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명 나라 사람의 시를 이손곡(李蓀谷:이달)은 하중묵(何仲黙) [중묵은 하경명(何景明)의 자]으로 첫째를 꼽되,

 

나의 중형은 이헌길(李獻吉) [헌길은 이몽양(李夢陽)의 자]을 최고로 여겼고,

 

윤월정(尹月汀:윤근수)은 이우린(李于麟)[우린은 이반룡(李攀龍)의 자]을 그 두 사람보다 뛰어났다고 여겼으니, 정론(定論)을 내릴 수 없다.

 

봉주(鳳洲 ) [명(明) 나라 왕세정(王世貞)의 호]의 말은,“비교하자면 헌길(獻吉)은 높고 중묵(仲黙)은 통창하며 우린(于麟)은 크다.”하고 그도 또한 누가 첫째요, 누가 다음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익지(益之:이달)가 하루는 율시 한 수를 내어 보이며,“이것은 세상에 전하지 않는 중묵[하경명]의 시일세.” 하기에,

 

처음에는 진짜인지 가짜인지 몰라서,“이 시는 맑고 뛰어났으니, 율시 고르는 자가 빠뜨렸을 리 없습니다. 아마도 당신의 의작일 겁니다.”하니, 익지가 자기도 모르게 껄걸 웃었다. 그 시는 다음과 같다.

 

客衾秋氣夜迢迢 객금추기야초초深屋疏螢度寂廖 심옥소형도적료明月滿庭凉露濕 명월만정량로습碧天如水絳河遙 벽천여수강하요離人夢斷千重嶺 리인몽단천중령禁漏聲殘十二橋 금루성잔십이교咫尺更懷東閣老 지척경회동각로貴門行馬隔雲霄 귀문행마격운소

 

나그네 이불에 스미는 가을 기운에 밤은 깊어가고 그윽한 집 성긴 반딧불만 고요 속을 나는구나 밝은 달은 뜰에 가득 서늘한 이슬은 함초롬 푸른 하늘은 물 같은데 은하수는 아득해라 이별의 꿈 고개고개 넘다 깨니 대궐 누수 소리 십이교에 여운지네 지척에서 새삼 동각로 그립건만 고관의 말굽 소린 하늘처럼 아득해라

 

짜임새와 구어(句語)가 대복(大復 하경명의 호)과 꼭 같아서, 감식안(鑑識眼)이 있는 사람이라도 구별하기 쉽지 않다. 이 시는 바로 이익지가 월정(月汀)에게 올린 작품이다.

 

월정(月汀)의 이름은 근수(根壽), 자는 자고(子固), 해평인(海平人)이며 벼슬은 예조 판서이고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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