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마힐소설경 하권

      요진삼장 구마라집 역

10. 향적불품(香積佛品)

      그 때 사리불은 마음속으로 생각하였다.
      '이제 점심 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 이렇게 수많은 보살들이 무엇을 먹을 것인가?'
      그러자 유마힐은 이러한 생각을 알고 말하였다.
      "부처님께서는 8해탈에 대해 설법하셨으니, 그대도 가르침을 받아서 수행하고 계실 것인데, 어찌 무엇을 먹을까 하는 잡된 생각[雜欲食]을 하며 가르침[法]을 듣습니까? 만약 배가 고파 먹고 싶으면 잠깐만 기다리십시오. 일찍이 한 번도 맛보지 못한 음식을 그대에게 드리겠습니다."
      그 때 유마힐은 곧 삼매에 들어가서 신통력으로써 모인 대중에게 한 부처님의 나라를 보여 주었다. 이 나라로부터 상방(上方)의 세계[界分]로 42항하사(恒河沙)의 불국토를 지나서 중향(衆香, Sarvagandha sugandh)이라고 이름하는 나라가 있는데, 그곳에 향적(香積, Sugandhaka)이라는 부처님께서 계시는데, 지금 현재 그 나라의 향기로움은 시방의 모든 부처님 나라의 인간과 천인[天]의 향기와는 비교도 되지 않아 제일이었다. 거기에는 성문(聲聞), 벽지불(辟支佛) 등의 이름이 전혀 없었으며, 오직 청정한 대보살들만이 있었다.
      부처님께서 이들을 위하여 설법하시니, 이 나라는 모두 향으로써 만들어진 누각이 있었고, 향기가 넘치는 땅 위를 경행(經行)하였고, 정원과 동산도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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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 가득 차 있었고, 그곳의 음식의 향기는 시방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세계를 두루 감싸 흐르고 있었다. 때마침 그 향적부처님께서 많은 보살들과 함께 앉아서 막 식사를 하고 계셨다. 그 자리에는 여러 천자들이 있었는데, 모두 향엄(香嚴, Gandavyh

>ra)이라고 하며, 그들은 모두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켜 그 부처님과 보살들에게 공양을 올리고 있었으니, 여기 모여 있는 대중들은 눈앞에서 빠짐없이 다 보았다.

      그 때 유마힐은 여러 보살들에게 물었다.
      "여러분, 누가 저 향적부처님 나라에 가서 음식을 얻어 올 수 있습니까?"
      문수사리의 위신력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므로 유마힐이 물었다.
      "문수사리여, 그대는 이 많은 대중들이 (모두가 아무런 말이 없는데) 오히려 부끄럽지 않습니까?"
      문수사리가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같이 아직 배우지 못한 사람[未學]을 가볍게 업신여겨서는 안 됩니다."
      그 때 유마힐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은 채 모든 대중들 앞에 순식간에 보살의 모습을 나타내었다. 상호가 빛이 나고 위덕이 뛰어난 것이 견줄 수 없이 뛰어나 모인 대중을 압도하였다. 그리고 (유마힐은) 이 보살에게 말하였다.
      "상방의 세계로 42항하사의 부처님 나라를 지나면 중향(衆香)이라고 하는 부처님 나라가 있는데, 향적(香積)이라고 불리는 부처님께서 많은 보살들과 함께 앉아 지금 식사를 하고 계시니, 그대는 그곳에 가서 나의 인사말을 그대로 전하시오.
            '유마힐은 세존의 발에 머리를 조아려 한없는 존경심을 가지고 예배합니다. 요즘 근황이 어떠하신지 묻사오니, 작은 병과 근심이라도 계신지, 기력도 여전히 편안하신지 문안드립니다. 바라옵건대 세존께서 잡수시다가 남은 음식을 얻어다 사바세계(娑婆世界, sahloka)1)에 불사(佛事)를 베풀어 주셨으면 합니다. 이 세계의 작은 법[

小法]을 좋아하는 이곳의 중생들에게 대도(大道)1) sah를 음사(音寫)한 것으로 뜻으로 옮겨 '인토(忍土),' '인계(忍界),' '감인토(堪忍土)'라고 한다. 모든 괴로움을 참고 견디며 살아야 할 세계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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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를 널리 펴고 여래의 명성이 널리 퍼지도록 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자 그 가짜로 만든 보살[化菩薩, nirmita bodhisattva]이 모여 있는 대중들 눈앞에서 곧장 위로 올라가니, 대중들이 모두 이것을 보았다. 그 보살은 중향국(衆香國)에 이르러 향적부처님 발에 예배하고는 유마힐의 인사말을 전했다.
      "유마힐은 세존의 발에 머리를 조아리며 한없는 존경심으로 예배합니다. 요즘 근황을 묻사오니, 작은 병이나 근심이라도 계신지, 기력은 여전하신지 문안드립니다. 바라옵건대 세존께서 잡수시다가 남은 음식을 얻어다가 사바세계에 불사를 베풀어 주셨으면 합니다. 작은 법을 좋아하는 이곳의 중생들에게 대도를 널리 펴고 또 여래의 명성이 널리 퍼지도록 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 나라 중향국의 보살들은 이 화보살(化菩薩)을 보고, 일찍이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었던 일이라고 감탄하였다.
      '지금, 이분[上人]은 어디에서 왔는가, 사바세계는 어디에 있는가, 작은 법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누구를 말하는가?'
      이러한 것들을 부처님께 묻자 향적부처님께서 대답하셨다.
            "아래쪽으로 42항하사 부처님 나라를 지나서 한 세계가 있는데 사바(娑婆)라고 하며, 그곳 부처님은 석가모니(釋迦牟尼)라고 한다. 지금 현재 오탁악세(五濁惡世)에서 작은 법을 좋아하는 중생을 위하여 올바른 가르침[道敎]을 설하고 계시었다. 그곳에 유마힐이라고 하는 보살이 있어서 불가사의한 해탈에 머물러서 많은 보살들을 위하여 가르침을 펴고 있는데, 화보살을 보내어 내 이름을 찬양하고 또 이 불국토를 찬탄하며, 그 나라의 보살들에게 더 많은 공덕

을 쌓게 하고자 한 것이다."

      그 중향국의 보살들이 말했다.
      "그 사람은 어떻게 이 화보살을 만들었습니까? 또 그의 덕의 힘[德力]2)이나 두려움을 모르는 자신[無畏], 신통력[神足]이 어떻게 이 같을 수 있습니까?"
      2) 나집, 지겸은 '덕력(德力),' 현장은 '덕(德),' 티베트 역은 '역(力)'이라고 번역했다. 티베트 역은 10력(力)을 가리키는 듯하다. 이하의 '신족(神足)'은 지겸과 같고, 현장과 티베트 역은 '신통(神通)'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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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 힘이) 대단하다. 시방의 모든 곳에 화보살을 보내어 그곳에 가서 불사를 베풀고 널리 중생을 이익되게 한다."
      그 때에 향적여래는 많은 향기로운 발우에 향기가 그윽한 음식[香飯]을 가득 담아 화보살에게 주었다. 그러자 이 나라의 9백만 보살들은 모두 입을 모아 말하였다.
      "우리들도 사바세계에 가서 석가모니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고, 또 유마힐을 비롯한 수많은 보살들을 만나 뵙고 싶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가도록 하라. 그러나 그대들의 몸에서 향기를 거두어들여라. 그 나라의 중생들이 (향기를 맡고서) 미혹하거나 집착하는 마음을 일으키게 해서는 안 된다. 또 그대들은 이곳의 본래 모습을 버려야 한다. 그 나라의 아직 보살이 되지 못한 중생들에게 스스로 부끄러움이나 비굴함을 느끼게 해서는 안 된다. 또 그대들이 그곳의 중생들을 업신여기거나 천하게 여기는 마음을 갖거나 장애가 된다는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된다. 왜냐 하면, 그것은 시방의 국토는 모두

허공과 같기 때문이고, 또 제불이 작은 법을 좋아하는 중생을 교화하기 위하여 저마다 청정한 불국토를 나타내 보이지 않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화보살은 발우에 음식을 받아서 그 나라의 9백만 보살들과 함께 향적부처님의 위신력과 유마힐의 힘을 입고서 순식간에 중향국에서 모습을 감추고 순식간에 유마힐의 집에 다다랐다.
      그 때에 유마힐이 곧바로 9백만의 사자좌를 만들었는데, 모두 장엄된 훌륭한 것이었다. 모든 보살들이 모두 그 위에 앉자 화보살이 발우에 가득 찬 향기로운 음식을 유마힐에게 바치니, 향기로운 음식의 냄새가 널리 비야리성과 삼천대천세계에 가득 찼다.
      그 때 비야리의 바라문과 거사(居士)들은 이 향기를 맡고 몸과 마음이 상쾌해져서 일찍이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었던 일이라 감탄하였다.
            그 때에 장자(長者)의 우두머리인 월개(月蓋, Candracchatra)3)가 8만 4천

) 이 번역은 각각 다르나 지겸은 "제범지거사존자월개(諸梵志居士尊者月蓋)," 나집은 "장자주월개(長者主月蓋)," 현장은 "이첩비왕월개(離呫毘王月蓋)"라 하였고, 티베트 역에는 "릿자비인의 장(長), 릿자비……월개(月蓋)"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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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 사람들을 이끌고 유마힐의 집에 와서, 그 방안에 수많은 보살들이 있고, 그들이 앉은 사자좌가 높고도 넓으며 훌륭히 장엄된 것을 보았다. 그들은 모두가 크게 기뻐하고 많은 보살들과 부처님의 제자들에게 예배하고서 방의 한쪽에 물러앉았다. 많은 지신(地神), 허공신(虛空神)4)

그리고 욕계(欲界), 색계(色界)의 모든 천신[諸天]들도 이 향기를 맡고 모두 유마힐의 집으로 찾아왔다.

      그 때 유마힐이 사리불(舍利弗) 등 여러 대성문(大聲聞)들에게 말하였다.
        "여러분, 향적여래의 감로맛의 밥을 드십시오. 이것은 부처님의 대자비의 향기가 어려 있으니 나쁜 생각[限意, prdeika-citta]으로 이것을 먹어 소화가 되지 않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 때 대중 가운데) 못된 생각을 가진 성문들이 마음속으로 생각하였다.

      '이 음식은 양이 매우 적은데 이 많은 대중 낱낱이 어떻게 다 먹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러자 화보살이 말하였다.
      "성문의 아주 적은 복덕과 지혜로써 헤아릴 수 없는 여래의 복덕과 지혜를 재려고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4해가 마르는 일은 있어도 이 밥이 다하는 일은 없으니, 모든 사람들을 다 먹이기에 충분합니다. 수미산과 같이 많으니, 그것을 1겁(劫) 동안 모든 사람에게 먹인다 해도 오히려 다함이 없을 것입니다. 왜냐 하면 다함이 없는 계율·선정·지혜·해탈·해탈지견(解脫知見)의 공덕을 몸에 갖춘 분이 잡수시고 남긴 것이므로 끝내 다함이 없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발우의 밥을 모인 대중들에게 배불리 먹도록 한 후에도 발우의 밥은 전과 같이 조금도 줄지 않았다. 이 음식을 먹은 보살과 성문과 천인들은 몸이 쾌적하고 안락하기가 마치 온갖 즐거움으로 장엄된 나라[一切樂莊嚴國, Sarvasukhamat

SRC="http://ebti.dongguk.ac.kr/images/k0209.gif"/>]의 보살들과 같았고, 또 털구멍에서 오묘한 향기가 풍겨 나오는 것이 중향국(衆香國)의 모든 나무에서 나는 향기와 같았다.

 

        4) 지신이란 지하(地下)의 신으로 견뢰(堅牢)라고도 하며, 여신이다. 허공신은 하늘을 다스리는 신이다. 지겸은 "지천인(地天人)," 나집은 현장과 같이 "지신(地神), 허공(虛空地)"라 하였고, 티베트 역에는 "지상(地上)의 신들의 아들"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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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때 유마힐이 중향국의 보살들에게 물었다.
      "향적(香積)여래는 어떻게 가르침을 설하십니까?"
      그 보살들이 대답하였다.
            "저희들 나라의 부처님은 문자로 설법하지 않으시고, 오직 온갖 향기로써 많은 천인들과 인간들에게 계율을 지키도록[律行]5)

이끄십니다. 보살들은 저마다 향기로운 나무 밑에 앉아서 그 오묘한 향기를 맡기만 하면 곧 일체덕장삼매(一切德藏三昧, sarvabodhisattvagukara)6)를 얻습니다. 이 삼매를 얻을 수 있는 사람은 보살이 갖추어야 할 공덕을 모두 갖추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보살들이 유마힐에게 물었다.
      "지금 세존이신 석가모니부처님께서는 어떻게 가르침을 설하십니까?"
      유마힐이 말하였다.
      "이 세계의 중생은 거칠고 완강해서 교화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강력한 어조로 설하여 중생의 마음을 다스리십니다[調伏].
      말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것은 지옥이며, 이것은 축생이며, 이것은 아귀이며, 이것은 불도(佛道)를 수행하는 장애[難處]이며, 이것은 어리석은 사람이 태어나는 곳이다. 이것은 몸이 행하는 삿된 행위이며, 이것은 몸이 짓는 삿된 행위의 과보이다. 이것은 입이 짓는 삿된 행위이며, 이것은 입이 짓는 삿된 행위의 과보이다. 이것은 마음이 짓는 삿된 행위이며, 이것은 마음이 짓는 삿된 행위7)의 과보이다.
      이것이 산 목숨을 죽이는 것[殺生]이며, 이것이 산 목숨을 죽인 과보이다.
      이것이 주지 않는 것을 가지는 것[不與取 : 도둑질]이고, 이것이 주지 않는 것을 가진 과보이다.
      이것이 사음(邪)이며, 이것이 사음의 과보이다.
        이것이 거짓말[妄語]이며, 이것이 거짓말을 한 과보이다.

   5) 나집은 '율행(律行),' 현장은 '조복(調伏)'이라 했다. 조복은 두 가지 뜻이 있는데, 자기의 신심(身心)을 제어(制御)하여 악으로 나아가지 않게 하는 것으로, 이 점에서 부처님께서 정하신 제계규율(制戒規律 : 律)의 뜻과 상통한다. 따라서 현장 역과 같다. 티베트 역에서는 "지도(指導)한다" 하였다.

      6) 모든 공덕을 갖추고 베풀면서도 동요하지 않는 경계이다.
      7) 여기까지는 신(身)·구(口)·의(意) 3업(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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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이 이간질하는 말[兩舌]이며, 이것이 이간질하는 말의 과보이다.
      이것이 나쁜 말[惡口]이며, 이것이 나쁜 말을 한 과보이다.
      이것이 의미 없는 말[無義語]이며, 이것이 의미 없이 한 말의 과보이다.
      이것이 질투[嫉]이며, 이것이 질투의 과보이다.
      이것이 성내는 것[瞋惱]이며, 이것이 성낸 과보이다.
      이것이 삿된 생각이며, 이것이 삿된 생각의 과보이다.8)
      이것이 인색한 것[慳悋]이고, 이것이 인색한 짓의 과보이다.
      이것이 계를 깨뜨리는 일[毁戒]이며, 이것이 계를 깨뜨린 과보이다.
      이것이 성내는 것[瞋恚]이고, 이것이 성낸 과보이다.
      이것이 게으른 것[懈怠]이고, 이것이 게으름의 과보이다.
      이것이 마음이 어지러운 것[亂意]이고, 이것이 마음이 어지러운 과보이다.
      이것이 어리석음[愚痴]이며, 이것이 어리석은 과보이다.9)
      이것이 계를 맺는 것[結戒]10)이며, 이것이 계를 지키는 것[持戒]이고, 이것이 계를 범하는 것[犯戒]이다.
      이것이 해야 될 일[應作]이고, 이것이 해서는 안 될 일[不應作]이다.
      이것이 수행에 장애가 되는 것이며, 이것이 수행하는 데 장애가 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죄가 되고[得罪], 이것이 죄를 떠나는 것[離罪]이다.
      이것이 깨끗한 것[淨]이며, 이것이 더러운 것[垢]이다.
      이것이 번뇌[有漏]11)이며, 이것이 번뇌가 없는 것[無漏]이다.

 

         8) 여기까지가 10악(惡)이다.
         9) 여기까지는 6폐(蔽)이다.
            10) 계율을 정하여 그것을 지키는 것이나 현장은 "차수소학(此受所學)"으로 번역했다. 5계(戒)·8계 등의 계[學處]를 받는 것이라고 해석한 것이다. 티베트 역에서는 "이것은 각각 다른 해탈이다"라고 하였으므로 계율의 조문(條文)을 모은 계본과 같은 것이 된다. 계본이란 prtiomoksa의 역어(譯語)로서 바라제목차(波羅提木叉)라고 음사하며,

'별별해탈(別別解脫),' '별해탈(別解脫)'이라고 번역한다. 각각 계율을 지킴으로 해서 몸은 몸의 잘못을, 입은 입의 잘못을 막고 번뇌로부터 해방하는 것을 의미한다.

      11) 누(漏)는 샌다는 뜻. 즉 번뇌가 있는 것을 말한다. 또 번뇌는 여러 가지로 번역되고 있는데, 그 예를 보면 염(染)·혹(惑)·결(結)·박(縛)·전(纏)·개(蓋)·사(使) 등이며, 번뇌가 작용하는 면에서 여러 가지로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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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것이 삿된 길[邪道]이고, 이것이 바른 길[正道]이다.
      이것이 인연의 화합에 의하여 만들어진 것[有爲]이며, 이것이 인연에 의해 만들어지지 않은 것[無爲]이다.
      이것이 세간(世間)이며, 이것이 열반(涅槃)이다.'
      교화하기 어려운 사람의 마음은 원숭이[猨猴]와 같으므로, 여러 가지 방법[法]으로 그 마음을 다스려야 조복할 수가 있습니다. 비유하자면 코끼리나 말처럼 사납고 성질이 나빠 다스려지지 않을 때에는, 여러 가지로 고통을 주거나[加諸楚毒], 마침내는 고통이 뼛속까지 사무쳐야 다스려지는 것과 같이, 마음이 거칠고 완강해서 교화하기 어려운 중생들이기 때문에 갖가지 고통을 느끼게 하는 쓰라린 말[苦切之言]을 해서야 비로소 계율[律]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 중향국의 보살들은 이 같은 말씀을 듣고 나서 모두가 일찍이 들어 본 적이 없는 일이라 하며 말했다.
      "세존이신 석가모니부처님과 같으신 분도 한량이 없고 자유자재한 힘을 지니고서도 그 힘을 감추고 계셔서, 저 빈천하며 하잘것없는 법만 좋아하는 중생들이 원하는 것에 따라 제도하고 해탈케 하시는 것과 같이, 이 나라의 수많은 보살들도 겸손할 줄 알아서 한량없는 광대한 자비로써 이 사바세계의 부처님 나라에 태어난 것이군요."
      유마힐이 말하였다.
      "이 땅의 보살들은 모든 중생들에 대한 대비(大悲)는 견고하여 참으로 말씀하신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그 한평생을 통해 중생들에게 이익되게 베푸는 것은 당신네 나라에서 백천(百千) 겁에 걸쳐 베푸는 것보다 많습니다.
            왜냐 하면 이 사바세계에는 열 가지 착한 일[十種善法]이 있지만, 다른 정토(淨土)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보시(布施, dna)로써 가난한 사람을 돕는 것이며, 청정한 계율[淨戒, sla]로 계를 깨뜨린 사람을 이끌고, 인욕(忍辱,

knti)으로 성내는 사람을 진정하게 하며, 정진(精進, vrya)으로 게으른 사람을 이끌며, 선정(禪定, dhyna)으로 마음이 산란한 사람을 이끌며, 지혜(智慧, praj)로써 어리석은 사람을 이끌고, 불도의 수행에 장애가 되는 것을 없애는 방법을 가르쳐[說除難法] 8난(難)에 떨어진 사람을 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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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대승법으로써 소승을 즐겨 함에 빠져 있는 중생을 제도하고, 온갖 선근으로써 복덕이 없는 사람들을 구해 주고, 4섭(攝)으로써 중생들을 성취하게 하는, 이것을 열 가지라고 합니다."
      그 중향국의 보살들이 물었다.
      "보살은 어느 정도의 수행을 성취하면 이 사바세계에서 행(行)에 흠이 없이[無瘡疣] 정토에 태어날 수가 있습니까?"
      유마힐이 말하였다.
            "보살이 여덟 가지 법을 성취하게 되면 이 사바세계에서 행에 흠이 없고 정토에 태어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중생에게 이익을 주어도 그 보답을 바라지 않고, 모든 중생을 대신하여 온갖 괴로움을 받고, 지은 공덕은 낱낱이 남에게 베풀어 중생에게 평등한 마음을 가져 겸허하고 걸림이 없으며, 많은 보살에게는 부처님을 대하듯 하고, 아직 들은 적이 없는 새로운 경전을 들어도 이를 의심하지 않고, 성문(聲聞)과도 등 돌리지 않으며, 남이 받는 공양을 받아

도 시기하지 않고 자기가 얻은 이득을 뽐내지 않으며, 더욱 그러한 가운데 자기의 마음을 조복하여 항상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남의 단점을 꼽아 내지 않으며, 항상 한결같은 마음[一心]으로 온갖 공덕을 구합니다. 이것이 여덟 가지12)입니다."

    유마힐과 문수사리가 수많은 대중들 가운데서 이같이 가르침을 설했을 때, 백천의 천인들은 모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켰고, 십천(十千)의 보살들이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었다.

 

 

 

9. 입불이법문품(入不二法門品)

      그 때 유마힐은 수많은 보살들에게 말하였다.
      "여러분, 보살은 어떻게 하여 상대적 차별을 뛰어넘는[不二, advaya] 법문(法門)에 깨달아 들어가는지 저마다 생각하는 대로 말씀해 보십시오."
      모임 가운데 법자재(法自在)라고 하는 보살이 있어서 그가 말하였다.
      "여러분, 생(生, utpda)과 멸(滅, nirodha)을 서로 대립하는[二] 것이라 하지만, 존재하는 것[法]은 본래 생하는 것이 아니므로 여기에 멸하는 일도 없습니다. 이같이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는 것을 곧 입불이법문(入不二法門)이라고 합니다."
                덕수(德守,

rgandha)보살이 말하였다.

                "아(我,

tman)와 아소(我所,tmya)를 서로 대립하는 둘[二]이라고 하나, 아가 있음으로 해서 아소가 있는 것이요, 만약 아가 없으면[無我, antman] 아소도 없을 것입니다. 이것을 입불이법문이라고 합니다."

      불순(不眴, Animia)보살이 말하였다.
                "느낌을 받아들이는 것[受,

dna]과 느낌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不受, andna]을 서로 대립하는 둘이라고 합니다. 만약 존재하는 것[法]을 수(受)하지 않으면 그 때는 (사물을) 받아들일 수가 없으며, 받아들일 수가 없기 때문에 취하는 일도 버리는 일도 없으며, 짓는 일도 행하는 일도 없습니다. 이것을 입불이법문이라고 합니다."

                덕정(德頂,

rka)보살이 말하였다.

                "번뇌[垢, sa

klea]와 청정함[淨, vyava-dna]을 서로 대립한 둘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번뇌 그 자체의 본성[實性, bh"http://ebti.dongguk.ac.kr/images/k0211.gif"/>la-ksana]40)을 보아도 청정한 모습[相]은 없고, 열반의 모습[滅相]을 따릅니다. 이것을 입불이법문이라 합니다."

      0) 이하의 문장을 현장은 "번뇌와 청정함이 둘이 아니라고 분명하게 알 때, 분별은 없고 깊이 분별을 끊어서"라고 하였다. 여기서는 현장의 역문을 참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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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숙(善宿, Bhadrajyotis)보살이 말하였다.
              "마음이 움직이는 것[動, vikepa]41)과 아상을 가지고 그 모양을 파악하는 것[念, manasikra]을 서로 대립하는 둘이라 합니다.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면 곧 아상으로 파악하는 일도 없을 것이며, 아상으로 파악하는 일이

없으면 곧 분별이 없는 것이므로 이 경지를 잘 통달한 것을 입불이법문이라고 합니다."

      선안(善眼, Sunetra)보살이 말하였다.
      "하나의 모습[一相, ekalakaa]을 가진 것과 아무런 모습도 갖지 않는 것[無相, alakaa]을 서로 대립하는 둘이라 합니다. 만약 어떤 모습이 있는 것[一相]을 어떠한 모습도 없는 것[無相]이라고 알고, 또 모습이 없는 것[無相]에도 얽매이지 않고서 평등을 체득하게 되면, 이것을 입불이법문이라고 합니다."
      묘비(妙臂, Subbu)보살이 말하였다.
      "보살의 마음과 성문(聲聞)의 마음을 서로 대립하는 둘이라 하지만, 마음의 모습[心相]은 공하고 허깨비와 같은 것이라고 분명하게 알면, 보살의 마음도 없고 성문의 마음도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입불이법문이라고 합니다."
      불사(弗沙, Pusya)보살이 말하였다.
      "선(善, kuala)과 불선(不善, akuala)을 서로 대립하는 둘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만약 선도 불선도 일으키지 않고 상이 없는 경지[無相際]에 들어서 이를 통달하면, 이것을 입불이법문이라고 합니다."
                사자(獅子, Si

ha)보살은 말하였다.

      "죄악[罪, svadya]과 복덕[福, anavadya]42)을 서로 대립하는 둘이라 하지만, 만약 죄악 그 자체의 본성에 통달하면 복덕과 다름이 없음을 알게 되고, 금강과 같은 진실한 지혜로써 이러한 사실을 분명히 깨달아 속박되는 일도 없고 해방되는 일도 없으면, 이것을 입불이법문이라고 합니다.

 

      41) 이 부분에 대해서 현장은 "산동(散動)과 사유(思惟)," 티베트 역에서는 "동요(動搖)와 집착(執着)"이라고 했다.
      42) 현장, 티베트 역은 "유죄와 무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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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자의(獅子意, Si

hamati)보살은 말하였다.

              "유루(有漏, ssrava)와 무루(無漏, ansrava)를 서로 대립하는 둘이라 하나, 만약 모든 법이 평등함을 알면, 그 때 번뇌[漏]라든가 번뇌가 없다고 하는 생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며, 그러한 생각43)에 집착하는 일도

없을 것이며, 생각이 없는 상태에도 머물지 않습니다. 이것을 입불이법문이라고 합니다."

                정해(淨解,

uddhdhimukti)보살이 말하였다.

                "유위(有爲, sa

skta)와 무위(無爲, asaskta)44)를 서로 대립하는 둘이라 합니다. 그러나 일체 (유위의) 행위[數, saskara]를 떠나고 나면 마음은 허공과 같아져 (집착을 떠나) 맑은 지혜는 걸림이 없게 됩니다. 이것을 입불이법문이라고 합니다."

      나라연(那羅延, Nryana)보살은 말하였다.
      "세간(世間, laukika)과 출세간(出世間, lokottara)을 서로 대립하는 둘이라 합니다. 그러나 세간의 본성 자체가 공(空) (함을 깨닫는 것)이 그대로 출세간인 것이며, 그리고 그 가운데에서 들고 나는 일이 없으며, 넘치고 흩어지는 일도 없습니다. 이것을 입불이법문이라고 합니다."
      선의(善意, Dntamati)보살은 말하였다.
                "생사(生死, svabhava)와 열반(涅槃, nirva)을 서로 대립하는 둘이라 합니다. 그러나 만약 생사 그 자체의 본성이 곧 생사는 이미 없으며, (사람을) 얽어매는 것도 없고, 그로부터 벗어날 것도 없으며, 또 불생불멸(不生不滅)이라면 이를 입

불이법문이라고 합니다."

 

      현견(現見, Pratyakadarana)보살은 말하였다.
      "다하는 것[盡, kaya]과 다함이 없는 것[不盡, akaya]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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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3) 여기서 말하고 있는 '생각'을 나집은 '상(相)'이라고 했으나, 전문(前文)과의 관계로 보아 '상(想)'이 옳을 듯하고, 현장과 티베트 역도 '상(想)'이다. 또 이곳을 '상(相),' '무상(無相)'이라고 한다면, 앞의 선안(善眼)보살과 중복되므로 지금은 '상(想),' '무상(無想)'으로 번역했다.
      44) 이 부분의 티베트 역은 "이것은 업이다, 이것은 불업이다"이다.
          45) 이 부분은 현장 역, 티베트 역이 모두 일치하지 않고 뜻을 파악하기 힘들다. 『주유마힐경(注維摩詰經)』에 따르면 "무상은 공을 깨닫는 처음의 관문이니, 존재를 깨뜨려도 다 없어지지 않음을 부진(不盡)이라고 이름한다. 내지는 한 생각이라도 않으면 생할 것이 없으니, 생할 것이 없다면, 생이 다한다. 생이 다하면 곧 끝내는 공적[畢竟空]하니, 이를 진(盡)이라 이름한다"고 나집은 풀이하였다.(卍續藏 27, p. 504上)

둘이라 합니다. 그러나 사물[法]이 만약 끝내 다하고[盡], 만약 다하지 않는다고 해도, 모두 다한 모양[盡相]은 없습니다. 다한 모양이 없는 것은 곧 공(空)이며, 공하다면 곧 다한다든가 다하지 않는다고 하는 모양은 없습니다. 이것을 입불이법문이라고 합니다."

      보수(普守, Pariguha)보살이 말하였다.
      "아(我)와 무아(無我)를 서로 대립하는 둘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아를 (찾아보아도 찾아내) 얻을 수 없는데, 하물며 비아(非我)를 어떻게 찾아내 얻을 수 있습니까? 아의 본성[實性]을 보는 사람은 다시는 이 두 가지 생각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이것을 입불이법문이라고 합니다."

 

        전천(電天, Vidyuddeva)보살은 말하였다.

"명(明, vidy)과 무명(無明, avidy)을 서로 대립하는 둘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무명의 본성은 곧 명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명 또한 집착해서도 안 됩니다. 일체의 이치[數]를 떠나 있으니, 그 안에서 평등하여 상대적인 두 가지 차별이 없는 것, 이것을 입불이법문이라고 합니다."

 

      희견(喜見, Priyadarana)보살은 말하였다.
                "색(色, rpa)과 그 색이 공한 것[色空, rpan

yat]을 서로 대립하는 둘이라 하나, 색은 그대로가 공(空,nya)한 것으로서 색이 멸함으로써 공한 것은 아니고, 색의 본성이 본래 공한 것입니다. 이같이 수(受)·상(想)·행(行)·식(識)도 그대로가 공인 것입니다. 식(識, Vijna)과 공(空,nyat)도 서로 대립한 둘이라 하나, 식 그 자체가 공한 것이지, 식이 멸했기 때문에 공한 것은 아닙니다. 식의 본성이 본래 공한 것입니다. 이같이 통달하는 것을 입불이법문이라고 합니다."

 

      명상(明相, Prabhketu)보살은 말하였다.
                "지·수·화·풍의 다른 것과 허공의 원소[空種,

kadh>tu]46)가 다른 것을 서로 대립하는 둘이라 합니다. 그러나 4대의 본성 그대로가 허공[空種]의 6) 허공(虛空)을 말한다. 즉 공간으로서 일체가 걸림이 없이 그 안에 안주시킬 수 있는 것을 말한다. 또 이 부분은 현장 역과 같이 "네 가지 원소(元素)와 공(空)과는" 하는 것이 더 이해를 빠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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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성인 것입니다. 과거[前際, purvanta]와 미래[後際, aparanta]가 다 공하기 때문에 중간인 현재[中際, pratyutpanna]의 본성도 공한 것입니다. 만약 이같이 저마다의 원소의 본성을 알 수가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입불이법문이라고 합니다."
      묘의(妙意, Paramati)보살은 말하였다.
                "눈[眼, cakus]과 색(色, rpa)을 서로 대립하는 둘이라 합니다. 만약 눈의 본성(이 공하다는 것)을 알면, 색에 탐착하지 않을 것이며, 성을 내거나 어리석을 일이 없을 것이니, 이것을 적멸(寂滅)이라고 이름합니다. 이같이 귀[耳]와 소리[聲

], 코[鼻]와 냄새[香], 혀[舌]와 맛[味], 신체[身]와 감촉[觸], 마음[意]과 마음의 대상[法] 등이 서로 대립하는 것을 둘이라고 하지만, 만약 마음의 본성을 알면 마음의 대상에 대해서 탐착하는 일도, 성내는 일도, 어리석을 일도 없을 것이므로 이것을 적멸이라고 이름하며, 그 안에 안주하는 것을 입불이법문이라고 합니다."

 

      무진의(無盡意, Akayamat)보살은 말하였다.
              "보시(布施, dna)와 공덕을 일체지로 회향하는 것[廻向一切智, sarvajna-pariman]을 서로 대립하는 둘이라 합니다. 그러나 보시의 본성은 그대로 공덕을 일체지로 회향하는 본성인 것입니다. 이같이 지계·인욕·정진·선정·지혜와 공덕을 일체지에로 회향하는 것을 서로 대립하는 둘이라 하지만, (지

계 내지) 지혜의 본성은 그대로 그 공덕을 일체지에로 회향하는 것의 본성인 것입니다. 그 안에서 이 진실한 도리[一相]47)를 깨닫는 것을 입불이법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심혜(深慧, Gambhramati)보살은 말하였다.
                "공(空,

nyat)과 차별의 모습을 떠나 있는 것[無相,nimitta], 바라며 구하는 뜻이 없는 것[無作, aparaihita]을 서로 대립하는 둘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공은 차별의 모습이 없으므로) 공은 그대로 차별의 모습을 떠나 있으며, (차별의 모습이 없으므로 바라고 구하는 일도 없으므로) 차별의 모습을 떠7) 앞의 선안(善眼)보살이 "일상(一相)과 무상(無相)"이라고 대립해서 이야기했고, 또 선안(善眼)보살의 이야기와 지금 것이 같지 않으므로 현장 역 '일리(一理),' 티베트 역의 '일리취(一理趣)'를 참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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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있는 것은 그대로 바라고 구하는 뜻이 없는 것입니다. 만약 공이며, 차별의 모습을 떠나고, 바라고 구하는 뜻이 없으면 곧 마음[心, citta]48)과 뜻[意, manas]과 식별[識, vijna]이 없고, 하나의 해탈의 문[

一解脫門]이라는 그 자체가 곧 세 가지 해탈의 문[三解脫門]이라는 것을 (체득하는 것)을 입불이법문이라고 합니다."

 

                적근(寂根,

ntendriya)보살은 말하였다.

      "부처님[佛]과 부처님의 가르침[法], 그 가르침을 행하는 승단[衆]을 서로 대립하는 둘이라 하나, 부처님은 곧 가르침[法]49)이며, 가르침은 곧 그것을 실천하는 승단인 것입니다. 이 3보 모두가 무위(無爲)의 상(相)으로서 허공과 같은 것입니다. 또 일체법도 이와 같아서 이것을 알고 잘 행하는 것을 입불이법문이라고 합니다."

 

      심무애(心無碍, Apratihatanetra)보살은 말하였다.
                "신체[身, satkya]와 몸 멸하는 것[滅身, Satk

yanirodha]을 서로 대립하는 둘이라 하지만, 신체는 그대로 신체가 멸하는 것입니다. 왜냐 하면, 신체의 진실한 본성[實相]을 보는 사람은 신체도 신체가 멸하는 것도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 신체와 신체의 멸과는 상대적인 차별이 없으며, 분별도 없습니다. 이것을 알고 놀라지도 두려워하지도 않는 것을 입불이법문이라고 합니다."

 

      상선(上善, Suvinta)보살은 말하였다.
                "몸[身, kya]과 입[口, vgmana]과 마음[意, sa

vara]과 그 행위[善]를 서로 대립하는 둘이라고 하나 이 세 가지 행위[三業]에는 어느 것에도 행위[業]로서의 모습이 없습니다[無作相, anabhisaskralakana]. 몸의 행위로서의 모습이 없는 것은 그대로 입의 행위로서의 모습이 없는 것이며, 입의 행위로서의 모습이 없는 것은 그대로 마음의 행위로서의 모습이 없는 것입니다. 이들 세 가지 행위로서의 모습이 없는 것은 일체법의 행위로서의 모습이 없는

 

      48) 심(心)·의(意)·식(識)을 나집은 공 이하의 세 가지 것에 관계시켜 이것들이 없는 것에는 심·의·식의 세 가지 작용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지겸, 현장, 티베트 역에서는 모두 "이 세 가지 것을 바라는 생각이 없는 것[無作·無願]"이라고 했다.
      49) 이 부분을, 현장은 "불(佛)의 본성(本性 : 法性)은 그대로 법의 본성," 티베트 역에서는 "불의 본성은 가르침이다," "가르침의 본성은 승단(僧團)이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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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것입니다. 이같이 능히 행위가 없는 것[無作]을 아는 지혜에 따르는 것을 입불이법문이라고 합니다."

 

      복전(福田, Puyaketra)보살은 말하였다.
                "(욕계의 선행인) 복행(福行, puybhisa

skra)과 (10악도의 악행인) 죄행(罪行, apuyabhisaskra)과 (색계, 무색계의 선행인) 부동행(不動行,nijybhisaskra)50)을 서로 대립하는 둘이라고 하나 이들 세 가지 행의 본성[實性]은 그대로 공한 것입니다. 공이므로 거기에는 선행도 악행도 없습니다. 이 세 가지 행위에 아무런 차별도 일으키지 않는 것을 입불이법문이라고 합니다."

 

      화엄(華嚴, Padmavyha)보살은 말하였다.
              "아(我)로부터 나와 남의 두 가지 구별을 일으켜 서로 대립한 두 가지라 하지만, 아의 진실한 모습을 (공이라고) 보는 사람[見我實相者,

taparijna]은 (남과 나라고 하는) 두 가지 분별[二法]을 일으키지 않습니다. 만약 이 두 가지 것에 집착[住]하지 않으면 (나와 남이라는) 식별함이 있을[有識, vijna] 수 없고, 식별되는 것[所識, vijpti]도 없습니다. 이것을 입불이법문이라고 합니다."

 

                덕장(德藏,

garbha)보살은 말하였다.

                "집착할 대상이 있는 것[有所得相,

lambana prabhvita]을 대립하는 둘이라고 합니다. 만약 (제법이 공하다고 깨달아) 집착할 대상이 없다면[無所得, nirlambana] 취하거나 버릴 것은 없습니다. 취하거나 버릴 것이 없는 것을 입불이법문이라고 합니다."

 

      월상(月上, Cantrottara)보살은 말하였다.
                "어둠[闇, tamas]과 밝음[明, jyotis]을 서로 대립한 둘이라고 하나 어둠도 없고 밝음도 없으면 둘도 없습니다. 왜냐 하면, 예컨대 모든 마음의 작용이 다해 버린 적정한 삼매의 경지[滅受相定, sa

j-vedayita-nirodha- sam) 나집의 설명에 의하면, 복덕은 욕계의 선행으로 업의 과보를 가져오고, 악행은 10불선도(不善道)를 행하는 것으로 고의 과보를 가져오며, 무동행(無動行), 즉 부동행(不動行)은 색계(色界)·무색계(無色界)의 행위라고 주석했다.(卍續藏 27, p. 506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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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tti]에 들면 어둠도 없고 밝음도 없는 것과 같이 일체법의 모습도 그와 같기 때문이니, 그 안에서 평등하게 깨달아 들어가는 것을 입불이법문이라고 합니다."

 

      보인수(寶印手, Ratnamudrhasta)보살은 말하였다.
                "열반을 즐기는 것[樂涅槃, nirvnbhirati]과 세간(世間)을 좋아하지 않는 것[不樂世間, sa

sraparikheda]을 둘이라고 하지만, 만약 열반을 즐기지도 않고 세간을 싫어하는 것도 아니라면 곧 이 둘의 대립은 없습니다. 왜냐 하면, 번뇌의 속박이 있으면[有縛] 해탈이 있어야 할 것이지만, 만약 본래부터 속박된 것이 없다면 그 누가 해탈을 구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속박도 없고 해탈도 없으면 곧 좋아하고 싫어하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이것을 입불이법문이라고 합니다."

 

      주정왕(珠頂王, Maikarja)보살은 말하였다.
      "바른 길[正道, marga]과 삿된 길[非道, kumrga]을 서로 대립한 둘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바른 길에 머무는 사람은, 이것은 삿되고 저것은 옳다고 분별하지 않습니다. 이 두 가지 차별을 떠나는 것을 입불이법문이라고 합니다."

 

      낙실(樂實, Satyarata)보살은 말하였다.
              "진실[實, satya]과 거짓[不實, ma]을 서로 대립하는 둘이라 합니다. 그러나 진실을 보는 사람은 오히려 진실이라는 것 자체를 보지 않는데, 하물며 거짓을 보겠습니까? 왜냐 하면 (진실은) 육안(肉眼, m

sacakus)으로 보는 것이 아니고, 지혜의 눈[慧眼, prajcakus]으로만 볼 수 있는 것이지만, 그러면서도 이 지혜의 눈은 본다, 보지 않는다는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입불이법문이라고 합니다."

 

      이와 같이 여러 보살들이 제각기 설하고 나자 문수사리(文殊師利, Majur)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보살의 불이법문[不二法門, advaya dharmamukha]에 깨달아 들어가는 것입니까?"

 

      문수사리가 대답하였다.
      "제 생각 같아서는 일체법에 대해서 말이 없고[無言], 설함도 없으며[無說], 가리키는 일도 없고[無示], 식별하는 일도 없으며[無識], 모든 질문과 대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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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떠나는 것을 입불이법문이라고 할 것 같습니다."

 

      이 때 문수사리가 유마힐에게 물었다.
      "저희들은 각자가 자신들의 생각을 말하였습니다. 당신께서 말하실 차례입니다. 어떤 것을 보살의 입불이법문이라고 하는 것입니까?"
                  그 때 유마힐은 오직 아무런 말 없이[默然]51)

 침묵하였다. 

문수사리는 감탄하여 말하였다.

      "훌륭하고 참으로 훌륭합니다. 문자(文字)로도 언어의 설명[語言]까지도 전혀 없는 이것이야말로 진실로 불이의 경지에 깨달아 들어가는 법문입니다."
      이와 같이 입불이법문품을 설할 때, 이곳에 모인 대중들 가운데 5천의 보살들 모두가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었다.

 

    51) 이것을 '유마의 일묵(一默),' '묵불이(默不二)'라고 하며, 이것을 찬탄해서 선가에서는 흔히 "유마의 일묵(一默)이 만뢰(萬雷)와 같다"고 한다.

 

 

8. 불도품(佛道品)

      그 때 문수사리가 유마힐에게 물었다.
      "보살은 어떻게 해야 불도(佛道)에 통달할 수 있습니까?"

 

      유마힐이 대답하였다.
      "만약 보살이 도가 아닌 길[非道]을 간다면 곧 불도에 통달한 것입니다."

 

      또 문수사리가 물었다.
      "어떻게 하는 것이 도가 아닌 길을 간다는 것입니까?"

 

      유마힐이 답하였다.
          "만약 보살이 5무간죄[無間]를 범하여도 괴로워하거나 성내는 일이 없는 것이며, 지옥에 떨어지더라도 모든 죄나 번뇌가 없으며, 축생에 떨어지더라도 어리석음[無明]28)이나 교만한 마음 등의 허물이 없으며, 아귀에 떨어지더라도 공덕을 갖추고 있으며, 색계나 무색계의 도에 이르러서도 잘났다고 뽐내지 않습니다. 탐욕을 부리는 것을 드러내어도

29)온갖 번뇌에 물드는 일이 없으며28) 세상의 상태나 도리에 대하여 명철하고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없는 것을 어리석음이라 하고, 그것을 현상적으로 파악한 것이 무명(無明)이다. 무명은 12인연(因緣)에서는 모든 미혹의 근원으로 파악되고 있으나 여기서는 티베트 역 '무지(無智)의 어두움'이라는 뜻에 근거를 두고, 다만 '어리석음'이라고만 번역하였다. 또 이 대문의 나집 역은 다른 번역에서 보이는 아수라의 세계에 관한 부분이 없다.

            29) 이 대문의 나집 역은 "시행탐욕(示行貪欲)"으로 "탐욕(貪欲)을 행하는 것을 드러내 보인다"는 뜻이다. 그러나 현장은 "행탐욕행취(行貪欲行趣)"로 번역하고 있다. 이하에 있어서도 이 '행취(行趣)'의 표현을 인용한 '세계(世界),' '장소(場所)' 등의 의미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행(行)'은 '간다'는 뜻이며, 그것은 보살이 스스로 그에 타당한 업을 지어서 나아가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티베트 역에서도 "탐욕(貪欲)이 있는 중생에게로

간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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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내는[瞋恚] 모습을 드러내어도 분노를 품는 일이 없으며, 어리석은 모습을 드러내어도 지혜로써 그 마음을 다스리며, 인색하고 탐욕스런 모습30)을 보이면서도 안과 밖의 모든 것을 보시하며, 몸과 목숨까지도 아끼지 않으며, 계율을 범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마음은 편안하게 청정한 계율에 안주하고, 아무리 작은 죄에도 오히려 크게 조심하며, 성내는 모습을 보이면서도 항상 너그럽게 참으며, 게으른 모습을 보여도 온 마음을 기울여 공

덕을 닦으며, 마음이 혼란한 모습을 보여도 마음은 언제나 조용하게 선정을 닦으며, 어리석은 모습을 보여도 세간과 출세간의 지혜에 통달해 있습니다.

      아첨하거나 거짓된 모습을 보여도 훌륭한 방편으로 경전의 뜻에 따라 교화하며, 교만하게 뽐내는 모습을 보여도 중생에게는 마치 교량과 같으며, 온갖 번뇌에 들끓는 모습을 보여도 마음은 항상 청정합니다. 마군의 속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여도 부처님의 지혜에 따르지 다른 가르침에는 따르지 않으며, 성문(聲聞)의 사이에 섞여도 중생을 위하여 아직까지 들어 보지 못한 가르침을 설하며, 벽지불(辟支佛)들 사이에 끼여도 대자비를 이룩하여 중생을 교화합니다.
          가난에 찌든 사람들 사이에 섞여서도 보배를 낳는 손으로서[寶手] 공덕이 다하는 일이 없으며, 불구자[刑殘] 사이에 끼여도 온갖 상호(相好)를 갖추어 자신의 몸을 장엄하고, 비천한 사람들 사이에 끼여서도 부처가 될 소질[佛種性]을 가진 무리에 태어나서 온갖 공덕을 갖추고, 몸이 쇠약하고 추하고 비참한 사람들 사이에 섞여도 나라연(那羅延, nr

SRC="http://ebti.dongguk.ac.kr/images/k0209.gif"/>yaa)과 같이 힘센 몸을 얻어 모든 중생이 부러워 즐겁게 바라보는 대상이 되며, 늙고 병든 사람들 사이에 끼여도 영원히 병의 근원을 끊고 죽음의 공포를 초월합니다.

      재물이 있는 모습을 보이지만 항상 무상을 관하여 실제로 탐내는 것이 없으

 

      30) '인색하고 탐욕스런 모습' 이하의 여섯 가지를 불교에서는 청정한 마음을 가리게 하는 여섯 가지 장애라는 뜻의 '6폐(蔽)'라고 한다. ① 간탐(慳貪), ② 파계(破戒), ③ 진에(瞋恚), ④ 해태(懈怠), ⑤ 산란(散亂), ⑥ 우치(愚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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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 아내와 첩과 채녀(采女)가 있는 것을 보여 주지만 항상 5욕의 진흙탕에서 멀리 떠나 있고, 말이 어눌하고 둔한 것같이 보이면서도 변재(辯才)를 성취하고 모든 것을 간직하여[持] 잊는 일이 없으며, 외도로 중생을 제도하는 모습[邪濟]을 보여도 부처님의 정법으로 모든 중생을 제도하며, 온갖 세속의 길[道]에 두루 빠져드는 것처럼 보여도 그 인연

을 끊고, 열반의 경지에 드는 것을 나타내 보여도 생사를 끊어 없애지는 않습니다. 문수사리여, 보살이 이같이 도 아닌 길[非道]을 행해 갈 수가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불도에 통달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때에 유마힐은 문수사리에게 물었다.
      "무엇을 여래의 씨앗[如來種, tathgata-gotra]이라고 합니까?"

 

      문수사리가 답하였다.
        "이 몸[有身, satkaya]이 여래의 씨앗이며, 무명(無明)과 생존의 욕망[有愛, bhava]이 씨앗이며,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씨앗이며, 4전도(顚倒, vipary)와 5개(蓋, pa

http://ebti.dongguk.ac.kr/images/k0223.gif"/>ca-varani)가 씨앗이 되며, 6입(入, sat-http://ebti.dongguk.ac.kr/images/k0209.gif"/>yatana)이 씨앗이 되며, 7식처(識處)31)가 씨앗이 되며, 8사법(邪法)32)이 씨앗이 되며, 9뇌처(惱處)33)가 씨앗이 되며, 10불선도(不善道)가 모두 씨앗이며

 

        31) 중생의 마음이 과보를 받아 거기에 머물기를 구하는 일곱 가지 안식처이다. ① 욕계의 인간이나 천상의 세계 및 겁의 초기를 제외한 색계의 초선천(初禪天)인 신이상이식주처(身異想異識住處), ② 겁 초기의 초선천인 신이상일식주처(身異想一識住處), ③ 제2선천(第二禪天)인 신일상이식주처(身一想異識住處), ④ 제3선천인 신일상일식주처(身一想一識住處), ⑤ 무색계(無色界)의 공무변천처(空無邊天處)인 공무변처(空無邊處), ⑥ 무색계의 식무변천(識無邊

天)인 식무변처식주처(識無邊處識住處), ⑦ 무색계의 무소유처천(無所有處天)인 무소유처식주처(無所有處識住處)이다.

      32) 8정도에 반대되는 것이다.
        33) 석존도 인과의 법에 따라 전생의 인연에 의하여 금생에서 받는 아홉 가지 고뇌가 있었다 한다. ① 깨달음을 얻기 전의 6년 동안의 고행, ② 바라문의 여인 손타리(孫陀利)가 한 비방(誹謗), ③ 전다녀(旃茶女)가 아이를 배태했다고 하는 비방, ④ 제바달다(提婆達多)가 바위를 떨어뜨려 발가락에 상처를 입힌 것, ⑤ 목창(木槍)으로 발을 다친 일, ⑥ 석가족이 유리왕(流離王)에게 살육을 당한 일, ⑦ 아기달다(阿耆達多) 바라문의 초청을 받아

마맥(馬麥)을 여러 달 동안 먹지 않으면 안 되었던 일, ⑧ 동지 전후의 8일간을 3의(衣)만으로 추위를 견뎌야 했던 일, ⑨ 걸식(乞食)을 나갔어도 아무것도 얻지 못했던 일이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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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점을 취해서 말한다면 62견(見)이나 모든 번뇌가 모두 부처의 씨앗이 됩니다."
      "그것은 무슨 말입니까?"
          "무위(無爲, asa

skta)를 보고 올바른 깨달음의 경계[正位]에 든 사람은 다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구하고자 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으니, 비유하자면 마치 메마른 고원의 육지에서는 연꽃이 자라지 않지만 더럽고 습한 진흙 땅에서는 잘 자라는 것과 같습니다. 이같이 무위법을 보고 올바른 깨달음의 경계에 든 사람은 끝내 다시는 불법(佛法)에 마음을 일으키지 않게 될 것이며, 번뇌의 진흙 속에 있는 중생이라야 불법에 마음을 일으킬 뿐입니다. 또 허공에 씨를 뿌리면 싹이 틀 수가 없지만 거름으로 비옥한 땅[糞壤之地]에서는 무성하게 자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무위의 올바른 경계에 든 사람은 불법을 일으키는 일이 없습니다. 아견(我見)을 수미산과 같이 일으켜도 더욱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켜 불법을 일으킬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만 합니다. 모든 번뇌가 여래의 씨앗이라는 것입니다. 비유하자면 마치 대해(大海)의 깊은 밑바닥에 들어가지 않으면 값을 매길 수 없을 만큼 값진 보물을 얻을 수 없는 것과 같이, 번뇌의 대해에 들어가지 않으면 일체지(一切智)의 보물을 얻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 때에 가섭이 탄식하며 말하였다.
        "참으로 훌륭합니다, 문수사리여. 이 말씀 명쾌하게 설하시니, 참으로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온갖 번뇌가 여래의 씨앗입니다. 저희들은 이제 다시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일으키는 것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설사 5무간죄를 지을 정도라야 더욱 발심하여 불법을 일으킬 수 있다 하더라도, 지금 저희들은 영원히 (그 마음을) 일으킬 수가 없습니다. 비유하자면, 마치 성의 불구자[根敗]는 5욕을 만족시킬 수 없는 것과 같이 성문으로 모든 번뇌를 끊어 버린

자는 불법에 있어서는 또다시 아무런 이익이 되지 않으며, 앞으로도 (그러한) 서원을 세우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문수사리여, 범부는 불법으로 다시 되돌아오지만34)

성문은 그렇

 

      34) 이 대문을, 나집은 "불법(佛法)으로 다시 되돌아온다"고 했으나 승조(僧肇)는 이것을 주석하여 "범부는 법(法)을 듣고 능히 불(佛)의 종(種)을 이을 수가 있으니, 곧 (부처의) 은혜에 보답하여 불법으로 되돌아옴[反復]이 있다(僧肇 選, 『注維摩詰經』, 卍續藏 27, p. 492下)"고 했다. 현장, 티베트 역은 "불은(佛恩)에 보답한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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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 않습니다. 왜냐 하면, 범부는 불법을 들으면 최고의 깨달음을 구하는 마음[無上道心]을 내어서 불(佛)·법(法)·승(僧) 3보를 단절하지 않지만, 성문은 설사 목숨을 마치도록 불법·10력(力)·4무소외[無畏] 등을 들어도 최고의 깨달음을 구하는 마음을 영원히 일으키지 못합니다."
          그 때 이 법회에 참석한, 보현색신(普賢色身, sarvarpasa

darana)이라고 불리는 보살이 유마힐에게 물었다.

      "거사님, 그대의 부모와 처자·친척·권속(眷屬)·하인[吏民]·벗[知識], 이들은 모두 어떤 사람들이며, 노비와 심부름꾼[僮僕], 코끼리와 말, 수레 따위는 모두 어디에 있습니까?"
      이에 유마힐은 게송(偈頌)으로 답하였다.

 

      반야바라밀다[智度]는 보살의 어머니이며
      방편바라밀로 아버지를 삼고
      일체 중생을 이끄는 스승도
      이것에 의지하지 않고는 태어나질 않네.

 

      법의 기쁨[法喜, dharmapramudit]으로 아내를 삼고
      자비심으로 딸을 삼고
      성실을 아들로 삼아
      필경(畢竟) 공함은 집으로 삼는다네.

 

      여러 번뇌는 나의 제자요
      뜻에 따라 다스려 가고
      37도품은 선지식으로
      이것들이 깨달음에 이르게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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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 바라밀다[度法]는 모두 다 도반이며
      4섭법[攝]은 기녀(伎女)일세.
      노래하고 법다운 말씀을 읊조리니
      이들을 음악으로 삼는다네.

 

      다라니[摠持]의 동산
      무루법(無漏法)의 숲
      7각의(覺意)의 청정하고 오묘한 꽃이 만발하고
      해탈과 지혜의 열매가 무르익네.

 

      8해탈[解]은 목욕하는 연못
      삼매의 물[定水]이 가득 차
      일곱 가지 맑은 꽃35)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거기 목욕하는 이는 모두 번뇌가 없는 이들[無垢人]이라네.

 

      다섯 가지 신통력은 코끼리와 말로 치달리고
      대승은 수레로 삼아
      한마음[一心]36)으로 잘 몰아 가며
      8정도의 길을 잘 간다네.

 

      35) 7정(淨)이라고도 한다. 청정한 행을 비유한 것이다. ① 일상생활을 청정하게 하는 것[戒淨], ② 마음을 청정히 하는 것[心淨], ③ 청정한 지혜에 의하여 신견(身見)을 끊고 바르게 보는 것[見淨], ④ 바르게 보고 의혹을 끊는 것[度疑淨], ⑤ 정도(正道)와 사도(邪道)를 바르게 보는 것[分別道淨, 道非道淨], ⑥ 번뇌를 끊고 지혜가 밝은 것[行斷知淨, 行知見淨], ⑦ 깨달음을 얻는 것[涅槃淨, 斷知見淨]이다.
      36) 나집의 설명에 의하면, 산스크리트 원본에는 '화합(和合)'이라고 되어 있다 하며, 그 화합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는데, 수레를 잘 몰아서 마음대로 운전할 수 있는 것처럼 잘 다스리는 것을 화합이라고 했다(『주유마힐경』, 卍續藏 27, p. 496上∼下). 현장과 티베트 역에는 "깨달음에 나아가는 마음"이라고 되어 있으며, 지겸도 '도심(道心)'이라고 번역하여 같은 의견이다. 깨달음에 나아가는 마음은 깨달음의 지혜를 구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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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상으로 장엄하고
      80종호로 모습을 잘 갖추어
      참괴(慚愧)의 옷을 입고
      깊은 마음은 꽃다발로 삼네.

 

      7재(財)37)의 보물을 재산으로
      (佛法을) 가르침을 자애로운 휴식으로 삼아
      가르침대로 수행하여
      깨달음으로 회향하여 중생을 이롭게 하네.

 

      4선(禪)으로 자리펴고 앉아
      정명(淨名)38)을 따라 살아가고
      다문(多聞)으로써 지혜를 늘려가고
      스스로 깨달음을 음악으로 삼네.

 

      감로(甘露)의 법은 밥이고
      해탈(解脫)의 맛은 국이 되어
      맑은 마음으로 목욕하고
      계품(戒品)으로 온몸을 향기롭게 바르네.

 

      번뇌의 도적을 무찌르니
      그 용감함은 누구도 비할 수 없어
      네 가지 마군39)을 항복받아

 

      37) 7성재(聖財)라고도 한다. ① 바른 가르침을 믿는 것[信], ② 계를 지키는 것[戒], ③ 보는 것을 버려서 보시하는 것[施], ④ 바른 가르침을 많이 듣는 것[聞], ⑤ 진실한 지혜를 얻는 것[慧], ⑥ 스스로를 부끄러워하는 것[慚]], ⑦ 타인(他人)에게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愧]이다.
      38) 비구가 걸식으로 깨끗한 생활을 영위하는 것.
      39) ① 5온(蘊 : 五陰)은 죽음이 작용하는 대상이므로 이는 악마이다[五陰魔], ② 번뇌는 내생(來生)의 근원이며 죽음을 초래한다[煩惱魔], ③ 죽음 그 자체[死魔], ④ 죽음을 초월하고자 하는 것을 방해하는 것[天子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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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 121] 쪽

      승리의 깃발을 도량에 휘날리네.

 

      생과 멸이 없는 줄을 알면서도
      가르쳐 주기 위하여 생사를 보여 주고
      온갖 국토(國土)에 남김없이 나타내니
      마치 태양이 비추지 않는 곳이 없는 것 같네.

 

      시방 3세의 무량억(無量億)의 여래에게
      공양을 올리면서도
      그 모든 부처와 나의 몸을
      분별하는 생각 전혀 없네.

 

      모든 부처님의 나라와 중생들이
      모두 공한 줄을 안다고 해도
      항상 정토의 행을 닦아
      모든 중생을 교화하네.

 

      모든 중생의
      모습과 소리와 몸가짐[威儀] 그 모두를
      두려움 모르는 보살은
      일시에 남김없이 나타내 보인다네.

 

      온갖 마군의 소행을 알아
      그들을 따르는 모습을 보여서
      훌륭한 방편의 지혜로써 선으로 이끌고
      뜻에 따라 모두를 교화해 나타낸다네.

 

      늙고 병들고 죽음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모든 중생을 성취하고자 함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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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것이 허깨비[幻化]와 같음을 사무치게 알고
      걸림없이 모든 걸 통달한다네.

 

      어느 때는 겁(劫)이 다함을 보이기 위해
      하늘과 땅이 모두 불타는 것을 보여 주기는 하지만
      모든 것이 항상 영원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무상함을 환하게 알게 하고자 하는 것이네.

 

      무수억(無數億)의 중생이
      함께 와서 보살을 청한다면
      일시에 그들의 집에 다가가
      불도로 나아가도록 교화한다네.

 

      경전[經書]이든 주술서이든지
      온갖 기술에 관련된 책이든지
      남김없이 통달하여
      중생들을 널리 이익되게 베푸시네.

 

      세간의 온갖 도를 닦아
      그 모든 길에서 출가하여
      이로써 사람의 미혹을 풀어 주고
      사견에 떨어지지 않게 하네.

 

      어느 때는 해·달·하늘이 되고
      그리고 범천과 세계의 주인이 되고
      혹은 흙이 되고 물이 되며
      혹은 바람이 되고 불이 된다네.

 

      질병의 소겁 동안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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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 121] 쪽

      온갖 약초가 되어
      이것을 복용한 자는
      온갖 독과 병을 없애 준다네.

 

      기근의 소겁 동안에
      몸을 바쳐 음식이 되어
      먼저 그들의 굶주림과 목마름을 가시게 한 다음
      가르침을 설하여 교화한다네.

 

      전쟁[刀兵]의 소겁 동안에
      그를 위하여 자비심을 일으켜
      저 모든 중생을 교화하여
      싸움이 없는 땅[無諍地]에 살도록 한다네.

 

      만약 커다란 싸움터가 있다면
      병력을 고르게 나누고 나서
      보살은 위세(威勢)를 나타내
      항복받아 화평하고 편안하게 한다네.

 

      모든 국토 안에 있는
      온갖 지옥까지도
      서슴없이 찾아가 그곳에 이르러
      힘써 그곳의 고뇌를 구제한다네.

 

      모든 국토 안에서
      모든 축생들이 서로 물고 뜯으면
      보살은 그곳에 태어나
      그들 모두에게 이익을 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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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 121] 쪽

      5욕의 몸을 받는 것처럼 보여 주어도
      마음은 선정을 닦아 안온한 모습 보이고
      마군이 찾아와 마음을 어지럽히려 해도
      아무런 힘을 미치지 못하네.

 

      불꽃 속에 연꽃을 피운다는 것은
      매우 드물고 힘든 일일세.
      욕정이 있으면서 선을 닦는 것도
      이같이 매우 드물고 힘든 일이네.

 

      어느 때는 음탕한 여인이 되어
      온갖 호색한[好色者]을 유인해다가
      욕정의 갈고리로 끌어들여서
      다음에 불도(佛道)에 들게 한다네.

 

      어느 때는 마을의 읍장이 되고,
      혹은 상인을 이끌며
      국사(國師)와 대신이 되어
      중생을 복되고 이롭게 하네.

 

      모든 빈궁한 자에게는
      무진장한 곳간이 되어서
      그들에게 베풀고 이끌어
      깨달음을 구하는 마음을 내게 하네.

 

      아상이 강해 교만한 자에게는
      대역사(大力士)로 나타나
      갖가지 뽐내고 교만한 마음을 굴복시켜
    위없는 길[無上道]에 머물게 한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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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 121] 쪽

      공포와 두려움에 떠는 무리가 있으면
      그들 앞에 나타나 위로하고 안심시켜서
      두려움이 없는 마음을 베풀어 주고
      마침내 도심을 일으키게 한다네.

 

      어느 때는 음욕을 떠나
      다섯 가지 신통력을 가진 선인(仙人)이 되어
      모든 중생을 이끌어
      계율과 인욕과 자비로움에 머물게 하네.

 

      공양을 구하는 자를 보면
      그를 위하여 종이나 심부름꾼이 되고
      그 마음을 기쁘게 하여
      도심을 일으키도록 한다네.

 

      사람이 구하는 것에 따라서
      얻게 해 불도에 이끌어 들이고
      뛰어난 방편의 힘으로
      모든 것을 풍족히 마련해 준다네.

 

      이와 같이 도는 무량하여서
      행하는 것도 끝이 없으며
      지혜는 또한 끝없이 무한하여서
      무수한 중생을 해탈케 한다네.

 

      가령 일체의 부처가
      무량억겁에 걸쳐
      그 공덕을 찬탄한다 해도
      결코 다할 수 없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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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 121] 쪽

      그 어느 누가 이 같은 법을 들은 자라면
      깨달음을 구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으랴.
      다만 저 어리석고
    무지한 사람을 제외하고서.

 

 

7. 관중생품(觀衆生品)

      그 때 문수사리가 유마힐에게 물었다.
      "보살은 중생을 어떻게 관해야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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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 121] 쪽

      유마힐이 대답하였다.
            "예를 들면, 마술사[幻師, mykra]가 마술로써 만들어 낸 꼭두각시를 보는 것과 같이, 보살은 중생을 이처럼 보아야 합니다. (보살은) 지혜로운 사람

이 물에 비친 달 그림자를 보는 것처럼, 거울 속의 자기 얼굴을 보는 것처럼, 뜨거운 여름날[熱時]의 아지랑이처럼, (사람을) 부르는 소리에 (답하는) 메아리처럼, 하늘에 뜬구름처럼, 파도의 물보라처럼, 물에 뜬 거품처럼, 파초(芭蕉)의 단단한 줄기처럼, 오랫동안 머무르는 (일이 없는) 번갯불처럼,14)(地·水·火·風의 4大 외에) 제5대(第五大)처럼, 

            15)(色·受·想·行·識의 5陰 외에) 제6음(第

六陰)처럼, (6識이 일으키는 6情 외에) 제7정(第七情)처럼, (12入處) 외에 제13입(第十三入)처럼, (18界 외에) 제19계(第十九界)처럼 이와 같이 중생을 보아야 합니다. 무색계(無色界)의 물질[色]을 보듯이, 불탄 곡식[燋穀]의 싹과 같이, (身見을 끊은) 수다원(須陀洹)이 신견(身見)을 갖는 것처럼, (다시는 胎를 통하여 태어나지 않는) 아나함(阿那含)이 다시 태에 들어 생을 받음과 같이, (貪·瞋·痴의 3독을 모두 끊어 버린) 아라한이 갖는 3독(毒)과 같이, 진리를 깨달은 경계에 안주[得忍]하는 보살이 탐욕과 성냄과 계율을 범하고자 함과 같이, 부처님께 남아 있는 번뇌의 습기[餘習]와 같이, 장님이 형상[色]을 보는 것과 같이, 마음의 작용이 이미 다한 경지[滅盡定]에 든 사람의 호흡(呼吸)과 같이, 공중을 날아간 새의 자취와 같이, 석녀(石女)가 낳은 아이와 같이, 꼭두각시[化人]가 일으키는 번뇌와 같이, 이미 잠에서 깨어나 생각해 보는 꿈과 같이, 열반[滅度]에 든 자가 다시 몸을 받는 것과 같이, 연기(煙氣) 없는 불과 같이, 보살은 이와 같이 중생을 보아야 합니다."

 

      문수사리가 물었다.
      "만약 보살이 이와 같이 (중생을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관한다면, 어떻게 자(慈, maitr)를 행할 수 있습니까?"

 

      14) 나집은 "여전구주(如電久住)"라고 번역했고, 현장 역에는 이 비유가 없고, 티베트 역에는 이 다음의 "제6음(第六陰)," 그 다음의 "제13입(第十三入)," "제19계(第十九界)"가 없다. 그러나 반대로 현장과 티베트 역에는 나집 역에 없는 "거북의 털로 만든 의복(衣服)," "젊어서 죽은 사람의 정욕(情欲)의 즐거움" 등이 있다.
    15) 만물의 구성 요소는 지(地)·수(水)·화(火)·풍(風)의 4대뿐이고, 다섯 번째로 존재하는 원소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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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 121] 쪽

      유마힐이 대답하였다.
            "보살은 이와 같이 관을 하고 나서 스스로 다짐합니다. 나는 마땅히 중생을 위하여 이와 같은 가르침[法]을 설할 것이니, 이것이 진실한 자(慈)입니다. 열반의 경지[寂滅]에서 자를 실천해야 할 것이니, (보살에게는) 이미 생하는 일이 없기 때문이며, 번뇌의 불에 타지 않는 자를 실천해야 할 것이니, (보살에게는) 번뇌가 없기 때문이며, 평등한 자를 실천해야 할 것이니, (보살에게는) 과거·현재·미래의 3세가 없기 때문이며, 다툼이 없는 자를 실

천해야 할 것이니, (보살에게는 다툼이) 일어날 곳이 없기 때문이며, 차별이 없는[不二, advaya] 자를 실천해야 할 것이니, (보살에게는) 안팎에 얽매임이 없기[內外不合] 때문이며, 무너지지 않는[不壞] 자를 실천해야 할 것이니, 필경에 가서는 다하기 때문이며, 견고한 자를 실천해야 할 것이니, 그 마음이 깨질 수 없기 때문이며, 청정한 자를 실천해야 할 것이니, 제법(諸法)의 자성이 청정하기 때문이며, 끝이 없는 자를 실천해야 할 것이니, (보살의 마음이) 허공처럼 끝없기 때문이며, 아라한의 자를 실천해야 할 것이니, 번뇌라고 하는 도적[結賊]을 물리치기 때문이며, 보살의 자를 실천해야 할 것이니, 중생을 편안하게 하기 때문이며, 여래의 자를 실천해야 할 것이니, (제법의) 진실한 모습[如相]을 얻었기 때문이며, 부처님의 자를 실천해야 할 것이니, 중생들을 깨닫게 하기 때문이며, 자연(自然, svarasamaya)의 자를 실천해야 할 것이니, 인연이 없이 스스로 깨달았기[無因得] 때문이며, 보리의 자를 실천해야 할 것이니, 평등하여 일미(一味)이기 때문이며, 모든 것을 초월한[無等, anropa] 자를 실천해야 할 것이니, 온갖 애욕을 끊어 버렸기 때문이며, 대비(大悲)의 자를 실천해야 할 것이니, 대승으로 인도하기 때문이며, 싫증내지 않는[無厭] 자를 실천해야 할 것이니, 공(空)과 무아(無我)를 관하기 때문이며, 진리를 베푸는[法施] 자를 실천해야 할 것이니, 남겨 두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기 때문이며, 계를 지키는[持戒] 자를 실천해야 할 것이니, 계율을 범한 이[毁禁]들을 교화하기 때문이며, 인욕(忍辱)하는 자를 실천해야 할 것이니, 나와 남을 지켜 주기 때문이며, 정진(精進)하는 자를 실천해야 할 것이니, 중생들의 무거운 짐을 져 주기 때문이며, 선정(禪定)하는 자를 실천해야 할 것이니, 감각적인 기쁨[味]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며, 지혜(智慧)로운 자를 실천해야 할 것이니, (교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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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는) 올바른 때를 모르는 일이 없기 때문이며, 방편(方便)을 갖춘 자를 실천해야 할 것이니, 모든 것을 나타내 보여 주기 때문이며, 숨김이 없는[無隱] 자를 실천해야 할 것이니, 올곧은 마음[直心]은 청정하기 때문이며, 깊은 마음[深心]으로 자를 실천해야 할 것이니, 잡되게 행함이 없기 때문이며, 속임수 없는[無誑] 자를 실천해야 할 것이니, 헛되거나 거짓되지 않기 때문이며, 안락(安樂, sukha)한 자를 실천해야 할 것이니, 부처님의 행복을

얻도록 해 주기 때문입니다. 보살의 자는 이와 같아야 합니다."

      문수사리가 또 물었다.
      "무엇을 비(悲, karu)라고 합니까?"
      유마힐이 대답하였다.
      "보살이 지은 공덕을 모든 중생과 함께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희(喜, mudit)라고 합니까?"
      "이익을 얻으면 그것을 마음으로부터 기뻐하며 후회하지 않는 것입니다."

 

      "무엇을 사(捨, upeka)16)라고 합니까"
      "복을 지어 도와주지만 바라지 않는 것입니다."

 

      문수사리가 또 물었다.
      "생사에 두려움이 있는 보살은 무엇에 의지해야만 합니까?"
      유마힐이 대답하였다.
      "보살이 생사의 두려움에 있을 때에는 여래의 공덕의 힘에 의지해야만 합니다."

 

      문수사리가 또 물었다.
      "보살이 부처님의 공덕의 힘에 의지하고자 할 때에는 어디에 머물러야만 합니까?"
      유마힐이 대답하였다.
      "보살이 여래의 공덕의 힘에 의지하고자 할 때 마땅히 모든 중생을 제도하여 해탈시키는[度脫] 일에 머물러야 합니다."

16) 모든 차별을 버린 마음의 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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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물었다.

      "중생을 제도하고자 한다면 마땅히 무엇을 제거해야 합니까?"
      답하였다.
      "중생을 구하고자 한다면 마땅히 그 번뇌를 제거해야 합니다."

 

      "번뇌를 제거하고자 하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올바른 마음을 내어야[正念] 합니다."

 

      "어떻게 하면 올바른 마음을 쓸 수 있습니까?"
      "마땅히 생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도록 마음을 써야[行] 합니다."

 

      "어떠한 것을 생하지 않게 하고, 어떠한 것을 멸하지도 않게 해야 합니까?"
      "불선(不善)은 생하지 않게 하고, 선법(善法)은 멸하지 않게 해야 합니다."

 

      "선과 불선은 무엇을 근본으로 합니까?"
      "몸[身, kya]을 근본으로 합니다."

 

      "몸은 무엇을 근본으로 합니까?"
      "욕심과 탐심을 근본으로 합니다."

 

      "욕심과 탐심은 무엇을 근본으로 합니까?"
      "허망한 분별을 근본으로 합니다."

 

      "허망한 분별은 무엇을 근본으로 합니까?"
      "도리에 어긋난 그릇된 생각[顚倒想]을 근본으로 합니다."

 

      "도리에 어긋나는 그릇된 생각은 무엇을 근본으로 합니까?"
      "의지하는 곳이 없는 상태[無住]17)를 근본으로 합니다."

 

      "의지하는 곳이 없는 상태는 무엇을 근본으로 합니까?"
      "의지하는 곳이 없는 상태는 근본이 없습니다. 문수사리여, 이 의지하는 곳이 없는 상태가 근본이 되어 모든 법(法)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 때 유마힐의 방안에는 한 천녀(天女)가 있어서 여러 보살들이 설법하는 것을 보고 듣고서 그녀는 곧 몸을 나타내 하늘 꽃을 보살들과 (부처님의) 대제자들 위에 뿌렸다. 보살들 위에 뿌려진 꽃은 땅에 떨어져 버렸지만, 대제자들 위에 뿌려진 꽃은 그들의 몸에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모든 제자들은 신통력으로 꽃을 떼어내 버리려 하였으나 떼어내지 못하였다.

 

      17) 현장은 '무주(無住),' '무소주(無所住),' 티베트 역에서는 '의지하는 곳이 없는 것'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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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때 천녀가 사리불에게 물었다.
      "왜 꽃을 떼내려고 하십니까?"
      사리불이 대답하였다.
            "이 꽃은 법답지[如法, yogya]18)

못하므로 떼내 버리려 합니다.

 

      천녀가 말하였다.
            "이 꽃을 법답지 못하다고 하지 마십시오. 왜냐 하면, 이 꽃은 아무런 분별을 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이 스스로 분별하는 마음을 일으킨 것일 뿐입니다. 만약 부처님의 가르침[法]을 받들어 출가하고서 분별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법답지 않은 것입니다. 만약 분별을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법다운 것입니다. 저 보살들을 보시오. 꽃이 달라붙지 않는 것은 이미 분별하는 마음[分別想]을 끊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비유하자면, 마치 어떤 사람이 두려운

마음을 지니고 있을 때에 비인(非人)에 홀리기 쉬운 것과 같이, 제자들은 생사를 두려워하고 있으므로 빛깔[色]과 소리[聲], 냄새[香], 맛[味], 감촉[觸] 등으로 홀리는 것입니다. 이미 두려움에서 벗어난 사람에게는 5욕 등이 전혀 힘을 미치지 못합니다. 번뇌의 습기[結習]가 아직 다하지 않았으므로 꽃이 몸에 달라붙은 것뿐입니다. 번뇌의 습기가 없어진 이는 꽃이 달라붙지 않습니다."

 

      사리불이 말했다.
      "그대 천녀는 이 방에 머무른 지 오래되었습니까?"
      천녀가 답했다.
      "제가 이 방에 머문 것은 고덕[耆年]19)께서 해탈(解脫)하신 것만큼 오래되었습니다.

 

      18) 출가자가 지키도록 지어진 계율로, 예를 들면 사미(沙彌)는 그 10계(戒) 중에 향을 바르거나 장신구(裝身具)를 몸에 붙이지 못하게 되어 있어서 꽃이 몸에 붙어 있는 것은 출가가의 계율을 어기는 결과가 된다.
      19) 천녀가 사리불을 부를 때의 호칭은 기년(耆年), 기구(耆舊)이다. 티베트 역에서는 사리불 앞에 반드시 '존자(尊者)'를 붙여 존칭을 쓰고 있다. 여기에서는 불도수행에 오랜 세월을 정진하여 지혜와 학덕이 높은 출가자라는 뜻으로 '고덕(古德)'이라고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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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리불이 말했다.

    "여기에 오래도록 머물렀습니까?"
      천녀가 답했다.
      "고덕이 해탈하신 것도 얼마나 오래되셨습니까?"
        사리불은 묵묵히 대답하지 않았다.

    천녀가 말하였다.

      "웬일로 고덕(古德)의 뛰어난 지혜를 지니고 계시면서 침묵하십니까?"
      사리불이 답했다.
      "해탈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기 때문에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천녀가 말하였다.
            "말씀[言說]과 문자(文字)야말로 모두가 해탈의 모습입니다. 왜냐 하면, 해탈이라고 하는 것은 마음 안이나, 마음 밖이나, 또 그 사이에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문자도 이와 같아서 안20)에도 밖21)에도, 또 안과 밖의 중간22)에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고덕이시여, 문자를 떠나서는 해탈을 말하지 마십시오. 왜냐 하면, 모든 것[法]은 그대로가 해탈의 모습

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리불은 말하였다.
      "그러나 탐심[]과 성냄[怒]과 어리석음[癡]을 떠나는 것을 해탈이라 하지 않습니까?"

 

      천녀가 말했다.
      "부처님께서는 증상만(增上慢)에 사로잡힌 이들23)을 위해서만 탐심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떠나는 것이 해탈이라고 설하셨을 뿐입니다. 만약 증상만이 없는 사람이라면 탐심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자성이 곧 그대로 해탈이라고 하셨습니다.

 

      사리불이 말했다.
      "참으로 훌륭합니다. 천녀여, 그대는 무엇을 얻고 무엇을 깨달았기에 그와 같이 훌륭히 설할 수가 있게 되었습니까?"

 

      20) 언설문자(言說文字)를 입에 담는 사람이다.
      21) 설(說)해지는 그 내용이다.
      22) 전달의 매개체인 음성(音聲)이다.
      23) 깨닫지 못하였으면서도 깨달았다고 하는 교만한 마음을 지닌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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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녀가 대답했다.
      "저는 아무것도 얻은 것이 없고, 깨달은 것도 없기 때문에 이와 같이 말하는 것입니다. 왜냐 하면, 무엇을 얻었다든가 깨달았다고 하는 사람은 부처님의 가르침에서는 증상만에 사로잡힌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사리불이 천녀에게 물었다.
      "그대는 세 가지 가르침[三乘] 가운데 어느 것에 뜻을 두고 있습니까?"
      천녀가 대답하였다.
      "저는 성문법(聲聞法)으로 중생을 교화하므로 성문(聲聞)이며, 인연법(因緣法)으로 중생을 교화하므로 벽지불(辟支佛)이기도 하며, 대비법(大悲法)으로 중생을 교화하므로 대승(大乘)이기도 합니다.
      사리불이여, 첨복(瞻蔔, Campaka)24)의 숲에 들어가면, 오직 첨복의 냄새만을 맡을 뿐, 다른 냄새를 맡을 수가 없습니다. 이와 같이 만약 이 방안에 들어오면 오직 부처님의 공덕의 향기를 맡을 뿐, 성문이나 벽지불의 공덕의 향기를 좋아하지 않게 됩니다.
            사리불이여, 대체로 제석천이나 범천, 사천왕, 온갖 천신들, 용(龍), 귀신일지라도 이 방안에 들어온 자는 (유마힐이라고 하는) 훌륭한 분[上人]이 설하는 정법을 듣고, 모두가 부처님 공덕의 향기를 좋아하며 깨달음을 구하는 마음을 일으킨 다음에 나가게 됩니다. 사리불이여, 저는 이 방에 머문 지가 이미 12년이 되었습니다. 처음부터 성문, 벽지불의 법을 설하는 것을 듣지 않고, 오직 보살의 대자대비(大慈大悲)와 불가사의한 제불(諸佛)의 가르침만

을 들어 왔습니다.

            사리불님, 이 방에는 항상 일찍이 한 번도 없었고[未曾有], 있기 어려운 일[難得之法] 여덟 가지가 나타났는데, 무엇이 여덟 가지인가 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는, 이 방은 항상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어 밤과 낮의 차이가 없으며, 태양과 달의 빛도 더 밝지 못한 것입니다. 이것이 첫 번째 전에 없던 일입니다. 또 이 방에 들어온 사람은 온갖 번뇌에 괴로워하는 일이 없습니다. 이것이 두 번째 전에 없던 일입니다. 이 방에는 항상 제석천[釋],

범천[梵], 사천왕천(四天王天),

 

      24) 황금색의 꽃을 피우는 식물로 향기가 좋고, 껍질과 잎과 꽃에서 향료를 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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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타방(他方)의 보살들이 모여 와서 끊이질 않습니다. 이것이 세 번째 전에 없던 일입니다. 이 방에는 항상 6바라밀과 불퇴전(不退轉)의 법이 설해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네 번째 전에 없던 일입니다. 또 이 방에서는 항상 천상과 인간[天人]의 가장 훌륭한 음악이 연주되고, 가야금의 줄에서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가르침과 교화하는 소리가 들리고 있습니다. 이것이 다섯 번째 전에 없던 일입니다. 이 방에는 네 개의 커다란 창고가

있어서 온갖 보배가 가득 차 있어서 가난으로 괴로움을 당하고 있는 이들에게 전부를 베풀어 주지만 그 바닥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이것이 여섯 번째 전에 없던 일입니다. 이 방에서는, 석가모니불·아미타불·아촉불(阿佛, Akobhya)25)·보덕(寶德)·보염(寶炎)·보월(寶月)·보엄(寶嚴)·난승(難勝)·사자향(獅子響)·일체리성(一切利成)26)등 시방의 헤아릴 수 없는 많은 부처님을 이 훌륭한 분[上人 : 유마힐]이 염(念)하기만 하면 곧 나타나 제불의 비밀한 가르침[秘要法藏]을 설하고 돌아갑니다. 이것이 일곱 번째 전에 없던 일입니다. 이 방에는 제천의 엄숙하게 장식된 궁전이나 제불의 정토(淨土)가 모두 나타납니다. 이것이 여덟 번째 전에 없던 일입니다.

        사리불이여, 이 방에는 항상 여덟 가지 전에 없던 일들이 나타나 있습니다. 이 같은 불가사의한 일을 보면서도 누가 성문의 법 따위를 좋아하고 바라겠습니까?"

   사리불이 말했다.

      "그대는 왜 여인의 몸을 바꾸지 않습니까?"

 

      천녀가 대답했다.
      "저는 지난 12년 동안 (변치 않는) 여인의 상(相)을 찾아보았지만 찾아낼 수가 없었는데, 무엇을 바꾼단 말입니까? 비유하자면 마치 마술사가 마술로 허깨비 여인을 만들어 내는 것과 같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허깨비에게 '왜 여인의 몸을 바꾸지 않는가?'고 묻는다면, 이 사람의 물음이 옳은 것일까요?"
      사리불이 대답하였다.

 

      25) 무동(無動) 혹은 무동불(無動佛)이라 번역. 노(怒)와 음욕(淫欲)을 끊고서 서원하여 부처가 되었다. 정토(淨土)의 해화불(解化佛).
      26) 모든 중생을 이롭게 하는 부처님의 다른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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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니지요. 허깨비에게는 정해진 상[定相]이 없는데 바꿀 필요가 어디 있겠습니까?"
      천녀가 말하였다.
      "일체제법도 이와 같아서 정해진 상이 없습니다. 그런데 왜 여인의 몸을 바꾸지 않느냐고 물으십니까?"
      천녀는 즉시에 신통력으로 사리불을 천녀와 같이 바꾸고, 천녀 자신은 사리불과 같은 모습으로 몸을 바꾸고 물었다.
      "왜 여인의 몸을 바꾸지 않으십니까?"

 

      사리불이 천녀의 모습을 하고 답하였다.
      "나는 지금 어떻게 여인의 몸으로 바뀌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천녀가 말하였다.
      "사리불이여, 만약 당신께서 그 여인의 몸을 바꿀 수가 있게 되면 모든 여인들도 몸을 바꿀 수가 있게 됩니다. 사리불께서 여인이 아니지만 여인의 몸을 나타내고 있는 것과 같이, 모든 여인들도 이와 같아서 여인의 몸을 나타내고 있지만 여인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는 일체제법은 '남자도 아니며 여자도 아니다'고 설하신 것입니다."

 

      천녀는 곧 신통력을 거두어들였다. 그러자 사리불의 몸은 본래와 같이 되었다. 천녀는 사리불에게 물었다.
      "여인의 몸의 특성[女身色相]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사리불이 답하였다.
      "여인의 몸은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닙니다."27)

 

      천녀가 말하였다.
      "일체제법도 그와 같아서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닙니다. 그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라는 것은 부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사리불이 천녀에게 물었다.
      "그대는 이곳에서 죽으면 어디에 가서 태어날 것입니까?"

 

      천녀가 말하였다.

 

      27) 티베트 본에서는 "여인의 몸의 특징은 만들어지지도(krta) 않았고, 변해지지도(vikrta) 않았습니다"고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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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 121] 쪽

      "부처님께서 화신(化身, nirma)으로 태어나시는 곳에 저도 같이 태어날 것입니다."

 

      사리불이 말하였다.
      "부처님께서 화신으로 태어나시는 것은 죽어서 태어나는 것이 아니지요."

 

      천녀가 말하였다.
      "중생도 그와 같아서 죽어서 태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사리불이 천녀에게 물었다.
      "그대는 앞으로 얼마만큼 지나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耨多羅三藐三菩提)를 얻게 됩니까?"

 

      천녀가 말하였다.
      "만약 사리불님께서 다시 태어나 범부로 되돌아간다면, 그 때 저는 아뇩다라삼먁보리를 얻게 될 것입니다."

 

      사리불이 말하였다.
      "내가 또다시 범부로 되돌아가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천녀가 말하였다.
      "제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 일도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니, 왜냐 하면 깨달음[菩提]에는 머무를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깨달음을) 얻는다는 것도 없습니다."

 

      사리불이 말하였다.
      "현재에 제불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고, 과거에 이미 얻은 부처님과 앞으로 얻을 부처님이 항하의 모래알과 같이 많은데, 이것은 도대체 무슨 말입니까?"

 

      천녀가 말하였다.
      "이것은 모두 세속에서 쓰이고 있는 문자와 이치[數]를 빌렸기 때문에 과거, 현재, 미래(의 부처가 있음)을 설하였을 뿐, 깨달음에 과거, 현재, 미래가 있다고 한 것은 아닙니다."

 

      천녀는 물었다.
      "사리불이여, 당신은 아라한과[羅漢道]를 얻었습니까?"

 

      사리불이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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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 121] 쪽

      "아무런 얻을 만한 것도 없으므로[無所得] 얻었습니다."

 

      천녀는 말하였다.
      "제불 보살님도 그와 같이 얻을 만한 것이 없기 때문에 얻은 것입니다."

 

      그 때 유마힐이 사리불에게 말하였다.
      "이 천녀는 지금까지 92억의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고 나서 이미 보살의 신통력을 마음대로 쓰면서 소원을 모두 이루고[具足], 무생법인[無生忍]을 얻었고, 이미 물러섬이 없는 경지[不退轉]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 본원력(本願力) 때문에 마음대로 모습을 나타내어 중생을 교화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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