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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 전문

대학장구(大學章句) 대학장구서(大學章句序) 주희(朱熹) 1. 『대학』이 지향하는 인간론과 교육론 군주와 스승은 하늘이 명령한 직분이다 『大學』之序, 古之大學, 所以敎人之法也. 蓋自天降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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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장구(大學章句)

 

대학장구서(大學章句序)

ㅡ 주희(朱熹)

1. 『대학』이 지향하는 인간론과 교육론

군주와 스승은 하늘이 명령한 직분이다

大學之序, 古之大學, 所以敎人之法也.

대학이란 책은 옛적 태학에서 사람을 가르친 방법이다.

蓋自天降生民, 則旣莫不與之以仁義禮智之性矣.

대체로 하늘이 백성을 내림으로부터 이미 인의예지의 본성이 그에게 부여하지 않음이 없었다.

然其氣質之稟, 或不能齊,

그러나 기질의 품수(稟受) 받은 것이 혹 일정할 순 없어서

是以, 不能皆有以知其性之所有而全之也.

이런 이유로 본성이 소유한 것을 알아 그것을 보전할 수 없었던 것이다.

一有聰明叡智能盡其性者出於其間,

그래서 한 명의 총명예지(聰明叡智)하여 본성을 극진히 한 사람이 그 사이에서 나오면

則天必命之以爲億兆1之君師,

하늘은 반드시 그에게 명령하여 온 백성의 군주와 스승으로 삼아

使之治而敎之, 以復其性,

그에게 다스리게 하거나 가르치게 하여 본성을 회복케 하니,

伏羲神農黃帝堯舜, 所以繼天立極,

이것이 복희씨와 신농씨와 황제와 요순이 하늘을 이은 법칙을 세우고

司徒之職, 典樂2之官, 所由設也.

사도의 직분과 전악의 관직을 설치한 까닭이다.

 

정치와 교육이 제자리를 잡아 활발했던 夏殷周

三代之隆, 其法寖備,

하은주(夏殷周) 세 시대가 융성해짐에 법이 점점 갖춰진 후에

然後王宮國都, 以及閭巷, 莫不有學.

임금의 궁궐과 수도에서 민가에 이르기까지 배움이 있지 않은 게 없었다.

人生八歲, 則自王公以下, 至於庶人之子弟,

사람이 태어나 8살이 되면 임금ㆍ고위관직자로부터 이하 서민의 자식에 이르기까지

皆入小學, 而敎之以灑掃應對進退之節,

모두 소학에 들어가게 하여 청소하는 법, 응대하는 법, 진퇴의 예절과

禮樂射御書數之文.

예절ㆍ음악ㆍ활쏘기ㆍ말타기ㆍ서예ㆍ셈하기의 육예(六藝)인 문학을 가르쳤다.

及其十有五年, 則自天子之元子衆子,

15살이 되면 천자의 맏아들과 뭇 아들로부터

以至公卿大夫元士之適子, 與凡民之俊秀,

공경과 대부, 원사의 적장자(嫡長子)와 백성의 준수한 이에 이르기까지

皆入大學, 而敎之以窮理正心修己治人之道.

모두 태학에 들어가게 하여 이치를 연구함ㆍ마음을 바로함ㆍ몸을 수련함ㆍ남을 다스림의 방법을 가르쳤다.

此又學校之敎, 大小之節, 所以分也.

이것이 또한 학교의 가르침에 대소의 절차가 나누어진 까닭이다.

夫以學校之設, 其廣如此;

학교의 개설에 광범위한 게 이와 같고

敎之之術, 其次第節目之詳又如此,

가르치는 기술에 차례와 요소의 상세한 게 이와 같지만,

而其所以爲敎, 則又皆本之人君躬行心得之餘,

가르치려는 이유는 또한 모두 임금이 몸으로 행동하고 마음에서 얻은 나머지에 근본을 두고

不待求之民生日用彛倫之外.

백성이 일상 생활하는 당연한 윤리의 바깥에서 구하길 기다리지 않았다.

是以當世之人, 無不學,

이런 이유로 당시 사람들이 배우지 않음이 없었고

其學焉者, 無不有以知其性分之所固有,

배운 사람은 성품과 분수의 고유한 것과

職分之所當爲而各俛焉, 以盡其力.

직분의 마땅히 행할 것을 알지 않음이 없어 각각 애쓰며 힘을 다했었다.

此古昔盛時, 所以治隆於上,

그러므로 옛적에 성대한 시절엔 다스림이 위에서 융성했었고

俗美於下, 而非後世之所能及也.

풍속이 아래에서 아름다웠으니 후세에는 미칠 수 없는 이유였던 것이다.

 

2. 공자-맹자로 이어진 흐름이 송나라에서 다시 이어져 『대학』이 출간되다

무너진 禮敎를 세운 공자의 고군분투

周之衰, 賢聖之君不作, 學校之政不修,

주나라가 쇠퇴하자 어질고 성스런 군주가 나오지 않고 학교의 정사(政事)가 닦이지 않아

敎化陵夷, 風俗頹敗.

교화가 침체되었고 미풍양속(美風良俗)이 퇴폐해졌다.

時則有若孔子之聖, 而不得君師之位,

이때엔 공자 같은 성인이라 해도 군주나 스승의 지위를 얻어

以行其政敎.

정치와 가르침을 행할 수 없었던 것이다.

於是獨取先王之法, 誦而傳之, 而詔後世,

이에 홀로 선왕의 법을 취하여 외워 전하며 후세를 가르쳤으니

若『曲禮』ㆍ『少儀』ㆍ『內則』ㆍ『弟子職』諸篇,

『곡례』와 『소의』와 『내칙』과 『제자직』의 여러 편은

小學之支流餘裔,

진실로 소학의 지류이며 남은 혈통으로

而此篇者則因小學之成功, 以著大學之明法,

이편들은 소학의 성공에 따라 대학의 밝은 법을 드러내

外有以極其規模之大, 而內有以盡其節目之詳者也.

밖으론 규모의 큼을 다했고 안으론 요소의 상세함을 다했다.

 

증자-맹자로 이어지는 유학의 흐름

三千之徒, 蓋莫不聞其說,

3000명의 무리가 대개 말씀을 듣지 않음이 없었지만

曾氏之傳, 獨得其宗.

증삼의 전함이 홀로 핵심을 얻었다.

於是作爲傳義, 以發其意, 及孟子沒, 而其傳泯焉.

이에 전한 뜻을 저술하여 뜻을 발명했지만 맹자가 죽자 전해진 게 사라져,

卽其書雖存, 而知者鮮矣.

곧 책은 비록 있더라도 아는 이는 드물게 된 것이다.

 

맹자 사후 정치와 교육은 무너져버리다

自是以來, 俗儒記誦詞章之習,

이때로부터 이래로 속된 유학자들의 기송(記誦)과 사장(詞章)의 익히는

其功倍於『小學』而無用;

공력이 『소학』보다 두 배임에도 무용했고

異端虛無寂滅之敎, 其高過於『大學』而無實,

이단인 허무한 노자와 적멸한 불교의 가르치는 원대함이 『대학』보다 지나침에도 무실했으며,

其他權謀術數, 一切以就功名之說, 與夫百家衆技之流,

기타 권모술수와 일체 공명에 나가는 말과 제자백가와 뭇 기술을 다른 부류들이

所以惑世誣民, 充塞仁義者,

세상을 미혹시키고 백성을 속임으로 인의를 막는 자들이

又紛然雜出乎其間.

또한 어지럽게 그 사이에서 잡스럽게 나왔다.

使其君子, 不幸而不得聞大道之要,

그러니 군주는 불행히도 대도의 요체를 들을 수 없었고

其小人不幸而不得蒙至治之澤,

소인도 불행히 지극한 다스림의 혜택을 입을 수 없어

晦盲否塞, 反覆沈痼,

어두워지고 막혀 반복적으로 지병이 되니

以及五季之衰而壞亂極矣.

오계의 쇠퇴함에 이르러선 무너지고 혼란스러움이 극심해졌다.

 

끊어진 흐름이 송나라에서 다시 이어지다

天運循環, 無往不復,

하늘의 운수가 순환하여 가면 돌아오지 않음이 없으니

德隆盛, 治敎休明.

송나라의 덕이 융성하여 다스림과 가르침이 아름답고 밝았다.

於是河南程氏兩夫子出, 而有以接乎孟氏之傳.

이에 하남 정씨인 두 선생이 나와 맹자의 전함을 접하게 되었다.

實始尊信此篇, 而表章之,

그래서 실제로 비로소 이 책을 존중하고 믿어 드러냈고

旣又爲之次其簡編, 發其歸趣.

이미 또한 이를 위해 죽간의 편들을 차례지어 말의 핵심을 발명했다.

然後古者大學敎人之法, 聖經賢傳之指,

그런 후에야 옛날에 태학에서 사람을 가르친 법과 성인의 경서(經書)와 현인의 전서(傳書)의 뜻이

粲然復明於世.

환하게 다시 세상에 밝아졌다.

雖以之不敏, 亦幸私淑而與有聞焉.

비록 내가 민첩하지 못하다 해도 또한 다행히 사숙했고 참여해서 들은 게 있었다.

顧其爲書猶頗放失,

고찰해보면 지어진 책이 오히려 매우 사라진 부분이 있기에

是以忘其固陋, 采而輯之,

이런 이유로 고루함을 잊은 채 모아 편집했고

間亦竊附己意, 補其闕略, 以俟後之君子.

간간이 또한 나의 의견을 덧붙여 빠진 부분을 보충했으니 뒷날의 군자를 기다리겠다.

極知僭踰無所逃罪, 然於國家化民成俗之意,

극도로 참람되어 도망갈 곳이 없다는 걸 알지만 국가의 백성을 교화하고 풍속을 이루는 뜻과

學者修己治人之方, 則未必無小補云.

학자가 수기치인(修己治人)하는 방법에 반드시 조금이나마 보탬이 없진 않으리라.

淳熙己酉二月甲子, 新安朱熹書1.

순희 기유(1189)년 2월 4일에 신안에 사는 주희가 쓰다.

 

 

대학집주장구대전(大學集註章句大全)

 

子程子曰:

정자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

“『大學』氏之遺書而初學入德之門也1.

“『대학』은 공자가 남긴 책으로 처음 배우는 이가 덕에 들어갈 수 있는 문과 같은 책이다.

於今可見古人爲學次第者,

지금 옛 사람의 학문하는 차례를 볼 수 있는 것은

獨賴此篇之存,

유독 『대학』, 이 한 편이 있음에 의지하며

而『』ㆍ『』次之.

『논어』와 『맹자』는 그 다음 차례가 된다.

學者必由是而學焉,

학자가 반드시 이런 차례에 따라 배운다면,

則庶乎其不差矣.

거의 틀림이 없으리라.

 

본문(本文)

경일장(經1章)

1. 삼강령(三綱領)

大學之道, 在明明德,

대학의 도는 밝은 덕을 밝히는 데 있으며,

大學者, 大人之學也.

대학(大學)이란 큰 이의 학문이다.

, 明之也.

() 그것을 밝힌다는 뜻이다.

明德者, 人之所得乎天而虛靈不昧以具衆理而應萬事者也.

명덕(明德)이란 것은 사람이 선천적으로 얻은 것으로 빈 듯하지만 꽉 차 어둡지 않고 밝아 모든 이치에 갖춰져 있으며 모든 일에 적절하게 반응한다.

但爲氣稟所拘, 人欲所蔽,

단지 기질이나 천품에 따라 구애받고 욕심에 따라 가려짐으로

則有時而昏.

어느 순간엔 (마치 없는 듯) 어두워지기도 한다.

然其本體之明, 則有未嘗息者.

그러나 본체의 밝음은 한 순간도 쉬지 않았다.

故學者當因其所發而遂明之,

그렇기 때문에 학자라면 마땅히 그 나오는 낌새로 인하여 마침내 본성을 밝힘으로

以復其初也.

처음의 허령불매(虛靈不昧)한 상태를 회복해야 한다.

 

在親民,

백성을 새롭게 하는 데 있으며,

程子: “, 當作新.”

정이천이 말했다. “()이란 글자는 마땅히 신()으로 써야 한다.”

 新者革其舊之謂也.

()이라는 것은 옛날의 묵은 것을 고친다는 뜻이다.

旣自明其明德,

이 말은 곧 이미 스스로 그 밝은 덕을 밝혀야 하며,

又當推以及人,

또 마땅히 그런 밝은 덕을 확충하여 남에게까지 이르게 함으로,

使之亦有以去其舊染之汚也.’

그들도 또한 묵은 악습을 제거하도록 해야 한다.’이란 말이다.

在止於至善.

지극한 선에 이르게 하는 데 있다.

止者必至於是而不遷之意.

()라는 것은 반드시 여기에 이르러 올바름을 유지한 채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至善則事理當然之極也.

지극한 선이란 사물과 이치의 당연함의 극치라 할 수 있다.

明明德新民,

이 말은 곧 밝은 덕을 밝히며 백성들을 새롭게 하여,

皆當止於至善之地而不遷.’

모두 마땅히 지극히 선한 의식적인 목표에 이르게 해야 한다.’는 말이니,

蓋必其有以盡夫天理之極, 而無一毫人欲之私也.

대개 반드시 천리의 극치를 다함으로 자그마한 인욕(人欲)의 사사로움이 조금도 없다는 것이다.

 

此三者, 大學之綱領也.

이 세 가지는 대학의 강령이다.

 

 

 

2. 지극한 선에 그칠 줄 아는 사람

知止而后有定,

지극한 선에 그칠 줄을 알아야만 심지가 안정되고,

止者所當止之地, 卽至善之所在也.

지(止)라는 것은 마땅히 그쳐야할 곳을 말하니, 지극한 선이 있는 곳이다.

 

知之則志有定向,

그것을 알면 뜻에 정한 방향이 있게 된다.

 

定而后能靜,

심지가 안정되어야만 마음이 고요해지며,

靜謂心不妄動.

정(靜)이라는 것은 마음이 경거망동(輕擧妄動)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靜而后能安,

마음이 고요해져야만 몸이 편안해지고,

安謂所處而安.

안(安)이라는 것은 자신이 선 곳에서 편안해진다는 뜻이다.

 

安而后能慮,

몸이 편안해져야만 생각하게 되며,

慮謂處事精詳.

려(慮)라는 것은 일을 처리함이 정밀하고 상세하다는 뜻이다.

 

慮而后能得.

생각할 수 있어야만 세상에 대한 이해를 얻을 수 있다.

得謂得其所止.

득(得)은 그쳐야 할 곳을 얻는다는 뜻이다.

 

3. 본과 말, 처음과 끝, 먼저할 것과 나중에 할 것(本末ㆍ終始ㆍ先後)

 

物有本末,

사물엔 본말이 있고

明德爲本, 新民爲末.

덕을 밝히는 것이 근본이 되고 백성을 새롭게 하는 것이 말단이 된다.

 

事有終始,

일엔 시종이 있으니

知止爲始, 能得爲終.

그칠 줄 아는 것이 시작이 되고 세상에 대한 이해를 얻는 것이 끝이 된다.

 

知所先後, 則近道矣.

선후인 것을 안다면 도(道)에 가까우리라.

本始所, 末終所後,

근본과 시작은 급선무로 해야 할 것이고 말단과 끝은 후순위로 해야 할 것이니,

 

此結上文兩節之意.

여기선 윗 문장 두 구절(大學之道知止而后)의 뜻을 결론지었다.

 

 

4. 팔조목(八條目)

古之欲明明德於天下者, 先治其國.

옛적에 밝은 덕을 천하에 밝히려 했던 사람은 먼저 그 나라를 다스렸다.

明明德於天下者, 使天下之人, 皆有以明其明德也.

밝은 덕을 천하에 밝힌다는 것은 천하의 사람들에게 모두 그 밝은 덕을 밝히도록 하는 데에 있다.

 

欲治其國者, 先齊其家.

그 나라를 다스리려 했던 사람은 먼저 그 집안을 가지런히 했다.

 

欲齊其家者, 先修其身.

그 집안을 가지런히 하려 했던 사람은 먼저 그 몸을 정갈히 했다.

 

欲修其身者, 先正其心.

그 몸을 정갈히 하려 했던 사람은 먼저 그 마음을 바르게 했다.

心者身之所主也.

마음이란 몸의 주체다.

 

欲正其心者, 先誠其意.

그 마음을 바르게 하려 했던 사람은 먼저 그 뜻을 성실히 했다.

誠實也, 意者心之所發也,

성(誠)은 성실하다는 것이고 의(意)는 마음이 발산하는 것이니,

 

實其心之所發, 欲其必自慊而無自欺也.

마음이 발산하는 것을 성실히 하여 반드시 스스로 만족하려 하고 스스로 속임이 없도록 하는 것이다.

 

欲誠其意者, 先致其知.

그 뜻을 성실히 하려 했던 사람은 먼저 그 앎을 극진히 했다.

致推極也, 知猶識也.

치(致)는 확장하여 극진히 하는 것이고 지(知)란 앎과 같다.

 

推極吾之知識, 欲其所知無不盡也.

나의 앎을 확장하고 극진히 하여 아는 것이 다하지 않음이 없도록 하려는 것이다.

 

致知在格物.

앎을 극진히 한다는 것은 사물을 올바로 파악하는 데에 있다.

格至也, 物猶事也.

격(格)은 이른다는 것이고 물(物)은 사물과 같다.

 

窮至事物之理, 欲其極處無不到也.

사물의 이치에 궁극적으로 도달하여 지극한 곳이 이르지 않음이 없도록 하려는 것이다.

 

此八者『大學』之條目也.

이러한 8가지가 『대학』의 조목이다.

 

 

5. 8조목을 이루어가는 순서

 

物格而后知至, 知至而后意誠,

物格者物理之極處無不到也. 知至者吾心之所知無不盡也.

 

意誠而后心正, 心正而后身修,

知旣盡則意可得而實矣, 意旣實則心可得而正矣.

 

身修而后家齊, 家齊而后國治, 國治而后天下平.

修身以上明明德之事也, 齊家以下新民之事也. 物格ㆍ知至則知所止矣, 意誠以下則皆得所止之序也.

해석보기

 

6. 수신을 근본으로 삼다(修身爲本)

自天子以至於庶人, 壹是皆以修身爲本.

천자로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이 모두 몸을 정갈히 하는 것으로 근본을 삼았다.

壹是一切也.

일(壹)은 일체라는 것이다.

 

正心以上皆所以修身也,

정심(正心) 이상은 모두 몸을 정갈하게 하는 것이고

 

齊家以下則擧此而措之耳.

제가(齊家) 이하는 수신(修身)을 들어 그것을 조치할 뿐이다.

 

7. 근본과 더 신경 써야 할 것에 대해

其本亂而末治者, 否矣.

근본(자신의 몸)이 난리법석인데 끝이 다스려지는 사람은 없다.

本, 謂身也.

근본이란 몸을 말한다.

 

其所厚者薄, 而其所薄者厚, 未之有也.

더 신경 쓸 것은 소홀히 하면서 소홀히 할 걸 신경 쓰는 사람은 있지 않다.

所厚, 謂家也,

신경 쓸 것이란 건 집을 말한다.

 

此兩節結上文兩節之意.

이 두 구절로 윗 문장 두 구절(‘物格而后知至’節과 ‘自天子以至於庶人’節)의 뜻을 결론 지었다.

 

右經一章. 蓋孔子之言, 而曾子述之, 凡二百五字.

여기까지가 경1장이다. 일반적으로 공자의 말씀을 증자가 전술하였으니 대체로 205자다.

 

其傳十章, 則曾子之意而門人記之也.

전10장은 증자의 뜻을 문인들이 기록한 것이다.

 

舊本頗有錯簡, 今因程子所定, 而更考經文,

옛 판본이 매우 착간이 있어 이제 정자가 정한 것에 따라 경문을 고쳐 고찰하여

 

別爲序次如左, 凡千五百四十六字.

별도로 아래의 내용처럼 차례를 삼았으니 대체로 1.546자다.

 

凡傳文, 雜引經傳, 若無統紀.

일반적으로 전문은 경전에 섞여 인용되어 기준이 없는 듯하다.

 

然文理接續, 血脈貫通,

그렇지만 문맥의 이치가 이어져 있고 내용이 일목요연하여

 

深淺始終, 至爲精密,

깊고 얕음과 시작과 끝이 지극히 정밀하니

 

熟讀詳味, 久當見之,

익숙히 읽고 상세히 맛보면 오래 되어 마땅히 드러날 것이기에,

 

今不盡釋也.

이제는 모두 해석하진 않는다.

 

전일장(傳1章)

 

1. 克明德(극명덕)

「康誥」曰: “克明德.”

『서경(書經)』 「강고」에서 “문왕께서 덕을 밝히셨다.”고 말했다.

克能也

극(克)은 ‘~할 수 있다.’라는 뜻이다.

 

2. 고시천지명명

 

「太甲」曰: “顧諟天之明命.”

『서경(書經)』 「태갑」에서 “선왕께선 이 하늘의 밝은 명을 돌아보셨다.”라고 말했다.

「太甲」商書.

「태갑」은 『서경』의 「상서」다.

 

顧謂常目在之也.

고(顧)는 항상 눈이 그곳에 있음을 말한다.

 

諟猶此也, 或曰: “審也.”

시(諟)는 ‘차(此)’와 같은데 혹자는 “살피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天之明命, 卽天之所以與我而我之所以爲德者也,

‘하늘의 밝은 명’이란 곧 하늘이 나에게 주어 내가 덕으로 삼은 것으로

 

常目在之則無時不明矣.

항상 눈을 그곳에 둔다면 한 때라도 밝지 않음이 없으리라.

 

3. 克明峻德(극명준덕)

「帝典」曰: “克明峻德.”

「제전」에서 “요임금께서 크나큰 덕을 밝히셨다.”라고 말했다.

「帝典」堯典, 「虞書」.

「제전」이란 「요전」이니 「우서」다.

 

峻大也.

준(峻)은 크다는 뜻이다.

 

4. 타고난 덕을 밝힌 사람들

皆自明也.

세 가지 인용문(克明德顧諟天之明命克明峻德)은 타고난 밝은 덕을 스스로 밝힌 것이다.

結所引書, 皆言自明己德之意.

묶어 인용한 글은 모두 스스로 자기의 덕을 밝힌 뜻을 말한 것이다.

 

右傳之首章, 釋明明德.

여기까지가 전1장으로 ‘명명덕(明明德)’을 해석한 것이다.

 

此通下三章至‘止於信’, 舊本誤在‘沒世不忘’之下.

이 장은 아래 3장의 ‘지어신(止於信)’까지 통틀어 옛 판본엔 잘못되어 ‘몰세불망(沒世不忘)’ 다음에 있었다.

 

전이장(傳2章)

 

1. 날마다 새로워져라

之盤銘曰: “苟日新, 日日新, 又日新.”

탕왕이 제기로 만든 대야에 “진실로 하루 새로워졌거든, 날마다 새로워져야 하며, 또 날로 새로워져야한다.”라고 썼다.

盤沐浴之盤也.

반(盤)는 목욕하는 대야이다.

 

銘名其器以自警之辭也.

명(銘)은 그 그릇에 새겨 스스로 경계하는 말로 삼은 것이다.

 

苟誠也.

구(苟)는 진실로라는 뜻이다.

 

以人之洗濯其心以去惡,

탕왕은 사람이 그 마음을 씻어 악을 제거하는 것이

 

如沐浴其身以去垢,

몸을 목욕하여 때를 제거하는 것 같다고 여겼기 때문에

 

故銘其盤.

대야에 새긴 것이다.

 

言誠能一日, 有以滌其舊染之汚而自新,

진실로 하루에 옛날에 물든 더러움을 씻어 스스로 새로워질 수 있다면

 

則當因其已新者, 而日日新之,

마땅히 이미 새로워진 것에 따라 날마다 새롭게 하고

 

又日新之, 不可略有間斷也.

또한 날로 새롭게 하여 조금이라도 끊어져선 안 된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2. 새로워지려는 백성을 고무시켜라

「康誥」曰: “作新民.”

『서경(書經)』 「강고」에서 “새로워지는 백성들을 진작시켜라.”라고 말했다.

鼓之舞之之謂作,

그들을 북돋고 그들을 춤추게 하는 걸 작(作)이라 하니,

 

言振起其自新之民也.

스스로 새로워지려는 백성을 진작시켜 일으키는 걸 말한다.

 

3. 주나라가 새로운 이유

曰: “周雖舊邦, 其命維新.”

오랜 시에서 “주나라가 비록 옛 나라지만 천명은 오직 새롭구나.”라고 말했다.

詩大雅「文王」之篇.

시란 대아 「문왕」의 편이다.

 

言周國雖舊, 至於文王,

주나라는 비록 옛 나라지만 문왕 때에 이르러

 

能新其德以及於民, 而始受天命也.

그 덕을 새롭게 하여 백성에게 미쳐 비로소 천명을 받았음을 말한 것이다.

 

4. 군자의 새롭게 하려는 노력

是故君子無所不用其極.

이러한 까닭으로 군자는 스스로 새로워지려는 노력과 백성을 새롭게 하려는 노력을 쓰지 않음이 없다.

自新ㆍ新民, 皆欲止於至善也.

스스로 새로워지는 것과 백성을 새롭게 하는 것을 모두 지극한 선에 이르게 하려 하는 것이다.

 

右傳之二章, 釋新民.

여기까지가 전2장으로 ‘신민(新民)’을 해석했다.

 

전삼장(傳3章)

1. 백성이 머물 만한 곳

云: “邦畿千里, 惟民所止.”

옛 시에서 “은나라의 수도 사방 천리가 오직 백성이 머물 곳이네.”라고 말했다.

詩商頌「玄鳥」之篇.

시는 상송의 「현조」 편이다.

 

邦畿王者之都也, 止居也.

방기(邦畿)는 왕자의 도읍이다. 지(止)는 거처한다는 것이다.

 

言物各有所當止之處也

사물들은 각각 마땅히 거처할 곳이 있음을 말한 것이다.

 

2. 머물 곳을 아는 꾀꼬리를 닮길

云: “緡蠻黃鳥, 止于丘隅.”

옛 시에서 “꾀꼴꾀꼴 우는 꾀꼬리여, 울창한 숲속에 머물렀구나.”라고 말했다.

詩小雅「緡蠻」之篇.

시는 소아 「면만」의 편이다.

 

緡蠻鳥聲, 丘隅岑蔚之處.

면만(緡蠻)은 새소리이고 구우(丘隅)는 울창한 곳이다.

 

子曰: “於止, 知其所止. 可以人而不如鳥乎!”

공자께서 “머물 적에 머물러야 할 곳을 아니 사람이 새만 못함에랴!”라고 말씀하셨다.

子曰以下孔子說詩之辭.

‘자왈(子曰)’ 이하는 공자가 시의 말을 해설한 것이다.

 

言人當知所當止之處也.

사람은 마땅히 당연히 머물러야 할 곳을 알아야 함을 말한 것이다.

 

3. 각자가 지향해야 할 목표

云: “穆穆文王, 於, 緝熙敬止!”

옛 시에서 “원대하신 문왕이여 아! 계속하여 밝히셔서 공경함으로 머무셨도다.”라고 말했다.

詩「文王」之篇.

시는 「문왕」의 편이다.

 

穆穆深遠之意, 於歎美辭,

목목(穆穆)은 깊고도 원대한 뜻이고 어(於)는 아름다움을 감탄한 말이며

 

緝繼續也, 熙光明也,

집(緝)은 계속된다는 뜻이고 희(熙)는 밝디 밝은 것이며

 

敬止言其無不敬而安所止也.

경지(敬止)는 공경하지 않음이 없어 머문 곳에서 편안함을 말한다.

 

爲人君止於仁, 爲人臣止於敬, 爲人子止於孝, 爲人父止於慈, 與國人交止於信.

임금이 되어선 인에 머물고 신하가 되어선 공경함에 머물며 자식이 되어선 효도함에 머물고 부모가 되어선 자애로움에 머물며 백성과 사귈 적엔 신의로움에 머문다.

引此而言聖人之止, 無非至善,

이것을 인용하여 성인의 머묾이 지극한 선이 아님이 없지만

 

五者乃其目之大者也.

위의 다섯 가지는 곧 조목의 큰 것임을 말한 것이다.

 

學者於此究其精微之蘊, 而又推類以盡其餘,

학자는 이에 정미한 내용을 연구하고 또 유추하여 나머지를 극진히 한다면

 

則於天下之事, 皆有以知其所止而無疑矣.

천하의 일에 대해 모두 머물 곳을 알아 의심이 없어지리라.

 

4. 광채 나는 군자의 특징

云: “瞻彼淇澳, 菉竹猗猗. 有斐君子, 如切如磋, 如琢如磨. 瑟兮僩兮, 赫兮喧兮, 有斐君子, 終不可諠兮.”

옛 시에서 “저 기수의 모퉁이를 보니 푸른 대나무 의젓하도다. 광채 나는 군자여! 잘라놓은 듯하고 간 듯하며 쪼아놓은 듯하고 갈아놓은 듯하네. 엄격하고 굳세며 윤기 나고 훤칠하도다! 광채 나는 군자여 끝내 잊을 수 없어라.”라고 말했다.

詩衛風「淇澳」之篇.

시는 위풍 「기욱」의 편이다.

 

淇水名, 澳隈也.

기(淇)는 물 이름이고 오(澳)은 모퉁이다.

 

猗猗美盛貌, 興也.

의의(猗猗)는 아름다움이 성대한 모양이니, 흥(興)체다.

 

斐文貌.

비(斐)는 문채 나는 모양이다.

 

切以刀鉅, 琢以椎鑿,

‘절(切)’은 칼과 톱으로 하고 ‘탁(琢)’은 망치와 끌로 하니

 

皆裁物使成形質也;

모두 물건을 재단하여 형체의 품질을 이루게 하는 것이고

 

磋以鑢鐋, 磨以沙石,

‘차(磋)’는 줄과 대패로 하고 ‘마(磨)’는 모래와 돌로 하니,

 

皆治物使其滑澤也.

모두 사물을 다듬어 윤기 나도록 하는 것이다.

 

治骨角者旣切而復磋之,

뼈와 뿔을 다듬는 사람은 이미 자르고서 다시 갈고

 

治玉石者旣琢而復磨之,

옥과 돌을 다듬는 사람은 이미 쪼고서 다시 가니

 

皆言其治之有緖而益致其精也.

모두 다듬음에 실마리가 있어 더욱 정밀함을 극진히 한다는 말이다.

 

瑟嚴密之貌, 僩武毅之貌,

‘슬(瑟)’은 엄밀한 모양이고 ‘한(僩)’은 굳센 모양이며,

 

赫喧宣著盛大之貌.

‘혁훤(赫喧)’는 드러나고 성대한 모양이다.

 

諠忘也.

‘훤(諠)’은 잊는다는 뜻이다.

 

如切如磋者, 道學也; 如琢如磨者, 自修也; 瑟兮僩兮者, 恂慄也; 赫兮喧兮者, 威儀也; 有斐君子, 終不可諠兮者, 道盛德至善, 民之不能忘也.

‘여절여차(如切如磋)’란 학문을 말하는 것이고 ‘여탁여마(如琢如磨)’라는 것은 스스로 정갈히 한다는 것이며 ‘슬혜한혜(瑟兮僩兮)’라는 것은 두려움이 있다는 것이고 ‘혁혜훤혜(赫兮喧兮)’라는 것은 위의가 있다는 것이며 ‘유비군자 종불가훤혜(有斐君子, 終不可諠兮)’라는 것은 도가 성대하고 덕이 성대한 덕과 지극한 선을 백성이 잊을 수가 없다는 걸 말한다.

道言也.

도(道)는 말한다는 것이다.

 

學謂講習討論之事, 自修者省察治之功.

‘학(學)’은 강습하고 토론하는 일이고 ‘자수(自修)’란 성찰하고 사적 욕망을 극복하고 다스리는 공부다.

 

恂慓戰懼也, 威可畏也, 儀可象也.

‘순률(恂慓)’은 싸움터에서 두려워하는 것이고 ‘위(威)’는 두려워할 만한 것이며 ‘의(儀)’는 본받을 만하다는 것이다.

 

引詩而釋之, 以明明明德者之止於至善.

이 시를 인용하고 해석하여 밝은 덕을 밝힌 사람이 지극한 선에 머묾을 밝혔다.

 

道學ㆍ自修, 言其所以得之之由;

도학(道學)과 자수(自修)는 얻게 된 이유를 말했고

 

恂慓ㆍ威儀, 言其德容表裏之盛,

순률(恂慓)과 위의(威儀)는 덕스런 용모의 겉과 속이 성대함을 말한 것으로,

 

卒乃指其實而歎美之也.

마침내 곧 실제를 가리켜 그것을 탄미한 것이다.

 

5. 문왕과 무왕의 선정

云: “於戱, 前王不忘.”

옛 시에서 “아! 선대의 왕들을 잊을 수 없어라.”라고 말했다.

詩周頌「烈文」篇.

시는 주송 「열문」편이다.

 

於戱歎辭, 前王謂也.

오희(於戱)는 감탄사다. 전왕(前王)은 문왕과 무왕을 말한다.

 

君子賢其賢而親其親, 小人樂其樂而利其利. 此以沒世不忘也.

임금은 어진 이를 어질게 대하고 천한 이를 친하게 대했으며 백성들은 치세 동안 생겨난 즐거움을 즐길 줄 알고 이로움을 이롭게 여겼기에 이에 세상에서 죽었음에도 잊질 못하는 것이다.

君子謂其後賢後王, 小人謂後民也.

군자란 후대의 어진 이와 후대의 임금을 말하고 소인은 후대의 백성을 말한다.

 

此言前王所以新民者, 止於至善,

여기선 선대의 왕들이 백성들을 새롭게 한 것이 지극한 선에 머물게 하여

 

能使天下後世, 無一物不得其所,

천하의 후대 사람들에게 한 사물도 제자리를 얻지 못함이 없게 하였으니

 

所以旣沒世而人思慕之, 愈久而不忘也.

이미 세상에서 죽었음에도 사람들이 그를 사모하여 더욱 오래될수록 잊지 못함을 말한 것이다.

 

此兩節咏歎淫泆, 其味深長,

이 두 구절은 소리 내어 탄식하고 음란한 것이지만 그 맛은 심오하고도 유장하니

 

當熟玩之.

마땅히 익숙히 그것을 음미해야 한다.

 

右傳之三章, 釋止於至善.

여기까지가 전(傳) 3장이니 지어지선(止於至善)을 해석한 것이다.

 

此章內, 自引‘淇澳詩’以下,

이번 장 안에서 스스로 ‘기욱시’를 인용한 것부터 밑으로는

 

舊本, 誤在‘誠意章’下.

옛 판본엔 잘못되어 6장인 성의장(誠意章) 아래에 있었다.

 

전사장(傳4章)

 

1. 거짓 재판조차 열리지 않는 사회

子曰: “聽訟吾猶人也必也使無訟乎!

공자께서 “재판을 하는 것에서 내가 남과 같지만, 반드시 재판 자체가 아예 없도록 하겠다.”라고 말씀하셨다.

猶人不異於人也, 情實也.

‘유인(猶人)’은 남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고 ‘정(情)’은 실정이다.

 

無情者, 不得盡其辭. 大畏民志. 此謂知本.

실정이 없는 사람이 거짓말을 다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 실정이 없는 백성의 마음을 크게 두렵게 만들어 재판 자체가 없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것을 ‘근본을 안다’라고 말한다.

引夫子之言, 而言聖人, 能使無實之人,

부자의 말씀을 인용하여 성인이 실정이 없는 사람에게

 

不敢盡其虛誕之辭,

감히 헛되고 궤탄한 말을 못하도록 하는 것은

 

蓋我之明德旣明,

대체로 나의 밝은 덕이 이미 밝아

 

自然有以畏服民之心志.

자연스레 백성의 마음과 뜻을 두렵게 하고 복종케 함이 있는 것이다.

 

故訟不待聽而自無也.

그러므로 송사는 들을 걸 기다릴 것도 없이 절로 없어지게 됨을 말한 것이다.

 

觀於此言, 可以知本末之先後矣.

이 말에서 보면 근본과 말단의 선후를 알 수가 있다.

 

右傳之四章, 釋本末.

여기까지가 전(傳) 4장으로 본말(本末)을 해석했다.

 

此章, 舊本誤在止於信下.

이 장은 예기대학(禮記大學)에선 잘못되어 전3장인 ‘지어신(止於信)’ 아래에 있었다.

 

2. 근본을 안다는 것에 대해

此謂知本.

修身爲本’과 ‘근본과 두터이 해야 할 것을’ 아는 것, 이것을 ‘근본을 안다’고 말한다.

程子曰: “衍文也.”

정이천이 “쓸데없는 문장이다.”라고 말했다.

 

○ ‘此謂知本’, ‘此謂知之至也’에 관하여 착간 운운하는 程朱의 논의는 일말의 고려할 가치조차 없다. 윤백호(尹白湖)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竊疑此兩句恐爲總結上文四節之意, 以應前章本末之意. 知本知其末之治也, 知至言其行之達也. -『白湖全書』 卷三十七, 「大學古本別錄」

 

해석

竊疑此兩句恐爲總結上文四節之意,

내가 가만히 생각해보건대 이 두 구절은 上文의 네 구절의 의미를 총결지어

 

以應前章本末之意.

앞 장에 있는 본말의 뜻을 뒷받침한 것으로 여겨진다.

 

知本知其末之治也,

여기서 ‘지본(知本)’이라고 한 것은 말(末)도 잘 다스려질 수 있다는 것을 안다는 뜻일 것이고

 

知至言其行之達也. -『白湖全書』 卷三十七, 「大學古本別錄」

또 ‘지지(知至)’라고 한 것은 그 앎을 실천하는 행동이 통달하게 될 것임을 말한 것이다.

별로 명료한 해석은 아니지만 하여튼 조선의 유자가 상기 두 구절에 대하여 텍스트의 변형 없이, 있는 그대로의 뜻을 밝히려 했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를 요구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김용옥, 『대학ㆍ학기역주』, 통나무출판사, 2009년, 277쪽

 

 

전오장(傳5章)

 

근본을 아는 것이 앎의 극치다

此謂知之至也.

근본을 아는 것(知本), 이것을 ‘앎의 극치’라고 말한다.

此句之上別有闕文, 此特其結語耳.

이 구절 위에 별도로 빠진 본문이 있고 이것은 다만 결론지어 말한 것일 뿐이다.

 

右傳之五章, 蓋釋格物ㆍ致知之意而今亡矣.

여기까지가 전(傳) 5장이니 대체로 격물(格物)과 치지(致知)의 뜻을 해석한 것일 텐데 지금은 사라졌다.

 

此章, 舊本通下章, 誤在經文之下.

이장은 예기대학(禮記大學) 본문(本文)에선 아랫 장과 함께 잘못되어 경문의 아래에 있었다.

 

 

보궐장ㆍ보망장(補闕章ㆍ補亡章)

격물(格物)과 치지(致知)의 관계를 보충하다

 

間嘗竊取程子之意, 以補之.

근간에 일찍이 몰래 정자의 뜻을 취하여 격물(格物)과 치지(致知)의 관계를 보충하였다.

 

曰: “所謂致知在格物者,

말하겠다. “말했던 ‘앎을 극진히 한다는 것은 사물을 올바로 파악하는 데에 있다’라고 하는 것은

 

言欲致吾之知, 在卽物而窮其理也.

나의 앎을 극진히 하고자 한다면 사물에 나아가 그 이치를 따지는 데 있음을 말한 것이다.

 

蓋人心之靈, 莫不有知;

일반적으로 사람 마음의 신령함은 앎이 있지 않음이 없고

 

而天下之物, 莫不有理.

천하의 사물은 이치가 있지 않음이 없다.

 

惟於理有未窮, 故其知有不盡也.

그러나 오직 이치에 대해 따지지 않음이 있기 때문에 앎이 극진하지 않음이 있는 것이다.

 

是以大學始敎, 必使學者,

이런 까닭으로 태학(太學)에서 처음 가르칠 적엔 반드시 학자에게

 

卽凡天下之物, 莫不因其已知之理而益窮之,

모든 천하의 사물에 나아가 이미 아는 이치에 따라 더욱 그것을 따지게 하여

 

以求至乎其極.

그 극치에 이르기를 구하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至於用力之久而一旦豁然貫通焉,

지력(知力)을 쓴 지 오래되어 하루아침에 환하게 이치를 관통하게 됨에 이르면

 

則衆物之表裏精粗, 無不到;

뭇 사물의 겉과 속, 정밀함과 거침이 이르지 않음이 없고

 

而吾心之全體大用, 無不明矣.

내 마음의 온전한 체(體)와 거대한 용(用)이 밝혀지지 않음이 없다.

 

此謂物格, 此謂知之至也.”

이것을 ‘사물이 이르러 온다’고 말하고, 이것을 ‘앎의 극치’라 말한다.”

 

格物 致知
외적 과정 내적 과정
사물의 탐구 이해의 확대
窮至事物之理 推極吾之知識
卽物조사 內心성찰
一物一理 全知에 도달
객체 위주 주체 위주
就物而言 自我而言
실천이성적 사변이성적
특수적 일반적
개체적 보편적
국부적 세밀성 전체적 완전성
物理 心理
모르는 것의 습득 이미 알고 있는 것의 확대
窮理의 변증법. 擴而充之의 과정1

 

 

전육장(傳6章)

 

1. 자기를 속이지 말라

所謂誠其意者, 毋自欺也.

말했던 ‘뜻을 성실히 한다’는 것은 스스로 속이지 않는 것이다.

誠其意者自修之首也.

‘뜻을 성실히 한다’는 것은 스스로 닦아나가는 것의 첫째다.

 

毋者禁止之辭.

‘무(毋)’라는 것은 금지사다.

 

自欺云者知爲善以去惡,

자기(自欺)라고 말하는 것은 선을 실천함으로 악을 제거해야 함은 알지만

 

而心之所發, 有未實也.

마음에서 발산하는 것이 성실하지 못함이 있는 것이다.

 

謙快也, 足也.

‘겸(謙)’은 상쾌함이자 만족하는 것이다.

 

如惡惡臭, 如好好色, 此之謂自謙.

악취를 미워하듯 이성을 좋아하듯 하는 것을 ‘스스로 만족한다’고 말한다.

 

故君子必愼其獨也.

그러므로 군자는 반드시 홀로 있을 때 조심한다.

獨者人所不知而己所獨知之地也.

‘독(獨)’이라는 것은 남은 알지 못하나 자기만이 홀로 아는 곳이다.

 

言欲自修者知爲善以去其惡,

스스로 닦으려는 사람이 선을 실천하여 악함을 제거할 줄 안다면

 

則當實用其力, 而禁止其自欺.

마땅히 힘을 실제로 사용해 스스로 속이는 것을 금지해야 한다.

 

使其惡惡則如惡惡臭, 好善則如好好色,

가령 악을 미워하길 악취 싫어하듯 하고 선을 좋아하길 이성 좋아하듯 하여

 

皆務快去而求必得之, 以自快足於己,

모두 힘써서 제거하길 기뻐하고 구함에 반드시 얻어 스스로 자기에게 만족해야 하지

 

不可徒苟且以徇外而爲人也.

다만 구차하게 사회적 가치에 따라 타인의 가치만을 위해서는 안 된다.

 

然其實與不實,

그러나 성실하냐 성실하지 못하냐는

 

蓋有他人所不及知而己獨知之者.

대체로 타인이 미처 알지 못하지만 자기만이 홀로 아는 데에 있다.

 

故必謹之於此, 以審其幾焉.

그러므로 반드시 홀로 있을 때 조심하여 기미를 살펴야 함을 말한 것이다.

 

2. 내면의 성실함이 겉으로 드러난다

小人閒居爲不善, 無所不至.

소인은 한가롭게 거처할 때 불선을 행하여 못할 행동이 없다.

閒居獨處也.

‘閒居’란 홀로 거처하는 것이다.

 

見君子而后厭然揜其不善, 而著其善.

그러다 군자를 본 이후에는 은근히 불선함을 감추고 선함을 드러낸다.

厭然消沮閉藏之貌.

‘厭然’은 의지가 억눌려 닫고 감추는 모양새다.

 

人之視己, 如見其肺肝, 然則何益矣?

남들이 자기 보길 폐와 간을 보듯 훤히 보듯 할 테니, 그러하다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오.

 

此謂誠於中, 形於外, 故君子必愼其獨也.

이것을 ‘내면에 성실함이 누적되면 외면에 드러난다.’고 말하니, 그러므로 군자는 반드시 홀로 있을 때 조심한다.

此言小人陰爲不善, 而陽欲揜之,

여기서는 다음을 말한 것이다. ‘소인이 음지에선 불선을 행하지만 양지에선 그걸 가리려 하는 것이니

 

則是非不知善之當爲, 與惡之當去也,

이것은 선은 마땅히 행해야 함과 악은 마땅히 제거해야 함을 알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但不能實用其力以至此耳.

다만 실제로는 그 힘을 쓸 수 없어 여기에 이를 뿐이다.

 

然欲揜其惡而卒不可揜, 欲詐爲善而卒不可詐,

그러나 악을 가리려 해도 마침내 가려질 수 없고 거짓으로 선을 하려 해도 마침내는 속일 수가 없으니,

 

則亦何益之有哉.

또는 무슨 유익될 게 있으리오.

 

此君子所以重以爲戒而必謹其獨也.

이것이 군자가 거듭 경계하여 반드시 홀로 있음을 삼가는 까닭이다.’

大學 心이 발현된 意를 성실케 한다는 것. 협소한 스케일
中庸 우주론적 척도, 인간본성의 본체 문제 광범한 스케일1

 

3. 혼자 있을 때에도 누군가가 옆에 있듯

曾子曰: “十目所視, 十手所指, 其嚴乎?”

증자가 “열 개의 눈동자가 나를 보며 열 개의 손가락이 나를 가리키니, 두렵구나.”라고 말했다.

引此以明上文之意.

이 글을 인용하여 윗 문장의 뜻을 밝혔다.

 

言雖幽獨之中, 而其善惡之不可揜,

비록 그윽하고 홀로 있는 중에도 선악을 가릴 수 없음이

 

如此, 可畏之甚也.

이와 같으니 두려워할 만한 게 심하다는 말이다.

 

4. 뜻을 성실히 하는 사람의 마음과 몸

富潤屋, 德潤身,

부유함은 집을 윤택하게 하고 덕스러움은 몸을 윤택하게 하니

 

心廣體胖, 故君子必誠其意.

덕이 있으면 마음이 너그러워지고 몸이 펴지기 때문에(학이 15 / 술이 15 / 안연 2 / 진심 20) 군자는 반드시 뜻을 성실히 한다.

胖安舒也.

‘반(胖)’은 편안하고 펴진다는 것이다.

 

言富則能潤屋矣, 德則能潤身矣.

여기선 다음을 말한 것이다. ‘부유하면 집을 윤택하게 할 수 있고 덕이 있으면 몸을 윤택하게 할 수 있다.

 

故心無愧怍, 則廣大寬平,

그러므로 마음에 부끄러움이 없다면 넉넉해지고 마음이 커지며 너그러워지고 평화로워져

 

而體常舒泰, 德之潤身者然也.

몸이 항상 펴지고 태연해지니 덕이 몸을 윤택하게 하는 것이 그러한 것이다.’

 

蓋善之實於中而形於外者如此,

일반적으로 선이 내면에 실재하면 외부에 드러남이 이와 같기 때문에

 

故又言此以結之.

또한 이걸 말하여 결론지은 것이다.

 

右傳之六章, 釋誠意.

여기까지가 전(傳) 6장으로 성의(誠意)를 해석했다.

 

經曰: “欲誠其意, 先致其知.”

경문에서 “그 뜻을 성실히 하고자 한다면 먼저 앎을 지극히 하라.”고 말했고

 

又曰: “知至而后意誠.”

또 “앎이 극진한 후에야 뜻이 성실하다.”고 말했다.

 

蓋心體之明, 有所未盡,

대체로 마음과 몸의 밝음이 미진한 게 있으면

 

則其所發, 必有不能實用其力,

발산하는 게 반드시 그 힘을 실제로 쓸 수 없어

 

而苟焉以自欺者.

구차하게 자기를 속이게 된다.

 

然或已明而不謹乎此, 則其所明,

그러나 간혹 이미 밝아졌지만 홀로 있을 때 조심하지 않는다면 밝은 것이

 

又非己有, 而無以爲進德之基.

또한 자기의 소유가 아니기에 덕에 나아가는 기초로 삼을 수 없는 것이다.

 

故此章之指, 必承上章而通考之然後,

그러므로 이번 장의 가르침은 반드시 윗 장에 이어 그것을 통틀어 사고한 후에야

 

有以見其用力之始終,

힘을 씀의 처음과 끝을 볼 수 있으니,

 

其序不可亂而功不可闕如此云.

순서는 어지럽힐 수 없고 공력은 빠뜨릴 수 없음이 이와 같다.

 

전칠장(傳7章)

 

1. 몸을 휘두르는 네 가지

所謂修身在正其心者, 身有所忿懥, 則不得其正; 有所恐懼, 則不得其正; 有所好樂, 則不得其正; 有所憂患, 則不得其正.

말했던 ‘몸을 정갈히 하는 것이 마음을 바르게 하는 데 있다’는 것은 몸에 분노하는 게 있으면 바름을 얻지 못하고 두려워하는 게 있으면 바름을 얻지 못하며 좋아하거나 즐기는 게 있으면 바름을 얻지 못하고 근심하는 게 있으면 바름을 얻지 못한다.

程子曰: “身有之身當作心.”

정이천이 “‘신유(身有)’의 ‘신(身)’자는 마땅히 ‘심(心)’자로 써야 한다.”고 말했다.

 

○ 忿懥怒也.

분치(忿懥)는 분노하는 것이다.

 

蓋是四者, 皆心之用而人所不能無者.

대체로 이 네 가지(분노ㆍ두려움ㆍ좋아함ㆍ근심)는 모두 마음의 작용으로 사람이 없을 수는 없다.

 

然一有之而不能察, 則欲動情勝,

그러나 하나라도 그것을 소유하고서 살필 수 없다면 욕심이 동하고 정이 이겨서

 

而其用之所行, 或不能不失其正矣.

용(用)의 행하는 것이 간혹 바름을 잃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2. 마음이 콩밭에 가 있으면

心不在焉: 視而不見,

마음이 있지 않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聽而不聞, 食而不知其味.

들려도 들리지 않고 먹어도 그 맛을 알지 못한다.

心有不存則無以檢其身,

마음이 있지 않다면 몸을 검속할 수 없기 때문에

 

是以君子必察乎此, 而敬以直之.

군자는 반드시 여기서 살펴 공경으로 자신을 곧추세운다.

 

然後此心常存, 而身無不修也.

그런 후에야 이 마음이 항상 보존되어 몸이 닦여지지 않음이 없게 된다.

 

3. 수신은 정심하는 데에 있다

此謂修身在正其心.

이것을 ‘몸을 정갈히 하는 것이 마음을 바르게 하는 데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右傳之七章, 釋正心ㆍ修身.

여기까지가 전(傳) 7장이니 정심(正心)과 수신(修身)을 해석했다.

 

此亦承上章, 以起下章.

이 장에선 또한 윗 장을 이어 아래 장을 일으켰다.

 

蓋意誠, 則眞無惡而實有善矣,

일반적으로 뜻이 진실하면 진실로 악이 없고 실제로 선이 있어

 

所以能存是心以檢其身.

이 때문에 이 마음을 보존하여 그 몸을 검속(檢束)할 수 있는 것이다.

 

然或但知誠意, 而不能密察此心之存否,

그러나 간혹 ‘뜻을 성실히 한다’는 것만 알고 이 마음의 유무를 면밀히 살필 수 없다면

 

則又無以直內而修身也.

또한 내면을 곧게 하여 몸을 정갈히 할 수 없다.

 

自此以下竝以舊文爲正.

이 장으로부터 이하는 모두 예기대학(禮記大學)을 바른 것으로 삼는다.

 

전팔장(傳8章)

 

1. 치우친 감정상태가 수신하지 못하게 한다

所謂齊其家在修其身者, 人之其所親愛而辟焉, 之其所賤惡而辟焉, 之其所畏敬而辟焉, 之其所哀矜而辟焉, 之其所敖惰而辟焉.

말했던 ‘집안을 가지런히 하는 것이 몸을 정갈히 하는 데에 있다’는 것은 사람은 친하고 아끼는 것들에 치우치고 사람은 천하게 여기고 싫어하는 것에 치우치며 두려워하거나 공경하는 것에 치우치고 애달프게 여기고 가엾게 여기는 것에 치우치며 거만하고 게으른 것에 치우친다.

人謂衆人, 之猶於也,

‘인(人)’은 뭇 사람이다. ‘지(之)’는 ‘어(於)’와 같다.

 

辟猶偏也.

‘벽(辟)’은 치우친다는 말과 같다.

 

故好而知其惡, 惡而知其美者, 天下鮮矣.

그러므로 좋아하되 싫어할 걸 알고 싫어하되 좋은 부분을 아는 사람은 천하에 드물다.

五者在人, 本有當然之則.

다섯 가지는 사람에게 있어 본래의 당연한 법칙을 소유한 것이다.

 

然常人之情, 惟其所向而不加察焉,

그러나 항상 사람의 정이 오직 향하는 것에 살핌을 더하질 못하니,

 

則必陷於一偏, 而身不修矣.

반드시 하나의 치우친 데에 빠져 몸을 닦질 못한다.

 

2. 자기 자식의 나쁜 점을 모르다

故諺有之曰: “人莫知其子之惡, 莫知其苗之碩.”

그러므로 속담에 “사람은 자식의 나쁜 점은 알지 못하고 자기 집의 하찮은 묘목도 결국 큰다는 걸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諺俗語也.

언(諺)은 속담이다.

 

溺愛者不明, 貪得者無厭.

사랑에 빠진 사람은 분명치 못하고 얻음을 탐하는 사람은 만족이 없다.

 

是則偏之爲害而家之所以不齊也.

이것이 치우침이 해가 되어 집이 정돈되지 못하는 까닭이다.

 

3. 제가는 수신에 달려 있다

此謂身不修, 不可而齊其家.

이것을 ‘몸이 정갈하지 않으면 집을 가지런하게 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右傳之八章, 釋修身齊家.

여기까지가 전(傳) 8장이니 ‘수신제가(修身齊家)’를 해석했다.

 

전구장(傳9章)

 

1. 군자는 집을 나가지 않고도 가르침을 나라에 이룬다

所謂治國必先齊其家者, 其家不可敎, 而能敎人者, 無之.

말했던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반드시 먼저 집안을 가지런하게 하는 데 있다.’라는 것은 집을 가르치질 못하고 남을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修身則家可敎矣

몸을 정갈히 한다면 집이 가르쳐질 수 있다.

故君子不出家而成敎於國.

그러므로 군자는 집을 나가지 않고서도 가르침을 나라에 성취시킨다.

孝者, 所以事君也; 弟者, 所以事長也; 慈者, 所以使衆也.

효도라는 것은 임금을 섬기는 것이고 공손이란 것은 어른을 섬기는 것이며 자애라는 것은 백성을 일 시키는 것이다.

孝ㆍ弟ㆍ慈所以修身而敎於家者也.

효도와 공손과 자애는 몸을 닦아 집을 가르치는 것이다.

 

然而國之所以事君事長使衆之道, 不外乎此,

그러나 나라에서 임금을 섬기고 어른을 섬기며 백성을 일 시키는 도는 이것에서 벗어나지 않으니,

 

此所以家齊於上而敎成於下也.

이것이 집이 위에서 가지런해지면 가르침이 아래에서 성취되는 까닭이다.

 

2. 정치와 자식 기리는 것의 공통점

「康誥」曰: “如保赤子.”

『서경(書經)』 「강고」에서 “어린 아이 보호하듯 한다.”고 말했다.

此引書而釋之.

여기선 글을 인용하여 해석했다.

 

心誠求之, 雖不中, 不遠矣.

마음이 진실로 그것을 구하면 비록 적중하진 않는다 해도 구하는 것에서 벗어나진 않는다.

 

未有學養子而后嫁者也!

자식 기르는 법을 배운 후에 시집장가 가는 사람은 있지 않다.

又明立敎之本, 不假强爲,

또 가르침을 세우는 근본이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在識其端而推廣之耳.

그 단서를 알아 확대하여 넓히는 데 있을 뿐임을 밝혔다.

 

3. 나라 흥망의 원인은 작은 데서 시작된다

一家仁, 一國興仁; 一家讓, 一國興讓; 一人貪戾, 一國作亂.

한 집안이 어질면 한 나라가 인에 흥기되고 한 집안이 사양하면 한 나라가 사양함에 흥기되며 한 사람이 탐내어 어긋나면 한 나라가 난리를 일으킨다.

一人謂君也.

‘일인(一人)’이란 임금을 말한다.

 

其幾如此, 此謂一言僨事, 一人定國.

기미가 이와 같으니 이것을 ‘한 마디 말이 일을 그르치고 한 사람이 나라를 안정시킨다.’고 말한다.

機發動所由也.

‘기(機)’란 발동함이 시작되는 곳이다.

 

僨覆敗也.

분(僨)은 전복되고 패하는 것이다.

 

此言敎成於國之效.

여기서는 가르침이 나라에 이루어지는 공효를 말했다.

 

4. 사람과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서(恕)

帥天下以仁, 而民從之. 帥天下以暴, 而民從之.

요임금과 순임금이 천하를 인함으로 통솔하니 백성들이 따랐고 걸왕과 주왕이 천하를 폭력으로 통솔하니 백성들이 무서워 그들을 따랐다.

 

其所令反其所好, 而民不從.

임금이 명령하는 것이 그들이 좋아하는 것과 반대되면(돈을 좋아하면서 백성들에겐 돈을 싫어하라고 하는 것) 백성이 따르질 않는다.

 

是故君子有諸己而後求諸人, 無諸己而後非諸人.

이런 까닭으로 군자는 자기에게 선함이 있은 후에야 남에게 선하길 요구할 수 있고 자기에게 악함이 없은 후에야 남의 악함을 비판할 수 있다.

 

所藏乎身不, 而能喩諸人者, 未之有也.

몸에 간직한 것이 ‘타인에 대한 감수성’이 없고서 남을 깨우칠 수 있는 사람은 있지 않다.

此又承上文一人定國而言.

여기서는 또한 윗 문장 ‘일인정국(一人定國)’을 이어 말한 것이다.

 

有善於己然後, 可以責人之善;

자기에게 선함이 있은 후에 남의 선함을 질책할 수 있고

 

無惡於己然後, 可以正人之惡,

자기에게 악함이 없은 후에 남의 악을 질정할 수 있으니,

 

皆推己而及人, 所謂恕也.

모두 자기를 확충하여 남에게 미치는 것으로 ‘서(恕)’라고 말한다.

 

不如是則所令, 反其所好, 而民不從矣.

이와 같지 않다면 명령하는 것이 좋아하는 것에 반대가 되어 백성이 따르질 않는다.

喩曉也.

유(喩)는 깨우친다는 것이다.

 

5. 치국은 제가에 달렸다.

帥天下以仁, 而民從之. 帥天下以暴, 而民從之.

요임금과 순임금이 천하를 인함으로 통솔하니 백성들이 따랐고 걸왕과 주왕이 천하를 폭력으로 통솔하니 백성들이 무서워 그들을 따랐다.

 

其所令反其所好, 而民不從.

임금이 명령하는 것이 그들이 좋아하는 것과 반대되면(돈을 좋아하면서 백성들에겐 돈을 싫어하라고 하는 것) 백성이 따르질 않는다.

 

是故君子有諸己而後求諸人, 無諸己而後非諸人.

이런 까닭으로 군자는 자기에게 선함이 있은 후에야 남에게 선하길 요구할 수 있고 자기에게 악함이 없은 후에야 남의 악함을 비판할 수 있다.

 

所藏乎身不, 而能喩諸人者, 未之有也.

몸에 간직한 것이 ‘타인에 대한 감수성’이 없고서 남을 깨우칠 수 있는 사람은 있지 않다.

此又承上文一人定國而言.

여기서는 또한 윗 문장 ‘일인정국(一人定國)’을 이어 말한 것이다.

 

有善於己然後, 可以責人之善;

자기에게 선함이 있은 후에 남의 선함을 질책할 수 있고

 

無惡於己然後, 可以正人之惡,

자기에게 악함이 없은 후에 남의 악을 질정할 수 있으니,

 

皆推己而及人, 所謂恕也.

모두 자기를 확충하여 남에게 미치는 것으로 ‘서(恕)’라고 말한다.

 

不如是則所令, 反其所好, 而民不從矣.

이와 같지 않다면 명령하는 것이 좋아하는 것에 반대가 되어 백성이 따르질 않는다.

 

喩曉也.

유(喩)는 깨우친다는 것이다.

 

6. 집안사람들과 잘 지내야

云: “桃之夭夭, 其葉蓁蓁. 之子于歸, 宜其家人.”

옛 시에서 “복사꽃 여릿여릿 싱그럽네. 잎사귄 파릇파릇하구나. 처자 시집가네. 집안사람들을 화합케 하겠구나.”라고 말했다.

詩周南「桃夭」之篇.

시는 주남의 「도요」 편이다.

 

夭夭少好貌, 蓁蓁美盛貌. 興也.

요요(夭夭)는 여리고 좋은 모습이고 진진(蓁蓁)은 아리땁고 성대한 모양이다. 흥(興)체다.

 

之子猶言是子, 此指女子之嫁者而言也.

‘지자(之子)’는 ‘이 처자’라는 말과 같으니, 이것은 여자로 시집가는 사람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

 

婦人謂嫁曰歸.

부인이 시집가는 것을 ‘귀(歸)’라 한다.

 

宜猶善也.

‘의(宜)’는 좋다는 것과 같다.

 

宜其家人, 而后可以敎國人.

집안사람을 화합케 한 후에 나라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다.

 

7. 형과도 동생과도 잘 지내야

云: “宜兄宜弟.” 宜兄宜弟, 而后可以敎國人.

옛 시에서 “형에게 화합케 하고 아우에게 화합케 하네.”라고 말했다. 형에게 화합케 하고 아우에게 화합케 한 후에야 나라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다.

詩小雅「蓼蕭」篇.

시는 소아 「륙소」의 편이다.

 

8. 임금이 이미 본받을 만한 존재여야

云:

옛 시에서 

“其儀不忒, 正是四國.” 

“임금의 위의가 어긋나질 않으니

사방의 나라를 바르게 하리.”라고 말했다. 

其爲父子兄弟足法, 而后民法之也.

임금이 아버지로서, 아들로서, 형으로서, 아우로서 본받을 만한 후에야 백성들이 그를 본받는다.

詩曹風「鳲鳩」篇.

시는 조풍 「시구」 편이다.

忒差也.

특(忒)은 어긋나는 것이다.

 

9. 치국은 제가에 달려 있다.

此謂治國在齊其家.

이것을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집을 가지런히 하는 데에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此三引詩, 皆以詠歎上文之事,

이 세 가지로 인용한 시는 모두 윗 문장의 내용을 읊어 감탄하였고

 

而又結之如此, 其味深長,

또 그걸 결론짓길 이와 같이 하여 맛이 깊고도 유장하니

 

最宜潛玩.

가장 마땅히 마음을 잠겨 완미해야 한다.

 

右傳之九章, 釋齊家治國.

여기까지는 전(傳) 9장으로 제가치국(齊家治國)을 해석했다.

 

전십장(傳10章)

1. 윗사람이 행동하면 아랫사람은 본받는다

所謂平天下在治其國者, 上老老而民興孝,

말했던 ‘천하를 평정하는 것이 나라를 다스리는 데에 있다’는 것은 윗사람이 어르신을 어르신으로 대우하니 백성들이 효에 흥기하고

老老所謂老吾老也.

‘노노(老老)’는 우리 노인네를 노인네로 대우한다는 걸 말한다.

 

興謂有所感發而興起也.

‘흥(興)’이란 감발한 것이 있어 흥기한다는 걸 말한다.

 

上長長而民興弟, 上恤孤而民不倍.

윗사람이 연장자를 연장자로 대우하니 백성들이 공손함에 흥기하고 윗사람이 고아를 구휼하니 백성들이 배반치 않는다.

孤者幼而無父之稱.

‘고(孤)’란 어려서 아버지가 없는 걸 말한다.

 

是以君子有絜矩之道也.

이런 까닭으로 군자는 혈구의 도가 있는 것이다.

絜度也. 矩所以爲方也.

‘혈(絜)’은 헤아리는 것이다. ‘구(矩)’는 네모난 것을 만드는 것이다.

 

言此三者, 上行下效,

다음을 말한 것이다. “이 세 가지는 윗사람이 행동하면 아랫사람이 본받는 것이

 

捷於影響, 所謂家齊而國治也.

그림자가 생기거나 메아리치는 것보다 빠르니, 말했던 ‘집이 가지런해지니 나라가 다스려진다.’는 것이다.

 

亦可以見人心之所同, 而不可使有一夫之不獲矣.

또한 사람 마음의 같은 것이라 한 사내라도 제자리를 얻지 못해선 안 됨을 볼 수 있다.

 

是以君子必當因其所同, 推以度物,

이런 까닭으로 군자는 반드시 마땅히 같은 바를 따라 확장하여 사물을 헤아려,

 

使彼我之間, 各得分願,

저와 나 사이에 각각 분수에 따른 원함을 얻게 한다면,

 

則上下四旁, 均齊方正, 而天下平矣.

상하와 사방이 고르고 가지런해지며 방정해져 천하가 평정된다.”

 

2. 혈구지도

所惡於上, 毋以使下; 所惡於下, 毋以事上;

윗사람에게 싫었던 것으로 아랫사람을 부리지 말고 아랫사람에게 싫었던 것으로 윗사람을 섬기지 말며

此覆解上文絜矩二字之意.

이것은 윗 문장의 ‘혈구’ 두 글자의 뜻을 반복하여 해석한 것이다.

 

如不欲上之無禮於我, 則必以此度下之心,

만일 윗사람이 나에게 무례하길 원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이것으로 아랫사람의 마음을 헤아려

 

而亦不敢以此無禮使之;

또한 감히 이것으로 무례하게 그들을 부리지 말고,

 

所惡於前, 毋以先後; 所惡於後, 毋以從前;

선배에게 싫었던 것으로 후배에게 먼저 하지 말고 후배에게 싫었던 것으로 선배를 따르지 말며,

不欲下之不忠於我, 則必以此度上之心,

아랫사람이 나에게 불충하기 원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이것으로 윗사람의 마음을 헤아려

 

而亦不敢以此不忠事之;

또한 감히 불충함으로 그들을 섬기지 말며,

 

所惡於右, 毋以交於左; 所惡於左, 毋以交於右.

오른쪽 친구에게 싫었던 것으로 왼쪽 친구와 사귀지 말고 왼쪽 친구에게 싫었던 것으로 오른쪽 친구와 사귀지 말라.

至於前後左右, 無不皆然,

선배와 후배, 오른쪽 왼쪽의 친구에 이르러 다 그렇지 않음이 없다면

 

則身之所處上下四旁, 長短廣狹,

몸이 거처하는 상하사방과 길고 짧음과 광활하고 협소함이

 

彼此如一, 而無不方矣,

피차가 하나 같아져 올바르지 않음이 없을 것이니,

 

彼同有是心而興起焉者,

저들도 똑같이 이 마음을 소유하고 있어 흥기한 사람이

 

又豈有一夫之不獲哉.

또한 어찌 한 사내도 제자리를 얻지 못하겠는가.

 

此之謂絜矩之道也.

이것을 ‘혈구지도’라고 말한다.

所操者約, 而所及者廣,

잡은 것은 요약되고 미치는 것은 광활하니

 

此平天下之要道也.

이것이 천하를 평정하는 중요한 방법이다.

 

故章內之意, 皆自此而推之.

그러므로 10장 안의 내용이 모두 이로부터 확장된 것이다.

 

3. 백성의 관점으로 사유하는 임금

云: “樂只君子, 民之父母.”

옛 시에서 “화락한 군자여 백성의 부모로다.”라고 말했다.

詩小雅「南山有臺」之篇. 只語助辭.

시는 소아 「남산유대」의 편이다. ‘只’는 어조사다.

 

民之所好好之, 民之所惡惡之, 此之謂民之父母.

백성이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고 백성이 싫어하는 것을 싫어하는 이것을 ‘백성의 부모’라고 말한다.

言能絜矩而以民心爲己心,

혈구할 수 있어 백성의 마음으로 자기의 마음을 삼을 수 있다면

 

則是愛民如子, 而民愛之如父母矣.

이것은 백성을 사랑하길 자식처럼 하고 백성이 임금 사랑하길 부모처럼 함을 말한 것이다.

 

4. 바위와 임금의 공통점

云: “節彼南山, 維石巖巖. 赫赫師尹, 民具爾瞻.”

옛 시에서 “깎아지른 저 호경(鎬京)의 남산이여! 바위가 크기도 크구나! 혁혁한 태사 윤씨여! 백성들이 모두 그대를 바라본다네.”라고 말했다.

詩小雅「節南山」之篇.

시는 소아 「절남산」의 편이다.

 

節截然高大貌.

‘절(節)’은 깎아지른 듯 높고도 거대한 모양이다.

 

師尹周太師尹氏也.

‘사윤(師尹)’은 주나라 태사 윤씨다.

 

具俱也.

‘구(具)’는 모두란 뜻이다.

 

有國者, 不可以不愼, 辟則爲天下僇矣.

나라를 소유한 사람은 조심하지 않을 수 없으니, 편벽된다면 천하의 죽임이 된다.

辟偏也.

‘벽(辟)’은 편벽되는 것이다.

 

言在上者, 人所瞻仰, 不可不謹.

여기선 다음을 말했다. ‘윗자리에 있는 사람은 남들이 바라보는 것이니 조심하지 않을 수 없다.

 

若不能絜矩而好惡徇於一己之偏,

만약 혈구할 수 없어 좋아함과 싫어함이 한 몸의 편벽됨에 따른다면

 

則身弑國亡, 爲天下之大戮矣.

몸은 죽고 나라는 망하여 천하의 큰 죽임이 된다.’

 

5. 망한 은나라를 거울삼아라

云: “殷之未喪師, 克配上帝. 儀監于殷, 峻命不易.”

옛 시에서 “은나라가 백성을 잃지 않았을 땐 상제와 짝했었다. 그러나 은나라는 망했으니 마땅히 은나라가 망한 걸 거울삼아라. 크나큰 명을 지키기가 쉽지가 않다.”라고 말했다.

詩「文王」篇. 師衆也.

시는 「문왕」 편이다. ‘사(師)’는 무리란 뜻이다.

 

配對也, 配上帝言其爲天下君而對乎上帝也.

‘배(配)’는 대한다는 뜻이니 ‘배상제(配上帝)’는 천하의 임금이 되어 상제에 대하는 것이다.

 

監視也. 峻大也.

‘감(監)’은 본다는 것이다. ‘준(峻)’은 크다는 것이다.

 

不易言難保也.

‘불이(不易)’는 보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道得衆, 則得國; 失衆, 則失國.

백성을 얻으면 나라를 얻지만 백성을 잃으면 나라를 잃는다고 말한 것이다.

道言也.

‘도(道)’는 말한다는 것이다.

 

引詩而言此, 以結上文兩節之意.

시를 인용하여 이걸 말함으로 위에 인용한 두 시(樂只君子節彼南山)의 뜻을 결론지었다.

 

有天下者能存此心而不失,

천하를 소유한 사람이 이 마음을 보존하고 잃지 않을 수 있다면

 

則所以絜矩而與民同欲者, 自不能已矣.

혈구하여 백성과 하고자하는 걸 함께 하는 것이 절로 그만둘 수 없게 된다.

 

6. 덕을 신중하면 생기는 일

是故君子先愼乎德. 有德此有人, 有人此有土, 有土此有財, 有財此有用.

이런 까닭으로 군자는 먼저 덕에 신중해야 한다. 덕이 있으면 이에 백성이 있고, 백성이 있으면 이에 토지가 있으며, 토지가 있으면 이에 재물이 있고, 재물이 있으면 이에 쓰임이 있다.

先謹乎德, 承上文不可不謹而言.

‘선근호덕(先謹乎德)’은 윗 문장의 ‘불가불근(不可不謹)’을 이어서 말한 것이다.

 

德卽所謂明德, 有人謂得衆,

‘덕(德)’은 곧 말했던 ‘명덕(明德)’이다. ‘유인(有人)’은 백성을 얻는다는 것을 말한다.

 

有土謂得國,

‘유토(有土)’는 나라를 얻는다는 것을 말한다.

 

有國則不患無財用矣.

‘유국(有國)’이란 쓸 수 있는 재물이 없음을 근심할 게 없다는 것이다.

 

7. 덕과 재물의 관계

德者, 本也; 財者, 末也.

덕이란 근본이고 재물이란 말단이다.

上文而言.

윗 문장에 근본하고서 말한 것이다.

 

8. 임금이 재물을 탐하면

外本內末, 爭民施奪.

근본이나 덕을 터부시하고 말단인 재물만을 탐닉하면 백성들을 다투게 하고 탈취함을 베풀게 되리.

人君以德爲外, 以財爲內,

임금이 덕을 외부로 여기고 재물을 내면으로 삼는다면

 

則是爭鬪其民, 而施之以劫奪之敎也.

이것은 백성을 다투게 하고 그들에게 겁탈하는 가르침을 베푸는 것이다.

 

蓋財者人之所同欲, 不能絜矩而欲專之,

대체로 재물은 사람이 함께 갖고자 하는 것으로 혈구할 수 없는데 그것을 독차지 하려 한다면

 

則民亦起而爭奪矣.

백성이 또한 일어나 다투어 빼앗으리라.

 

9. 재물과 백성의 상관관계

是故財聚, 則民散; 財散, 則民聚.

外本內末故財聚, 爭民施奪故民散. 反是則有德而有人矣.

해석보기

 

 

10. 말과 재물의 공통점

是故言悖而出者, 亦悖而入;

이런 까닭으로 말이 비난조로 나가면 또한 비난조로 들려오고

悖逆也.

패(悖)는 거슬린다는 것이다.

 

貨悖而入者, 亦悖而出.

재물이 부도덕하게 모으면 또한 부도덕하게 나간다.

此以言之出入, 明貨之出入也.

여기선 말의 출입을 통해 재물의 출입을 밝혔다.

 

先謹乎德以下至此, 又因財貨,

‘선근호덕(先謹乎德)’의 이하로부터 여기에 이르기까지 또한 재물로 인해

 

以明能絜矩與不能者之得失也.

혈구를 잘할 수 있는 사람과 잘 못하는 사람의 득실을 밝혔다.

 

11. 천명을 받으려면 선한 존재가 되어라

「康誥」曰: “惟命不于常.”

『서경(書經)』 「강고」에서 “오직 천명은 일정한 곳에 있지 않다.”고 말했으니

 

道善則得之, 不善則失之矣.

선하면 그것을 얻지만 선하지 않으면 그것을 잃는다고 말한 것이다.

道言也.

도(道)는 말한다는 뜻이다.

 

因上文引文王詩之意而申言之,

윗 문장에서 문왕의 시를 인용한 뜻에 따라 거듭 말하였으니

 

其丁寧反覆之意, 益深切矣.

간곡하고 반복한 뜻이 더욱 깊고도 간절하다.

 

12. 나라에서 보물로 삼아야 할 것

「楚書」曰: “楚國無以爲寶, 惟善以爲寶.”

「초서」에서 “초나라는 보물로 삼을 만한 것은 없고 오직 선한 사람을 보물로 삼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楚書」楚語.

「초서」란 『국어(國語)』 중에 「초어(楚語)」다.

 

言不寶金玉而寶善人也.

금과 옥을 보물로 여기지 않고 선한 사람을 보물로 여긴다는 말이다.

 

13. 진문공에게 외삼촌이 전해준 말

舅犯曰: “亡人無以爲寶, 仁親以爲寶.”

중이를 도운 외삼촌 구범이 “망명인인 그대는 보물로 삼을 만한 게 없고, 어질고 친한 이만을 보물로 삼을 뿐이네.”라고 말했다.

舅犯晋文公舅狐偃, 字子犯.

구범은 진문공의 외삼촌인 호언으로 자는 자범이다.

 

亡人文公, 時爲公子, 出亡在外也.

망인(亡人)은 문공으로 당시에 공자가 되어 진(晉)나라를 나가 망명하여 외국에 있었다.

 

仁愛也. 事見「檀弓」.

인(仁)은 아낀다는 것이다. 이 일은 『예기(禮記)』 「단궁」에 보인다.

 

此兩節, 又明不外本而內末之意.

이 두 절(惟善以爲寶仁親以爲寶)은 또한 ‘근본을 터부시하고 말단을 내면으로 여기지 않는 뜻’을 밝혔다.

 

14. 가까이 해야 할 신하와 멀리 해야 할 신하

「秦誓」曰: “若有一个臣, 斷斷兮無他技, 其心休休焉其如有容焉.

「진서」에서 말했다. “만약 한 명의 신하가 있다고 하자. 우직하고 성실하며 다른 기예는 없지만 그 마음은 넉넉하고 아름다워 포용력이 있다.

「秦誓」周書.

「진서」란 『서경』의 「주서」다.

 

斷斷誠一之貌.

‘단단(斷斷)’은 성실함이 한결 같은 모양이다.

 

人之有技, 若己有之; 人之彦聖, 其心好之.

남이 재주를 소유한 걸 마치 자기가 소유한 듯하고 남의 아름다운 인품을 마음으로 좋아한다.

彦美士也. 聖通明也.

‘언(彦)’은 아름다운 선비다. ‘성(聖)’은 매우 밝은 것이다.

 

不啻若自其口出, 寔能容之, 以能保我子孫黎民, 尙亦有利哉!

그 입으로 나불거릴 뿐만 아니라 그들을 포용할 줄 알아 나의 자손과 백성들을 보호할 줄 아니 거의 또한 이로움이 있을 것이다.

尙庶幾也.

‘상(尙)’은 거의라는 뜻이다.

 

人之有技, 娼疾以惡之;

남이 재주를 소유한 걸 질투하여 미워하고

娟忌也.

‘연(娟)’은 시기한다는 것이다.

 

人之彦聖, 而違之俾不通.

남의 아름다운 인품을 거슬러 통하지 않게 한다.

違拂戾也.

‘위(違)’는 어그러뜨린다는 것이다.

 

寔不能容, 以不能保我子孫黎民, 亦曰殆哉!”

이것은 포용할 줄 몰라 나의 자손과 백성을 보호할 수 없으니, 또한 위태롭구나!”

殆危也.

‘태(殆)’는 위태로움이다.

 

15. 어진 사람만이 사람을 사랑할 수도 미워할 수도 있다

唯仁人放流之, 迸諸四夷, 不與同中國.

오직 어진 사람만이 어진 이를 시샘하고 나라를 병들게 하는 이를 추방하여 국외로 내쫓아 중국에 함께 하질 않게 하니,

迸猶逐也.

병(迸)은 쫓아낸다와 같다.

 

此謂‘唯仁人爲能愛人, 能惡人.’

이것을 공자께선 ‘오직 어진 사람만이 사람을 좋아할 수 있고, 미워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言有此媢疾之人, 妨賢而疾國,

이것은 시기하고 질투하는 사람이 있어 어진 이를 질투하고 나라를 병들게 하면

 

則仁人必深惡而痛絶之,

어진 이가 반드시 깊이 미워하고 통렬히 그를 내쳐야 하니,

 

以其至公無私.

지극히 공적이고 사사로움이 없기 때문에

 

故能得好惡之正, 如此也.

좋아함과 미워함의 바름을 얻음이 이와 같다는 말이다.

 

16. 임금의 거만과 잘못

見賢而不能擧, 擧而不能先, 命也;

어진 이를 보고 천거할 수 없고 천거했지만 제대로 된 직분을 내릴 수 없다면 태만한 것이고

命, 鄭氏云: “當作慢.”

‘명(命)’은 정현(鄭玄)이 “마땅히 만(慢)으로 써야 한다.”고 말했고

 

程子云: “當作怠.” 未詳孰是.

정이천은 “마땅히 태(怠)로 써야 한다.”고 말했는데 누가 옳은지 자세하지 않다.

 

見不善而不能退, 退而不能遠, 過也.

불선한 이를 보았지만 내칠 수 없었고 내쳤지만 멀리 떠나보낼 수 없었다면 임금의 허물이다.

若此者, 知所愛惡矣,

이와 같은 임금이라면 아끼고 미워할 바를 알지만

 

而未能盡愛惡之道, 蓋君子而未仁者也.

아끼고 미워하는 방법을 다할 수 없었던 것이니 대체로 군자지만 어질지 못한 사람이다.

 

17. 보편적인 감수성을 잃은 사람

好人之所惡, 惡人之所好, 是謂拂人之性, 菑必逮夫身.

백성이 미워하는 것을 좋아하고 백성이 좋아하는 것을 미워한다면 이것은 사람의 본성에서 어긋난 것이니 재앙이 반드시 그 몸에 미치리.

拂逆也.

불(拂)은 거슬린다는 것이다.

 

好善而惡惡, 人之性也.

선을 좋아하고 악을 미워하는 건 사람의 본성이다.

 

至於拂人之性, 則不仁之甚者也.

사람의 본성을 거슬리는 데에 이르면 불인한 것이 심한 것이다.

 

自「秦誓」至此, 又皆以申言好惡公私之極,

「진서」로부터 여기에 이르기까지 또한 모두 좋아함과 미워함,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의 극단을 거듭 말하여

 

以明上文所引「南山有臺」ㆍ「節南山」之意.

윗 문장에서 「남산유대」와 「절남산」을 인용한 뜻을 밝힌 것이다.

 

18. 위정자가 백성의 마음을 얻는 방법

是故君子有大道, 必忠信以得之, 驕泰以失之.

이런 까닭으로 군자는 큰 방법이 있으니 반드시 충성과 신의로 백성의 마음을 얻고 교만함과 태연함으로 백성의 마음을 잃으리.

君子以位言之.

군자란 지위로 말한 것이다.

 

道謂居其位, 而修己治人之術.

‘도(道)’란 지위에 있어 자기를 닦고 타인을 다스리는 기술을 말한다.

 

發己自盡爲忠,

자기에게서 발산하여 스스로 다하는 것을 ‘충(忠)’이 되고

 

循物無違謂信.

사물을 따라 어긋남이 없음을 ‘신(信)’이라 말한다.

 

驕者矜高, 泰者侈肆.

‘교(驕)’라는 것은 자랑하고 높은 것이고 ‘태(泰)’라는 것은 사치하고 함부로 하는 것이다.

 

此因上所引文王康誥之意而言.

이것은 위에 인용한 문왕과 강고의 뜻에 따라 말한 것이다.

 

章內三言得失, 而語益加切,

이 장 안에서 세 번 득실(511, 18절)을 말해서 말이 더욱 간절함을 더하였으니

 

蓋至此而天理存亡之幾決矣.

대체로 여기에 이르러 천리가 있고 없고의 기미가 결정 난다.

 

19. 나라의 곳간을 풍족하게 만드는 방법

生財有大道; 生之者衆, 食之者寡, 爲之者疾, 用之者舒, 則財恒足矣.

나라의 재물을 생산하는 데에 큰 방법이 있으니 생산하는 사람이 많고 소비하는 사람이 적으며 생산을 빨리 하고 소비를 느리게 한다면 재물은 항상 풍족하리라.

呂氏曰: “國無游民, 則生者衆矣;

여대림(呂大臨)이 말했다. “나라에 놀고 먹는 백성이 없다면 생산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朝無幸位, 則食者寡矣.

조정에 무위도식하는 관리가 없으면 소비하는 사람이 적어진다.

 

不奪農時, 則爲之疾矣;

농사철을 빼앗지 않으면 생산하는 것이 빨라지고

 

量入爲出, 則用之舒矣.”

수입을 헤아려 지출을 한다면 소비는 느려진다.”

 

愚按, 此因有土有財而言,

내가 생각하기로 이것은 ‘유토(有土)’와 ‘유재(有財)’를 따라 말한 것으로

 

以明足國之道, 在乎務本而節用,

나라가 풍족해지는 방법은 근본에 힘쓰고 소비를 절약하는 데에 있지

 

非必外本內末, 而後財可聚也.

반드시 근본을 터부시하고 말단을 중시한 후에야 재물이 모이는 것이 아님을 밝힌 것이다.

 

自此以至終篇皆一意也.

여기서부터 마지막 편에 이르기까지는 모두 한 가지 뜻이다.

 

20. 재물을 대하는 인자와 불인자의 차이

仁者以財發身, 不仁者以身發財.

어진 사람은 재물을 요긴하게 써서 몸을 신장시키지만 불인한 사람은 몸을 써서 재물만 모은다.

發猶起也.

발(發)은 일으킨다와 같다.

 

仁者散財以得民, 不仁者亡身以殖貨.

인자는 재물을 흩어 백성을 얻지만 불인한 사람은 몸을 망쳐 재물을 증식시킨다.

 

21. 임금의 인함과 백성의 의로움

未有上好仁, 而下不好義者也; 未有好義, 其事不終者也; 未有府庫財, 非其財者也.

임금이 인을 좋아하는데 백성이 의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있지 않고, 백성이 의를 좋아하고서 임금의 좋은 사업을 끝마치지 못하는 경우는 있지 않으며, 나라 곳간의 재물이 백성들의 재물이 아닌 게 있지 않다.

上好仁以愛其下, 則下好義以忠其上,

윗사람이 인을 좋아하고 아랫사람을 아끼면 아랫사람이 의를 좋아하여 윗사람에게 충성하니,

 

所以事必有終, 而府庫之財,

이런 이유로 일은 반드시 끝나게 되고 나라 곳간의 재물이

 

無悖出之患也.

멋대로 쓰이는 근심이 없다.

 

22. 세금 거두는 신하를 두기보단 나의 재물을 훔치는 신하를 두리

孟獻子曰: “畜馬乘, 不察於鷄豚;

맹헌자가 말했다. “사두마차의 말을 기르는 상사(上士)는 닭과 돼지를 기르지 않고

孟獻子, 魯之賢大夫, 仲孫蔑.

맹헌자는 노나라 어진 대부인 중손멸이다(공자의 아버지인 叔梁紇을 모심).

 

畜馬乘, 士初試爲大夫者也.

‘휵마승(畜馬乘)’은 선비가 처음 시험봐서 대부가 된 사람이다.

 

伐氷之家, 不畜牛羊;

제사에 쓸 얼음을 켤 수 있는 대부의 집안은 소와 양을 기르지 않으며

伐冰之家, 卿大夫以上,

‘벌빙지가(伐冰之家)’는 경대부 이상으로

 

喪祭用冰者也.

초상과 제사에 얼음을 사용하는 사람들이다.

 

百乘之家, 不畜聚斂之臣.

사방 백리의 영지를 소유한 경대부(卿大夫)는 세금을 거두는 신하를 기르지 않는다.

 

與其有聚斂之臣, 寧有盜臣.”

세금을 거두는 신하를 두기보단 차리라 나의 재물을 도적질하는 신하를 두리.”

 

此謂國不以利爲利, 以義爲利也.

이것을 ‘나라는 이익을 이익으로 여기지 않고 의를 이익으로 여긴다.’고 말하는 것이다.

百乘之家, 有采地1者也.

‘백승지가(百乘之家)’는 채지를 소유한 사람들이다.

 

君子寧亡己之財, 而不忍傷民之力.

군자는 차라리 자기의 재물을 잃게 할지언정 백성의 힘을 상하게 하는 건 참지 못한다.

 

故寧有盜臣而不畜聚斂之臣.

그러므로 차라리 도적질하는 신하를 두지 세금을 거두는 신하를 기르진 않는 것이다.

 

此謂以下釋獻子之言也.

‘차위(此謂)’ 이하는 맹헌자의 말을 해석한 것이다.

 

23. 임금이 재물만 밝히면 생기는 일

長國家而務財用者, 必自小人矣.

나라의 우두머리가 되어 재용에만 힘쓰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소인을 써야만 한다.

自由也, 言由小人導之也.

‘자(自)’는 쓴다는 것이니 소인이 그를 인도함으로 말미암는다는 말이다.

 

彼爲善之, 小而之使爲國家, 菑害竝至.

저 우두머리가 잘하려 해도 소인에게 국가를 다스리게 하면 재앙과 재해가 함께 이르러 온다.

彼爲善之, 此句上下疑有闕文誤字.

‘피위선지(彼爲善之)’라는 이 구절 위아래에 의심컨대 빠진 문장이나 오자가 있는 듯하다.

 

雖有善者, 亦無如之何矣.

비록 선한 의지가 있는 사람이 있더라도 또한 어찌할 수가 없다.

 

此謂國不以利爲利, 以義爲利也.

이것을 ‘나라는 이익을 이익으로 여기지 않고 의를 이익으로 여긴다.’고 말하는 것이다.

此一節, 深明以利爲利之害,

여기 한 구절은 이익으로 이익을 삼는 폐해를 깊이 밝혀

 

而重言以結之, 其丁寧之意切矣.

거듭 말하여 그걸 결론지었으니 간곡한 뜻이 간절하다.

 

右傳之十章, 釋治國平天下.

여기까지는 전(傳) 10장으로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를 해석했다.

 

次章之義, 務在與民同好惡,

이장의 뜻은 힘써 백성과 호오를 함께 하고

 

而不專其利, 皆推廣絜矩之意也.

이익을 독차지 하지 않음에 있으니 모두 혈구의 뜻을 미루어 확장한 것이다.

 

能如是, 則親賢樂利,

이와 같이 할 수 있다면 친함과 어짊과 즐김과 이익이

 

各得其所, 而天下平矣.

각각 제자리를 얻어 천하가 평정되리라.

 

凡傳十章, 前四章, 統論綱領指趣,

대체로 (傳) 10 중에 앞의 네 개의 장은 강령의 뜻을 통합하여 논하였고

 

後六章, 細論條目工夫,

뒤의 여섯 개의 장은 조목의 공부를 세세하게 논하였으며,

 

第五章, 乃明善之要;

제5장은 곧 선을 밝히는 요체이고

 

第六章, 乃誠身之本.

제6장은 곧 몸을 성실히 하는 근본이니,

 

在初學, 尤爲當務之,

초학자에 있어선 더욱 마땅히 힘씀에 급선무를 삼고

 

讀者不可以其近而忽之也.

독자는 비근하여 여겨 그것을 소홀히 해선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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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전1장 - 1. 극명덕

전일장(傳1章) 1. 극명덕 「康誥」曰: “克明德.”『서경(書經)』 「강고」에서 “문왕께서 덕을 밝히셨다.”고 말했다. 克能也극(克)은 ‘~할 수 있다.’라는 뜻이다. 인용 목차 도곡집 答蒼厓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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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전10장 - 23. 임금이 재물만 밝히면 생기는 일

23. 임금이 재물만 밝히면 생기는 일 長國家而務財用者, 必自小人矣. 自由也, 言由小人導之也. 彼爲善之, 小而之使爲國家, 菑害竝至. 彼爲善之, 此句上下疑有闕文誤字. 雖有善者, 亦無如之何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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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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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云 邦畿千里여 惟民所止라 하니라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나라의 기내(畿內) 천리(千里)여, 백성들이 멈추어 사는 곳이다.” 하였다.

 

詩는 商頌玄鳥之篇이라 

邦畿는 王者之都也요 

止는 居也니 

言物各有所當止之處也라.

시(詩)는 〈상송(商頌) 현조편(玄鳥篇)〉이다. 

방기(邦畿)는 왕자(王者)의 도읍(都邑)이요, 

지(止)는 거(居)함이니, 

물건은 각기 마땅히 거처할 곳이 있음을 말한 것이다.

 

詩云

緡蠻黃鳥여 

止于丘隅라 하여늘 

子曰

於止에 知其所止로소니 

可以人而不如鳥乎아 하시니라.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면만(緡蠻)히 우는 황조(黃鳥)여, 

구우(丘隅)에 멈춘다.” 하거늘,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시기를

 “그칠 때에 그 그칠 곳을 아니, 

사람으로서 새만 못해서야 되겠는가.” 하셨다.

 

詩는 小雅緡蠻之篇이라 

緡蠻은 鳥聲이라 

丘隅는 岑蔚之處라 

子曰以下는 孔子說詩之辭니 

言人當知所當止之處也라.

시(詩)는 〈소아(小雅) 면만편(緡蠻篇)〉이다. 

면만(緡蠻)은 새 울음소리이다. 

구우(丘隅)는 산이 깊고 숲이 울창한 곳이다. 

자왈(子曰) 이하는 공자(孔子)께서 《시경(詩經)》을 해석한 말씀이니, 

사람이 마땅히 그쳐야 할 곳을 알아야 함을 말씀한 것이다.

 

詩云

穆穆文王이여 

於(오) 緝熙敬止라 하니 

爲人君엔 止於仁하시고 

爲人臣엔 止於敬하시고 

爲人子엔 止於孝하시고 

爲人父엔 止於慈하시고 

與國人交엔 止於信이러시다.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목목(穆穆)하신 문왕(文王)이여, 

아! 계속하여 밝혀서 공경하여 그쳤다.” 하였으니, 

인군(人君)이 되어서는 인(仁)에 그치시고, 

인신(人臣)이 되어서는 경(敬)에 그치시고, 

인자(人子)가 되어서는 효(孝)에 그치시고, 

인부(人父)가 되어서는 자(慈)에 그치시고, 

국인(國人)과 더불어 사귐엔 신(信)에 그치셨다.

 

詩는 文王之篇이라 

시(詩)는 〈문왕편(文王篇)〉이다. 

穆穆은 深遠之意라 於는 歎美辭라 緝은 繼續也요 熙는 光明也라 

목목(穆穆)은 심원(深遠)한 뜻이다. 

오(於)는 아름다움을 감탄하는 말이다. 집(緝)은 계속함이요, 희(熙)는 광명(光明)함이다. 

敬止는 言其無不敬而安所止也라 

경지(敬止)는 공경하지 않음이 없어서 그치는 바에 편안함을 말한다. 

引此而言 聖人之止가 無非至善이로되 五者는 乃其目之大者也라

이것을 인용하여 성인(聖人)의 그침은 지선(至善) 아님이 없으나 다섯 가지는 바로 그 조목(條目)의 큰 것임을 말씀하셨다. 

學者於此에 究其精微之蘊하고 而又推類以盡其餘하면

則於天下之事에 皆有以知其所止而無疑矣리라.

배우는 이가 이에 대하여 그 정미(精微)의 깊음을 연구하여, 또 유추(類推)하여 그 나머지를 다한다면, 

천하(天下)의 일에 대하여 모두 그 그칠 데를 알아 의심함이 없을 것이다.

 

詩云

瞻彼淇澳한대 菉竹猗猗로다 

有斐君子여 如切如磋하며 如琢如磨로다 

瑟兮僩兮며 赫兮喧兮니 有斐君子여 終不可諠兮라 하니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저 기수(淇水) 모퉁이를 보니 푸른 대나무가 무성하도다. 

문채나는 군자(君子)여, 잘라놓은 듯하고 간 듯하며 쪼아놓은 듯하고 간듯하다. 

엄밀하고 굳세며, 빛나고 점잖으니, 문채나는 군자(君子)여, 끝내 잊을 수 없다.” 하였으니, 

如切如磋者는 道學也요 

如琢如磨者는 自修也요 

瑟兮僩兮者는 恂慄也요 

赫兮喧兮者는 威儀也요 

여절여차(如切如磋)는 학문을 말한 것이요, 

여탁여마(如琢如磨)는 스스로 행실을 닦음이요, 

슬혜한혜(瑟兮僩兮)는 마음이 두려워함이요. 

혁혜훤혜(赫兮喧兮)는 겉으로 드러나는 위의(威儀)요, 

有斐君子終不可諠兮者는 道盛德至善을 民之不能忘也니라.

문채나는 군자(君子)여 끝내 잊을 수 없다는 것은

성덕(盛德)과 지선(至善)을 백성이 능히 잊지 못함을 말한 것이다.

 

詩는 衛風淇澳之篇이라 

시(詩)는 〈위풍(衛風) 기오편(淇澳篇)〉이다. 

淇는 水名이요 澳은 隅也라 猗猗는 美盛貌니 興也라 

기(淇)는 물 이름이요, 오(澳)는 모퉁이이다. 의의(猗猗)는 아름답고 성한 모양이니, 흥(興)이다. 

斐는 文貌라 

비(斐)는 문채나는 모양이다. 

切以刀鋸하고 琢以椎鑿하니 皆裁物使成形質也요 

절(切)은 칼과 톱으로써 하고, 탁(琢)은 망치와 끌로써 하니, 모두 물건을 재단하여 형질(形質)을 이루게 하는 것이다. 

磋以鑢鐋하고 磨以沙石하니 皆治物使其滑澤也라 

차(磋)는 줄과 대패로써 하고, 마(磨)는 모래와 돌로써 하니, 모두 물건을 다스려서 매끄럽고 윤택하게 하는 것이다. 

治骨角者는 旣切而復磋之하고 

治玉石者는 旣琢而復磨之하니 

皆言其治之有緖而益致其精也라 

뼈와 뿔을 다스리는 것은 이미 잘라놓고 다시 이것을 갈며, 

옥(玉)과 돌을 다스리는 것은 이미 쪼아놓고 다시 가니, 

모두 그 다스림에 실마리가 있어 더욱 그 정(精)함을 지극히 함을 말한 것이다. 

 

瑟은 嚴密之貌요 

僩은 武毅之貌라 赫喧은 宣著盛大之貌라 諠은 忘也라 

슬(瑟)은 엄밀한 모양이요, 한(僩)은 굳센 모양이다. 

혁(赫)·훤(喧)은 드러나고 성대(盛大)한 모양이다. 훤(諠)은 잊음이다. 

道는 言也라 學은 謂講習討論之事요 

自修者는 省察克治之功이라 

도(道)는 말함이다. 학(學)은 강습(講習)하고 토론(討論)하는 일을 이르고, 

자수(自修)는 성찰(省察)하고 이겨 다스리는 공부이다. 

恂慄은 戰懼也라 威는 可畏也요 儀는 可象也라

순율(恂慄)은 두려워함이다. 위(威)는 두려울 만함이요, 의(儀)는 본받을 만함이다. 

引詩而釋之하여 以明明明德者之止於至善이라 

《시경(詩經)》을 인용하고 이것을 해석하여, 명명덕(明明德)하는 자의 지어지선(止於至善)을 밝힌 것이다. 

 

道學, 自修는 言其所以得之之由요

도학(道學)과 자수(自修)는 이것을 얻게 된 바의 이유를 말한 것이요, 

恂慄, 威儀는 言其德容表裏之盛이니

순율(恂慄)과 위의(威儀)는 덕용(德容)의 표리(表裏)의 성함을 말한 것이니, 

卒乃指其實而歎美之也니라.

마침내 그 실제를 가리켜, 탄미(歎美)한 것이다.

 

詩云

於戱(嗚呼)라 前王不忘이라 하니 

君子는 賢其賢而親其親하고 

小人은 樂其樂而利其利하나니 

此以沒世不忘也니라.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아아, 전왕(前王)을 잊지 못한다.” 하였으니, 

군자(君子)는 그[전왕(前王)] 어짊을 어질게 여기고, 그 친한 이를 친히 여기며, 

소인(小人)은 그 즐겁게 해 주심을 즐거워하고, 그 이롭게 해 주심을 이롭게 여기니, 

이 때문에 세상에 없는데도 잊지 못하는 것이다.

 

詩는 周頌烈文篇이라 

於戱는 歎辭라 

前王은 謂文武也라 

君子는 謂其後賢後王이요 

小人은 謂後民也라 

시(詩)는 〈주송(周頌) 열문편(烈文篇)〉이다. 

오희(於戱)는 감탄하는 말이다. 

전왕(前王)은 문왕(文王)·무왕(武王)을 이른다. 

군자(君子)는 후현(後賢)과 후왕(後王)을 이르고, 

소인(小人)은 후민(後民)을 이른다. 

此는 言 前王所以新民者 止於至善하여 

能使天下後世로 無一物不得其所하니 

所以旣沒世而人思慕之하여 愈久而不忘也라 

이는 전왕(前王)이 백성을 새롭게 한 것이 지선(至善)에 그쳐서

능히 천하(天下)와 후세(後世)가 하나의 물건이라도 제 곳을 얻지 못함이 없게 하였다.

이 때문에 이미 돌아가시었는데도 사람들이 그를 사모(思慕)하여 더욱 오래도록 잊지 못함을 말한 것이다.

此兩節은 詠歎淫泆하여 其味深長하니 當熟玩之니라

이 두 절(節)은 영탄(詠嘆)하고 음일(淫泆)하여 그 맛이 깊고 기니, 마땅히 익숙히 보아야 한다.

 

右는 傳之三章이니 釋止於至善하니라.

우(右)는 전문(傳文)의 3장(章)이니, 지어지선(止於至善)을 해석하였다.

 

此章內에 自引淇澳詩以下는 舊本에 誤在誠意章下하니라.

이 장(章) 안에 〈기오시(淇澳詩)〉를 인용한 데서부터 이하는 구본(舊本)에 잘못되어 성의장(誠意章) 아래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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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장 : 治國平天下

所謂 平天下(소위평천하)가 在治其國者(재치기국자)는 上(상)이 老老而民(노로이민)이 興孝(흥효)하고 上(상)이 長長而民(장장이민)이 興弟(흥제)하며 上(상)이 恤孤而民(휼고이민)이 不倍(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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所謂 平天下(소위평천하)가 在治其國者(재치기국자)는

이른바 천하를 평안하게 하는 것이 나라를 다스리는데 있다는 것은

上(상)이 老老而民(노로이민)이 興孝(흥효)하고

임금이 노인을 대접하면 백성들이 효도하는 데 힘쓰고,

上(상)이 長長而民(장장이민)이 興弟(흥제)하며

 임금이 어른을 대접하면 백성들이 공손하는데 힘쓰고,

上(상)이 恤孤而民(휼고이민)이 不倍(불배)하나니

임금이 고아를 불쌍히 여기면 백성들이 배반하지 않는다.

是以(시이)로 君子(군자)는 有絜矩之道也(유혈구지도야)니라.  

 이런 까닭으로 군자에게는 혈구지도(보편적인 법도를 헤아릴 줄 아는 도)가 있는 것이다.

 

所惡於上(소오어상)으로 毋以使下(무이사하)하며

윗 사람이 무례하게 굴어 싫다면 (그것을 잘 헤아려) 그런 식으로 아랫사람을 부리지 말며,

所惡於下(소오어하)로 毋以事上 (무이사상)하며

 아랫사람이 무례하다면 그것을 잘 미루어 윗사람을 그런 식으로 섬기지 말아야 하며

所惡於前(소오어전)으로 毋以先後 (무이선후)하며

앞에 대해 싫다고 생각하는 바가 있다면 그것을 뒤로 돌리지 말 것이며,

所惡於後(소오어후)로 毋以從前 (무이종전)하며

 뒤에 대해 싫다고 생각하는 바가 있다면 그런 식으로 앞을 좇지 말 것이며

所惡於右(소오어우)로 毋以交於左 (무이교어좌)하며

오른쪽에 대해 미워하는 바가 있다면 그런 식으로 왼쪽과 교류하지 말 것이며,

所惡於左(소오어좌)로 毋以交於右 (무이교어우)를

왼쪽에 대해 미워하는 바가 있다면 그런 식으로 오른쪽과 교류하지 않는 것,

此之謂絜矩之道(차지위혈구지도)니라.  

 이것을 일러 혈구지도(보편적인 법도를 헤아릴 줄 아는 도)라고 한다.

 

詩云 (시운) : <시경>에 이르기를

“樂只君子(낙지군자)여 民之父母(민지부모)라"하니

"즐거운 군자여, 백성의 부모로다" 하니

  民之所好(민지소호)를 好之(호지)하며 民之所惡(민지소오)를 惡之(오지)함를

백성들이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며, 백성들이 싫어하는 것을 미워하며,

  此之謂民之父母(차지위민지부모)니라.  

 이것을 말하여 백성들의 부모라고 한 것이다.

 

詩云 (시운) : <시경>에 이르기를

“節彼南山(절피남산)이여 維石巖巖(유석암암)이로다.

"높고 큰 저 남산이여, 우뚝한 바위가 높기도 하구나.

 赫赫師尹(혁혁사윤)이여

빛나는 사윤(주나라의 태사 벼슬을 한 윤씨를 가리킴)이여,

 民具爾瞻(민구이첨)이라"하니

 백성들이 모두 그대를 보고 있네" 라고 하였으니

有國者 不可以不愼(유국자 불가이불신)이니 

나라가 있는 임금은 삼가지 않을 수 없으니 

辟則爲天下谬矣(피즉위천하류의)니라.

도를 잃게 되면 천하를 그르치게 될 것이다.

 

詩云(시운) : <시경>에 이르기를,

"殷之未喪師(은지미상사)에 克配上帝(극배상제)러니 儀監于殷(의감우은)이어다.

"은나라가 백성들의 신임을 잃지 않아 능히 하늘에 짝하였으니

마땅히 은나라를 거울로 삼을지어다. 

 峻命不易(준명불이)라"하니

큰 명(하늘의 뜻)을 받는 것은 쉽지 않으리라" 하니

 道得衆則得國(도득증즉득국)하고

 무리(백성들의 인심)을 얻으면 나라를 얻고

 失衆則失國(실중즉실국)이니라.

 무리(백성들의 인심)를 잃으면 나라를 잃는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是故(시고)로 君子(군자)는 先愼乎德(선신호덕)이니

이런 까닭으로 군자는 먼저 덕을 잃지 않도록 삼가는 것이니

有德(유덕)이면 此有人(차유인)이요 有人(유인)이면 此有土(차유토)요,

덕이 있으면 이에 따르는 사람이 있고, 따르는 사람이 있으면 이에 땅이 있고,

有土(차유토)면 此有財(차유재)요, 有財(유재)면 此有用(차유용)이니라. 

땅이 있으면 이에 재물이 있고, 재물이 있으면 이에 쓰임이 있는 것이다.

 

德者(덕자)는  本也(본야)요 財者(재자)는 末也(말야)니

덕은 근본이요 재물은 말단이니,

外本內末(외본내말)이면

근본을 밖으로 돌리고 말단을 중심으로 여기면

爭民施奪(쟁민시탈)이니라.

백성들을 다투게 하여 서로 빼앗는 짓을 시키는 것이 된다.

是故(시고)로 財聚則民散(재취즉민산)하고

이런 까닭으로 재물이 모이면 (인심을 잃어) 백성들이 흩어지고

財散則民聚(재산즉민취)니라.

재물을 흩어 나누어주면 백성들이 모이게 된다.

是故(시고)로 言悖而出者(언패이출자)는 亦悖而入(역패이입)하고

이런 까닭으로 도리에 벗어나 나간 말은 또한 도리에서 벗어나 들어오고,

貨悖而入者(화패이입자)는 亦悖而出(역패이출)이니라. 

도에 어긋나게 들어온 재화는 또한 도에 어긋나게 나가는 것이다.

 

 

<康誥>(강고)에 (왈) : <강고>에 이르기를

"惟命(유명)은 不于常(불우상)이라"하니

"오직 명(=천명)은 일정하지 않다" 하니

道善則得之(도선즉득지)하고 不善則失之矣(불선즉실지의)니라.

선하면 천명을 얻고 선하지 않으면 천명을 잃는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楚書>(초서)에 (왈) : <초서>(사관이 기록한 초나라의 책서)에 말하기를,

"楚國(초국)은 無以爲寶(무이위보)요 惟善(유선)을 以爲寶(이위보)라"하니라.

"초나라는 특별히 보배로 삼는 것이 없고, 오직 선을 보배로 삼는다" 하였다.

舅犯(구범)이  (왈) : 구범(진나라 문공)이 말하기를,

亡人(망인)은 無以爲寶(무이위보)요, 仁親(인친)을 以爲寶(이위보)라 하니라.

"고국을 떠나 있는 사람은 달리 보배삼을 것이 없고

 어버이께 잘해드리는 것을 보배로 삼으라" 하였다.

 

秦書(진서)에 (왈) :

<진서>(주나라의 책 이름)에 말하기를,

若有一介臣(약유일개신)이 斷斷兮(단단혜)요 無他技(무타기)나

"한 사람의 신하가 한결같이 성실하고 다른 재주가 없으나

其心(기심)이 休休焉(휴휴언)한대 其如有容焉(기여유용언)이라

그 마음이 편안하여 남을 용납함이 있어

人之有技(인지유기)를 若己有之(약기유지)하며

남의 재주 있음을 마치 자기가 있는 것 같이 하며,

人之彦聖(인지언성)을 其心好之(기심호지)가

 남의 선비다움과 지혜로움을 마음으로 좋게 여김이

不啻若自其口出(불시약자기구출)이면 寔能容之(식능용지)라  

 입으로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면 진실로 용납할 수 있어

以能保我子孫黎民(이능보아자손여민)이니 尙亦有利哉(상역유리재)인저.

 우리 자손과 백성들을 능히 보호할 수 있으니 오히려 유익함이 있을 것이다.

人之有技(인지유기)를 媢疾以惡之(모질이오지)하며

 남의 재주 있음을 시기하여 미워하며

人之彦聖(인지언성)을 而違之(이위지)하여 俾不通(비불통)이면 寔不能用(식불능용)이라

 남의 선비다움과 지혜로움을 마음에 들지 않게 여겨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한다면

以不能保我子孫黎民(이불능보아자손여민)이니 亦曰殆哉(역왈태재)인저.

우리 자손과 백성들을 보호할 수 없을 것이니 또한 위태롭다고 하겠다.

 

唯仁人(유인인)이라야 放流之(방유지)하여 迸諸四夷(병제사이)하여

오직 어진 사람이라야 그런 사람을 내쫓아 사방의 오랑캐 지역 밖으로 물리쳐서

不與同中國(불여동중국)하나니  

나라 안에 함께 살지 못하게 할 수 있으니

此謂仁人(차위인인)이라야 爲能愛人(위능애인)하며 能惡人(능오인)이니라.

이것이 어진 사람이라야 능히 사람을 사랑할 수 있으며

능히 사람을 미워할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

 

見賢而不能擧(견현이불능거)하며 擧而不能先(거이불능선)이 命也(명야)요

어진 이를 보고도 기용할 수 없으며 기용하고서도 앞세울 수 없음이 태만함이고,

見不善而不能退(견불선이불능퇴)하며 退而不能遠(퇴이불능원)이 過也(과야)니라.

선하지 못함을 보고도 물리치지 못하며 물리치고도 멀지하지 못함이 과오이다.

好人之所惡(호인지소오)하며 惡人之所好(악인지소호)를

사람들이 싫어하는 바를 좋아하며 사람들이 좋아하는 바를 싫어하는 것을

是謂拂人之性(시위불인지성)이라 災必逮夫身(재필체부신)이니라.

이른바 불인지성(사람의 본성에 거슬리는 것)이라고 하는데, 반드시 재앙이 미칠 것이다.

是故(시고)로 君子有大道(군자유대도)하니

이런 까닭으로 군자에게는 대도(먼저 자신을 수양하고서 남을 다스리는 도)가 있으니,

必忠信以得之(필충신이득지)하고 驕泰以失之(교태이실지)니라.   

반드시 충직과 신의로써 대도를 얻고 교만과 방자함으로써 잃게 된다.

 

生財有大道(생재유대도)하니 生之者衆(생지자중)하고 食之者寡(식지자과)하며

재화를 생산하는데 큰 도가 있으니 생산하는 사람은 많고 소비하는 자는 적으며,

爲之者疾(위지자질)하고 用之者舒(용지자서)하면 則財恒足矣(즉재항족의)리라.

일하는 자는 빠르고 소비하는 자는 느리다면 재화는 항상 풍족할 것이다.

 

仁者(인자)는 以財發身(이재발신)하고 不仁者(불인자)는 以身發財(이신발재)니라.

어진 이는 재물을 흩어 몸을 일으키고 어질지 못한 이는 몸을 망쳐 재물을 모은다.

未有上好仁而 下不好義者也(미유상호인이하불호의자야)니

임금이 인을 좋아하는데 의를 좋아하지 않는 신하는 없으니,

未有好義 其事不終者也(미유호의 기사불종자야)며

의를 좋아하면서 맡은 일을 끝까지 해내지 않는 신하가 없으며,

未有府庫財 非其財者也(미유부고재 비기재자야)니라. 

나라 창고의 재물을 자기 재물처럼 아끼지 않는 신하가 없는 법이다.

 

孟獻子 曰(맹헌자 왈) : 맹헌자(노나라의 어진 대부)가 말하기를,

“畜馬乘(축마승)은 不察於鷄豚(불찰어계돈)하고

"말을 길러 수레를 타고 다니는 대부는 닭이나 돼지를 살피지 아니하고

 伐氷之家(벌빙지가)는 不畜牛羊(불축우양)하고

 벌빙지가(제사에 얼음을 쓰는 경대부 이상의 계급)는 소나 양을 기르지 아니하고

 百乘之家(백승지가)는 不畜聚斂之臣(불축치렴지신)하나니

 백승지가는 취렴지신(백성의 재물을 빼앗아 윗 사람에게 아첨하는 신하)을 두지 않나니,

 與其有聚斂之臣(여기유취렴지신)으론 寧有盜臣(영유도신)이라"하니

 취렴지신을 둘 바에는 차라리 도둑질하는 신하를 둘 것이다" 하니

 此謂國(차위국)은 不以利爲利(불이리위리)요 以義爲利也(이의위리야)니라.   

 이것은 나라는 이익으로써 이로움을 삼지 말고 의리로써 이로움을 삼아야 함을 말한 것이다.

 

長國家而務財用者(장국가이무재용자)는 必自小人矣(필자소인의)니

국가의 임금으로서 재물을 쓰는데 힘쓰는 것은

반드시 소인배같은 신하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니

小人之使爲國家(소인지사이국가)면 災害幷至(재해병지)라

소인에게 국가를 다스리게 한다면 여러 가지 재해가 아울러 닥치게 된다.

雖有善者(수유선자)나 亦無如之何矣(역무여지하의)니

비록 선한 사람이 있다 해도 (너무 늦어) 또한 어찌할 수 없을 것이다.

此謂爲國(차위위국)은 不以利爲利(불이리위리)요

이것은 국가는 이익으로써 이로움을 삼아서는 안 되고,

以義爲利也(이의위리야)니라.  

의리로써 이로움을 삼아야 한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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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장 : 齊家治國

所謂治國(소위치국)이 必先齊其家者(필선제기가자)는 其家(기가)를 不可敎(불가교)요 而能敎人者 無之(이능교인자 무지)하니 故(고)로 君子(군자)는 不出家而成敎於國(불출가이성교어국)하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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所謂治國(소위치국)이 必先齊其家者(필선제기가자)는

이른바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 반드시 먼저 집안을 가지런하게 하는 데 있다는 것은

其家(기가)를 不可敎(불가교)요 而能敎人者 無之(이능교인자 무지)하니

자기 집안 사람들을 교화할 수 없으면서 남을 교화할 수 있는 사람이 없으니

故(고)로 君子(군자)는 不出家而成敎於國(불출가이성교어국)하나니

그러므로 군자는 집안을 나서지 않아도 교화를 나라에 이루나니

孝者(효자)는 所以事君也(소이사군야)요, 弟者(제자)는 所以事長也(소이사장야)요,

효도는 임금을 섬기는 바탕이 되며, 공손함은 어른을 섬기는 바탕이 되고,

慈者(자자)는 所以事衆也(소이사중야)니라. 

자애는 대중을 위하는 바탕이 된다.

 

<康誥>(강고)에 曰(왈) : <강고>에 이르기를

"如保赤子(여보적자)라"하니

"갓난아이를 보살피듯 하라" 하니

 心誠求之(심성구지)면

 정성어린 마음으로 나라를 다스리고자 하면

 雖不中(수불중)이나 不遠矣(불원의)니

 비록 완전하지는 않다 하더라도, 도에서 멀지 않을 것이니

 未有學養子而后(미유학양자이후)에 嫁者也(가자야))니라.

 자식 기르기를 배운 뒤에, 시집가는 사람이 없는 것과 같다.

 

一家 仁(일가 인)이면 一國(일국)이 興仁(흥인)하고

한 집안이 인하면 나라 전체에 인이 일어나게 되고

一家 讓(일가 양)이면 一國(일국)이 興讓(흥양)하고

한 집안이 양보하면 나라 전체에 양보가 일어나게 되고

一人(일인)이 (탐)하면 一國(일국)이 作亂(작난)하나니

한 사람이 탐욕하면 나라 전체가 어지러워 질 것이니

其機如此(기기여차)하니 此謂一言(차위일언)이 僨事(분사)며

그 조짐이 이와 같으니, 이것은 한 마디의 말이 일을 그르치며

一人(일인)이 定國(정국)이니라.  

한 사람이 나라를 안정시킨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堯舜(요순)이 帥天下以仁(수천하이인)하신대 而民(이민)이 從之(종지)하고

요순(고대의 성왕)이 천하를 인으로 다스리니 백성들이 따르고

桀紂(걸주)가 帥天下以暴(수천하이포)한대 而民(이민)이 從之(종지)하니

걸주(고대의 폭군)가 포악함으로 천하를 다스리니 백성들이 따르니

其所令(기소령)이 反其所好(반기소호)면 而民(이민)이 不從(부종)하나니

명령하는 바가 좋아하는 바에 반하면 백성이 따르지 않는다.

是故(시고)로 君子(군자)는 有諸己而後(유저기이후)에 求諸人(구제인)하며

이런 까닭으로 군자는 자기에게 갖추고 난 뒤에 남에게 갖추도록 하며

無諸己而後(무제기이후)에 非諸人(비저인)하나니

자기에게 갖추어 있지 않다면 남에게 갖추도록 하지 않는다.

所長乎身(소장호신)이 不恕(불서)요 而能喩諸人者 未之有也(이능유제인자 미지유야)니라.

자기의 좋은 점을 밝게 알지 못하고서,

자기 장점을 남에게 깨우쳐 줄 수 있는 사람은 없는 것이다.

(고)로 治國(치국)이 在齊其家(재가기가)니라.

그러므로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 자기 집안을 가지런히 하는데 있다.

 

詩云 (시운)에 : <시경>에 이르기를,

"桃之夭夭(도지요요) 其葉蓁蓁(기업진진) 이로다.

 "아름답고 고운 복숭아 나무여, 잎이 무성하구나.

 之子于歸(지자우귀) 宜其家人(의기가인)이라"하니

 화창한 봄날에 시집가는 딸이여, 그 집안을 화목하게 하겠네"라고 하니

 宜其家人而后(의기가인이후) 可以敎國人(가이교국인)이니라.  

집안을 화목하게 한 뒤에 나라 사람들을 교화할 수 있을 것이다.

 

詩云 (시운)에 : <시경>에 이르기를

"宜兄宜弟(의형의제)"하니,

"형과 화목하고 아우와 화목한다" 하니,

 宜兄宜弟而后(의형의제이후) 可以敎國人(가이교국인)이니라.

 형과 화목하며 아우와 화목한 후에 나라 사람들을 교화할 수 있을 것이다.

 

詩云(시운) : <시경>에 이르기를

其儀不(기의불특)이라 正是四國(정시사국)이라하니

거동이 어긋나지 않으니 나라 사방을 바르게 하리라" 하니,

 其爲父子兄弟 足法而后(기위부자형제 족법이후) (민) 法之也(법지야)니라.    

 부자형제 되는 사람들이 본받을 만한 뒤에 백성들이 본받게 된다.

 此謂 治國(차위치국) 在齊其家(제가기가)니라.

 이것은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 집안을 가지런히 하는 데 있음을 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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