丈) 높이의 누각을 지었다. 조왕(趙王) 사마륜(司馬倫, ?~301)의 측근이었던 손수(孫秀)가 녹주의 미색을 탐하였으나 석숭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300년(永康 원년) 조왕 사마륜이 가후(賈后)의 세력을 제거하고 전권을 장악하자, 석숭은 황문랑(黃門郞) 반악(潘岳)과 함께 회남왕(淮南王) 사마윤(司馬允, 272~300), 제왕(齊王) 사마경(司馬冏, ?~302) 등과 연합해 사마륜(司馬倫)을 제거하려 했다. 손수(孫秀)가 이를 알고 대군을 이끌고 금곡원(金谷園)을 포위하자, 녹주는 누각에서 몸을 던져 자살하였고, 석숭은 반악(潘岳) 등과 함께 사로잡혀 참수(斬首)되었다.

석숭은 관직을 이용해 향료 무역 등을 독점하여 큰 부자가 되었는데, 백여명의 처첩(妻妾)을 거느렸으며, 집안의 하인도 8백여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중국은 물론 한국 등 동아시아 지역에서 오랜 기간 동안 부자의 대명사처럼 여겨졌다. 중국에서 석숭은 복(福), 녹(祿), 수(壽)의 삼선(三仙)의 가운데 녹(祿)을 상징하는 인물로 숭앙되었다.

 

及姊年十八 妹年十六 父母論嫁

언니 나이 열 여덟, 저의 나이 열 여섯이 되었을 때 부모님께서는 혼사를 논의하셨습니다.

 

何奴則定婚鹽商 小妹則許嫁茗估.

저는 소금장수와 혼인을 하기로 정하고, 언니는 茶(차)장수와 혼인을 하기로 허락을 하였습니다.

 

姊妹每說移天 未滿于心 鬱結難伸 遽至夭亡.

저희 둘은 매번 이 이야기를 하면서 나날을 보내고 있었지만 마음에 차지 않아

답답하게 맺힌 것이 풀리지 않다가 갑자기 요절하게 되었습니다.

 

所冀仁賢 勿萌猜嬚.”

바라건대 어질고 현명한 분께서는 혐의를 두지 마시기 바랍니다.”

 

致遠曰, “玉音昭然 豈有猜慮?”

치원이 말했다. “그대의 말이 뚜렷한데 어찌 의심을 하겠는가.”

 

乃問二女,

“寄墳巳久 去館非遙 汝有英雄相遇 何以示現美談?”

그리고 두 여인에게 물었다.

“무덤에 있은 지가 오래고 초현관에서 멀지 않으니,

혹 영웅과 만났다면 어떻게 아름다움을 말하였는지요?”

 

紅袖者曰, “往來者皆是鄙夫. 今幸遇秀才

붉은 치마를 입은 여인이 말했다.

“오고 가는 사람들이 모두 저속한 자들이었는데, 오늘 다행히도 수재를 만나 뵈오니,

 

氣秀鼇山 可與話玄玄之理.”

그 기상이 金鼇山(금오산)같이 빼어나시어 함께 오묘한 진리를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致遠將進酒 謂二女曰, “不知 俗中之味 可獻物外之人乎?”

치원이 술을 권하며 두 여인에게 말하였다.

“세속의 맛을 세상 밖의 사람에게 드려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紫裙者曰, “不飡不飮 無飢無渴

자주색 치마를 입은 여인이 말하기를,

“먹지 않고 마시지 않아도 배고픔과 목마름이 없지만,

 

然幸接瓖姿 得逢瓊液 豈敢辭違?”

다행히 훌륭한 분을 만나 좋은 술을 얻었으니, 어찌 감히 사양하여 어기겠습니까?”

 

於是, 飮酒各賦詩 皆是淸絶不世之句.

이에 술을 마시고 시를 읊으니, 모두 더 없이 맑아 세속의 시 구절이 아니었다.

 

是時明月如晝 淸風似秋.

이 때는 달이 낮과 같이 밝았으며 바람은 시원하여 가을 같았다.

 

其姊改令曰, “便將月爲題 以風爲韻.”

그 언니가 노래를 바꾸자고 하며,

“달을 제목으로 하고 ‘바람 風(풍)’ 字를 韻(운)으로 합시다.” 하니,

 

於是, 致遠作起聯曰,

이에 치원이 첫 번 째 聯(련)을 읊었다.

 

金波滿目泛長空

금파만목범장공 금빛 물결은 눈에 가득 먼 하늘에 떠 있으니

千里愁心處處同

천리수심처처동 근심스런 마음은 천리 곳곳에 한결 같구나.

 

八娘曰,

팔낭자가 이었다.

 

輪影動無迷舊路

륜영동무미구로 달 그림자 움직여도 옛 길에 헤매지 않고,

桂花開不待春風

계화개불대춘풍 계수나무 꽃은 봄바람을 기다리지 않고도 피어난다.

 

九娘曰,

구낭자가 이었다.

 

圓輝漸皎三更外

원휘점교삼경외 달빛은 점점 삼경 무렵에 밝아 오니,

離思偏傷一望中

이사편상일망중 이별 생각으로 한번 바라봄에 자못 마음이 아프구나.

 

致遠曰,

치원이 뒤를 이었다.

 

練色舒詩分錦帳

연색서시분금장 비단 빛 달빛이 퍼질 때 비단 휘장에 골고루 비치며,

珪模暎處透珠櫳

규모영처투주롱 아름다운 나무(그림자) 비치는 것이 창문까지 스며드는구나.

 

八娘曰,

팔낭자가 이었다.

 

人間遠別腸堪斷

인간원별장감단 인간세상에서의 먼 이별이 애간장 끊는 듯하고,

泉下孤眠恨莫窮

천하고면한막궁 무덤에서 홀로 자는 잠의 한은 끝이 없어라.

 

九娘曰,

구낭자가 끝을 맺었다.

 

每羨嫦娥多計校

매선항아다계교 늘 항아의 꾀 많음을 부러워하고,

能抛香閣到仙宮

능포향각도선궁 규방을 버리고 달나라로 간 것을 부러워한다네.

 

*상아 [嫦娥 ]

항아(姮娥)·상희(嫦羲)라고도 한다. 《산해경(山海經)》에 의하면, 제준(帝俊)의 아내인 상희가 달덩이 같은 알 12개를 낳고 대황(大荒)의 일월산(日月山) 골짜기에서 목욕을 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여기서 제준은 곧 태양신을 말한다. 《회남자(淮南子)》에는 서왕모(西王母)로부터 불사약을 구해온 예(羿)에게서, 항아가 그 불사약을 훔쳐 달로 달아나 섬여(두꺼비)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 항아가 예의 아내가 되어 있다. 《초사(楚辭)》 등에는 두꺼비가 아니고 토끼가 되었다고 쓰고 있다.

이 상아 설화는 서왕모가 신선화(神仙化)하면서 발전하여 달 속에 계수나무가 있고 토끼가 약(떡방아)을 찧는다는 등, 여러 모양으로 변천하였다. 이것은 다시 발전하여 많은 신선사상을 낳게 되었고, 그 사상이 도교(道敎)에 받아들여져 굳혀지기에 이르러, 중국미술에서도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公嘆訝尤甚 乃曰,

공은 더욱 감탄하여 위로하면서 말했다.

 

“此時無笙歌秦於前 能事未能畢矣.”

“이런 때에 앞에서생황을 연주하면서 노래가 없다면, 이 좋은 일도 마쳤다고 할 수는 없겠지요.”

 

於是 紅袖乃顧婢翠襟而謂致遠曰,

이에 붉은 치마를 입은 여인이 여종 취금을 돌아보면서 치원에게 말했다.

 

“絲不如竹 竹不如肉 此婢善歌.”

“현악기는 관악기보다는 못하며, 관악기는 육성보다 못한데, 이 아이는 노래를 잘합니다.”

 

乃命訴哀情詞.

곧 마음에 하소연하는 정다운 노래를 부르라고 하였다.

 

翠襟歛袵一歌 淸雅絶世

취금이 옷깃을 여미고 한번 노래를 부르니 그 소리의 맑고 우아함이 세상에 다시 없었다.

 

於是 三人半酣 致遠乃挑二女曰,

세 사람이 반쯤 취하였을 때, 치원이 두 여인을 유혹하며 말했다.

 

“嘗聞盧充逐獵 忽遇良姻 阮肇尋仙 得逢嘉配

“일찍이 들으니 노충은 사냥을 갔다가 뜻밖에 좋은 인연을 만났으며,

완조는 신선을 찾아 나섰다가 아름다운 배필을 만났다 하는데,

 

*노충 http://kr.blog.yahoo.com/ez.magnetar/286

범양 사람. 최소부의 무덤 가에서 사냥하다가 최소부의 딸을 만나 아들을 얻음.

 

*완조 후한대 사람. 영평년간에 유신과 더불어 약을 캐러 가서 두 여인을 만나 하룻밤 자고 돌아오니 집에는 7대 후손이 살고 있었다.

 

芳情若許 姻好可成.”

아리따운 마음씨로 허락을 한다면 좋은 인연을 만들고 싶습니다.”

 

二女皆諾曰,

두 여인은 모두 승낙하였다.

 

“虞帝爲君 雙雙在御 周良作將 兩兩相隨

“우임금이 임금이 되었을 때 두 여인이 곁에서 모셨으며,

주유가 장군이 되었을 때 두 여인이 따랐으니,

 

彼昔猶然 今胡不爾?”

저들은 옛날에도 그러했는데 지금이라고 어찌 못하리요?”

 

致遠喜出望外 乃相與排三淨枕 展一新衿

치원은 뜻밖에 기뻐 뛰면서, 곧 세 개의 깨끗한 베개를 나란히 놓고

새 이불 한 채를 펴고

 

三人同衿 繾綣之情 不可具談

세 사람이 함께 누우니, 곡진하고 정다운 정을 이루 다 말할 수 없었다.

 

致遠戲二女曰,

치원이 두 여인을 희롱하였다.

 

“不向閨中作黃公之子婿 翻來塚則夾陳氏之女奴

“규방에서 황공의 사위가 되지는 못하고,

도리어 무덤 가에서 진씨의 여종을 안게 되었으니,

 

未測何緣得逢此會?”

무슨 인연으로 이렇게 만났는지 모르겠습니다.”

 

*춘추시대 제나라 황공의 두 딸은 절색이었으나 아비가 겸사로 못났다고 말해왔는데 위나라의 한 홀아비가 평판을 무시하고 장가들었다.

*선화부인:陳나라 선제의 딸로 용모가 몹시 아름다워 수문제의 궁빈이 되어 선화부인의 호칭을 받았다. 문제가 죽자 태자 광에게 욕을 당하고 29세에 죽었다.

 

女兄作詩曰,

언니가 시를 지었다.

 

聞語知君不是賢

문어지군불시현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대는 어진 사람이 아님을 알았으니,

應緣慣與女奴眠

응연관여여노면 마땅히 여자 종과 잠자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弟應聲續尾曰,

동생이 뒷구를 이었다.

 

無端嫁得風狂漢

무단가득풍광한 괜시리 바람둥이에게 시집을 갔다가,

强被輕言辱地仙

강피경언욕지선 경솔한 말로써 지상의 신선을 억지로 욕보이는구나.

 

公答爲詩曰,

공이 답하여 시를 지었다.

 

五百年來始遇賢

오백년래시우현 오백 년 만에 비로소 어진 이를 만나서,

且歎今夜得雙眠

차탄금야득쌍면 또한 오늘밤에 함께 한 잠자리가 즐거웠다오.

芳心莫怪親狂客

방심막괴친광객 꽃다운 마음씨로 바람둥이와 잠자리한 것을 이상하게 생각 마오.

曾向春風占謫仙

증향춘풍점적선 일찍이 봄바람 만나서 귀양온 신선이 된 것이라오.

 

*적선 :당나라 이태백.

 

小頃 月落鷄鳴.

잠시 뒤, 달이 지고 닭이 울었다.

 

二女皆驚 謂公曰,

두 여인이 함께 놀라며, 공에게 말했다.

 

“樂極悲來 離長會促

“즐거움이 다하면 슬픔이 오고, 이별은 길고 만남은 짧습니다.

 

是人世貴賤同傷

이것은 사람 사는 세상에서 귀하거나 천하거나 모두 마음 아파하는 것입니다.

 

況乃存沒異途 升沈殊路 每慚白晝 虛擲芳時

하물며 생사의 길이 다르고 이승과 저승의 길이 달라

늘 밝은 대낮을 부끄러워하여 헛되이 아름다운 시절을 보내었습니다.

 

只應拜一夜之歡 從此作千年之恨

다만 하룻밤의 즐김을 누린 것이 이제는 천년의 한이 됩니다.

 

始喜同衾之有幸 遽磋破鏡之無期.”

처음에는 함께 잠자리에 든 것을 기뻐하였지만,

갑자기 기약 없는 이별을 슬퍼하게 되었습니다.”

 

二女各贈詩曰,

두 여인이 각각 시를 지어 주었다.

 

星斗初回更漏闌

성두초회경루란 북두칠성이 처음으로 돌아가고 물시계의 물도 다 떨어졌는데,

欲言離緖淚闌干

욕언이서루란간 이별의 말을 전하고자 하니 눈물이 펑펑 쏟아집니다.

從玆便結千年恨

종자편결천년한 이제부터 천년의 한이 맺힐 것이니,

無計重尋五夜歎

무계중심오야탄 이슥한 밤의 즐거움 다시 찾을 일이 없습니다.

 

又曰,

다른 시는 다음과 같다.

 

斜月照窓紅臉冷

사월조창홍검냉 기운 달빛 창에 비치니 불그레하던 뺨도 차가워지고,

曉風颷袖翠眉攢

효풍표수취미찬 새벽바람 소매를 날리니 푸른 눈썹이 찡그려집니다.

辭君步步偏腸斷

사군보보편장단 그대를 이별하면 내딛는 걸음걸음 애간장 끊어지고,

雨散雲歸入夢難

우산운귀입몽난 비는 흩어지고 구름은 돌아가니 잠들기도 어렵습니다.

 

致遠見詩 不覺垂淚.

二女謂致遠曰,

치원이 시를 보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눈물을 흘리니,

두 여인이 치원에게 말했다.

 

“倘或他時 重經此處 修掃荒塚.”

“만약 혹시라도 다른 날에 이 곳을 다시 지나게 되면

우거진 무덤을 닦고 쓸어 주십시오.”

 

言訖卽滅.

말을 마치자마자 곧 사라졌다.

 

明旦, 致遠歸塚邊 彷徨嘯咏 感嘆尤甚.

이튿날 아침, 치원은 무덤가에 가서 왔다 갔다 하며 시를 읊조리면서 매우 감탄해마지 않았다.

 

作長歌自慰曰,

긴 노래를 지어 스스로를 위로했다.

 

草暗鹿昏雙女墳

초암록혼쌍녀분  풀이 우거지고 먼지가 쌓인 두 여인의 무덤에,

古來名迹竟誰聞

고래명적경수문  예로부터 이름난 자취를 누가 들었을까?

唯傷廣野千秋月

유상광야천추월  다만 텅 빈 들판 오랜 세월의 달빛에 마음 아픈데

空鎖巫山兩片雲

공쇄무산양편운  부질없이 무산에는 구름 두어 조각이 가리었네.

自恨雄才爲遠吏

자한웅재위원리  큰 재주 지닌 내가 먼 지방의 관리되어 한이더니,

偶來孤舘尋幽遼

우래고관심유료  우연히 외로운 초현관에 왔다가 깊숙한 곳에 있는 쌍녀분 찾았네.

戲將詞句向門題

희장사구향문제  장난삼아 시를 써서 석문에 써 놓았더니,

感得仙姿侵夜至

감득선자침야지  감동한 선녀들이 밤을 틈타 왔었네.

紅錦袖, 紫羅裙

홍금수, 자라군  붉은 비단 소매와 자주색 치마를 입은 두 여인이,

坐來蘭麝逼人薰

좌래란사핍인훈  앉아 있으니, 난초와 사향의 향기가 사람 가까이 풍겨오는구나.

翠眉丹頰皆超俗

취미단협개초속  푸른 눈썹, 붉은 뺨은 모두 속세를 벗어났고,

飮態詩情又出群

음태시정우출군  술 마시는 모습과 시를 읊는 모습은 신선 가운데서도 빼어났다네.

對殘花, 傾美酒

대잔화, 경미주  지는 꽃을 마주 대하여 좋은 술을 기울이고,

雙雙妙舞呈纖手

쌍쌍묘무정섬수  두 여인의 절묘한 춤으로 가녀린 아름다운 손을 내보이네.

狂心已亂不知羞

광심이란불지수  미친 듯한 마음은 이미 혼란스러워 부끄러움 알지 못하고,

芳意試看相許否

방의시간상허부  꽃다운 정을 허락할지 말지 시험하여 보았네.

美人顔色久低迷

미인안색구저미  미인들의 얼굴빛은 오랫동안 땅속에서 헤매다가,

半含笑態半含啼

반함소태반함제  반쯤은 웃음을 머금고 반쯤은 울음을 머금고,

面熱自然心似火

면열자연심사화  얼굴이 익어 자연스럽게 그 마음은 불과 같고,

臉紅寧假醉如泥

검홍영가취여니  뺨은 붉어 취한 듯 붉은 진흙 같구나.

歌艶詞, 打懽合

가염사, 타환합  아름다운 가사로 노래하고 즐거움이 합치되니,

芳宵良會應前定

방소양회응전정  아름다운 밤, 좋은 만남은 이미 정해진 것이었네.

纔聞謝女啓淸談

재문사녀계청담  잠시 謝女(사녀)가 맑은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듣고서,

又見班姬抽雅詠

우견반희추아영  또한 班姬(반희)가 우아한 시를 읊조리고 펼치는 것을 보았다네.

情深意密始求親

정심의밀시구친  정은 깊어지고 뜻은 가까워져서 비로소 친하기를 바랐으니,

正是艶陽桃李辰

정시염양도리진  정녕 이때는 늦봄의 복숭아와 자두 꽃 필 때이다.

明月倍添衾枕恩

명월배첨금침은  밝은 달빛은 은총이 깃든 이불과 베개에 배로 더하고,

香風偏惹綺羅身

향풍편야기라신  향기로운 바람은 자못 비단 옷 입은 사람에게 불어오네.

綺羅身, 衾枕恩

기라신, 금침은  비단 옷 입은 사람의 이불과 베개에 스며든 은혜는

幽懽未已離愁至

유환미이리수지  그윽한 즐거움이 끝나기도 전에 이별의 슬픔에 이르렀네.

數聲餘歌斷孤魂

수성여가단고혼  몇 갈래의 소리, 남아있는 노래가 외로운 혼령의 애간장을 끊고,

一點殘燈照雙淚

일점잔등조쌍루  한 점 희미한 등불은 두 줄기 눈물을 비추는구나.

曉天鸞鶴各西東

효천난학각서동  새벽 하늘의 난새와 학은 각각 동서로 날아가고,

獨坐思量疑夢中

독좌사량의몽중  홀로 앉아 생각하니 아마도 꿈속인 듯 하여라.

沉思疑夢又非夢

침사의몽우비몽  고요히 생각하니 꿈인 듯 하나 꿈은 아니고,

愁對朝雲歸碧空

수대조운귀벽공  수심 속에 푸른 하늘 날아가는 아침구름 쳐다보네.

馬長嘶, 望行路

마장시, 망행로  말은 길게 울면서 갈 길을 바라보고 있는데,

狂生猶再尋遺墓

광생유재심유묘  얼빠진 이 사람은 오히려 다시 남겨진 무덤을 찾아가고.

不逢羅襪步芳塵

불봉라말보방진  비단 버선에 꽃 먼지 밟고 오는 것을 만나지 못하고,

但見花枝泣朝露

단견화지읍조로  다만 꽃나무 가지에 맺혀있는 아침 이슬보고 운다네.

腸欲斷, 首頻回

장욕단, 수빈회  애간장은 끊어질 듯하여 머리 자주 돌려보나,

泉戶寂寥誰爲開

천호적요수위개  쓸쓸한 무덤을 누가 열어 젖혀 줄 것인가?

頓轡望時無限淚

돈비망시무한루  말고삐를 부여잡고 바라보면 끝없이 흐르는 눈물.

垂鞭吟處有餘哀

수편음처유여애  말채찍을 드리우고 읊조리는 시에는 슬픔만 남아 있구나.

暮春風, 暮春日

모춘풍, 모춘일  늦은 봄바람이여, 늦은 봄의 햇살이여,

柳花撩亂迎風疾

유화료란영풍질  버들강아지 바람에 어지럽게 흩날려 흩어지네.

常將旅思怨韶光

상장여사원소광  항상 봄빛을 원망하는 나그네 생각인데,

況是離情念芳質

황시리정염방질  하물며 이별의 정으로 아름다운 선녀를 생각함에 있어 서랴.

人間事, 愁殺人

인간사, 수살인  인간 세상에서 느끼는 근심은 몹시도 사람을 근심스럽게 하니,

始聞達路又迷津

시문달로우미진  비로소 나루터로 가는 길을 잃어버렸구나.

草沒銅臺千古恨

초몰동대천고한  풀은 동대에 우거져 천고의 한이 되고,

花開金谷一朝春

화개금곡일조춘  꽃이 金谷園(금곡원)에서 피는 일도 하루 아침의 짧은 봄이라네.

阮肇劉晨是凡物

완조유신시범물  완조와 유신도 평범한 사람이요,

秦皇漢帝非仙骨

진황 한제 비선골   진시황과 한 무제도 신선의 골격은 아니라네.

當時嘉會杳難追

당시가회묘난추  당시의 아름다운 만남은 아득하여 따라할 수 없고,

後代遺名徒可悲

후대유명도가비  후대에 이름만 남기니 다만 슬프기만 하구나.

悠然來, 忽然去

유연래, 홀연거  아득히 왔다가 갑자기 가버리니,

是知風雨無常主

시지풍우무상주  비 내리고 바람 부는 일이 일정한 주인이 없음을 알았노라.

我來此地逢雙女

아래차지봉쌍녀  내가 여기에 와서 두 여인을 만난 것은,

遙似襄王夢雲雨

요사양왕몽운우  아마도 양왕이 무산 선녀를 꿈꾼 것과 같다네.

大丈夫! 大丈夫!

대장부! 대장부!  대장부여! 대장부여!

壯氣須除兒女恨

장기수제아녀한  씩씩한 기상으로 아녀자의 한을 풀어 주기는 했지만,

莫將心事戀妖狐

막장심사연요호  마음의 일로 요사스러운 여우를 그리워하지는 말지어다.

 

後致遠擢第東還 路上歌詩云,

뒷날 치원이 과거에 급제하고 우리나라로 돌아오는 길에서 시로 노래했다.

 

浮世榮華夢中夢

부세영화몽중몽 들뜬 세상의 영화는 꿈속의 꿈일지니,

白雲深處好安身

백운심처호안신 흰 구름 깊은 곳에서 내 한 몸 편안하게 하리라.

 

乃退而長往

곧 물러나서 속세를 떠나 은둔하였다.

 

尋僧於山林江海 結小齊 尋石臺

산과 숲, 강과 바다로 스님을 찾아가서 작은 집을 짓고, 석대를 찾고,

 

耽玩文書 嘯咏風月 逍遙偃仰於其間.

서적을 탐독하고, 풍월을 읊으며, 그 사이에서 소요하고 기거하였다.

 

南山 淸凉寺 合浦縣 月影臺 智異山雙溪寺 石南寺 黑泉石臺

남산 청량사, 합포현 월영대, 지리산 쌍계사, 석남사, 흑천석대에

 

鍾牧丹 至今猶存 皆其遊歷也.

모란을 심은 것이 지금까지도 남아 있으니, 모두 그가 노닐고 거쳐간 곳이다.

 

最後隱於伽耶山海印寺 與兄大德賢俊․南岳師定玄 探賾經論

마지막에는 가야산 해인사에 은거하여 그의 형인 현준과 남악 ․ 정현 등의 스님들과 경론을 자세하게 탐구하였으며,

 

遊心沖漠 以終老焉.

마음은 깊고 넓은 곳을 노닐다가 늙어 생을 마쳤다.

출처: https://kydong77.tistory.com/14011 [김영동교수의 고전& life]

 

https://www.youtube.com/watch?v=noLoi5ufGrM

 

https://www.youtube.com/watch?v=PsaFoC88y-s

 

 

https://www.youtube.com/watch?v=eWIxclVd1_s

 

https://www.youtube.com/watch?v=kQlq64SUEwI

 

[참고]

인귀교환설화의 첫 작품으로는 최치원의 〈쌍녀분전기〉(雙女墳傳記)이다.

쌍녀분전기〉(雙女墳傳記)는 최치원이 쓴 전기소설(傳記小說)이다. 중국의 많은 사서(史書)와 육조사적편류(六朝事蹟編類)에 〈쌍녀분기담〉(雙女墳記談)으로 기록되어 당(唐), 송(宋), 원(元)나라에 이어 오늘날까지 전해온다.

최치원이 당나라에 있을 때 무덤 속 두 여인(혼령)과 하룻밤의 환락을 시(詩)로써 즐기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한 편의 설화이기는 하나 내용 구성면에서 다분히 소설적 면모를 띠고 있어 소설로 보는 경우도 있다. 이 설화는 원래 《수이전》(殊異傳)에 수록되었던 것이 뒤에 성임(成任)의 《태평통재》(太平通載) 권68에 〈최치원〉(崔致遠)이라는 제목을 달고 전재되어 있고, 그 뒤 권문해(權文海)의 《대동운부군옥》 권15에 〈선녀홍대〉(仙女紅袋)라는 제목으로 수록되어 전한다. 같은 내용이기는 하나 〈선녀홍대〉가 〈최치원〉보다 약 5분의 1 정도로 축약되어 있다.

 

https://ko.wikipedia.org/wiki/%EC%B5%9C%EC%B9%98%EC%9B%90

 

최치원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최치원(崔致遠, 857년 ~ 908년 이후)은 신라 말기의 문신, 유학자, 문장가이다. 본관은 경주(慶州)이고 자는 고운(孤雲), 해운(海雲), 해부(海夫)이며, 시호는 문창(文昌)이다. 868년 당나라로 건너가 과거에 급제한 후 당나라의 관료로 생활하였다. 신라 말 삼최(三崔) 중 한 사람으로, 문묘에 종사된 해동 18현 중의 한 사람이다. 6두품 출신으로서 12세의 나이로 당에 유학하여 6년 만에 당의 빈공과에 장원으

ko.wikipedia.org

 

https://kydong77.tistory.com/14011

 

최치원설화 or 쌍녀분(雙女墳)설화

雙女墳 江蘇省高淳縣 최치원설화/崔致遠傳 또는 쌍녀분(雙女墳)설화 雙女墳記<太平通載 卷68> 임명덕본, 한국한문소설전집, 권7,p.261. 국역은 김현양 외, <수이전 일문> (박이정, 1996) 을 참고하여 약간 부분..

kydong77.tistory.com

최치원설화/崔致遠傳

또는

쌍녀분(雙女墳)설화

雙女墳記<太平通載 卷68>

 

임명덕본, 한국한문소설전집, 권7,p.261.

국역은 김현양 외, <수이전 일문> (박이정, 1996) 을 참고하여 약간 부분 윤색하였다.

본문의 청색 글씨는 주석 부분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이 인귀교환설화는 금오신화 중 <만복사저포기>와 <이생규장전>의

모티프가 되었다.

 

최치원 [崔致遠]

857(문성왕 19)∼? . 신라 하대의 학자,·문장가.

 

[국역]최치원(崔致遠) 설화 /쌍녀분(雙女墳) 설화

최치원설화/해괴망측한 사랑 이야기

http://kydong77.tistory.com/8611

 

* 아래에서는 원문과 국역을 함께 정리해 본다.

 

崔致遠 字孤雲

최치원은 자가 고운이다.

 

年十二 西學於唐.

나이 열 두 살(서기 868년)에 서쪽으로 당나라에 유학을 갔다.

 

乾符甲午 學士裴瓚掌試 一擧登魁科 調授溧水縣尉.

건부 갑오년(서기 874년)에 학사 배찬이 관장하던 과거시험에서 장원급제하여

율수현의 현위에 임명되었다.

 

괴과:갑과에 장원으로 급제한 사람.

 

嘗遊縣南界招賢館

일찍이 현의 남쪽 경계에 있는 초현관에 놀러 간 적이 있었다.

 

館前岡有古塚 號雙女墳

초현관 앞 언덕에 오래된 무덤이 있어 쌍녀분이라 불렀다.

 

古今名賢遊覽之所.

고금의 명현들이 유람하던 곳이었다.

 

致遠題詩石門曰,

치원이 (그 무덤의) 석문에 시를 써서 붙였다.

 

誰家二女此遺墳

수가이녀차유분 어느 집 두 여인이 이 무덤을 남겼을까,

寂寂泉扃幾怨春

적적천경기원춘 쓸쓸한 구천에서 얼마나 봄을 원망하겠는가.

形影空留溪畔月

형영공류계반월 모습은 부질없이 시냇가의 달빛아래 머무는데,

姓名難問塚頭塵

성명난문총두진 먼지 덮인 무덤 앞에 이름조차 묻기가 어렵구나.

芳情儻許通幽夢

방정당허통유몽 꽃다운 정이 혹시라도 아련히 꿈에라도 이어진다면,

永夜何妨慰旅人

영야하방위려인 기나긴 밤 나그네 위로함이 무슨 허물이 되겠는가.

孤館若逢雲雨會

고관약봉운우회 외로운 이 초현관에서 운우의 정을 이룰 수 있다면,

與君繼賦洛川神

여군계부락천신 그대들과 함께 조식에 이어 낙천신을 노래 부르리라.

 

※ 洛川神: 魏나라 曺植이 甄后(견후)를 사모했는데 견후가 洛水에 투신했다.

견후가 꿈에 나타나 조식에게 베개를 주었다. 이에 조식은 洛神賦를 지었다.

 

題罷到館.

(최치원은) 글 쓰기를 마치고 관으로 돌아왔다.

 

是時月白風淸 杖藜徐步.

이 때 달은 밝고 바람이 시원하여 명아주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거닐었다.

 

忽覩一女 姿容綽約

갑자기 한 여인을 보았는데, 그 자태와 용모가 아름다웠다.

 

手操紅帒 就前曰,

손에는 붉은 주머니를 쥐고 곧장 앞으로 나와 말했다.

 

“八娘子 九娘子 傳語秀才.

“팔낭자와 구낭자는 수재에게 말을 전하라 하였습니다.

 

朝來特勞玉趾 兼賜瓊章 各有酬答 謹令奉呈.”

아침에 귀한 발걸음을 하시어 훌륭한 글을 주셨기에 각각 화답한 글이 있어 삼가 저로 하여금 바치도록 하였습니다.”

 

公回顧驚煌 再問何姓娘子.

공이 뒤를 돌아보며 놀라고 당황해서 다시 무슨 성씨의 낭자인가 물었다.

 

女曰, “朝間披榛拂石題詩處 卽二娘所居也.”

여인이 말했다.

“아침나절에 덤불을 헤치고 돌을 쓸어 시를 써 놓은 곳이 곧 두 낭자가 거처하는 곳입니다.”

 

公乃悟 見第一帒 是八娘子奉酬秀才.

공이 곧 깨닫고 첫 번째 주머니를 열어보니, 이는 팔낭자가 수재에게 화답한 글이었다.

 

其詞曰,

그 시에 적었다.

 

幽魂離恨寄孤墳

유혼이한기고분 그윽한 영혼과 이별의 한이 외로운 무덤에 묻혀 있어도,

桃臉柳眉猶帶春

도검유미유대춘 복숭아 빛 뺨과 버들 잎 눈썹은 아직도 봄날 같습니다.

鶴駕難尋三島路

학가난심삼도로 학을 타고 신선 사는 곳으로 가는 길은 찾기가 어려웠고,

鳳釵空墮九泉塵

봉차공타구천진 봉황이 그려진 비녀는 공연히 구천에 먼지로 떨어졌다네.

當時在世長羞客

당시재세장수객 당시 세상에 있었을 때는 언제나 낮선 사람보고 부끄러워했지만,

今日含嬌未識人

금일함교미식인 오늘은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도 사랑을 품게 되었답니다.

深愧詩詞知妾意

심괴시사지첩의 시로 하신 말씀이 부끄럽게도 제 마음 알아주시니,

一回延首一傷神

일회연수일상신 한 번씩 머리를 돌려 고개를 늘일 때마다 마음이 아프답니다.

 

次見第二帒 是九娘子 其詞曰,

다음으로 두 번째 주머니를 열어보니, 이는 구낭자의 것이었다.

그 시에 적었다.

 

往來誰顧路傍墳

왕래수고로방분 오가며 누가 길가의 무덤을 돌아보겠는가,

鸞鏡鴛衾盡惹塵

난경원금진야진 난새의 거울과 원앙의 이불 모두 먼지만 쌓여 있다네.

一死一生天上命

일사일생천상명 한번 죽고 한번 사는 일이 모두 하늘이 정한 운명인데,

花開花落世間春

화개화락세간춘 꽃이 피고 꽃이 지는 일은 이 세상 봄의 일이라네.

每希秦女能抛俗

매희진녀능포속 늘 진나라 여인 농옥처럼 속세를 버리기를 희망하였는데,

不學任姬愛媚人

불학임희애미인 임희처럼 사람 사랑하는 것을 배우지를 못했다오.

欲薦襄王雲雨夢

욕천양왕운우몽 모셔서 양왕처럼 운우의 꿈을 드리고자 하는데,

千思萬憶損精神

천사만억손정신 천가지 생각 만가지 추억이 마음만 상하게 합니다.

 

*농옥:진나라 목공의 딸 弄玉은 피리를 잘부는 소사라는 사내의 아내가 되었는데 어느 날 둘이는 하늘로 날아갔다. <열선전>

*임희:주나라 문왕의 어머니. 부덕이 높아 유교의 이상적 인물.

*송옥의 <고당부>

 

又書於後幅曰,

다시 그 뒤쪽에도 다음과 같이 써 있었다.

 

莫怪藏名姓

막괴장명성 이름과 성을 감춘 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마소서.

孤魂畏俗人

고혼외속인 외로운 넋이 속인을 두려워해서 입니다.

欲將心事說

욕장심사설 마음속에 묻어둔 이야기를 털어놓고자 하오니,

能許暫相親

능허잠상친 잠시라도 서로 친해질 수 있기를 허락해 주오.

 

公旣見芳詞 頗有喜色 乃問其女名字

曰, “翠襟.”

공이 아름다운 글을 다 보고 나서, 자못 기쁜 얼굴빛으로 그녀의 이름을 물었다.

“취금이라고 하옵니다.”

 

公悅而挑之 翠襟怒曰,

공이 기뻐하며 그녀를 유혹하려 하자, 취금이 성을 내어 말했다.

 

“秀才合與回書 空欲累人.”

“ 수재께서는 답장을 써서 주실 일이지, 부질없이 다른 사람에게 누를 끼치려 하십니까?”

 

致遠乃作詩 付翠襟曰,

치원이 곧 시를 지었다. 취금에게 부친 시는 다음과 같다.

 

偶把狂詞題古墳

우파광사제고분 우연히 미친 듯한 노래로 옛 무덤을 읊은 것이,

豈期仙女問風塵

기기선녀문풍진 어찌 선녀들이 풍진 세상에 찌든 사람의 일을 물으리라 기약했겠소.

翠襟猶帶瓊花艶

취금유대경화염 취금이 옥과 꽃 같은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으니,

紅袖應含玉樹春

홍수응함옥수춘 두 주인께서는 봄날의 아름다운 나무 빛을 머금고 있으리라.

偏隱姓名欺俗客

편은성명기속객 이름을 숨기고 속세의 나그네에게 시를 써서 보내는,

巧栽文字惱詩人

교재문자뇌시인 교묘한 문자를 보니 시인이 번뇌에 쌓이는구나.

斷腸唯願陪歡笑

단장유원배환소 애끊는 마음은 오직 웃고 즐기는 일 함께 하고자 하니,

祝禱千靈與萬神

축도천령여만신 모든 신령들에게 축원 올리고 기도 드립니다.

 

繼書末幅云,

이어서 끝 폭에다 시를 덧붙였다.

 

靑鳥無端報事由

청조무단보사유 청조가 뜻밖에도 사연을 알려주어,

暫時相憶淚雙流

잠시상억루쌍류 잠시동안 서로의 생각에 두 줄기 눈물 흘렸답니다.

今宵若不逢仙質

금소약불봉선질 오늘밤에 만약 선녀들의 모습을 만나지 못한다면,

判郤殘生入地求

판극잔생입지구 반드시 남은 생을 지하에 가서라도 찾아 볼 것입니다.

 

*청조: 세 발 달린 새. 使者 또는 서간의 듯으로 사용함.

 

翠襟得詩還 迅如颷逝.

취금이 시를 받아 돌아가는데, 바람처럼 사라졌다.

 

致遠獨立哀吟

치원은 홀로 서서 슬피 읊조리고 있었다.

 

久無來耗 乃詠短歌.

오랫동안 기다려도 오지 않아 짧은 노래를 지어 읊조렸다.

 

向畢 香氣忽來 良久二女齊至

읊기가 끝나갈 무렵 갑자기 향기가 엄습해오더니, 한참 뒤에 두 여인이 함께 나란히 나타났다.

 

正是一雙明玉 兩朶瑞蓮.

정말로 한 쌍의 밝은 옥이요, 두 줄기 서기 어린 연꽃과 같았다.

 

致遠驚喜如夢 拜云,

치원은 꿈인 듯 놀라 기뻐 절하며 말했다.

 

“致遠海島微生 風塵末吏

“치원은 바다건너 반도에서 태어난 미미한 사람이며, 보잘것없는 말단 관리인데,

 

豈其仙宮猥顧凡流

어찌 외람 되게 선녀들이 평범한 사람들을 돌아볼 것이라고 기대나 했겠습니까?

 

輒有戱言 便垂芳躅?”

문득 농담 삼아 한 말인데 아름다운 발걸음을 하셨군요.”

 

二女微笑無言.

두 여인은 말없이 미소지었다.

 

致遠作詩曰,

치원이 시를 지었다.

 

芳宵幸得暫相親

방소행득잠상친 아름다운 밤에 다행히 잠시라도 서로 친해졌는데,

何事無言對暮春

하사무언대모춘 무슨 일로 말없이 저무는 봄만 보며 마주하고 있는가.

將謂得知秦室婦

장위득지진실부 장차 진나라의 지조 있고 아름다운 여인인 줄 알았는데,

不知元是息夫人

부지원시식부인 원래가 식부인인줄은 알지 못했네.

 

*맥상상 [陌上桑]

나부행(羅敷行)이라고도 한다. 전국시대 조(趙)나라의 왕인(王仁)의 처 진나부(秦羅敷)가 지었다고 전한다. ‘맥상’은 원래 노상(路上)이라는 말인데, 뛰어난 미모를 지닌 나부가 뽕을 따러 나가면 지나가던 남자들이 정신을 잃고 바라보았다. 때마침 조왕(趙王)이 지나가다가 대상(臺上)에서 나부를 보고 첫눈에 반하여 유혹을 하였으나 그녀는 이를 거절하고 자기에게는 훌륭한 남편이 있다 하여 남편을 자랑하는 줄거리의 노래를 불렀다. 뽕 따는 여인의 건전한 마음씨를 나타낸 건강하고 명랑한 노래이다. 많은 유사작이 있다.

使君自有婦 나으리에겐 아내가 있고

羅敷自有夫 나부에게도 남편이 있소.

 

*王維 - 息夫人[식부인]

莫以今時寵

막이금시총 오늘날 특별한 사랑을 받는다 하여,

能忘舊日恩

능망구일은 지난날의 그 은덕을 잊을 수는 없어라.

看花滿眼淚

간화만안루 꽃을 보고도 두 눈 가득 눈물 흘리며,

不共楚王言

불공초왕언 초왕과는 말 한 마디 아니하였다네.

 

*息夫人;춘추시대의 한 작은 나라였던 식국(息國)의 군주부인, 당시 초나라 문왕이 식나라를 멸망시키고 식부인을 강제로 빼앗아 차지 하였으다. 아이를 두 명이나 낳았으나 초나라에 와 줄곧 문왕과는 말 한 마디 하지 않았다. 연유는 `한 사람의 여인으로서 두 지아비를 섬기니, 죽지는 못할지언정 어찌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라고 하여 지조와 절개를 지켰다는 고사.

 

於是 紫裙者恚曰,

이에 자주색 치마를 입은 여인이 화를 내며 말했다.

 

“始欲笑言 便蒙輕蔑

“처음에는 웃으면서 말하려 하였는데, 곧 경멸을 당했습니다.

 

息嬀曾從二壻 賤妾未事一夫.”

息嬀(식규)는 일찍 두 남자를 섬겼지만, 저희는 아직 한 남자도 섬기지 않았습니다.”

 

公言, “夫人不言 言必有中.” 二女皆笑.

공이 말하기를, “대체로 사람이 말을 못할지언정, 말을 하면 반드시 법도에 맞아야 한다.”라고 하니, 두 여인이 모두 웃었다.

 

致遠乃問曰, “娘子居在何方 族序是唯?”

치원이 곧 물었다. “낭자의 거처하는 곳은 어디이며, 집안은 어떻게 되는지요?”

 

紫裙者隕淚曰,

자주색 치마를 입은 여인이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

 

“兒與小妹 溧水縣 楚城鄕 張氏二女也.

“저와 언니는 율수현 초성향 장씨의 두 딸입니다.

 

先父不爲縣吏 獨占鄕豪 富似銅山 侈同金谷.

돌아가신 아버지께서는 현의 관리는 아니 하시고 세력을 독점한 지방 호족으로 부유하기로는 銅山(동산)과 같았고, 사치함은 金谷(금곡)과 같았습니다.

 

銅山(동산)

『장경』에는, <서촉(西蜀)에 있는 동산(銅山)이 붕괴되니, 한나라 동쪽의 미앙궁에 있던 종이 저절로 울렸다. 밤나무에 봄기운이 오르니, 창고 속에 넣어둔 밤에서 싹이 돋는다.(是以銅山西崩 靈鐘東應. 木華於春 粟芽於室〉라고 하였다.

종이 저절로 울리자, 황제가 동방삭(東方朔)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동방삭은,'이 종은 동산에서 캐낸 동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동질의 기가 서로 감응을 일으켜서 저절로 울린 것입니다.'라고 대답했고, 황제는 '미천한 물질도 서로 감응을 일으키는데 만물의 영장인 사람은 조상과 후손 사이에 얼마나 많은 감응을 일으킬 것인가!'라고 말하고, 또 봄이 되면 앙상하던 나뭇가지에서 새싹이 돋고, 창고에 저장했던 곡식도 봄이 되면 발아한다. 이것은 봄날의 따뜻한 기운에 감응을 일으키는 결과로 보아 조상과 후손이 서로 뼈의 기로써 감응받음을 인정하였다.

 

금곡원(金谷園) -석숭 [石崇 ]

석숭(石崇)은 매우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였는데, <진서(晉書)>와 <세설신어(世說新語)> 등에는 황제의 인척인 왕개(王愷)와 부를 다투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는 뤄양[洛陽] 서쪽에 금곡원(金谷園)을 지었는데, 집안을 매우 호화롭게 꾸며 뒷간도 화려한 옷을 입은 십여명의 시녀들이 화장품과 향수를 들고 접대하게 하여 손님들은 침실인 줄 알고 놀라 돌아올 정도였다고 한다. 그는 금곡원(金谷園)에 관리와 문인들을 초대하여 주연(酒宴)을 자주 열며 풍류를 즐겼는데, 주연(酒宴)에서 시를 짓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벌로 세 말의 술을 마시게 하였다고 한다. 이 고사에서 '금곡주수(金谷酒數)'라는 말은 '술자리에서 받는 벌주'를 가리키게 되었다.

석숭에게는 녹주(綠珠)라는 애첩(愛妾)이 있었는데, 피리를 잘 불 뿐 아니라 악부(樂府)도 잘 지었다. 그는 녹주를 총애하여 '원기루(苑綺樓)' 또는 '녹주루(綠珠樓)'라고 하는 백장(百丈) 높이의 누각을 지었다. 조왕(趙王) 사마륜(司馬倫, ?~301)의 측근이었던 손수(孫秀)가 녹주의 미색을 탐하였으나 석숭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300년(永康 원년) 조왕 사마륜이 가후(賈后)의 세력을 제거하고 전권을 장악하자, 석숭은 황문랑(黃門郞) 반악(潘岳)과 함께 회남왕(淮南王) 사마윤(司馬允, 272~300), 제왕(齊王) 사마경(司馬冏, ?~302) 등과 연합해 사마륜(司馬倫)을 제거하려 했다. 손수(孫秀)가 이를 알고 대군을 이끌고 금곡원(金谷園)을 포위하자, 녹주는 누각에서 몸을 던져 자살하였고, 석숭은 반악(潘岳) 등과 함께 사로잡혀 참수(斬首)되었다.

석숭은 관직을 이용해 향료 무역 등을 독점하여 큰 부자가 되었는데, 백여명의 처첩(妻妾)을 거느렸으며, 집안의 하인도 8백여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중국은 물론 한국 등 동아시아 지역에서 오랜 기간 동안 부자의 대명사처럼 여겨졌다. 중국에서 석숭은 복(福), 녹(祿), 수(壽)의 삼선(三仙)의 가운데 녹(祿)을 상징하는 인물로 숭앙되었다.

 

及姊年十八 妹年十六 父母論嫁

언니 나이 열 여덟, 저의 나이 열 여섯이 되었을 때 부모님께서는 혼사를 논의하셨습니다.

 

何奴則定婚鹽商 小妹則許嫁茗估.

저는 소금장수와 혼인을 하기로 정하고, 언니는 茶(차)장수와 혼인을 하기로 허락을 하였습니다.

 

姊妹每說移天 未滿于心 鬱結難伸 遽至夭亡.

저희 둘은 매번 이 이야기를 하면서 나날을 보내고 있었지만 마음에 차지 않아

답답하게 맺힌 것이 풀리지 않다가 갑자기 요절하게 되었습니다.

 

所冀仁賢 勿萌猜嬚.”

바라건대 어질고 현명한 분께서는 혐의를 두지 마시기 바랍니다.”

 

致遠曰, “玉音昭然 豈有猜慮?”

치원이 말했다. “그대의 말이 뚜렷한데 어찌 의심을 하겠는가.”

 

乃問二女,

“寄墳巳久 去館非遙 汝有英雄相遇 何以示現美談?”

그리고 두 여인에게 물었다.

“무덤에 있은 지가 오래고 초현관에서 멀지 않으니,

혹 영웅과 만났다면 어떻게 아름다움을 말하였는지요?”

 

紅袖者曰, “往來者皆是鄙夫. 今幸遇秀才

붉은 치마를 입은 여인이 말했다.

“오고 가는 사람들이 모두 저속한 자들이었는데, 오늘 다행히도 수재를 만나 뵈오니,

 

氣秀鼇山 可與話玄玄之理.”

그 기상이 金鼇山(금오산)같이 빼어나시어 함께 오묘한 진리를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致遠將進酒 謂二女曰, “不知 俗中之味 可獻物外之人乎?”

치원이 술을 권하며 두 여인에게 말하였다.

“세속의 맛을 세상 밖의 사람에게 드려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紫裙者曰, “不飡不飮 無飢無渴

자주색 치마를 입은 여인이 말하기를,

“먹지 않고 마시지 않아도 배고픔과 목마름이 없지만,

 

然幸接瓖姿 得逢瓊液 豈敢辭違?”

다행히 훌륭한 분을 만나 좋은 술을 얻었으니, 어찌 감히 사양하여 어기겠습니까?”

 

於是, 飮酒各賦詩 皆是淸絶不世之句.

이에 술을 마시고 시를 읊으니, 모두 더 없이 맑아 세속의 시 구절이 아니었다.

 

是時明月如晝 淸風似秋.

이 때는 달이 낮과 같이 밝았으며 바람은 시원하여 가을 같았다.

 

其姊改令曰, “便將月爲題 以風爲韻.”

그 언니가 노래를 바꾸자고 하며,

“달을 제목으로 하고 ‘바람 風(풍)’ 字를 韻(운)으로 합시다.” 하니,

 

於是, 致遠作起聯曰,

이에 치원이 첫 번 째 聯(련)을 읊었다.

 

金波滿目泛長空

금파만목범장공 금빛 물결은 눈에 가득 먼 하늘에 떠 있으니

千里愁心處處同

천리수심처처동 근심스런 마음은 천리 곳곳에 한결 같구나.

 

八娘曰,

팔낭자가 이었다.

 

輪影動無迷舊路

륜영동무미구로 달 그림자 움직여도 옛 길에 헤매지 않고,

桂花開不待春風

계화개불대춘풍 계수나무 꽃은 봄바람을 기다리지 않고도 피어난다.

 

九娘曰,

구낭자가 이었다.

 

圓輝漸皎三更外

원휘점교삼경외 달빛은 점점 삼경 무렵에 밝아 오니,

離思偏傷一望中

이사편상일망중 이별 생각으로 한번 바라봄에 자못 마음이 아프구나.

 

致遠曰,

치원이 뒤를 이었다.

 

練色舒詩分錦帳

연색서시분금장 비단 빛 달빛이 퍼질 때 비단 휘장에 골고루 비치며,

珪模暎處透珠櫳

규모영처투주롱 아름다운 나무(그림자) 비치는 것이 창문까지 스며드는구나.

 

八娘曰,

팔낭자가 이었다.

 

人間遠別腸堪斷

인간원별장감단 인간세상에서의 먼 이별이 애간장 끊는 듯하고,

泉下孤眠恨莫窮

천하고면한막궁 무덤에서 홀로 자는 잠의 한은 끝이 없어라.

 

九娘曰,

구낭자가 끝을 맺었다.

 

每羨嫦娥多計校

매선항아다계교 늘 항아의 꾀 많음을 부러워하고,

能抛香閣到仙宮

능포향각도선궁 규방을 버리고 달나라로 간 것을 부러워한다네.

 

*상아 [嫦娥 ]

항아(姮娥)·상희(嫦羲)라고도 한다. 《산해경(山海經)》에 의하면, 제준(帝俊)의 아내인 상희가 달덩이 같은 알 12개를 낳고 대황(大荒)의 일월산(日月山) 골짜기에서 목욕을 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여기서 제준은 곧 태양신을 말한다. 《회남자(淮南子)》에는 서왕모(西王母)로부터 불사약을 구해온 예(羿)에게서, 항아가 그 불사약을 훔쳐 달로 달아나 섬여(두꺼비)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 항아가 예의 아내가 되어 있다. 《초사(楚辭)》 등에는 두꺼비가 아니고 토끼가 되었다고 쓰고 있다.

이 상아 설화는 서왕모가 신선화(神仙化)하면서 발전하여 달 속에 계수나무가 있고 토끼가 약(떡방아)을 찧는다는 등, 여러 모양으로 변천하였다. 이것은 다시 발전하여 많은 신선사상을 낳게 되었고, 그 사상이 도교(道敎)에 받아들여져 굳혀지기에 이르러, 중국미술에서도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公嘆訝尤甚 乃曰,

공은 더욱 감탄하여 위로하면서 말했다.

 

“此時無笙歌秦於前 能事未能畢矣.”

“이런 때에 앞에서생황을 연주하면서 노래가 없다면, 이 좋은 일도 마쳤다고 할 수는 없겠지요.”

 

於是 紅袖乃顧婢翠襟而謂致遠曰,

이에 붉은 치마를 입은 여인이 여종 취금을 돌아보면서 치원에게 말했다.

 

“絲不如竹 竹不如肉 此婢善歌.”

“현악기는 관악기보다는 못하며, 관악기는 육성보다 못한데, 이 아이는 노래를 잘합니다.”

 

乃命訴哀情詞.

곧 마음에 하소연하는 정다운 노래를 부르라고 하였다.

 

翠襟歛袵一歌 淸雅絶世

취금이 옷깃을 여미고 한번 노래를 부르니 그 소리의 맑고 우아함이 세상에 다시 없었다.

 

於是 三人半酣 致遠乃挑二女曰,

세 사람이 반쯤 취하였을 때, 치원이 두 여인을 유혹하며 말했다.

 

“嘗聞盧充逐獵 忽遇良姻 阮肇尋仙 得逢嘉配

“일찍이 들으니 노충은 사냥을 갔다가 뜻밖에 좋은 인연을 만났으며,

완조는 신선을 찾아 나섰다가 아름다운 배필을 만났다 하는데,

 

*노충 http://kr.blog.yahoo.com/ez.magnetar/286

범양 사람. 최소부의 무덤 가에서 사냥하다가 최소부의 딸을 만나 아들을 얻음.

 

*완조 후한대 사람. 영평년간에 유신과 더불어 약을 캐러 가서 두 여인을 만나 하룻밤 자고 돌아오니 집에는 7대 후손이 살고 있었다.

 

芳情若許 姻好可成.”

아리따운 마음씨로 허락을 한다면 좋은 인연을 만들고 싶습니다.”

 

二女皆諾曰,

두 여인은 모두 승낙하였다.

 

“虞帝爲君 雙雙在御 周良作將 兩兩相隨

“우임금이 임금이 되었을 때 두 여인이 곁에서 모셨으며,

주유가 장군이 되었을 때 두 여인이 따랐으니,

 

彼昔猶然 今胡不爾?”

저들은 옛날에도 그러했는데 지금이라고 어찌 못하리요?”

 

致遠喜出望外 乃相與排三淨枕 展一新衿

치원은 뜻밖에 기뻐 뛰면서, 곧 세 개의 깨끗한 베개를 나란히 놓고

새 이불 한 채를 펴고

 

三人同衿 繾綣之情 不可具談

세 사람이 함께 누우니, 곡진하고 정다운 정을 이루 다 말할 수 없었다.

 

致遠戲二女曰,

치원이 두 여인을 희롱하였다.

 

“不向閨中作黃公之子婿 翻來塚則夾陳氏之女奴

“규방에서 황공의 사위가 되지는 못하고,

도리어 무덤 가에서 진씨의 여종을 안게 되었으니,

 

未測何緣得逢此會?”

무슨 인연으로 이렇게 만났는지 모르겠습니다.”

 

*춘추시대 제나라 황공의 두 딸은 절색이었으나 아비가 겸사로 못났다고 말해왔는데 위나라의 한 홀아비가 평판을 무시하고 장가들었다.

*선화부인:陳나라 선제의 딸로 용모가 몹시 아름다워 수문제의 궁빈이 되어 선화부인의 호칭을 받았다. 문제가 죽자 태자 광에게 욕을 당하고 29세에 죽었다.

 

女兄作詩曰,

언니가 시를 지었다.

 

聞語知君不是賢

문어지군불시현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대는 어진 사람이 아님을 알았으니,

應緣慣與女奴眠

응연관여여노면 마땅히 여자 종과 잠자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弟應聲續尾曰,

동생이 뒷구를 이었다.

 

無端嫁得風狂漢

무단가득풍광한 괜시리 바람둥이에게 시집을 갔다가,

强被輕言辱地仙

강피경언욕지선 경솔한 말로써 지상의 신선을 억지로 욕보이는구나.

 

公答爲詩曰,

공이 답하여 시를 지었다.

 

五百年來始遇賢

오백년래시우현 오백 년 만에 비로소 어진 이를 만나서,

且歎今夜得雙眠

차탄금야득쌍면 또한 오늘밤에 함께 한 잠자리가 즐거웠다오.

芳心莫怪親狂客

방심막괴친광객 꽃다운 마음씨로 바람둥이와 잠자리한 것을 이상하게 생각 마오.

曾向春風占謫仙

증향춘풍점적선 일찍이 봄바람 만나서 귀양온 신선이 된 것이라오.

 

*적선:당나라 이태백.

 

小頃 月落鷄鳴.

잠시 뒤, 달이 지고 닭이 울었다.

 

二女皆驚 謂公曰,

두 여인이 함께 놀라며, 공에게 말했다.

 

“樂極悲來 離長會促

“즐거움이 다하면 슬픔이 오고, 이별은 길고 만남은 짧습니다.

 

是人世貴賤同傷

이것은 사람 사는 세상에서 귀하거나 천하거나 모두 마음 아파하는 것입니다.

 

況乃存沒異途 升沈殊路 每慚白晝 虛擲芳時

하물며 생사의 길이 다르고 이승과 저승의 길이 달라

늘 밝은 대낮을 부끄러워하여 헛되이 아름다운 시절을 보내었습니다.

 

只應拜一夜之歡 從此作千年之恨

다만 하룻밤의 즐김을 누린 것이 이제는 천년의 한이 됩니다.

 

始喜同衾之有幸 遽磋破鏡之無期.”

처음에는 함께 잠자리에 든 것을 기뻐하였지만,

갑자기 기약 없는 이별을 슬퍼하게 되었습니다.”

 

二女各贈詩曰,

두 여인이 각각 시를 지어 주었다.

 

星斗初回更漏闌

성두초회경루란 북두칠성이 처음으로 돌아가고 물시계의 물도 다 떨어졌는데,

欲言離緖淚闌干

욕언이서루란간 이별의 말을 전하고자 하니 눈물이 펑펑 쏟아집니다.

從玆便結千年恨

종자편결천년한 이제부터 천년의 한이 맺힐 것이니,

無計重尋五夜歎

무계중심오야탄 이슥한 밤의 즐거움 다시 찾을 일이 없습니다.

 

又曰,

다른 시는 다음과 같다.

 

斜月照窓紅臉冷

사월조창홍검냉 기운 달빛 창에 비치니 불그레하던 뺨도 차가워지고,

曉風颷袖翠眉攢

효풍표수취미찬 새벽바람 소매를 날리니 푸른 눈썹이 찡그려집니다.

辭君步步偏腸斷

사군보보편장단 그대를 이별하면 내딛는 걸음걸음 애간장 끊어지고,

雨散雲歸入夢難

우산운귀입몽난 비는 흩어지고 구름은 돌아가니 잠들기도 어렵습니다.

 

致遠見詩 不覺垂淚.

二女謂致遠曰,

치원이 시를 보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눈물을 흘리니,

두 여인이 치원에게 말했다.

 

“倘或他時 重經此處 修掃荒塚.”

“만약 혹시라도 다른 날에 이 곳을 다시 지나게 되면

우거진 무덤을 닦고 쓸어 주십시오.”

 

言訖卽滅.

말을 마치자마자 곧 사라졌다.

 

明旦, 致遠歸塚邊 彷徨嘯咏 感嘆尤甚.

이튿날 아침, 치원은 무덤가에 가서 왔다 갔다 하며 시를 읊조리면서 매우 감탄해마지 않았다.

 

作長歌自慰曰,

긴 노래를 지어 스스로를 위로했다.

 

草暗鹿昏雙女墳

초암록혼쌍녀분 풀이 우거지고 먼지가 쌓인 두 여인의 무덤에,

古來名迹竟誰聞

고래명적경수문 예로부터 이름난 자취를 누가 들었을까?

唯傷廣野千秋月

유상광야천추월 다만 텅 빈 들판 오랜 세월의 달빛에 마음 아픈데

空鎖巫山兩片雲

공쇄무산양편운 부질없이 무산에는 구름 두어 조각이 가리었네.

自恨雄才爲遠吏

자한웅재위원리 큰 재주 지닌 내가 먼 지방의 관리되어 한이더니,

偶來孤舘尋幽遼

우래고관심유료 우연히 외로운 초현관에 왔다가 깊숙한 곳에 있는 쌍녀분 찾았네.

戲將詞句向門題

희장사구향문제 장난삼아 시를 써서 석문에 써 놓았더니,

感得仙姿侵夜至

감득선자침야지 감동한 선녀들이 밤을 틈타 왔었네.

紅錦袖, 紫羅裙

홍금수, 자라군 붉은 비단 소매와 자주색 치마를 입은 두 여인이,

坐來蘭麝逼人薰

좌래란사핍인훈 앉아 있으니, 난초와 사향의 향기가 사람 가까이 풍겨오는구나.

翠眉丹頰皆超俗

취미단협개초속 푸른 눈썹, 붉은 뺨은 모두 속세를 벗어났고,

飮態詩情又出群

음태시정우출군 술 마시는 모습과 시를 읊는 모습은 신선 가운데서도 빼어났다네.

對殘花, 傾美酒

대잔화, 경미주 지는 꽃을 마주 대하여 좋은 술을 기울이고,

雙雙妙舞呈纖手

쌍쌍묘무정섬수 두 여인의 절묘한 춤으로 가녀린 아름다운 손을 내보이네.

狂心已亂不知羞

광심이란불지수 미친 듯한 마음은 이미 혼란스러워 부끄러움 알지 못하고,

芳意試看相許否

방의시간상허부 꽃다운 정을 허락할지 말지 시험하여 보았네.

美人顔色久低迷

미인안색구저미 미인들의 얼굴빛은 오랫동안 땅속에서 헤매다가,

半含笑態半含啼

반함소태반함제 반쯤은 웃음을 머금고 반쯤은 울음을 머금고,

面熱自然心似火

면열자연심사화 얼굴이 익어 자연스럽게 그 마음은 불과 같고,

臉紅寧假醉如泥

검홍영가취여니 뺨은 붉어 취한 듯 붉은 진흙 같구나.

歌艶詞, 打懽合

가염사, 타환합 아름다운 가사로 노래하고 즐거움이 합치되니,

芳宵良會應前定

방소양회응전정 아름다운 밤, 좋은 만남은 이미 정해진 것이었네.

纔聞謝女啓淸談

재문사녀계청담 잠시 謝女(사녀)가 맑은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듣고서,

又見班姬抽雅詠

우견반희추아영 또한 班姬(반희)가 우아한 시를 읊조리고 펼치는 것을 보았다네.

情深意密始求親

정심의밀시구친 정은 깊어지고 뜻은 가까워져서 비로소 친하기를 바랐으니,

正是艶陽桃李辰

정시염양도리진 정녕 이때는 늦봄의 복숭아와 자두 꽃 필 때이다.

明月倍添衾枕恩

명월배첨금침은 밝은 달빛은 은총이 깃든 이불과 베개에 배로 더하고,

香風偏惹綺羅身

향풍편야기라신 향기로운 바람은 자못 비단 옷 입은 사람에게 불어오네.

綺羅身, 衾枕恩

기라신, 금침은 비단 옷 입은 사람의 이불과 베개에 스며든 은혜는

幽懽未已離愁至

유환미이리수지 그윽한 즐거움이 끝나기도 전에 이별의 슬픔에 이르렀네.

數聲餘歌斷孤魂

수성여가단고혼 몇 갈래의 소리, 남아있는 노래가 외로운 혼령의 애간장을 끊고,

一點殘燈照雙淚

일점잔등조쌍루 한 점 희미한 등불은 두 줄기 눈물을 비추는구나.

曉天鸞鶴各西東

효천난학각서동 새벽 하늘의 난새와 학은 각각 동서로 날아가고,

獨坐思量疑夢中

독좌사량의몽중 홀로 앉아 생각하니 아마도 꿈속인 듯 하여라.

沉思疑夢又非夢

침사의몽우비몽 고요히 생각하니 꿈인 듯 하나 꿈은 아니고,

愁對朝雲歸碧空

수대조운귀벽공 수심 속에 푸른 하늘 날아가는 아침구름 쳐다보네.

馬長嘶, 望行路

마장시, 망행로 말은 길게 울면서 갈 길을 바라보고 있는데,

狂生猶再尋遺墓

광생유재심유묘 얼빠진 이 사람은 오히려 다시 남겨진 무덤을 찾아가고.

不逢羅襪步芳塵

불봉라말보방진 비단 버선에 꽃 먼지 밟고 오는 것을 만나지 못하고,

但見花枝泣朝露

단견화지읍조로 다만 꽃나무 가지에 맺혀있는 아침 이슬보고 운다네.

腸欲斷, 首頻回

장욕단, 수빈회 애간장은 끊어질 듯하여 머리 자주 돌려보나,

泉戶寂寥誰爲開

천호적요수위개 쓸쓸한 무덤을 누가 열어 젖혀 줄 것인가?

頓轡望時無限淚

돈비망시무한루 말고삐를 부여잡고 바라보면 끝없이 흐르는 눈물.

垂鞭吟處有餘哀

수편음처유여애 말채찍을 드리우고 읊조리는 시에는 슬픔만 남아 있구나.

暮春風, 暮春日

모춘풍, 모춘일 늦은 봄바람이여, 늦은 봄의 햇살이여,

柳花撩亂迎風疾

유화료란영풍질 버들강아지 바람에 어지럽게 흩날려 흩어지네.

常將旅思怨韶光

상장여사원소광 항상 봄빛을 원망하는 나그네 생각인데,

況是離情念芳質

황시리정염방질 하물며 이별의 정으로 아름다운 선녀를 생각함에 있어 서랴.

人間事, 愁殺人

인간사, 수살인 인간 세상에서 느끼는 근심은 몹시도 사람을 근심스럽게 하니,

始聞達路又迷津

시문달로우미진 비로소 나루터로 가는 길을 잃어버렸구나.

草沒銅臺千古恨

초몰동대천고한 풀은 동대에 우거져 천고의 한이 되고,

花開金谷一朝春

화개금곡일조춘 꽃이 金谷園(금곡원)에서 피는 일도 하루 아침의 짧은 봄이라네.

阮肇劉晨是凡物

완조유신시범물 완조와 유신도 평범한 사람이요,

秦皇漢帝非仙骨

진황한제비선골 진시황과 한 무제도 신선의 골격은 아니라네.

當時嘉會杳難追

당시가회묘난추 당시의 아름다운 만남은 아득하여 따라할 수 없고,

後代遺名徒可悲

후대유명도가비 후대에 이름만 남기니 다만 슬프기만 하구나.

悠然來, 忽然去

유연래, 홀연거 아득히 왔다가 갑자기 가버리니,

是知風雨無常主

시지풍우무상주 비 내리고 바람 부는 일이 일정한 주인이 없음을 알았노라.

我來此地逢雙女

아래차지봉쌍녀 내가 여기에 와서 두 여인을 만난 것은,

遙似襄王夢雲雨

요사양왕몽운우 아마도 양왕이 무산 선녀를 꿈꾼 것과 같다네.

大丈夫! 大丈夫!

대장부! 대장부! 대장부여! 대장부여!

壯氣須除兒女恨

장기수제아녀한 씩씩한 기상으로 아녀자의 한을 풀어 주기는 했지만,

莫將心事戀妖狐

막장심사연요호 마음의 일로 요사스러운 여우를 그리워하지는 말지어다.

 

後致遠擢第東還 路上歌詩云,

뒷날 치원이 과거에 급제하고 우리나라로 돌아오는 길에서 시로 노래했다.

 

浮世榮華夢中夢

부세영화몽중몽 들뜬 세상의 영화는 꿈속의 꿈일지니,

白雲深處好安身

백운심처호안신 흰 구름 깊은 곳에서 내 한 몸 편안하게 하리라.

 

乃退而長往

곧 물러나서 속세를 떠나 은둔하였다.

 

尋僧於山林江海 結小齊 尋石臺

산과 숲, 강과 바다로 스님을 찾아가서 작은 집을 짓고, 석대를 찾고,

 

耽玩文書 嘯咏風月 逍遙偃仰於其間.

서적을 탐독하고, 풍월을 읊으며, 그 사이에서 소요하고 기거하였다.

 

南山 淸凉寺 合浦縣 月影臺 智異山雙溪寺 石南寺 黑泉石臺

남산 청량사, 합포현 월영대, 지리산 쌍계사, 석남사, 흑천석대에

 

鍾牧丹 至今猶存 皆其遊歷也.

모란을 심은 것이 지금까지도 남아 있으니, 모두 그가 노닐고 거쳐간 곳이다.

 

最後隱於伽耶山海印寺 與兄大德賢俊․南岳師定玄 探賾經論

마지막에는 가야산 해인사에 은거하여 그의 형인 현준과 남악 ․ 정현 등의 스님들과 경론을 자세하게 탐구하였으며,

 

遊心沖漠 以終老焉.

마음은 깊고 넓은 곳을 노닐다가 늙어 생을 마쳤다.

출처: https://kydong77.tistory.com/14011 [김영동교수의 고전& life]

 

https://www.youtube.com/watch?v=noLoi5ufGrM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