랑혜화상탑비

http://blog.daum.net/yspum6022/15689161

번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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藍浦 聖住寺 朗慧和尙 白月葆光塔碑銘

無染和尙碑銘 竝序奉敎撰下同

 

大朗慧和尙白月葆光塔碑 (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명& 서문)

 

신라국(新羅國) 고(故) 양조국사(兩朝國師) 고교시대낭혜화상(故敎諡大朗慧和尙) 백월보광탑비명(白月葆光塔碑銘) 및 서문(序文)회남(淮南)에서 본국으로 들어와 (天子의) 국신(國信)과 조서(詔書) 등을 바친 사인(使人)이며 동면도통순관(東面都統巡官), 승무랑(承務郞), 시어사(侍御使), 내공봉(內供奉)을 지냈으며 자금어대(紫金魚袋)를 하사받은, 신(臣) 최치원(崔致遠)이 왕명을 받들어 지음.

 

帝唐

[呂氏春秋云 帝者 天下之所適 王者 天下之所往 卽僖宗皇帝也]

당(唐)나라가

 

揃亂以武功

[揃 音前 滅也 左傳云 揃賊而後朝食 言乾符戊戍濮賊王仙芝作亂

黃巢應之 高騈李克用等滅之]

무공(武功)으로 (黃巢의) 난을 평정하고

 

易元以文德之年

[景文王女子眞聖王 諱曼之二年 戊申]

연호를 ‘문덕(文德)’으로 고친 해(888년)

 

暢月

[暢月 卽十一月 禮月令曰仲冬 命之曰 暢月言萬物皆充於內 註 暢 充也]

月缺之七日

11월 17일

 

日蘸咸池時

[蘸 古潛字 咸 日入處也]

해가 질 무렵,

 

海東兩朝

[景文王 獻康王]

신라(新羅 : 海東)의 두 임금에 걸쳐서

 

國師禪和尙

[此 云親敎]

국사(國師)를 지내셨던 선승(禪僧) (朗慧)화상(和尙)께서

 

盥浴已 趺坐示滅

[年譜云 大師滅度 卽唐僖宗 文德元年 當新羅景文王女子眞聖王 諱曼之二年 戊申十一 月十七日也 自十六日爲月缺之日 卽月缺之七日當爲二十一日 而此云十七日不可詳也]

목욕을 마치신 후

가부좌를 하신 채 돌아가셨다.

 

國中人如喪左右目

矧門下諸弟子乎

나라 안의 사람들이 슬퍼함이

마치 두 눈을 잃을 정도로 심하였는데

하물며 그 문하의 제자들의 심정은 어떠했겠는가.

 

嗚呼 應東身者八十九春

[師生於貞元十七年辛巳十二月二十八日午時 卽新羅哀莊王二年

自德宗辛巳 至僖宗戊申 年八十九年也 出家於憲宗元和八年 卽新羅宣德王五年 年十二也

文宗太和元年丁未三月十五日於京都慧善寺惠照太師處 受具足戒 年二十四也 二十四 當改以二十七 以此計之 則報年八十八也 又大師沒年 卽唐僖宗文德元年 故服戒者當六二年也]

아아! 이 땅에 태어나신 지 89년이 되었고,

[승복을 입으신 지는 65년이 되었다. ]

 

去世三日

倚繩座儼然 面如生

돌아가신지 3일이 지나도

자리에 단정히 앉은 그대로였고,

얼굴 모습도 살아 계신 것 같았다.

 

門人詢乂等 號奉遺體

문인(門人)인 순예(詢乂) 등이

소리내어 울며 유체(遺體)를 받들어

 

假肂

[肂 音異 殯坎也 釋名假葬于道側曰肂 禮喪大記曰 士殯見袵塗上

註 掘肂以容棺 肂猶坎也 棺在肂中 不沒其蓋云云也]

禪室中

선실(禪室)에 임시로 모셔 두었다.

 

[眞聖主 文考女康王妹]

聞之震悼

使駛 [馬行疾也 卽驛使也]

弔以書

임금께서 이 소식을 들으시고

크게 슬퍼하시며

사자(使者)를 보내어

글월로 조문(弔問)하시고,

 

賻以穀 所以資淨供 而贍玄福

곡식으로 부의(賻儀)하여 (葬禮의) 공양(供養)에 보탬으로써

죽은 분의 명복(冥福)을 빌고자 하셨다.

 

越二年

이로부터 2년이 지나서

 

攻[治也]石封層冡[塔也]

聲聞王京 [慶州也]

돌을 다듬어 여러 층 되는 (스님의) 부도(浮圖)를 만들었는데

이 말이 서울[경주]에까지 들리게 되었다.

 

菩薩戒弟子

武州 [今之光州]

都督蘇判

[新羅官儀云 級爵 波珍飧三級爵 遏粲四級爵 蘇判五級爵也]

보살계(菩薩戒)를 받은, (스님의) 제자이면서

무주도독(武州都督)으로 소판(蘇判)인 (金)일(鎰)과

 

執事侍郎 [卽今參議] 寬柔

집사시랑(執事侍郞)인 (金)관유(寬柔),

 

浿江 [平壤大同江也] 都護 咸雄

패강진도호(浿江鎭都護)인 (金)함웅(咸雄),

 

全州別駕

[漢制 別駕從事吏一人 刺史行部 別乘一乘傳車 故衛曰別駕 亦判官也]

英雄 皆王孫也

[此四人皆金姓]

전주별가(全州別駕)인 (金)영웅(英雄) 등은 모두 왕족으로

 

維城輔君德

[左傳曰 懷德維寧 宗子維城 君修德而固宗子 何城如之此 師曠對晉侯之言

詩云 介人維藩 大師維垣 大邦維屛 大宗維翰 懷德維寧 宗子維城 無俾懷城 無獨斯畏也 宗子同姓也]

임금님의 덕을 훌륭히 보필하면서

 

險道

[卽惡道也 以受戒 力免三途也]

賴師恩

[智度論云 諸險道中戒爲橋梁 案 四人依師受戒故云 賴師恩而度險道也]

어려운 일이 있을 때에는

스님의 은혜를 입곤하여서

 

何必出家 然後入室

[升堂入室之義也 雖未僧而可以爲朗慧弟子]

하필이면 출가한

연후라야 제자가 되겠는가?

[비록 출가(出家)는 하지 않았지만

가까운 제자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

 

遂與門人昭玄

[卽昭玄精署 住持律法之司也]

그러므로 마침내 (스님의) 문인(門人)인 소현대덕(昭玄大德),

 

大德釋通賢 四天王寺 [在慶州狼山南麓] 上座

[五分律云 上更無人名上座 毗尼毌論云 從無夏至九夏是下座 自十夏至十九夏是中座 自二十夏至四十夏是上座 五十夏已上 一切沙門之所尊敬故名耆宿也]

釋愼符 議曰

석통현(釋通賢), 사천왕사(四天王寺) 상좌(上座) 인

석신부(釋愼符) 등과 함께 의논하기를,

 

師云亡 君爲慟

“스님이 돌아가셔서 임금께서도 슬퍼하셨는데

 

奈何吾儕忍灰心木舌

[韻府羣玉云 鐸大鈴也 軍法司馬執 鐸金口木舌 文事振木鐸 武事振金鐸

案 灰心 莊子云 心如死灰 言不起心也 木舌 羣玉云 金口木舌

雖未見制度 以木爲舌則其無屈申作用可知 抑取此義而引用耶

蓋木字猶木强木訥之類 應取剛不柔之義 言不開口也]

어찌 우리들은 풀이 죽은 채 아무 말 없이

 

缺緣飾在三之義乎

[君師父三也 禮記曰 生三事一 國語 欒子曰 人生於三

事之如一 父生之 師敎之 君食之 ○ 崔鴻後秦錄姚泓曰 在三之義 不可不重]

스승에 대한 의리를 빠뜨릴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迺白黑相應

請贈諡曁 銘垥

그리하여 승(僧)·속(俗)이 함께

(대사에게) 시호를 내려줄 것과 탑의 명(銘)을 지어줄 것을 (왕에게) 청하였다.

 

敎曰可

이에 왕께서는 옳다고 여기시고,

 

旋命王孫夏官

[說文天官今吏部 地官今戶部 春官今禮部 夏官今兵部 秋官今刑部 冬官今工部

若以次言 則吏部立於東班之首 兵部立於西班之首 先東後西 爲第二也]

二卿

[第二卿 卽兵部之二卿 如今參判爲判書之亞卿故也]

禹珪 [姓 金也]

곧 왕족인 병부시랑(兵部侍郞 : 夏官二卿)인 (金)우규(禹珪)를 시켜

 

召桂苑 [翰林苑也] 行人

[行人 周禮 大行人小行人 卽今通事舍人]

侍御史崔致遠

중국에서 사신으로 온 시어사(侍御使) 최치원(崔致遠)을 부르셨다.

 

至蓬萊宮

[眞聖王所居宮]

(최치원이) 왕궁에 이르러

 

因得並 [並與傍通] 琪樹 [宮廷列植之華樹]

上瑤墀

跽俟命珠箔外

사람을 따라 계단을 오른 뒤,

주렴(珠簾) 밖에 꿇어 앉아 명령을 기다렸다.

 

上曰

故聖住大師

眞一佛出世

[事文云 唐太宗撥亂 行仁德 一佛出世也]

임금께서 말씀하시기를,

“돌아가신 성주대사(聖住大師)는

참으로 부처님이 세상에 나신 것과 같은 분이셨다.

 

昔文考 [景文王也]

康王 [獻康王也]

咸師事 福國家爲日久

전에 나의 부왕(父王 : 景文王)과 헌강왕(憲(獻)康王)

모두 스승으로 섬기셔서,

오랫동안 나라에 이로움을 주셨다.

 

余始克纘承

願繼餘 [當改以余字] 先志

나도 왕이 되어서는

선왕들의 뜻을 이으려 하였으나,

 

而天不憖遺

[憖 音銀 强也 詩小雅 天不憖遺一老 俾守我王 註 憖者 心不欲 自能强之 辭倦而勉强也 言皇天不自强留一人 而輔天子也]

하늘은 (그런 분을) 남겨주지 않았다.

 

益用悼厥心

이에 나의 마음이 더욱 애달프다.

 

余以有大行者 授大名

생각컨대 큰 일을 한 사람에게는 큰 이름을 주어야 하므로

 

故追諡曰大朗慧

塔曰白月葆光

[莊子齊物論曰 注焉而不滿 酌焉而不竭而不知其所由來 此之謂葆光]

시호를 ‘대낭혜(大朗慧)’,

탑의 이름을 ‘백월보광(白月葆光)’이라고 하노라.

 

嘗西宦 絲染錦歸

[孤雲傳云 巫峽重峯之年 銀河列宿之歲 錦還東國 言巫峽有十二峯

比十二入 銀河有二十八宿 比二十八還 中孚子謂予曰 茶山翁云

年歲二字相換 則腰簾末簾 始合 如此覺非 當代無雙 贊之不已]

그대는 일찍이 중국에 가서 벼슬하고

이제 출세하여 고국에 돌아왔다.

 

顧文考選國子 命學之

[選入國學以受學]

전에 나의 부왕께서 (그대를) 국자(國子)로 뽑아 공부하게 하였고,

 

康王視國士 禮待之

헌강왕(憲(獻)康王)께서는 (그대를) 국사(國士)로써 대우하였으니,

 

若 [汝也] 宜銘國師以報之

[報先王待汝不德也]

그대는 마땅히 국사(國師)의 명(銘)을 지어서

그 은혜에 보답해야 할 것이다.” 라고 하셨다.

 

謝曰

(치원은) 사양하여 말하기를,

 

主臣

 [主擊臣伏 惶恐之貌 見史記註]

“소신은 황공하옵게도

 

殿下恕粟饒浮秕

念桂飽餘馨

[粟桂二句皆孤雲自謙辭也]

전하께서 저의 글이 벼에 알맹이는 없으면서 쭉정이만 많고,

계수나무에 향기만 있듯 실속이 없음을 용서하시고,

 

俾報德以文 固多天幸

글을 지어 은혜에 보답하라 하시니

진실로 뜻밖의 행운이옵니다.

 

第大師 於有爲澆世 演無爲秘宗

다만 대사(大師)께서는

유위(有爲)의 세상에서

무위(無爲)의 신비한 가르침을 널리 펴셨는데,

 

小臣以有限麽才 [麽 卽幺麽 細小也]

紀無限景行 [景 大也]

소신(小臣)의 한계가 있는 하찮은 재주로써

그 끝없이 큰 행실을 기록하려 한다면

 

弱轅載重

短綆汲深

[莊子云 褚小者 不可以懷大 綆短者 不可以汲深 褚者布袋 言小不任大]

약한 수레에 무거운 짐을 싣고,

짧은 두레박으로 깊은 우물의 물을 긷고자 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其或石有異言

[左傳 昭公八年 石言于晉魏楡

晉侯問於師曠曰 石何故言 石不能言 或憑焉 不然 民聽濫也

抑臣又聞之 曰 作事不時 怨讟動于民 則非言之物言 而今宮室崇侈

民力彫盡 怨讟並作 莫保其性 石言不亦宜乎]

행여 돌이 상서롭지 못한 말을 하거나,

 

龜無善顧

[世說云 孔愉嘗至吳興縣餘干亭 見人籠龜於道 愉求買 放之於溪中 龜行至水

反顧愉 及封此亭侯 而鑄印 龜首回顧 三鑄不正 有似昔龜之顧

靈德之感如此 愉悟 乃取而佩焉]

거북이 돌아보는 신조(神助)가 없으면

 

決叵使山輝川媚

[陸機文賦云 石蘊玉而山輝 水懷珠而川媚也]

결코 산과 시내가 빛을 발하지 못하고

 

反贏得林慙澗愧

[北山移文云 林慚無盡 澗愧不歇 註云 非林澗之愧 是乃周彦倫之愧也]

오히려 숲과 골짜기의 물에 부끄럽게 될 것입니다.

 

請筆路斯避

부디 글짓는 것을 피하게 하여 주십시오”라고 하였다.

 

上曰 好讓也 蓋吾國風 善則善已

임금께서는

“사양을 좋아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풍속으로 매우 좋은 것이다.

 

然苟不能是 [碑也]

惡用黃金牓爲

[古制 龍榜 飾以金 虎榜銀 先生以文登第 故曰金榜]

그러나 정말로 이런 일을 할 수 없다면

(중국의 과거에) 급제한 것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爾勉之

[縱欲辭避 不可得也]

그대는 힘써 행하라”라고 말씀하면서

 

遽出書一編 大如椽者

俾中涓[官名宦官]

授受 乃門弟子所獻狀也

크기가 방망이만한 두루마리를 하나 꺼내어

내시로 하여금 전해주었는데

곧 (대사의) 문하 제자들이 올린 (대사의) 행장(行狀)이었다.

 

復惟之 西學也 彼此俱爲之

[入中國受學謂西學 不必指佛法也 心口 亦不必配禪敎]

다시 생각해 보건데 중국에 유학한 것은

대사와 내가 같이 한 것인데,

 

而爲師者何人 爲役者

[爲師執筆者 卽孤雲自身也]

何人

스승이 되는 사람은 어떠한 사람이고,

그를 위하여 일을 해야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란 말인가.

 

豈心學者高 口學者勞耶

故古之君子愼所學

어찌하여 마음을 공부하는 사람은 높고,

문장을 공부하는 사람은 (그를 위하여) 수고하여야 하는가.

그래서 옛날의 군자들이 배우는 것을 삼가했던 것인가.

 

抑心學者立德 口學者立言

[任安書 太上立德 其次立功 其次立言]

그러나 마음을 공부하는 사람은 덕을 세우고,

문장을 공부하는 사람은 말을 다듬으니,

 

則彼德也 或憑言而可稱

是言也 或倚德而不朽

그 덕은 말에 의지하여서야 비로소 그 내용을 제대로 전할 수 있고,

이 말은 덕에 의지하여서야 비로소 오래 전해질 수 있는 것이다.

 

可稱 則心能遠示乎來者

(덕의) 내용을 제대로 전하게 되면

마음을 멀리 후대의 사람들에게까지 보일 수 있고,

 

不朽 則口亦無慙乎昔人

[立德者 太史公與任安書云

太上立德 其次立功 其次立言 案 昔人者 非謂國師也 通指聖賢以下著書之人

廣載任安書中 古人著書 不過傳其不朽也 今吾著

亦得傳其不朽也 推此 則無愧昔人也]

(말이) 오래 전해지게 되면

문장도 또한 옛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게 될 수 있는 것이다.

 

爲可爲於可爲之時 復焉敢膠讓乎篆刻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때에 하는 것이니,

어찌 다시 감히 실속 없는 글이라고 굳이 사양할 수 있겠는가.

 

始繹 [繹 音亦 繙閱尋究 又尋度也]

如椽狀則見

비로소 방망이 같은 행장을 펼쳐보니,

 

大師西遊東返之歲年

대사께서 중국에 유학하고 신라에 돌아온 연대와,

 

稟戒悟禪之因緣

계(戒)를 받고 선(禪)을 깨치신 인연,

 

公卿守宰之歸仰

像殿 [法堂] 影堂[祖堂]之開創

중앙과 지방의 관리들로부터 존경을 받은 사실,

법당과 조사당의 개창 등은

 

故翰林郎金立之所撰 聖住寺碑 叙之詳矣

죽은 한림랑(翰林郞) 김입지(金立之)가 지은 성주사비(聖住寺碑)에

자세히 서술되어 있고,

 

爲佛爲孫之德化

부처의 제자로서 불법을 널리 전한 행적과

 

爲君爲師之聲價

임금의 스승으로서 행한 업적,

 

鎭俗降魔 [有賊亂 師能降之也] 之威力

세속을 진정시키고, 악마들을 항복시킨 위력,

 

鵬顯

[莊子云 北溟有魚 其名曰鯤 化而爲鵬 齊諧志曰 鵬之徙南溟水擊三千里

搏扶搖 而上九萬里云云 比大師求法中國]

세상에서 활동할 때는 붕(鵬)처럼 지내고,

 

鶴歸

[杜詩註云 遼東人丁令威仙去後千載 化爲鶴 止華表柱上 人欲射之 以喙畫地云

有鳥有鳥丁令威 去家千載今始歸 白骨如山陵谷變 何不學仙塚累累 比大師歸東土]

之動息

은거하여서는 학(鶴)처럼 지낸 일 등은

 

贈太傅獻康大王親製深妙寺 [在今尙州] 碑

錄之備矣

태부(太傅)에 추증되신 헌강왕께서 직접 지으신 심묘사비(深妙寺碑)에

갖추어 기록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顧腐儒 [自謙之辭] 之今作也

그러므로 지금 내가 글을 지음에 있어서는

 

止宜標我師就般涅槃之期

[音義具云 般利涅槃那 謂般利 善也 究竟也 涅 出離也

槃那 煩惱結 言諸煩惱絶 普究竟出離]

다만 대사께서 열반에 드신 때와

 

與吾君崇窣堵婆

[窣堵婆西域記云 浮圖 又云偸婆 又曰私偸簸 皆訛也 此翻方墳 亦翻圓墳

亦翻高顯 義翻靈廟 劉熙釋名云 廟者貌也 先祖形貌奉安故也]

之號而已

우리 임금께서 탑의 이름을 높이신 것을 드러내고자 마음먹게 되었다.

 

口將手議 役將自適其適

[莊子云 是適人之適 而不自適其適也]

입과 손이 일을 의논하여 나의 생각하는 바대로 일을 진행하려 하는데

 

這有上足苾蒭

[五義見法數 苾芻曰香草 有五種味 故諭比丘 亦具此德也

一體性柔輭 二傳法度人 三德行遠聞 四能斷煩惱 五不背佛日也]

그때에 (대사의) 수제자(首弟子) 비구(比丘)가

 

來趣虀臼

[蔡邕 題曹娥碑曰 黃絹幼婦外孫虀臼 乃絶妙好辭

而楊修見知 曹操行三十里方知 ]

와서 글을 재촉하였다.

 

語及斯意 [指就般涅槃 與崇窣覩婆二意]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러한 나의 생각을 드러내자,

 

則曰 立之 [指故翰林郎金立之]

碑立之久矣

尙闕數十年遺美

그는 말하기를,

“(金)립지(立之)의 비는 세운지 오래 되어서

그 후 수십 년의 아름다운 행적이 빠져있고,

 

太傅王神筆所紀 蓋顯示殊遇云爾

태부왕께서 신필로 지으신 글은

단지 특별한 대우가 있음을 드러낸 것일 뿐입니다.

 

吾子口嚼古賢書 面飮今君命

그대는 옛 선인의 글을 읽고,

직접 임금의 명령을 받았으며,

 

耳飫國師行 目醉門生狀

대사의 행적에 대하여 실컷 듣고,

문하 제자들이 올린 행장을 자세히 보았으니

 

宜廣記

[上二碑未盡之 言廣記]

而備言之

마땅히 두루 기억하여

빠뜨리지 말고 이야기하여

 

殆貽厥可畏 [論語 子曰 後生可畏]

俾原始要終

[原 察也 要 求也 易云 原始要終 故知生死之說]

후대의 사람에게 전함으로써

그들이 일의 시초와 끝을 알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脫 [脫 音太 若也]西笑者

[說文云 關東人聞長安樂 則西向而笑 古詩云 還如瞽老望長安 長安在西向東笑

西笑 往中原也]

만일 중국에 가는 사람이 있어서,

 

或袖之 脫西人

[西人 中原人也]

笑則幸甚

품에 넣어 가지고 가서

중국사람들로부터 비웃음을 면할 수 있다면 다행일 것입니다.

 

吾敢求益

내가 어찌 (내용에) 덧붙임이 있기를 바라겠습니까.

 

子無憚煩 狂奴餘態

[侯霸傳云 嚴光與侯霸書曰 懷仁輔德天子悅 阿諛順旨腰領絶 霸奏之

光武譏曰 狂奴舊態 竟不回 註云 狂奴 子陵少時字也]

그대는 귀찮음을 꺼리어

재주를 숨기지 마십시오”라고 말하였다.

 

率爾應曰

급히 대답하기를,

 

僕編苫者 師買菜乎

[傳又云 侯霸遣侯子道 奉書徵光 光曰 君房素癡 今小差否 天子三徵

我不見 況大臣乎 光口授使臣書 霸嫌其太小 光曰 買菜乎求益也

註云 編苫者 常比前欲其短也 買菜者 常求益其小分 編苫 孤雲欲略述之比也

買菜上足求廣述之比也 諸本或作彩 非是]

“나는 초가지붕을 매듯 (간략히) 하려 하였는데,

스님은 나에게 채소를 팔 듯 자세히 하길 바라시는군요”라고 하였다.

 

遂絆猿心强搖ꟙ翰 [筆也]

憶得西漢書留侯傳 尻 [尾也] 云

드디어 어지러운 마음을 가다듬고

억지로 붓을 움직이려 하니

『한서(漢書)』유후전(留侯傳) 끝 부분에서,

 

良所與上從容言天下事 甚衆

非天下所以存亡 故不著

“(張)량(良)이 임금과 더불어 조용히 천하의 일을 이야기한 것이 매우 많지만

천하의 존망(存亡)에 관계되는 것이 아니므로

기록하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 생각났다.

 

則大師時順

[莊子云 適來夫子時也 適去 夫子順也 安時而處順 哀樂不能入也

註云 夫子 有道者之尊稱也 言天地之間有道之士

其來 適然而來 其去 適然而去言時順間卽生死間]

間事蹟

그러므로 대사가 살아 계실 때의 일들이

 

犖犖者

[犖 音洛 史天官書此 其犖犖者 大者 註云 事之明也 又超絶]

星繁

뛰어난 것이 하늘의 별처럼 많지만

 

非所以警後學 亦不書

뒤의 학자들에 가르침이 되는 것이 아니면

또한 적지 않으려고 한다.

 

自許窺一斑於班史然

[黃帝始立史官 蒼頡沮誦居其職 爰及漢世 馬遷班彪班固

皆得其職之正 故后之作者 皆祖二班之史 然皆窺一班 未得全豹

玉篇云 管中窺約 只見一斑云云 出字彙也]

스스로 반고(班固)의 『한서』를 조금이라도 보았다고 자부하면서

 

於是乎 管述曰

이에 글을 적으니 다음과 같다.

 

光盛且實 而有暉八紘

[四方四維也 淮南子曰 九州之外有八寅 八寅之外有八紘

東方之紘曰桑野 南方之紘曰反戶 西方之紘曰沃野

北方之紘曰委羽 東北方之紘曰黃土 東南方之紘曰衆安 西南方之紘曰火正

西北方之紘曰沙所也 紘 音橫 卽網之有綱也]

之質者

빛이 왕성하고 충실하여 온 누리를 비출 자질을 갖춘 것으로는

 

莫均乎曉日

태양에 비길 것이 없고,

 

氣和且融 而有孚萬物之功者

莫溥乎春風

기(氣)가 온화하고 두루 통하여서 만물을 기를 능력을 갖춘 것으로는

봄바람만한 것이 없다.

 

惟俊風 [東風也] 與旭日 [日初出貌]

俱東方自出也

이 큰 바람과 태양은

모두 동방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則天鍾 [聚也 注也]

斯二餘慶[春風與曉日也]

그러므로 하늘이

이 두 가지의 자질을 모으고,

 

嶽降于一靈性

[詩云 崧高維岳 駿極于天 維岳降神 生甫及申

註 崧岳 山之尊者 駿 大也 甫 甫侯 申 申伯]

산악이 신령한 정기를 내려서

 

俾挺生君子國

特立梵王家者

我大師其人也

군자의 나라에 태어나

사찰에 우뚝 서게 하였으니

우리 대사가 바로 그 분이다.

 

法號無染 於圓覺祖師

[唐代宗追諡達摩曰圓覺 塔曰空觀]

爲十世孫

[達摩 慧可 僧燦 道信 弘忍 惠能 南岳 馬祖 麻谷 無染]

(대사의) 법호(法號)는 무염(無染)으로

달마대사의 10대 법손(法孫)이 된다.

 

俗姓金氏 以武烈大王

[武烈者 新羅第二九太宗武烈王 名春秋 卽第二十五眞智王龍春之子]

爲八代祖

속성(俗姓)은 김씨(金氏)로 태종무열왕이 8대조이시다.

 

大父 [祖父也] 周川

品眞骨 位韓粲

高曾出入皆將相 [出將入相]

戶知之

할아버지는 주천(周川)으로 골품(骨品)은 진골이고 한찬(韓粲)을 지냈으며,

고조부와 증조부는 모두 조정에서는 재상,

나가서는 장수를 지내 집집에 널리 알려졌다.

 

父範淸 族降眞骨一等曰得難

[國有五品 曰聖而 曰眞骨 曰得難 言貴姓之難得

文賦云 或求易而得難 從言六頭品數多爲貴猶一命至九 其四五品不足者]

아버지는 범청(範淸)으로

골품이 진골에서 한 등급 떨어져서 득난(得難)이 되었다.

[나라에 5품이 있는데 성이(聖而), 진골(眞骨), 득난(得難) 등이다. (得難은) 귀성(貴姓)을 얻기 어려움을 이야기한 것이다. 『문부(文賦)』에서 ‘혹 구하기는 쉽지만 얻기는 어렵다’고 말한 것을 따서, 6두품의 수가 많지만 귀성이 되기는 제일 낮은 관등[一命]에서 가장 높은 관등[九命]에 이르는 것과 같음을 이야기한 것이다. 그러니 4, 5품은 말할 필요도 없다.]

 

晩節追蹤趙文業

[莊子云 趙文王喜劍 見憲章公謀反而被誅

卽落髮入道 勑加任 號骨品大德 任漢川僧統]

만년(晩年)에는 무술을 좋아하였다.

 

母華氏魂交

[莊子曰 其寐也魂交 其寤也形魂交 言夜則神集於其心也

形開 言晝則四體動用也]

어머니 화씨(華氏)가 꿈을 꾸었는데

 

覩脩 [長也] 臂天垂授 [蓮也]花

因有娠

긴 팔을 가진 천인(天人)이 연꽃을 내려주는 것을 보고서

임신을 하게 되었다.

 

幾踰時 [三月] 申夢胡道人自稱法藏

[彌陀佛 因地時 號也]

얼마 후에는 다시 꿈속에

서역의 도인(道人)이 나타나서 스스로 법장(法藏)이라고 하면서

 

授十護 [十戒] 充胎敎

10계(戒)를 주면서 그것으로 태교(胎敎)를 하게 하였다.

 

過期 [懷十三月 生也] 而誕大師

[唐德宗貞元十七年辛巳歲十二月二八日午時生 哀莊王二年也]

마침내 1년이 지나서 (대사가) 태어났다.

 

阿孩 [方言謂兒 與華无異] 時

대사는 아해(阿孩) [우리말로 어린아이를 말하는 것이니 중국말과 다르지 않다] 

 

行坐必合掌趺對

걷거나 앉을 때 반드시 합장을 하고 가부좌를 하였으며,

 

至與羣兒戲 畫墁

[孟子云 毁瓦畫墁 其志將以求食 註 墁 牆壁之飾也]

聚沙

여러 아이들과 놀면서 그림을 그리거나 모래로 무엇을 만들 때에는

 

必模樣像塔

[畫墁 爲佛像 聚沙 作佛塔也]

반드시 불상이나 탑을 본떴다.

 

而不忍一日違膝下[父母膝下]

하루도 부모님의 곁을 떠나지 않다가

 

九歲始鼓篋

[學記云 入學鼓篋 遜其志也 註 入學時 大胥之官擊鼓以召學士

學士至則發篋 以出其書籍等物 警之以鼓舞聲 使之遜順其心 進其業也]

아홉 살 때에 처음으로 공부를 시작하였는데

 

目所覽 口必誦

人稱曰海東神童

눈으로 본 것은 반드시 입으로 암송할 수 있었으므로

사람들이 해동의 신동이라고 일컬었다.

 

跨一星終

[左傳 魯侯曰 十二年是爲一終 一星終也 歲星十二年一周天 歲星 東方木星也

○ 大師十二歲出家 卽唐憲宗元和八年 宣德王五年也]

열두 살을 넘기고 나서(13세)는

 

有隘九流

[漢書云 九流 有儒家流 道家流 陰陽流 法家流 名家流

墨家流 縱橫家流 雜家流 農家流]

意入道

여러 학문을 비루하게 여기고

불도(佛道)에 들어가려는 뜻을 갖게 되었다.

 

先白母

母念已前夢 泣曰䚷 [方言許諾]

먼저 어머니에게 그 뜻을 이야기하자

어머니는 이전의 꿈을 생각하고는 울면서 “예[우리말로 허락이다]”라고 하였다.

 

後謁父

父悔已晩悟 喜曰善

뒤에 아버지에게 말씀드리자

아버지는 자신이 늦게서야 깨달은 것을 후회하였으므로

기뻐하며 “잘하였다”고 하였다.

 

遂零 [髮也] 染 [衣也] 雪山五色石寺

[卽雪岳南麓 襄陽五色洞 洞多五色石 而寺則昔有今無]

이에 설악산 오색석사(五色石寺)에 들어가

머리를 깎고, 물들인 옷을 입고서

 

口精嘗藥 [善解經義] 力銳補天

[女媧氏 鍊五色石 補天比大師架空說法之意]

입으로는 경전을 부지런히 읽고,

부족한 것을 보충하는데 힘을 다하였다.

 

有法性禪師 [此亦國師]

이 절에 법성선사(法性禪師)라고 하는 분이 계셨는데

 

嘗扣騣 [騣 音宗] 伽門

[騣伽門 小乘法也 性於中夏黃屋山 學看心法]

于中夏者

일찍이 중국에 가서

능가선(楞伽禪)을 배운 분이었다.

 

大師師事數年 撢

[撢 與探同 周禮 撢人掌誦王志 道國政事 以巡天下之邦國而道之]

대사는 이분에게 수년간 배웠는데

 

索無孑 [小也] 遺 [餘也] 性

[性 乃獻康太子所重 卽閔哀大王父 大阿飧金忠公之號也]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열심이었으므로

 

歎曰 迅足駸駸

[駸駸者 詩云 載驟駸駸 駸 馬疾行也]

後發前至 吾於子驗之

법성선사가 말하기를,

“빠른 발로 달린다면

뒤에 출발하여도 먼저 도착한다는 것을

나는 너에게서 직접 보았다.

 

吾悏矣 [悏 音怯 心悵也應昭曰志滿]

無餘勇可賈 [賈 音枯 以利爲業者也] 於子矣

나는 아는 것이 적어서

그대에게 더 이상 가르쳐 줄 것이 없다.

 

如子者宜西也

너와 같은 사람은 중국에 유학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였다.

 

大師曰唯 大師曰唯

[唯 應對之辭 尊對曰唯 野對曰阿]

이에 대사는 “알았습니다” 하였다.

 

夜繩而爲實蛇

[是偏計之情執 指小乘法 執有之言也]

밤중의 새끼줄은 뱀으로 속기 쉽고,

 

空縷難分

[羅什法師傳云 什之師 盤頭達多 與什共論大小乘優劣

達多謂什曰 汝所謂大乘者 豈非空裏之縷耶

古有至愚者 詣織師家 求布之至細者 織師以上品細妙之縷

示之 愚人猶以爲麤 織師不分指空曰 此縷如何

愚人曰 何以無見 織師曰 極細 故無見 若見則是麤 非細云云

愚人大喜 汝大乘 類是云也]

허공의 베올은 분간하기 어렵다.

 

魚非緣木可求

[魚 比道也 孟子曰 以若所爲 求若所欲 猶緣木而求魚也]

물고기는 나무에 올라가 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兎非守株可待

[言得道忘言也 韓子五 曰 宋有田父 見兎觸田中株而死

捨耕守株 冀其復得 兎未得而身爲宋國笑]

토끼는 나무 그루터기를 지킨다고 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故師所敎己所悟 互有所長

그러므로 스승이 가르친 것과 내가 깨달은 것에는

서로 나은 것이 있을 수 있다.

 

苟珠火 [比理] 斯來

則蚌燧 [比言] 可棄

[珠在蚌中 火藏燧中 若得珠火 蚌燧可棄也]

진주를 얻고, 불을 피웠으면

조개와 부싯돌은 버릴 수 있는 것이다.

 

凡志於道者 何常師之有

도(道)에 뜻을 둔 사람들에게

어찌 꼭 정해진 스승이 있겠는가.

 

尋移去 問驃訶健拏 [華嚴] 于浮石山釋燈大德

곧 그곳을 떠나

부석산(浮石山)의 석징대덕(釋澄大德)에게 화엄(華嚴)을 배웠는데,

 

日敵三十夫

藍茜沮本色

[淮南子 靑出於藍而靑於藍 絳生於茜而絳於茜 喩弟子過於師也]

하루에 서른 사람 몫의 공부를 하니

푸른 색과 붉은 색이 남초(藍草)와 천초(茜草)의 원래 색을 무색케 하는 것 같았다.

 

顧坳盃之譬

[莊子云 覆盃水於坳堂之上 則芥爲之舟

置盃焉則膠 水淺而舟大也 坳 音凹 地凹下不平 向中原之意故]

대사는 조그만 구멍에 담긴 물에서는

잔이 뜰 수 없듯이,

(여건이 조성되지 않은 곳에서는

자신의 바라는 바를 이룰 수 없음을 생각하고서)

 

曰 東面 [本國] 而望 不見西牆 [中原]

“동쪽을 바라보기만 하다가는 서쪽의 담(중국)은 보지 못할 것이다.

 

彼岸不遙 何必懷土

깨달음의 세계가 멀지 않을 터인데

어찌 살던 곳만 고집하겠는가”라고 생각하고

 

遽出山並 [並 音方 倚也] 海

覗 [覗 窺也] 西泛之緣

선뚯 산에서 나와 바다로 나아가

중국으로 건너갈 기회를 엿보았다.

 

會國使歸瑞節

[卽王誕辰 使發行於冬初 ○ 案 瑞 信玉 節 符節也 言國使授王信節

歸覲天子也]

象魏 [天子之闕 謂之象魏 象 治象也 魏者 狀魏然高大 令民觀之 故亦謂之觀

周禮月令之吉 太宰懸治象之法于象魏 使萬民觀治 魯人因謂敎令之書 爲象魏]

때마침 나라의 사신이 天子가 하사한 부절(符節)을 가지고 가서

천자에 조회할 일이 있었으므로

 

下仛 [托同]足而西

그 배에 의지하여 중국으로 향하게 되었다.

 

及大洋中 風濤欻顚怒

巨艑壞人 不可復振

배가 바다 한가운데에 이르자

바람과 파도가 갑자기 거칠어져서

큰 배가 깨어지니

사람들이 어찌할 수 없게 되었다.

 

大師與心友道亮

[道亮雖未知爲何人 其爲大師同心之友 卽無疑 乃實者其人而非俗說所云]

대사는 벗 도량(道亮)과 함께

 

跨隻板姿業風

[眞諦三藏云 泛泊西歸 業風賦命 飄還廣州]

한장 널판지에 걸터앉아 바람에 맡긴 채 떠다니게 되었다.

 

通星 [晝夜通也] 半月餘

飄至劍山島

[卽黑山島 島形甚惡 故謂劍山

艤舡 風作必破 故毁置磯上 發行時 更造]  

밤낮없이 반달 가량을 떠다닌 후에

검산도(劒山島 : 黑山島)에 표착(漂着)하게 되었다.

 

行之碕 [碕 音奇 曲岸頭也] 上

悵然甚久曰

무릎 걸음으로 물가에 도착하여

한참이나 실의에 잠겨있다가 말하기를,

 

魚腹中

[屈原漁父辭云 葬於魚腹之中 韓詩曰 顚況在須臾 魚腹甘所葬]

幸得脫身 [涉海 免死]

“물고기 배 속에서도 간신히 몸을 건졌으니

 

龍頷 [入唐 得道也] 下

庶幾攙 [攙 音殘 說文 刺也 又音攙 扶也]

手 [庶幾得大寶意]

용의 턱밑에도 손을 넣어

(바라는 구슬을) 아마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我心匪石 其退轉乎

[詩云 我心非席不可卷 我心非石不可轉也]

나의 마음은 구르는 돌이 아니니

물러남이 없을 것이다”고 하였다.

 

洎長慶 [穆宗年號] 初

장경(長慶 : 821~824) 초에

 

朝正使

[春秋傳 甯武子曰 諸侯朝於王而受正朔]

王子昕

[金昕 字泰 金陽之從父兄 武烈王之九世孫也

幼而聰悟 好學問 長慶二年 憲德王將遣使如唐 遂令昕充其任焉]

조정사(朝正使)로 가게된 왕자 흔(昕)이

 

艤舟唐恩浦 [南陽郡]

請寓載 許焉

당은포(唐恩浦)에 배를 대었기에

태워줄 것을 부탁하니 그러라고 하였다.

 

旣達之罘 [之罘 山名] 山麓

마침내 지부산(之罘山) 기슭에 도착해서는

 

顧先難後易

전에는 어려웠던 일이 이제 쉽게 됨을 생각하고서

 

土揖

 [周禮秋官司儀 王南面 見諸侯 土揖庶姓 時揖異姓

天揖同姓 註 土揖 推手少下也 時揖 平揖手也 天揖 推手少擧也]

海若 [海神] 曰

해약(海若 : 바다의 신)에게 공손히 절하고서

 

珍重鯨波 好戰風魔

“큰 파도를 자제하고,

바람의 마군과 잘 싸우셨습니다”고 하였다.

 

行至大興城南山至相寺

遇說雜花者 猶在浮石時

(스승을 찾아) 다니다가

대흥성(大興城) 남산(南山)의 지상사(至相寺)에 이르러서는

화엄을 이야기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는데

부석사에서 배운 것과 다를 바 없었다.

 

有一䃜 [䃜 音曳 美石黑色]

顔耆年

言提之

[詩云 非面命之 言提其耳] 曰

그때 한 얼굴이 검은 노인이 말을 걸고서

 

遠欲取諸物

[易云 近取諸身遠取諸物]

孰與認而 [汝也] 佛 [心佛也]

“멀리 자신 밖의 사물에서 (道를) 구하려 하기보다

자신이 부처임을 아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라고 하였다.

 

大師舌底大悟

自是 置翰墨

遊歷佛光寺 問道如滿[法師]

대사는 이 말을 듣자마자 크게 깨닫고서

이때부터 경전 공부하는 것을 그만두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불광사(佛光寺)에서

여만(如滿)에게 도(道)를 물었다.

 

滿佩江西[馬祖] 印[馬祖門人]

爲香山[樂天軒號] 白尙書樂天 空門友者[如滿門人]

여만은 강서마조(江西馬祖)에게서 심인(心印)을 얻었고,

향산(香山)의 백상서(白尙書) 악천(樂天)과는

불법을 같이 이야기하는 벗이었지만

 

而應對 有慙色曰

(대사의 질문에) 대답하면서 매우 부끄러워 하면서

 

吾閱人多矣 罕有如是新羅子

他日中國失禪 將問之東夷耶

“내가 여러 사람을 겪어 보았지만

이 신라사람 같은 사람은 있지 않았다.

후일에 중국에서 선(禪)이 사라진다면

곧 동이(東夷)에 가서 물어 보아야 할 것이다”고 하였다.

 

去謁麻谷寶徹和尙

服勤[服役勤行] 無所擇

人所難己必易

그곳을 떠나 마곡(麻谷) 보철화상(寶徹和尙)을 찾아가 모시면서

힘든 일을 하는 것을 가리지 않고,

남이 하기 어려워 하는 것을 쉽게 해냈다.

 

衆目曰 禪門庾異行

[南史云 南齊庾黔婁 爲孱陵令 到縣 未幾 父易在家遘疾 黔婁忽心驚

擧體流汗 卽日 棄官歸家 家人驚其忽忽至 時易疾才三日醫云

欲知差劇 但嘗糞甘苦 易泄痢 黔婁輒嘗之 味轉甘滑 心逾憂苦

每夕 焚香稽顙北辰 願以身代 親疾卽愈也]

이에 여러 사람들이 그를 가리켜

“선문(禪門)에 있어서 유검루(庾黔婁)와 같은 남다른 행실을 하는 자”라고

말하였다.

 

徹公賢苦節 嘗一日告之曰

보철화상은 대사의 노력을 현명히 여기고서

하루는 불러서 말하기를,

 

昔吾師馬和尙訣我曰

[訣 死時遺言也]

“전에 나의 스승인 마화상(馬和尙 : 馬祖道一)께서

나와 헤어질 때에 말씀하시길,

 

春蘤[蘤 音委 花榮也] 繁

秋實寡[蓋喩道高孫少也]

‘봄에 꽃이 많으면 가을에 열매가 적은 법이다.

 

攀道樹者 所悲吒

[吒 音且 去聲 說文云 噴也 歎也]

보리수에 오르려고 하는 사람은

이것을 슬프게 여긴다.

 

今授若[汝也]印

異日徒中有奇功可封者

封之 無使刓[剸也 卽削去廉隅也]

지금 너에게 심인(心印)을 전하니

후일에 제자 가운데 재주가 뛰어나서 북돋아 줄만한 사람이 있으면

북돋아 주어서 끊어지지 않도록 하라’고 하시고

 

復云 東流之說

[東流之說者 傳燈錄曰般若多羅告達摩曰

待吾滅後六十七載 當往震旦 設大法藥 植接愼勿速行 襄於日下也]

다시 말씀하시기를,

‘불법이 동쪽으로 전해간다는 말은

 

蓋出鉤讖

[鉤 古駈切 音苟 古兵有鉤有鑲 皆劍屬

引來曰鉤 推去曰鑲 蓋引當來說故謂之鉤讖也]

거의 예언에서 나온 말이니

 

則彼日出處 善男子根殆熟矣

[檀經云 六祖讖云 吾去七十年 有二菩薩 一在家梵日

二出家無染 從東方來 同時建立吾宗 締搆伽藍 昌隆法嗣云]

해뜨는 곳(동쪽)에서

불법을 공부하는 사람들의 바탕이 거의 완숙해졌을 것이다.

 

若若得東人可目語者[以心傳心]

畎導之

[畎 音圈 上聲 田中溝 周禮 匠人爲溝洫

廣尺深尺謂之畎 倍畎爲遂 倍遂曰溝 倍溝曰洫 倍洫曰澮

書禹貢 濬畎澮距川 六畎爲一畝 又山谷通水處曰畎 蓋言引水也]

만일 네가 동쪽 사람으로서

눈으로 말할 만한 사람을 얻어 잘 이끌어

 

俾惠水丕冒[丕 大也 冒 吐也 言普沾也]

於海昇隅 爲德非淺

지혜의 물이 바다 바깥(중국 바깥)에 까지 덮도록 한다면,

그 덕이 적지 않을 것이다’고 하셨다.

 

師言在耳 吾喜若徠[徠 來同]

스승의 말씀이 아직도 귀에 쟁쟁한데 네가 왔으니 기쁘구나.

 

今授印[傳心]焉

俾冠[元也]禪侯于東土

往欽哉

이제 심인(心印)을 전하여

동방에서 선종의 으뜸가는 사람이 되게 하니

가서 삼가 실행하거라.

 

則我當年作江西大兒

後世爲海東大父

[大兒大父 皆指徹公也 大父 祖父也]

其無慙先師矣乎

(그렇게 한다면) 나는 지금은 강서(江西) 마조(馬祖)의 수제자이고,

후세엔 해동(海東) 선문(禪門)의 할아버지가 될 터이니

스승에게 부끄럽지 않게 될 것이구나”고 하였다.

 

居無何 師化去

墨巾離首[在喪中故]

그곳에 머무른 지 얼마 안 되어

보철화상이 세상을 떠나

묵건(墨巾)을 머리에 쓰고

 

乃曰 筏[筏 師也]旣捨矣

舟[舟 子也]何繫焉

이내 말하기를,

“큰 배가 이미 떠나버렸는데

작은 배가 어디에 묶여 있을 것인가”라 하고

 

自爾 浪遊飄飄然

勢不而遏 志不可奪

이때부터 각지를 유랑하였는데 바람처럼 하여

그 기세를 막을 수 없고,

뜻을 빼앗을 수 없었다.

 

於是 渡汾水登崞[崞 音郭 山名 在雁門]山

跡之古必尋 僧之眞必詣

이에 분수(汾水)를 건너고 곽산(崞山)을 오르기까지

오래된 (불교의) 자취는 반드시 찾아가고,

참된 승려는 반드시 만나 보았다.

 

凡所止舍 遠人煙

大要 在安其危甘其苦

머무르는 곳은 인가를 멀리하였으니

그것은 위태로운 것을 편안히 여기고

고생을 달게 여기며,

 

役四體爲奴虜 奉一心爲君主

[貨殖傳云 齊俗 賤奴虜 曹邴氏獨任使之

○ 案 此文奴虜引用 與史意小異 其爲賤之之意 則一也]

몸 놀림[노동]은 종처럼 했으나

마음 받들기는 임금처럼 했다.

 

其三十餘年行事也 如是

(중국에서의) 30여 년간의 행적은 이와 같았다.

 

會昌[武宗年號]五年

來歸 帝命也

[年譜云 武宗乙丑 仍戒賢 毁寺沙汰 勑外國僧 各還本藩

潭州觀察使令鄕僧可觀 道均 宗徹等十三人 與二 航及食牒 送至海州連水縣

便値本國內回易使張春 繫纜於武州錦城郡 將弟子體順 神靜 元暢

談洪 法焰 朗然等遊踐也 武州 一云武珍州 今光州也 錦城 今之羅州也]

회창(會昌) 5년(845)에 귀국하였는데 이것은 황제가 (외국 승려들을 귀국하도록) 명령하였기 때문이다.

 

國人相慶曰

連城璧復還

[趙惠王得卞和氏璧 秦昭王願以十五城易之

王無償 相如完璧還趙 是謂連城寶也]

나라 사람들이 서로 즐거워하며 말하기를,

“여러 성(城)과 바꿀 수 있는 귀한 보배가 다시 돌아왔으니

 

天實爲之[天子護送之也]

地有幸也[新羅國地 有慶幸也]

이것은 하늘이 해주신 일로

땅에는 복되는 것이다”고 하였다.

 

自是 請益者

所至稻麻矣

이때부터 배움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이

몰려드는 것이 마치 벼와 삼같이 빽빽하였다.

 

入王城[慶州] 省母社 大歡喜曰

서울에 들어와 어머니를 찾아뵈니 (어머니는) 크게 즐거워하면서,

 

顧吾疇昔夢 乃非優曇

[音儀云 具云 優曇鉢羅 此云瑞應 般泥涅經 閻浮提內 有尊樹王 名優曇鉢羅

有實無花 優曇鉢羅樹 若生金華者 世乃有佛云云 然則佛出世

乃此樹發花 故希有也]

之一顯耶

“돌이켜 보니 전에 내가 꾼 꿈이

우담화가 한 번 드러난 것이 아니겠느냐.

 

願度來世

吾不復撓倚門之念也

[史記 王孫賈事閔王 王出走賈失之光 其母曰 汝朝出而晩來 則吾倚門而望

汝暮出而不歸 則吾倚閭而望 今王出 汝不知處 尙何歸 賈卒誅淖齒

立齊王也]

바라건대 내세를 제도하라.

나는 다시 네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마음에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고 말하였다.

 

已矣 迺北行

擬目選終焉之所 이에 곧 북쪽으로 나아가서

종신토록 몸 붙일 곳을 찾아다녔다.

 

會 王子昕 懸車

[謂致仕也 金昕 以大將軍 領軍十萬

禦淸海兵於大丘 敗績 不復仕宦 入小白山 葛衣蔬食 與浮屠遊]

그때 마침 왕자 흔(昕)은 벼슬에서 물러나 은거하며

 

爲山中宰相

[山中宰相者 陶弘景入茅山

自稱華陽隱君 梁武帝時 有大事 無不咨訪 時人號山中宰相也]

산중(山中)의 재상(宰相)으로 불렸는데

 

邂逅適願[逅 音侯 不期而適相値 詩唐風 今夕何夕 見此邂逅]

우연히 바라는 바가 합치되었다.

 

謂曰 師與吾俱祖龍樹

[新羅太宗名 大師 八世孫 昕 九世孫也]

乙粲[武烈王卽位之前 司是職也]

(昕이) 말하기를,

“스님과 나는 함께 용수(龍樹) 을찬(乙粲)을 조상으로 하고 있으니,

 

則師內外爲龍樹令孫

[內 太宗龍樹之孫 菩薩龍樹之孫]

스님은 안팎으로 모두 용수(龍樹)의 자손입니다.

 

眞瞠若不可及

[莊子云 顔淵問於仲尼曰 夫子步亦步 夫子趨亦趨 夫子馳亦馳

夫子奔逸絶塵 而回瞠若於後矣 註瞠直視貌 不及之意也]者

참으로 놀라와 감히 미칠 바가 못됩니다.

 

而滄海外 躡瀟湘故事

[唐樹惲詩云 洞庭有歸客 瀟湘逢故人 謂唐恩浦相遇之事也]

그러나 바다 밖에서 함께 했던 일이 있으니

 

則親舊緣固不淺

옛적의 인연이 결코 얕다고는 할 수 없을 것입니다.

 

有一寺在熊川州[今公州] 坤隅

[西南間藍浦 聖住山聖住寺]

지금 웅천주(熊川州) 서남쪽 모퉁이에 절이 하나 있는데

 

是吾祖臨海公受封之所

[公始祖金紫光祿大夫仁問公 太宗第二子 字仁壽 以屠穢貊功

太宗元子文武王 封之於熊川]

이것은 나의 조상인 임해공(臨海公) 께서 봉토로 받은 곳입니다.

[휘(諱)는 인문(仁問)이고, 당나라가 예맥(濊貊 : 실은 高句麗를 말함)을 정벌할 때에 공이 있어서 임해공(臨海公)으로 봉해졌다]

 

間 刦 [音盡 與燼同 爲餘]

流災[災 與灾同 天火也]

金田[須達長者 以金布地 而買祗陀太子園 以施佛故]

半灰

그 사이 커다란 불이 일어나 사찰이 반쯤은 재가 되어버렸으니,

 

匪慈哲 孰能興滅繼絶

[論語云 武王興滅國 繼絶世 天下之民歸心焉]

자비롭고 현명하신 분이 아니라면

누가 이것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겠습니까.

 

可强爲朽夫住持乎

부디 이 부족한 사람을 위하여 머물러 주시기 바랍니다”고 하였다.

 

大師答曰 有緣則住

대사는 대답하기를

“인연이 있다면 머물러야겠지요”라고 하였다.

 

大中[唐宣宗年號]初

始就居 且肹飾

[肹 音詰 郊祀歌 門不肹飾 師古曰

肹 振也 言皆振整而飾之也]

대중(大中 : 847~859) 초에

그곳으로 가서 머물기 시작하면서 말끔히 단장하였던 바,

 

俄而 道大行 寺大成

얼마 되지 않아 도(道)가 크게 행하여지고 절은 크게 번성하였다.

 

繇是 四遠問津輩

視千里猶跬步

[司馬法 一擧足曰跬 跬 三尺 兩擧足曰步 步 六尺也]

이로 말미암아

사방의 먼 곳에서부터 도(道)를 배우려고 하는 사람들이

천리 먼 길을 반걸음처럼 가깝게 여기고 찾아오니

 

其[麗+攴] 不憶

리[麗+攴]

 [音里 數也 書傳云 其 不億 不啻億之意也]

그 수가 이루 셀 수 없었다.

 

寔繁有徒

[詩云 無念爾祖 寔繁有徒]

大師猶鍾待扣

[有大扣則大鳴 小扣則小鳴 比問答之大小也]

이처럼 무리가 많아졌지만

대사는 종이 늘 쳐주기를 기다리고

 

鏡忘罷

[罷 與疲同 ○ 世說云 車徹若問於謝 因曰 不問則德音有遺 多問則重勞二謝

表喬曰 必無此嫌何嘗見明鏡疲於屢照]

거울이 얼굴을 비춤에 피곤해 하지 않듯,

 

至者 靡不以慧炤導其目

法喜[禪悅食也]娛其腹

온 사람은 모두 지혜의 횃불로 그 눈을 이끌어 주고,

불법의 즐거움으로 배를 채워주어

 

誘憧憧[往來不絶之貌]之躅

變蚩蚩[詩云 氓之蚩蚩 註云 蚩蚩無知貌]

之俗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것을 이끌어 주고

무지(無知)한 습속을 변화시켰다.

 

文聖大王[名慶膺 神武王太子]

聆其運爲

莫非裨[裨 補]王化

문성대왕(文聖大王)께서는

대사가 행하는 일이

왕도(王道)를 행함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 없다는 것을 들으시고는

 

甚㤎[㤎 音哥 法也 楷也]之

飛手敎 優勞

매우 기특하게 여기셔서

급히 어찰을 보내어 위로하였으며,

 

且多[重多]大師答山相之四言

[子昕爲山中宰相 故云山相也 有緣則住 是四言也]

또한 대사가 산중(山中) 재상(宰相)에게 대답한

네 마디 말[有緣則住]을 중하게 여기셔서

 

易寺牓[舊名烏合寺]爲聖住

仍編錄大興輪寺

[輿輪 國之願堂 編名記錄於興輪寺

故一例崇奉之意 或大興輪寺奴婢田畓屬於聖住寺故也]

사찰의 이름을 성주(聖住)로 바꾸고

대흥륜사(大興輪寺)에 편입시키도록 하셨다.

 

大師酬使者曰

대사가 왕의 사자(使者)에게 대답하기를,

 

寺以聖住爲名

招提[寺也]固所爲榮 至寵

“사찰의 이름을 성주(聖住)로 지어주신 것만 하여도

절로서는 영광스럽고 지극한 총애가 될 것입니다.

 

庸僧 濫吹高籍

[高籍 手敎也 或云寺籍也]

하지만 보잘 것 없는 중이

외람되게 높은 자리를 차지한 것으로,

 

寔避風斯媲

[媲 音比 配也 莊子 海鳥避風止於魯郊 魯侯御以觴之于廟 具太牢以爲膳

鳥乃眩視 憂悲不敢食飮 三日而死 是不以鳥養鳥 今王之寵師 亦猶是也]

이것은 바다새가 바람을 피해오자

뭍의 새가 봉황으로 오해한 것과 비슷한 것으로

 

而隱霧可慙矣

[列女傳云 陶答子 名譽不興 家産三倍 其妻諫曰 南山有玄豹

霧雨七日 不下食 將欲澤其毛衣而成文章也 故隱而避害 汎豕貪啗無厭

故因以見俎 今子無隱霧之操 有凡豕之欲 妾懼之 未幾被誅]

흐린 날에는 숲에 숨어서

자신의 무늬를 윤택하게 한다는 표범에게는 부끄러운 일입니다”라고 하였다.

 

時憲安大王

[卽文聖之弟 神武王之次子 名誼靖]

그때 (즉위 전의) 헌안대왕(憲安大王)께서는

 

與檀勢

[唐梵雙擧 檀 此云惠施 卽惠施越苦海也]

사찰의 시주(施主)인

 

季舒發韓

[職號 文聖十九年侍中金陽卒 追贈舒發韓 陪葬太宗陵 姓金 又名魏昕]

魏昕 爲南北相

[各居其官 猶左右相]

계서발한(季舒發韓)인 위흔(魏昕)과 더불어 남북(南北) 재상(宰相)[각기 자신의 관사에 있어 좌상(左相), 우상(右相)과 비슷하였다] 이었는데,

 

遙展攝齊

[齊 音咨 裳下縫也 師弟子攝師之齊]

禮[弟子禮也]

멀리서 제자의 예를 행하며

 

贄[贄 音至 執也]以茗馞

[馞 音孛 搏雅云 香也 茗茶也]

향과 차를 예물로 보내어

 

使無虛月

[左傳 府无虛月 註 晉之府庫 无月不受 魯之貢賦使 使介也]

한달도 그것을 빠뜨리지 않았다.

 

至使名[師名聲也] 

[雨아래僉]霑[與霑同 小雨沾微也] 東國

이렇게 (大師의) 명성이 온 나라에 가득하여

 

士流不識大師門 爲一世羞

선비들은 대사의 선문(禪門)을 모르는 것을

일세의 수치로 여길 정도가 되었다.

 

得禮足者[頂禮師足]

退必唶[唶音借嘆聲]曰

그리고 대사를 직접 만나본 사람들은

물러나와서 반드시 감탄하면서

 

面謁百倍乎耳聞 口未出而心已入

“직접 뵈니 귀로 듣던 것보다 백배나 낫다.

입으로 말씀하지 않아도 벌써 마음에 와 있었다”고 말하곤 하였다.

 

抑有猴虎[猴虎 奸人]而冠者

그래서 원숭이나 호랑이가 관(冠)을 쓰고 있는 것과 같은 사람들도

 

亦熄其趮[趮 音  說文 疾也]

곧 그 조급함을 떨치고,

 

혁[言+革] [혁 音革 更也]

其虣

[虣音暴虐也猛也 周禮大司徒 以刑敎中則 民不虣]

사나운 마음을 고쳐서

 

而億 [  競同] 犇馳善道

착한 길로 다투어 달려 나갔다.

 

曁憲安王嗣位 賜書乞言

[乞言者 遣敎昌法師 書 言弟子德薄 恭膺大統 禪師神惠特深

見聞高遠 請出一栦 敎我不及 大師答曰 殿下已知爲君難也]

헌안왕께서 즉위하심에 이르러

대사에게 글을 보내어 도움이 될 말을 청하였는데,

 

大師答曰

周禮對魯公之語 有旨哉

著在禮經 請銘座側

[魯哀公問曰 何爲則民服 孔子曰 擧直錯諸枉 則民服 擧枉錯諸直

則民不服 又定公問 一言而可以興邦有諸 對曰 言不可以若是其幾也

人之言曰 爲君難 爲臣不易 如知爲君之難也 不幾乎一言而興邦乎

曰 一言而喪邦有諸 對曰 言不以若是其幾也 人之言曰 予無樂乎爲君

惟其言而莫予違也 如其善而莫之違也 不亦善乎 如其不善而莫之違也

不期一言而喪邦乎云云也]

대사는 대답하기를

“주풍(周豊)이 노공(魯公)에게 대답한 말이 뜻이 깊습니다.

예경(禮經)에 적혀있으니 자리 옆에 새겨 두십시오”라고 하였다.

 

逮贈太師先大王

[景文王 姓金 名膺廉 僖康王孫 阿飡殷明子也 憲安無子 故冊命立婿云]

卽位

태사(太師)를 추증받으신 선대왕(先大王 : 景文王)께서 즉위하셔서도

 

欽重如先朝志 而日加厚焉  

(대사를) 공경하고 존중하심이 선조(先朝 : 憲安王) 때와 같아서

대우해 주는 것이 나날이 두터워졌다.

 

㝡[최  凡同]所施爲 必馳問然後擧

일을 시행할 때에는

반드시 사람을 보내어 물어본 후에 거행하였다.

 

咸通[唐懿宗年號也]十二年秋

함통(咸通) 12년(871) 가을에

 

飛鵠頭書

[韻府羣玉云 鵠頭蚊脚 以招隱士 註 二者 皆漢詔板]

以傳[傳 驛遞也] 召曰

(왕께서는) 대사에게 교서(敎書)를 급히 보내고

사람을 시켜 부르면서 말하기를,

 

山林何親 城邑何疎

“산림(山林)을 어째서 가까이 하시면서

도성(都城)은 멀리하십니까?”라고 하였다.

 

大師謂生徒曰 遽命伯宗

[左傳 梁山崩 晉侯以傳召伯宗 伯宗避重 註 言適有重載之車在途

故避之使退也 載重人曰 待我不如捷之速也

問其所居 曰 絳人也 問其絳事焉 曰 梁山崩 將召伯宗謀之

問將若之何 曰 山有朽壤而崩 可若何 國主山川 故山崩川渴

君爲不擧絳縵徹樂出次祝幣史辭以禮 急其如此而已 雖伯宗若之何

伯宗請見之 其人不可 遂以告景公 從其言 縵 無紋車也 出次 出外寢也

祝幣 以幣祝天也 史辭者 深責罪]

대사는 제자들에게

“갑자기 진후(晉侯)가 백종(伯宗)을 부르듯하니

 

深慙遠公[潤載云 晉安帝還次潯陽 詔遠見于行在 輔國何无忌勸遠一出

遠固辭以疾 帝三詔 問勞 勑九江太守 歲時 送米資奉 卜居三十年 影不出山 迹不入俗]

(산문에서 밖에 나오지 않았던) 혜원공(慧遠公)에게는 몹시 부끄러운 일이다.

 

然道之將行也 時乎不可失

하지만 앞으로 도(道)를 행해지게 하려면 그 기회를 놓쳐서는 안된다.

 

念付囑

[佛臨涅槃 以佛法流通 付囑國王大臣也]

故吾其往矣

부처께서 (불법이 전해지도록) 부촉(付囑)하신 바를 생각하니

내가 가야 되겠다”라고 말하고

 

欻爾 至轂下[輦轂之下 卽都城也]

及見

즉시 서울에 도착하여 왕을 뵈었다.

 

先大王[景文王]冕服 拜爲師

선대왕께서는 면복(冕服) 차림으로 절을 하여 스승(王師)으로 삼았고,

 

君夫人世子曁太弟[追封尊諡惠成大王] 相國

왕비와 세자, 그리고 왕의 동생이신 상국(相國) [돌아가신 후에 왕으로 높이고 시호를 혜성대왕(惠成大王)이라고 하였다]과

 

羣公子公孫 環仰如一

여러 왕자, 왕손들이 빙 둘러싸고 한결같이 우러렀는데

 

一如古伽藍[此云衆園]繢[繢 音會 會五彩以畫也]壁面

寫出西方諸國長[諸國之君長]侍勃陁[勃陁亦云佛陁梵音小異]樣式

마치 옛날 가람의 벽 그림에

서역의 여러 왕들이 부처님을 모시고 있는 모습과 비슷하였다.

 

上曰

弟子不佞[佞 才也 魯語 夷吾 不佞也]

小好屬文[屬文 作文也]

임금께서 말씀하시길,

“제자가 말 재주는 없습니다만,

글 짓는 것은 조금 좋아합니다.

 

嘗覽劉勰

[勰 昔叶 並同 南史 劉勰梁武帝

時人雅爲昭明太子所重

著文心雕龍五十卷 家貧不婚娶 依沙門僧裕 遂博通經論

區別部類 撰五十序 定林寺藏經 卽其詮次也 中書令沈約絶重其文

常置几案間 京都下寺塔及名僧碑碣 皆出其手也 累官通事舍人

表求出家 先燔鬚自誓 帝嘉之 賜法號惠雲云]

文心

전에 유협(劉勰)의 『문심조룡(文心雕龍)』을 본 적이 있는데

 

有語云

滯有守無 徒銳偏解

거기에

“유(有)에만 얽매이거나, 무(無)만을 고집하면

편벽된 이해에 나아갈 뿐이다.

 

欲詣眞源 其般若之絶境

반야(般若)의 절대적인 경지가 바로 그것이다”라고 하였는데

 

則境之絶者 或可聞乎

“참된 근원으로 나아가고자 한다면

절대적인 경지가 무엇인지 가르침 받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였다.

 

大師對曰

대사가 대답하기를,

 

境旣絶矣 理亦無矣

斯印也 黙行爾 “경지가 이미 절대적인 것이라면

(그것을 설명할) 이치도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마음으로 전하는 것(心印)이니

말없이 행해질 뿐입니다.”라고 하였다.

 

上曰 寡人固請少進

[ 莊子云 老聃呼子貢曰 小子少進]

임금께서 “과인은 조금 더 배우기를 청합니다”고 하자

 

爰命徒中錚錚者

[光武謂樊崇曰 卽鐵中錚錚也]

更手撞擊

[人師曰 撞擊 隨旬而答 如鍾撞擊故也 見字彙]

대사는 제자 중의 뛰어난 자에게

번갈아 가며 질문을 하게 하여

 

舂容盡聲

[禮記云 儒有夙夜講學以待問 善待問者 如撞鍾 叩之以小者

則小鳴 叩之以大者 則大鳴 待其從容然後 盡其聲 疏曰

從 讀爲舂 舂者謂擊也 以爲聲之形容 言鍾之爲體 必待其擊 每一

舂而爲一容然後 盡其聲 善答者 亦待其一問然後 一答 乃盡說義理也]

차근차근 속속들이 알 수 있도록 설명을 해주어

 

剖滯袪煩

若商 之劃[劃 音畫 割也]陰靄然

막힌 것을 해결하고 번거로운 것을 떨쳐 버리기를

마치 가을바람이 어두침침한 노을을 밀어내듯 하였다.

 

於是 上大喜

懊[懊 音奧 悔恨]

見大師晩曰

이에 임금께서 크게 기뻐하셔서

대사를 늦게 만나본 것을 안타까워하시며 말씀하시길,

 

恭己南面[論語云 無爲而治者 其舜也與 夫何爲哉 恭己正南而已]

司南[司 主守也 南 任也 見字彙]

南宗

“성인께서 자연스럽게 바른 길(南宗)을 가리켜 주셨는데,

 

舜何人哉 余何人也

[孟子曰 舜何人也 余何人也 有意者亦若是云云]

순(舜)이 할 수 있는 일을

나라고 어찌 못하겠는가”라고 하였다.

 

旣出 卿相延迓

[迓 音牙 迎也]

왕궁에서 나오자 재상들이 다투어 마중하니

 

與謀不暇 士庶趨承 欲去不能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도 할 수 없었고,

일반 백성들이 뒤쫓으며 따르니

떠나고자 하여도 그럴 수 없었다.

 

自是 國人皆認衣珠

[法華中 有人衣內 係珠 喩事不煩引]

이때부터 나라 사람들이

모두 자신에게 귀한 보배(佛性)가 있음을 깨달아

 

鄰叟罷窺廡玉焉

[尹文子云 魏叟得徑尺玉 鄰人曰 此至怪石也 抱置廡下夜間視之

光照一室 益大駭 反棄野 鄰人獻之魏王 玉工曰 此無價

以當之五都之城 僅可一觀 王賜獻玉者千金 長食上大夫之祿也]

이웃집의 보석을 탐내지 않게 되었다.

 

俄苦樊笯[樊笯 養鳥之具 比王宮] 中

卽亡去

그러나 얼마 있지 않아서

새장에 갇혀 있는 것 같은 생활을 괴롭게 여겨서

(서울을) 떠나고자 하였다.

 

上知不可强 迺降芝檢

[瑞命記云 王者德仁則芝艸生 故王之手書 謂芝檢]

임금께서는 억지로 만류할 수 없음을 알고

곧 교서(敎書)를 내려서

 

以尙州深妙寺不遠京 請禪那別館

상주(尙州)의 심묘사(深妙寺)가 서울로부터 멀지 않으니

선종의 별관으로 삼아 머무르라고 하셨다.

 

辭不獲 往居之

대사는 거역할 수 없어 그곳에 가서 머물렀는데,

 

一日必葺[葺 音緝 茨也 修補]

儼若化城

[法華經云 有導師 將導衆人 欲過險道 所將衆人 中路懈退

導師多設諸方便於險道中 過三百由旬 化作一城 告衆人言 汝等勿怖

莫得退還 今此大城 可於中止 隨意所作 若入是城 快得安穩

是時 疲極之衆 心大歡喜 嘆未曾有 爾時 導師知此人衆無復疲倦

卽滅化城 語衆人言 寶所在近 向者 大城 我所化作 爲止息耳]

잠시 머물지라도 반드시 수리하였으니

곧 엄연한 절의 모습을 갖추었다.

 

乾符[僖宗年號]三年[僖宗丙申]春

건부(乾符) 3년 (876) 봄에

 

先大王[景文王]不預[預 安也]

선대왕(先大王)께서 병환이 나셨는데

 

命近侍曰

亟[急也]迎我大醫王來

근시(近侍)에게

“빨리 우리 대의왕(大醫王)을 모셔오라”고 명하셨다.

 

使至 大師曰

사자가 오자 대사께서는 말했다.

 

山僧足及王門 一之謂甚

“산승(山僧)의 발이 왕궁에 이르는 것은

한 번만 하여도 심하다고 할 것이므로

 

知我者 謂聖住爲無住

不知我者 謂無染爲有染乎

나를 아는 사람은

‘성주(聖住)가 머무르는 곳이 없게 되었다 [無住]’고 말할 것이고,

나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무염(無染)이 물이 들었다 [有染]’고 말할 것이다.

 

然顧與吾君 有香火因緣

[郭氏子儀與吐蕃 結香火之約云 言焚香告天而結兄弟也]

하지만 우리 임금과 서로 맹세한 것을 생각하여 볼 때,

 

忉利之行

[此云三十三天 帝王之死云 昇天寶天 故取其義也]

有期矣

盍就一訣

임금께서 도리천에 돌아가실 날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어찌 가서 작별인사를 하여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말하고

 

復步至王居 設藥言 施箴戒

[箴 與鍼同 又箴規箴戒]

다시 왕궁으로 가서 약이 되는 말씀을 하여 주고,

잠계(箴戒)를 베푸시니

 

覺中愈 擧國異之

(왕께서) 깨닫는 가운데 병이 조금 나으니

온 나라 사람들이 신기하게 여겼다.

 

旣踰月 獻康大王居翼室

[捨正殿而居翼室 以居憂故翼室 左右廊]

한 달이 지나서 (경문왕이 돌아가시고)

헌강대왕께서 거상(居喪)을 하게 되었다.

 

泣命王孫勛榮 諭旨曰

(왕께서는) 울면서 왕족인 훈영(勛榮)을 통하여 뜻을 전하였으니

 

孤幼遭閔凶[父喪] 未能知政

“내가 어려서 부모의 상을 당하여 정사를 담당할 수 없습니다.

 

致君奉佛

誧[誧 音普 大 相助也 又音怖 謀]

濟海人[多人也 或云 海東人]

임금을 인도하고 부처를 받들어

사해(四海)의 사람을 널리 구제하는 것은

 

與獨善其身 不同言也

자기 한 몸만을 착하게 하는 것과는

비교될 수 없는 일입니다.

 

幸大師無遠適 所居唯所擇

원컨데 대사께서는 멀리 계시지 마시고

(서울에서) 머무를 곳을 고르십시오”라고 하였다.

 

對曰古之師則六籍

[六籍者 六經也 詩書易周禮春秋禮記]存

(대사는) 대답하여 말하기를

“옛날의 스승의 가르침은 6경(經)에 기록되어 있고,

 

今之輔則三卿

[三卿者 儀禮疏云 司徒司馬司空也]在

지금 보필할 사람은 3경(卿)이 바로 그 사람들입니다.

 

老山僧何爲者

늙은 산승(山僧)이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坐蝗 桂玉哉

[蝗 音黃 蟲也 似蚱蜢而大 頷下有子 翅傍有竅 可以縷貫 羣飛食苗

○   音妬 陸龜蒙 化篇橘之  大如小指 一日視之不食

明日往見 蝗化爲蝴蝶 ○ 戰國策云 蘇秦入楚 三日乃得見平王 談卒辭而行

王曰 寡人聞先生若聞古人 今先生乃不遠千里而臨寡人

曾不肯留 願聞其說 對曰 楚國之食貴於玉 薪貴於桂 謁者難得見如見鬼

王難見如天帝 今令臣食玉炊桂 因鬼見帝 臣可住此 王曰 先生就舍 寡人聞命矣 卽其義]

단지 누리[蝗]처럼 앉아서

땔나무와 곡식을 축낼 뿐입니다.

 

就有三言 庸[用也]可留獻曰能官人

[左傳云 襄公十五年 楚能官人 楚康王能爲官擇人也]

단지 세 마디 말로 남겨드릴 만한 말씀이 있으니

‘관리를 잘 등용하라 [能官人]’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翌日挈山裝鳥逝

다음날 산의 무리를 이끌고 새처럼 떠나고 말았는데,

 

自爾 騎置

[置 音智 驛傳曰置 漢烏孫傳 有便宜 因騎置以聞 師古曰 卽今之顓馬也]

傳訊 影綴巖溪

이때부터 역마(驛馬)들이 왕명을 전하려고

산중에 그림자를 이었다.

 

遽人[驛傳急卒]知往抵聖住

卽皆雀躍

[莊子云 鴻蒙方將撫髀 雀躍而遊 註 雀躍 勇躍自樂之貌]

역졸(驛卒)들은 가야할 곳이 성주사인 것을 알면

곧 모두 뛸듯이 기뻐하며

 

叢[聚也]手易轡

慮滯王程[行限] 猶尺寸地

손을 모아 말고삐를 고쳐잡고

왕명이 한걸음이라도 늦을까 걱정하였다.

 

由是 騎常侍

[如司馬門校尉卽今之宣傳官]

倫伍

[倫 輩也 伍 迎也 今之卒也]

이 때문에 왕명을 전하는 근시(近侍)들은

 

得急宣[宣 敎旨也]

爲輕擧

급히 전할 말이 있어도 쉽게 행해질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乾符帝[僖宗]錫命之歲

[天子以冊封太傅爲獻康王也]

건부제(乾符帝)가 헌강대왕의 즉위를 인정한 해(878년)에

 

令國內舌杪 有可道者

貢興利除害策

[使國內識者有所懷者建議]

(임금께서는) 나라 안의 진언하고자 하는 것이 있는 사람들에게

이로움을 가져오고 해로움을 없앨 수 있는 계책을 올리게 하였는데

 

別用蠻牋

[中國人自高句麗以來 吾邦産紙謂蠻牋]

書言

특별히 우리나라의 종이를 사용하여 말을 적게 하였다.

 

荷天寵有所由

천자의 은혜를 입은 때문이었다.

 

因垂益國之問

나라에 이익을 주는 것이 무엇이냐는 물음에

 

大師引出何尙之

[劉宋南朝侍中]

獻替宋文帝心聲

[孟子曰 言者 心之聲也]

爲對[尙之對文帝事 見于通載八卷]

대사는 하상지(何尙之)가

송(宋) 문제(文帝)에게 바친 말로써 대답하였다.

 

太傅[獻康]王覽

謂介弟

[左傳云 伯州ꝃ曰 王子圍寡君之貴介弟 註 介大也] 曰

태부왕(太傅王)께서는 이것을 보시고

동생인 예부령(禮部令 : 南宮相)에게 말씀하시길

 

三畏

[論語曰 君子有三畏 畏天命 畏大人 畏聖人言]

比三歸

[歸佛 歸法 歸僧]

“삼외(三畏)는 불교의 삼귀의(三歸依)에 비교될 수 있고,

 

五常均五戒

오상(五常)은 불교의 오계(五戒)와 비슷하다.

 

能踐王道 是符佛心

왕도(王道)를 잘 실천하는 것이

부처의 마음에 부합되는 것이다.

 

大師之言至矣哉

吾與汝宜惓惓

[惓 音權 謹也 又愁切也]

대사의 말이 옳은 것이다. 너와 나는 성실하고 부지런히 실천해야 할 것이다”라고 하셨다.

 

中和西狩之年

[僖宗辛丑壬寅 黃巢及秦宋權稱讚號 避黃巢亂 入西蜀 故云西狩]

건부제(乾符帝)가 (黃巢의 亂을 피하여) 서쪽으로 피난한

중화(中和) 원년 (881쪽) 가을에

 

上謂侍人曰

임금께서 시인(侍人)에게

 

國有大寶珠

畢世 [ 櫝同]而藏之 其可耶

“나라에 커다란 보배 구슬이 있는데

평생토록 궤에 감추어 두는 것이 잘한 일인가 ?”하고 묻자

 

曰 不可

不若時一出

俾醒萬戶眼 醉四鄰心

“아닙니다.

때때로 꺼내어서 많은 백성들의 눈을 뜨게 하고

사방 이웃 나라의 마음을 쏠리게 하는 것만 같지 못합니다”라고 대답하였다.

 

曰 我有末尼[此云如意珠也] 上珍

匿曜在嵩巖山[聖住寺]

이에 임금께서

“나에게 마니(摩尼)의 귀한 구슬이 있는데

숭엄산(崇嚴山)에서 빛을 감추고 있다.

 

脫[脫 音太 若也]

闢秘藏

宜照透三千界

만약 그 감춘 것을 열기만 한다면

삼천세계를 환히 비출 수 있으니

 

何十二乘

[魏文侯曰 寡人有徑寸之珠 照車前後各十二杵]

之足道哉

수레 열둘을 비춘다는 구슬이야 비교가 되겠는가?

 

我文考[景文]懇迎 嘗再顯矣

나의 부왕께서 간절히 맞이하셨을 때,

두 번이나 그 모습을 드러낸 적이 있었다.

 

昔酇侯譏漢王拜大將

如召小兒

옛날에 소하(蕭何)는 한 고조가 한신(韓信)을 대장(大將)으로 임명하면서

아이 부르듯 한 것이 잘못되었음을 이야기 하면서

 

不能致商山四老人此以

상산(商山)의 네 노인을 부를 수 없는 것이 이 때문이라고 하였다.

 

今聞天子蒙塵

[左傳云 天子奔走 謂之蒙塵 詳如西狩註]

지금 천자께서 피난하셨다는 말을 들었으니

 

趣令奔問官守

[天子侍從羣臣 不能直斥天子 故云官守]

달려가서 위로해 드려야 할 것인데,

 

勤王加厚

歸佛居先

천자를 위로함에는 부처에게 의지함이 가장 우선일 것이다.

 

將邀大師 必叶外議

이제 대사를 맞아들임에 있어서는

반드시 세상의 평판에 따를 것이다.

 

吾豈敢倚其一 慢其二哉

[孟子曰 朝廷莫如爵 鄕黨莫如齒 輔世長民莫如德

○ 案 倚其一 指居君位也 慢其二 指師齒德也]

내가 어찌 감히 왕이라고 하여

나이 많고 덕이 높으신 분에게 무례하게 할 수 있겠는가”라고 말씀하시며

 

乃重其使

卑其辭 徵之

관직이 높은 사람을 사자(使者)로 보내고

말을 겸손하게 하여 부르셨다.

 

大師云

孤雲出岫

寧有心哉

[雲無心而出岫之意也]

이에 대사는

“외로운 구름이 산에서 나오는 것이

어찌 다른 마음이 있어서이겠는가.

 

有緣乎大王之風

無固 [易曰 無固無必]

乃上士之道

遂來見

대왕의 정치에 인연이 있으니

고집함이 없는 것이 뛰어난 선비[上士]의 도리일 것이다”라고 말하고

드디어 와서 왕을 뵈었다.

 

見如先朝禮

임금께서 대사를 인견함은 선조(先朝 : 景文王) 때의 예절과 같았는데

 

禮之加

焯[焯 與灼同也 說文 明也]

然可屈指者

예에 덧붙여진 것으로서 분명히 손꼽을 만한 것으로는,

 

面供饌 一也

임금께서 직접 음식을 봉양한 것이 첫째이고,

 

手傳香 二也

三禮者三 三也

[致敬三拜凡三次]

손으로 향을 전하신 것이 둘째이며,

몸·입·뜻의 삼업(三業)으로 세 번이나 경의를 표하신 것이 셋째이며,

 

秉鵲尾爐

[說文云 香爐有長柄者也 東坡詩註曰

費崇先 尤信佛 以鵲尾香爐 置膝前]

작미로(鵲尾爐)를 잡고

 

締[結也] 生生世世緣 四也

영생의 인연을 맺은 것이 넷째이며,

 

 

加法稱[法號] 曰廣宗 五也

법칭(法稱)에 ‘광종(廣宗)’을 더하여 준 것이 다섯째이며,

 

翌日命振鷺

[詩云 振鷺于飛 註云 振 羣飛貌

蓋少昊以鳥紀官之時 以鵷鷺爲三公 故今之朝士謂鵷鷺之班]

다음날 어진 이들에게

 

趨鳳樹

[鳳非梧桐不栖 非琅玕不食 鳳樹指大師留宿之所]

대사가 머무는 절에 나아가

 

雁列賀 六也

기러기처럼 열을 지어 인사드리도록 한 것이 여섯째이며,

 

敎國中

나라 안의

 

磋磨

[詩云 如切如磋如琢如磨 註云 切磋治骨角 琢磨治玉石也]

六義者

[風雅頌比賦興 詩序云 風者 民俗歌謠之詩 賦者敷陳其事而直言之也

比者 以彼物比此物也 興者 先言他物以引起所詠之事也

雅者 正樂之歌 頌者 容也 美盛德之形容也]

시(詩)를 짓는 사람들에게

 

賦送歸之什[詩歌]

대사를 송별하는 시(詩)들을 짓게 하여서

 

在家弟子王孫蘇判嶷榮 首唱

재가제자(在家弟子)인 왕족 소판(蘇判) 억영(嶷榮)이

가장 먼저 시(詩)를 지으니

 

斂成軸[卷軸]

그것을 거두어서 두루마리로 만들고,

 

侍讀[春坊官名]

翰林才子朴邕爲引

[文體源流云 序者 叙其事也 始於卜子夏詩序

引者 引其事也 始於班固典引 引與序一也而但變名爾也]

시독(侍讀)이며 한림관(翰林官)인 박옹(朴邕)이 거기에 인(引)을 붙여서

 

而贈行七也

떠날 때에 준 것이 일곱째이며,

 

申[重也]命掌次

[掌次 掌設幕之官 禮記 掌次 註云 修正處所卽今之帷帳次知官也]

張淨室

행차를 담당하는 관리들에게

정결한 방을 준비하도록 거듭 명하여

 

要叙別 八也

그곳에서 작별하신 것이 여덟째이다.

 

臨告別 求妙訣

고별에 임하여 임금께서 신묘한 비결(秘訣)을 구하시니,

 

乃眴

[眴與瞬同 以目使人也]

從者 擧眞要

이에 제자들에게 눈짓하여 진요(眞要)를 들려주라고 하였다.

 

有若 詢乂 圓藏 虛源 玄影 四禪中 得淸淨者

순예(詢乂), 원장(圓藏), 허원(虛源), 현영(玄影)과 같은 이는

사선(四禪)을 행하여 청정(淸淨)을 얻은 사람들로서,

 

緖抽

[詩蓼莪章云 緖抽作杼抽 杼 持緯者也 抽 受經者也

又杼 音處 機上行緯具梭也 抽 引也 言梭持緯絲 出無於經間而受絲也]

其慧

지혜의 실을 뽑아

 

表纖其旨

깊은 뜻을 짜냈는데,

 

注意無怠 沃心有餘

[書云 啓乃心沃朕心]

뜻을 기울여 소홀함이 없었고,

임금의 마음을 계발(啓發)함에 여유가 있었다.

 

上甚悅 拜[拱手而拜]曰

임금께서 매우 즐거워하여

두 손을 마주잡고 경의를 표하며 말씀하기를,

 

昔文考爲捨瑟之賢

[子路曾晳冉有公西華侍坐

子曰 盍各言爾志 三子各言其志後 子曰 點爾何如 鼓瑟希 鏗爾捨瑟而作

對曰 異乎三子之撰 子曰 何傷乎 亦各言其志也 曰 暮春者春服旣成

冠者五六人童子六七人 浴乎沂風乎舞雩詠而歸 夫子歎曰吾與點也]

“전에 저의 부왕(父王)께서는 증점(曾點)과 같은 현인이셨는데,

 

今寡人忝避席之子

[孝經 子曰 先王有至德要道 以順天下民用和睦 上下無怨 爾知乎

曾子避席曰 參不敏何足知之云 曾晳 曾子父名 俱爲孔子弟子也]

지금 저는 증삼(曾參)과 같은 아들이 되기에는 부족합니다.

 

繼體

[紹父之體]

得崆峒之請

[莊子 黃帝聞廣成子在崆峒山 往問至道之精

成子曰 自而 治天下 雲氣不待族而雨

草木不待黃而落 日月之光益以荒矣 奚足以語至道 帝退三月

往問治身 成子曰 至道之精 無視無聽 無撓爾精 乃可長生云]

그러나 임금의 자리를 이어서

덕이 있는 사람에게 지극한 도리를 얻고,

 

服膺

[中庸云 回之爲人擇乎中庸 得一善 則拳拳服膺而弗失之 註 拳拳

奉持貌 服猶着也 膺  也 奉持而着之心 之間 言能守也]

그것을 받들어 간직함으로써

 

開混沌之源

[莊子云 南海帝爲儵 北海帝爲忽 中央帝爲渾沌 儵與忽時與遇於渾沌之地

渾沌待之甚善 儵與忽謀報渾沌德曰 人皆有七竅 以視聽食息

此獨無有 當試鑿之 日鑿一竅 七日而混沌死 註 儵 音叔

儵忽取其神速爲名 混沌以和合爲貌 元氣未分前也 渾沌死 言不順自然

强開耳目也 渾沌並上聲]

뒤엉켜진 근본을 열게 되었습니다.

 

則彼渭濱老翁[姜太公]

眞釣名者

그러니 저 위수(渭水)가에서 낚시하던 강태공(姜太公)은

사실은 명예를 낚으려는 자였으며,

 

圯上孺子

[圯 音夷 楚人謂橋爲圯 卽下邳圯上 漢書云 張良遊下邳 遇父孺子可敎

出一編書曰 讀此爲王者師 遂去不復見 旦日視其書 乃太公兵法也]

흙다리 위의 장량(張良)도

 

蓋履迹焉

그런 전철을 밟았다고 할 것입니다.

 

雖爲王者師

徒弄三寸舌也

曷若吾師語

密傳一片心乎

비록 왕자(王者)의 스승이 되었다고 하여도

단지 세 치의 혀를 놀린 것에 불과하니

어찌 나의 스승께서

은밀한 말로써 마음을 전한 것과 비교될 수 있겠습니까.

 

奉以周旋 不敢失墜

받들어 실천하고

어긋남이 없도록 하겠습니다”라고 하였다.

 

太傅王

雅[本也]

善華言[中華之言 卽漢文也]

金玉其音

태부왕(太傅王)께서는 아름다운 말과 시문(詩文)을 잘하셔서

 

不患衆咻聒

[孟子 衆楚人咻而聒之 咻 讙 聒 亂也]

여러 사람이 떠드는 것도 관계없이

 

而能出口 成儷語

[四六騈儷之文]

如宿構云

입을 여시면 짝이 맞는 말을 만드셨는데

마치 오래 전부터 준비하여 둔 것 같았다.

 

大師旣退

且往應王孫蘇判鎰

대사께서 왕궁을 물러나온 후에

다시 왕손인 소판(蘇判) 일(鎰)의 청함을 받아들였다.

 

共言數返 卽歎曰

같이 여러 차례 이야기를 주고 받고선

(대사께서) 감탄하여 말씀하시길,

 

昔人主有有遠體

而無遠神[神知]者

“옛날의 임금들은 장수하는 분은 있어도

생각이 깊지 못하였는데

 

而吾君備

지금 우리 임금께서는 그 둘을 겸비하셨고,

 

人臣有有公才

而無公望者

而吾子全

신하들은 재상이 될만한 재주는 있어도

그러한 덕망이 없었는데

그대는 두루 갖추었습니다.

 

國其庶乎

[近於治也 孟子云 齊其庶乎]

그러니 나라가 잘 다스려질 것입니다.

 

宜好德自愛

及歸謝絶

마땅히 덕을 좋아하십시오.”라고 하고는

스스로 부끄러워하며 산으로 돌아가서 세상과의 인연을 끊었다.

 

方是 遣輶軒

[輕車 或輕擧使臣]

이에 임금께서는 사자를 보내어

 

標放生場

[立四方禁標 使獵士不入其中 故謂之放生]

則鳥獸悅

방생장(放生場)의 경계를 표시하니

새와 짐승이 즐거워하였고,

 

紐[紐 音丑 說文 系也]

銀鉤[筆也]

扎[寫也] 聖住寺題

뛰어난 글씨로 ‘성주사(聖住寺)’의 제액(題額)을 써주시니

 

則龍蛇活[筆形也]

마치 용과 뱀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다.

 

盛事畢矣[崇佛至也]

昌期忽兮 [獻康王昇遐也]

좋은 일도 끝이 있고

한창 때도 끝나는 법이다.

 

定康大王[獻康之弟]莅阼

兩朝[景文王獻康王]寵遇

帥[帥 音卒 從也]

而行之

정강대왕(定康大王)께서 즉위하셔서는

(景文王과 憲(獻)康王) 양조(兩朝)에서 은혜를 베푼 것을 본받아 행하고자 하여

 

使緇素 重使迎之

辭以老且病

승려와 속인으로 거듭 사신을 보내어 맞아 오게 하였으나

(대사는) 늙고 병들었다고 사양하였다.

 

太尉大王

[卽位之初 帝命賜太尉 封新羅王]

태위대왕(太尉大王 : 眞聖王)께서는

 

流恩表海 仰德高山

백성에게 은혜를 베풀어서 온 나라를 덮었고

덕있는 사람을 존경하기를 높은 산을 바라보듯 하였다.

 

嗣位九旬 馳訊十返

즉위하신 지 9개월만에

안부를 묻는 사자가 10번이나 다녀갔다.

 

俄聞[音期 通也]腰之苦

遽命國醫往爲之[治也]

그리고 조금 있다가는 허리가 아프다는 이야기를 듣고

국의(國醫)를 보내어 치료하게 하였다.

 

至則請苦狀

大師微破顔曰

老病耳 無煩治

(國醫가) 도착하여 아픈 정도를 물으니

대사는 살짝 웃으며

“노병(老病)일 뿐이니 번거롭게 치료할 것이 없습니다”라고 말하였다.

 

糜飧二時 必聞鍾後進

(國醫가) 미음을 하루에 두 번 들이되

반드시 (朝夕공양을 알리는) 종소리를 들은 후에 올리도록 하였다.

 

其徒憂食力虧 陽戒掌枹者

[今之鍾頭也 枹 音桴 擊鍾槌也]

그러나 제자들은 대사께서 식력(食力)을 잃게 될까 걱정하여

몰래 종 치는 사람에게

 

陽密擊

거짓으로 (여러 번) 치도록 부탁하였다.

 

乃目牖而命撤

하지만 대사께서는 직접 창 밖을 내다보시고

그 거짓을 알고 그만두게 하셨다.

 

將化往 命旁侍 警遺訓于介衆

[左傳 晉士景伯問于介衆 註 介 大也]曰

돌아가실 즈음에

옆의 시중드는 사람을 통하여 대중들에게 유훈(遺訓)을 남기셨다.

 

已過中壽

[上壽百 中壽八十 下壽六十]

難逃大期[死也]

“내 나이 이미 80[中壽]을 넘었으니,

죽음[大期]을 피하기 어렵다.

 

我儂[儂 音農 謂我爲儂]

遠遊

爾曹好住

나는 멀리 떠날 것이니

너희들은 잘 지내도록 하라.

 

講若畫一 守而勿失

공부하기를 한결같이 하며,

(수행의 태도를) 지키고 잃지 말라.

 

古之吏[蕭何曹參]尙如是

今之禪宜勉旃

[旃 與之同也]

옛 관리들도 오히려 이와 같았으니,

지금 선(禪)을 닦는 사람들이야 힘써 노력하여야 마땅할 것이다.”

 

告決裁[裁 纔同]罷

유언을 겨우 마치고

 

慹然

[莊子云 老聃新沐 方將被髮而乾 慹然似非人間 註 慹 音執

凝定貌 又不動貌]

而化

꼼작 않고 열반하셨다.

 

大師性恭謹 語不傷和氣

대사는 성품이 공손하고 삼가,

말이 좋은 분위기를 깨뜨리지 않았다.

 

禮所云

『예기(禮記)』에 이른바

 

中退然

[禮記云 中退然 註云 中 身也 退 謙也 性恭之順 如身之不勝諸衣也]

言吶吶然

[吶 音嬾 言難也 吶吶者 聲低而語緩也 如不出諸口也]者乎

“몸은 겸손하고,

말은 잘 못하는 듯이 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黌[黌 音橫 學舍] 侶[學侶]

학승(學僧)들을

 

必目以禪師

반드시 ‘선사(禪師)’라고 불렀으며,

 

接賓客 未嘗殊敬乎尊卑

손님을 접대할 때에는

그 사람의 신분이 다르다고 해서 대우를 다르게 하지 않았다.

 

故滿室慈悲 烝[衆也]徒悅隨

그러므로 방에 가득한 자비에

제자들이 즐거워하며 따랐다.

 

五日爲期 俾來求者質疑

5일을 기한으로 하여

배우러 온 사람들에게는 의심나는 것을 묻게 하였다.

 

諭生徒則曰

제자들을 깨우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心雖是身主 身要作心師

患不爾思 道豈遠而[汝也]

“마음이 비록 몸의 주인이지만,

몸은 마땅히 마음의 스승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음이 걱정이지,

도(道)가 너희를 멀리하는 것은 아니다.

 

設是田舍兒[農夫]

能擺脫塵萳

비록 (배우지 못한) 시골뜨기라고 할지라도

속세의 얽매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我馳則心馳矣 道師敎父 寧有種乎

내가 달리면 반드시 나아가게 될 것이니,

부처와 스승이라고 해서 어찌 별다른 종자를 가지고 있겠는가?”

 

又曰

또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하였다.

 

彼所啜 不濟我渴

彼所噉 不救我餒[餒 音內 飢也]

盍努力自飮且食

“저 사람이 마신 것이 나의 갈증을 해소시키지 못하고,

저 사람이 먹은 것이

나의 배고픔을 채워주는 것이 아니니,

노력하여 스스로 마시고 먹어야 하지 않겠는가?

 

或謂敎[敎宗]禪[禪宗]爲無同

교종(敎宗)과 선종(禪宗)이 같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吾未見其宗[不同之宗]

나는 그 다르다는 종지(宗旨)를 보지 못하였다.

 

語本夥頤

[陳涉世家云 楚人謂多爲夥 服虔曰 頤者助聲之詞]

非吾所知

쓸데없는 말이 많은 것이고,

나는 알지 못하는 바이다.

 

大較[較音角 大略]

대개

 

同弗與[許也]

나와 같은 것을 한다고 해서 옳은 것은 아니고,

 

異弗非

[禮記儒行篇註 與其所可與 不必同乎己也 非其所可非 不必異乎己也

同於己者 或鄕愿 公而不與 異於己者 或行怪惡而不非]

나와 다르다고 해서 그르지는 않은 것이다.

 

晏坐息機

斯近縷褐被者歟

마음을 편안히 가지고 생활하며,

교사(巧詐)한 마음을 버리는 것,

이것이 수도하는 사람의 행동에 가까울 것이다.

 

其言顯而順

其旨奧而信

(부처의) 그 말은 분명하니 그대로 따르고,

(부처의) 그 뜻은 오묘하니 그대로 믿으라.

 

故能使尋相爲無相

道者勤而行之

[道經云 上士聞道 勤而行之]

그러므로 심상을 무상이 되게 하고

도(道)를 부지런히 행할 뿐

 

不見有岐中之歧

[楊子 有亡羊 岐中多歧 故不知所之 喩大道本一而人各異說]

샛길 속의 샛길은 보지 말아라.”

 

始壯及衰 自貶爲基

食不異糧 衣必均服

(대사는) 젊어서부터 노년(老年)에 이르기까지

스스로 낮추는 것을 바탕으로 하여

먹는 것을 남과 다르게 하지 않았고,

입는 것은 늘 같은 옷이었다.

 

凡所營葺 役先衆人

건물을 짓고 수리할 때에는

남들보다 앞장서서 일하고

 

每言祖師嘗踏泥

[佛造祗垣精舍 舍秋爲匠 迦葉踏泥]

吾豈蹔安栖

늘 “가섭조사(迦葉祖師)께서도 진흙을 이기신 적이 있었는데

내가 어떻게 잠깐이라도 편히 지낼 수 있겠는가”라고 말하였다.

 

至摙[摙 音連 運也 負擔]水負薪

或躬親 且曰

때로는 물을 길어 나르고, 땔나무를 나르는 일까지도

몸소 하시면서

 

山爲我爲塵[言名山由我居而汚也]

我安得安身

“산이 나 때문에 더럽혀졌는데

내가 어떻게 편히 있을 수 있는가”라고 말씀하기도 하였다.

 

其克己勵物 皆是類

자기의 몸을 다스리고 일에 힘쓰는 것이

모두 이와 같았다.

 

大師少讀儒家書

餘味在脣吻 故酬對多韻語

대사께서는 어려서 유가(儒家)의 경전을 읽었고,

그 공부한 것이 여전히 입에 남아 있었으므로

이야기를 주고 받을 때에는 위와 같이 운(韻)을 맞춰 말씀하시는 경우가 많았다.

 

門弟子名可名者 厪二千人

문하(門下)의 제자로서 이름을 들 수 있는 사람이 거의 2천여 명이 되고,

 

索居[獨居貌]而稱坐道場者

曰僧亮 曰普愼 曰詢乂 曰心光

따로 떨어져 있으면서 사찰을 주재하는 이는

승량(僧亮), 보신(普愼), 순예(詢乂), 심광(心光) 등이다.

 

諸孫詵詵[詵 音侁 衆也]

厥衆濟濟[盛貌]

그리고 문하의 손자에 해당하는 자들은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아

무리가 번성하니

 

實可謂馬祖毓 [毓 古育字 長也]

龍子[指大師也]

東海掩西河焉

실로 마조도일이 용의 새끼를 길렀고,

동해(東海 : 新羅)가 서하(西河 : 중국)를 능가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論曰

논(論)하여 말한다.

 

麟史[春秋]不云乎

公侯之子孫必復其始

『춘추(春秋)』에 말하지 않았던가.

훌륭한 집안[公侯]의 자손은 반드시 그 조상을 본받는다고.

 

則昔武烈大王[太宗金春秋也]爲乙粲時

옛날 무열대왕께서 을찬(乙粲)으로서

 

爲屠獩貊乞師計

將眞德女君命

예맥[실은 백제와 고구려]을 무찌를 군사를 빌기 위하여

진덕여왕(眞德女王)의 명을 받들고

 

階覲昭陵皇帝[唐太宗]

面陳願奉正朔[年號]易服章

소릉황제(昭陵皇帝)를 알현했을 때,

직접 황제에게 중국의 역법(曆法)을 시행하고

의복제도를 중국식으로 바꾸기를 청하였었다.

 

天子嘉許 庭賜華裝[中華之服裝也]

授位特進

이에 황제가 허락하고

중국 의복을 하사하고,

특진(特進)의 관작(官爵)을 내려주셨다.

 

一日召諸藩王子宴

大置酒 堆寶貨

俾恣滿所欲

하루는 (황제께서) 여러 나라의 왕자들을 불러 잔치를 열었는데,

술을 크게 베풀고 온갖 보화를 쌓아놓고

마음대로 가지라고 하셨다.

 

王乃杯觴則禮以防亂

繪綵則智以獲多臮[洎同]

대왕께서는 술 드시는 것은

예의를 지켜 어지러운 행동을 하지 않으셨고,

화려한 비단은 지혜를 써서 많이 얻으셨다.

 

辭出

文皇[唐太病也]目送而

歎曰 國器

하직인사를 드릴 때,

황제께서는 멀리 갈 때까지 바라보며

“나라의 인재로다”라고 감탄하셨고,

 

及其行也

以御製幷書溫陽晉祠二碑

曁御撰晉書一部

[太宗卽位之初 魏王泰請撰晉書]賚之[賚音賴 賜也]

중국을 떠나올 때에

황제께서 직접 짓고 쓴 온탕(溫湯)과 진사(晉祠)의 두 비문(碑文)과

직접 편찬하신 『진서(晉書)』 한 질을 내려 주셨다.

 

時蓬閣[校書館]寫是書 裁竟二本

上一錫儲君[太宗太子]

一爲我賜[武烈大王]

당시 비서감(秘書監 : 蓬閣)에서 이 책을 베껴 두 질을 올렸는데

한 질은 황태자에게 주시고,

다른 한 질을 우리에게 주신 것이었다.

 

復命華資官[接伴使]

祖道

[黃帝子纍祖 好遠遊死於道 後人爲行神 註云 纍祖死於道 故云祖道

遠行者祭之 以保行程 祖 祭道神也]

靑門[長安城東門卽灞城門]

또한 높고 귀한 관리들에게

장안성(長安城) 동문(東門) 밖에 나아가 전송하라고 명하셨으니,

 

則寵之優 禮之厚

設聾盲乎智者 亦足駭耳目

이러한 각별한 은총과 두터운 예우에는

지혜에는 어두운 사람일지라도 보고 들어서 놀라게 할 수 있을 정도였다.

 

自茲 吾土一於魯

[子曰 齊一變至於魯 魯一變至於道]

이때부터 우리나라가 (중국의 문물을 받아들여) 미개에서 문명국으로 되었는데,

 

八世之後

大師西學而東化

그로부터 8세손(世孫)인 대사께서는

중국에 유학하여 배운 것으로 우리나라를 교화시켜서

 

加一變至於道 則莫之與京

[左傳懿氏 辭云 五世其昌 幷于正卿 八世之后

莫之與京 註 卿 音羌 京 大也]

이상적인 나라로 변화시키셨으니 (그 공은) 비할 데 없이 크다.

 

捨我謂誰 偉矣哉

이런 분이 아니라면

누구를 위대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先祖[武烈大王]

平二敵國

[高句麗百濟也]

선조(先祖)는 두 적국(敵國)을 평정하고

 

俾人變外飾[易服章]

大師降六魔賊

俾人修內德

문명에 접하게 하여주셨고,

(後孫인) 대사께서는 불법을 방해하는 악한 것을 물리쳐서

마음의 덕을 닦게 해주셨다.

 

故得千乘主 兩朝[景文獻康]拜起

四方民萬里奔趨

그러므로 두 임금께서는 스승으로 모셨고,

사방의 백성은 만 리를 멀다 하지 않고 모여들었는데,

 

動必頤使之

[賈誼曰 頤指如意 言易使也]

靜無腹非者

(대사가) 원하는 대로 따르면서

아무런 불평이 없었다.

 

庸詎非應半千

[ꝙ池筆硯云 古讖云 黃河水一千年一淸 聖人出 五百年一淸 賢人出]

그러니 5백년 마다 현인(賢人)이 나타난다는 말대로

 

而顯大千

[金剛經云 三千 大千世界所有珍財以用普施 註云

三千 大千中千小千]者歟

성인이 이 세계에 모습을 나타낸 것이 아니겠는가.

 

復其始之說

[指上麟史引文也]

亦何慊乎

[慊 音歉 恨也 意不滿也]

‘(훌륭한 집의 자손은 반드시) 조상을 본받는다’는 말에

어찌 부족함이 있는가.

 

彼文成侯[張良諡號]

爲師漢祖

전에 장량(張良)은 한(漢) 고조(高祖)의 스승이 되었으면서,

 

大誇封萬戶位列侯

爲韓相子孫之極 則궁[[人+曲]

[[人+曲]  音穹 小貌]

만호(萬戶)에 봉(封)해지고 제후가 된 것을 크게 자랑하여

한(韓)나라 정승의 자손으로서 지극히 명예로운 것이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비루한 일이다.

 

假學仙

有終始果能白日上昇去

於中止得 爲鶴背上一幻軀爾

[言子房托仙之非]

비록 신선술(神仙術)을 공부하였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태양 위로 날아 갈 수 있겠는가.

중간에 그쳐서

학(鶴) 위에 한 몸을 얹고 다니는 데에 머무를 뿐일 것이다.

 

又焉珿

[珿音促 齊等]

我大師拔俗於始

그러니 어찌 우리 대사가 세속의 무리 가운데 뛰어나서,

 

濟衆於中 潔己於終矣乎

여러 중생을 구제하고,

스스로를 깨끗이 하는 것으로 시종일관 한 것에 견줄 수 있겠는가.

 

美盛德之形容

古尙乎頌 頌偈類也

[詩大序所謂美盛德之形容 以其成功

告于神明者也 蓋頌與容 古字通用 故序以此言之也]

뛰어난 덕의 모습을 칭송하는 데에는

옛날부터 송(頌)을 사용하였으니,

(불교의) 게송(偈頌)도 비슷한 것이다.

 

扣寂

[扣寂 遠公註 扣虛課寂]

爲銘 其詞曰

침묵을 깨고서

명(銘)을 지으니

다음과 같다.

 

可道爲常道

[道德經云 道可道 非常道註 道本無名 若道可爲者

乃有爲之事 非常道也 可道 如禮不虛道之道 常者 恒久不變之謂]

如穿草上露

도(道)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을 늘 몸에 지니는 것은

풀 위의 이슬에 구멍을 내는 것과 같고,

 

卽佛爲眞佛

[卽馬祖說法意云 卽心卽佛爲眞佛]

불법에 나아가 참된 부처가 되는 것은

 

如攬水中月

물 속의 달을 잡는 것과 같다.

 

道常得佛眞 海東金上人

그런데 도를 늘 몸에 지니고 참된 부처가 된 사람은

해동(海東)의 김상인(金上人)이다.

 

本枝根聖骨

瑞蓮資報身[脩臂授蓮]

五百年[應應半千句也]擇地[雞林]

十三歲離塵[出家]

본래 성골(聖骨)의 자손이고,

상서로운 연꽃을 인연으로 하여 태어났네.

오백 년만에 땅을 골라 태어나서,

열세 살에 속세를 벗어났네.

 

雜花引鵬路[授華嚴于浮石]

窾木[窾木 舟也 窾音款 空也] 浮鯨津

화엄이 불법에의 길을 열어주었고,

배를 타고 求法에 나섰네. (하나)

 

觀光[悟道]堯日下[中原]

巨筏悉能捨

[指徹公化去後浪游]

중원에서 두루 공부하고서,

어느 것에 집착하지 않음을 깨쳤네.

 

先達[高僧]皆歎云

苦行無及者

선진(先進)들이 모두 감탄하네,

수행에 따를 자 없다고.

 

沙之復汰之

東流是天假

[沙之云云 唐武宗會昌年中

仍戒賢僧 沙汰佛法 勑外國僧各還本國云云 故天假]

중국에서 불교가 도태되어

귀국한 것은 하늘이 기회를 주신 것이네.

 

心珠瑩麻谷

目鏡燭桃野

[商受本記 東海桃索山有太桃樹

根盤五千里 東西南北 枝長各三千里 是以東土謂之桃野]

깨우침의 구슬이 마곡(麻谷)에서 빛나고,

거울 같은 눈이 우리나라를 비추었네. (둘)

 

旣得鳳來儀

衆翼爭追隨[班史云 昭帝時 鳳集魯郡 羣鳥從之]

試覰龍變化[比大師也]

凡情那測知

이미 봉황의 훌륭한 모습,

뭇 새가 다투어 따르네.

한번 용의 변화하는 재주를 보라.

보통 생각으론 헤아리지 못하리.

 

仁方[東土]示方便

聖住强住持

松門遍掛錫

巖徑難容錐

온나라에 능력을 보이고서

성주사(聖住寺)에 힘써 머무르셨네.

여러 절을 두루 돌아다님에

바위 사이 길 다니지 않음이 없었네. (셋)

 

我非待三顧

[昭烈三顧諸葛亮於草堂之中]

임금의 총애를 바라지 않았고,

 

我非迎七步

[通載云 北齊文宣王謁僧稠 稠不坐不迎 其徒有勸迎者 稠曰

昔賓頭廬尊者 迎阿育王 起行七步 致王七年失國 貧道雖寡德 冀王獲福耳]

임금의 뜻에 영합하지도 않았네.

 

時行則且行

爲緣付囑故

二王[景文王獻康王]拜下風

一國滋甘露

때가 이르면 나아갔으니

그것은 옛 인연과 불법을 전하라는 부처의 부촉을 위해.

두 왕이 존경하니

온 나라가 부처의 가르침에 젖었네.

 

鶴出洞天秋[出山]

雲歸海山暮[入山]

용이 나오면 골짜기가 가을빛,

구름이 돌아가면 바다와 산이 저녁. (넷)

 

來貴乎葉龍

[說苑云 哀公不禮子張 子張去曰 君好士如葉公 葉公子高好龍

天龍降之 窺頭於牖 施尾於堂 葉公失魂 五色無主 此非好龍 好似龍非龍也]

세상에 나오면 섭룡(葉龍)보다 귀하였고,

 

去高乎冥鴻

[冥 空 色斯之鴻 上句喩入王宮 此句喩還山]

세상을 벗어나면 기러기보다 더 높이 날았네.

 

渡水陿巢父

[高士傳云 許由字武仲 聞堯以天下讓焉 遁於潁水之陽 箕山之下

堯又召爲九州之長 由不欲聞之 洗耳潁濱 巢父牽犢欲飮之 見由洗耳曰

汚吾犢口 遂牽犢上流 今師則入京 故反陿巢父]

물을 건너 나옴은 소부(蘇父)를 비루하게 여겼기 때문이고,

 

入欲超朗公

[通載云 釋僧朗風度凝遠 飮啗不常 每在京洛 循乞飮饍 未嘗入山

今師則還山曰超也]

산에서 수도할 땐 승량(僧朗)보다 열심이었네.

 

一從歸島外[自中原返東國]

三返遊壺中

[列仙傳云 費長房爲汝南市掾 見一老翁賣藥掛一壺於肆頭

市罷 入壺中 唯長房覩之 因再拜奉洒脯 翁乃與俱入別有世界 壺中比王宮也]

한 번 귀국한 뒤로

세 번 궁중에 갔네.

 

羣迷漫臧否

至極何異同

어리석은 사람은 그르다고 생각하지만,

지극한 이치엔 다름이 없네. (다섯)

 

是道澹無味 然須强飮食

他酌不吾醉 他飧不吾飽

이 도(道)는 담백하여 맛이 없지만,

힘써서 마시고 먹어야 하네.

남이 마신 술 내가 취하지 않고,

남이 먹은 밥 내가 부르지 않네.

 

誡衆黜心何 糠名復粃利

勸俗飾身何 甲仁復冑義

[禮記云 載仁而行 抱義而處 又云儒有忠信 以爲甲冑]

대중에게 마음을 어떻게 가지라 했나,

명예는 겨처럼 부귀는 쭉정이처럼.

세속의 몸가짐은 무엇을 권했나,

인(仁)을 갑옷으로 의(義)를 투구로. (여섯)

 

汲引無棄遺 其實天人師

昔在世間時 擧國成琉璃

이끌어 지도함에 빠뜨림 없어,

실로 인류의 스승이시다.

전에 살아계심엔

온나라가 유리(琉璃)같더니,

 

自寂滅歸後 觸地生蒺藜

[西域記云 玄奘法師到摩竭國菩提樹下 金剛座上 蒺藜匝生]

돌아가심에

온통 가시밭이네.

 

泥洹一何早

[通載 老子至流沙嘆曰 吾生一何晩 泥洹一何早 不見釋迦文 中心空懊惱]

今古所共悲

열반은 왜 이리 빠른지,

전과 지금 다 같이 슬프네. (일곱)

 

甃石[建塔也 甃 音秋 井甃 又結砌也]

復刊石[竪碑也]

藏形且顯跡

탑(塔)을 만들고 비(碑)를 새겨서

형체는 감추고 자취는 드러낸다.

 

鵠塔點靑山 龜碑撑翠壁

是豈向來心 徒勞文字覛[覛音麥相視貌]

사리탑은 푸른 산에 자리하고,

거북이 업은 비석은 푸른 절벽에 버티고 섰네.

이것이 어찌 여태까지의 마음이 되리오마는,

다만 문자로라도 살펴서

 

欲使後知今 猶如今示昔

뒤에 오는 사람이 오늘을 알게 함이니,

지금에 옛일이 드러남과 같은 것. (여덟)

 

君恩千載深 師化萬代欽

임금의 은혜, 천년을 흐르고,

대사의 교화는 만대(萬代)에 존경되리라.

 

誰持有柯斧

[中庸云 詩云 伐柯伐柯 其則不遠 執柯而伐柯 睨而視之 猶以爲遠

君子以人治人 其人改之則止]

누가 자루 없는 도끼로 인재를 키우고,

 

誰倚無絃琴

[比師無生說法也 晉陶潛得素琴一張 不設絃而撫之曰

但得琴中趣 何勞琴上聲]

누가 줄 없는 거문고로 가르침을 이을까.

 

禪境雖沒守

客塵寧許侵

선경(禪境)을 비록 지키지 못한다 해도

번뇌야 어찌 들어오리오?

 

雞峯待彌勒[付法藏傳云 迦葉結集付法已 持應器與僧伽梨

入雞足山 三峯合爲一 乃至彌勒出世後 出定而奉獻也

末會後與大衆登山 彈指則方出世也]

계족산(鷄足山) 아래서 미륵을 기다림이니,

 

將在東雞林

어서 동쪽 계림(鷄林)에 나타나소서.

 

종제(從弟)인 조청대부(朝請大夫), 전(前) 수집사시랑(守執事侍郞)으로 자금어대(紫金魚袋)를 하사받은 신(臣) 최인연(崔仁滾)이 왕명을 받들어 씀.

[출전:『譯註 韓國古代金石文』Ⅲ(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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