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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암사 나옹화상, 이색의 나옹화상탑명, 이성계의 또 다른 왕궁

천보산 회암사 나옹화상탑 복원 이성계의 또 다른 왕궁, 회암사 https://www.youtube.com/watch?v=1lvXzqpu0VU http://contents.history.go.kr/mobile/kc/view.do?levelId=kc_r200640&code=kc_age_20 우리역사넷 회암사지(檜巖寺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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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칠불통게계(七佛通偈戒) 가 곧 모든 부처님들의 가르침이다.

 

諸惡莫作 衆善奉行 自淨其意 是諸佛敎

제악막작 중선봉행 자정기의 시제불교

모든 악을 짓지 말고, 모든 선을 받들어 행하라.

스스로 그 뜻을 깨끗이 하는 것이 모든 부처님들[七佛]의 가르침이다.

 

七佛이란 석가불 이전의 六佛과 함께 통칭하는 말,

https://kydong77.tistory.com/20780

 

七佛 傳法偈/ 佛祖直指心體要節

세계최초의 금속활자본, 1377년 청주 흥덕사刊 https://www.youtube.com/watch?v=xUOL3-lb5nE https://www.youtube.com/watch?v=6V9spjNV8sY https://blog.naver.com/mcrane/110177502659 과거칠불[過去七佛] - 오도송悟道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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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존 비바시불 Vipasyin - 毘婆尸佛 <淨觀佛> 

   身從無相中受生 

   신종무상중수생,   몸은 모양이 없는 속에서 생명을 받은 것이니

   猶如幻出諸形像 

   유여환출제형상,   형상으로 나타난 모든 것은 허깨비와 같다네,                        

   幻人心識本來無           * 심식  心識 citta-vijinana: 인식하여 분별하는 마음 

   환인심식본래무,  허깨비 같은 사람의 심식도 본래 없는 것이니    

   罪福皆空無所住

  죄복개공무소주.   죄나 복도 전부 허공과 같아 머문 곳이 없다네. 

   <파파라수波波羅樹 아래서 성불>   

 

 제2존 시기불 SSikhi - 尸棄佛 < 最上佛 佛頂 頂髮 >

   起諸善法本是幻 

   기제선법본시환.   모든 선한 법을 지어내는 것이 본래 허깨비요

   造諸惡業亦是幻                           *환 幻 : 미혹 허깨비 妖幻 幻視 

   조제악업역시환,  모든 악업을 만들어 내는 것도 또한 허깨비라.

   身如聚沫心如風 

   신여취말심여풍,   몸은 거품이 모인 것이요 마음은 바람 같으니

   幻出無根無實性                           *실성 : 眞如

   환출무근무실성,  幻(환)에서 나온 것은 뿌리도 없고 實性도 없다네. 

  <분타리수分陀利樹 아래서 성불>  

 

 제3존 비사부불 Visvabhu - 毘舍浮佛 <遍一切處自在佛> 

   假借四大以爲身                       * 사대四大 : 흙 물 불 바람[사물을 구성하는 원소] 

   가차사대이위신, 地水火風(지수화풍) 잠시로 빌려서 이 몸을 이루게 되니

   心本無生因境有                        * 무생無生 : 동요가 없음 不生不滅 

   심본무생인경유,  마음은 본래 무생이나 경계를 따라 생겨나네.

   前境若無心亦無 

   전경약무심역무,   만약 앞선 경계에 무심하다면 마음 역시 없고

   罪福如幻起亦滅

   죄복여환기역멸,   죄나 복도 허깨비와 같아 일어나자 사라지네.   

 <사라수娑羅樹 아래서 성불>  

 

 제4존 구류손불 Krakucchanda - 拘留孫佛 <所應斷已斷佛 頂結>

   見身無實是見佛 

   견신무실시견불,  몸의 실상이 없음을 안다면 이는 부처를 본 것이오.

   了心如幻是了佛 

   요심여환시요불,  마음이 허깨비임을 알았다면 곧 부처를 이룬 것이다.

   了得身心本性空 

   료득신심본성공,  이 육신과 마음의 본래 성품이 공함을 깨달았거늘

   斯人與佛何殊別

   사인여불하수별,  이 사람이 어찌 부처와 다를 바가 있으리오.  

 <시리사수尸利沙樹 아래서 성불>

    

 제5존 구나함모니불 Kanakamuni - 拘那含牟尼佛 <金寂靜> 

   佛不見身知是佛 

   불불견신지시불,  부처 몸은 볼 수 없고 아는 이것이 부처이다.

   若實有知別無佛 

   약실유지별무불,  만약 참으로 안다면 따로 부처가 없느니라.

   智者能知罪性空 

   지자능지죄성공,  지혜로운 이는 죄의 성품이 공함을 알았기에

   坦然不懼於生死

   탄연불구어생사,  항상 태연하여 생사를 두려워하지 않느니라. 

  <오잠파라수烏暫婆羅樹 아래서 성불>

 

 제6존 가섭불 Kasyapa - 迦葉佛 <飮光佛> 

   一切衆生性淸淨 

   일체중생성청정,  일체 중생들의 성품은 맑고 깨끗해서

   從本無生無可滅 

   종본무생무가멸,  본래부터 남도 없고 사라짐도 없다네.

   卽此身心是幻生 

   즉차신심시환생,  이 몸과 마음은 환으로 생겨난 것이니  

   幻化之中無罪福                                         환幻 : 허깨비

   환화지중무죄복,  허깨비로 생긴 것은 죄도 복도 없다네. 

    <이구류수尼拘類樹 아래서 성불>


  

 제7존 석가모니불 Sakyamuni - 釋迦牟尼佛<能仁寂默>

   法本法無法 

   법본법무법, (법)엔 본래 법이 없음이 법이요

   無法法亦法 

   무법법역법,  법이 없다는 법 또한 법이로다.

   今付無法時 

   금부무법시,  이제 無法을 전하고자 하는 때

   法法何曾法

   법법하증법,  法 法하니 일찍이 무슨 법인고.   

       <보리수菩提樹 아래서 성불>


 

 칠 불 통 계 게<七佛通戒偈>  

   諸惡莫作 

   제악막작,   모든 악한 일들은 짓지 말고

  衆善奉行 

  중선봉행,   선한 일들은 받들어 행하라. 

   自淨其意 

   자정기의,   자기 마음을 깨끗이 맑히는 것 <생각에 사로잡히지 않음>

   是諸佛敎

   시제불교,   이것이 모든 붓다의 가르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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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각나옹화상행장(禪覺懶翁和尙行狀), 승원가 (僧元歌)

고려국 왕사 대조계종사 선교도총섭 근수본지 중흥조풍 복국우세 보제존자 시선각나옹화상 행장 (高麗國王師 大曹溪宗師 禪敎都±攝 勤修本智 重興祖風 福國祐世 普濟尊者 諡禪覺懶翁和尙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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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옹화상 승원가 (懶翁和尙僧元歌)
http://www.kr.buddhism.org/naong.html

승원가 (僧元歌)

*훈민정음이 없던 시절에 한자를 빌어쓰기는 했으나 우리말 표기에 고심하신 흔적이 역력하군요. 이건 우리말 노래입니다. 나옹화상의 걸림없는 사고의 깊이를 존중할 수밖에요. 한자로 우리말 적는 솜씨를 보면 나옹스님은 불심에서 우러난 경전 해석뿐만 아니라 우리말 표기에도 신미대사 이전에 탁월한 선구자였음을 확언할 수 있습니다. 아래 <승원가>에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중국인들도 못 읽는 한자어 구사가 경이롭기만 합니다. 한자는 본시 동이족이 만들었걸랑요.공자, 노자도 동이족이 확실합니다. 짱꼴라들이 군비경쟁 말고 뭘 알겠어요?

[참고] 짱꼴라는 본래 중국인을 가리키는 ‘쭝꾸오루〔中國兒〕’에서 나온 말이다. 중국 사람들 스스로가 자신들을 점잖게 가리킬 때 부르고 있는 호칭이다.

[바뀐 뜻] 우리나라에서는 이 말이 중국인을 비하해 부르는 말로 널리 통용되고 있다. 더 나아가서는 자장면 집을 하는 중국인만을 부를 때 쓰는 속어로 많이 쓴다.

主人公主人公我
주인공 주인공아    

世事貪着其萬何古
세사탐착 그만하고 

慙愧心乙而臥多西
참괴심을 이와다서

一層念佛何等何堯   
한층염불 어떠하뇨 

 昨日少年乙奴
어젯날 소년으로   

 今日白髮惶恐何多
금일백발 황공하다 

朝績那殘無病陀可
아침나절 무병타가

夕力羅未多去西
저녁나절 못다가서 

手足接古死難人生
손발접고죽난인생  

 目前頗多何多
목전애 파다하다   

今日以士無事旱達
금일이사 무사한달  

明朝乙定爲孫可
명조를 정할손가     

困困而拾我會我
고생고생이 주어모아 

幾百年生羅何古
몇백년 살라하고     

 財物不足心隱
재물 부족심은       

天子羅道無殘難而
천자라도 없잔나니 

貪欲心乙揮耳治古
탐욕심을 물리치고 

精神乙振體出餘
정신을 떨쳐내여    

奇妙旱山水間厓
기묘한 산수간애    

物外人而道汝文多
물외인이 되려문다 

人道其難業去等
사람되기 어렵거던 

盲龜遇木如陀何而
맹구우목 같다하니 

佛菩薩恩德以奴
불보살 은덕으로    

此身道也出臥是以
이몸되야 나왔으니 

 伊安耳多幸何也
이아니 다행하냐   

佛體主恩德乙奴
부처님 은덕으로    

寸步道忘之末古
촌보도 잊지말고    

阿邇陀佛於西何也
아미타불 어서하야 

極樂乙奴歸我可自
극락으로 돌아가자 

主人公主人公我
주인공 주인공아    

殘傷古可憐何多
불쌍코 가련하다    

百年刀牟多生隱
백년도 못다사는    

以一身乙具之未陀
이한몸을 구지믿아 

無散慈味見羅何古
무산재미 보라하고 

飮古餘隱田沓四其
먹고남은 전답사기 

用古餘隱財物以難
쓰고남은 재물로난 

時土老脛營何也
시사로 경영하야    

無益旱貪心乙奴
무익한 탐심으로    

頂上厓寶羅限多
정상애 보랴한다    

覺治餘隱主人公我
깨치려는 주인공아 

石崇耳刀財物奴死古
석숭이도 재물로 죽고 

苑丹耳刀君殘羅而
원단이도 구잔나니

艱難界有餘界臥
가난계 유여계와    

(自+乙)刀其未刀其難
잘되기 못되기난    

前生造隱大奴
전생애 지은대로    

此身刀也出來除介
이몸되야 나올적에 

天定以奴馬鍊何也
하늘이 정한대로 마련하 

在天明白何也去等
재천명백 하얏거던 

草木末露如隱
초목끝애 이슬같은 

危太旱以命壽乙
위태한 이목숨을    

千年外厓生羅何古
천년밖애 살라하고 

其大道奴乞加其那
그대도록 빌더구나 

嗔心惡生顔太上禮
진심악생 얼굴우에

對面何其哀納通多
대면하기 애달도다 

主人公主人公我
주인공 주인공아 

目前厓見銀去是
목전애 보는 것이 

枚枚治鏡于以堯
낱낱이 거울이요  

耳末厓聞難去是
귀끝애 듣난 것이 

枚枚治鏡于以耳
낱낱이 거울이니  

未聞難也主人公我
못듣난야 주인공아 

未見難也主人公我
못보난야 주인공아 

吾意用心毛練去等
나의용심 모르거던 

南乙見古覺治我文
남을 보고 깨칠아문 

秦蘇晋漢小光道
진소진 한소광도 

財物奴覺治去隱
재물로 깨치거는 

汝隱何之毛奴難多
너는어찌 모로난다 

期別無隱惡眞病以
기별없는 모진병이 

一朝厓身愛入於
일조애 몸애들어 

三百六身骨絶馬當
삼백육신 골절마당 

寸寸苦痛割除
마디마디 고통할제 

八珍味造隱飮食
팔진미 좋은음식    

好陀何古飮古寶羅
좋다하고 먹어보라 

最親至親會我入於
최친지친 모아들어

至誠乙奴勤何也道
지성으로 근하야도 

冷水外其未食介多
냉수밖에 못먹게다 

哀而古主人公我
아이고 주인공아    

前生厓怨讐奴西
전생애 원수로서   

債報厓入病耳
빚값애 든병이       

牛黃乙奴何之何面
우황으로 어찌하며 

人三乙奴保其何也
인삼으로 보기하야 

鞭作如加依迷人達
편작에 들이민들    

天命乙何爲耳
천명을 어찌하리    

千金乙虛費何古
천금을 허비하고    

萬財乙皆入於道
만재를 다들여도    

勞耳無功分而奴多
노이무공 뿐이로다 

於臥可笑吾古可笑吾多
어와가소롭고 가소롭다 

佛法乙于笑內幾
불법을 우스여겨    

念佛一番不以何古
염불한번 아니하고 

毫活呼如單耳多可
호활부려 다니다가 

 病中厓後悔何也
병중애 후회하야   

其前那也佛供何面
기전나야 불공하며 

觀踵菩薩急希呼
관음보살 급히불러

項乾羅井未破其老
목말라 샘파기로   

本來無難汝情誠乙
본래없난 네정성을 

臨渴界四我當何達
임갈계사 아당하달 

何隱佛體應惑何耳
어떤부처 응감하리 

閻羅大王使忍差使
염라대왕 부린차사 

令惡何古險限使者
영악하고 험한사자 

汝門前當到何也
너문전애 당도하야 

人情無是達那入於
인정없이 달라들어 

霹靂可治者所來除
벽력같이 잡아내제 

去大馬多交主人
갈때마다 사귄주인 

死自生自親限友至
죽자사자 친한벗이 

汝罪禮代身去耳
네죄예 대신가리    

生覺建大其誰在是面
생각건대 그누구이시며 

肯仰何古貴限圍乙
사랑하고 귀한지를 

毛來而生覺何隱
몰래 생각하는       

妻子眷屬一家中
처자권속 일가중애 

代身去而其誰有古
대신갈이 그누구인고 

限平生晝夜無而
한평생 주야없이    

寒爲署爲生覺殘古
추위더위 생각잖고 

千深萬古何也
천심 만고하야      

懃心以奴莊萬何古
근심으로 장만하고 

慾心以奴成奴生隱
욕심으로 일워나온 

玉地玉¿家莊器物
옥지옥답 가장기물 

奴婢牛馬千財萬財
노비우마 천재만재 

我毛耳我可溫達
아무리 아까온달    

何而去人情何面
어디가 인정하며    

負古去面抱古去也
지고가며 안고가랴 

空手以奴出我多可
빈손으로 나았다가 

空手以奴入練去伊
빈손으로 들어가니 

百年貪物一朝塵乙
백년탐물 일조진을 

親古無信冥間路
친구없신 어둔길에 

割吉無難孤魂以金
할길없난 고혼이쇠 

十王殿推列割除
시왕전애 추열할제 

牛頭那刹馬頭那刹
우두나찰 마두나찰 

左右片列立何也
좌우편애 열립하야 

番介如隱目乙浮古
번개같은 눈을뜨고 

霹靂如隱惡眞聲
벽력같은 모진소래 

一時禮呼痛何面
일시에 호통하며 

秋霜如歎創劍以奴
추상같안 창검으로 

腋腋被擧西其每
옆옆이 들서기매    

直奴何羅呼令割除
바로하라 호령할제 

骨節耳頹 於之古
골절이 무너지고    

萬身耳血色治羅
만신이 피빛이라    

何隱親古後發見耳
어느친구 훗날보리 

妻子眷屬一家馬當
처자권속 일가마다 

我乙死多古哀被哭達
나를죽었다고 슬피운달 

底彦拙練耳知耳
저런줄 어이알리    

悲抱古庶論之羅
슬포고 서론지라    

高聲大聲痛哭何古
고성대성 통곡하고 

子孫親戚他不以達
자손친척 남아닌달 

死隱父母思覺何也
죽은부모 생각하야 

薦度何自議論何其
천도하자 의논하기 

千萬中厓幾枚治古
천만중에 몇낱이고 

哭其難其萬何古
울기난 그만하고    

初喪三喪去隱日愛
초상삼상 가는날애 

生命壽除乙捉夫面
명수 덜잡으면    

其大道奴설殘難伊
그대도록 설잖나니 

我年故依托何古
내연고 의탁하고    

他無目乙慰老何也
남무눈을 위로하야 

摩之馬羅何去萬隱
마지마라 하거만은 

罪隱汝造如道
죄은 너지은대로    

霹惡隱我當去等
벼락은 내당커던    

雪上加霜無散事古
설상가상 무산일고 

生前富貴多子孫乙
생전부귀 많은자손을 

人岩馬中不所何達
사람마중 불바하달 

死隱後加玉雪多
죽은후애 더옥설다 

平生造隱罪乙
평생애 지은죄를    

曆曆希相考何也
역력히 상고하야   

八萬四千無邊獄厓
팔만사천 무변옥애 

重恨罪奴磨鍊何古
중한죄로 마련하고 

其餘隱小隱罪奴
그남은 적은죄로    

牛爲建耳馬爲建而
소되건이 말되건이 

犬獸生蛇岩九令爲面
개짐생 뱀구렁되면 

何等恨善事奴西
어떠한 좋은일로서 

人道厓還生何耳
인도애 환생하리 

生覺建大加玉說多
생각건대 더옥설다 

主人公主人公我
주인공 주인공아 

盟誓何古念佛何也
맹세하고 염불하야 

繹迦世尊勸恨念佛
석가세존 권한염불 

十六觀經謂乙馬三
십륙관경 이를말삼 

日沒觀而第一羅
일몰관이 제일이라 

西山知隱年乙
서산애 지는해를    

開目閉目厓
뜨는 눈 감는 눈     

眼前厓掛於置古
안전애 걸어두고    

阿邇陀佛大聖號乙
아미타불 대성호를 

晝夜無是誦吾多可
주야없이 외오다가 

定念而道亡何古
정념이 도망하고    

雜念而西道乙去等
잡념이 서돌거던    

勸勸何耳自何也
부지런히 자책하야 

還尙活可懃心何以
환생할가 근심하여 

世事可治肯着何也
세사같이 애착하야 

일구월심 공부하리 
日久月深工夫何耳

世事念隱小去只古
세사생각은 적어지고 

念佛而主丈道也
염불이 주장되야    

一心念佛何等何堯
일심염불 어떠하뇨 

念佛脛翫景何古
염불경 구경하고    

至誠矣奴念佛何面
지성으로 염불하면 

念佛人姓名字隱
염불인 성명자는    

閻羅大王冥府案內
염라대왕 명부안내 

必多是拔去古
반다시 빼가고       

極樂世界蓮花上禮
극락세계 연화우에 

明白希記錄何古
명백히 기록하고    

觀踵勢至大菩薩耳
관음세지 대보살이 

中媒道也多而多可
중매되야 다니다가 

以命壽盡割底計
이목숨 다할적에    

無數恨大菩薩果
무수한 대보살과 

수많은 성문연각 數多恨聲門緣覺
各各而香火執古
각각이 향화잡고 

雙雙而舞乙秋面
쌍쌍이 춤을추며 

百千風流鳴理是古
백천풍류 울리시고 

頃刻間厓往生何耳
경각간애 왕생하리 

極樂世界莊嚴見小
극락세계 장엄보소 

黃金以地而爲古
황금이 땅이되고 

七寶澤廣隱池是
칠보연못 넓은못이 

處處現氣是乃
처처애 생기시나    

滿澤而馱臥有古
가득이 되어있고    

水下伸如沙來
물아래 피연모래    

旬色疑奴黃金而堯
순색으로 황금이요 

地中厓蓮花花讚
땅속애 연화꽃안    

靑蓮花黃蓮花臥
청련화 황련화와    

赤蓮花白蓮花臥
적련화 백련화와 

車厓朴古可歎蓮花
수레바퀴 같은연화 

四節無時伸如有古
사철없이 피여있고 

七寶難自自恨大
칠보는 자자한대    

靑色而面靑光以堯
청색이면 청광이요 

黃色而面黃光以堯
황색이면 황광이요 

靑黃赤白四色光明
청황적백 사색광명 

西奴西奴相雜何古
서로서로 상잡하고 

香臭難美妙恨大
향취난 미묘한데 

其上厓樓閣家耳
그우애 누각집이 

虛空中厓生其是乃
허공중애 생기시나 

七寶奴莊嚴何耳
칠보로 장엄하니   

黃金白銀耳堯
황금 백은이요      

琉璃柱臥馬瑙柱奴
유리주와 마노주로 

色色矣奴所治是古
색색으로 바치시고 

七疊軒間造隱上厓
칠층난간 지은우애 

七寶網乙揮如治古
칠보망을 둘러치고 

七寶香水寶拜木以
칠보향수 보배목이 

七寶奴揮如西羅
칠보로 둘녔어라    

靑鶴白鶴鸚鵡孔子
청학백학 앵무공작 

可鷹可 功名等而
가응가곤 공명등이 

可卿可卿鳥金生而
가지가지 새짐생이 

七寶池香樹間厓
칠보연못 향나무새애 

一以飛那切以可古
이리날라 저리가고 

切耳飛那一以來耳
저리날라 이리오니 

去面來面鴨隱聲厓
가며오며 우는소래 

聲以馬當說法以堯
소리마다 설법이요 

淸風以蕭蕭何面
청풍이 소소하며    

七寶行樹撓動何古
칠보행수 요동하고 

彦脛當脛出隱聲厓
은경당경 나는소래 

白千風流泣而是古
백천풍류 울리시고 

聞而隱聲哀麻當
들리는 소래마다 

念佛說法忿以奴多
염불설법 뿐이로다 

其分仁加底極樂隱
그뿐인가 저극락은 

農事乙不以何也道
농사를 아니하야도 

衣食乙生覺何面
의식을 생각하면    

衣食而自來何古
의식이 자래하고    

默默何古生覺何小
잠잠하고 생각하소 

少年時未恨念佛
젊을때에 못한염불 

老懃後厓割吉無多
늙은후에 할길없다 

無常殺鬼人情無西
무상살귀 인정없어 

二十前三十前厓
이십전 삼십전애    

限定無是死難人生
한정없이 죽난인생 

如其底其無數何而
여기저기 무수하니 

老去等隱念佛何自
늙거던 염불하자   

稱歎末何念佛何小
칭탄말고 염불하소 

平坐割除未恨念佛
평안할제 못한염불 

病入後割吉無多
병든후애 할길없다 

今日明日此日這日
오늘내일 이날저날 

嚴犯加犯過內多可
엄벙덤벙 디나다가 

意無是死去之面
뜻없이 죽어지면    

寒氷地獄火湯地獄
한빙지옥 화탕지옥 

銅柱地獄鐵牀地獄
동주지옥 철상지옥 

可枝可枝深隱地獄厓
가지가지 깊은지옥애 

裂底出面斬也來面
찢어내며 베여오며 

煮之去耳烹馬去耳
지지거니 삶아거니 

壹夜壹晝厓
하룻밤 하룻낮애 

萬邊死其面萬邊脫羅來而
만번죽으며 만번사라나니 

誰多臨而道也何古
수많은이 되랴하고 

婆分說節隱伸脫
바쁜말 저른신탈 

可枝可枝稱脫奴西
가지가지 칭탈로서 

嚴處隱世嚴師馬
엄첩은 세엄사마    

念佛厓拜道去等
염불애 배도거던    

以世上生我有西
이세상애 살아있어 

被古食去刀
잘입고 잘먹어도    

一那 腹古布古
한나잘 베고푸고    

 一那 寒隱去刀
한나잘 추운것도   

忍其難吾去隱
참기 어렵거든      

況物面百千萬劫厓
하물며 백천만겁   

間短無是大苦痛乙
간단없이 대고통을 

其大之無散乃其
그다지 업산너겨    

毫活不如行割小也
호활불여 행할소냐 

可怜人生我人事乙
가령인생 내인사를 

稱讚恨達無於何面
칭찬한달 무어하며 

悔謗恨達時氣何也
회방한달 시기하랴 

稱耳苦樂乙
일컬어 고락을       

八風厓一謂汝刀
팔풍애 일위여도    

風岩如坦人間事乙
바람같안 인간사를 

知建體婆而末古
알은체 바이말고    

如聾如盲何也
여농 여맹하야       

主人公主人公我
주인공 주인공아    

人事不成夫大道如
인사불성 부대되어 

阿邇陀佛於西何自
아미타불 어서하자 

于耳佛體大聖尊而
우리부처 대성존이 

去之末奴欺其是也
거짓말로 쇠기시랴 

誹謗心饋之末古
비방심 먹지말고    

耳萬人生道也悉除
이만인생 되얏을제 

極樂國蓮花臺乙
극락국 연화대를    

自掌中厓決斷何自
손바닥에서 결단하자 

南無阿邇陀佛
나무아미타불        

立我世上毫傑野羅
이봐세상 호걸들    

 離苦得樂何吾乙法乙
이고득락 하올법을

四十九年說法中厓
사십구년 설법중애 

可抄可抄見餘建萬隱
가초가초 뵈였건만은 

五濁惡世末法中厓
오탁악세 말법중애 

幸得人身道也産耳
행득인신 되었으니 

罪上耳重恨之羅
죄상이 중한지라 

六道萬行悉大業西
육도만행 쓸데없어 

諸法門乙孟器是耳
제법문을 맹기시니 

念佛何也極樂可文
염불하야 극락감은 

末世羅事有益恨珠乙
말세라사 유익한줄 

邊地上厓觀察何耳
변지상애 관찰하리 

文殊普賢大菩薩果
문수보현 대보살과 

揷三祖師歷代聖賢
삽삼조사 역대성현 

次次奴奉持何事
차차로 봉지하사 

至今可至流通何耳
지금까지 유통하니 

于耳可歎罪惡凡夫
우리같안 죄악범부 

念佛末古何之謁古
염불말고 어찌알꼬 

利天帝繹主道
도리천 제석님도   

제 天上人君道也悉除
천상인군 되었을

七寶宮殿好隱家厓
칠보궁전 조흔집애 

天上樂乙受何多可
천상락을 수하다가 

天上福而盡內之面
천상복이 진해지면 

生前罪奴落於底西
전죄로 떨어져서 

地獄道厓入多恨耳
지옥도애 든다하니 

人間厓若干毫傑
인간애 약간호걸    

下物面美達孫也
하물며 믿을소냐    

念佛隱廉恥業西
염불은 염치없어    

一生厓馬執古牛執隱
일생애 말잡고 소잡은 

屠牛場耳至惡人道
도수장이 지악인도 

臨終厓念佛何也
임종애 염불하야    

地獄報乙消滅何古
지옥보를 소멸하고 

極樂矣奴所奴去而
극락으로 바로가리 

一念無奴念佛乙
일념으로 염불을 

十方世界恒沙佛而
시방세계 항사불이 

同可之奴讚歎何古
한가지로 찬탄하고 

歷代聖賢奉持奴多
역대성현 봉지로다 

阿邇陀佛念佛法隱
아미타불 염불법은 

溫可事厓碍臨業西
온갖일에 걸림없어 

僧俗男女勿論何古
승속남녀 물론하고 

有識無識貴賤間厓
유식무식 귀천간애 

所業乙購治末古
소업을 폐치말고 

農夫去加農事何面
농부거던 농사하며 

遊難口厓阿邇陀佛
노난입애 아미타불 

織女去加績三何面
직녀거던 길삼하며 

遊難口厓阿邇陀佛
노난입애 아미타불 

今生厓利他何古
금생애 이타하고    

行住座臥耳於何面
행주좌와 이어하면  

後生極樂難乙可
후생극락 어려울까 

多隱則六字念佛
많은즉 육자염불    

小隱卽四子念佛
적은즉 사자염불    

行住坐臥語默間厓
행주좌와 어묵간애 

高聲以那隱念以那
고성이나 은념이나 

大小間六子四子念佛乙
대소간 육자사자 염불을 

懃力大奴念佛何刀
근력대로 염불해도 

悲惑去隱阿邇陀佛
슬픈것은 아미타불 

好隱耳刀阿邇陀佛
조흔이도 아미타불 

遊難口厓雜談末古
노난입애 잡담말고 

阿邇陀佛言友三我
아미타불 말벗삼아 

念念厓阿邇陀佛
염염애 아미타불 

時時厓阿邇陀佛
시시애 아미타불 

處處厓阿邇陀佛
처처애 아미타불 

事事厓阿邇陀佛
사사애 아미타불 

壹生厓壹練何面
일생애 이러하면 

極樂去其難奴溫可
극락가기 어려온가 

一日殺而小隱筮耳
하루살이 작은벌레 

千里馬乙挾者吾面
천리말을 붙잡으면 

千里去其難吾殘古
천리가기 어렵잖고 

金石耳重何也道
금석이 중하야도 

廣大船厓載於斗面
광대선애 실어두면 

萬頃滄波深隱水厓
만경창파 깊은물에 

順息間厓濟乃去耳
순신간에 건너가리 

于以如歎罪惡人道
우리같안 죄악인도 

阿邇陀佛念佛德厓
아미타불 염불덕애 

繹迦如來大悲船乙
석가여래 대비선을 

船價無是得加乘古
배삯없이 얻어타고 

念佛三昧法海水厓
염불삼매 법해수애 

言這是這於內女
언저시 저어내여   

方便楫大高被達古
방편돛대 높이달고 

精進勞乙具持執古
진노를 가져잡고 

諸大聖賢引接路
제대성현 인접길애 

阿邇陀佛玉毫光乙
아미타불 옥호광을 

還出耳照治是古
훤출이 비치시고 

四十八願大願風乙
사십팔원 대원풍을 

太虛空厓非戒見耳
태허공애 빗겨뵈니 

十萬億國土外乙
십만억 국토밖을 

頃刻間厓往生何而
경각간애 왕생하리 

而安耳念佛船耳
이아니 염불선이   

萬船中厓上船耳羅
만선중애 상선이라 

其安耳長割孫也
그아니 장할소냐    

耳寶世上長老信來
이보세상 어르신네 

于耳道其心這心多婆而古
우리도 이맘저맘 다버리 

信心矣奴念佛何也
신심으로 염불하야 

先亡父母薦道何古
선망부모 천도하고 

一切衆生濟渡何也
일체중생 제도하야 

世上事多婆而古
세상사 다버리고    

蓮花船乙得加乘古
연화선을 얻어타고 

極樂矣奴於書去自
극락으로 어서가자 

極樂世界好歎言乙
극락세계 좋단말을 

僧俗男女多知去乙
승속남녀 다알거늘

於西練西底極樂
어서어서 저극락애 

速耳速耳受耳可自
속히속히 수이가자 

南無阿邇陀佛成佛
나무아미 타불성불 

 

http://www.woljeongsa.org/bbs/board.php?bo_table=104020&wr_id=6751&page=8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 자유게시판 | 문수성지 오대산 월정사

[민족 역사 통일=플러스코리아]조성제 전문위원= 우리가 굿을 할 때 가장 널리 사용하는 말이 바로‘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이다. 특히 조상굿이나 지노귀굿을 할 때는 아주 많이 사용한

www.woljeongsa.org

이두(吏讀, 문화어: 리두)는 한자에 의한 한국어 표기법의 한 가지이다. ‘이서(吏書)’, ‘이도(吏道·吏刀)’, ‘이토(吏吐)’라고도 불린다. 삼국 시대부터 시작하여 19세기 말까지 사용되었다. 고대 한국어를 분석하기 위한 자료의 하나이다.

개요

광의의 이두는 구결향찰 등을 포함하여 한자를 빌려 이뤄진 한국어 표기법 전체를 가리킨다. 협의의 이두는 이두문에 나타나는 한국어의 한자 표기를 이른다. 이두문이란 이서(吏胥)들이 행정 문서를 작성할 때 사용한 한자 표기의 산문을 이르는데 같은 문체로 쓰인 민간의 글도 이두문이라 부른다. 여기서는 협의의 이두에 관해 언급한다.

이두의 성립 시기는 명확하지 않지만 대강 삼국 시대에 시작하여 남북국 시대에 확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문헌 자료에는 신라의 설총이 이두를 만들었다는 기술이 나오지만 검증할 만한 증거는 없고 오히려 설총이 당시의 표기법을 정리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이두의 성립 시기는 명확하지 않지만 대강 삼국 시대에 시작하여 남북국 시대에 확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문헌 자료에는 신라의 설총이 이두를 만들었다는 기술이 나오지만 검증할 만한 증거는 없고 오히려 설총이 당시의 표기법을 정리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표기법

이두문에서는 명사, 동사 어간 등 단어의 실질적 부분에서 주로 한자어가 사용되고, 조사(助詞)나 어미(語尾) 등 문법적 부분에서 주로 이두가 사용되었다.(명사, 동사 부분에서 이두가 사용되는 경우도 있음) 한반도에서는 한자를 도입한 뒤에 한동안은 정규 한문만 사용되었다고 추측되는데, 그 후 한국어 어순에 맞춰 글을 쓴 서기체(誓記體)와 같은 의사한문(擬似漢文)이 나타난다. 이두는 이와 같이 한국어 어순으로 쓰인 의사한문에 문법적 요소가 더 보완되어 성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두는 한자의 음(音)과 훈(訓)을 이용하여 한국어를 표기하는데, 한자 독법은 옛날부터 있는 관습적인 독법이 내려와 있다. 그 중에는 중세 한국어와도 다른 독특한 것도 있다. 예) 처격 ‘良中(-아ᄒᆡ)’에 대해 중세국어 ‘-애/-에’

아래는 양잠경험촬요(養蠶經驗撮要, 1415년)에 나타나는 이두의 예이다.(밑줄이 이두 부분)

한 문이두문한글표기현대어

蠶陽物大惡水故食而不飲
陽物是乎等用良水氣厭却桑葉叱分喫破爲遣飲水不冬
 陽物이온들쓰아 水氣 厭却 桑葉 喫破하고 飲水안들
누에 양물이므로 물기 싫어해 뽕잎 먹 물을 마시지 않는다

 

나옹三歌 - 완주가(翫珠歌) ,고루가(枯髏歌), 백납가(百衲歌)

https://kydong77.tistory.com/18120

 

나옹화상 歌頌: 완주가翫珠歌·백납가百衲歌·고루가枯髏歌/ 漢詩

Simon & Garfunkel - El Condor Pasa (철새는 날아가고) https://www.youtube.com/watch?v=WGBNUaAX19A 베네주엘라의 엔젤폭폭에서 페루 이과수의 '악마의 목구멍'까지, 쥑이네요 https://www.youtube.com/watch?v=gVBNk69vaLM (한글

kydong77.tistory.com

 

https://kydong77.tistory.com/18301

 

나옹화상,이색의 나옹화상탑명, 회암사는 이성계의 또 다른 왕궁

천보산 회암사 나옹화상탑 복원 이성계의 또 다른 왕궁, 회암사 https://www.youtube.com/watch?v=1lvXzqpu0VU http://contents.history.go.kr/mobile/kc/view.do?levelId=kc_r200640&code=kc_age_20 우리역사넷 회암사지(檜巖寺址)는

kydong77.tistory.com

 

臣 이색은 삼가 절하고 머리를 조아려 비명을 짓는다.

* 이색[ 李穡 ] 호는 목은(牧隱). 포은(圃隱)정몽주(鄭夢周), 야은(冶隱)길재(吉再)와 함께 삼은(三隱)의 한 사람이다. 아버지는 찬성사이곡(李穀)이며 이제현(李齊賢)의 문인이다. 

   탑명 (塔銘)

전조열대부 정동행중서성좌우사랑 중문충보절동덕 찬화공신 중 대광한산군
예문관대제학지춘추관사 겸 성균대사성 지서연사 신이색 봉교찬
前朝列大夫 征東行中書省左右司郞 中文忠報節同德 贊化空臣 重 大匡韓山君
藝文官大提學知春秋官事*成均大司成知書硏事 臣 李穡 奉敎撰

臣 이색은 삼가 절하고 머리를 조아려 비명을 짓는다.

* 이색[ 李穡 ] 호는 목은(牧隱). 포은(圃隱)정몽주(鄭夢周), 야은(冶隱)길재(吉再)와 함께 삼은(三隱)의 한 사람이다. 아버지는 찬성사 이곡(李穀)이며 이제현(李齊賢)의 문인이다.

展也禪覺 惟麟之角 
전야선각 유린지각
王者之師 人天眼目 
왕자지사 인천안목

진실로 선을 깨친 이시며〔禪覺]
기린의 뿔이로다 * '코뿔소의 외뿔'의 표현인 듯. 기린은 두 뿔이어라.
임금의 스승이요
인천(人天)의 눈이로다. *人天 - 인간세계와 천상세계

萬衲宗之 如水赴壑 
만납종지 여수부학
而鮮克知 所立之卓 
이선극지 소립지탁 

뭇 승려들 우러러보기를
물이 골짜기로 달리는 듯하나
선 바가 우뚝하여
아는 이가 드물다

隼夢赫靈 在厥初生 
준몽혁령 재궐초생
龍神護喪 終然允藏 
롱신호상 종연윤장 

신령한 새매 꿈이
처음 태어날 때 있었고
용신 (龍神) 이 초상을 호위함하여
마지막 죽음을 빛냈도다

矧曰舍利 表其靈異 
신왈사리 표기령리
江之闊矣 皎皎明月 
강지활의 교교명월

하물며 사리라는 것이
스님의 신령함을 나타냈나니
강은 넓게 트였는데
달은 밝고 밟았도다

空耶色耶 上下洞徹 
공야색야 상하동철 
哉高風終 終古不滅 
재고풍종 종고부멸

공(空)인가 색(色)인가
위아래가 훤히 트였나니
아득하여라, 높은 모습이여
길이 소멸치 않으리라.

 

 [참고] 만해 한룡운 선생의 제자이신 춘성[春城] 스님은 사리 같은 나의 자취를 남기지 말라고 했습니다. 만상은 소멸하는 것이 자연의 순리이니까요. 부처님의 다비식에서 7 나라의 왕들이 한 몫을 만들어 주며 가져간 것은 덜 태운 부처님의 유해라고도 합니다. 그래서 사리탑이 생겼고, 불상이 조성된 것은 서력 기원 이후입니다.

 

[참고]

28. 분사리품(分舍利品)
佛所行讚  分舍利品  第二十八


그 모든 역사 무리들
사리(舍利)를 받들어 섬길 때
훌륭하고 묘한 향과 꽃으로
위없는 공양을 일으켰네.
彼諸力士衆,
奉事於舍利,
以勝妙香花,
興無上供養。


그때 일곱 나라 모든 왕들은
부처님 이미 멸도하셨단 말 듣고
역사들에게 사자(使者)를 보내
부처님의 사리를 청하여 구하였네.
時七國諸王,
承佛已滅度,
遣使詣力士,
請求佛舍利。


저 모든 역사 무리들
여래의 몸을 공경하고 존중하며
또한 자기들의 용맹을 믿고
이에 교만한 마음 일으켰다.
차라리 그 목숨 버릴지언정
부처님의 사리는 내놓지 않으리.
彼諸力士衆,
敬重如來身,
兼恃其勇健,
而起憍慢心,
寧捨自身命,
不捨佛舍利。


그 사자들 빈손으로 돌아가자
일곱 나라의 왕들은 크게 분노하여
구름과 비처럼 군사 일으켜
구이성(鳩夷城)으로 몰려왔었네.
彼使悉空還,
七王大忿恨,
興軍如雲雨,
來詣鳩夷城。


성 밖에 나갔던 백성들
모두 놀라고 두려워 돌아와서는
그 모든 역사들에게 알렸네.
“여러 나라 군사들 몰렸왔는데
코끼리ㆍ말ㆍ수레와 또 보병(步兵)들
구이성을 에워쌌네.
人民出城者,
悉皆驚怖還,
告諸力士衆,
諸國軍馬來,
象馬車步衆,
圍遶鳩夷城。


성 밖의 모든 동산 수풀과
샘물ㆍ못ㆍ꽃ㆍ열매ㆍ과일나무를
군사들이 모두 짓밟아 버려
빛나던 경관 다 못쓰게 되었소.”
城外諸園林,
泉池花果樹,
軍衆悉踐蹈,
榮觀悉摧碎。


역사들 성에 올라 바라볼 때
모든 생업(生業) 터전 다 부서졌다네.
이에 전쟁 도구 든든하게 갖추어
바깥 적(敵)들과 맞섰을 때
쇠뇌[弩]와 화살, 돌을 날리는 수레
나는 횃불들이 모두 쏟아져 왔네.
力士登城觀,
生業悉破壞,
嚴備戰鬪具,
以擬於外歒,
弓弩挽石車,
飛炬獨發來。


일곱 나라의 왕들은 그 성을 에워쌌는데
군사들은 모두 잘 훈련되어 날쌨으며
위용[羽儀]은 왕성하게 빛나고 밝아
마치 일곱 개의 빛이 빛나는 것 같으며
七王圍遶城,
軍衆各精銳,
羽儀盛明顯,
猶如七耀光。


종과 북소리는 우레와 같고
군사들의 기세 구름과 안개 같았다.
역사들은 이에 크게 성내어
성문을 열고 적군들에게 명령했다네.
鍾鼓如雷霆,
勇氣盛雲霧,
力士大奮怒,
開門而命歒。


그러나 나이 많은 모든 남자와 여자로서
마음으로 부처님 법 믿는 사람은
놀라고 두려워해 정성으로 소원하였다.
‘저를 항복받아도 해치지는 말았으면’
그리고 친함을 따라 서로 권하여
싸움하지 말기를 바랐네.
長宿諸士女,
心信佛法者,
驚怖發誠願,
伏彼而不害,
隨親相勸諌,
不欲令鬪戰。


용사들은 겹 갑옷 입고
창을 휘두르며 긴칼을 번쩍이고
종과 북소리 어지럽게 울리면서
무기는 들었으나 아직 접전하지 않았네.
勇士被重鉀,
揮戈舞長劍,
鍾鼓而亂鳴,
執仗鋒未交。


그때 어느 한 범지가 있었는데
그 이름 독루나(獨樓那)라 하였네.
많이 알고 지략(智略)이 뛰어났지만
겸허하여 많은 이의 존경을 받고
자비스런 마음으로 바른 법 즐겼나니
그가 모든 왕들에게 아뢰었네.
有一婆羅門,
名曰獨樓那,
多聞智略勝,
謙虛衆所宗,
慈心樂正法,
告彼諸王言。


“저 성(城)의 형세를 보니
한 사람으로도 당해낼 수 있겠거늘
하물며 여러 사람 마음과 힘을 합쳐
저를 능히 항복받지 못하겠는가.
설령 저들을 무찔러 멸한다 한들
거기에 무슨 덕스런 이름 있으리.
觀彼城形勢,
一人亦足當,
況復齊心力,
而不能伏彼,
正使相摧滅,
復有何德稱。


날카로운 무기가 서로 맞붙고 나면
그 형세 둘 다 완전할 수 없으리니
이쪽 곤하게 하고 저쪽도 해쳐
둘 다 상함만 있을 뿐이네.
利鋒刃旣交,
勢無有兩全,
困此而害彼,
二俱有所傷。


싸움이란 그때그때 변화가 많아
그 형세 헤아리기 어렵나니
혹은 강함이 약함을 이길 수 있고
혹은 약함이 강함을 이길 수 있네.
힘센 사람이라 하여 독사 업신여기면
어찌 그 몸 다치지 않을 수 있으랴.
鬪戰多機變,
形勢難測量,
或有强勝弱,
或弱而勝强,
健夫輕毒蛇,
豈不傷其身。


어떤 사람은 성질이 부드럽고 약하여
뭇 여자들의 칭찬을 받다가도
전쟁터에 다다라 전사(戰士)가 되면
마치 불이 기름을 얻은 것 같나니
有人性柔弱,
群女子所獎,
臨陣成戰士,
如火得膏油。


이른바 저들은 감당할 수 없을 거라고
싸움에서 약한 적을 깔보지 말라.
몸의 힘이란 족히 믿을 것 못되니
법의 힘 강한 것만 못하네.
鬪莫輕弱歒,
謂彼無所堪,
身力不足恃,
不如法力强。


옛날에 훌륭한 왕이 있었는데
그 이름 가란타마(迦蘭陀摩)라 하였나니
그는 단정히 앉아 자애로운 마음 내어
능히 큰 원수의 적 항복받았네.
古昔有勝王,
名迦蘭陁摩,
端坐起慈心,
能伏大怨歒。


온 천하[四天下]의 왕으로서 아무리
명성이 있고 재물이 많더라도
마침내 허무(虛無)로 돌아가리니
소가 한껏 물 마시고 돌아가는 것 같네.
雖王四天下,
名稱財利豐,
終歸亦皆盡,
如牛飮飽歸。


마땅히 법과 의리(義理)로써 하고
마땅히 온화한 방편으로써 해야 하리니
싸움으로 이기면 원한을 늘리지만
온화함으로 이기면 뒷 근심 없다네.
應以法以義,
應以和方便,
戰勝增其怨,
和勝後無患。


이제 피를 마시는 원수 맺는 것
이 일은 애당초 옳지 못하네.
만일 부처님께 공양하려 하거든
마땅히 부처님의 인욕(忍辱) 따라야 하리.”
今結飮血讎,
此事甚不可,
爲欲供養佛,
應隨佛忍辱。


이와 같이 저 바라문
결정하여 그 정성된 마음 토하였나니
옳은 이치와 온화한 진리를 가지고
그 말에 조금도 두려움 없었네.
如是婆羅門,
決定吐誠實,
方宜義和理,
而作無畏說。


그때에 그 모든 왕들은
바라문에게 말하였다.
“그대는 이제 때를 잘 맞추어
지혜로운 이치로 이익되게 하였다네.
爾時彼諸王,
告婆羅門言,
汝今善應時,
黠慧義饒益。


친밀하고 지극하며 정성된 말은
법에 순응하고 이치에 맞는 강변이었네.
그러나 잠깐 우리의 말 들으라.
무릇 왕자(王者)의 법이란
親密至誠言,
順法依强理,
且聽我所說,
爲王者之法。


혹은 다섯 탐욕으로 말미암아 다투고
미워하고 원망하여 힘센 이와 다투며
혹은 그 즐거운 유희거리로 말미암아
성급히 전쟁을 치르기도 하나니
하물며 우리들은 지금 법을 위함이거늘
전쟁이 뭐 그리 새삼스럽겠는가.
或因五欲諍,
嫌恨競强力,
或因其嬉戲,
不急致戰爭,
吾等今爲法,
戰爭復何怪。


교만하고 또 이치에 어긋나더라도
세상 사람은 오히려 복종하나니
하물며 사람을 교화하여 겸손케 한
교만을 여의신 부처님이겠는가.
憍慢而違義,
世人尚伏從,
況佛離憍慢,
化人令謙下。


그런데도 우리들은 능히
몸을 죽여서도 공양할 수 없구나.
옛날의 여러 국왕들로서
필슬아난다(弼瑟阿難陀)는
我等而不能,
亡身而供養,
昔諸大地主,
弼瑟阿難陁。


한 단정한 여자를 위해
전쟁하여 서로 죽이고 멸했거늘
하물며 이제 맑고 깨끗한
탐욕을 떠난 스승 공양함이겠는가.
爲一端正女,
戰爭相摧滅,
況今爲供養,
淸淨離欲師。


몸을 사랑하고 목숨을 아낀다면
힘으로 다투어 구하지 않아야 하리.
옛날 왕 교라바(驕羅婆)가
반나바(般那婆)와 싸울 때
愛身而惜命,
不以力爭求,
先王驕羅婆,
與般那婆戰。


계속하여 서로를 쳐부순 것은
바로 이익을 탐했기 때문이거늘
하물며 탐욕 없는 스승을 위해
다시금 살기를 탐할 것인가.
展轉更相破,
正爲貪利故,
況爲無貪師,
而復貪其生。


저 라마(羅摩) 선인의 아들이
천비왕(千臂王)을 미워하고 원한 품어
나라를 파괴하고 백성을 죽인 것은
바로 성이 났기 때문이거늘
하물며 성냄 없는 스승을 위해
그 몸과 목숨을 아낄 것인가.
羅摩仙人子,
瞋恨千臂王,
破國殺人民,
正爲瞋恚故,
況爲無恚師,
而惜於身命。


라마 태자는 사타(私陀) 여인 위해
모든 귀신의 나라를 몰살시켰거늘
하물며 섭수(攝受)할 수 없는 스승을 위해
그 목숨을 죽이지 않을 것인가.
羅摩爲私陁,
殺害諸鬼國,
況無攝受師,
不爲其沒命。


아리(阿利)와 바구(婆俱)
두 귀신 언제나 원수 맺어
정녕 어리석음 때문에
중생을 널리 해쳤거늘
하물며 지혜로운 스승을 위해
그 몸과 목숨을 아낄 것인가.
阿利及婆俱,
二鬼常結怨,
正爲愚癡故,
廣害於衆生,
況爲智慧師,
而復惜身命。


이와 같은 그 많은 무리들
아무런 의미 없이 스스로를 망하게 하였네.
하물며 이제 천상과 인간의 스승
두루 이 세상의 공경 받아야 하겠거늘
몸을 헤아리고 목숨을 아껴
힘써 공양하기 바라지 않으랴.
如是比衆多,
無義而自喪,
況今天人師,
普世所恭敬,
計身而惜命,
不勤求供養。


그대가 만일 이 싸움 그치게 하려거든
우리를 위해 저 성에 들어가
그들이 깨닫도록 권하여
우리들의 소원 이루게 하라.
汝若欲止爭,
爲吾等入城,
勸彼令開解,
使我願得滿。


그대의 법다운 말로 인해
우리 마음 조금은 가라앉았네.
비유하면 마치 사나운 독사가
주문의 힘 때문에 조금 조용해진 것 같네.”
以汝法言故,
令我心小息,
猶如盛毒蛇,
呪力故蹔止。


그때 그 바라문은
여러 왕들의 분부 받고서
성으로 들어가 역사들에게 나아가
인사한 뒤에 정성껏 말하였네.
爾時婆羅門,
受彼諸王教,
入城詣力士,
問訊以告誠。


“저 바깥의 여러 왕들은
손에는 날카로운 무기를 잡고
몸에는 겹으로 된 갑옷을 입고
잘 훈련된 날쌘 군사 햇빛처럼 번쩍이며
사자(師子) 같은 용기로 떨쳐 일어나
모두 이 성을 쳐부수려 한다네.
外諸人中王,
手執利器仗,
身被於重鉀,
精銳耀日光,
奮師子勇氣,
咸欲滅此城。


그러나 그것은 법을 위함인데
법 아닌 행동 일어날까 두려워하네.
그러므로 나를 여기 보냈으니
내 여기 온 뜻을 말하려 하네.
然其爲法故,
猶畏非法行,
是故遣我來,
旨欲有所白。


‘나는 토지를 위해서도 아니요
또한 재물을 구해서도 아니며
교만한 마음을 가진 것도 아니요
또한 원망하는 마음 품지도 않았네.
我不爲土地,
亦不求錢財,
不以憍慢心,
亦無懷恨心。


다만 큰 선인을 공경하기 때문에
나는 이제 이 곳으로 찾아왔나니
그대들은 마땅히 내 뜻을 알라.
무엇하러 괴롭게 서로 버티랴.
恭敬大仙故,
而來至於此,
汝當知我意,
何爲苦相違。


높은 이 받들기는 피차 같으니
곧 법으로서는 형제가 되리.
이제 세존께서 남기신 영(靈)을
한마음으로 다 함께 공양하자.
尊奉彼我同,
則爲法兄弟,
世尊之遺靈,
一心共供養。


재물을 아끼고 아까워하는 것
그것은 곧 큰 잘못 아니지만
법을 아끼는 잘못 가장 심하니
온 세상의 업신여김 받으리라.
慳惜於錢財,
此則非大過,
法慳過最甚,
普世之所薄。


결정코 이 뜻이 통하지 않으면
마땅히 손님 대접하는 법을 닦으라.
찰제리(刹帝利)의 법도 없거든
문을 닫고 스스로 버텨 보라.’
決定不通者,
當修待賓法,
無有剎利法,
閉門而自防。


저들은 모두 이와 같이
이 길(吉)하고 흉한 법 알렸나니
나도 이제 내 가진 생각을
또한 성의껏 진실되게 말하리라.
彼等悉如是,
告此吉凶法,
我今私所懷,
亦告其誠實。


피차에 서로 거스르는 행동하지 말라고
이치에 맞게 서로 화합해야 하네.
세존께서는 세상에 계실 때
언제나 인욕(忍辱)으로 가르치셨으니
그 거룩한 가르침 따르지 않으면
어떻게 공양이라 말하겠는가.
莫彼此相違,
理應共和合,
世尊在於世,
常以忍辱教,
不順於聖教,
云何名供養。


세상 사람은 다섯 가지 탐욕 때문에
재물과 밭과 집을 다투지만
만일 바른 법을 위하는 이라면
마땅히 성인의 이치를 따라야 하리.
世人以五欲,
財利田宅諍,
若爲正法者,
應隨順聖理。


법을 위하여 원수 맺는 것
그것은 곧 이치에 어긋나나니
부처님의 고요함과 자비로움은
언제나 일체를 편안하게 하시려 했거늘
대비(大悲)하신 분 공양한다 하면서
도리어 큰 해(害)를 일으키겠는가.
爲法而結怨,
此則理相違,
佛寂靜慈悲,
常欲安一切,
供養於大悲,
而興於大害。


마땅히 사리(舍利)를 고루 나누어
두루 공양할 수 있게 한다면
법에 순응하여 좋은 이름 퍼지고
정의에 통하고 바른 이치 피어나리.
應等分舍利,
普令得供養,
順法名稱流,
義通理則宣。


혹 그들의 행동 법답지 않더라도
마땅히 법으로써 그것을 대[和]하면
그것은 곧 법 즐기는 것 되어
법을 오래 머물 수 있게 하리라.
若彼非法行,
當以法和之,
是則爲樂法,
令法得久住。


부처님께서는 모든 보시 가운데
법 보시가 가장 훌륭하다 하셨으니
사람들은 재물 보시 행하지만
법 보시 행하기란 어려운 것이네.”
佛說一切施,
法施爲最勝,
人斯行財施,
行法施者難。


역사들은 바라문의 이 말을 듣고
마음으로 부끄러워 서로 바라보면서
저 범지에게 대답하였네.
“그대가 온 뜻에 깊이 감동하였네.
力士聞彼說,
內愧互相視,
報彼梵志言,
深感汝來意。


좋은 우정(友情)은 법다운 말을 따르고
이치에 맞는 아름답고 반듯한 말이었네.
범지(梵志)가 행했던 일들은
스스로의 공덕을 그대로 따랐네.
親善順法言,
和理雅正說,
梵志之所應,
隨順自功德。


저들과 우리의 사이를 잘 화해시키고
우리에게 중요한 길 보여주었으니
마치 길을 헤매는 말[馬]을 제어해
바른 길로 돌아가게 한 것과 같다네.
善和於彼此,
示我以要道,
如制迷塗馬,
還得於正路。


이제 우리 마땅히 적합한 이치를 따라
그대가 말한 대로 할 것이니
정성스런 말을 돌아보지 않으면
훗날 반드시 회한이 생기리라.”
今當用和理,
從汝之所說,
誠言而不顧,
後必生悔恨。


그들은 곧 부처님의 사리병을 열어
여덟 몫으로 고루 나누어
그 한 몫은 자신들이 공양하고
범지에게는 일곱 몫을 주었다네.
卽開佛舍利,
等分爲八分,
自供養一分,
七分付梵志。


일곱 나라 왕들은 사리를 얻자
기뻐하면서 공손히 받아
자기들 나라로 가지고 돌아가
탑(塔)을 세우고 공양을 더하였네.
七王得舍利,
歡喜而頂受,
持歸還自國,
起塔加供養。


그 범지는 다시 역사를 찾아가
사리를 나누던 병을 얻었고
또 그 일곱 왕에게서
여덟째 몫을 나누어 받아
가지고 돌아가 지제(支提)를 세우고
그것을 금병탑(金甁塔)이라 이름했네.
梵志求力士,
得分舍利甁,
又從彼七王,
求分第八分,
持歸起支提,
號名金甁塔。


또 구이나갈(俱夷那竭) 사람들은
다비하고 남은 재를 거두어 모아
하나의 지제를 세우고
회탄탑(灰炭塔)이라 이름했네.
俱夷那竭人,
聚集餘灰炭,
而起一支提,
名曰灰炭塔。


여덟 왕이 여덟 탑을 세운 데다가
금병탑과 회탄탑 등
이리하여 염부제(閻浮提)에는
비로소 열 개의 탑이 세워졌네.
八王起八塔,
金甁及灰炭,
如是閻浮提,
始起於十塔。


온 나라의 모든 남자와 여자
모두 보배로 만든 꽃일산 가지고
탑을 따라 공양했나니
그 장엄은 마치 금산(金山) 같았고
갖가지 모든 풍류는
밤낮으로 쉬지 않고 길이 찬탄하였다네.
擧國諸士女,
悉持寶花蓋,
隨塔而供養,
莊嚴若金山,
種種諸伎樂,
晝夜長讚嘆。


그때에 5백 나한(羅漢)들
큰 스승의 그늘을 영원히 잃고
의지할 데 없음을 두려워하여
모두 기사굴산(耆闍崛山)으로 돌아갔네.
時五百羅漢,
永失大師蔭,
恇然無所恃,
還耆闍崛山。



그들은 제석(帝釋) 바위에 모여
온갖 경장(經藏)을 결집(結集)할 때
그들은 모두 함께
장로(長老) 아난다를 추대하였네.
集彼帝釋巖,
結集諸經藏,
一切皆共推,
長老阿難陁。


“여래께서 늘 말씀하셨던
크고 작은 내용을 그대는 모두 들었으니
비제혜(鞞提醯) 모니(牟尼)는
이 대중들 위해 마땅히 설명하라.”
如來前後說,
巨細汝悉聞,
鞞提醯牟尼,
當爲大衆說。


아난은 대중 앞에서
사자좌(師子座)에 올라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말하려고
‘이렇게 나는 들었노라’고 말하였네.
阿難大衆中,
昇於師子座,
如佛說而說,
稱如是我聞。


‘나는 들었노라’는 이 소리에 감격하여
앉아있던 대중들 모두 눈물 흘렸다.
그 법(法)도 같고 그 때[時]도 같으며
그곳[處]도 같고 그 사람[人]도 같았네.
合坐悉涕流,
感此我聞聲,
如法如其時,
如處如其人。


그 설명을 따라 붓으로 받아 써서
마침내 경장(經藏)을 완성하였고
부지런한 방편으로 닦고 배워서
모두 다 열반을 얻게 되었나니
현재에 얻고 미래에도 얻을
저 열반 또한 그러하다네.
隨說而筆受,
究竟成經藏,
勤方便修學,
悉已得涅槃,
今得及當得,
涅槃亦復然。


무우왕(無憂王:아쇼카왕)이 세상에 나와
강한 자에겐 능히 근심을 하게 하고
약한 이에게는 근심을 없애주었나니
마치 무우화(無憂花) 나무 같았네.
無憂王出世,
强者能令憂,
劣者爲除憂,
如無憂花樹。


왕이 염부제를 다스릴 때
마음은 언제나 근심하는 일 없고
바른 법을 깊이 믿었나니
그러므로 무우왕이라 이름하였네.
王於閻浮提,
心常無所憂,
深信於正法,
故號無憂王。


그는 공작왕(孔雀王)의 후손으로서
바른 성품을 받아 태어났나니
능히 온 천하를 두루 건지고
아울러 모든 탑묘(塔廟) 일으키었네.
孔雀之苗裔,
稟正性而生,
普濟於天下,
兼起諸塔廟。


본래는 강무우(强無憂)라 이름하였으나
지금은 법무우(法無憂)라 이름하니
그는 저 일곱 왕이 만든 탑 열고
거기서 사리를 모셔 내어
그것을 나누어 펴 하루아침에
8만 4천 개의 탑을 세웠기 때문이네.
本字强無憂,
今名法無憂,
開彼七王塔,
以取於舍利,
分布一旦起,
八萬四千塔。


그 중에 오직 여덟 번째 탑만은
저 마라(摩羅) 마을에 있었는데
귀신과 용들이 지켜 보호하기에
왕이 모셔 내려 했으나 얻을 수 없었네.
唯有第八塔,
在於摩羅村,
神龍所守護,
王取不能得。


비록 사리를 얻지는 못했지만
부처님께서 남기신 유골 거기 있기에
귀신과 용들이 공양하는 줄 알고
믿고 공양하는 마음 더욱 더하였네.
雖不得舍利,
知佛有遺骼,
神龍所供養,
增其信敬心。


왕은 비록 나라를 다스리고 있었지만
첫 거룩한 과위(果位)를 증득하게 되어
능히 온 천하 백성들로 하여금
여래의 탑을 공양하게 하였네.
雖王領國土,
逮得初聖果,
能令普天下,
供養如來塔。


그리하여 과거ㆍ미래ㆍ현재에도
모두 해탈 얻었고, 얻을 것이며, 얻게 하나니
여래가 현세에 나신 곳이나
그 열반하신 곳 그리고 그 사리를
공경하고 또 공양하는 사람은
그 복이 똑같아 차이 없으리.
去來今現在,
悉皆得解脫,
如來現在世,
涅槃及舍利,
恭敬供養者,
其福等無異。


밝은 지혜와 보다 왕성한 마음으로
여래의 그 덕을 깊이 살펴
도(道)를 생각하고 공양을 일으키면
그 복 또한 함께 훌륭하리라.
明慧增上心,
深察如來德,
懷道興供飬,
其福亦俱勝。


부처님께서 훌륭하고 높은 법 얻었기에
마땅히 일체 공양을 받을 만하고
이미 죽지 않는 곳에 이르셨으니
그것을 믿는 이도 또한 따라 편안하리라.
그러므로 모든 하늘과 사람
마땅히 다 늘 공양하라.
佛得尊勝法,
應受一切供,
已到不死處,
信者亦隨安,
是故諸天人,
悉應常供養。


제일가는 큰 대자비(大慈悲)로
제일가는 이치를 통달하시어
일체 중생을 건지셨으니
그 누가 듣고 감격하지 않으랴.
第一大慈悲,
通達第一義,
度一切衆生,
孰聞而不感。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괴로움
세상 괴로움에는 그보다 더한 것 없으나
죽음의 괴로움은 고통 중에도 큰 것이라
저 모든 하늘도 두려워하는 바이네.
그는 두 가지 고통 영원히 여의었으니
어떻게 그를 공양하지 않으랴.
生老病死苦,
世閒苦無過,
死苦苦之大,
諸天之所畏,
永離二種苦,
云何不供養。


후생의 몸을 받지 않는 즐거움
세상 즐거움에는 그보다 더한 것 없나니
삶을 늘려 괴로움 커지면
세상의 괴로움은 비길 데 없으리.
不受後有樂,
世閒樂無上,
增生苦之大,
世間苦無比。


부처님께서 삶의 괴로움 여의셨고
후생의 몸을 받지 않는 즐거움 얻으시어
세상을 위해 널리 나타내 보였으니
모든 모니(牟尼) 가운데 높은 이시네.
어떻게 찬탄하여 공양하지 않으리.
佛得離生苦,
不受後有樂,
爲世廣顯示,
如何不供養。
讚諸牟尼尊。


내 처음부터 끝까지 한 일을
스스로 보아 알고 있는 것 드러내지 않고
또한 명예와 이익 구하지 않으며
다만 부처님 경전을 따라 말함으로써
모든 세상을 구제하려 함이었네.
始終之所行,
不自顯知見,
亦不求名利,
隨順佛經說,
以濟諸世間。


佛所行讚卷第五
乙巳歲高麗國大藏都監奉勅雕造
『불소행찬』 5권(ABC, K0980 v29, p.674a01-684b03)

 

於是世尊即說偈言。

그리고는 세존께서 곧 게송을 말씀하셨다.


  常者皆盡  高者必墮   合會有離  生者有死

  항상할 것 같아도 모두 다 없어지고  

   높은 데 있는 것도 반드시 떨어지며

   만나면 반드시 헤어짐이 있고  

   태어난 것은 언젠가는 죽느니라.

      <법구비유경> 제1 무상품 中에서

출처: https://kydong77.tistory.com/18118 [김영동교수의 고전 & Life]

 

https://www.youtube.com/watch?v=oGi4_qb2bJA 

 

이 “팔만대장 부처님께” 시조창은 작자는 미상이다. 주제는 사랑하는 임을 다음 세상에서도 만나게 해달라고 부처님께 기원하는 내용이다. 시조창 분류에 의하면 사설시조(辭說時調)로서 평시조부(乙부) 다음 단계로 甲부에 해당한다.

 

1. 시조보(時調譜)

◼초장(初章) : 팔만대장(八萬大藏) 부처님께 비나이다. 나와 임을 다시 보게 하옵소서

◼중장(中章) : 여래보살(如來菩薩) 지장보살(地藏菩薩) 문수보살(文殊菩薩) 보현보살(普賢菩薩) 오백나한(五百羅漢) 팔만가람(八萬伽藍)서방정토(西方淨土) 극락세계(極樂世界)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남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종장(終章) : 후세(後世)에 환토상봉(還土相逢)하여 방연(芳緣)을 잇게 되면보살(菩薩)님 은혜(恩惠)를 사신보시(捨身報施). (하오리다)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19936

 

미륵하생경(彌勒下生經)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ncykorea.aks.ac.kr

 

우리나라 미륵신앙의 근본이 되는 불교경전.

정의
 
우리나라 미륵신앙의 근본이 되는 불교경전.
개설

1권. 구원(久遠)한 미래에 미륵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부처가 되고 상카왕(Sankha王)을 비롯하여 많은 중생들을 교화하는 것을 주제로 삼고 있다. 『미륵상생경(彌勒上生經)』·『미륵성불경(彌勒成佛經)』과 함께 미륵삼부경(彌勒三部經)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여러 가지 한역본 중 축법호(竺法護)의 것이 널리 유통되고 있다.

내용

석가모니가 기수급고독원에 있을 때 아난존자의 물음으로 시작되는 이 경전은 ① 미래세계의 상황, ② 전륜성왕(轉輪聖王: 이 세상을 불법에 의해 다스리는 왕) 상카, ③ 미륵의 탄생과 성장, ④ 미륵의 출가와 성도(成道), ⑤ 미륵불의 설법(說法)과 제도(濟度), ⑥ 미륵불의 입멸(入滅)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 우리나라의 미륵신앙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은 미륵불의 설법과 제도이다.

미륵불의 최초 설법내용은 사제(四諦)·팔정도(八正道)·십이인연(十二因緣)·삼십칠도품(三十七道品)이며, 이 설법은 3회에 걸쳐 행해진다. 제1회는 96억의 사람이 아라한(阿羅漢)의 과(果)를 얻고, 제2회는 94억인, 제3회는 92억인이 각각 아라한의 과를 증득하는데, 이를 용화삼회(龍華三會)라고 한다.

이 법회에 참석할 수 있는 이는 과거에 공덕을 쌓은 사람으로서, 경률론(經律論) 삼장(三藏)을 독송하고, 남을 위하여 옷을 보시하고 지계(持戒)와 지혜(智慧)의 공덕을 쌓거나, 부처님께 향화(香花)를 공양하거나, 고뇌중생을 위하여 깊은 자비심을 내는 일, 지계(持戒)·인욕(忍辱)을 닦고 청정한 자비심을 내어 승려들에게 음식을 보시하며, 탑과 사리(舍利)를 공양하는 사람 등은 모두가 미륵불에 의하여 구원될 것이라고 하였다.

지금부터 56억 7,000만 년 뒤 인간의 수명이 8만 4,000세가 될 때 이상적인 용화세계(龍華世界: 미륵불이 이 세상의 중생을 모두 구제하는 세계)가 실현되고 미륵불이 강림할 것이라는 예언의 내용으로 되어 있는 이 경은 희망의 신앙으로서 널리 신봉되고 전승되었다. 현재 우리나라 사찰의 건물 중 용화전(龍華殿: 미륵전)은 이 경에 근거하여 미륵불을 봉안하고 있다.

이 경에 관한 한국인 찬술 주석서로는 원효(元曉)의 『미륵상하생경기(彌勒上下生經記)』 3권과 경흥(憬興)의 『미륵하생경소(彌勒下生經疏)』 1권, 대현(大賢)의 『미륵하생경고적기(彌勒下生經古迹記)』 1권 등이 있다. 우리나라 보유 판본에 감지금니 미륵하생경(보물, 1991년 지정)이 있다.

참고문헌
『한국불교찬술문헌총록(韓國佛敎撰述文獻總錄)』(불교문화연구소, 동국대학교출판부, 1976)

문화재청 (http://www.heritage.go.kr)

 

http://w3devlabs.net/hb/archives/3476

 

미륵하생경(彌勒下生經) – 建成의불교공부

미륵하생경(彌勒下生經) 미래에 석가모니부처님의 지위를 계승한다고 하는 보살로서의 미륵은 남인도 바라문의 아들이었으나 석존의 제자가 되고 그 후 석존보다 먼저 입멸하여 하늘의 세계인

w3devlabs.net

 

미륵불 또는 미륵보살을 신앙 대상으로 삼는 불교신앙. 보살신앙.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19927

 

미륵신앙(彌勒信仰)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ncykorea.aks.ac.kr

미륵신앙은 미륵불 또는 미륵보살을 신앙 대상으로 삼는 불교신앙이다. 석가모니 제자인 미륵은 미래에 성불하여 제1인자가 될 것이라는 수기를 받은 뒤 도솔천에 올라가 설법하고 있는데 장차 사바세계에 다시 태어나 용화수 아래에서 성불하여 중생을 교화할 것이라는 내용의 신앙이다. 사후에 도솔천에 태어나기를 염원하거나 미륵이 보다 빨리 지상에 강림하기를 염원하며 수행하는 신앙이다. 구원론적인 구세주의 현현을 의미하기도 한다. 삼국시대 이래로 면면히 이어져 온 신앙으로, 당시에 제작된 상당수의 미륵불상이 전해오며 미륵신앙에 얽힌 설화도 민간에 널리 퍼져 전해온다.

정의

미륵불 또는 미륵보살을 신앙 대상으로 삼는 불교신앙. 보살신앙.
 
개설

미륵신앙이란 지난날 석가모니불이 그 제자 중의 한 사람인 미륵에게 장차 성불하여 제1인자가 될 것이라고 수기(授記)한 것을 근거로 삼고, 이를 부연하여 편찬한 미륵삼부경(彌勒三部經)을 토대로 하여 발생한 신앙이다.

이 삼부경은 각각 상생(上生)과 하생(下生)과 성불(成佛)에 관한 세 가지 사실을 다루고 있다. 미륵보살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아 부지런히 덕을 닦고 노력하면, 이 세상을 떠날 때 도솔천(兜率天)에 태어나서 미륵보살을 만날 뿐 아니라, 미래의 세상에 미륵이 성불할 때 그를 좇아 염부제(閻浮提:사바세계)로 내려와 제일 먼저 미륵불의 법회에 참석하여 깨달음을 얻게 된다는 내용이다.

이 미륵신앙의 중심은 미륵(Maitreya)이다. 원래 ‘친구’를 뜻하는 미트라(mitra)로부터 파생된 마이트레야는 자비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으므로, 한자문화권에서는 미륵보살을 자씨보살(慈氏菩薩)이라고도 불러 왔다. 관세음보살을 대비보살(大悲菩薩)이라 부르는 것과는 좋은 대조가 된다. 미래불 미륵은 석가모니불이 구제할 수 없었던 중생들을 남김없이 구제한다는 대승적 자비사상을 근거로 출현하여, 자씨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미륵하생경』과 『관미륵보살상생도솔천경』에 의하면 미륵보살은 인도 바라나시국의 바라문 집안에서 태어나 석가의 교화를 받으면서 수도하다가,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은 뒤 도솔천에 올라갔고, 지금은 천인(天人)들을 위하여 설법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석가모니불이 입멸(入滅)하여 56억 7000만 년이 지난 뒤, 인간의 수명이 차차 늘어 8만 세가 될 때 이 사바세계에 다시 태어나 화림원(華林園)의 용화수(龍華樹) 아래에서 성불하며, 3회의 설법[龍華三會]으로 272억 인을 교화한다고 하였다.

이러한 도솔천의 미륵보살이 다시 태어날 때까지 중생구제를 위한 자비심을 품고 먼 미래를 생각하며 명상하는 자세가 곧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으로 묘사되었다. 또한, 미륵보살을 믿고 받드는 사람이 오랜 세월을 기다릴 수 없을 때는 현재 보살이 있는 도솔천에 태어나고자[上生], 또는 보살이 보다 빨리 지상에 강림하기를[下生] 염원하며 수행하는 신행법이 인도 · 중국 · 티베트 · 한국 · 일본 등에서 널리 유행하였다.

미륵불에 대한 신앙은 통속적인 예언의 성격을 띠고 있으며, 구원론적인 구세주의 현현을 의미하기도 한다. 믿음이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품게 되는 이념으로, 지나치게 이론적인 종교라고 비판을 받고 있는 불교가 가질 수 있는 구체적인 신앙형태가 곧 미륵신앙이다. 미래세에 대한 유토피아적 이념이 표출된 희망의 신앙이라는 면에서 우리의 불교사 속에서 깊은 관심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역사

삼국시대 이래 현재에 이르기까지 우리나라의 미륵신앙은 면면히 이어 오면서 많은 영향을 끼쳐 오고 있다. 우리나라 지명이나 산 이름 · 절 이름 등에 미륵 · 용화 · 도솔 등이 자주 쓰였던 것도, 각 절에 미륵불을 봉안한 미륵전(彌勒殿)이 흔히 있는 것도, 상당수의 미륵불상이 전해지고 있는 것도, 미륵신앙에 얽힌 설화가 민간에 널리 퍼진 것도 모두 미륵신앙의 영향이었다.

신라시대의 화랑(花郎)과 미륵신앙이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었던 것은 분명 미륵신앙의 신라적 수용의 한 특징이었다. 미륵신앙의 이상세계를 신라사회에 구체적으로 역사화시키고자 했던 의도가 엿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미래의 미륵이 출현하는 유토피아적 이상세계를 제시하고 있는 미륵신앙은 주로 하층민의 희망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삼국시대

우리나라에서의 미륵신앙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그 초창기에 관한 문헌 기록이 없기 때문에 잘 알 수 없으나, 고구려에 불교를 전파하기 위해서 순도(順道)를 파견하였던 전진(前秦)의 왕 부견(符堅)이 서역으로 사신을 보내 간절한 마음으로 미륵불상을 구해 왔던 것으로 보아, 고구려에 불교가 전래된 초기부터 미륵신앙이 전개되었으리라 짐작된다.

또한, 평양에서 발견된 신묘명금동삼존입상(辛卯銘金銅三尊立像) 광배(光背) 뒷면에 있는 명문을 통하여 미륵신앙의 전개를 살필 수 있다. 여기에는 죽은 어머니가 미륵삼회에 참석할 수 있기를 발원하여 미륵상을 조성하였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백제에서는 6세기 이후부터 미륵신앙이 널리 퍼져 있었다. 이는 미륵사 · 미륵불광사(彌勒佛光寺) 등의 절이 세워졌고, 미륵반가사유상의 조상(造像)이 성행하였던 것으로 알 수 있다. 특히, 미륵불광사는 그 사적의 문맥으로 보아 성왕 때의 중요한 절이었음을 알 수 있다. 552년(성왕 30)에는 왕이 일본에 불상과 불경을 보내 주었는데, 이 때 전해준 불상은 석가불과 미륵석불(彌勒石佛)이었다.

또한 미륵선화설화(彌勒仙花說話)에 의하면, 위덕왕 때 신라의 승려 진자(眞慈)가 미륵화신(彌勒化身)을 친견하고자 웅진(熊津)의 수원사(水源寺)를 찾아왔다고 한다. 이 설화는 삼국시대의 미륵신앙이 공주지방에 전래되어 그곳을 중심으로 유행되고 있었을 가능성을 시사해 준다. 634년(무왕 35) 낙성된 미륵사는 왕이 익산에 별도(別都)를 경영함에 따라 세운 삼국 제일의 규모를 가진 대가람이었다.

창건 연기설화에서 볼 수 있듯이 이 절은 왕과 왕비의 원찰(願刹)이었고, 백제 미륵신앙의 중심 사원이었다. 특히, “용화산(龍華山) 아래의 못에서 미륵삼존이 출현하였다.”고 한 것으로 보아 당시의 미륵신앙은 주로 하생신앙이었음을 살필 수 있다.

신라 사회에 미륵신앙이 넓게 퍼져 있었음은 『삼국유사』에 전하는 기사와 불상 등을 통하여 쉽게 알 수 있다. 신라 최초의 절이었던 흥륜사(興輪寺)의 주불은 미륵불이었다. 진평왕 때의 흥륜사 승려 진자는 항상 미륵상 앞에서 ‘대성(大聖)이 화랑으로 화신하여 세상에 출현해 줄 것’을 발원하였다. 그는 미륵선화를 만나기 위하여 웅진 수원사를 찾아가기도 하였다.

다시 경주로 돌아온 그가 미시(未尸)라는 아름다운 소년을 만나 7년 동안이나 국선(國仙)으로 받들었다는 미륵선화설화는 화랑도와 미륵신앙의 깊은 관련성을 시사해 주는 것이다. 아울러, 이 설화는 미래에 상카(Sa○kha)라는 전륜성왕이 다스릴 때 미륵이 출현한다는 미륵신앙의 이상세계를 신라사회에 구체적으로 역사화시키고자 한 욕구를 엿볼 수 있다.

또한, 진평왕 때 화랑으로 활동하던 김유신(金庾信)은 그의 낭도들을 용화향도(龍華香徒)라고 불렀다. 용화란 미륵보살이 장차 성불할 용화수를 의미하는 것으로 미륵하생신앙과 관련이 있다. 화랑 출신으로 삼국통일에 큰 공을 세운 바 있는 죽지(竹旨)의 탄생설화에도 미륵신앙의 영향이 보인다.

곧, 죽지의 아버지 술종공(述宗公)이 죽지령(竹旨嶺)의 길을 닦는 한 거사(居士)를 죽지령의 북봉에 장사지내고 무덤 앞에 돌미륵상을 안치하였더니, 그로부터 부인이 임신하여 죽지를 낳았다는 것이다. 이처럼 화랑과 미륵신앙과의 관련은 귀족층의 합목적적인 의도와 민중의 구원론적 이상이 합일된 데서 나타날 수 있었다.

 
통일신라시대

통일신라시대에 접어들면 전반적인 불교학의 발달과 함께 미륵사상에 대한 학문적 논리체계를 세우게 된다. 원효(元曉)는 『미륵상생경』에 대한 종요(宗要) 및 소(疏)를, 원측(圓測)은 『미륵상생경약찬(彌勒上生經略贊)』을, 의적(義寂)은 『미륵상생경요간(彌勒上生經料簡)』을 각각 저술하였고, 특히 태현(太賢)은 『미륵삼부경』에 대한 고적기(古迹記) 각 1권씩을 저술하였다.

경흥(憬興)은 『미륵상생경소(彌勒上生經疏)』 · 『미륵하생경소(彌勒下生經疏)』 · 『미륵경수의술문(彌勒經遂義述文)』 · 『미륵경술찬(彌勒經述贊)』 등의 많은 저서를 짓기도 하였다. 『삼국유사』의 백월산이성설화(白月山二聖說話)에서 볼 수 있듯이 『미륵하생경』에 나타나는 미륵 부모의 이름이 신라인의 이름에까지 쓰이고, 수행을 통하여 미륵불로 현신성도(現身成道)했다는 것은 미륵신앙 관계 경전의 폭넓은 유통을 토대로 미륵하생성불사상이 신라적으로 변용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경덕왕 때의 승려이자 낭도였던 월명(月明)은 「도솔가(兜率歌)」를 지어 꽃을 통해서 미륵을 친히 모셔 줄 것을 기원함으로써 미륵왕생의 이상을 나타내기도 하였다. 경덕왕 때의 충담(忠談)은 해마다 3월 3일과 9월 9일이면 남산 삼화령(三花嶺)의 미륵불상에게 차공양을 올렸다. 이 삼화령의 미륵불상은 일찍이 선덕왕 때의 승려 생의(生義)가 땅속에 묻혀 있던 것을 파내어 모셔 둔 것이었고, 현재까지도 국립경주박물관에 전하고 있다.

특히, 경덕왕 때의 진표(眞表)는 참회의 행법(行法)을 통하여 지장보살로부터 계법(戒法)을 받고, 미륵보살로부터 본각(本覺)과 시각(始覺)을 상징하는 두 개의 목간자(木簡子)와 수기를 받은 뒤, 망신참(亡身懺)과 점찰법(占察法)을 통하여 독특한 미륵신앙을 확립시킨 대종주(大宗主)이다. 그는 미륵과 지장을 연결하고 참회와 깨달음을 통하여 새로운 정토를 여는 근본 도량으로 금산사(金山寺)를 창건하였다.

이 밖에도 『삼국유사』에 수록되어 전해지고 있는 미륵불상에 얽힌 설화들은 당시 사회에 미륵신앙이 보편화되어 있었던 사실을 알게 해주는 좋은 자료이다. 719년(성덕왕 18) 김지성(金志誠)이 돌아가신 부모를 위하여 감산사(甘山寺)를 창건하고 석미륵상을 봉안하였다. 764년(경덕왕 23) 왕이 백월산에 남사(南寺)를 세운 뒤 금당에 미륵상을 모시고 ‘현신성도미륵지전(現身成道彌勒之殿)’이라고 액호하였는데, 이것은 달달박박(怛怛朴朴)과 노힐부득(努肸夫得)이 현신성도하였던 것을 기념하는 것이다.

경덕왕 때의 고승 태현은 항상 용장사(茸長寺)의 미륵장륙석상을 돌았는데, 그 미륵상이 따라서 얼굴을 돌렸다는 설화, 그리고 죽은 아이를 묻었던 땅에서 미륵석상이 나왔다는 조신(調信)의 꿈 이야기 등, 미륵신앙과 관련된 설화들이 민중의 입을 통해서 유포될 수 있었던 것은 신라사회에 미륵신앙이 그만큼 널리 수용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자칭 미륵불은 후고구려의 왕 궁예(弓裔)이다. 금관을 쓰고 가사를 입은 궁예는 맏아들을 청광보살(靑光菩薩), 막내아들을 신광보살(神光菩薩)이라 하여 협시보살로 삼았으며, 스스로 불경 20여 권을 만들고 미륵관심법(彌勒觀心法)을 행한다는 등 허무맹랑한 소리로 무고한 대중을 괴롭혔다.

 
고려시대

신라 이후 올바른 미륵신앙이 어떻게 전개되었는가에 대해서는 상세히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오늘날까지 미타신앙 · 관음신앙과 함께 하나의 전통으로 여전히 대중들 사이에 살아남아 있다. 다만, 고려 초기 이후 특별히 미륵신앙에 관심을 가진 승려가 많지 않았고, 미륵신앙을 중요시하는 법상종(法相宗)이 선종(禪宗)이나 화엄종(華嚴宗)의 세력에 밀려났으므로 신라시대와 같이 열렬함과 독특함을 함께 갖춘 미륵신앙은 다시 꽃피어날 수 없었다.

그러나 특수 사찰을 중심으로 하여 미륵신앙은 왕실 및 민중 속으로 깊이 파고들어 갔다. 고려의 개경에는 태조 때부터 미륵사에 공신당(功臣堂)을 두고 매년 10월이면 법회를 열어 그들의 명복을 빌었다. 현종은 모후(母后)의 원찰로 현화사(玄化寺)를 창건한 뒤 법상종 승려들을 주지로 임명함으로써, 현화사를 근거로 하는 법상종은 미륵을 신봉하는 고려 중기의 대표적 교단의 하나가 되었다.

현화사에는 대지(大智) · 혜소(慧炤) · 지광(智光) · 영념(英念) · 혜덕(慧德) 등의 고승이 차례로 머물면서 법상종 교단을 이끌었다. 이 절에서는 현종의 발원에 의하여 매년 미륵보살회와 미타불회가 열렸다. 특히, 매년 4월 8일부터 3일 동안 개최되던 미륵보살회는 국가의 번영과 사직의 안녕을 축원하기 위함이었다.

현화사 금당의 주불은 미륵불이었고, 특히 혜덕은 미륵보살상을 모시고 매년 승려를 모아 귀의하게 하였으며, 입적하는 순간까지도 미륵의 명호를 염하였을 정도로 미륵신앙에 독실하였다.

1070년(문종 24) 흥왕사 내 자씨전(慈氏殿)이 창건되었고, 1109년(예종 4) 4월 예종은 미륵사에서 법회를 열기도 하였다. 충렬왕 때는 광명사(廣明寺)에서 용화회(龍華會)가 열렸는데, 1301년(충렬왕 27) 9월과 1302년 2월에 각각 있었다. 그리고 이 무렵 왕사 무외(無畏)가 주관하는 용화회가 조계산에서 7일 동안 열리기도 하였다.

이상은 주로 왕실 주변에 있었던 미륵신앙의 사례이다.

민간에서도 이 미륵신앙은 그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미륵불을 주불로 모신 사원으로는 금산사나 현화사 외도 관촉사(灌燭寺) · 금장사(金藏寺) · 도솔사(兜率寺) 등이 있었다. 광종 때 혜명(慧明)에 의하여 창건된 충청남도 논산시 은진면 반야산의 관촉사에는 1006년(목종 9)에 완성된 미륵석불상이 현재까지 남아 있다. 이 미륵불상에 얽힌 영험설화는 당시 사회에 미륵신앙이 폭넓게 유포 되었음을 알게 해준다.

992년(성종 11) 현탄(玄旦)이 창건한 용두산(龍頭山) 금장사 금당의 주불은 미륵삼존이었는데, 1310년(충선왕 2) 당시의 왕사 진감(眞鑑)과 제자 굉지(宏之)가 이 미륵삼존에 금을 다시 입히기도 하였다. 이규보(李奎報)의 「남행월일기(南行月日記)」에 의하면, 옥구에서 장사(長沙)로 가는 길가에 도솔사가 있었고, 그곳에 미륵석상이 있었다고 한다.

정치적 · 사회적으로 불안하던 고려 후기의 민간에는 미륵신앙이 상당히 성행하고 있었던 것 같다. 미륵불이 하생하여 교화하는 용화회에 참여하여 미륵불에게 향을 공양할 수 있기를 발원하며, 향목(香木)을 해변에 묻어 두는 풍속이 행해지고 있었음은 곧 미륵하생신앙의 유행을 말해 주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미륵하생신앙은 고성삼일포매향비(高城三日浦埋香碑) 및 사천매향비(泗川埋香碑) 등에 잘 나타나고 있다. 1387년(우왕 13)에 세워진 사천매향비에 의하면 1,000인이 결계(結契)하여 발원하였고, 1309년에 세워진 삼일포매향비에 의하면 지방관 10여 명을 비롯한 존비(尊卑)가 함께 발원하고 있다. 특히, 1309년에 있었던 매향은 동해안의 9곳에 향목 1,500조를 묻었던 것이다.

그러나 고려 말에도 또 한 차례 자칭 미륵불이 나타났다. 곧, 우왕 때의 이금(伊金)이다. 심지어는 나무에서 곡식이 열리게 할 것이라는 말까지 신봉하고 따랐을 정도이다. 그러나 이금도 역시 고통받는 민중을 구제할 미륵불은 아니었고, 민중들을 우롱하다 처형당한 사이비에 지나지 않았다.

 
조선시대

조선시대에도 미륵신앙은 하층민을 중심으로 이어졌을 것으로 추측되지만 알 수 있는 자료는 많지 않다. 다만,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사건으로는 1688년(숙종 14) 요승 여환(呂還)이 일으킨 역모만이 뚜렷이 부각되고 있다. 여환은 아내 원향(遠香)과 무녀인 계화(戒化), 아전이었던 정원태(鄭元泰), 그리고 황회(黃繪) 등을 규합하여 “석가불이 다하고 미륵불이 세상을 다스리게 될 것이다.”라 하며 양주군 청송면을 중심으로 미륵신앙을 널리 퍼뜨렸다.

그를 따르는 무리는 차차 황해도 · 강원도 등지에까지 퍼져 갔다. 여환은 “이제부터 용이 아들을 낳아 나라를 다스릴 것이다.”라고 하면서 아내를 용녀부인이라 불렀고, 그녀의 신통 변화는 가히 측량할 수 없다고 하였다. 또한, 정씨 성을 가진 무당 계화는 정성인(鄭聖人)으로 탈바꿈하여 민중들을 유혹하였고, “7월에 큰 비가 와서 도성이 무너질 것이다.”라고 하면서 미륵 신봉자들에게 장검과 군복을 준비시켰다.

이들은 폭우로 도성이 무너질 때 대궐로 들어갈 계획을 세우고, 7월 13일 무장한 신도들을 양주 대전리(大田里)로 집결시켰다. 무장한 신도들을 양주에 남겨 둔 채 여환 등 10여 인은 15일에 상경하여 비가 오기를 기다렸으나 하늘은 오히려 맑기만 하였다. 이에 하늘을 우러러 아직은 공부가 이루어지지 않아 하늘이 응하지 않는다고 탄식하면서 16일 양주로 돌아갔다.

보름쯤 지나자 이 사건은 조정에 알려졌고, 여환 등 주모자 여러 사람이 처형됨으로써 이들의 허망한 꿈은 무너졌다. 여환 등은 미륵신앙과 민간신앙인 용신앙을 교묘하게 관련지었고, 또한 무녀들이 이에 적극 합력하였다. 그러나 이들은 막연히 미륵이 내세하여 이상사회를 구현한다고 믿었던 듯하며, 초월적인 힘과 천변재이를 기대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들에게 호응하였던 많은 사람들은 주로 하층민과 노비층이었다. 불안하고 어두운 사회에서 흉년과 질병 등으로 시달리던 민중들에게 이상사회의 실현을 약속하는 미륵하생신앙은 그들의 소박하고 막연한 기대감을 자극할 수 있었다.

 
근대

불교계에서 분파된 신흥종교 중 전통적인 불교의 미륵신앙을 그들의 교리 속에 절충하여 가진 경우가 있다. 주로 증산교(甑山敎) 계통과 용화교(龍華敎)가 그 대표적 예이다. 증산은 평소 제자들에게 금산사의 미륵불로 강림할 것이라고 말해 왔다고 한다. 또는 “나는 금산사로 들어가 불양탑(佛養塔)이나 차지하리라.”, “내가 금산사로 들어가리니 나를 보고 싶거든 금산사로 들어와서 미륵불을 보라.”고 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증산은 금산사와 미륵불에 대하여 관심을 표하였으며, 이로부터 증산의 제자들은 금산사를 차지하여 후천세계(後天世界)를 주재하려는 노력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들의 의도는 순수한 불교의 미륵신앙이라기보다 증산의 가르침에 의한 미륵불의 출세를 기대하는 것이었다. 증산의 제자 김형렬(金亨烈)은 한때 금산사에 미륵불교라는 한 교파를 세우고 금산사의 미륵불을 증산의 영체(靈體)로 신봉하기도 하였다.

김형렬의 뒤를 이어 유제봉(柳濟鳳) · 최선호(崔善湖) 등이 미륵계(彌勒稧)를 조직하고 금산사의 미륵불을 신앙하는 활동을 계속하기도 하였다. 서백일(徐白一)이 세운 용화교는 금산사를 본거지로 삼아 한때 그 교세를 떨치기도 하였다.

1966년 교주 서백일이 피살된 뒤 그 교세는 쇠퇴했지만, 금산사 주변의 용화동(龍華洞)을 중심으로 용화교를 신봉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1950년대에는 강성태(姜聖泰)를 중심으로 미륵존불숭배회(彌勒尊佛崇拜會)가 조직되기도 하였다.

이처럼 금산사 미륵전을 중심으로 찾아들었던 대부분의 미륵 신자들은 증산교 계통의 신흥종교 신도들이었다. 이들의 미륵신앙은 불교의 전통적인 미륵신앙과는 다른 형태로 전개되었으므로, 전통적인 미륵신앙을 전개하기 위해서 이종익(李鍾益)은 불교십선운동본부(佛敎十善運動本部)를, 송월주(宋月珠)는 미륵정신회(彌勒正信會)를 각각 조직하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삼국유사』
『고려사』
『숙종실록』
『연려실기술』
『한국미륵신앙의 연구』(김삼룡, 동화출판공사, 1983)
『한국의 미륵사상』(장영주, 한국미륵사상연구회, 1982)
「백제반가사유석상소고」(황수영, 『역사학보』 13, 1960)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19922

 

미륵상생경(彌勒上生經)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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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우리나라 미륵신앙의 근본이 되는 불교경전.
개설

1권.『관미륵보살상생도솔천경(觀彌勒菩薩上生兜率天經)』이라고도 한다. 『미륵하생경(彌勒下生經)』·『미륵성불경(彌勒成佛經)』과 함께 미륵삼부경(彌勒三部經)이라 하여 우리 나라에서 널리 유통되었다.

내용

내용은 석가모니불의 제자인 미륵아일다(彌勒阿逸多, Maitreya Ajita)에 대한 것, 도솔천의 장엄(莊嚴), 미륵보살의 상생(上生)과 하생(下生)에 관한 세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부처님이 사위국에 계실 때 미륵이 12년이 지나 목숨을 마치면 도솔천에서 태어날 것이며, 후세에 미륵불이 될 것이라는 수기(授記)를 받는 내용이다.

둘째, 도솔천은 오백만억 명의 하늘나라 아들들의 서원(誓願)에 의하여 장엄되는데, 이 칠보(七寶)로 장엄된 세계에는 저절로 생긴 악기에서 항상 십선(十善)과 사홍서원(四弘誓願)을 설하는 음악이 나오며, 5대신(五大神)이 있어서 갖가지 법문을 설한다.

그리고 이 도솔천에 태어나기 위해서는 오계(五戒)와 팔재계(八齋戒)·구족계(具足戒)를 갖추고 몸과 마음으로 정진해야 하며, 십선법(十善法)을 닦고 도솔천의 쾌락함을 사유해야 한다고 하였다.

셋째, 미륵신앙의 의의를 천명해주는 부분에는 일반 신도들이 미륵불을 찾고 그에게 귀의하게 되는 이유와 그를 만나 제도를 받기 위한 수행방법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이를 정리해보면, ① 부처가 죽은 뒤 끊임없는 정진을 하고 많은 공덕을 쌓을 때, ② 탑을 깨끗이 하고 좋은 향과 아름다운 꽃을 공양할 때, ③ 여러 가지 삼매(三昧)를 닦아 깊은 선정(禪定)에 들 때, ④ 경전을 독송할 때, ⑤ 염불을 하고 미륵불을 칭명(稱名)할 때, ⑥ 8계(戒)를 받고 깨끗한 행동을 닦으면서 사홍서원을 할 때, ⑦ 염부제(閻浮提)에서 널리 복업(福業)을 닦을 때, ⑧ 계를 어기고 악한 일을 범하였더라도 미륵보살의 자비로운 이름을 듣고 정성껏 참회할 때, ⑨ 미륵보살의 명칭을 듣고 그 형상을 만들어 향과 꽃, 깃발로 장엄하게 예배할 때 도솔천에 왕생하게 된다고 하였다.

이 경에서 왕생신앙을 강조하고, 또 왕생을 위하여 요구되는 수행덕목 들이 손쉽게 실천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 경에 근거하여 우리 나라의 미륵신앙이 널리 전개될 수 있었다.

이 경에 관한 찬술 주석서로는 원측(圓測)의 『미륵상생경약찬(彌勒上生經略贊)』 2권과 원효(元曉)의 『미륵상생경종요(彌勒上生經宗要)』 1권, 『미륵상하생경기(彌勒上下生經記)』 3권, 경흥(憬興)의 『미륵상생경요간기(彌勒上生經料簡記)』 1권, 대현(大賢)의 『미륵상생경고적기(彌勒上生經古迹記)』 1권 등 다수의 신라시대 저술이 있다.

우리나라 소장 판본으로 국립중앙도서관에 있는 『미륵상생경』은 해인사에서 1913년에 발행된 것이다.

의의와 평가

이는 신라시대 크게 흥행하였던 미륵신앙을 뒷받침해주는 좋은 사료가 된다. 고려 이후 이 경에 대한 주석서는 거의 발견되지 않고 있다.

참고문헌

『한국불교찬술문헌총록』(불교문화연구소, 동국대학교출판부, 1976)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승려 원효가 『미륵상생경』의 내용을 집약하고 핵심요지를 설명한 해설서
 

미륵상생경종요(彌勒上生經宗要)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ncykorea.aks.ac.kr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승려 원효가 『미륵상생경』의 내용을 집약하고 핵심요지를 설명한 해설서. 불교해설서.

정의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승려 원효가 『미륵상생경』의 내용을 집약하고 핵심요지를 설명한 해설서. 불교해설서.
 
개설

1권. ‘종요(宗要)’라는 이름이 나타내듯이 어구에 대한 주석이 아니라 『미륵상생경』의 대의를 밝히고 있다. 나아가 이 경이 대승경이냐 소승경이냐 하는 논의에 대한 해명, 다른 미륵경전들과의 관계, 기타 이 경의 다른 몇 가지 내용상의 문제들에 대하여 서술하고 있다.

내용

원효는 이 종요를 대의(大意)·종치(宗致)·이장시비(二藏是非)·삼경동이(三經同異)·생신처소(生身處所)·출세시절(出世時節)·이세유무(二世有無)·삼회증감(三會增減)·발심구근(發心久近)·증과전후(證果前後) 등 10문으로 나누어 해설하였다.

첫째 대의에서는 이 『미륵상생경』을 “지인(至人)이 하늘에 오르시는 묘한 발자취요, 사람들에게 관(觀)을 수(修)하도록 권하는 진실한 경전이다.”라 하고, 『미륵상생경』의 원래 제목인 『불설관미륵보살상생도솔타천경 佛說觀彌勒菩薩上生兜率陀天經』의 의의를 밝혀 이 경의 대의를 설명하였다.

여기서는 ‘불설’이 무엇이며 ‘관’·‘미륵보살’·‘상생’·‘도솔’·‘천’·‘경’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를 상세하게 밝혀 이 경의 참뜻이 어디에 있는가를 서술하고 있다.

둘째 종치에서는 이 경의 종(宗)이 관행인과(觀行因果)에 있고, 의치(意致)가 사람들로 하여금 하늘나라에 태어나 영원히 퇴전(退轉)함이 없게 하는 것이라 하였다. ‘관(觀)’에는 ① 하늘나라 의보(依報)의 장엄한 모습을 관하는 것과, ② 보살의 정보(正報)의 수승함을 관하는 것의 두 가지가 있으며, ‘관’은 전념으로 관찰하는 일, 즉 삼매를 의미하고, 그것은 아직도 문혜(聞慧)나 사혜(思慧)이지 수혜(修慧)가 되지 못한다고 하였다.

‘행(行)’에는 ① 대자(大慈)의 이름을 듣고 마음으로 존경하여 앞서 지은 죄를 뉘우치는 것과 ② 자씨(慈氏)의 이름을 듣고 이 이름이 표시하는 덕(德)을 우러러 받들고 믿으며. ③ 탑(塔) 주위를 쓸고 지면에 물을 뿌리고, 향(香)·화(華)를 공양하는 등 제사업을 행하는 것을 의미하고 있어, 여기에서 신라시대 미륵신앙의 구체적 일면을 찾아볼 수 있다. 원효는 계속해서 과에 언급하여, 이 관과 행이 합쳐 한 뿌리가 되어 네 가지 열매[果]를 맺게 한다고 하였다.

비유로 말하여, ① 아경이토지과(芽莖離土之果:싹과 줄기가 땅에서 떠난 결과), ② 화엽음량지과(華葉陰凉之果:꽃과 잎이 서늘한 그늘을 만드는 결과), ③ 묘화개부지과(妙華開敷之果:아름다운 꽃이 활짝 핀 과), ④ 방과성취지과(芳果成就之果:향기로운 열매가 맺힌 과)의 넷이라 하였다.

①은 앞에서 말한 첫번째 행(行)으로 인하여 얻어진 결과로, 앞에서 지은 중죄(衆罪)들을 다 없애는 것이며 ②는 둘째 행의 결과로서, 삼악도(三惡道)의 변지(邊地)에 있는 사견(邪見)에 떨어지지 않는 것이며, ③은 셋째 행의 결과로, 도솔천에 태어나는 묘(妙)한 과보를 말하며, ④는 앞에서 말한 두 가지 관의 결과로, 무상도(無上道)에 이르러 퇴전(退轉)하지 않게 된 것을 비유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셋째 이장시비에서는 『미륵상생경』이 소승교인 성문장(聲聞藏)이라는 설과 대승교인 보살장(菩薩藏)이라는 두 가지 설이 있는데, 어느 것이 옳으냐 하는 의문에 네 가지 인증(引證)을 들어 이 경이 대승교임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원효의 견해는 보살의 보응(報應)에 관한 설명이다.

그는 “보살의 의보와 정보의 장엄은 만행(萬行)으로 느끼는 실보(實報)냐, 그렇지 않으면 근기(根機)에 따라 상응하게 변화하는 상(相)이냐? 만약, 전자(前者)라면 범부의 소견이 아니니 이 보(報)는 응이 아니요, 만약 후자라면 시방(十方)에 변(遍)하지 못하니 이 응은 보가 아니지 않느냐? 그런데 어떻게 보살의 보응이라 할 수 있겠는가?”라는 물음을 제기하고, 다음과 같이 풀이한다.

“그 하나하나의 상(相)에는 다 분제(分齊:한계)가 있다. 분제를 깨뜨리지 않고 각각 시방에 변(遍)한다. 시방의 끝에 변(遍)한 것은 범부가 못 보고, 그 분제의 끝은 범부가 본다. 분제가 곧 변이요 변이 곧 분제이며, 무장무애(無障無礙)·무이무별(無二無別)하다.

이와 같은 공덕은 실보(實報) 아님이 없다. 그리고 수분(隨分)으로 보이는 것, 그것이 응화아님이 없다. 이런 도리로 말미암아 보응한다고 설하는 것이다. 진실을 말하자면 인(因)에 만행이 갖추어지면 과에 만덕(萬德)이 원만해진다. 지금 여기서는 좁게 천(天)에서의 보응만을 말하였을 따름이다.”

이 언명은 『화엄경』의 법계무애(法界無礙)의 도리에 입각하여 정토사상을 해석하는 원효의 근본입장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넷째 삼경동이에서는 『미륵상생경』·『미륵하생경』·『미륵성불경』의 미륵신앙 삼부경(三部經)이 어떤 차이점이 있는가를, ① 소위(所爲, 수행면), ② 소전(所詮, 내용), ③ 소섭(所攝, 경전의 성격) 등 세 부분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수행면으로 보아 제일 상품(上品)의 사람은 관불삼매(觀佛三昧)를 닦거나 참회행법(懺悔行法)을 행하는 사람으로, 이들은 현신(現身:현재의 몸)에서 미륵을 볼 수 있으며, 이는 『관불삼매해경 觀佛三昧海經』이나 『대방등다라니경 大方等陀羅尼經』이 설하는 바이다.

그리고 중품(中品)의 사람은 관불삼매를 닦거나, 갖가지 정업(淨業)을 지음으로 인하여 죽어서 도솔천에 태어나 미륵을 보고 불퇴전에 이르는데, 이것은 『미륵상생경』이 설하는 바이다.

하품(下品)의 사람은 시(施)·계(戒) 등 여러 가지 선업(善業)을 닦고 이에 의하여 발원하고 미륵을 보고자 원하는 자들인데, 이들은 죽어서 다시 업(業)을 따라 태어났다가 미륵이 성도할 때 비로소 세존의 삼회(三會)를 보고 득도한다. 이것이 『미륵하생경』과 『미륵성불경』의 설하는 바라고 하였다.

내용면에서는 『미륵상생경』에서 밝히는 천의 보응이란 보살의 공덕이요, 다른 두 경은 인보(人報)로서의 성불 등의 상(相)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고 하였다. 경전의 성격에 관해서는 『미륵상생경』은 보살장에 속하지만 다른 두 가지는 성문장의 것이라 하였으며, 다음과 같이 단서를 붙이고 있다.

“그러나 바느질을 할 때는 짧은 바늘이 필요하다. 긴 창이 있다 하여도 소용이 없다. 비를 피하기 위해서는 작은 우산이 소용있지 온 하늘을 다 덮을 수 있더라도 큰 덮개 같은 것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러므로 작다고 가볍게 여길 일이 아니다. 그 근성이 대소에 따라 다 귀중한 것이다.” 이 마지막 구절은 원효의 화쟁(和諍)의 이상을 잘 나타내어 주는 것이기도 하다.

다섯째 생신처소에서는 미륵보살이 태어난 처소에 관한 문제를 언급하고 있으며, 그 이하 끝까지는 비교적 자질구레한 숫자와 관련된 문제들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원효는 일단 매우 기술적인 숫자의 이동(異同)에 관하여 그 나름대로의 치밀한 의견들을 제시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의 근본적 해석의 원리는 여전히 화엄적인 사고방식에 의거하고 있음을 살펴볼 수 있다.

참고문헌
「원효의 미륵신앙」(이기영, 『한국불교연구』, 한국불교연구원, 1982)

 

http://w3devlabs.net/hb/archives/3474

 

미륵상생경(彌勒上生經) – 建成의불교공부

미륵삼부경 미륵상생경(彌勒上生經) 경전의 정확한 이름은 《불설관미륵보살상생도솔천경(佛說觀彌勒菩薩上生兜率天經)》으로 이 경전의 주요내용은 10가지 착한 행위로 태어나는 도솔천의

w3devlabs.net

 

사면대불 후면의 마라난타상

법성포(法聖浦)란 불법을 전래한 성인 마라난타가 배편에 불경을 싣고 온 포구란 의미다. 영광군은 조기밖에 모르던 광광객들에게  삼국사기 권24의 기록을 각인시키는 데 성공했다. 법성포로 상륙한 마라난타가 백제 최초의 사찰인 불갑사를 건립하여 불법을 꽃피웠다. 그 때문에 불갑사에서는 지극정성으로 꽃무릇을 가꾸는지도 모를 일이다.

 

법성포구의 마라난타사

발간일- 2016-05-10 09:00

https://www.yna.co.kr/view/AKR20160509134200054

 

1천600여년前 불교 도착한 곳…영광 법성포서 간다라문화 숨결을 | 연합뉴스

(영광=연합뉴스) 장덕종 기자 = '굴비의 고장'으로 유명한 전남 영광 법성포(法聖浦).

www.yna.co.kr

영광군 10년전에 불교 도래지 선정…불교문화 체험장으로

영광군은 1998년 고증을 통해 법성포가 백제 불교 최초 도래지라는 사실을 밝혀내고 2006년 이곳에 불교 도래지를 조성했다.

 

https://arca.live/b/koreahistory/27778491

 

『해동고승전』 제1권 제1 유통1-1 석마라난타 - 한국사 채널

동진에서 백제로釋摩羅難陀胡僧也.승려 마라난타는 호승이다.神異感通莫測階位, 約志遊方不滯一隅.신이와 감통은 정도를 짐작할 수 없었으며, 사방으로 주유함에 뜻을 두어 한곳에 머무르지

arca.live

 

동진에서 백제로

釋摩羅難陀胡僧也.

승려 마라난타는 호승이다.

神異感通莫測階位, 約志遊方不滯一隅.

신이와 감통은 정도를 짐작할 수 없었으며, 사방으로 주유함에 뜻을 두어 한곳에 머무르지 않았다.

按古記, 本從竺乾入于中國附材傳身徵烟召侶,

고기를 살펴보면, 그는 원래 천축으로부터 중국으로 들어와 인재를 따라 몸을 의지하고 남모르게 벗을 불렀으며,

乘危駕險任歷艱辛有緣則隨,

그는 위험에 부딪치고 험난한 일을 겪었지만 어려움과 괴로움을 무릅쓰고 인연이 있으면 따라나서,

無遠不履.

아무리 먼 곳이라도 밟지 않은 곳이 없었다.

當百濟第十四枕流王卽位九年九月,

백제 제 14대 침류왕 즉위 원년 9월에,

從晋乃來王  出郊迎之,

그가 진나라에서 오니 왕은 교외에까지 나가 그를 맞이하였으며,

邀宮中敬奉供養禀受其說.

궁중에 모시고 공경히 받들어 공양하면서 그의 설법을 들었다.

더보기

[.... 下文 생략  ....]

 

 

 

https://www.youtube.com/watch?v=niqNC49uWsM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jj3235&logNo=220827185597 

 

백제 불교 초전지, 영광 마라난타사

소위 백제 불교 초전지가 착공된 것이 1999년의 일이니 적지 않은 세월이 흘렀다. 영광에...

blog.naver.com

https://www.yna.co.kr/view/AKR20160509134200054

 

1천600여년前 불교 도착한 곳…영광 법성포서 간다라문화 숨결을 | 연합뉴스

(영광=연합뉴스) 장덕종 기자 = '굴비의 고장'으로 유명한 전남 영광 법성포(法聖浦).

www.yna.co.kr

영광군 10년전에 불교 도래지 선정…불교문화 체험장으로

영광군은 1998년 고증을 통해 법성포가 백제 불교 최초 도래지라는 사실을 밝혀내고 2006년 이곳에 불교 도래지를 조성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POEMQGH8TvE 

 

 

 

 

 

일정에 쫓겨 사찰 내부의 간다라 조각을 돌볼 기회가 없어 왕년의 마라난타사 사진을 소개합니다.

 

https://kydong77.tistory.com/18827

 

법성포 부용루(芙蓉樓)/ 백제불교 최초 도래지

https://www.youtube.com/watch?v=9yResFAwl4I https://www.youtube.com/watch?v=mXE3lzEGrls https://www.youtube.com/watch?v=UGGCf94SEGM https://www.youtube.com/watch?v=3AxvFHp2Ai0 https://www.youtube...

kydong77.tistory.com

 

 

https://ko.wikipedia.org/wiki/%EA%B0%84%EB%8B%A4%EB%9D%BC

 

간다라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어머니 여신 테라코타, 간다라, 사르 데리, 기원전 1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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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다라 왕국은 기원전 7세기에서 기원전 518년까지 지속했으며, 간다라 왕국이 멸망한 이후에도 간다라는 쿠샨 왕조의 왕들 아래에서 불교 문화의 중심지로서 전성기를 누렸다. 서기 1021년 가즈나 왕조의 마흐무드가 정복하고서 간다라라는 지명은 사라졌다. 무슬림 시대 이 지역은 카불 또는 라호르의 통치자가 지배했고, 무굴 제국 시대에 카불 주 일부가 되었다.

간다라 미술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침략으로 인하여 헬레니즘 문화의 영향을 받은 미술로 그리스-불교미술 혹은 로마-불교미술이라고도 칭하였다. 이 미술은 대월지족이 세운 쿠샨 왕조에서 카니슈카 왕의 통치 아래서 가장 번성하였다.

간다라 미술은 인물의 생김새가 사실적이고 개성적이며 매우 자연스럽고, 감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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