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륵이여, 내가 이제 무량억(無量億) 아승기겁(阿僧祇劫)에 걸쳐 모아 온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법을 그대에게 부촉(付囑)하고자 한다.
이 같은 종류의 경전은 부처가 입멸한 뒤의 말세(末世)에 너희들이 마땅히 신통력으로 널리 설하여 유포시켜 염부제에서 단절되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왜냐 하면 미래세에는 마땅히 선남자·선여인과 천인·용·귀신·건달바·나찰(羅刹, Rkasa)
M='36)등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키고, 대승법을 좋아하는 이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이러한 경전을 듣지 못하게 한다면, 그 때는 뛰어난 이득[善利]을 잃게 될 것이다. 이 같은 사람들은 이들 경전을 들으면 반드시 대부분 마음으로부터 믿고 기뻐하여 희유한 마음을 낼 것이다. 마땅히 이 경전을 받들어서 모든 중생들의 근기에 맞게 이익을 얻는 것에 따라서 널리 설해 주어야 한다.
미륵이여, 마땅히 알아야만 한다. 보살에게는 두 가지 모습이 있으니, 어떤
36) 악귀로서 인간의 혈육을 먹고 공중과 지상을 질주한다. 여성을 가지면 나찰녀가 되며, 범천 등과 같이 불교 수호신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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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이 두 가지 모습인가 하면,
하나는 잡다한 글귀나 화려한 문장의 수식을 좋아하는 것이며,
또 하나는 심오한 뜻을 두려워하지 않고 여실하게 깊이 깨달아 들어가는 것이다.
만약 잡다한 글귀나 화려한 문장의 수식을 좋아한다면, 마땅히 알아라. 그것은 처음으로 수행에 들어선[新學] 보살이라는 것이다. 만약 이같이 번뇌에 물듦이 없고 집착이 없는 심오한 경전에 대해 두려움 없이 그 안에 깨달아 들어갈 수 있고, 듣고 나서는 마음이 청정해지고, 받아 지
니고, 독송하며, 설하신 대로 수행한다면, 마땅히 알아라. 이 사람은 오래도록 진리의 수행을 닦은 사람[久修道行]이라는 것이다.
미륵이여, 또 처음으로 수행에 들어선 보살에게는 두 가지가 있다. 매우 심오한 진리에 마음을 결정하지 못한다. 무엇이 둘37)이냐 하면, 하나는 아직 듣지 못한 심오한 경전을 듣고 놀라고 두려워 의심이 생겨서 수순하지 못하고 훼방하고 믿지 않으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나는 아직 들어 본 일이 없다. 어디서 온 것일까?'
둘째는, 이같이 심오한 경전을 지키고 지니며 해설하는 사람이 함께 있어도 친근히 하지 않고, 공양하려 하지 않고 공경하지 않으며, 때로는 그 가운데에 있으면서 비방까지 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경우는 마땅히 알아라. 처음 수행을 시작한 보살이 스스로를 상처 입히고, 심오한 진리를 들으면서도 그 마음을 조복하여 다스릴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미륵이여, 또 두 가지가 있다. 보살이 비록 심오한 진리를 믿고 이해하더라도 오히려 스스로 상처를 입히므로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을 수가 없다. 무엇을 둘이라 하는가 하면,
첫째는 처음 수행에 들어선 보살을 가벼이 여기고 가르쳐 교화하고자 하지 않는 것이며,
둘째는 비록 심오한 가르침을 알고는 있으나 겉모습[取相]만을 가지고 분별하는 것이다. 이것을 두 가지라 한다."
미륵보살이 이같이 설하는 것을 듣고서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미증유(未曾有)한 일입니다. 부처님께서 설하신 대로 저는 이 같은 나쁜 것을 멀리하고, 여래의 무수한 아승기겁에 걸쳐 모여진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진리를 받들겠습니다. 만약 미래세에 선남자·선여인으로서 대승
37) 현장은 '사(四)'라 번역하였다. 즉 나집이 둘로 본 내용을 둘로 나누어 넷으로 셈한 것이다.
을 구하는 이가 있다면 마땅히 이 같은 경전을 손에 쥘 수 있게 하고, 그에게 기억력으로 받아 지니고 독송하게 하며, 남을 위하여 널리 설하도록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 만약 후세의 말세(末世)에 이 경을 받아 지니고 독송하며 남을 위하여 설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마땅히 알아 주소서. 이는 미륵이 신통력으로써 이룩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구나. 미륵이여, 그대가 말한 것같이 내가 그대가 기뻐하는 일을 도우리라."
이에 일체의 보살들은 합장하고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저희들도 또한 여래께서 입멸하신 뒤에는, 시방국토에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진리를 널리 유포시키고 모든 가르침을 설하는 사람들을 이끌어 깨우쳐 이 경전을 깨닫도록 하겠습니다."
그 때에 사천왕들도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어느 곳이든지[在在處處] 성읍과 취락·산림·광야의 어디든 이 경전이 있어서 독송하고 해설하는 자가 있다면, 저희들은 권속을 데리고 설법을 듣기 위해서 그곳으로 가겠습니다. 그 사람을 지키고, 주위 백 유순을 살펴 틈이 없게 하겠습니다."
그 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이 경전을 받아 지녀 널리 설하여 퍼지도록 하여라."
아난이 말씀드렸다.
"네, 제가 이미 중요한 것을 받아 지녔습니다. 세존이시여, 이 경전의 이름을 어떻게 불러야 마땅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난아, 이 경전을 유마힐소설(維摩詰所說)이라고 이름하며, 또 불가사의해탈법문(不可思議解脫法門)이라고 이름한다. 이같이 받아 지니도록 하여라."
부처님께서 이 경전을 다 설하시자, 장자 유마힐과 문수사리·사리불·아난 등과 모든 천인들·아수라 등 일체 대중들이 한결같이 다 부처님의 말씀을
"세존이시여, 저는 부처님과 문수사리로부터 백천(百千)의 경을 들었습니다만, 지금까지 이렇게 불가사의하고 자유자재하며 신통한 결정적 실상의 경전[不可思議自在神通決定實相經典, Acintya-vikurvana-nayaprave-nirdea]을 들어 본 적은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설하신 말씀의 뜻과 취지[義趣]를 제가 이해한 대로 말씀해 드리자면, 만약 어떤 중생이 이 경전의 가르침을 듣고서 믿고 이해하며 받아 지니고 독송한다면 반드시 이 법을 얻게될 것을 의심치 않습니다. 하물며 설하신 그대로 수행하는 사람은 말할 나위가 없을 겁니다. 이 사람은 온갖 악취(惡趣, durgati)를 닫아 버리게 되
고, 모든 선문(善門, sugati)을 열게 될 것이며, 선의 과보로 항상 제불의 보호와 염려를 받을 것이며, 또 이교도[外學]를 항복시키고 마군과 원수들을 꺾어서 물리치고 보리를 닦으며, 도량에 편안하게 거처하여 여래께서 수행하신 발자취를 밟아 실천해 갈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만약 이 경을 받아 지니고 독송하며 설하신 그대로 수행하는 사람이 있다면, 저는 반드시 권속과 함께 공양을 올리고 받들겠습니다. 취락이나 성읍·숲·광야, 그 어디이든 이 경전이 있는 곳이면 저와 저의 권속은
이 가르침을 듣고 받아들이기 위하여 그곳에 찾아가고, 아직 믿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반드시 믿게 하고, 이미 믿는 사람은 당연히 지키게 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구나. 천제(天帝)여, 그대가 말한 그대로이므로 나도 그대가 기쁜 마음으로 하는 일을 도우리라. 이 경전은 과거·현재·미래의 제불의 그 불가사의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널리 설한 것이다. 그러므로 천제여, 만약 선남자·선여인이 이 경전을 받아 지니고 독송하며 공양하는 이가 있다면, 곧 과거·현재·미래의 모든 부처님을 공양한 것이 된다. 천제여, 지금 (이곳에) 설령 삼천대천세계에 여래가 충만하기가 비유컨대 사탕수수
[甘"http://ebti.dongguk.ac.kr/images/k15103.gif"/>]·대[竹]·갈대·벼·삼[麻]·숲과 같다고 하더라도, 만약 어떤 선남자·선여인이 혹은 1겁 동안, 혹은 1겁 남짓33)까지 (이들 여래들을) 공경하고 존중하고 찬탄하며 공양하여 모든 필요한 것을 다 바치거나, 제불이 입멸한 다음에 하나하나의 전신사리(全身舍利)를 모아서 7보(寶)로 장식된 탑을 세우고, 그 넓이[縱廣]는 1사천하(四天下)에 달하며, 높이는 범천에 이를 만큼 높게 하고, 사리탑을 표시하여 장엄하기를 온갖 꽃이나 향·영락(瓔珞)·당(幢)·번(幡)·음악, 미묘하기가 제일인 것들로써 혹은 1겁 동안, 혹은 1겁 남짓 동안 이 탑에 공양한다면, 천제여, 그대의 생각은 어떠한가? 이 사람이 심은 복덕은 어찌 많지 않겠는가?"
석제환인이 말하였다.
"많습니다. 세존이시여, 그 복덕을 백천억 겁에 걸쳐 설하여도 다 설할 수는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천제에게 말씀하셨다.
"마땅히 알아야만 한다. 이 선남자·선여인이 이 불가사의해탈경전(不可思議解脫經典, Acintyavimoka nirdea)을 듣고 받아 지니고, 이해하고 기억하며 독송하고 수행하면, 그 복덕은 앞에서 말한 그 사람보다도 훨씬 많다는 것이다. 왜냐 하면,
제불의 보리가 모두 이 경전에서 나온 것이며, 그 보리의 모습은 헤아릴 수가 없기 때문에 이런 인연으로 그 복덕은 헤아릴 수가 없느니) '멸일겁(滅一劫)'이라고 했으나 현장과 티베트 역에서는 '일겁여(一劫餘)'라고 하였다. 문맥으로 보아도 "1겁 남짓까지"가 옳다고 생각된다.
"과거 무량아승기겁(無量阿僧祇劫)에 부처님께서 계셨으니, 약왕 여래(藥王如來, Bhaisajaraja)·응공(應供)·정변지(正遍知)·명행족(明行足)·선서(善逝)·세간해(世間解)·무상사(無上士)·조어장부(調御丈夫)·천인사(天人師)·불세존(佛世尊)이라고 이름하였다. 그 세계를 대장엄(大莊嚴, Mahvyha)이라 하고, 그 때[劫]를 장엄(莊嚴, Vicarana)이라고 하였다.
부처님의 수명은 20소겁(小劫)34)이며, 그 성문승(聲聞僧)은 36억 나유타(那由他)이고, 보살승(菩薩僧)은 12억이었다.
천제여, 그 때에 전륜성왕이 있었는데, 보개(寶蓋, Ratnacchattra)라고 이름하였다. 7보를 갖추었고, 사천하의 주인이었다. 이 왕에게는 1천 명의 왕자가 있었으며, 단정하고 용감하고 강건하여 능히 적을 항복시킬 수가 있었다."
이 때 보개왕은 그 권속과 함께 약왕여래에게 공양을 올리고, 여러 가지 좋은 것들을 베풀기를 5겁 동안 하였다. 이윽고 5겁이 지난 다음 그 1천 명의 왕자들에게 말하였다.
"너희들도 나와 같이 깊은 마음으로 부처님께 공양하여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1천 명의 왕자들은 부왕(父王)의 명을 받들어 약왕여래에게 공양을 올리고, 온갖 좋은 것들을 베풀기를 5겁 동안 하였다.
그 왕자 중에 월개(月蓋, Candracchatra)라고 하는 아들이 있었는데, 그는 홀로 고요히 앉아 생각하였다.
그 때에 월개 왕자는 곧 약왕여래를 찾아가 부처님의 발에 머리를 조아려 절하고 물러나 한쪽에 서서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모든 공양 가운데 법공양이 가장 훌륭하다고 하는데, 어떻게 하는 것이 법공양입니까?"
약왕여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법공양이라고 하는 것은 모든 부처님들께서 설하신 심오한 경전을 말하는 것이다. 이는 모든 세간에서는 믿기 어렵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으로서 미묘하여 보기가 어렵고, 청정하므로 번뇌에 물들지 않으며, 분별이나 사유로써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보살법장(菩薩法藏)에 포함되는 것이며, 다라니(陀羅尼)의 도장[印]으로 도장 찍힌 것이다. (이 경전의 법은) 불퇴전(不退轉)에 이르는 것이며, 6바라밀[六度]을 성취하고, 뜻을 바르게 분별하
며, 보리의 법에 잘 따르며, 모든 경전의 위에 있고, 대자비에 이끌어 들이고, 모든 마군의 장애와 온갖 삿된 견해를 떠나 있으며, 인연의 도리에 따르고 아(我,tman)도 인(人, pudgala)도 중생(衆生, sattva)도 수명(壽命, jva)도 없으며, 공(空,nyat)하며, 무상(無相,nimitta)이며, 무작(無作, apraihita)이요, 무기(無起, ajta)이며, 중생으로 하여금 도량에 앉게 하여 법륜을 굴리게 하며, 제천과 용신(龍神), 건달바(乾闥婆)들이 한결같이 이를 칭찬하며, 중생을 부처님의 법장(法藏)에 이끌어 들이고,
모든 현자와 성인의 일체 지혜를 모두 포용하며, 보살이 행해야 하는 길을 설하며, 제법의 실상의 의미를 따라 (제법은)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공하며 무아이고 적멸의 법을 밝혀 주며, 모든 계를 지키지 않는 중생들을 구제하고, 모든 마군과 이교도와 탐욕으로 얽힌 사람을 두려움에 떨게 하며, 제불과 현성(賢聖)이 함께 칭찬하며, 생사의 괴로움을 등져 버리고 열반의 즐거움을 나타내 보이며, 시방의 3세 제불이 설하시는 것이다. 만약 이와 같은 경
전을 듣고서 믿고 이해하고 받아 지니고 독송하고, 방편의 힘으로 온갖 중생들을 위하여 분별하여 해설하고 분명하게 밝혀 보여 주면, 법을 지키는 것이므로 이것을 법공양이라고 하는 것이다.또 제법을 설하신 대로 수행하고, 12인연(因緣)에 수순하고, 모든 삿된 견해를 떠나고, 무생법인을 얻고, 무아와 무중생(無衆生)이라고 결정코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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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과 과보에 거스르지 않고 다투지 않으며, 모든 내 것[我所]이라는 생각을 떠나며 (진리의) 의미를 의지하나 말에 의지하지 않으며,35)지혜를 의지하지 식(識)에 의지하지 않으며, 요의경(了義經)을 의지하지 불요의경(不了義經)에 의지하지 않고, 가르침[法]에 의지하지 사람에 의지하지 않으며, 법상(法相)에 수순하여 들어갈[入] 대상이나 돌아갈[歸] 대상도 없으며, 무명(無明)이 끝내[畢竟] 멸하였으므로 제행도 끝내는 멸해
지며, 내지 생도 끝내는 멸하므로 늙음도 죽음도 끝내는 멸하는 것이며, 이같이 12인연(因緣)을 관하여 다하여 없어지는 모습[盡相]이 있지 않고, 또다시 어떤 견해도 일으키지 않게 되면, 이것을 최상의 법공양이라고 하는 것이니라."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천제에게 말씀하셨다.
"왕자 월개는 약왕여래로부터 이와 같은 법을 듣고 유순인(柔順忍)을 얻고서 곧 보옥으로 장식된 옷과 장신구를 벗어서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고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입멸하신 뒤에 저는 반드시 법공양을 행하여 정법을 지켜 나갈 것입니다. 바라옵건대 위신력으로 불쌍히 여기시어 힘이 되어 주셔서 제가 마군과 원수를 항복시켜 보살행을 닦을 수 있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부처님께서는 그 깊은 마음으로부터 바라는 것을 알고 그에게 수기를 주시며 말씀하셨다.
'그대는 먼 훗날 진리의 성[法城]을 지킬 것이다.'
천제여, 그 때에 왕자 월개는 법의 청정함을 보고, 부처님의 수기를 듣고 믿음으로 출가하여 선법(善法)을 닦고 모아 정진한 지 오래지 않아서 5신통(神通)을 얻고, 보살도를 완성하여 다라니를 얻고 끊임없는 변재를 얻었다. 부처님께서 입멸하신 뒤에는 그가 얻은 신통력과 기억력[摠持]과 변재의 힘으로 10소겁(小劫)이 다하도록 약왕여래께서 굴리신 법륜을 따라 널리 베풀었다. 월개 비구는 법을 수호하고 힘써 정진함으로써 자신의 생애 동안 백만억
35) 이 이하의 네 가지를 '4의(依)'라고 하여 그 반대되는 것을 '4불의(不依)'라고 한다. 즉 여기서 가리키고 있는 것을 순서대로 말하면, ① 의의불의어(依義不依語), ② 의지불의식(依智不依識), ③ 의요의경의불요의경(依了義經依不了義經), ④ 의법불의인(依法不依人)이다.
의 사람을 교화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굳게 서서 다시는 물러서지 않게 하였다. 또 14나유타의 사람들이 성문과 벽지불이 되고자 깊이 발원하였으며, 한량없는 중생들이 천상에 태어날 수가 있었다.
제석천이여, 그 때의 보개왕(寶蓋王)이 어찌 다른 사람이었겠는가? 지금 부처가 되어 보염여래(寶炎如來, Ratnrcis)라고 불리며, 그 왕의 1천 명의 왕자들은 곧 현겁(賢劫)의 1천 불(佛)이다. 가라구손태(迦羅鳩孫駄, Kr- akucchanda)부처님께서 처음 부처가 되신 이후로 최후의 부처님은 루지(樓至, Roca)였다. 그리고 월개 비구는
곧 지금의 나이니라.
천제여, 이와 같이 마땅히 알아야 한다. 법공양을, 모든 공양 중에 제일 으뜸이고 최고이며 제일이어서 비교할 수가 없는 공양으로 여겨라. 그러므로 천제여, 마땅히 법의 공양으로써 부처님을 공양하여야 할 것이니라."
14. 촉루품(囑累品)
그 때에 부처님께서 미륵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미륵이여, 내가 이제 무량억(無量億) 아승기겁(阿僧祇劫)에 걸쳐 모아 온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법을 그대에게 부촉(付囑)하고자 한다.
이 같은 종류의 경전은 부처가 입멸한 뒤의 말세(末世)에 너희들이 마땅히 신통력으로 널리 설하여 유포시켜 염부제에서 단절되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왜냐 하면 미래세에는 마땅히 선남자·선여인과 천인·용·귀신·건달바·나찰(羅刹, Rkasa)
M='36)등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키고, 대승법을 좋아하는 이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이러한 경전을 듣지 못하게 한다면, 그 때는 뛰어난 이득[善利]을 잃게 될 것이다. 이 같은 사람들은 이들 경전을 들으면 반드시 대부분 마음으로부터 믿고 기뻐하여 희유한 마음을 낼 것이다. 마땅히 이 경전을 받들어서 모든 중생들의 근기에 맞게 이익을 얻는 것에 따라서 널리 설해 주어야 한다.
미륵이여, 마땅히 알아야만 한다. 보살에게는 두 가지 모습이 있으니, 어떤
36) 악귀로서 인간의 혈육을 먹고 공중과 지상을 질주한다. 여성을 가지면 나찰녀가 되며, 범천 등과 같이 불교 수호신의 하나이다.
것이 두 가지 모습인가 하면, 하나는 잡다한 글귀나 화려한 문장의 수식을 좋아하는 것이며, 또 하나는 심오한 뜻을 두려워하지 않고 여실하게 깊이 깨달아 들어가는 것이다. 만약 잡다한 글귀나 화려한 문장의 수식을 좋아한다면, 마땅히 알아라. 그것은 처음으로 수행에 들어선[新學] 보살이라는 것이다. 만약 이같이 번뇌에 물듦이 없고 집착이 없는 심오한 경전에 대해 두려움 없이 그 안에 깨달아 들어갈 수 있고, 듣고 나서는 마음이 청정해지고, 받아 지
니고, 독송하며, 설하신 대로 수행한다면, 마땅히 알아라. 이 사람은 오래도록 진리의 수행을 닦은 사람[久修道行]이라는 것이다.
미륵이여, 또 처음으로 수행에 들어선 보살에게는 두 가지가 있다. 매우 심오한 진리에 마음을 결정하지 못한다. 무엇이 둘37)이냐 하면, 하나는 아직 듣지 못한 심오한 경전을 듣고 놀라고 두려워 의심이 생겨서 수순하지 못하고 훼방하고 믿지 않으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나는 아직 들어 본 일이 없다. 어디서 온 것일까?'
둘째는, 이같이 심오한 경전을 지키고 지니며 해설하는 사람이 함께 있어도 친근히 하지 않고, 공양하려 하지 않고 공경하지 않으며, 때로는 그 가운데에 있으면서 비방까지 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 경우는 마땅히 알아라. 처음 수행을 시작한 보살이 스스로를 상처 입히고, 심오한 진리를 들으면서도 그 마음을 조복하여 다스릴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미륵이여, 또 두 가지가 있다. 보살이 비록 심오한 진리를 믿고 이해하더라도 오히려 스스로 상처를 입히므로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을 수가 없다. 무엇을 둘이라 하는가 하면, 첫째는 처음 수행에 들어선 보살을 가벼이 여기고 가르쳐 교화하고자 하지 않는 것이며, 둘째는 비록 심오한 가르침을 알고는 있으나 겉모습[取相]만을 가지고 분별하는 것이다. 이것을 두 가지라 한다."
미륵보살이 이같이 설하는 것을 듣고서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미증유(未曾有)한 일입니다. 부처님께서 설하신 대로 저는 이 같은 나쁜 것을 멀리하고, 여래의 무수한 아승기겁에 걸쳐 모여진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진리를 받들겠습니다. 만약 미래세에 선남자·선여인으로서 대승
37) 현장은 '사(四)'라 번역하였다. 즉 나집이 둘로 본 내용을 둘로 나누어 넷으로 셈한 것이다.
"제 자신이 이 몸 그대로의 진실한 모습[實相]을 보듯이 부처님을 보는 경우도 이와 같습니다. 저는 여래를 다음과 같이 봅니다. 여래는 과거로부터 오신 것도 아니고, 미래로 가시는 것도 아니며, 따라서 현재에 머물러 계신 것도 아닙니다. (저는 여래를) 색(色, rpa)이라고도 보지 않고, 색 그대로의 진실한 모습[色如, rpatathata]이라고도, 색의 자성[色性, rpasvabhva]이라고도 보지 않습니다. 수(受, vedan), 상(想, sa
j), 행(行, saskra), 식(識, vijna)이라고도 보지 않으며, 식 그대로의 진실한 모습[識如]이라고도, 식의 자성이라고도 보지 않으며, 4대(大)로부터 생긴 것도 아니며, 흡사 허공과 같다고 봅니다.
6입(入)이 쌓인 것도 아니며, 눈·귀·코·혀·몸·마음을 이미 초월하였으며, 삼계(三界, tridhtuka)에 있지도 않고, 세 가지 번뇌[三垢, malatraya)를 이미 떠났고, 3해탈문[三脫門, vimokatraya]에 따르고, 3명(明)을 모두 갖추고서도 무명(無明)과 같습니다. 공통된 모습[一相, ekalakana]도 아니고, 다양한 다른 모습[異相, bhinnalakana]도 아니며, 자신만의 고유한 모습[自相, svala
kana]도 아니고, 타자의 모습[他相, parakana]도 아니며, 모습이 없는 것[無相, alakana]도, 모습을 갖는 것[取相, salalakMG SRC="http://ebti.dongguk.ac.kr/images/k0216.gif"/>ana]도 아니며, 차안(此岸, apra)에 있는 것도, 피안(彼岸, pra)에 있는 것도, 그 중간[中流, madhyaugha]에 있는 것도 아니면서 중생을 교화하고 계십니다. 적멸(寂滅)을 관하면서도 영원히 멸한 것은 아니며,26)이곳[此, iha]에 있는 것도 아니고 저곳[彼, tatra]에 있는 것도 아니며, 이것으로 (중생을 교화)하는 것도 아니고 저것으로 하는 것도 아니며, 지혜로써 알 수 있는 것도
26) "중생을 교화하고 …… 영원히 멸한 것은 아니며"까지는 현장이나 티베트 역에 보이지 않는다.
아니고 인식으로 알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어둠[晦, tamas]도 없고 밝음[明, praka]도 없으며, 이름[名, nmas]도 없고 형상[相, nim
itta]도 없으며, 강함[强, balin]도 없고 약함[弱, durbala]도 없으며, 깨끗함[淨, vyavdana]도 아니고 더러움[穢, sakle>a]도 아니며, 어떤 장소에 있는 것[在方, deastha]도 아니고 또 어떤 장소를 떠나 있는 것[離方, adeastha]도 아니며, 유위(有爲, samskrta)도 아니고 무위(無爲, asaskta)도 아니며, 보여지는 것도 아니고 설해지는 것도 아니며, 보시[施, dna]도 아니고 아낌[慳, m>tsarya]도 아니며, 지계[戒,ila]도 아니고 파계[犯, dauhlya]도 아니며, 인욕[忍, knti]도 아니고 성냄[恚, vypda]도 아니며, 정진[進, vrya]도 아니고 게으름[怠, kausdya]도 아니며, 선정[定, dhyna]도 아니고 산란함[亂, vikepa]도 아니며, 지혜[智, praj]도 아니고 우둔함[愚, daupraj]도 아니며, 진실함[誠, satya]도 아니고 거짓[欺, mrs]도 아니며, 오는 것[來,gamana]도 아니고 가는 것[去, gamana]도 아니며, 나가는 것[出, niryna]도 아니고 들어오는 것[入, aniryna]도 아니며, 일체의 말로는 표현해 낼 수 없는 것[言語道斷, anabhilpya]입니다. 복덕을 낳는 밭[福田, punyaketra]도 아니요, 복덕을 낳는 밭 아닌 것도 아니며, 공양을 받을 만한 대상도 아니고 공양을 받지 못할 대상도 아니며, 취하는 것[取, grhaka]도 아니고 버리는 것[捨, grhya]도 아니며, 형상[相, nimitta]이 있는 것도 아니고 형상이 없는 것도 아니며, 진제(眞際, bhtakoi)와 동등하며 법성(法性, dharmat)과도 평등합니다.27) 잴 수도 없고 헤아릴 수도 없어서 모든 재고 헤아리는 한량을 넘어서 있으며, 큰 것[大, mahat]도 아니고28) 작은 것[小, alpa]도 아니며, 볼 수[見,a]도 없고 들을 수[聞,ruta]도 없으며,느낄 수[覺, mata]도 알 수[知, vijta]도 없으며, 온갖 번뇌를 끓어 버렸으며, 모든 지혜와 평등하고, 중생과 동등하고, 제법에 대하여 분별함이 없으며, 일체에 전혀 잃는 일도 없고, 더럽혀질 일도 없고, 괴로워할 일도 없으며, 지음[作,kriya]도, 생기게 하는 일[起, jti]도 없으며,
27) 이 부분을 현장은 "평등평등 진실제(平等平等眞實際)에 같고 법계성(法界性)에 같다" 하였고, 티베트 역에서는 "평등성(平等性)에 의하여 평등하고 법성에 의하여 평등하다"고 하였다.
28) 이 부분을 티베트 역에서는 "간 것도 아니며, 든 것도 아니며, 초절(超絶)한 것도 아니다"고 하였다.
생하는 일[生, jti]도 없고, 멸하는 일[滅, nirodha]도 없으며, 두려워하는 일도 없고, 근심하는 일도 없으며, 기뻐하는 일도 없고 싫어하는 일도 없으며, 집착함도 없으며, 이전에 있었던 것도 아니고 앞으로 있을 것도 아니고, 지금 있는 것도 아니며, 어떠한 언어[言說, vyavahra]로도 분별하여 밝혀 낼 수가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의 몸[如來身, tathgatakya]은 이와 같아서 이같이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같이 보는 것을 바른 정관(正觀, samyak paya
ti)이라고 하며, 만약 이 밖에 다르게 관하면 사관(邪觀, mithypayati)이라고 합니다."
그 때 사리불이 유마힐에게 물었다.29)
"당신은 어디에서 죽어서[沒] 이 세계로 와서 태어났습니까?"
유마힐이 말하였다.
"그대가 얻은 법(法)은 죽고 태어나는 것이 있습니까?"
사리불이 말하였다.
"죽고 태어나는 것이 없습니다."
(유마힐이 말하였다.)
"만약 어떠한 법도 죽어 멸하거나 태어나는 일이 없다면, 그대는 어찌해서 나에게 '당신은 어느 나라에서 죽어서 이곳에 태어났느냐?'고 묻습니까? 그대 생각은 어떻습니까? 비유하자면, 요술쟁이[幻師]가 허깨비의 남자나 여자를 만들었다면, 그것은 어떻게 죽고 태어날 수 있는 것입니까?"
사리불이 말하였다.
"아닙니다. 죽고 태어나는 일은 없습니다."
유마힐이 말하였다.
"그대는 부처님께서 제법은 허깨비와 같은 모습[如幻相]이라고 설하신 것을 듣지 않았습니까?"
사리불이 답하였다.
"그렇습니다."
29) 다른 번역본에서는 어느 것이나 이 앞에 사리불이, 부처님께 유마힐이 어느 부처님 나라에서 이곳으로 왔는가를 묻고, 부처님께서는 "그대가 스스로 유마힐에게 물어보라"고 한 문장이 있으나 나집 역본(譯本)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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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힐이 말하였다.
"만약 일체법이 환상(幻相, nirmasvabhv)과
같은 것이라고 한다면, 어째서 '그대는 어느 나라에서 죽어서 여기에 태어났습니까?'고 묻습니까? 사리불이여, 죽는다[沒]고 하는 것은 허망한 것이 무너져 망하는 모습이며, 생한다고 하는 것은 그 허망한 것30)이 계속해서 존속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보살은 비록 죽기는 하지만 선의 근본[善本, kualamla]은 없애지 않으며, 비록 태어나도 온갖 악을 증장하지는 않습니다."
그 때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묘희국(妙喜國, Abhirti)31)이라고 하는 나라가 있는데, 부처님의 이름은 무동(無動, Aksobhya)이다. 이 유마힐은 그 나라에서 죽어서 이곳에 와서 태어난 것이다."
사리불이 말하였다.
"미증유한 일입니다. 세존이시여, 이분이 청정한 나라를 버리고 이같이 성냄과 해가 많은 곳을 즐겨 찾아온 것입니다."
유마힐은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그대 생각은 어떠한가? 햇빛이 날 때 어둠과 함께 있습니까?"
사리불이 답하였다.
"아닙니다. 햇빛이 날 때는 어떠한 어둠도 없습니다."
유마힐이 말하였다.
"그렇다면 태양은 무슨 까닭으로 이 염부제(閻浮提, Jambudvpa)에 뜨는 것인가요?"
사리불이 답하였다.
"밝게 비춤으로써 어둠을 없애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유마힐은 말하였다.
"보살도 이와 같아서 비록 부정한 불국토에 태어났다 하더라도 그것은 이
30) 나집은 "허광(虛誑)의 법(法)," 현장은 '행(行)'이라고 번역하였다. 즉 전변하는 것으로서의 유위(有爲)를 뜻한다.
31) 이 세계의 부처님은 무동불(無動佛)이다. 이 무동불은 아촉불의 의역이다. 여기서는 표제가 아촉불로 되어 있으나, 본문 중에서는 무동불이라고 번역하고 있다. 그러나 지겸의 본문은 아촉불로 되어 있다.
세상의 중생을 교화하고자 하기 때문이지 결코 어리석고 마음이 어두운 사람들과 함께하지 않고, 오직 중생의 번뇌의 어둠을 없앨 뿐입니다."
그 때 대중들이 마음속으로 묘희국의 무동여래(無動如來)와 보살과 성문들을 보고 싶다고 원하니, 부처님께서는 모인 대중 전부가 마음속으로 생각한 것을 아시고 유마힐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이 대중을 위하여 묘희국의 무동여래와 제보살과 성문들을 나타내 보여 주어라. 대중들 모두가 보고 싶어 하노라."
이 때에 유마힐은 마음속으로 생각하였다.
'나는 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신통력으로) 묘희국의 철위산(鐵圍山)과 시내와 계곡과 강하(江河)·대해(大海)·수원[泉源]·수미산과 여러 산들 및 해와 달·별·하늘·용·귀신·범천 등의 궁전과 또 수많은 보살들과 성문들, 성읍(城邑)·취락(聚落)과 남녀 노소들, 내지는 무동여래와 보리수, 갖가지 묘련화가 시방에서 불사(佛事)를 이룩하는 것을 이곳으로 가져와야 되겠다. 보석과 구슬로 장식된 세 갈래의 계단이 염부제(閻浮提)로부터 도리천(忉利天,
Trayastria)을 향하여 걸려 있고, 이 보배로 장식된 계단으로 제천(諸天)들이 내려와 모두 무동여래에게 예경하고 그 가르침[經法]을 들으며, 염부제의 사람들이 그 계단으로 도리천에 올라가 그곳의 제천들을 만나 묘희국이 이같이 한량없는 공덕을 성취한 것이 위로는 아가니타천(阿迦膩咤天, Akaniha)32)으로부터 아래로는 물가[水際, abmaala]에 이르기까지 하며, 오른손으로 떼어 내기를 마치 도공[陶家]의 물레를 잡듯이 하고 이 세계에 가져오기를 꽃다발을 손에 든 것처럼 보여 주어야겠다.'
이같이 생각하고 삼매에 들어 신통력을 부려서 오른손으로 묘희세계를 떼어 내어서 이 땅 위에 놓았다. 그러자 신통력을 얻은 그 나라의 보살들과 성문들과 그 밖의 천인들은 함께 소리내어 말하였다.
"아, 세존이시여, 누가 저희들을 데리고 가는 것입니까? 바라옵건대 구하여 주십시오."
무동불(無動佛)이 말하였다.
32) 정천(頂天). 색계(色界)의 18천(天) 중 최고이므로 색구경천(色究竟天)이라 한다.
그 밖에 신통력을 얻지 못한 자들은 자기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알지 못하고 느끼지도 못하였다. 그리고 묘희세계가 이 사바세계 안에 들어왔지만 증감(增減)하는 일이 없고, 이 세계도 또한 좁아지지도 않고 본래와 같이 조금도 다름없었다.
그 때 석가모니부처님께서 모든 대중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묘희세계의 무동여래와 그 나라의 장엄함과 보살들의 청정한 행과 제자들의 청백함을 보았는가?"
모두가 말하였다.
"예, 이미 보았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만약 보살이 이같이 청정한 불국토를 얻고자 한다면 마땅히 무동여래가 행한 길을 배워야 할 것이다."
그런데 묘희국이 이곳에 나타났을 때, 이 사바세계의 14나유타(那由他, nayuta)의 사람들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키고 모두 묘희 불국토에 태어나기를 발원하였으므로, 석가모니부처님은 곧 그들에게 수기를 주셨다.
"그대들은 반드시 저 나라에 태어나리라."
그 때 묘희세계는 이 세계에서 중생에게 도움을 주는 일을 모두 마친 뒤 본래의 곳으로 되돌아가니, 모든 대중들은 다 그것을 보았다.
부처님께서는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이 묘희세계와 무동불을 보았는가?"
사리불이 말씀드렸다.
"예, 보았습니다. 세존이시여, 원하옵건대 일체 중생이 청정한 불국토를 얻는 것이 무동불과 같게 하고, 신통력을 얻는 것이 유마힐과 같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기쁘게도 뛰어난 은혜[善利]를 얻어 이 같은 분을 가까이 모시고 공양을 올릴 수 있었습니다. 만약 지금 현재 혹은 부처님께서 입멸하신 다음이라도 이 경전을 듣는 모든 중생들 또한 지금과 똑같은 은혜를 입을 것입니다. 하물며 들은 다음에 믿고 이해하며, 받아 지니고[受持
만약 이 경전을 손에 쥔 사람은 이미 법보의 창고를 얻게 되고, 만약 독송하고 그 뜻을 해석하고 설한 대로 수행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수많은 부처님의 가호[護念]를 받게 될 것입니다. 또 이 같은 사람을 공양하는 것은 곧 부처님을 공양하는 것이라고 마땅히 알아야 합니다. 이 경전을 서사(書寫)하여 지닌 사람이 있다면, 마땅히 그 방 안에 여래가 있다고 알아야 합니다. 만약 이 경전을 듣고 마음으로부터 기뻐하는 사람이 있다면, 진정 일체지를
얻게 될 것이며, 만약 이 경전을 믿고 이해하여 한 구절의 사구게(四句揭)라도 남에게 설하여 들려 주는 사람이 있다면, 이 사람은 곧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을 것이라는 수기[記, vykaraa]를 받게 될 것이라고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유마힐과 문수사리가 수많은 대중들로부터 존경을 받으며 둘러싸여 있는데, 이곳을 찾아오고 싶은 마음을 일으켰기 때문에 먼저 이 같은 상서로운 조짐이 나타난 것이다."
그 때 유마힐은 문수사리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함께 부처님을 만나 뵈옵고 여러 보살들과 함께 예배하고 공양올리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문수사리가 답하였다.
"좋습니다. 갑시다. 지금이 알맞은 때입니다."
유마힐은 곧 신통력[神力]을 발휘하여 모든 대중과 사자좌를 오른쪽 손바닥에 올려놓고 부처님께서 계신 곳으로 갔다. 부처님께서 계신 곳에 이르자 (사자좌를 땅에 내려놓고), 부처님의 발에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 부처님의 주위를 오른쪽으로 일곱 번을 돌고 일심(一心)으로 합장한 다음 한쪽으로 물러섰다. 수많은 보살들도 곧 자리에서 물러나 부처님의 발에 머리를 조아려 절하고 마찬가지로 일곱 번을 돈 다음 한쪽에 섰다.
부처님의 여러 제자들과 제석천,
범천, 사천왕 등도 자리에서 물러나 부처님의 발에 머리를 조아려 예배하고 한쪽으로 물러섰다. 그 때에 세존께서는 법(法)답게 여러 보살들에게 안부하시고 저마다 자리에 돌아가 앉도록 하시니, 모두 다 분부에 따라 자리에 앉았다.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보살마하살[菩薩大士, bodhisattva-mahsattva]의 자유자재한 신통력이 미치는 것을 보았는가?"
"네, 그렇습니다. 확실이 보았습니다."
"그대 생각은 어떠한가?"
"세존이시여, 저는 그분이 불가사의한 일을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전혀 마음속으로 예측한 것도 아니었고, 마음으로 헤아릴 수도 없었습니다."
그 때 아난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지금 풍기는 향기는 예전에 맡아 보지 못한 것입니다. 이것은 무슨 향기입니까?"
부처님께서는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이는 저 중향국 보살들의 털구멍에서 나는 향기이다."
그 때에 사리불이 아난에게 말하였다.
"우리들의 털구멍에서도 이 향기가 풍기고 있소."
아난이 말하였다.
"이 향기는 어디서 온 것입니까?"
"이것은 장자 유마힐이 중향국에서 그 나라 부처님께서 잡수시고 남은 음식을 가져와서, 유마힐의 집에서 그것을 먹은 사람의 모든 털구멍에서 이 같은 향기를 풍기는 것이오."
아난은 유마힐에게 물었다.
"이 향기는 얼마나 오랫동안 납니까?"
유마힐이 답하였다.
"이 음식이 소화되기까지 갑니다."
아난이 말하였다.
"이 음식은 얼마나 있으면 소화됩니까?"
유마힐이 답하였다.
"이 음식의 기운은 7일까지 가고, 그 후에 소화되게 되어 있소. 또 아난이여, 만약 성문인(聲聞人)으로서 아직 정위(正位)13)에 이르지 못했을 때 이 음식을 먹으면 정위에 이른 다음에야 소화되고, 이미 정위에 이른 사람이 이 음식을 먹으면 마음이 모든 속박으로부터 해방[心解脫]된 다음에야 소화가 되지요. 또 만약 아직 대승의 뜻을 일으키지 않았을 때 이 음식을 먹은 사람은 그 뜻을 일으킨 다음에야 소화가 되고, 이미 대
승의 뜻을 일으킨 다음에 이 음식을 먹은 사람은 무생법인[無生忍]을 얻은 다음에야 소화되고, 이미 무생법인을 얻은 다음에 이 음식을 먹은 사람은 일생보처(一生補處, ekajtipratibaddha)14)가 된 다음에야 소화가 됩니다. 비유하자면 마치 상미(上味)
13) 깨달음을 얻은 지위로 번뇌가 없는 경지이다. 성문이 무위열반(無爲涅槃)을 증득하는 것을 말한다.
14) 다음에 태어날 태에는 부처가 되므로 보살로서는 최고위(最高位). 이것을 불(佛)과 거의 같은 의미로 '등각(等覺)'이라고 한다.
"그와 같으니라. 아난이여, 어떤 불국토에서는 부처님의 광명으로써 불사를 이룩하기도 하며, 어떤 곳에서는 여러 보살들로써 불사를 이룩하기도 하며, 어떤 곳에서는 부처님께서 만드신 화인(化人)으로써 불사가 이루어지기도 하며, 어떤 곳에서는 보리수(菩提樹)로써 불사를 이룩하기도 하며, 어떤 곳에서는 부처님의 옷과 침구로써 불사를 이룩하며, 어떤 곳에서는 음식으로써 불사를 이루기도 하며, 어떤 곳에서는 동산과 숲과 높은 누각으로써 불사를 이룩하기도
하며, 어떤 곳에서는 32상(相)과 80수형호(隨形好)로써 불사를 이룩하기도 하며, 어떤 곳에서는 부처님의 몸으로써 불사를 이룩하기도 하며, 어떤 곳에서는 허공으로써 불사를 이룩하기도 하며, 중생이 마땅히 이러한 인연으로써 계율이 바른 수행[律行]에 들 수가 있느니라.
또 어떤 곳에서는 꿈·환상·그림자·메아리·거울 속의 그림자·물 속에 비친 달·더울 때의 아지랑이 등 이 같은 비유로써도 불사를 이룩하며, 어떤 경우는 음성·언어·문자로써도 불사를 이룩하며, 어떤 경우에는 청정한 부처님 나라가 적막하여 말이 없으며[無言], 설함도 없고[無說], 보여지지도 않고[無示], 식별됨도 없고[無識], 무작(無作)16)·무위(無爲)17)로써 불사를 이룩하기도 한다. 아난이여, 이같
이 제불의 위의(威儀)와 행동거지[進止]와 그 밖에 모든 베푸는 일들이 불사 아님이 없느니라. 아난이여, 이 세상에는 네 가지 마군[四魔]과 (그로부터 생긴) 8만 4천18)의
15) 중생을 교화하여 부처님의 덕을 나타내는 일이다.
16) 뜻함이 없으므로 마음에 동요가 일지 않는 것이다.
17) 아무런 작위(作爲)가 없는 것이다.
18) 수많은 것을 표현하는 관용어로 '팔만사천법문(八萬四千法門),' '팔만사천광명(八萬四千光明)' 등으로 쓰인다.
번뇌문(煩惱門)이 있어서 중생은 이들로부터 괴로움을 받고 있으나 제불은 이 (번뇌를 통한) 법으로써 불사를 하고 있느니라. 이같이 교화하는 것을 모든 부처님의 법문에 든다[入一切諸佛法門]고 한다. 보살로서 이 법문에 들어가는 자는 아무리 청정하고 아름다운 부처님 나라를 본다 하더라도 기뻐하는 일이 없고, 탐내지도 뽐내지도 않으며, 또 아무리 더러운 부처님의 나라를 보아도 슬퍼하는 일이 없으며, 마음에 걸려 하지도 않고 침울해 하지도 않는다.
오직 모든 부처님에 대하여 청정한 마음을 일으키고 기뻐하고 공경하며 일찍이 없었던 일이라 여길 뿐이다. 제불여래는 공덕이 평등하지만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서 부처님의 나라가 차별이 있다는 것을 나타내 보이신다.
아난이여, 그대가 제불의 국토를 보니 땅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허공은 약간의 차이도 없지 않는가. 이와 같이 제불의 몸[色身]을 보니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제불의 그 어디에도 걸림없는 지혜[無碍智]에는 차이가 없지 않는가. 아난이여, 제불의 몸[色身], 위엄 있는 모습[威相], 마음의 성품[種性]과 계(戒)·정(定)·혜[智慧]·해탈(解脫)·해탈지견(解脫智見) (등 다섯 가지 공덕과) 10력(力)·4무소외(無所畏)·18불공법[不共之法]과 대
자·대비·위의가 바른 행위[威儀所行], 그 밖에 수명(壽命), 교화(敎化), 중생을 깨달음에 이르게 하고[成就衆生], 부처님의 나라를 청정하게 하며[淨佛國土], 다른 부처님의 가르침도 몸에 지니는 것, 그것은 모든 부처님께 한결같이 갖추어져 있다. 그러므로 삼먁삼불타(三藐三佛陀, Samyaksambuddha)라고 부르기도 하며, 여래[多陀阿伽度, 如來, Tathgata]라고 부르기도 하며, 불타(佛陀, Buddha)라고 부르기도 하는 것이다.
아난이여, 만약 내가 이 3구(句)19)의 뜻을 자세히 설명하자면, 네가 무한한[劫壽] 생명을 가지고 들어도 다 들을 수가 없다. 비유하자면 삼천대천세계에 가득 찬 중생이 모두 아난과 같이 다문제일(多聞第一)이고, 모든 것을 다 기
19) 자기의 각증(覺證)과 남을 각증케 하려는 마음과 그 마음을 토대로 하여 대비심의 행을 닦고 이러한 수행의 방편으로 성불하는 것을 3구(句)라고 한다. 여기서는 앞의 문장, 즉 "부처님의 몸……해탈지견(解脫智見)," "……불공법(不共法)," "……부처님 나라의 청정"까지 각각 설하고 있다.
억할 수 있는 총지의 힘을 가진다 하여도, 이 모든 사람들 또한 무한한 생명을 가지고 들어도 또한 전부를 들을 수는 없다. 아난이여, 이같이 제불의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헤아릴 수 없이 무한하고, 지혜와 변재(辯才)는 불가사의한 것이니라."
아난이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저는 지금부터 감히 제 스스로 다문제일[多聞]이라고 말하지 않겠습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였다.
"그런 물러서는 마음을 먹지 말아라. 왜냐 하면 내가 그대를 성문들 가운데 다문제일이라고 말한 것이지, 보살들 가운데에서도 그렇다는 말은 아니다. 그런 생각을 하지 말아라.
아난이여, (보통의) 지혜가 있는 사람이라도 모든 보살(의 지혜)을 헤아릴 수는 없다. 모든 바다의 깊이는 설령 어디고 측량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보살의 선정과 지혜·총지·변재 등 일체의 공덕은 헤아릴 수 없는 것이다. 아난이여, 그대들은 보살의 (영역에 속하는) 행위[菩薩所行, bodhisattva gocaraviaya]에 대한 생각을 하지 말아
야 한다. 이 유마힐이 한순간 보여준 신통력은 모든 성문과 벽지불이 백천(百千) 겁 동안 온 힘을 다해 변화해 보려고 해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라."
그 때 중향국에서 온 보살이 합장하고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이 이 사바세계를 처음 보았을 때 보잘것없고 비천하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스스로 뉘우치고 그러한 생각을 버렸습니다. 왜냐 하면, 제불의 훌륭한 방편은 불가사의한 것으로서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그 필요에 따라 온갖 불국토를 나타내는 데 차별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원하옵건대 적은 가르침이라도 베풀어 주시옵소서. 저희들은 본국에 돌아가 마땅히 여래를 늘 기억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제보살들에게 말씀하셨다.
"다함이 있고[盡], 다함이 없는[無盡] 해탈법문(解脫法門)이 있으니, 그대들은 이것을 배워야 할 것이다. 무엇을 다함이 있는 것이라고 하는가 하면, 유위법(有爲法)을 말하는 것이고, 무엇이 다함이 없는 것[無盡]이라고 하는가 하면, 무위법(無爲法)을 말하는 것이다. 보살은 유위법도 버려서는 안 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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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 / 121] 쪽
무위법에도 머물러서는 안 된다.
유위법을 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은, 대자(大慈)를 떠나지 않고, 대비(大悲)를 버리지 않으며, 깊이 일체지(一切智)를 구하려는 마음을 일으켜 한순간도 잊지 않으며, 중생을 교화하는 일에 싫증을 내거나 피곤해 하지 않고, 늘 4섭법(攝法)을 항상 지니고 그에 따라 행하는 것이며, 또 정법을 굳게 지키고 신명까지도 아끼지 않으며, 온갖 선근을 심되 피곤해 하거나 싫증내지 않으며, 마음은 항상 중생을 교화하는 방편과 공덕을 남에게 돌려서 베푸는[廻向
] 데 머무르며, 법을 구하는 일에 게으르지 않고 진실을 설하는 일에 인색하지 않으며, 부지런히 제불께 공양을 올리며, 일부러 생사윤회(生死輪廻)에 들어가되 두려움을 갖는 일이 없으며, 온갖 영욕(榮辱)을 당해도 근심하거나 기뻐하지 않으며, 아직 배우지 못한 사람[未學]이라 하여 업신여기지 않고 배운 사람을 부처님처럼 존경하며, 번뇌에 떨어진 사람에게는 바른 생각을 일으키게 하며, (세간을) 멀리 떠나는 즐거움을 귀중하게 여기지 않으며, 자신의즐거움만을 집착하지 않고 남의 즐거움을 기뻐하며, 갖가지 선정에 머물러 있는 것을 지옥과 같이 생각하고, 생사윤회에 있는 것을 정원을 관상하듯 즐겨 하고, 가르침을 구하여 찾아온 사람을 훌륭한 스승으로 생각하며, 또 온갖 자기 것은 모두 보시하는 것을 일체 지혜를 구족한다 생각하며,20)
계율을 깨뜨리는 사람을 보면 구하여 보호해 주고 싶어 하며, 모든 바라밀(波羅蜜)을 부모라고 생각하며, 37도품[道品之法]을 권속이라
생각하며, 선근을 일으켜 행하되 제한이 있게 하지 않으며, 온갖 정토[淨國]21)의 훌륭하게 장식된 것을 가져다가 자신의 불국토를 세우고, 한없는 보시22)로써 상호를 갖추고, 모든 악을 없애고
20) 나집은 "구일체지상(具一切智想)"이라고 번역하였으나, 현장은 "일체지(一切智)에 있어서 회향의 생각을 일으킨다"고 하여 뜻이 분명하고, 티베트 역에서는 "일체지를 성취하는 것을 생각한다"고 하였다.
21) 일반적으로는 부처님께서 머무시는 곳이다. 이 현실 세계는 번뇌에 더럽혀져 있으므로 예토(穢土)라 한다. 그러나 이 경전은 고정관념으로서의 불국토를 거부하고, 마음이 청정하면 그 나라도 청정하다고 하므로 굳이 불국토라고 번역하기보다는 그대로 정토(淨土)라 했다.
22) 나집은 '무한시(無限施)'라 했으나 현장은 "제상호(諸相好)를 위하여 원만하게 장엄하여 청정무애(淸淨無碍)한 대시(大施)를 수행한다" 하였으며, 티베트 역에서는 "상(相)과 종호(種好)를 완전하게 충족시키기 위하여 비교할 수 없는 공시(供施)를 완전하게 한다"고 하였다. 이것은 뛰어난 상호를 얻는 일이 목적으로 되어 있고, 그 목적을 위해서 보시를 하는 것을 설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는 일반적인 보시와 결국 같은 의미로 해석할
신(身)·구(口)·의(意) 3업을 청정하게 하며, 생사윤회를 무수겁(無數劫) 동안 한다 해도 마음속에는 굳은 용기를 지니고, 부처님께 무량한 공덕이 갖추어져 있음을 듣고서 스스로 그 뜻은 지치는 일이 없으며, 또 지혜의 칼로써 번뇌의 도적을 물리치고, 5온[陰]·18계(界)·12입처[入]에서 벗어나 중생을 업고 나와 영원히 해탈시키고, 대정진(大精進)으로 마군의 군대를 물리쳐 항복시키고, 항상 무념(無念)으로 진실한 모습[實相]의 지혜를 구하며
, 세간법을 행하는 데 있어서 조금만 욕심내고 만족할 줄 알고, 출세간을 구함에도 싫증내지 않지만 세간법을 버리지 않으며, 위의법(威儀法)을 무너뜨리지 않지만 세속을 따라 행할 줄 알며, 신통력과 지혜를 일으켜 중생을 인도하고, 총지를 염해 들은 가르침을 잊지 않으며, 중생의 근기를 판별하여 중생의 의심을 끊어 버리고, 명료하게 바른 이치를 설[樂說辯]하며 걸림이 없다. 10선도(善道)를 청정하게 닦아서 천상과 인간의 복덕을 받고, 4무량(無量)을 닦아 범천의 길을 열고, 부처님께 가르침을 설하여 주시도록 권청하여 마음으로부터 기뻐하며 찬탄하고, 부처님의 음성과 신·구·의 3업의 선을 얻고, 부처님의 위의(威儀)를 얻어 선한 법을 깊이 닦고, 하는 일이 더욱더 뛰어나서 대승의 가르침으로 보살의 승가[菩薩僧]를 이룩하고, 마음에 방일함이 없어서 모든 선을 잃지 않는 이 같은 법을 보살의 다하지 않는 유위법이라고 하느니라.
무엇을 보살이 무위법에 머무르지 않는 것이라고 하는가 하면, 공을 수행하지만 공으로써 깨달음을 삼지 않으며, 차별이 없고[無相,
nimitta], 무작(無作, aparihita)을 수행하지만, 무상과 무작으로써 깨달음을 삼지 않으며, 모든 것은 인연이 없으면 생하지 않음[無起, anabhisaskra]23)을 수행하지만, 인연이 없으면 생하지 않음으로써 깨달음을 삼지 않는다. 또 무상(無常, anitya)을 보면서도 그렇다고 선의 근본을 싫어하지 않으며, 세간의 괴로움을 관하면서도 생사를 미워하지 않으며, 무아(無我)를 관하지만 사람들을 교화하는 일에 게으르지 않으며, 깨달음의 경계[寂滅,nta]를 관하지만 영원히 깨달
23) 현장은 '무작(無作)'이라 번역하였고, 티베트 역에서는 '무활동(無活動)'이라고 하였다. 지금은 승조(僧肇)의 주석(註釋)에 따른다.
음의 경계에 머물지 않고, 염리(厭離)24)를 관하면서도 몸과 마음으로 선을 닦고, 돌아갈 곳이 없음[無所歸, anlayam]을 관하면서도 선법(善法)으로 나아가 돌아가 의지하고, 생하는 것이 아님[無生]을 관하면서도 생멸하는 법으로써 모든 (중생의) 것을 짐지며, 번뇌가 없는 경계[無漏, ansrava]를 관하면서도 온갖 번뇌[諸漏]를 끊어 버리지 않으며, 행해야 할 것이 없음[無所行]을 관하면서도 행법(行法)으로써 중생을 교화하며, 공이며 무(無)라고 관하면서도 대비를 버리지 않으며, 깨달음의 경계[正法位]를 관하면서도 소승을 따르지 않으며, 제법은 허망하고 견고함도
없으며[無牢], 실제로는 인(人)도, 실체로서의 주체[主]도, 그 모습[相]도 없음을 관하고, 본원(本願)이 아직 완성되어 있지 않았지만 복덕과 선정과 지혜가 텅 비어 있지 않은 것이다. 이와 같은 법을 닦는 것을 보살이 무위(無爲)에 머무르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또 (보살은) 복덕을 갖추었기 때문에 무위법에도 머무르지 않고, 지혜를 갖추었기 때문에 유위법을 없애지 않으며, 대자비가 있기 때문에 무위법에도 머무르지 않고, 본원(本願)을 이루었기 때문에 유위법을 버리지 않는다.25)
진리의 약(藥, dharmabhaiajya)을 얻기 위해서 유위법에 머무르지 않으며, 필요에 따라서 진리의 약을 쓰기 위하여 유위법을 버리지 않으며, 중생의 병을 알기 때문에 무위법에 머무르지 않으며, 중생의 병을 없애기 위해서 유위법을 버리지 않으며, 모든 보살[正士菩薩]들은 이 같은
법을 닦음으로써 유위법을 버리지 않고 무위법에도 머무르지 않는다. 이것을 다함이 있고, 다함이 없는 해탈의 법문이라고 이름한다. 그대들은 이를 배워야만 할 것이다." 그 때 저 중향국의 보살들은 이 가르침을 듣고서 모두 다 크게 기뻐하여 온갖 아름다운 꽃 속에서, 갖가지 색깔과 향기가 풍기는 꽃으로 삼천대천세계에 두루 흩뿌리고, 부처님과 이 경의 법과 아울러 여러 보살들에게 공양을 올리고 나서 부처님의 발에 머리를 조아려 절하고 일찍이 없었던 일이라 찬탄하였다.
그 때 저 중향국의 보살들은 이 가르침을 듣고서 모두 다 크게 기뻐하여 온갖 아름다운 꽃 속에서, 갖가지 색깔과 향기가 풍기는 꽃으로 삼천대천세계에 두루 흩뿌리고, 부처님과 이 경의 법과 아울러 여러 보살들에게 공양을 올리고 나서 부처님의 발에 머리를 조아려 절하고 일찍이 없었던 일이라 찬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