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12월 3일. 부서진 대동강 철교를 아슬아슬하게 붙잡고 있는 피난민의 행렬

1950년11월 2일. 고아원에 방금 도착한 아이들이 통조림으로 첫 식사를 하고 있다.


미 보병 제25사단 병력이 폭격으로 부서진 수원성을 지나가고 있다. 1951.1.25.

한국전 당시 젊은 모습의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 육군본부 정보국 차장으로 재직하던 1951년의 모습.

국군 신병들이 열차편으로 전선으로 떠나기 전의 모습. 비장하면서도 애띤 모습이 눈길을 끈다. 1950. 12.18. 대구역앞.


1950년 10월 28일 서울의 폐허속에 문을 연 구두수선점. 피난에서 돌아온 구두수선공이 이전에 자신의 가게였던 자리에 다시 문을 열고 군화를 수선하러온 국군장병을 첫 손님으로 맞았다


6.25 전쟁 혼란중에도 발빠른 벤처기업가(?)가 태극기와 유엔기를 팔고 있다. 1950년 10월 28일 서울모습.

1951년 1월 4일. 1.4. 후퇴 당시 남하하는 피난민들

1951년 1월 14일. 부산의 포로수용소에서 한 미군 병사가 인민군 소년병 포로와 나란히 서 있다. 송종태라는 이름의 이 소년은 12살로 서울에서 포로로 잡혔다고 한다

경기도 남양주시 홍릉에서 미군 25사단 23여단 소속 병사 한명이 말 모양의 석상에 앉아 식사를 하는 모습. 1951.3.18.


1950년 12월 9일. 중공군의 개입으로 38선을 넘어 남하하는 북한 주민 가족을 미군 헌병이 검문하고 있다.

신병들을 모아놓고 연설하는 김백일 소장. 육군 1제군단장인 김 소장은 유엔군의 반격과 함께 가장 먼저 38선을 돌파, 혜산까지 북상했으며 12월 흥남철수작전 때 10만명의 피난민 수송을 지휘했다. 1951년 3월 비행기 추락으로 순직했다. 1950. 12. 19. 묵호진.


1950년 11월 9일. 미 보병 2사단이 발견한 한국 화폐 원판을 한 미군이 들고 있다. 뒤에는 지폐다발이 보인다. 사진에 뒷면의 설명에는 이 원판과 지폐가 진본인지 위조된 것인지에 관한 내용은 나와 있지 않다.

1951년 1월 31일 미 보병 25사단 소속의 한 장교가 이동수라는 이름의 통역관의 도움을 받아 주민들에게 대피할 것을 요청하고 있다. 이 마을에서 곧 치열한 전투가 벌어질 것이라는 설명에도 아이들의 표정은 무심하기 그지없다.


1950년 11월 22일. 가톨릭교회에서 운영하는 고아원에서 원생들이 함께 식사하는 광경


한국군의 유재흥 소장. 1951. 1.22일 촬영. 한국전 당시 육군참모차장을 지냈으며 71∼73년 국방장관을 지냈다.

1950년 11월 서울의 고아원에서 보모들이 전쟁고아들을 돌보는 광경. 2009. 6.23


김창룡 특무대장과 홍성기 감독. 1950. 11월, 방첩대(CIC)본부에서 기록영화를 촬영할 당시 홍성기 감독이 사전 연출지시를 하는 장면이다. 16mm 필름으로 제작한 한국 최초의 컬러 극영화인 `여성일기'를 비롯해 `별아 내 가슴에', `춘향전' 등을 연출한 홍 감독은 여배우 김지미의 첫 남편으로 잘 알려져 있다.

80일간 적군에 포로로 잡혀 있다 구출된 미군 병사 3명이 자신들을 위해 전령 역할을 해준 한국 소년들에게 감사의 뜻으로 경례를 하고 있다. 1951.3.21.


1951년 1월 8일. 부서진 러시아제 T-34 탱크 옆에서 빨래하고 있는 아낙네들.

주민들이 배급식량을 타기 위해 줄을 서 있는 모습 1951.3.19.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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