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불신앙
『삼국유사』 오대산 기록의 원본과 『오대산사적』의 원본은 모두 8세기 후반 이후에 쓰여졌고, 신라인이 당의 오대산을 인식하기 시작한 것도 8세기 후반이다. 이후 신라인들 가운데 당의 오대산을 찾은 이들이 많아졌고, 늦어도 9세기 중반 무렵에는 신라 땅에 오대산이 이식되어 지금의 강원도 오대산이 오대로 불리게 되었다. 해인사 인근에 오대산사라는 이름을 가진 사찰도 등장하였다. 고려전기에도 오대산신앙은 계속 이어진 것으로 보이지만 흔적이 미미하다. 그러다 13세기 후반~14세기에 이르러 많은 기록이 나오는데, 이는 보살주처신앙의 유행 때문이었다. 『삼국유사』에 오대산 기록이 많이 수록된 것도 보살주처신앙의 유행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한편 돈황의 <오대산도> (10세기 무렵)에, 신라왕자 및 신라 사신이 오대산을 다녀갔다는 기록이 있다. 여기에 나오는 신라왕자가 慈藏이라는 견해가 있다. 그런데 최근 중국 오대산신앙의 형성 시기에 대한 연구에 의하면 자장이 입당한 때는 오대산 聖山化를 위한 설화들이 만들어지기 이전이고, 오대산 순례를 위한 인프라도 구축되기 이전이라고 한다.
『삼국유사』에서 오대산신앙을 신라에 전한 이가 慈藏이라고 한 것은 설화적 성격이 강하다. 만약 돈황에서 <오대산도>를 그릴 때 ‘신라왕자 자장’이 당의 오대산에 왔다는 인식이 있었다면, 이는 당의 오대산 설화를 모티브로 하여 신라에서 만들어진 오대산 관련 설화들이 당으로 전해진 결과이지 않을까 한다. 앞으로 이러한 설화들이 어떠한 배경 속에서 만들어졌는가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삼국유사의 오대신앙 vs 당나라 징관의 오대산신앙
삼국유사의 오대신앙 | 당나라 징관의 오대산신앙 | |
동 | 관음보살 | 아촉불 |
서 | 무량수불 | 무량수불 |
남 | 지장보살 | 보생불 |
북 | 석가불 | 불공성취불 |
중앙 | 비로자나불 | 비로자나불 |
pub.chosun.com/client/news/viw.asp?cate=C05&nNewsNumb=20151218915&nidx=18916
중국인들은 “금의 오대산(金五臺), 은의 아미산(銀峨眉), 동의 보타산(銅普陀), 철의 구화산(鐵九華)”이라는 말로 중국 4대 불교명산의 순서를 매긴다. 보타산의 문수보살도 오대산에서 가져간 것이라고 전한다.
또한 네팔 룸비니 가든, 인도 녹야원, 보리 가야, 쿠시나가와 더불어 오대산이 세계 5대 불교성지로 일컬어지고 있다.
www.mk.co.kr/news/world/view/2017/03/157402/
동대 망해봉, 서대 괘월봉, 남대 금수봉,북대 협두봉,중대 취암봉
오대산의 다섯자락 산봉우리는 각각 문수보살의 법신 5개를 받들었다고 해서
동태망해사공총명문수(东台望海 寺供聪明文殊),
남태보제사공지혜문수(南台普济寺供智慧文殊),
서태법뢰사공사자후문수(西台法雷寺供狮子吼文殊),
북태령응사공무구문수(北台灵应寺供无垢文殊),
중태연교사공유동문수(中台演教寺供孺童文殊)인
오방문수(五方文殊)라고도 불린다.
www.youtube.com/watch?v=q1SD2a9A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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