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국 왕사 대조계종사 선교도총섭 근수본지 중흥조풍 복국우세 보제존자 시선각나옹화상 행장 
(高麗國王師 大曹溪宗師 禪敎都±攝   勤修本智 重興祖風 福國祐世 普濟尊者 諡禪覺懶翁和尙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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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인 각굉 (門人覺宏) 지음

 스님의 휘는 혜근 (慧勤) 이요 호는 나옹 (懶翁) 이며, 본 이름은 원혜 (元慧) 이다. 거처하는 방은 강월헌 (江月軒) 이라 하며, 속성은 아 (牙) 씨인데 영해부 (寧海府)  사람이다. 아버지의 휘는 서구 (瑞具) 인데 선관서령 (膳官署令) 이란 벼슬을 지냈고, 어머니는 정 (鄭) 씨다.
정씨가 꿈에 금빛 새매가 날아와 그 머리를 쪼다가 떨어뜨린 알이 품안에 드는 것을 보고 아기를 가져 연우 (延祐)  경신년 (1320)  1월 15일에 스님을 낳았다. 스님은 날 때부터 골상이 보통 아이와 달랐고, 자라서는 근기가 매우 뛰어나 출가하기를 청하였으나 부모가 허락하지 않았다.
20세에 이웃 동무가 죽는 것을 보고 여러 어른들에게 죽으면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으나 모두들 모른다 하였다.
매우 슬픈 심정으로 공덕산 묘적암 (妙寂艤) 의 요연 (了然) 스님에게 가서 머리를 깎았다. 요연스님이 물었다.
"그대는 무엇하러 머리를 깎았는가?"
"삼계를 벗어나 중생을 이롭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가르쳐 주십시오."
"지금 여기 온 그대는 어떤 물건인가?"
"말하고 듣고 하는 것이 여기 왔을 뿐이거니와 볼 수 없는 몸을 보고 찾을 수 없는 물건을 찾고 싶습니다. 어떻게 닦아 나가야 하겠습니까?"
"나도 너와 같아서 아직 모른다. 다른 스승을 찾아가서 물어 보라."
그리하여 스님은 요연스님을 하직하고 여러 절로 돌아다니다가 지정 (至正)  4년 (1344)  갑신년에 회암사로 가서 한 방에 고요히 있으면서 밤낮으로 언제나 앉아 있었다.
그때 일본의 석옹 (石翁) 화상이 그 절에 머무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승당 (僧堂) 에 내려와 선상 (禪滅) 을 치며 말하였다.
"대중은 이 소리를 듣는가."
대중은 말이 없었다. 스님은 게송을 지어 보였다.



選佛場中坐

선불장중좌, 선불장 (選佛場) 에 앉아서

惺惺着眼看

성성착안간, 정신 차리고 자세히 보라

見聞非他物 

견문비타물, 보고 듣는 것 다른 물건 아니요

元是舊主人

원시구주인, 원래 그것은 옛 주인이다.

 그 뒤 4년 동안을 부지런히 닦다가 하루 아침에 갑자기 깨친 뒤에 중국으로 가서 스승을 찾아 도를 구하려 하였다.
정해년 (1347)  11월에 북을 향해 떠나 무자년 (1348)  3월 13일에 대도 (大都)  법원사 (法源寺) 에 이르러, 처음으로 서천의 지공스님을 뵈었다. 지공스님이 물었다.
"그대는 어디서 왔는가?"
"고려에서 왔습니다."
"배로 왔는가, 육지로 왔는가, 신통 (神通) 으로 왔는가?"
"신통으로 왔습니다."
"신통을 나타내 보여라."
스님은 그 앞으로 가까이 가서 합장하고 섰다. 지공스님은 또 물었다.
"그대가 고려에서 왔다면 동해 저쪽을 다 보고 왔는가?"
"보지 않았다면 어떻게 여기 왔겠습니까?"
"집 열 두 채를 가지고 왔는가?"
"가지고 왔습니다."
"누가 그대를 여기 오라 하던가?"
"제 스스로 왔습니다."
"무엇하러 왔는가?"
"뒷사람들을 위해 왔습니다."
지공스님은 허락하고 대중과 함께 있게 하였다.
어느 날 스님은 다음 게송을 지어 올렸다.

山河大地眼前花

산하대지안전화, 산과 물과 대지는 눈앞의 꽃이요

萬像森羅赤復然

만상삼라적부연, 삼라만상도 또한 그러하도다

自性方知元淸淨

자성방지원청정, 자성 (自性) 이 원래 청정한 줄 비로소 알았나니

塵塵刹刹法王身

진진찰찰법왕신,티끌마다 세계마다 다 법왕의 몸이라네.

 지공스님이 말하였다.
"서천의 20명과 동토의 72명은 다 같은 사람인데 지공은 그 가운데 없다. 앞에는 사람이 없고 뒤에는 장군이 없다. 지공이 세상에 나왔는데 법왕이 또 어디 있는가."
스님이 대답하였다.

法王身法王身

법왕의 몸, 법왕의 몸이여

三天爲主利群民

삼천 (三天) 의 주인이 되어 중생을 이롭게 한다


千劍單提斬佛祖

천검 (千劍) 을 뽑아들고 불조를 베는데

百陽普遍照諸天

백양 (白陽) *이 모든 하늘을 두루 비춘다.

吾今識得這消息 

 나는 지금 이 소식을 알았지만

猶是幢家弄精魂

그래도 우리집의 정력만 허비했네

也大奇也大奇

신기하구나, 정말 신기하구나

扶桑日月照西天

부상 (扶桑) 의 해와 달이 서천 (西天) 을 비춘다.

 지공스님이 응수했다.
"아버지도 개요 어머니도 개며 너도 바로 개다."
스님은 곧 절하고 물러갔다.
그 달에 매화 한 송이가 피었다. 지공스님은 그것을 보고 게송을 지었다.

葉靑花發一樹一

잎은 푸르고 꽃은 피었네 한 나무에 한 송이

十方八面無對一

사방 팔방에 짝할 것 하나도 없네

前事不問後事長

앞일은 물을 것 없고 뒷일은 영원하리니

香氣到地吾帝喜

향기가 이르는 곳에 우리 임금 기뻐하네.

 스님은 여기에 다음과 같이 답하였다.

年年此樹雪裏開

해마다 이 꽃나무가 눈 속에 필 때

蜂蝶忙忙不知新

벌 나비는 분주해도 새 봄인 줄 몰랐더니

今朝一箇花滿卿

오늘 아침에 꽃 한 송이 가지에 가득 피어

普天普地一般春

온 천지에 다 같은 봄이로다.

 하루는 지공스님이 법어를 내렸다.

선 (禪) 은 집 안이 없고 법은 밖이 없나니
뜰 앞의 잣나무를 아는 사람은 좋아한다
청량대 (淸凉臺)  위의 청량한 날에
동자가 세는 모래를 동자가 안다.
禪無堂內法無外 庭前栢樹認人肯
淸凉臺上淸凉日 童子數沙童子知

 스님은 답하였다.

入無堂內出無外

들어가도 집 안이 없고 나와도 밖이 없어

刹刹塵塵選佛場

세계마다 티끌마다 선불장 (選佛場) 이네

庭前栢樹更分明

뜰 앞의 잣나무가 새삼 분명하나니

今日夏初四月五

오늘은 초여름 사월 초닷새라네.

 하루는 지공스님이 스님을 불러 물었다.
"이 승당 안에 달마가 있는가 없는가?"
"없습니다."
"저 밖에 있는 재당 (齋堂) 을 그대는 보는가?"
"보지 못합니다."
그리고는 승당으로 돌아가버렸다.
지공스님은 시자를 보내 물었다.
"선재동자가 53선지식을 두루 찾아뵙고 마지막으로 미륵을 뵈었을 때, 미륵이 손가락을 한 번 퉁기매 문이 열리자 선재는 곧 들어갔다. 그런데 그대는 어찌하여 안팎이 없다 하는가?"
스님은 시자를 통해 대답하였다.
"그때 선재는 그 속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시자가 그대로 전하니 지공스님이 말하였다.
"이 중은 고려의 노비다."

하루는 지공스님이 말하였다.
"그대는 보경사 (普慶寺) 를 보는가?"
"벌써부터 보았습니다."
"문수와 보현이 거기 있던가?"
"잘 있습니다."
"무슨 말을 하던가?"
"그런 말을 합디다.
"차를 마시고 가거라."
그 뒤 어느 날 스님은 게송을 지어 지공스님에게 올렸다.

迷則山河爲所境

미혹하면 산이나 강이 경계가 되고

悟來塵塵是全身

깨치면 티끌마다 그대로가 온몸이네

迷悟兩頭俱打了

미혹과 깨침을 모두 다 쳐부수었나니

朝朝鷄向五更啼

닭은 아침마다 오경 (五更) 에 홰치네.

 지공스님은 대답하였다.
"나도 아침마다 징소리를 듣노라."
지공스님은 스님의 근기를 알아보고 10년 동안 판수 (板首) 로 있게 하였다.

경인년 (1350)  1월 1일, 지공스님은 황후가 내리신 붉은 가사를 입고 방장실 안에서 대중을 모으고 말하였다.
"분명하다 법왕이여, 높고 높아 이 나라를 복되게 한다. 하늘에는 해가 있고 밑에는 조사가 있으니 노소를 불문하고 지혜 있는 사람이면 다 마주해 보라."
대중이 대답이 없자 스님은 대중 속에서 나아가 말하였다.
"분명하다는 것도 오히려 저쪽 일인데, 높고 높아 나라를 복되게 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빈 소리다. 하늘의 해와 땅의 조사를 모두 다 쳐부수고 난 그 경계는 무엇인가."
지공스님은 옷자락을 들어 보이면서 말하였다.
"안팎이 다 붉다."
스님은 세 번 절하고 물러갔다.
그 해 3월에 대도를 떠나 통주 (通州) 에서 배를 타고, 4월 8일에 평강부 (平江府) 에 이르러 휴휴암 (休休艤) 에서 여름 안거를 지냈다. 7월 19일에 떠나려 할 때, 그 암자의 장로가 만류하자 스님은 그에게 게송을 지어 주었다.

鐵錫橫賑到休休

得休休處便休休

如今捨却休休去

四海五湖任意游

쇠지팡이를 날려가며 휴휴암에 이르러
쉴 곳을 얻었거니 그대로 쉬어버렸네
이제 이 휴휴암을 버리고 떠나거니와
사해 (四海) 와 오호 (五湖) 에서 마음대로 놀리라.

  
 8월에 정자선사 (淨慈禪寺) 에 이르렀는데, 그 곳의 몽당 (蒙堂) 노스님이 스님에게 물었다.
"그대 나라에도 선법 (禪法) 이 있는가?"
스님은 게송으로 대답하였다.

日出扶桑國

江南海嶽紅

莫問同與別

靈光亘古通

부상국 (扶桑國) 에 해가 오르매
강남의 바다와 산이 붉었다
같고 다름을 묻지 말지니
신령한 빛은 고금에 통하네.

 그 노스님은 말이 없었다. 스님이 곧 평산처림 (平山處林) 스님을 뵈러 갔다. 그때 평산스님은 마침 승당에 있었다. 스님이 곧장 승당에 들어가 이리저리 걷고 있으니 평산스님이 물었다.
"스님은 어디서 오시오?"
"대도에서 옵니다."
"어떤 사람을 보고 왔는가?"
"서천의 지공스님을 보고 왔습니다."
"지공은 날마다 무슨 일을 하던가?"
"지공스님은 날마다 천검 (千劍) 을 씁니다."
"지공의 천검은 그만두고 그대의 일검 (一劍) 을 가져 오라."
스님이 대뜸 좌복으로 평산스님을 후려치니 평산스님은 선상에 거꾸러지면서 크게 외쳤다.
"이 도적놈이 나를 죽인다!"
스님은 곧 붙들어 일으켜 주면서 말하였다.
"내 칼은 사람을 죽이기도 하지만 살리기도 합니다."
평산스님은 `하하' 크게 웃고는 곧 스님의 손을 잡고 방장실로 돌아가 차를 권했다. 그리하여 몇 달을 묵게 되었다.
어느 날 평산스님이 손수 글을 적어 주었다.
"삼한 (三韓) 의 혜근 수좌가 이 노승을 찾아왔는데, 그가 하는 말이나 토하는 기운을 보면 불조 (佛祖) 와 걸맞다. 종안 (宗眼) 은 분명하고 견처 (見處) 는 아주 높으며 말 속에는 메아리가 있고 글귀마다 칼날을 감추었다. 여기 설암스님이 전한 급암 스승님 〔先師〕 의 법의 한 벌과 불자 하나를 주어 믿음을 표한다."
뒤이어서 게송을 지어 주었다.

拂子法衣今付囑

石中取出無瑕玉

戒根永淨得菩提

禪定慧光皆具足

법의와 불자를 지금 맡기노니
돌 가운데서 집어낸 티없는 옥일러라
계율의 근 (根) 이 깨끗해 보리 (菩提)  얻었고
선정과 지혜의 광명을 모두 갖추었네.

 11년 (1351)  신묘 2월 2일, 평산스님을 하직할 때 평산스님은 다시 글을 적어 전송하였다.
"삼한의 혜근 수좌가 멀리 호상 (湖上) 에 와서 서로 의지하고 있다가, 다시 두루 참학하려고 용맹정진할 법어를 청한다. 토각장 (兎角杖) 을 들고 천암 (千巖) 의 대원경 (大圓鏡)  속에서 모든 조사의 방편을 한 번 치면, 분부할 것이 없는 곳에서 반드시 분부할 것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는 다시 게송을 지어 주었다.

檜巖板首罵雲門

百萬人天一口呑

更向明師參透了

廻家說法怒雷奔

회암 (檜岩) 의 판수 (板首) 가 운문 (雲門) 을 꾸짖고
백만의 인천 (人天) 을 한 입에 삼켰네
다시 밝은 스승을 찾아 참구한 뒤에
집에 돌아가 하는 설법은 성낸 우뢰가 달리듯 하리.

 스님은 절하고 하직한 뒤에 명주 (明州) 의 보타락가산 (補陀洛迦山) 으로 가서 관음을 친히 뵈옵고, 육왕사 (育王寺) 로 돌아와서는 석가상 (繹迦像) 에 예배하였다. 그 절의 장로 오광 (悟光) 스님은 다음 게송을 지어 스님을 칭찬하였다.

當陽掛起眉間劍

殺活臨機總自由

恰昭昭陽見靈樹

肯將大法付常流

분명히 눈썹 사이에 칼을 들고
때를 따라 죽이고 살리고 모두 자유로워
마치 소양 (昭陽) 에서 신령스런 나무 보고
즐겨 큰 법을 상류 (常流) 에 붙이는 것 같구나.

 스님은 또 설창 (雪窓) 스님을 찾아보고 명주에 가서 무상 (無相) 스님을 찾아보았다.*
또 고목 영 (奇木榮) 스님을 찾아가서는 한참 동안 말없이 앉았는데 고목스님이 물었다.
"수좌는 좌선할 때 어떻게 마음을 쓰는가?"
"쓸 마음이 없소."
"쓸 마음이 없다면 평소에 무엇이 그대를 데리고 왔다갔다하는가?"
스님이 눈을 치켜뜨고 바라보니 고목스님이 말하였다.
"그것은 부모가 낳아준 그 눈이다. 부모가 낳아주기 전에는 무엇으로 보는가?"
스님은 악! 하고 할 (喝) 을 한 번 하고는 "어떤 것을 낳아준 뒤다 낳아주기 전이다 하는가?" 하니 고목스님은 곧 스님의 손을 잡고, "고려가 바다 건너 있다고 누가 말했던가" 하였다. 스님은 소매를 떨치고 나와버렸다.
임진년 (1352)  4월 2일에 무주 (州)  복룡산 (伏龍山) 에 이르러 천암 원장 (千巖元長) 스님을 찾았다. 마침 그 날은 천여 명의 스님네를 모아 입실할 사람을 시험해 뽑는 날이었다. 스님은 다음의 게송을 지어 올렸다.

擊擊雷首振

群聾盡豁開

豈限靈山會

瞿曇無去來

울리고 울려 우뢰소리 떨치니
뭇 귀머거리 모두 귀가 열리네
어찌 영산 (靈山) 의 법회뿐이었겠는가
구담 (曇) 은 가지도 오지도 않네.

 그리고 절차에 따라 입실하였다.
천암스님은 물었다.
"스님은 어디서 오는가?"
"정자선사에서 옵니다."
"부모가 낳아주기 전에는 어디서 왔는가?"
"오늘은 4월 2일입니다."
천암스님은 "눈 밝은 사람은 속이기 어렵구나" 하고 곧 입실을 허락하였다. 스님은 거기 머물게 되어 여름을 지내고 안거가 끝나자 하직을 고했다. 천암스님은 손수 글을 적어 주며 전송하였다.
"석가 늙은이가 일대장교를 말했지만 그것은 모두 쓸데없는 말이다. 마지막에 가섭이 미소했을 때 백만 인천이 모두 어쩔 줄을 몰랐고, 달마가 벽을 향해 앉았을 때 이조는 눈 속에 서 있었다. 육조는 방아를 찧었고, 남악 (南嶽) 은 기왓장을 갈았으며, 마조 (馬祖) 의 할 (喝)  한 번에 백장 (百丈) 은 귀가 먹었고, 그 말을 듣고 황벽 (黃岫) 은 혀를 내둘렀었다. 그러나 일찍이 장로 수좌를 만들지는 못하였다.
진실로 이것은 이름을 붙일 수도 없고 형상으로 그릴 수도 없으며, 칭찬할 수도 없고 비방할 수도 없는 것이다. 다만 저 허공처럼 텅 비어 부처나 조사도 볼 수 없고 범부나 성인도 볼 수 없으며, 남과 죽음도 볼 수 없고 너나 나도 볼 수 없다. 그 지경 〔¿際:테두리, 범위〕 에 이르게 되어도 그 지경이라는 테두리도 없고, 또 허공의 모양도 없으며 갖가지 이름도 없다. 그러므로 형상도 이름도 떠났기에 사람이 받을 수 없나니, 취모검 (吹毛劍) 을 다 썼으면 빨리 갈아두라고 한 것이다. 그러나 취모검은 쓰고 싶으면 곧 쓸 수 있는데 다시 갈아두어서 무엇하겠는가. 만일 그대가 그것을 쓸 수 있으면 노승의 목숨이 그대 손에 있을 것이요, 그대가 그것을 쓸 수 없으면 그대 목숨이 내 손안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는 할을 한 번 하였다.
스님은 천암스님을 하직하고 떠나 송강 (松江) 에 이르러 요당 (了堂) 스님과 박암 (泊艤) 스님을 찾아보았으나 그들은 감히 스님을 붙잡아 두지 못하였다.
그 해 5월에 대도 법원사로 돌아와 다시 지공스님을 뵈었다. 지공스님은 스님을 방장실로 맞아들여 차를 권하고, 드디어 법의 한 벌과 불자 하나와 범어로 쓴 편지 한 통을 주었다.

百陽喫茶正安果

年年不昧一通藥

東西看見南北然

明宗法王給千劍

백양 (百陽) 에서 차 마시고 정안 (正安) *에서 과자 먹으니
해마다 어둡지 않은 한결같은 약이네
동서를 바라보면 남북도 그렇거니
종지 밝힌 법왕에게 천검 (千劍) 을 준다.

 스님은 답하였다.

奉喫師茶了

起來卽禮三

只這眞消息

從古至于今

스승님 차를 받들어 마시고
일어나 세 번 절하니
다만 이 참다운 소식은
예나 이제나 변함이 없다.

 그리고는 거기서 한 달을 머물다가 하직하고, 여러 해 동안 연대 (燕代) 의 산천을 두루 돌아다녔다.
그 도행 (道行) 이 황제에게 들려, 을미년 (1355)  가을에 성지 (聖旨) 를 받고 대도의 광제선사 (廣濟禪寺) 에 머물다가, 병신년 (1356)  10월 15일에 개당법회를 열었다. 황제는 먼저 원사 야선첩목아 院使 也先帖木兒) 를 보내 금란가사와 폐백을 내리시고 황태자도 금란가사와 상아불자를 내렸다. 이 날에는 많은 장상 (將相) 과 그들의 관리, 선비들, 여러 산의 장로들과 강호의 승려들이 모두 모였다. 스님은 가사를 받아들고 중사 (中使) *에게 물었다.
"산하대지와 초목총림이 하나의 법왕신인데 이 가사를 어디다 입혀야 하겠는가?"
중사는 모르겠다 하였다. 스님은 자기 왼쪽 어깨를 기리키며 "여기다 입혀야 하오" 하고는 다시 대중에 물었다.
"맑게 비고 고요하여 본래 한 물건도 없는데 찬란한 이것은 어디서 나왔는가?"
대중은 대답이 없었다. 스님은 "구중 궁궐의 금구 (金口) 에서 나왔다" 하고는 가사를 입고 황제를 위해 축원한 뒤에 다시 향을 사르고 말하였다.
"이 하나의 향은 서천의 108대 조사 지공대화상과 평산화상에게 받들어 올려 법유 (法乳) 의 은혜를 갚습니다."
17년 (1357)  정유년에 광제사를 떠나 연계 (燕) 의 명산에 두루 다니다가 다시 법원사로 돌아와 지공스님에게 물었다.
"이제 제자는 어디로 가야 하리까?"
지공스님이 말하였다.
"그대는 본국으로 돌아가 `삼산양수 (三山兩水) ' 사이를 택해 살면 불법이 저절로 흥할 것이다."
무술년 (1358)  3월 23일에 지공스님을 하직하고 요양 (遼陽) 으로 돌아와 평양과 동해 등 여러 곳에서 인연을 따라 설법하고, 경자년 (1360)  가을에 오대산에 들어가 상두암 (象頭艤) 에 있었다. 그때 강남지방의 고담 (古潭) 스님이 용문산을 오가면서 서신을 통했는데, 스님은 게송으로 그에게 답하였다.

臨濟一宗當落地 

空中突出古潭翁

把將三尺吹毛劍 

斬盡精靈永沒

임제의 한 종지가 땅에 떨어지려 할 때에
공중에서 고담 노인네가 불쑥 튀어나왔나니
삼척의 취모검을 높이 쳐들고
정령 (精靈) 들 모두 베어 자취 없앴네.

 고담스님은 백지 한 장으로 답하였는데, 겉봉에는 `군자천리동풍 (君子千里同風) '이라고 여섯 자를 썼다. 스님은 받아 보고 웃으면서 던져버렸다. 시자가 주워 뜯어 보았더니 그것은 빈 종이었다. 스님은 붓과 먹 두 가지로 답하였다.
신축년 (1361)  겨울에 임금은 내첨사 방절 (方節) 을 보내 내승마 (內乘馬) 로 스님을 성안으로 맞아들여, 10월 15일에 궁중으로 들어갔다. 예를 마치고 마음의 요체에 대해 법문을 청하니, 스님은 두루 설법한 뒤에 게송 두 구를 지어 올렸다.* 임금은 감탄하면서, "이름을 듣는 것이 직접 보는 것만은 못하다" 하시고 만수가사와 수정불자를 내리셨다. 공주도 마노불자를 보시하고, 태후는 친히 보시를 내리셨다. 그리고 신광사 (神光寺) 에 머물기를 청하니 스님은 "산승은 다만 산에 돌아가 온 마음으로 임금을 위해 축원하고자 하오니 성군의 자비를 바라나이다" 하면서 사양하였다.
임금은 "그렇다면 나도 불법에서 물러가리라" 하시고 곧 가까운 신하 김중원 (金仲元) 을 보내 가는 길을 돕게 하였다. 스님은 할 수 없어 그 달 20일에 신광사로 갔다.*
11월에 홍건적이 갑자기 쳐들어와 도성이 모두 피란하였으나, 오직 스님만은 제자들을 거느리고 보통때와 같이 설법하고 있었다. 하루는 수십 기 (騎) 의 도적들이 절에 들어왔는데, 스님은 엄연히 그들을 상대하였다. 도적의 우두머리는 침향 (沈香)  한 조각을 올리고 물러갔다. 그 뒤로도 대중은 두려워하여 스님에게 피란하기를 권하였다. 그러나 스님은 말리면서, "명 (命) 이 있으면 살 것인데 도적이 너희들 일에 무슨 관계가 있겠는가" 하였다.
그 뒤에 어느 날 대중이 다시 피란을 청하였으므로 스님은 부득이 허락하고 그 이튿날로 기약하였었다. 그런데 그날 밤 꿈에 어떤 신인 (神人) 이 의관을 갖추고 절하며, "대중이 흩어지면 도적은 반드시 이 절을 없앨 것입니다. 스님은 부디 뜻을 굳게 가지십시오" 하고 곧 물러갔다. 그 이튿날 스님은 토지신을 모신 곳에 가서 그 모습을 보았더니 바로 꿈에 본 얼굴이었다. 스님은 대중을 시켜 경을 읽어 제사하고는 끝내 떠나지 않았다. 도적은 여러 번 왔다갔으나 재물이나 양식, 또는 사람들을 노략질하지 않았다.
계묘년 (1363)  7월에 재삼 글을 올려 주지직을 사퇴하려 했으나, 임금이 허락하지 않으므로 스님은 스스로 빠져나와 구월산 (九月山)  금강암으로 갔다. 임금은 내시 김중손 (金仲孫) 을 보내 특별히 내향 (內香) 을 내리시고, 또 서해도 (西海道)  지휘사 박희 (朴6) , 안렴사 이보만 (按兼使 李¿萬) , 해주목사 김계생 (海州牧使 金繼生)  등에게 칙명을 내려 스님이 주지직에 돌아오기를 강요하였다. 스님은 부득이 10월에 신광사로 돌아와 2년 동안 머무시다가, 을사년 (1365)  3월에 궁중에 들어가 글을 올려 물러났다. 그리고는 용문 (龍門) ·원적 (圓寂)  등 여러 산에 노닐면서 인연을 따라 마음대로 즐겼다.
병오년 (1366)  3월에는 금강산에 들어가 정양암 (正陽艤) 에 있었다. 정미년 (1367)  가을에 임금님은 교주도 (交州道)  안렴사 정양생 (鄭良生) 에게 명하여 스님에게 청평사에 머무시기를 청하였다.
그 해 겨울에 보암 (普艤) 장로가 지공스님이 맡기신 가사 한 벌과 편지 한 통을 받아 가지고 절에 와서 스님에게 주었다. 스님은 그것을 입고 향을 사른 뒤에 두루 설법하였다.*
기유년 (1369)  9월에 병으로 물러나 또 오대산에 들어가 영감암 (靈惑艤) 에 머물렀다.
홍무 (洪武)  경술년 (1370)  1월 1일 아침에 사도 달예 (司徒 達睿) 가 지공스님의 영골과 사리를 받들고 회암사에 왔다. 3월에 스님은 그 영골에 예배하고 산을 나왔다. 임금은 가까운 신하 김원부 (金元富) 를 보내 스님을 맞이하고 영골에 예배하였다. 스님은 성 안에 들어가 광명사 (廣明寺) 에서 안거를 지냈다.
8월 3일에 내재 (內齋) 에 나아가 재를 마치고 두루 설법하였다.
17일에 임금은 가까운 신하 안익상 (安益祥) 을 보내 길을 도우라 하고 스님께 회암사에 머물기를 청하였다. 9월에는 공부선 (工夫選) 을 마련하고 양종오교 (兩宗五敎) 의 제방 승려를 크게 모아 그들의 공부를 시험했는데, 그때 스님에게 주맹 (主盟) 이 되기를 청하였다.
16일에 선석 (選席) 을 열었다. 임금님은 여러 군 (君) 과 양부 (兩府) 의 문무백관을 거느리고 친히 나와 보셨다. 그리고 선사 강사 등 여러 큰 스님네와 강호의 승려들이 모두 모였다. 그때 설산국사 (雪山國師:화엄종의 종사인 千熙스님을 말함) 도 그 모임에 왔다. 스님은 국사와 인사하고 처음으로 방장실에 들어가 좌복을 들고 "화상!" 하였다. 국사가 무어라 하려는데 스님은 좌복으로 그 까까머리를 때리고는 이내 나와버렸다.
사나당 (舍那堂)  안에 법좌를 만들고 향을 사른 뒤에, 스님은 법좌에 올라 질문을 내렸다. 법회에 있던 대중은 차례로 들어가 대답하였으나 모두 모른다 하였다. 어떤 이는 이치로는 통하나 일에 걸리기도 하고 어떤 이는 너무 경솔하여 실언하기도 하며, 한마디 한 뒤 곧 물러가기도 하였다. 임금은 매우 불쾌해 보였다. 끝으로 환암 혼수 (幻庵混修) 스님이 오니 스님은 3구 (三句) 와 3관 (三關) 을 차례로 물었다.
그보다 먼저 스님이 금경사 (金脛寺) 에 있었을 때 임금은 좌가대사 혜심 (左街大師 慧深) 을 시켜 스님에게 물었다.
"어떤 법문으로 공부한 사람을 시험해 뽑습니까?"
스님이 대답하였다.
"먼저 입문 (入門)  등 3구 (三句) 를 묻고, 다음에 공부10절 (工夫十節) 을 물으며, 나중에 3관 (三關) 을 물으면 공부가 깊은지 얕은지를 시험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중이 다 모르기 때문에 10절과 3관은 묻지 않습니다."
법회를 마치고 임금이 천태종 (天台宗) 의 선사 (禪師) 인 신조 (神照) 를 시켜 공부10절을 물으시니 스님은 손수 써서 올렸다.*
18일에 임금은 지신사 염흥방 (知申使 廉興) 을 스님이 계시던 금경사로 보내셨고, 그 이튿날 또 대언 김진 (代言 金鎭) 을 보내 스님을 내정 (內庭) 으로 맞아들여 위로하신 뒤 안장 채운 말 〔鞍馬〕 을 내리셨다. 그리고는 내시 안익상 (安益祥) 을 보내 회암사로 보내드리니, 스님은 회암사에 도착하자 말을 돌려보내셨다.
신해년 (1371)  8월 26일에 임금은 공부상서 장자온 (工部商書 張子溫) 을 보내 편지와 도장을 주시고, 또 금란가사와 안팎 법복과 바루를 내리신 뒤에 `왕사 대조계종사 선교도총섭 근수본지 중흥조풍 복국우세 보제존자'로 봉하시고, 태후도 금란가사를 올렸다. 그리하여 동방의 제일 도량인 송광사에 있게 하셨는데, 내시 이사위 (李君渭) 를 보내 길을 돕게 하여 28일에 회암사를 출발하여 9월 27일에 송광사에 도착하였다.
임자년 (1372)  가을에 스님은 우연히 지공스님이 예언한 `삼산양수'를 생각하고 회암사로 옮기기를 청하였다. 임금은 또 이사위를 보내어 회암사로 맞아 오셨다.
9월 26일에는 지공스님의 영골과 사리를 가져다 회암사의 북쪽 봉우리에 탑을 세웠다.
계축년 (1373)  정월에는 서운 (瑞雲) ·길상 (吉祥)  등 산에 노닐면서 여러 절을 다시 일으키고, 8월에 송광사로 돌아왔다.
9월에 임금님은 또 이사위를 보내 회암사에서 소재법회 (消災法會) 를 주관하라 청하시고, 갑인년 (1374)  봄에 또 가까운 신하 윤동명 (尹東明) 을 보내 그 절에 계시기를 청하였다. 이에 스님은 "이 땅은 내가 처음으로 불도에 들어간 곳이요, 또 우리 스승 〔先師〕 의 영골을 모신 땅이오. 더구나 우리 스승께서 일찍이 내게 수기하셨으니 어찌 무심할 수 있겠는가" 하고 곧 대중을 시켜 전각을 다시 세우기로 하였다.*
9월 23일에 임금이 돌아가셨다. 스님은 몸소 빈전 (殯殿) 에 나아가 영혼에게 소참법문*을 하시고 서식을 갖추어 왕사의 인 (印) 을 조정에 돌렸다.
지금 임금께서도 즉위하여 내신 주언방 (周彦) 을 보내 내향 (內香) 을 내리시고 아울러 인보 (印¿) 를 보내시면서 왕사로 봉하였다.
병진년 (1376)  봄에 이르러 공사를 마치고 4월 15일에 크게 낙성식을 베풀었다. 임금은 구관 유지린 (具官 柳之璘) 을 보내 행향사 (行香使) 로 삼았으며, 서울에서 지방에서 사부대중이 구름과 바퀴살처럼 부지기수로 모여들었다.
마침 대평 (臺評) 은 생각하기를, `회암사는 서울과 아주 가까우므로 사부대중의 왕래가 밤낮으로 끊이지 않으니 혹 생업에 폐해를 주지나 않을까' 하였다. 그리하여 임금의 명으로 스님을 영원사 (瑩源寺) 로 옮기라 하고 출발을 재촉하였다. 스님은 마침 병이 있어 가마를 타고 절 문을 나왔는데 남쪽에 있는 못가에 이르렀다가 스스로 가마꾼을 시켜 다시 열반문으로 나왔다. 대중은 모두 의심하여 목놓아 울부짖었다. 스승은 대중을 돌아보고, "부디 힘쓰고 힘쓰시오. 나 때문에 중단하지 마시오. 내 걸음은 여흥 (瘻興) 에서 그칠 것이오" 하였다.
5월 2일에 한강에 이르러 호송관 탁첨 (卓詹) 에게 말하였다.
"나는 지금 병이 너무 심해 배를 타고 가고 싶소."
곧 문도 10여 명과 함께 물을 거슬러올라간 지 7일 만에 여흥에 이르러 다시 탁첨에게 말하였다.
"내 병이 너무 위독해 이곳을 지날 수 없소. 이 사정을 나라에 알리시오."
탁첨이 달려가 나라에 알렸으므로 스님은 신륵사 (神勒寺) 에 머물게 되었다. 며칠을 머무셨을 때, 여흥수 황희직 (瘻興守 黃希直) 과 도안감무 윤인수 (道安監務 尹仁守) 가 탁첨의 명령을 받고 출발을 재촉했다. 시자가 이 사실을 알리자 스님은 말하였다.
"그것은 어렵지 않다. 나는 이제 아주 가련다."
그때 한 스님이 물었다.
"이런 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스님은 주먹을 세웠다. 그 스님이 또 물었다.
"4대 (四大) 가 각기 흩어지면 어디로 갑니까?"
스님은 주먹을 맞대어 가슴에 대고 "오직 이 속에 있다" 하였다.
"그 속에 있을 때는 어떻습니까?"
"별로 대단할 것이 없느니라."
또 한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대단할 것 없다는 그 도리입니까?"
스님은 눈을 똑바로 뜨고 뚫어지게 보면서, "내가 그대를 볼 때 무슨 대단한 일이 있는가" 하였다.
또 한 스님이 병들지 않는 자의 화두 〔不病者話〕 를 들어 거론하자, 스님은 꾸짖는 투로 "왜 그런 것을 묻는가" 하고는 이내 대중에게 말하였다.
"노승은 오늘 그대들을 위해 열반 불사를 지어 마치리라."
그리고는 진시 (辰時) 가 되어 고요히 돌아가시니 5월 15일이었다.
여흥과 도안의 두 관리가 모시고 앉아 인보 (印寶) 를 봉하였는데 스님의 안색은 보통때와 같았다. 여흥 군수가 안렴사 (按廉使) 에게 알리고 안렴사는 조정에 고했다.
스님이 돌아가실 때, 그 고을 사람들은 멀리 오색 구름이 산꼭대기를 덮는 것을 보았고, 또 스님이 타시던 흰 말은 3일 전부터 풀을 먹지 않은 채 머리를 떨구고 슬피 울었다. 화장을 마쳤으나 머리뼈 다섯 조각과 이 40개는 모두 타지 않았으므로 향수로 씻었다. 이때에 그 지방에는 구름도 없이 비가 내렸다. 사리가 부지기수로 나왔고, 사부대중이 남은 재와 흙을 헤치고 얻은 것도 이루 셀 수 없었다. 그때 그 고을 사람들은 모두 산 위에서 환히 빛나는 신비한 광채를 보았고, 그 절의 스님 달여 (達如) 는 꿈에 신룡 (神龍) 이 다비하는 자리에 서려 있다가 강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는데, 그 모습은 말과 같았다. 문도들이 영골사리를 모시고 배로 회암사로 돌아가려 할 때에는 오래 가물어 물이 얕지 않을까 걱정하였다. 그런데 비는 오지 않고 갑자기 물이 불어 오랫동안 묶여 있던 배들이 한꺼번에 물을 따라 내려갔으니, 신룡의 도움임을 알 수 있었다.
29일에 회암사에 도착하여 침당 (寢堂) 에 모셨다가 8월 15일에 그 절 북쪽 언덕에 부도를 세웠는데, 가끔 신령스런 광명이 환히 비쳤다. 정골사리 한 조각을 옮겨 신륵사에 안치하고 석종 (石鍾) 으로 덮었다.
스님의 수 (困) 는 57세요 법랍은 37세였으며, 시호는 선각 (禪覺) 이라 하였다. 그 탑에는 "□□스님은 항상 스스로 말하기를, `산승은 문자를 모른다' 하였다. 그러나 그 가송 (歌頌) 과 법어 (法語) 는 혹 경전의 뜻이 아니더라도 모두 아주 묘하다"라고 씌어 있다.
이제 그것을 두 권으로 나누어 이 세상에 간행하게 되었으니, 스님의 덕행은 진실로 위대하다. 실로 이 빈약한 말로 전부 다 칭송할 수 없지만, 간략하게나마 그 시말 (始末) 을 적어 영원히 전하려는 것이다. 삼가 기록한다.

 어록

1. 상당법어
 
시자 각련 (覺璉) 이 짓고, 광통보제사 (廣通普濟寺) 에 주석하는 환암 (幻艤) 이 교정하다.

 1. 광제선사 (廣濟禪寺)  개당

 스님께서는 강남에서의 행각을 마치고 대도 (大都) 에 돌아와 연대 (燕代) 의 산천을 두루 돌아다니셨다. 그 도행 (道行) 이 궁중에 들려 을미년 (1355)  가을에 황제의 명을 받들고 광제사 (廣濟寺)  주지가 되어 병신년 (1356)  10월 보름날에 개당법회를 열었는데, 황제는 금란가사와 상아불자를 내리셨다.
이 날에 여러 산의 장로들과 강호의 납자들과 또 여러 문무관리들이 모두 모였다. 스님께서는 가사를 받아 들고 황제의 사자에게 물었다.
"산하대지와 초목총림이 다 하나의 법왕신인데 이것을 어디다 입혀야 합니까?"
황제의 사자가 "모르겠습니다" 하니 스님께서는 자기 왼쪽 어깨를 가리키면서 "여기다 입혀야 합니다" 하셨다.
또 대중에게 물었다.
"맑고 텅 비고 고요하여 본래 한 물건도 없는데, 찬란한 이 가사는 어디서 나왔는가?"
대중이 대답이 없자 스님께서는 "구중 궁궐의 금구 (金口) 에서 나왔다" 하셨다.
이에 가사를 입고 향을 사뤄 황제를 위해 축원한 뒤에 법좌에 올라가 주장자를 가로 잡고 말씀하셨다.
"날카로운 칼을 온통 들어 바른 명령을 행할 것이니, 어름어름하면 목숨을 잃는다. 이 칼날에 맞설 이가 있는가, 있는가, 있는가. 돛대 하나에 바람을 타고 바다를 지나가노니, 여기서는 배 탄 사람을 만나지 못하리라."*
다시 불자를 세우고 말씀하셨다.
"3세 모든 부처님과 역대 조사님네와 천하의 노화상들이 모두 산승의 이 불자 꼭대기에 앉아 큰 광명을 놓으면서 다 같은 소리로 우리 황제를 봉축하는데, 대중은 보는가. 만일 보지 못한다 하면 눈은 있으나 장님과 같고, 본다 한다면 어떻게 보는가. 보고 보지 못하는 것이나 알고 모르는 것은 한 쪽에서만 하는 말이니, 결국 그것은 무엇인가."
그리고는 불자를 던지면서 "털이 많은 소는 불자를 모르는구나" 하고 자리에서 내려오셨다.

  
 2. 신광사 (神光寺)  주지가 되어

 스님은 절 문에 도착하자 손으로 가리키면서 말씀하셨다.
"온 대지가 다 해탈문인데 대중은 일찍이 그 문에 들어갔는가. 만일 들어가지 못했거든 나를 따라 앞으로 가자."
또 보광명전 (普光明殿) 에 이르러 말씀하셨다.
"毘盧遮那 (毘盧遮那) 의 꼭대기를 밟는다 해도 그는 더러운 발을 가진 사람이다. 말해 보라. 절하는 이것이 무엇인가?"
그리고는 손으로 불상을 가리키면서, "나 때문에 절을 받는 것이오" 하셨다. 다음에는 거실 (據室) 에 이르러, "이 방은 부처를 삶고 조사를 삶는 큰 화로다" 하시고 주장자를 들고는, "이것은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죽이는 날카로운 칼이다. 대중은 이 칼 밑에서 몸을 뒤칠 수 있는가. 그런 사람은 이리 나와도 좋다. 나와도 좋다" 하셨다.
이어서 주장자로 한 번 내리치고는, "우리 집의 적자 (嫡子) 말고 누가 감히 이 속으로 가겠는가" 하고는 악! 하고 할을 한 번 한 뒤에 자리에서 내려오셨다.
다음에 또 법당에 올라가 향을 사뤄 황제를 위해 축원한 뒤에 법좌에 올라 말씀하셨다.
"산승은 오대산 (五臺山) 을 떠나기 전에 이미 여러분을 위해 오늘의 일을 다 말하였다. 지금 손과 주인이 서로 만나 앉고 섬이 엄연하니 이미 많은 일을 이루었는데, 다시 산승에게 모래 흙을 흩뿌리기를 기대하는 것은 만리에 흰구름 격이다. 그러나 관법 (官法) 으로는 바늘도 용납하지 않지만 사사로이는 거마 (車馬) 도 통하는 것이니 아는 이가 있는가?"
문답을 마치고는 이어서 말씀하셨다.
"티끌 같은 세계에 털끝 하나 없고 날마다 당당하게 살림살이를 드러낸다. 볼라치면 볼 수 없어 캄캄하더니, 쓸 때는 무궁무진 분명하도다. 3세의 부처들도 그 바람 아래 섰고 역대의 조사들도 3천 리를 물러선다. 말해 보라. 이것이 무엇인데 그렇게도 대단한가. 확실히 알겠는가. 확실히 알기만 한다면 어디로 가나 이름과 형상을 떠나 삿됨을 무찌르고 바름을 드러낼 것이며, 가로 잡거나 거꾸로 쓰거나 죽이고 살림이 자재로울 것이다. 한 줄기 풀로 장육금신을 만들며 장육금신으로 한 줄기 풀을 만들 것이다."
그리고는 얼른 주장자를 들어 왼쪽으로 한 번 내리치고는, "이것이 한 줄기 풀이라면 어느 것이 장육금신인가?" 하시고 오른쪽으로 한 번 내리치고는 말씀하셨다.
"이것이 장육금신이라면 어느 것이 한 줄기 풀인가? 만일 여기서 깨치면 임금의 은혜와 부처의 은혜를 한꺼번에 갚을 수 있겠지만 그렇지 못하거든 각기 승당으로 돌아가 자세히 살펴보아라."

 3. 결제 (結制) 에 상당하여

 스님은 법좌 앞에 가서 그것을 손으로 가리키면서 말씀하셨다.
"이 한 물건은 많은 사람이 오르지 못하였고 밟지 못하였다. 산승은 여기 와서 흐르는 물소리를 무심히 밟고 나는 새의 자취를 자유로이 보아서 그려낸다."
향을 사른 뒤에 말씀하셨다.
"요 (堯) 임금의 자비가 널리 퍼져 아주 밝은 일월과 같고, 탕 (湯) 임금의 덕은 더욱더욱 새로워 영원한 천지와 같다. 산승이 이것을 집어 향로에 사르는 것은 다만 성상폐하의 만세 만세 만만세를 축수하는 것이다."
법좌에 올라가 말씀하셨다.
"쇠뇌 〔弩〕의 고동 〔機:방아쇠〕 을 당기는 것은 눈으로 판단해야 하고 화살이 과녁을 맞히는 것은 손에 익어야 한다. 눈으로 판단하지 않고 손에 익지 않아도 고동을 당기고 과녁을 맞히는 것이 있는가? 꺼내 보아라."
한 스님이 나와 동쪽에서 서쪽으로 지나가고, 서쪽에서 동쪽으로 지나가다가 문턱 중간에 서서 물었다.
"스님은 법좌에 앉아 계시고 학인은 올라왔는데 이것은 어떤 경계입니까?"
"동쪽이든 서쪽이든 마음대로 돌아다녀라."
"스님은 방장실에서 이 보좌 (寶座) 에 나오셨고 학인은 적묵당 (寂默堂) 에서 여기 왔습니다. 저기에도 몸이 있습니까?"
"있다."
"털끝에 바다세계를 간직하고 겨자씨에 수미산을 받아들인다는 뜻이 아닙니까?"
"그렇다."
"종문 (宗門) 의 일은 그만두고, 어떤 것이 북숭봉 (北崇峰)  앞의 경계입니까?"
"산문은 여전히 남쪽으로 열려 있다."
"그 경계 속의 사람은 어떻습니까?"
"모두가 눈은 가로 찢어지고 코는 우뚝하다."
"사람이든 경계든 이미 스님께서 지적해 주신 향상 (向上) 의 한 길을 알았는데 그래도 무슨 일이 있습니까?"
"있다."
"어떻게 하면 향상의 한 길로서, `지극한 말과 묘한 이치는 어떤 종 (宗) 인가. 이 말을 천리 밖으로 없애버려라. 이것이야말로 우리 종의 제일기 (第一機) 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무엇이 그 제일의 (第一義) 입니까?"
"그대가 묻는 그것은 제이의 (第二義) 이다."
"`장부는 스스로 하늘을 찌르는 뜻이 있어서 여래가 간 길을 가지 않는다' 하였습니다. 어찌하면 그렇게 되겠습니까?"
"그대의 경계가 아니다."
"오늘 여러 관리와 선비들이 특별히 상당법문을 청하니 스님께서는 여기 와서 설법하고 향을 사뤄 축원한 뒤에 법상에 올라가 자유자재로 법을 쓰십니다. 이것이 사람을 위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렇지 않다."
"무엇이 스님의 본분사입니까?"
스님께서는 불자를 세우셨다. 그 스님이 또 물었다.
"오랑캐 난리 30년에도 소금과 간장이 모자랐던 적이 없습니다."
"쓸데없는 소리 말라."
"학인이 듣기로는 스님께서 평산 (平山) 스님을 친견하셨다는데 사실입니까?"
"그렇다."
"무엇이 천축산 (天竺山) 에서 친히 전한 한마디입니까?"
스님께서는 불자로 선상을 한 번 내리치셨다. 그 스님이 또 말하였다.
"영남 (嶺南)  땅에 천고 (千古) 의 희소식이 있으니, 오늘 맑은 바람이 온 누리에 불어옵니다. 이것은 그만두고 오늘 보좌에 높이 오른 것은 다른 일 때문이 아니라 축성 (祝聖) 하는 일이니, 스님께서는 한마디 해 주십시오."
스님께서 "만년의 성일 (聖日)  속에 복이 영원하니 문무의 사법 (四法) 이 태양을 따르도다" 하시니 그 스님은 "온 누리에 퍼지는 임금의 덕화 속에 촌 늙은이가 태평을 축하하기 수고롭지 않구나" 하고는 세 번 절하고 물러갔다.
또 한 스님이 나와 물었다.
"다른 것은 아무 것도 묻지 않겠습니다. 무엇이 학인의 본분사입니까?"
"옷 입고 밥 먹는 것이다."
"세계마다 티끌마다 다 분명한데, 무엇이 분명한 그 마음입니까?"
스님께서 불자를 드시니 그 스님이 물었다.
"향상의 한 길은 천 분 성인도 전하지 못한다 하는데, 무엇이 전하지 못한 그 일입니까?"
"그대가 묻고 내가 대답하는 것이다."
그 스님은 절하고 물러갔다. 또 한 스님이 물었다.
"빛깔을 보고 마음을 밝히고 소리를 듣고 도를 깨친다 하는데, 무엇이 밝힐 그 마음입니까?"
스님께서 불자를 들어 세우시니 그 스님이 다시 물었다.
"무엇이 깨칠 그 도입니까?"
스님께서 대뜸 악! 하고 할을 하시자 그 스님은 절하고 물러갔다.
이어서 스님께 말씀하셨다.
"본래 맺음이 없는데 무엇을 풀겠는가. 풂이 없이 때를 따라 도의 흐름을 보인다. 허공을 쳐부수어 조각조각 내어도, 독한 막대기의 그 독은 거두기 어렵도다. 언젠가 어깨에 메고 산으로 가서 그대로 천봉 만령 꼭대기에 들어가면 부처와 조사는 보고 두려워 달아나리니, 자유로이 죽이고 살리기 실수가 없다. 물결을 일으키는 것은 다른 물건이 아니며, 천지를 뒤흔드는 그것이 바로 그것이다. 한마디 소리를 꽉 밟고 있다가 한 걸음도 떼지 않고 집으로 돌아온다."
주장자를 들고 "보는가!" 하고는 다시 한 번 내리치고 말씀하셨다.
"듣는가! 만일 분명히 보고 환히 들을 수만 있으면, 산하대지와 삼라만상, 초목총림과 사성육범 (四聖六凡) , 유정무정 (有情無情) 이 모두 얼음녹듯 기왓장 부숴지듯 할 것이니, 그 경지에 이르러서는 그것이 선 (禪) 인가 도 (道) 인가, 범부인가 성인인가, 마음인가 성품인가, 현 (玄) 인가 묘 (妙) 인가, 변하는 것인가 변하지 않는 것인가."
또 한 번 내리치고는 말씀하셨다.
"선이라고도 할 수 없고 도라고도 할 수 없으며, 범부라고도 할 수 없고 성인이라고도 할 수 없는 것이다. 마음이라고도 할 수 없고 성품이라고도 할 수 없으며, 현이라고도 할 수 없고 묘라고도 할 수 없는 것이다. 변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없고 변하지 않는 것이라고도 할 수 없다. 무엇이라고도 할 수 없는 그것도 될 수 없으니 모두 아니라면 결국 무엇이란 말인가.
알겠는가. 안다면 부처님 은혜와 임금님 은혜를 한꺼번에 갚을 수가 있겠지만 혹 그렇지 못하다면 한마디 더 하리라. 즉 참성품은 반연 (攀緣) 을 끊었고, 참봄 〔眞見〕 은 경계를 의지하지 않으며, 참지혜는 본래 걸림이 없고, 참슬기는 본래 끝이 없어서 위로는 모든 부처의 근원에 합하고 밑으로는 중생들의 마음에 합한다. 그러므로 `곳곳이 진실하여 티끌마다 본래의 사람이다. 실제로 말할 때는 소리에 나타나지 않고 정체는 당당하나 그 몸은 없다'고 말한 것이다. 대중스님네들이여, 무엇이 그 당당한 정체인가?"
주장자로 한 번 내리치고 "이것이 당당한 정체라면 어느 것이 주장자인가?" 하시고 다시 한 번 내리친 뒤 "이것이 주장자라면 어느 것이 당당한 정체인가?" 하시고는 드디어 주장자를 던져버리고 말씀하셨다.
"쌀 한 톨을 탐내다가 반년 양식을 잃어버렸다. 대중들이여, 오래 서 있었으니, 몸조심들 하여라."
그리고는 자리에서 내려오셨다.

 4. 해제 (解制) 에 상당하여

 스님께서 법좌에 올라가 말씀하셨다.
"4월 15일에 결제에 들어가 7월 15일이 되어서 해제를 하니 납자들은 모였다 흩어진다. 봄은 가고 가을이 오니 새로움과 낡음이 변하는구나."
주장자를 쑥 뽑아들고 말씀하셨다.
"말해 보라. 이것이 맺음인가 풂인가, 모임인가 흩어짐인가, 가는 것인가 오는 것인가, 새것인가 옛것인가, 변하는 것인가 변하지 않는 것인가?"
주장자로 한 번 내리친 뒤에 말씀하셨다.
"맺음이라고도 할 수 없고 풂이라고도 할 수 없으며, 모임이라고도 할 수 없고 흩어짐이라고도 할 수 없다. 가는 것이라고도 할 수 없고 오는 것이라고도 할 수 없으며, 새것이라고도 할 수 없고 옛것이라고도 할 수 없다. 변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없고 변하지 않는 것이라고도 할 수 없다. 무엇이라고도 할 수 없는 것이라면 결국 무엇이란 말인가?"
주장자를 던지고는, "눈을 치켜뜨고 자세히 보라. 이것은 진실로 분명한 주장자이니라. 몸조심들 하거라" 하셨다.

 5. 내원당에서 보설 〔入內普說〕

 "부처의 참법신 〔眞法身〕 은 마치 허공과 같아, 물 속의 달처럼 물건에 따라 형상을 나타낸다."
불자를 세우고는 말씀하셨다.
"석가께서 여기 이 산승의 불자 꼭대기에 와서 묘한 색신 (色身) 을 나타내고 큰 지혜광명을 놓으며 큰 해탈문을 여는 것은 오로지 우리 성상 폐하의 만만세를 위해서이니 백천의 법문과 한량없는 묘한 이치와 세간, 출세간의 모든 법이 다 이 속에 있습니다. 여러분은 보십니까? 만일 환히 볼 수 있으면 산하대지와 삼라만상, 초목총림과 사성육범, 모든 유정무정들이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얼음처럼 녹고 기왓장처럼 부숴지는 것을 볼 것입니다.
그 경지에 이르러서는 선 (禪) 도 없고 도 (道) 도 없으며, 마음도 없고 성품도 없으며, 현 (玄) 도 없고 묘 (妙) 도 없어서 적나라하고 적쇄쇄 (赤  ) 하여 잡을 데가 없습니다. 그러나 만일 그렇게 해 나간다면 다시 짚신을 사 신고 30년 동안을 행각하여도 납승의 기미는 꿈에도 보지 못할 것입니다. 말해 보십시오. 납승의 기미가 무엇이 대단한지를."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밤이 고요하매 두견새는 이 뜻을 알아, 그 한 소리가 취미 (翠微:산허리. 또는 먼 산에 엷게 낀 푸른 빛깔의 기운)  속에 있구나."

 6. 소참 (小參)

 "한 걸음 나아가면 천지가 가라앉고 한 걸음 물러서면 허공이 무너지며, 나아가지도 않고 물러서지도 않으면 숨기운은 있으나 죽은 사람이 될 것이다. 어떻게도 할 수 없으며 결국 어찌해야 하는가. 말할 사람이 있는가. 있거든 나와 보라."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어름어름하는 사이에 10만 8천리가 될 것이다" 하시고는 주장자로 선상을 한 번 내리치고 자리에서 내려오셨다.

 7. 제야 (除夜) 에 소참하다

 "텅 비고 밝은 것 〔虛明〕 이 활짝 드러나 상대도 끊고 반연도 끊었으니, 예나 지금이나 말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영산회상에서는 꽃을 들어 대중에게 보이셨고, 소림 (少林) 에서는 밤중에 눈에 섰다가 마음이 편해졌던 것이니, 겁외 (劫外) 의 광명을 꺼내서 본래면목을 비추어 보라."
불자를 세우고 "이것이 본래면목이라면 어느 것이 불자인가?" 하시고는 또 세우고 말씀하셨다.
"이것이 불자라면 어느 것이 본래면목인가? 여러분은 아는가. 여기서 당장 의심이 없어지면 섣달 그믐날에 허둥거리지 않을 것이나, 만일 의심이 있으면 지금이 바로 그 섣달 그믐날이다. 자, 여러분은 어떻게 낙찰을 보는 것인가."
불자를 들고는, "한 가닥 끄나풀〔絡索〕은 과거에도 그랬고 미래에도 그럴 것이며 현재에도 그렇다. 오늘밤은 묵은해는 가지 않았고 새해는 오지 않았으니, 바로 이런 때 말해 보라. 묵은것, 새것에 관계없는 그 한마디는 무엇인가" 하시고, 불자를 던진 뒤에 말씀하셨다.
"묵은해는 오늘밤에 끝나고 새해는 내일 온다. 몸조심들 하시오."
그리고는 자리에서 내려오셨다.

 8. 자자일 (自恣日) 에 조상서 (趙尙書) 가 보설을 청하다

 "깨닫는 성품은 허공과 같거늘 지옥·천당이 어디서 생기며, 부처의 몸이 법계에 두루하거늘 축생과 귀신이 어디서 오겠습니까. 스님네든 속인이든, 남자든 여자든 할 것 없이 여러분이 나서 죽을 때까지 일상생활에서 짓는 선·악을 다 법이라 합니다.
무엇을 마음이라 합니까. 마음은 여러분 각자에게 있는 것으로서, 자기라 부르기도 하고 주인공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언제나 그것에게 부려지고 어디서나 그것의 계획을 따르는 것입니다. 하늘을 이고 땅에 서는 것도 그것이요, 바다를 지고 산을 떠받치는 것도 그것이며, 그대에게 입을 열고 혀를 놀리게 하는 것도 그것이요, 그대에게 발을 들고 걸음을 걷게 하는 것도 그것입니다. 이 마음은 항상 눈앞에 있지만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으며, 마음을 먹고 찾되 찾으면 찾을수록 더욱 멀어지는 것입니다.
안자 (顔子) 의 말에 `우러러볼수록 더욱 높고 뚫을수록 더욱 단단하며, 바라볼 때는 앞에 있더니 어느 새 뒤에 있다' 한 것이 바로 그 도리인 것입니다.
한 생각도 생기기 전이나 한결같이 참되어 망념이 없을 때에는, 물들음 없는 옛거울의 빛처럼 깨끗하고 움직임 없는 맑고 고요한 못처럼 밝아서 오랑캐가 오면 오랑캐가 나타나고 한인 (漢人) 이 오면 한인이 나타납니다. 하늘과 땅을 비추고 예와 지금을 비추되 털끝만큼도 숨김이 없고 털끝만큼도 걸림이 없습니다. 그것은 모든 부처와 조사들의 경계며 또 여러분이 옛날부터 지금까지 써도 써도 다하지 않는, 본래 가진 물건입니다.
오늘 명복을 비는 조씨의 영혼과 먼저 돌아가신 법계의 혼령들과 이 자리에 가득한 사부대중은 무슨 의심이라도 있습니까. 만일 있다면 다시 한 끝을 들어 보이겠습니다."
죽비를 들고, "이것을 보십니까" 하시고는 다시 한 번 내리치고 말씀하셨다.
"이 소리를 듣습니까? 보고 듣는 그것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여기에서 분명하여 의심이 없고 또 우리 부처님의 우란 (枳蘭) *의 힘을 입으면, 고통이 없어지고 즐거움을 받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못되어도 천궁 (天宮) 에 나고 잘되면 불국 (佛國) 에 날 것입니다.
오늘 이 법회를 마련한 시주 조씨는 돌아가신 부모님의 영혼을 위해 갖가지 불사를 마련하였습니다. 이런 공덕에 어떤 죄가 멸하지 않고 어떤 업이 사라지지 않으며, 어떤 복이 생기지 않고 어떤 선 (善) 이 자라지 않겠습니까. 그 때문에 결국은 불국에 왕생하고, 그 때문에 결국은 본래면목을 환히 볼 것입니다.
다시 게송 한 구절을 들으십시오.

얼음 전부가 물인즉 물이 얼음 되니
옛 거울은 갈지 않아도 원래부터 빛이 있었네
바람이 절로 불어 티끌이 절로 일지만
본래면목은 당당하게 드러나 있네.
全氷是水水成氷 古鏡不磨元有光
風自動兮塵自起 本來面目露堂堂

 몸조심들 하십시오."

 9. 보설 (普說)

 스님께서는 법좌에 올라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알겠는가. 사부대중이 함께 모여 일심으로 굳이 설법을 청하므로 산승이 이 자리에 올라왔다. 대중은 잠자코 이 설법을 들으라. 이 눈앞에 분명하고 역력하여 설법을 듣는 자는 그 누구며, 합장하고 묻는 이는 그 누구며, 머리 숙여 절하는 이는 그 누구인가. 여러분은 각자 점검해 보라.
여러분은 `설법을 듣고 아는 것은 바로 나 주인공이다'라고 말하지 말아라. 그러면 나는 여러분에게 묻겠다. 만일 그것이 주인공이라면 그것은 긴가 짧은가, 아니면 큰가 작은가. 그 면목은 어떠며 그 모양은 어떠며 그것은 어디서 안신입명 (安身立命) 하고 있는가. 여러분이 분명히 알고 분명히 보며 분명히 말한다고 한다면, 나는 다시 여러분에게 묻겠다. 알아내고 보아내는 그 주인공이란 무엇인가? 그러므로 조사님네도, `그것은 마음도 아니요 부처도 아니며 물건도 아니다'라고 하였다. 그러면 그대들은 말해 보라. 마음도 아니요 부처도 아니며 물건도 아니라면 결국 그것은 무엇인가. 여기서 만일 깨치지 못한다면 어떻게 이 산에서 1만 2천 담무갈 (曇無竭:항상 般若波羅蜜多經을 설하였다는 보살) 의 진면목을 볼 수 있으며, 어떻게 1만 2천 보살이 항상 말하는 반야를 들을 수 있겠는가. 다만 높이 솟은 기이한 바위와 우거진 소나무·잣나무들만을 볼 것이니, 우리 임제 (臨濟) 의 정통종지와 무슨 관계가 있겠으며 그것에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여러분은 부디 물러서지 말아라. 임제도 눈은 가로 찢어지고 코는 섰으며, 여러분도 눈은 가로 찢어지고 코는 우뚝하여 털끝만큼도 다르다거니 같다거니 하는 모양을 찾을 수 없다. 이미 우리 문중의 종자라면 같든지 다르든지 정법안장을 없애버리고 임제의 정통종지를 붙들어 일으키든지 누가 상관하겠는가.
그러면 임제의 정통종지를 어떻게 붙들어 일으키겠는가. 3현 (三玄) ·3요 (三要) 를 붙들어 일으키겠는가. 4료간 (四料揀) ·4빈주 (四賓主) ·4할 (四喝) 인가. 그런데 그 할은 죽 먹은 기운으로 하는 것이니, 누가 그것을 몰라 임제의 정통종지라 하겠는가. 비록 `한 번의 할에 빈주 (賓主) 를 나누고 조용 (照用) 을 한꺼번에 행한다. 그 속의 뜻을 알면 한낮에 삼경을 치리라'고 말했지만, 그 말로 여러분은 속일 수 있지만 이 산승은 속이지 못한다. 여러분, 자세히 점검해 보아라."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한 번 할 (喝) 한 뒤에 말씀하셨다.
"형상이 생기기 전에도 빈주와 조용이 있었던가 없었던가. 이 할이 사라진 뒤에도 조용과 빈주가 있을 것인가 없을 것인가. 할을 하는 그 순간에는 빈주와 조용이 할 속에 있는가 할 밖에 있는가. 아니면 그 속에도 있지 않고 바깥에도 있지 않은가."
또 한 번 할하고 말씀하셨다.
"도리어 그 가운데의 뜻을 한꺼번에 말해버렸다. 산승의 이런 판결이 과연 임제의 정통종지를 붙들어 일으켰는가. 임제의 정통종지를 붙들어 일으키지 못했다면, 그것은 결코 조용과 4료간·4빈주·4할·3현·3요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이미 아무 데도 있지 않다면 도대체 그것은 어디 있는가. 그것은 오직 여러분 당사자 〔¿上〕 에게 있다.
여러분은 알아야 한다. 자기에게 있다는 그 하나 〔一着子〕 는 하늘에 두루하고 땅에 가득하지마는, 3세의 모든 부처도 역대의 조사도 천하의 선지식들도 감히 바른 눈으로 보지 못하니 중요한 것은 그 당사자가 그 자리에서 당장 깨닫는 길뿐이다.
그러므로 선배 큰 스님네들은 그대들이 그대로 당장 깨달으려 하지 않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방편을 드리워 그대들에게 아무 의미도 없는 그 화두를 참구하게 한 것이다. 가령 예를 들면 어떤 스님이 조주스님에게 `개에도 불성이 있습니까?'하고 물었을 때 조주스님은 `없다 〔無〕 ' 하였으니, 그것은 벌써 있는 그대로 드러낸 〔和槃托出〕  것이다. 그대들이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부득이 죽은 말을 고치는 의사처럼 그대들에게 구구하게 무 (無) 라는 것을 가르치되, 먼저 4대·5온·6근·6진과 나아가서는 눈앞에 보이는 산하대지와 밝음과 어두움·색과 공·삼라만상과 유정무정 등 모두를 하나의 `무'자로 만들어 한결같이 그것을 들게 한 것이다. 그리하여 다니면서도 그것을 들고, 앉거나 눕거나 자거나 밥을 먹는 등 어디서나 그것을 들되, 끊임없이 빈틈없이 한 덩이로 만들게 한 것이다. 바늘도 갈구리도 들어가지 않고 은산철벽 (銀山鐵璧) 과 같아 모르는 결에 한 번 부딪쳐 자기에게 있는 그 하나를 뚫으면, 깨닫기를 기다리지 않고 저절로 환히 알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부모가 낳아주기 전의 면목도 알게 되고 4대가 흩어져 어디로 가는지도 알게 된다. 또한 이 산승이 여러분들을 속인 곳도 알게 되고, 지금까지 조사님네들이 천차만별로 틀린 곳도 알게 될 것이니, 이렇게 모두들 환히 아는 것이 바로 임제의 정통종지를 붙들어 일으키는 경계일 것이다.
그때가 되면 세상법과 불법에 조금도 틈이 없어 3현·3요·4료간·4빈주·4할과 4대·5온·6근·6진·산하대지·삼라만상 등 모든 법이 다 임제의 정통종지임을 그대로 볼 것이다. 그렇게 되면 어떤 법도 임제의 정통종지 아닌 것이 없어 붙들지 않아도 스스로 일어날 것이다. 그런 뒤에는 버려도 되고 세워도 되며 내가 법왕이 되어 모든 법에 자재할 것이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내려오셨다.

 10. 욕불*상당 (浴佛上堂)

 스님께서는 향을 사른 뒤에 법좌에 올라, 세존께서 처음으로 세상에 내려오실 때에 한 손으로는 하늘을 가리키고 한 손으로는 땅을 가리키며 사방으로 일곱 걸음을 걷고 눈으로 사방을 돌아보시면서, `천상천하에 오직 나만이 높다' 하신 말씀을 거론하고 말씀하셨다.
"대중스님은 아는가. 괴상한 것을 보고도 의심하지 않으면 그 괴상함이 스스로 물러간다. 싣달태자가 처음 태어난 이 날에 하늘과 땅을 가리키며 풍파를 일으켰다. 여러가지 괴상한 일을 만들어내 자손들의 눈 속에 모래를 끼얹으면서 해마다 오늘 8일에 이른다. 한 동이의 향수로 그 흔적을 씻지만, 아무리 씻고 씻은들 그 티끌이 다할 수 있겠는가. 나귀해〔驢年:12간지에도 없는 해) 가 될 때까지 씻고 또 씻어 보아라."
선상을 세 번 내리친 뒤에 잇달아 말하기를, "대중스님네여, 각기 위의를 갖추어 다 함께 부처를 씻습시다" 하시고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11. 결제에 상당하여

 스님은 향을 사뤄 황제를 위해 축원한 뒤에 또 향을 들고 말하였다.
"이 향은 오래 전에 얻은 것으로 이제껏 사른 일이 없었다. 이제 보암 (普庵) 장로를 통해 신표의 가사를 전해 왔으므로 향로에 사루어서 보지 못한 이에게 보게 하고 듣지 못한 이에게 듣게 하여 삼가 서천 (西天) 의 108대 조사 지공 (指空) 대화상에게 법유 (法乳) 로 길러주신 은혜를 갚으려 하는 것이다."
그 향을 꽂고는 법좌에 올라 말씀하셨다.
"오늘은 천하 총림이 결제에 들어가는 날이오. 청평산 (淸平山)  비구 나옹은 이름도 없고 글자나 형상도 없으며, 미오 (迷悟) 도 없고 수증 (修證) 도 없으면서, 해같이 밝고 옷칠같이 검은 이 한 물건을 여러분의 면전에 흩어두리라. 북을 쳐서 운력이나 하거라. 여러분은 알겠는가. 만일 알 수 없다면 다시 이 소식을 드러내겠다."
주장자를 들고 "보았는가" 하시고 한 번 내리치고 말씀하셨다.
"들었는가. 보고 들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여기서 당장 의심이 없어지면, 중이거나 속인이거나 남자거나 여자거나 산 사람이거나 죽은 사람이거나 계단을 거치지 않고 저쪽으로 지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무슨 긴 기간 짧은 기간의 결제와 해제가 있겠는가. 혹 그렇지 못하더라도 석달 90일 안거하는 동안에 주장자 꼭대기를 꿰매고 포대 아가리를 묶고는 세 서까래 〔三條椽〕 * 밑과 일곱 자 단 〔七尺單〕 * 앞에서 금강권 (金剛) *을 떨쳐내고 율극봉 (栗棘蓬) *을 삼킨다면, 또 꿈속의 불사를 짓고 거울 속의 마군을 항복받아 3업이 청정하고 6근이 깨끗하여 행주좌와 (行住坐臥) 에 아무 허물이 없으며, 조사의 자리를 이어받아 영원히 끊이지 않게 한다면 어찌 참으로 출가한 대장부가 아니겠는가.
만일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오늘 신 (申) 씨가 명복을 비는 신군평 (申君平) 과 여러 영혼들은 이 공덕을 받을 것이니, 무슨 죄인들 면하지 못하고 무슨 고통인들 벗어나지 못하겠는가. 그리하여 시방 불국토에 마음대로 왕생하여 어디서나 즐거울 것이니 어찌 유쾌하지 않겠는가. 그렇긴 하지만……"
불자를 세우고는, "이 하나는 닦고 깨닫는 데 〔修證〕 에 들어가는가, 닦고 깨닫는 데 들어가지 않는가?" 하시고 불자를 던지면서 "눈 있는 납승은 스스로 한 번 볼 일이다" 하시고 법좌에서 내려오셨다.

 12. 달마상에 점안하며 〔達磨開光祝筆〕

 스님께서 붓을 들고 말씀하셨다
"이미 가섭으로부터 28대 조사들이 다 눈을 갖추어 6종 (六宗:육사외도) 을 항복받았는데, 무엇 때문에 이 달마에게 또다시 점안 (點眼) 해야 하는가. 그 이유를 말할 사람이 있는가. 말할 수 있다면 달마를 위해 숨을 토할 뿐만 아니라, 온 법계의 중생들에게도 이익을 주어야 할 것이다. 만일 말할 수 없다면 게송 한마디를 들어라."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眞指人心明見性

老胡知放不知收

從玆眼病空花發

徧界紛紛峠亂墜

峠亂墜兮自不休

杳杳冥冥路轉遙 

사람의 마음을 그대로 가리켜 성품을 밝게 보게 했나니
노호 (老胡:달마) 는 놓을 줄만 알았고 거둘 줄을 몰랐다
그로부터 눈병이 나서 헛꽃이 피어
헛꽃이 온 세계에 어지러이 떨어졌다
쉬지 않고 어지러이 떨어지는 헛꽃이여
아득하고 막막해라. 길은 멀고 멀구나.

 


 붓으로 점을 찍고 말씀하셨다.
"오늘 그에게 옛 광명을 보태 주니 푸른 눈동자에 형형한 빛이 하늘에 사무친다."

 13. 지공화상 생일에

 스님께서 화상의 진영 앞에 나아가 말씀하셨다.

驀而相逢親見徹

機鋒險峻毛骨寒

諸人欲識西天而

一片香烟起處看

얼굴을 마주 대고 친히 뵈오니
험준한 그 기봉 (機鋒) 에 모골 (毛骨) 이 시리다
여러분, 서천 (西天) 의 면목을 알려 하거든
한 조각 향 연기 일어나는 곳을 보라.

 향을 꽂고는 한참을 잠자코 있다가 말씀하셨다.
"말해 보시오. 서천의 면목과 동토의 면목이 같은가 다른가. 비록 흑백과 동서는 다르다 하나, 뚜렷한 콧구멍은 매한가지니라."


 14. 지공화상 돌아가신 날에

 1.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왔어도 온 것이 없으니 밝은 달 그림자가 강물마다 나타난 것 같고, 갔어도 간 곳 없으니 맑은 허공의 형상이 모든 세계에 나누어진 것 같다. 말해 보라. 지공은 도대체 어디 있는가."
향을 사른 뒤에 다시 말씀하셨다.
"한 조각 향 연기가 손을 따라 일어나니, 그 소식을 몇 사람이나 아는가."

2.
 날 때는 한 가닥 맑은 바람이 일고
죽어가매 맑은 못에 달 �

 

14. 지공화상 돌아가신 날에

http://www.jbtemple.org/bbs/skin/ggambo7002_board/print.php?id=jbt_seon&no=64


1.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왔어도 온 것이 없으니 밝은 달 그림자가 강물마다 나타난 것 같고, 갔어도 간 곳 없으니 맑은 허공의 형상이 모든 세계에 나누어진 것 같다. 말해 보라. 지공은 도대체 어디 있는가."
향을 사른 뒤에 다시 말씀하셨다.
"한 조각 향 연기가 손을 따라 일어나니, 그 소식을 몇 사람이나 아는가."

2.

生時一陣淸風起

滅去席潭月影沈

生滅去來無       

示衆生體有眞心

有眞心休埋沒    

此時蹉過更何尋
날 때는 한 가닥 맑은 바람이 일고
죽어가매 맑은 못에 달 그림자 잠겼다
나고 죽고 가고 옴에 걸림이 없어
중생에게 보인 몸에 참마음 있다
참마음이 있으니 묻어버리지 말아라
이때를 놓쳐버리면 또 어디 가서 찾으리.



3.
스님께서 향을 들고 말씀하셨다.

千劍全提常活用

皇王罵動作奴之

平生氣壓東方老 

今日等閑轉一機

轉一機何處在

천검 (千劍) 을 모두 들고 언제나 활용하니
황제가 그를 꾸짖어 종 〔奴〕 을 만들었다
평소의 기운은 동쪽 노인을 누르더니
오늘은 무심코 한 기틀을 바꾸었다
바꾼 그 기틀은 어디 있는가.


향을 꽂고 말씀하셨다.
"지공이 간 곳을 알고 싶거든 부디 여기를 보고 다시는 의심치 말라."

4.
스님께서 향을 들고 말씀하셨다.

碧雙瞳穿兩耳    

須胡兮面皮黑

但恁?來恁?去   

不露奇相及神通

預期獨往家鄕路 

傳語令知輪帝宮

臨行垂示無人會

痛罵門徒不解宗

儼然遷化形如古  

體溫和世不同

不孝子無餘物   

 獻茶一 香一片

푸른 한 쌍 눈동자에 두 귀가 뚫렸고
수염은 모두 흰데 얼굴은 검다
그저 이렇게 왔다가 이렇게 갔을 뿐
기괴한 모습이나 신통은 나타내지 않았다
혼자서 고향길 떠나겠다 미리 기약하고서
말을 전해 윤제궁 (輪帝宮) 을 알게 하였다
떠날 때가 되어 법을 보였으나 아는 이 없어
종지를 모른다고 문도들을 호되게 꾸짖었다
엄연히 돌아가시매 모습은 여전했으나
몸의 온기는 세상과 달랐다
이 불효자는 가진 물건이 없거니
여기 차 한 잔과 향 한 조각 드립니다.

그리고는 향을 꽃았다.

 

나옹화상 승원가 (懶翁和尙僧元歌)
http://www.kr.buddhism.org/naong.html

승원가 (僧元歌)

*훈민정음이 없던 시절에 한자를 빌어쓰기는 했으나 우리말 표기에 고심하신 흔적이 역력하군요. 이건 우리말 노래입니다. 나옹화상의 걸림없는 사고의 깊이를 존중할 수밖에요. 한자로 우리말 적는 솜씨를 보면 나옹스님은 불심에서 우러난 경전 해석뿐만 아니라 우리말 표기에도 신미대사 이전에 탁월한 선구자였음을 확언할 수 있습니다. 아래 <승원가>에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중국인들도 못 읽는 한자어 구사가 경이롭기만 합니다. 한자는 본시 동이족이 만들었걸랑요.공자, 노자도 동이족이 확실합니다. 짱꼴라들이 군비경쟁 말고 뭘 알겠어요?

[참고] 짱꼴라는 본래 중국인을 가리키는 ‘쭝꾸오루〔中國兒〕’에서 나온 말이다. 중국 사람들 스스로가 자신들을 점잖게 가리킬 때 부르고 있는 호칭이다.

[바뀐 뜻] 우리나라에서는 이 말이 중국인을 비하해 부르는 말로 널리 통용되고 있다. 더 나아가서는 자장면 집을 하는 중국인만을 부를 때 쓰는 속어로 많이 쓴다.


나옹화상 승원가 (懶翁和尙僧元歌)
http://www.kr.buddhism.org/naong.html

승원가 (僧元歌)

*훈민정음이 없던 시절에 한자를 빌어쓰기는 했으나 우리말 표기에 고심하신 흔적이 역력하군요. 이건 우리말 노래입니다. 나옹화상의 걸림없는 사고의 깊이를 존중할 수밖에요. 한자로 우리말 적는 솜씨를 보면 나옹스님은 불심에서 우러난 경전 해석뿐만 아니라 우리말 표기에도 신미대사 이전에 탁월한 선구자였음을 확언할 수 있습니다. 아래 <승원가>에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중국인들도 못 읽는 한자어 구사가 경이롭기만 합니다. 한자는 본시 동이족이 만들었걸랑요.공자, 노자도 동이족이 확실합니다. 짱꼴라들이 군비경쟁 말고 뭘 알겠어요?

[참고] 짱꼴라는 본래 중국인을 가리키는 ‘쭝꾸오루〔中國兒〕’에서 나온 말이다. 중국 사람들 스스로가 자신들을 점잖게 가리킬 때 부르고 있는 호칭이다.

[바뀐 뜻] 우리나라에서는 이 말이 중국인을 비하해 부르는 말로 널리 통용되고 있다. 더 나아가서는 자장면 집을 하는 중국인만을 부를 때 쓰는 속어로 많이 쓴다.

主人公主人公我
주인공 주인공아    

世事貪着其萬何古
세사탐착 그만하고 

慙愧心乙而臥多西
참괴심을 이와다서

一層念佛何等何堯   
한층염불 어떠하뇨 

 昨日少年乙奴
어젯날 소년으로   

 今日白髮惶恐何多
금일백발 황공하다 

朝績那殘無病陀可
아침나절 무병타가

夕力羅未多去西
저녁나절 못다가서 

手足接古死難人生
손발접고죽난인생  

 目前頗多何多
목전애 파다하다   

今日以士無事旱達
금일이사 무사한달  

明朝乙定爲孫可
명조를 정할손가     

困困而拾我會我
고생고생이 주어모아 

幾百年生羅何古
몇백년 살라하고     

 財物不足心隱
재물 부족심은       

天子羅道無殘難而
천자라도 없잔나니 

貪欲心乙揮耳治古
탐욕심을 물리치고 

精神乙振體出餘
정신을 떨쳐내여    

奇妙旱山水間厓
기묘한 산수간애    

物外人而道汝文多
물외인이 되려문다 

人道其難業去等
사람되기 어렵거던 

盲龜遇木如陀何而
맹구우목 같다하니 

佛菩薩恩德以奴
불보살 은덕으로    

此身道也出臥是以
이몸되야 나왔으니 

 伊安耳多幸何也
이아니 다행하냐   

佛體主恩德乙奴
부처님 은덕으로    

寸步道忘之末古
촌보도 잊지말고    

阿邇陀佛於西何也
아미타불 어서하야 

極樂乙奴歸我可自
극락으로 돌아가자 

主人公主人公我
주인공 주인공아    

殘傷古可憐何多
불쌍코 가련하다    

百年刀牟多生隱
백년도 못다사는    

以一身乙具之未陀
이한몸을 구지믿아 

無散慈味見羅何古
무산재미 보라하고 

飮古餘隱田沓四其
먹고남은 전답사기 

用古餘隱財物以難
쓰고남은 재물로난 

時土老脛營何也
시사로 경영하야    

無益旱貪心乙奴
무익한 탐심으로    

頂上厓寶羅限多
정상애 보랴한다    

覺治餘隱主人公我
깨치려는 주인공아 

石崇耳刀財物奴死古
석숭이도 재물로 죽고 

苑丹耳刀君殘羅而
원단이도 구잔나니

艱難界有餘界臥
가난계 유여계와    

(自+乙)刀其未刀其難
잘되기 못되기난    

前生造隱大奴
전생애 지은대로    

此身刀也出來除介
이몸되야 나올적에 

天定以奴馬鍊何也
하늘이 정한대로 마련하 

在天明白何也去等
재천명백 하얏거던 

草木末露如隱
초목끝애 이슬같은 

危太旱以命壽乙
위태한 이목숨을    

千年外厓生羅何古
천년밖애 살라하고 

其大道奴乞加其那
그대도록 빌더구나 

嗔心惡生顔太上禮
진심악생 얼굴우에

對面何其哀納通多
대면하기 애달도다 

主人公主人公我
주인공 주인공아 

目前厓見銀去是
목전애 보는 것이 

枚枚治鏡于以堯
낱낱이 거울이요  

耳末厓聞難去是
귀끝애 듣난 것이 

枚枚治鏡于以耳
낱낱이 거울이니  

未聞難也主人公我
못듣난야 주인공아 

未見難也主人公我
못보난야 주인공아 

吾意用心毛練去等
나의용심 모르거던 

南乙見古覺治我文
남을 보고 깨칠아문 

秦蘇晋漢小光道
진소진 한소광도 

財物奴覺治去隱
재물로 깨치거는 

汝隱何之毛奴難多
너는어찌 모로난다 

期別無隱惡眞病以
기별없는 모진병이 

一朝厓身愛入於
일조애 몸애들어 

三百六身骨絶馬當
삼백육신 골절마당 

寸寸苦痛割除
마디마디 고통할제 

八珍味造隱飮食
팔진미 좋은음식    

好陀何古飮古寶羅
좋다하고 먹어보라 

最親至親會我入於
최친지친 모아들어

至誠乙奴勤何也道
지성으로 근하야도 

冷水外其未食介多
냉수밖에 못먹게다 

哀而古主人公我
아이고 주인공아    

前生厓怨讐奴西
전생애 원수로서   

債報厓入病耳
빚값애 든병이       

牛黃乙奴何之何面
우황으로 어찌하며 

人三乙奴保其何也
인삼으로 보기하야 

鞭作如加依迷人達
편작에 들이민들    

天命乙何爲耳
천명을 어찌하리    

千金乙虛費何古
천금을 허비하고    

萬財乙皆入於道
만재를 다들여도    

勞耳無功分而奴多
노이무공 뿐이로다 

於臥可笑吾古可笑吾多
어와가소롭고 가소롭다 

佛法乙于笑內幾
불법을 우스여겨    

念佛一番不以何古
염불한번 아니하고 

毫活呼如單耳多可
호활부려 다니다가 

 病中厓後悔何也
병중애 후회하야   

其前那也佛供何面
기전나야 불공하며 

觀踵菩薩急希呼
관음보살 급히불러

項乾羅井未破其老
목말라 샘파기로   

本來無難汝情誠乙
본래없난 네정성을 

臨渴界四我當何達
임갈계사 아당하달 

何隱佛體應惑何耳
어떤부처 응감하리 

閻羅大王使忍差使
염라대왕 부린차사 

令惡何古險限使者
영악하고 험한사자 

汝門前當到何也
너문전애 당도하야 

人情無是達那入於
인정없이 달라들어 

霹靂可治者所來除
벽력같이 잡아내제 

去大馬多交主人
갈때마다 사귄주인 

死自生自親限友至
죽자사자 친한벗이 

汝罪禮代身去耳
네죄예 대신가리    

生覺建大其誰在是面
생각건대 그누구이시며 

肯仰何古貴限圍乙
사랑하고 귀한지를 

毛來而生覺何隱
몰래 생각하는       

妻子眷屬一家中
처자권속 일가중애 

代身去而其誰有古
대신갈이 그누구인고 

限平生晝夜無而
한평생 주야없이    

寒爲署爲生覺殘古
추위더위 생각잖고 

千深萬古何也
천심 만고하야      

懃心以奴莊萬何古
근심으로 장만하고 

慾心以奴成奴生隱
욕심으로 일워나온 

玉地玉¿家莊器物
옥지옥답 가장기물 

奴婢牛馬千財萬財
노비우마 천재만재 

我毛耳我可溫達
아무리 아까온달    

何而去人情何面
어디가 인정하며    

負古去面抱古去也
지고가며 안고가랴 

空手以奴出我多可
빈손으로 나았다가 

空手以奴入練去伊
빈손으로 들어가니 

百年貪物一朝塵乙
백년탐물 일조진을 

親古無信冥間路
친구없신 어둔길에 

割吉無難孤魂以金
할길없난 고혼이쇠 

十王殿推列割除
시왕전애 추열할제 

牛頭那刹馬頭那刹
우두나찰 마두나찰 

左右片列立何也
좌우편애 열립하야 

番介如隱目乙浮古
번개같은 눈을뜨고 

霹靂如隱惡眞聲
벽력같은 모진소래 

一時禮呼痛何面
일시에 호통하며 

秋霜如歎創劍以奴
추상같안 창검으로 

腋腋被擧西其每
옆옆이 들서기매    

直奴何羅呼令割除
바로하라 호령할제 

骨節耳頹 於之古
골절이 무너지고    

萬身耳血色治羅
만신이 피빛이라    

何隱親古後發見耳
어느친구 훗날보리 

妻子眷屬一家馬當
처자권속 일가마다 

我乙死多古哀被哭達
나를죽었다고 슬피운달 

底彦拙練耳知耳
저런줄 어이알리    

悲抱古庶論之羅
슬포고 서론지라    

高聲大聲痛哭何古
고성대성 통곡하고 

子孫親戚他不以達
자손친척 남아닌달 

死隱父母思覺何也
죽은부모 생각하야 

薦度何自議論何其
천도하자 의논하기 

千萬中厓幾枚治古
천만중에 몇낱이고 

哭其難其萬何古
울기난 그만하고    

初喪三喪去隱日愛
초상삼상 가는날애 

生命壽除乙捉夫面
명수 덜잡으면    

其大道奴설殘難伊
그대도록 설잖나니 

我年故依托何古
내연고 의탁하고    

他無目乙慰老何也
남무눈을 위로하야 

摩之馬羅何去萬隱
마지마라 하거만은 

罪隱汝造如道
죄은 너지은대로    

霹惡隱我當去等
벼락은 내당커던    

雪上加霜無散事古
설상가상 무산일고 

生前富貴多子孫乙
생전부귀 많은자손을 

人岩馬中不所何達
사람마중 불바하달 

死隱後加玉雪多
죽은후애 더옥설다 

平生造隱罪乙
평생애 지은죄를    

曆曆希相考何也
역력히 상고하야   

八萬四千無邊獄厓
팔만사천 무변옥애 

重恨罪奴磨鍊何古
중한죄로 마련하고 

其餘隱小隱罪奴
그남은 적은죄로    

牛爲建耳馬爲建而
소되건이 말되건이 

犬獸生蛇岩九令爲面
개짐생 뱀구렁되면 

何等恨善事奴西
어떠한 좋은일로서 

人道厓還生何耳
인도애 환생하리 

生覺建大加玉說多
생각건대 더옥설다 

主人公主人公我
주인공 주인공아 

盟誓何古念佛何也
맹세하고 염불하야 

繹迦世尊勸恨念佛
석가세존 권한염불 

十六觀經謂乙馬三
십륙관경 이를말삼 

日沒觀而第一羅
일몰관이 제일이라 

西山知隱年乙
서산애 지는해를    

開目閉目厓
뜨는 눈 감는 눈     

眼前厓掛於置古
안전애 걸어두고    

阿邇陀佛大聖號乙
아미타불 대성호를 

晝夜無是誦吾多可
주야없이 외오다가 

定念而道亡何古
정념이 도망하고    

雜念而西道乙去等
잡념이 서돌거던    

勸勸何耳自何也
부지런히 자책하야 

還尙活可懃心何以
환생할가 근심하여 

世事可治肯着何也
세사같이 애착하야 

일구월심 공부하리 
日久月深工夫何耳

世事念隱小去只古
세사생각은 적어지고 

念佛而主丈道也
염불이 주장되야    

一心念佛何等何堯
일심염불 어떠하뇨 

念佛脛翫景何古
염불경 구경하고    

至誠矣奴念佛何面
지성으로 염불하면 

念佛人姓名字隱
염불인 성명자는    

閻羅大王冥府案內
염라대왕 명부안내 

必多是拔去古
반다시 빼가고       

極樂世界蓮花上禮
극락세계 연화우에 

明白希記錄何古
명백히 기록하고    

觀踵勢至大菩薩耳
관음세지 대보살이 

中媒道也多而多可
중매되야 다니다가 

以命壽盡割底計
이목숨 다할적에    

無數恨大菩薩果
무수한 대보살과 

수많은 성문연각 數多恨聲門緣覺
各各而香火執古
각각이 향화잡고 

雙雙而舞乙秋面
쌍쌍이 춤을추며 

百千風流鳴理是古
백천풍류 울리시고 

頃刻間厓往生何耳
경각간애 왕생하리 

極樂世界莊嚴見小
극락세계 장엄보소 

黃金以地而爲古
황금이 땅이되고 

七寶澤廣隱池是
칠보연못 넓은못이 

處處現氣是乃
처처애 생기시나    

滿澤而馱臥有古
가득이 되어있고    

水下伸如沙來
물아래 피연모래    

旬色疑奴黃金而堯
순색으로 황금이요 

地中厓蓮花花讚
땅속애 연화꽃안    

靑蓮花黃蓮花臥
청련화 황련화와    

赤蓮花白蓮花臥
적련화 백련화와 

車厓朴古可歎蓮花
수레바퀴 같은연화 

四節無時伸如有古
사철없이 피여있고 

七寶難自自恨大
칠보는 자자한대    

靑色而面靑光以堯
청색이면 청광이요 

黃色而面黃光以堯
황색이면 황광이요 

靑黃赤白四色光明
청황적백 사색광명 

西奴西奴相雜何古
서로서로 상잡하고 

香臭難美妙恨大
향취난 미묘한데 

其上厓樓閣家耳
그우애 누각집이 

虛空中厓生其是乃
허공중애 생기시나 

七寶奴莊嚴何耳
칠보로 장엄하니   

黃金白銀耳堯
황금 백은이요      

琉璃柱臥馬瑙柱奴
유리주와 마노주로 

色色矣奴所治是古
색색으로 바치시고 

七疊軒間造隱上厓
칠층난간 지은우애 

七寶網乙揮如治古
칠보망을 둘러치고 

七寶香水寶拜木以
칠보향수 보배목이 

七寶奴揮如西羅
칠보로 둘녔어라    

靑鶴白鶴鸚鵡孔子
청학백학 앵무공작 

可鷹可 功名等而
가응가곤 공명등이 

可卿可卿鳥金生而
가지가지 새짐생이 

七寶池香樹間厓
칠보연못 향나무새애 

一以飛那切以可古
이리날라 저리가고 

切耳飛那一以來耳
저리날라 이리오니 

去面來面鴨隱聲厓
가며오며 우는소래 

聲以馬當說法以堯
소리마다 설법이요 

淸風以蕭蕭何面
청풍이 소소하며    

七寶行樹撓動何古
칠보행수 요동하고 

彦脛當脛出隱聲厓
은경당경 나는소래 

白千風流泣而是古
백천풍류 울리시고 

聞而隱聲哀麻當
들리는 소래마다 

念佛說法忿以奴多
염불설법 뿐이로다 

其分仁加底極樂隱
그뿐인가 저극락은 

農事乙不以何也道
농사를 아니하야도 

衣食乙生覺何面
의식을 생각하면    

衣食而自來何古
의식이 자래하고    

默默何古生覺何小
잠잠하고 생각하소 

少年時未恨念佛
젊을때에 못한염불 

老懃後厓割吉無多
늙은후에 할길없다 

無常殺鬼人情無西
무상살귀 인정없어 

二十前三十前厓
이십전 삼십전애    

限定無是死難人生
한정없이 죽난인생 

如其底其無數何而
여기저기 무수하니 

老去等隱念佛何自
늙거던 염불하자   

稱歎末何念佛何小
칭탄말고 염불하소 

平坐割除未恨念佛
평안할제 못한염불 

病入後割吉無多
병든후애 할길없다 

今日明日此日這日
오늘내일 이날저날 

嚴犯加犯過內多可
엄벙덤벙 디나다가 

意無是死去之面
뜻없이 죽어지면    

寒氷地獄火湯地獄
한빙지옥 화탕지옥 

銅柱地獄鐵牀地獄
동주지옥 철상지옥 

可枝可枝深隱地獄厓
가지가지 깊은지옥애 

裂底出面斬也來面
찢어내며 베여오며 

煮之去耳烹馬去耳
지지거니 삶아거니 

壹夜壹晝厓
하룻밤 하룻낮애 

萬邊死其面萬邊脫羅來而
만번죽으며 만번사라나니 

誰多臨而道也何古
수많은이 되랴하고 

婆分說節隱伸脫
바쁜말 저른신탈 

可枝可枝稱脫奴西
가지가지 칭탈로서 

嚴處隱世嚴師馬
엄첩은 세엄사마    

念佛厓拜道去等
염불애 배도거던    

以世上生我有西
이세상애 살아있어 

被古食去刀
잘입고 잘먹어도    

一那 腹古布古
한나잘 베고푸고    

 一那 寒隱去刀
한나잘 추운것도   

忍其難吾去隱
참기 어렵거든      

況物面百千萬劫厓
하물며 백천만겁   

間短無是大苦痛乙
간단없이 대고통을 

其大之無散乃其
그다지 업산너겨    

毫活不如行割小也
호활불여 행할소냐 

可怜人生我人事乙
가령인생 내인사를 

稱讚恨達無於何面
칭찬한달 무어하며 

悔謗恨達時氣何也
회방한달 시기하랴 

稱耳苦樂乙
일컬어 고락을       

八風厓一謂汝刀
팔풍애 일위여도    

風岩如坦人間事乙
바람같안 인간사를 

知建體婆而末古
알은체 바이말고    

如聾如盲何也
여농 여맹하야       

主人公主人公我
주인공 주인공아    

人事不成夫大道如
인사불성 부대되어 

阿邇陀佛於西何自
아미타불 어서하자 

于耳佛體大聖尊而
우리부처 대성존이 

去之末奴欺其是也
거짓말로 쇠기시랴 

誹謗心饋之末古
비방심 먹지말고    

耳萬人生道也悉除
이만인생 되얏을제 

極樂國蓮花臺乙
극락국 연화대를    

自掌中厓決斷何自
손바닥에서 결단하자 

南無阿邇陀佛
나무아미타불        

立我世上毫傑野羅
이봐세상 호걸들    

 離苦得樂何吾乙法乙
이고득락 하올법을

四十九年說法中厓
사십구년 설법중애 

可抄可抄見餘建萬隱
가초가초 뵈였건만은 

五濁惡世末法中厓
오탁악세 말법중애 

幸得人身道也産耳
행득인신 되었으니 

罪上耳重恨之羅
죄상이 중한지라 

六道萬行悉大業西
육도만행 쓸데없어 

諸法門乙孟器是耳
제법문을 맹기시니 

念佛何也極樂可文
염불하야 극락감은 

末世羅事有益恨珠乙
말세라사 유익한줄 

邊地上厓觀察何耳
변지상애 관찰하리 

文殊普賢大菩薩果
문수보현 대보살과 

揷三祖師歷代聖賢
삽삼조사 역대성현 

次次奴奉持何事
차차로 봉지하사 

至今可至流通何耳
지금까지 유통하니 

于耳可歎罪惡凡夫
우리같안 죄악범부 

念佛末古何之謁古
염불말고 어찌알꼬 

利天帝繹主道
도리천 제석님도   

제 天上人君道也悉除
천상인군 되었을

七寶宮殿好隱家厓
칠보궁전 조흔집애 

天上樂乙受何多可
천상락을 수하다가 

天上福而盡內之面
천상복이 진해지면 

生前罪奴落於底西
전죄로 떨어져서 

地獄道厓入多恨耳
지옥도애 든다하니 

人間厓若干毫傑
인간애 약간호걸    

下物面美達孫也
하물며 믿을소냐    

念佛隱廉恥業西
염불은 염치없어    

一生厓馬執古牛執隱
일생애 말잡고 소잡은 

屠牛場耳至惡人道
도수장이 지악인도 

臨終厓念佛何也
임종애 염불하야    

地獄報乙消滅何古
지옥보를 소멸하고 

極樂矣奴所奴去而
극락으로 바로가리 

一念無奴念佛乙
일념으로 염불을 

十方世界恒沙佛而
시방세계 항사불이 

同可之奴讚歎何古
한가지로 찬탄하고 

歷代聖賢奉持奴多
역대성현 봉지로다 

阿邇陀佛念佛法隱
아미타불 염불법은 

溫可事厓碍臨業西
온갖일에 걸림없어 

僧俗男女勿論何古
승속남녀 물론하고 

有識無識貴賤間厓
유식무식 귀천간애 

所業乙購治末古
소업을 폐치말고 

農夫去加農事何面
농부거던 농사하며 

遊難口厓阿邇陀佛
노난입애 아미타불 

織女去加績三何面
직녀거던 길삼하며 

遊難口厓阿邇陀佛
노난입애 아미타불 

今生厓利他何古
금생애 이타하고    

行住座臥耳於何面
행주좌와 이어하면  

後生極樂難乙可
후생극락 어려울까 

多隱則六字念佛
많은즉 육자염불    

小隱卽四子念佛
적은즉 사자염불    

行住坐臥語默間厓
행주좌와 어묵간애 

高聲以那隱念以那
고성이나 은념이나 

大小間六子四子念佛乙
대소간 육자사자 염불을 

懃力大奴念佛何刀
근력대로 염불해도 

悲惑去隱阿邇陀佛
슬픈것은 아미타불 

好隱耳刀阿邇陀佛
조흔이도 아미타불 

遊難口厓雜談末古
노난입애 잡담말고 

阿邇陀佛言友三我
아미타불 말벗삼아 

念念厓阿邇陀佛
염염애 아미타불 

時時厓阿邇陀佛
시시애 아미타불 

處處厓阿邇陀佛
처처애 아미타불 

事事厓阿邇陀佛
사사애 아미타불 

壹生厓壹練何面
일생애 이러하면 

極樂去其難奴溫可
극락가기 어려온가 

一日殺而小隱筮耳
하루살이 작은벌레 

千里馬乙挾者吾面
천리말을 붙잡으면 

千里去其難吾殘古
천리가기 어렵잖고 

金石耳重何也道
금석이 중하야도 

廣大船厓載於斗面
광대선애 실어두면 

萬頃滄波深隱水厓
만경창파 깊은물에 

順息間厓濟乃去耳
순신간에 건너가리 

于以如歎罪惡人道
우리같안 죄악인도 

阿邇陀佛念佛德厓
아미타불 염불덕애 

繹迦如來大悲船乙
석가여래 대비선을 

船價無是得加乘古
배삯없이 얻어타고 

念佛三昧法海水厓
염불삼매 법해수애 

言這是這於內女
언저시 저어내여   

方便楫大高被達古
방편돛대 높이달고 

精進勞乙具持執古
진노를 가져잡고 

諸大聖賢引接路
제대성현 인접길애 

阿邇陀佛玉毫光乙
아미타불 옥호광을 

還出耳照治是古
훤출이 비치시고 

四十八願大願風乙
사십팔원 대원풍을 

太虛空厓非戒見耳
태허공애 빗겨뵈니 

十萬億國土外乙
십만억 국토밖을 

頃刻間厓往生何而
경각간애 왕생하리 

而安耳念佛船耳
이아니 염불선이   

萬船中厓上船耳羅
만선중애 상선이라 

其安耳長割孫也
그아니 장할소냐    

耳寶世上長老信來
이보세상 어르신네 

于耳道其心這心多婆而古
우리도 이맘저맘 다버리 

信心矣奴念佛何也
신심으로 염불하야 

先亡父母薦道何古
선망부모 천도하고 

一切衆生濟渡何也
일체중생 제도하야 

世上事多婆而古
세상사 다버리고    

蓮花船乙得加乘古
연화선을 얻어타고 

極樂矣奴於書去自
극락으로 어서가자 

極樂世界好歎言乙
극락세계 좋단말을 

僧俗男女多知去乙
승속남녀 다알거늘

於西練西底極樂
어서어서 저극락애 

速耳速耳受耳可自
속히속히 수이가자 

南無阿邇陀佛成佛
나무아미 타불성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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