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뱅이굿」은 원래 조선평안도 지방에서 창극으로 유행하였는데 19세기 말엽에 서도 소리꾼들 사이에서 오랜 구전 설화에 기초하여 창작된 것이다. 당시 평양을 중심으로 하여 활동하던 서도 명창인 김관준은 용강 일대에서 명창으로 소문났던 계장화로부터 전수받아 그 내용과 가락들을 보충하고 다듬어서 창극으로서의 「배뱅이굿」을 완성하였다.
이 작품은 김관준의 제자이며 평양의 이름난 소리꾼들인 최배뱅이로 불리운 최순경, 김배뱅이로 불리운 김종조, 평안북도의 유명한 소리꾼인 정배뱅이 등에 의하여 서도 지방에 널리 퍼지게 되다가 20세기 초에 중국 조선족의 이주와 더불어 연변 지역을 중심으로 한 조선족 거주 지역에 전해지게 되었다.
「배뱅이굿」은 창사에 나오는 박수 무당의 형상을 통하여 부패하고 무능한 양반들을 저주하고 풍자하고 있다. 「배뱅이굿」은 인형극, 가면극으로부터 창극으로 발전해 왔으며 불교도들의 불경, 무당들의 굿놀이, 당시의 생활 풍속과 세태 등을 아주 섬세하게 묘사한 것이 특징이다.
구성 및 형식
「배뱅이굿」의 예술적 특징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해학적 방법으로 관통하고 있다는 점이다. 작품은 실현할 수 없는 배뱅이 사랑의 비극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비판 대상에 대한 조소를 작품의 주요한 예술수단으로 삼았다. 이로써 사건 엮음과 개성적인 인물 창조, 음악적인 운율과 절주가 더욱 두드러지게 만들고 있다.
「배뱅이굿」은 한 개인이 창작한 대본이 아니라 순전히 평안도 인민들에 의하여 집단적으로 창작된 작품으로서 음악적으로는 서도 민요의 「산념불」과 「엮음수심가」조와 결합되어 있다. 그것은 말과 노래, 춤과 행동을 배합시켜 혼자서 공연할 수 있는 예술 형태를 갖고 있다. 해학적이고 풍자적이며 폭로적이고 희극적인 요소를 가진 이 작품은 강한 극적 갈등을 통하여 소박한 비판적 사실주의를 보여주고 있다.
「배뱅이굿」은 판소리 음악 형태로 중국 조선족 사이에 전해졌는데 주요한 소리 단락으로는 ‘어화둥둥 내사랑아’, ‘팔도 무당의 굿’, ‘배뱅이 이제 왔나이다’, ‘박수무당 떠나간다’ 등으로서 「긴 염불」, 「잦은 염불」, 「황해도 배노래」, 「사설 난봉가」, 「어랑 타령」, 「강원도 아리랑」, 「창부 타령」, 「장타령」 등 민요 가락으로 소리를 이루었고 선율은 성태형으로 이루어지고 조식은 평조로 구성되었으며 자진모리 장단이 쓰이고 있다.
내용
「배뱅이굿」의 창사 내용을 개괄해 보면 다음과 같다. 옛날 서울 장안에 사는 리정승, 김정승, 최정승이 재산은 많으나 슬하에 일점 혈육이 없어 그 부인들이 명산대찰을 찾아가 아들딸을 낳아달라고 백일 기도를 드렸다. 과연 세 부인은 돌아오자 그날부터 태기가 있어 열 달 만에 모두 딸을 낳았다. 이정승의 딸 이름은 세월이요, 김정승의 딸 이름은 네월인데 최정승의 딸 이름은 백발 노인한테서 달비 한 쌍을 받아 치마폭에 배배틀어 싼 꿈을 꾸고 낳았다하여 ‘배뱅이’이라고 지었다. 배뱅이가 처녀로 자라니 최정승집은 예장감을 받고 딸을 약혼시켰다.
바로 이때 배뱅이는 동냥을 왔던 중과 연분이 들었다. 그 중은 절간으로 돌아가자 배뱅이는 상사병에 걸려 앓아 눕게 되었다. 중들이 이 사연을 알게 되어 계책을 꾸며가지고 싸리나무채 독을 걸어 그 속에 중을 넣어 배뱅이집 방구석에 감춰 두었다. 이리하여 그 중은 낮이면 채독 속에 숨고 밤이면 나와서 배뱅이와 사랑을 주고받았다. 그러다가 그 중이 황해도로 떠나 가서 소식이 없게 되니 배뱅이가 남몰래 그리워 하다가 앓아눕게 되고 나중에 죽고 말았다. 최정승네는 조선 팔도 무당을 죄다 불러들여 굿을 하였으나 어느 누구도 배뱅이 혼을 불러오지 못하였다.
바로 이때 파산한 사나이가 방랑을 하다가 술집 할멈한테서 배뱅이의 내막을 알아가지고 가서 가짜 박수 무당으로 자칭하고 최정승네의 예장감을 가져간다. 최정승과 그의 부인은 배뱅이 혼이 왔다고 울고불고했지만 방랑객 사나이는 신세를 고치고 좋아서 춤을 추며 돌아간다.
장동운이 정리한 민간 서사시 「배뱅이굿」은 서두까지 포함해서 모두 15개 부분으로 구성되었으며 4.4조 운문의 형식을 하고 있다.
서도소리는 황해도와 평안도 지방(서도지역)에서 전승되던 민요나 잡가 등을 말하며, 언제부터 부르기 시작하였는지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다. 서도소리는 평안도 민요와 황해도 민요, 서도잡가, 한시를 읊은 시창(詩唱)과 극적 구성을 띠고 있는 배뱅이굿이 있다.
평안도 민요에는 수심가, 엮음수심가, 긴아리, 자진아리, 안주애원성 등이 있는데, 조선 전기부터 서도지방 사람들의 벼슬길이 막히자 그 설움을 푸념으로 읊은 수심가가 가장 유명하다. 평안도 소리는 일반적으로 레, 미, 솔, 라, 도의 다섯 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떠는 음인 ‘라’에서 완전 5도 내려가는 것으로 선율의 골격을 이루고 있다. 대체로 사설이 길며 장단도 일정하지 않아 적당히 사설에 맞추어 치는 것이 특징이다.
황해도 민요에는 긴난봉가, 자진난봉가, 병신난봉가, 사설난봉가, 산염불, 자진염불, 몽금포타령 등이 있는데 난봉가와 산염불이 유명하다. 황해도 소리는 평안도 소리와 함께 서도소리의 일반적인 선율형태를 나타내고 있으나 그 선율진행에 있어서는 조금 다르다. 또한 평안도 민요에 비하여 일정한 장단을 가지고 있으며, 밝고 서정적이다.
서도잡가는 서도입창에 반대되는 말로서 앉아서 부르는 소리이며, 공명가, 사설공명가, 초한가, 제전, 추풍감별곡 등이 있는데 이 중 공명가가 유명하다. 서도잡가는 긴 사설을 가지고 있으며, 장단은 노래말의 자수에 따라 불규칙적이다. 끝을 여밀 때는 반드시 수심가조로 끝나는 공통점이 있다.
서도소리의 가락은 흔히 수심가토리라고 하여 대개 위에서부터 질러내며, 위의 음은 흘려 내리고, 가운데 음은 심하게 떨며, 아래의 음은 곧게 뻗는 특이한 선율 진행을 보여주고 있어서 이들 소리를 느긋하게 부르면 구슬픈 느낌을 주게 된다. 서도소리 창법은 좀 특이한데 속청과 본청이 있어서 속청은 속소리로 당겨서 직선타법으로 잘게 떠는 소리, 본청 같은 경우 두성과 뒷덜미로 당겨서 음을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서도소리는 예로부터 대륙과 인접한 거친 풍토에서 북방 이민족과 함께 겨루며 굳세게 살아온 서도지방민들의 생활속에서 면면이 이어져 내려온 소리로, 노랫가락에도 그들의 생활감정이 잘 드러나 있다.
현재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세부 기·예능에는 수심가, 관산융마, 배뱅이굿이 있다. 배뱅이굿은 흔히 남도의 판소리와 비교되는 음악으로, 한 사람의 소리꾼이 장구 반주에 맞춰 배뱅이 이야기를 서도의 기본 음악 어법을 바탕으로 민요와 무가, 재담 등을 섞어 해학적으로 엮어낸다.
작품 대부분이 지은이·연대 미상이나 이 중의 「어부사(漁父詞)」만은 이현보(李賢輔)가 개작한 것이다. 「수양산가(首陽山歌)」·「처사가(處士歌)」·「백구사(白鷗詞)」·「죽지사(竹枝詞)」·「춘면곡(春眠曲)」·「상사별곡(相思別曲)」·「어부사」·「행군악(行軍樂)」·「황계사(黃鷄詞)」·「권주가(勸酒歌)」·「양양가(襄陽歌)」·「매화타령(梅花打令)」을 말한다.
조선 중종 이후 선조 사이에 무르익어 향토적인 가락에 옮겨진 것으로 점잖고 유장한 맛이 있으며, 풍류적인 서정을 담고 있다. 이것은 정격(正格)과 변격(變格)의 두 형태로 구분되며, 십이잡가(十二雜歌)와 다른 점은 내용보다 창조(唱調)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