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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련불교논집 2집.1992.

方仁* , 新羅 佛敎思想史의 太賢 唯識學의 意義

*경북대 철학과 교수

 Ⅰ. 서론   

Ⅱ. 太賢(태현)의 저술목록과 그 체계   

Ⅲ. 相宗(상종)과 性宗(성종)에의 귀속문제
       2_p (2/3) 두 번쩨 페이지 
       중간 ㉮>계속>첫 번째     중간 ㉯>두 번째     중간 ㉰>세 번째     

Ⅳ. 新羅唯識思想史(신라유식사상사)에서의 太賢(태현)의 위치     중간>元曉(원효)는 그의
       3_p (3/3) 세 번째 페이지 
       중간 ①>화엄종의 융성은 ~     중간 ②>서명학파에는 ~     중간 ③>유식론의 대표적 ~
          

Ⅴ. 결론

 

Ⅰ. 서론
 

본 논문의 목적은 신라의 유식학자(唯識學者)이던 승려 태현(太賢)의 학문적 성향과 그의 학문적 계통에 대한 탐구이다. 사실 태현은 결코 우리에게 그다지 잘 알려진 학자라고는 할 수 없겠다.
 
그는 當代(당대)에 있어서도 혹은 그 이후로도 元曉(원효)나 義相(의상) 등이 누렸던 대중적 인기를 얻지 못하였으며, 학문적 평가에 있어서도 불교학의 最高(최고)의 수준을 드러내는 것으로 주목을 받지 못하였던 것이 사실이었다.
 
태현의 학문적 활동의 주된 영역은 唯識學(유식학)이었으나 한국의 唯識學(유식학)의 계보에 있어서도 태현은 원측(圓測)의 저 밑에 깔려 제대로 주목조차 받아오지 못해왔던 것이 사실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근 몇몇 학자들의 진지한 학구적 탐구에 의해서 태현에 대한 진지한 탐구가 행해진 것은 실로 한국 불교학의 연구를 위해 다행한 일이다. 태현은 우리가 망각하고 있었다고 해서 결코 망각 속으로 사라져 버려도 좋은 그러한 사상가는 아니다.
 
단순히 저술의 量的(양적)인 측면에서 판단해 보더라도 그는 다른 어느 사상가에도 뒤지지 않는 대저술가였으며, 質的(질적)인 측면에서도 그의 유식학은 매우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그렇게 판단하는 이유는
 
첫째, 그가 방대한 양의 유식학의 기본문헌을 통독하고 자유롭게 인용할 만한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는 점이며,
 
둘째는 그가 唯識(유식)의 사상사적 발달과정에 대해서도 정확한 식견(識見)을 가지고 있어서 중국과 신라의 사상계적 동향뿐만 아니라 인도불교의 원류에까지도 깊은 관심을 가지고 깊은 지식을 축적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셋째는 그가 다른 亞流(아류)들과는 달리 窺基(규기)나 圓測(원측)과 같은 大家(대가)의 견해에 휩쓸리지 않고 언제나 자기 스스로의 견해를 확립해 나갔던 주체적인 사상가라는 점이다.
 
본 논문의 일차적인 목적은 불교학자로서의 태현사상의 발달과정을 추적함으로써 그의 학적 성격을 명확히 하는 것이다. 태현은 唯識(유식)학자로서 명성을 떨쳤으나 그의 유식학의 내용은 아직 충분히 규명되지 못한 것이 사실이고 태현의 불교사상의 형성과정도 많은 논란 속에 의문에 싸여 있다.
 
특히 태현의 학적 계보가 性宗(성종)에 속하느냐 相宗(상종)에 속하느냐 하는 것은 태현사상의 발달과정이나 그의 사상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서도 명확히 규명되지 않으면 안될 성질이라고 하겠다.
 
필자는 이러한 작업이 태현의 唯識學(유식학)의 본질을 밝히기 위해서 선행되어야 할 작업이라고 생각하고 이 기초 위에서 그의 유식학의 학적 성격을 규명하려고 하는 것이다.
 
                  Ⅱ. 太賢의 저술목록과 그 체계
 
태현의 학적 성격을 규명할 수 있는 일차적인 자료는 먼저 태현의 저술목록이다.
 
태현의 저술목록은 현존하는 저술들과 명칭만 남아있는 저술들의 두 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현존하는 저술의 내용을 분석하기 이전에, 우리가 일차적으로 해야 할 일은 그의 저술의 총목록의 내용을 먼저 계통별로 분류하여 이를 기초로 그의 학문의 성격을 추정하고 분석해보는 일일 것이다.
 
먼저 그의 저술은 전부 총 54종의 방대한 것인데 이를 학문적 계통에 따라 분류를 시도하여 보자.
 
1) 戒律(계율) 관계(3종류)
      ① 梵網經宗要(범망경종요)      ② 梵網經戒本宗要(범망경계본종요)
      ③ 梵網經古迹記(범망경고적기)
 
2) 淨土宗(정토종) 계통(8종류)
     ① 觀無量壽經古迹記(관무량수경고적기)     ② 大無量壽經古迹記(대무량수경고적기)
     ③ 小無量壽經古迹記(소무량수경고적기)     ④ 稱讚淨土經古迹記(칭찬정토경고적기)
     ⑤ 淨土總料簡(정토총료간)                       ⑥ 阿彌陀經古迹記(아미타경고적기)
     ⑦ 彌勒上生經古迹記(미륵상생경고적기)     ⑧ 彌勒下生經古迹記(미륵하생경고적기)
 
3) 起信論(기신론) 계통(2종류)
     ① 起信論古迹記(기신론고적기)     ② 起信論內義略探記(기신론내의략탐기)
 
4) 華嚴宗(화엄종) 계통(2종류)
     ① 華嚴經古迹記(화엄경고적기)     ② 佛地論古迹記(불지론고적기)
 
5) 中觀(중관) 및 般若思想(반야사상) 계통(6종류)
태현의 저술 중에서 반야사상 및 중관 계통에 속한다고 볼 수 있는 문헌은 다음과 같다. 이것은 般若經(반야경) 계통의 경전에 대한 주석과 중관사상가들의 논서에 대한 주석서로 구성돼 있으며,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분량이다.
 
주목할 만한 사실은 淸辨(청변; Bhavaviveka)의 著(저) 大乘掌珍論(대승장진론)에 대한 주석인 掌珍論古迹記(장진론고적기)가 있으며, 月稱(월칭;Candrakirti)의 著(저) 五蘊論(오온론; Pancaskandhaprakarana)에 대한 주석인 五蘊論古迹記(오온론고적기)가 있다는 점이다.
 
이것으로 보아 태현이 中觀思想(중관사상)에 대해서도 상당한 관심을 가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① 掌珍論古迹記(장진론고적기)          ② 般若理趣分經注(반약리취분경주)
     ③ 般若心經古迹記(반약심경고적기)    ④ 般若心經注(반약심경주)
     ⑤ 金剛經古迹記(금강경고적기)          ⑥ 五蘊論古迹記(오온론고적기)
 
6) 불교논리학(因明學;인명학) 계통(6종류)
이것은 불교논리학의 분야인 因明(인명) 계통에 관한 것으로서 주로 陳那(진나;Dignaga)의 저술에 관한 것이다. 여기에는 商갈羅主(상갈라주;Sankarasvamin)의 저서 因明正理門論(인명정리문론)에 대한 古迹記(고적기)도 포함되어 있다.
 
     觀所緣論古迹記(陳那 著, {觀所緣論})관소연론고적기(진나 저, {관소연론})
      正理門論古迹記(陳那 著, {正理門論})정리문론고적기(진나 저, {정리문론})
      因明入正理論古迹記(商라羅主 著, {因明正理門論})인명입정리론고적기(상갈라주 저, {인명정리문론})
      因明論古迹記(인명론고적기)
      因明理門古迹記(인명리문고적기)
      因明正理古迹記(인명정리고적기)
 
7) 唯識(유식) 계통(19종류)
그의 저술 중 상당한 부분이 唯識(유식)에 속한다. 唯識學(유식학)은 그 학문의 주 분야라고 할 수 있으므로 그의 유식학의 성격을 알기 위해서 좀더 세심한 분류가 필요하다.
 
   7-1) 初期 唯識(초기 유식) 계통(4종류)
여기서 初期(초기) 유식이라고 함은 彌勒(미륵)에 의한 유식저술 등을 가리킨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瑜伽論迹記(유가론고적기)        瑜伽論纂要(유가론찬요)
     中邊論古迹記(중변론고적기)     邊中邊論古迹記(변중변론고적기)
 
   7-2) 中期 唯識(중기 유식) 계통(7종류)
중기 유식의 문헌은 주로 無着(무착)과 世親(세친)의 저술을 가리킨다. 이에 대한 태현의 주석은 다음과 같다.
 
   7-2-1) 無着(무착) 저술에 대한 주석
     攝大乘論無性釋論疏(섭대승론무성석론소)
     顯揚(聖敎)論古迹記;현양(성교)논고적기
     雜集論古迹記(잡집론고적기)                 對法論古迹記(대법론고적기)
 
   7-2-2) 世親(세친) 저술에 대한 주석
     攝大乘論世親釋論古迹記(섭대승론세친석론고적기)
     唯識二十論古迹記(유식이십론고적기)     成業論古迹記(성업론고적기)
 
   7-3) 後期 唯識(후기 유식) 계통(8종류)
後期(후기) 유식은 護法(호법;Dharmapala) 계통의 唯識(유식)을 가리킨다.
     廣百論古迹記 _(大乘廣百釋論에 대한 古迹記)
     광백론고적기 _(대승광백석론에 대한 고적기)
     成唯識論古迹記(성유식론고적기)     成唯識論學記(성유식론학기)
     成唯識論開發章(성유식론개발장)     成唯識論決擇(성유식론결택)
     廣釋本母頌(광석본모송)                 大乘心路章(대승심로장)
     大乘一味章 _(단 大乘心路章과 大乘一味章은 廣釋本母頌의 다른 명칭일 수 있음)
     대승일미장 _(단 대승심로장과 대승일미장은 광석본모송의 다른 명칭일 수 있음)
 
8) 기타(8종류)
     法華經古迹記(법화경고적기)     跡槃經古迹記(적반경고적기)
     金光明經述記(금광명경술기)     金光明經料簡(금광명경료간)
     仁王經古迹記(인왕경고적기)     藥師經古迹記(약사경고적기)
     百法論古迹記(백법론고적기)     釋名章(석명장)
 
태현의 저술을 이렇게 분류해봄으로써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
위에 열거한 태현의 저술목록이 태현의 저술경향을 완전히 대변해 주지 못할 가능성은 있다. 왜냐하면 태현의 저술목록 중에서 逸失(일실)되어버린 부분이 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以上(이상)의 54종에 이르는 태현의 저술목록은 설령 그의 저술의 全(전) 체계를 모두 나타내주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그의 전반적인 저술성향을 거의 대변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도 무리가 없으리라 생각된다.
 
따라서 우리는 以上(이상)의 저술목록을 통해서 태현의 불교학의 성격을 판단해보기로 한다. 이들 54종의 저서를 분류해본다면 유식에 관련된 것이 모두 19종류로서 제일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서 역시 唯識學(유식학) 분야가 그의 주된 분야였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이 밖에 唯識學(유식학)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는 因明(인명)의 분야도 모두 6종류에 달한다. 因明(인명)이 唯識(유식)을 이해하기 위한 보조적인 성격을 띠고 있었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唯識學(유식학) 관계의 연구는 태현의 학문업적의 절반 以上(이상)을 차지하고 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唯識(유식), 因明(인명)을 제외하고 그 다음으로 많은 것은 淨土宗(정토종)에 관한 것으로서 모두 8종류에 달한다. 淨土(정토)사상에 관한 태현의 현존저술이 남아있지 않기 때문에 그 내용은 알 수 없으나 어痔(치)든 이에 대한 태현의 관심이 상당히 높았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般若思想(반야사상)에 관한 것이 모두 6종류로서 크게 보아 中觀(중관)사상의 범주에 들어간다고 보아도 좋을 것 같다. 여기에 속하는 것으로는 般若心經(반야심경)과 金剛經(금강경) 같은 경전에 대한 주석이 남아있다.
 
또 起信論(기신론)에 관한 것이 2종류, 華嚴經(화엄경)에 관한 것이 2종류 남아있는데 이들 저서들은 태현의 사상적 경향을 아는 데 있어서 큰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태현을 性宗(성종)의 경향성을 지닌 인물로 규정함에 있어 이들 저서들의 존재는 중요한 근거로 간주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이외에도 梵網經(범망경) 等(등) 戒律(계율)에 관한 것이 3종류가 있으며, 기타 6종류가 더 있다.
 
그런데 以上(이상)의 저술들 중에서 현존하는 것은 成唯識論學記(성유식론학기) · 菩薩戒本宗要(보살계본종요) · 梵網經古迹記(범망경고적기) · 藥師經古迹記(약사경고적기) · 起信論內義略探記(기신론내의략탐기) 等(등)의 모두 다섯 종류밖에 없어서 태현 사상의 전모를 살피는 데에는 한계로서 작용하고 있다.
 
以上(이상)의 문헌목록의 분석에서 제일 현저한 특징으로 부각되는 것은 역시 유식관계 저술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이다. 因明(인명)이 唯識(유식)을 이해하기 위해 병행해서 연구되었다는 것까지 감안한다면 그의 유식에 관한 관심은 실로 압도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또 유식에 대한 저술을 다시 세분하여 본다면 彌勒(미륵)에 관한 것이 4종류, 無着(무착)의 저술에 관한 것이 4종류, 世親(세친)의 저술에 관한 것이 3종류, 護法(호법)의 저술에 관한 것이 8종류이다.
 
彌勒(미륵)을 唯識(유식)사상발달사의 초기인물로, 그리고 無着(무착)과 世親(세친)을 유식학이 본격적으로 전개된 中期(중기)인물로 보고, 또 護法(호법)을 그 이전의 舊唯識(구유식)을 발전시켜 新唯識(신유식)을 전개한 後期(후기)인물로 본다면 唯識 前期(유식 전기)에 속한 것이 4종류, 유식 中期(중기)에 속한 것이 7종류, 유식 後期(후기)에 속한 것이 8종류가 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순전히 저술의 분량으로만 판단해본다면 태현은 舊唯識(구유식)과 新唯識(신유식)에 골고루 관심을 가졌던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태현이 成唯識論(성유식론)에 관한 것만 모두 7종의 저술을 했다는 것을 고려해보면 성유식론에 대한 관심은 다른 어느 문헌보다도 각별했다고 볼 수 있겠다.
 
따라서 假說的(가설적)으로 추정해본다면 태현이 비록 유식사상발달사의 모든 시기에 관심은 갖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역시 후기 유식의 입장, 즉 호법의 견해를 정통적인 관점으로 채택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느냐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가설은 그의 현존저술인 成唯識論學記(성유식론학기)의 세밀한 연구를 통해서만 입증될 수 있음이 틀림없다.
 
두번째로 말할 수 있는 태현저술의 특징은 그의 불교연구가 매우 포괄적이며 종합적이라는 점이다. 즉 그의 저술은 물론 唯識(유식)관계가 상당부분을 차지하고는 있지만 그밖의 분야에서는 淨土宗(정토종)으로부터 華嚴宗(화엄종) · 中觀(중관) · 起信論(기신론) · 戒律(계율)사상 등 실로 다양한 계통의 문헌에까지 미치고 있다.
 
사실 태현의 이러한 종합적인 경향은 이미 태현 以前(이전)의 신라불교에서 일반적으로 관찰될 수 있는 현상이다. 특히 元曉(원효)에게는 이러한 경향은 현저하게 드러난 바 있다.
 
따라서 이러한 종합적인 태도는 동 시대의 중국불교나 일본불교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것이므로 신라불교의 고유의 특징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Ⅲ. 相宗과 性宗에의 귀속문제;(상종과 성종에의...)
 
대부분의 학자들이 태현이 유식학자라는 데는 기본적으로 동의하는 바, 이것은 앞에서 살펴 본 것처럼 唯識學(유식학)에 관한 그의 방대한 저서로도 쉽게 확인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학문적 계통을 둘러싸고 구구한 논의가 펼쳐져 온 것은 무엇 때문인가 ?
 
이러한 논의는 주로 태현의 유식학자로서의 측면이 그의 본래 모습인가, 아닌가를 둘러싸고 행해졌다. 或者(혹자)는 태현은 시종일관 유식학자였다고 주장하고, 或者(혹자)는 唯識學(유식학)은 태현의 後期(후기)의 입장만을 대변한다고 주장하였다.
 
반면에 趙明基(조명기)는 태현이 원래 어느 학파에 치우친 사람이 아니며 융합적이고 종합적인 사상가라고 주장한다. 이 입장에서 본다면 유식학은 태현의 융합적이고 종합적인 체계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게 된다. 이 논의는 태현의 性宗(성종)과 相宗(상종)의 귀속논쟁의 형식으로 발전하였다.
 
그러면 이 논쟁의 성격을 해명하기 위해서 먼저 性宗(성종)과 相宗(상종)이라는 용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먼저 규명해볼 필요가 있다. 性(성)을 相(상)에 대응되는 말로 본다면 性宗(성종)은 相宗(상종)에 대응되는 말이다. 그렇다면 性宗(성종)은 法性宗(법성종)을, 相宗(상종)은 法相宗(법상종)을 뜻하는 것이 된다.
 
法相宗(법상종)이 唯識(유식)의 종파 혹은 護法(호법)의 교리를 중심으로 해서 중국의 현장과 窺基(규기)가 성립시킨 新唯識(신유식)의 宗派(종파)를 가리킨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문제는 性宗(성종)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있다.
 
性(성)이란 무엇인가 ?
첫째로 性(성)은 法性(법성), 혹은 佛性(불성)의 略語(약어)이다. 性(성)이란 萬有諸法(만유제법)의 진실한 體性(체성)으로서 현상세계의 차별적 모습을 초월한 모습을 말한다고 한다. 性(성)은 法의 自體(자체) 안에 있어서 고치지 못하는 것인데 반해서, 相(상)은 외부로 드러나는 모습이라고도 한다.
 
이런 경우 性宗(성종)은 本體論(본체론), 相宗(상종)은 現象論(현상론)을 뜻하는 것이 된다. 性(성)을 無爲法(무위법)으로, 相(상)을 有爲法(유위법)으로 해석하는 것도 동일한 관점이다.
 
둘째로 唯識(유식)과 俱舍(구사)를 합하여 性相(성상)이라고 부르는 경우이다. 그 경우 唯識(유식)은 相(상), 俱舍(구사)는 性(성)이 되어 서로 상보적인 관계로 간주된다. 이 두 경우의 性(성)개념은 일치한다고는 볼 수 없겠다.
 
한편 이것을 宗派的(종파적)으로 분류해본다면 法性宗(법성종)은 i樹(수), 提婆(제파), 淸辨(청변)의 계통을 말하는데 이때는 中觀派(중관파)에 대한 別稱(별칭)이 되는 셈이다.
 
이런 경우의 法性宗(법성종)은 識(식)만이 존재한다고 하는 唯識學派(유식학파)의 현상이론에 대립되며, 諸法(제법)의 實相(실상)은 空(공)이라고 하는 본체론을 뜻하는 것이 된다.
 
한편으로 三論宗(삼론종), 華嚴宗(화엄종), 眞言宗(진언종), 天台宗(천태종) 등을 性宗(성종)에 포함시키기도 하는데, 이 경우 性宗(성종)은 中觀(중관)의 敎說(교설)로부터 三論宗(삼론종), 華嚴宗(화엄종), 眞言宗(진언종), 天台宗(천태종)에서부터 起信論(기신론)까지를 포함한 것이 된다.
 
그런데 中觀(중관)불교와 三論宗(삼론종), 天台宗(천태종)을 일련의 유사한 흐름으로 묶어 볼 수는 있겠지만 華嚴宗(화엄종), 眞言宗(진언종), 起信論(기신론) 계통 등을 같은 흐름으로 묶어 범주화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이것은 중국불교적인 혼융적인 분류체계에서나 동일시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以上(이상)의 논의를 통해서 우리는 相宗(상종)이란 法相宗(법상종), 즉 唯識派(유식파)를 지칭한다는 데는 아무런 異議(이의)가 있을 수 없을 만큼 명확한 개념이지만, 性宗(성종)의 개념은 그렇게 명확하지 않은 복합적인 개념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澄觀(징관)의 저서 華嚴綱要(화엄강요)에서는 法性宗(법성종)과 法相宗(법상종)의 차이를 열 가지로 구분하고 있지만, 性宗(성종)과 相宗(상종)의 차이를 객관적으로 규명하는 데는 큰 도움은 못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華嚴家(화엄가)의 입장에서 자기자신을 우위에 놓고 다른 종파를 차별적으로 열등하게 평가하려는 의도에서 씌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어痔(치)든 태현의 해석가들 중 일부는 그의 저술 중 특히 華嚴(화엄)과 起信論(기신론), 中觀(중관) 등에 대한 관심을 묶어 性宗的(성종적) 경향이라고 명명한다.
 
태현의 경우에 性宗(성종)의 범주를 적용해본다면 태현에게는 般若(반야) 계통에서부터 華嚴(화엄) 계통까지의 주석문헌이 골고루 있기 때문에, 위에서 언급한 性宗(성종)에 포섭되는 일련의 경향성이 그에게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사실 그가 젊은 시절에 화엄을 공부하였다는 점은 많은 학자들에 의하여 지적된 바 있기도 하다.
 
그러나 華嚴(화엄)과 起信論(기신론)은 엄밀하게 보면 꼭 같은 계통에 속한다고 보기에는 어렵다. 문제는 性宗(성종)의 범주가 하나의 단일한 개념을 제시하지 않을 때 태현의 저술에서 발견되는 性宗的(성종적) 경향이 무엇을 뜻하느냐 하는 점이다.
 
어痔(치)든 華嚴(화엄)이나 起信論(기신론)을 性宗(성종)에 속하는 일련의 것으로 본다면, 이에 대한 태현의 주석을 검토한다면 태현의 性宗的(성종적) 경향이 무엇을 뜻하는지 분석해 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華嚴(화엄)에 관한 그의 주석은 남아있지 않으므로, 태현의 저술 중에서 起信論(기신론)에 관해 남아있는 유일한 현존저술인 [大乘起信論內義略探記(대승기신론내의략탐기)]를 분석하여 그것이 그의 唯識思想(유식사상)과 동일한 사상적 경향에 포함되는지, 아니면 어떤 차이를 보이고 있는지를 알아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면 太賢(태현)의 相宗(상종)과 性宗(성종)의 학파에의 歸屬(귀속)문제를 논하고 있는 관점들을 정리해 보기로 하자.
 
첫번째 관점은 高翊晋(고익진) 등에 의해 주장되었다. 고익진은 太賢(태현)을 가장 체계적으로 華嚴(화엄)에 도전한 유식승이라고 규정한다. 이 입장에 따르면 태현은 본래부터 瑜伽(유가)의 사상가로서, 瑜伽(유가)사상이 최고의 殊勝(수승)한 가르침임을 한번도 의심하지 않았던 전형적인 唯識家(유식가)라는 것이다.
 
태현의 저술목록에는 起信論內義略探記(기신론내의략탐기)와 더불어 華嚴經古迹記(화엄경고적기)가 포함되어 있어 마치 元曉(원효)의 저술태도와 아주 유사한 느낌을 준다. 왜냐하면 원효와 태현은 모두 유식과 화엄 양쪽에 대해 저술을 남겼기 때문이다.
 
따라서 두 가지 推論的 假說(추론적 가설)이 모두 성립된다. 첫째는 태현과 원효 두 사람이 모두 唯識家(유식가)라는 것이다. 실제로 고려 顯宗(현종; 1038∼1096)대의 韶顯(소현)이 '曉法師導之於前 賢大師踵之於後(효법사도지어전 현대사종지어후)'라고 본 것은 두 사람을 모두 유식가로 본 것이다.
 
반면 일본의 華嚴宗所立五敎十宗大意略抄(화엄종소립오교십종대의략초)에서는 華嚴宗祖師(화엄종조사) 속에 원효와 태현을 모두 포함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두 사람을 이렇게 화엄학이나 유식학의 양 계보 중 어느 하나에 같이 포섭시킬 수는 없으며 저술의 종류만 가지고는 두 사람의 경향을 단정할 수는 없으며 저술의 내용을 분석하기 前(전)에는 두 사람의 학문적 경향을 추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고익진은 태현의 起信論(기신론)에 관한 주석인 起信論內義略探記(기신론내의략탐기)가 그의 性宗的(성종적) 기질을 나타낸다기보다는 사실은 그의 유식가적 입장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華嚴宗(화엄종)에서는 五敎判(오교판)을 세워 小乘(소승) · 始敎(시교) · 終敎(종교) · 頓敎(돈교) · 圓敎(원교)로 교리간의 우열을 가리고 있거니와, 태현은 唯識(유식)을 大乘初敎(대승초교)로 평가절하하고 있는 華嚴家(화엄가)의 해석에 맞서서 大乘圓敎(대승원교)로 파악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고익진이 당시 신라 불교학계의 사상적 상황이었으리라고 대담하게 假定(가정)하고 있는 情況(정황)은 다음과 같다. 義相(의상), 원효 등에 의하여 전개된 화엄사상은 신라의 전통 瑜伽(유가)사상에 충격을 주었고, 瑜伽(유가)승려들은 華嚴(화엄)의 成佛義(성불의)를 집중적으로 공격하게 된다.
 
태현과 같은 유식학승은 원효의 기신론 관계 저술을 교묘하게 이용한 그의 저술 大乘起信論內義略探記(대승기신론내의략탐기) 속에서 瑜伽(유가)와 起信論(기신론)의 同一論(동일론)을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다시 元曉系(원효계) 華嚴學僧(화엄학승)인 見登(견등)이 나와서 이에 대한 반론으로서 [大乘起信論同異略集(대승기신론동이략집)]을 지어서 唯識(유식)과 起信論(기신론)의 同異(동이)를 명확히 하여 瑜伽(유가)로서는 華嚴(화엄)의 成佛(성불)의 뜻을 감히 이해할 수 없는 것임을 분명히 보인 것이라 한다.
 
元曉(원효)는 別記(별기)에서 中觀(중관)을 往而不遍論(왕이불편론)으로, 瑜伽(유가)를 與而不奪論(여이불탈론)으로 비판하고 있다. 그렇다면 中觀(중관)이나 瑜伽(유가)를 모두 止揚(지양)되어야 할 것으로 보았다는 말이 되겠다.
 
결국 고익진의 주장에 따르면 태현의 기신론관은 원효와는 판이한 것으로서 元曉(원효)는 華嚴家(화엄가)였으며 태현은 전형적인 유식가였다는 것이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大乘起信論(대승기신론)은 性宗(성종)의 문헌에 속한 것으로 판단되지만 거기에서조차도 태현은 일관되게 唯識家(유식가)로서의 면모를 잃고 있지않다는 말이 되겠다.
 
두번째 관점은 太賢(태현)이 처음에는 性宗(성종)의 사람, 혹은 그 중에서도 구체적으로는 華嚴宗(화엄종)의 사람이었는데 나중에 相宗(상종)으로 입문하였다는 주장이다.
그러한 주장은 宗覺正直(종각정직), 그리고 照遠(조원) 等(등)의 說(설)에서 나타나고 있다.
 
다음은 照遠(조원)으로부터의 인용이다.
 
이 論師(논사)는 본래 性宗(성종)의 人師(인사)였는데 나중에 改宗(개종)해서 法相宗(법상종)에 입문하였다.
太賢論師(태현논사)는 처음에는 華嚴(화엄)을 學習(학습)하였으나 뒤에는 法相(법상)에 入門(입문)하였다.
 
宗覺正直(종각정직)의 견해는 太賢法師義記序(태현법사의기서)에 잘 나타나 있다.
 
圓測(원측)의 學徒(학도)로서는 道證法師(도증법사)가 있다. 太賢(태현)은 道證(도증)의 高弟(고제)이다. 또 말하기를 처음에는 華嚴(화엄)의 融和(융화)의 理致(이치)를 탐색하였으나 나중에는 法相(법상)의 깊은 뜻을 探究(탐구)하였다.
 
세번째 관점은 태현이 前期思想(전기사상)에서 後期思想(후기사상)으로 전환한 것이 아니고 性相圓融的(성상원융적)인 특징은 그의 본래부터의 경향성이었다는 것이다. 즉 태현은 相宗(상종)에 치우치지 않았으며 元曉(원효)와 마찬가지로 性相融合(성상융합)의 견해를 가졌다는 것이다.
 
이 설은 淸算(청산)의 저서 梵網經古迹記綱義(범망경고적기강의)에 다음과 같이 주장되어 있다. 그러나 오로지 法相(법상)만 專攻(전공)하지 않았고, 뜻은 理(이)와 事(사)를 融攝(융섭)하고 그 세운 바의 뜻을 圓融(원융)하게 通(통)하게 하는 데 두었으니 그 解釋(해석)하는 바의 趣旨(취지)는 元曉(원효)의 뜻과도 비슷하였다.
 
그 撰述(찬술)한 章疏(장소)의 종류가 한 종류가 아니다. 그 종류가 한 가지가 아니라는 것은 或(혹)은 瑜伽(유가)나 唯識(유식) 等(등)의 法相宗(법상종)의 論(논)에 대해 疏(소)를 짓기도 하고,
 
或(혹)은 淸辨(청변)이 지은 掌珍論(장진론)이나 廣百論(광백론) 아니면 起信論(기신론) 等(등)의 性宗(성종)의 論藏(논장)에 대해서 註釋(주석)을 하기도 하였으니 이는 곧 性相兼備(성상겸비)의 뜻에 乖違(괴위)되지 않기 때문이다.
 
以上(이상)에서 태현의 性宗(성종)과 相宗(상종)의 귀속문제에 관한 세 가지 가설을 살펴보았다. 그러면 이 세 가설들이 갖는 타당성 문제를 검토해 보기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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