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자주]

우리가 고전 읽기에 주저하는 것은 작자의 해박한 고사 인용에 막히고 질리기 때문이다.고전번역원의 곰꼼한 주석을 만나 연암소설인 방경각외전의 초기9전, 열하일기에 수록된 2편, 안의현감 시절에 쓴 1편까지 다시 읽는 기회를 갖게 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며 이 블로그에서 다시 정리하는 기회를 가진 것도 내게는 큰 영광이다.연암 선생의 명복을 빌며, 뒤에서 논자들이 자주 인용하는 글을 몇 편 더 인용하는 걸로 연암 선생께 진 빚의 일부라도 갚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연암은 서문에서 바람직한 열녀상을 제시하였다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죽은 남편을 따라죽는 것도 가상한 일이지만. 그것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것이다. 외로움을 견디며 자녀를 훌륭하게 양육하는 것이 어찌 작은 일이라 하겟는가? 필자가 조사하여 정리했던 바로는, 울산읍지에 소개된 끔직한 사건도 있었다. 뱃사공의 딸이 일찍 과부되었는데, 그녀의 아비가 동네 사내를 끌여들여 함께 살아주기를 기도하였다. 잠에서 깨어난 여인은 사내에게 물 좀 먹고 오겠다며 부엌으로 나갔다. 여인이 돌아오지 않아 사내가 부엌에 나가 보니 여인은 식칼로 젖가슴과 입술을 도려내고 죽어 있었다. 조선 초기에 시작된 열녀운동의 극단적 참상의 일단이다.

 

열녀 함양 박씨전(烈女咸陽朴氏傳) 병서(幷序)

 

연상각선본(煙湘閣選本), 연암집 제 1 권

 

 

[이 서문은 연암의 창작]

 

齊人有言曰 “烈女不更二夫.”
제(齊) 나라 사람의 말에, “열녀는 지아비를 둘로 바꾸지 않는다.” 하였으니,

[주D-001]제(齊) 나라 …… 하였으니 : 제 나라의 현자 왕촉(王蠋)이 제 나라를 침략한 연(燕) 나라가 자신을 장수로 기용하겠다는 제안을 거부하면서 한 말이다. 그는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고 정숙한 여자는 지아비를 둘로 바꾸지 않는다.〔忠臣不事二君 貞女不更二夫〕”는 말을 남기고 자결했다. 《史記 卷82 田單列傳》

 

如『詩』之〈柏舟〉是也.

이를테면 《시경》 용풍(鄘風)

백주(柏舟)

의 시가 바로 이것이다.

[주D-002]백주(柏舟) : 《시경》 용풍(鄘風)의 편명으로, 위(衛) 나라 세자 공백(共伯)이 일찍 죽고 그의 아내인 공강(共姜)이 절개를 지키려 하였는데, 그녀의 부모가 이를 막고 재가를 시키려 하자 공강이 자신의 의지를 노래한 시라고 한다.

 

然而國典 “改嫁子孫 勿敍正職.”

그러나

《경국대전(經國大典)》에 “개가(改嫁)한 여자의 자손은 정직(正職)에는 서용(敍用)하지 말라.”고 하였으니,

[주D-003]《경국대전(經國大典)》에 …… 하였으니 : 정직(正職)은 문무반(文武班)의 정식 벼슬을 가리킨다. 《경국대전》 이전(吏典) 경관직(京官職) 조에 “실행(失行)한 부녀와 재가(再嫁)한 부녀의 소생은 동반직(東班職)과 서반직(西班職)에 서용하지 못한다.”고 하였다. 이 규정은 정조(正祖) 9년(1785) 《경국대전》과 《속대전(續大典)》 등을 통합하여 편찬한 《대전통편(大典通編)》에도 그대로 실려 있다.

 

此豈爲庶姓黎甿而設哉?

이것이 어찌 일반 백성과 무지한 평민들을 위하여 만들어 놓은 것이랴.

乃國朝四百年來 百姓旣沐久道之化

마침내 우리 왕조 400년 동안 백성들이

오랫동안 앞장서 이끄신 임금님들의 교화

에 이미 젖어,

[주D-004]오랫동안 …… 교화 : 원문은 ‘久道之化’인데, ‘久道’는 ‘久導’와 같다. 《백척오동각집(百尺梧桐閣集)》, 《연암제각기(燕巖諸閣記)》 등에는 바로 위의 ‘우리 왕조〔國朝〕’ 앞에 공백을 둠과 동시에 이 구절에서도 ‘久道之 化’라 하여 중간에 공백을 두어 경의를 표했다.

 

則女無貴賤 族無微顯
여자는 귀하든 천하든 간에, 또 그 일족이 미천하거나 현달했거나 간에

莫不守寡 遂以成俗.

과부로 수절하지 않음이 없어 드디어 이로써 풍속을 이루었으니,

故之所稱烈女 今之所在寡婦也.

옛날에 칭송했던 열녀는 오늘날 도처에 있는 과부들인 것이다.至若田舍少婦 委衖靑孀 非有父母不諒之乏 非有子孫勿敍之恥
심지어 촌구석의 어린 아낙이나 여염의 젊은 과부와 같은 경우는 친정 부모가 과부의 속을 헤아리지 못하고 개가하라며 핍박하는 일도 있지 않고 자손이 정직에 서용되지 못하는 수치를 당하는 것도 아니건만,

而守寡不足以爲節

한갓 과부로 지내는 것만으로는 절개가 되기에 부족하다 생각하여,

則往往自滅晝燭 祈殉夜臺

왕왕

낮 촛불을 스스로 꺼 버리고

남편을 따라 죽기를 빌며

[주D-005]낮 촛불을 스스로 꺼 버리고 : 당시 풍속에 과부는 외간 남자와 접촉한다는 의심을 받지 않기 위해 거처하는 방에 대낮에도 촛불을 켜 두었다. 죽기로 결심했으므로 더 이상 그러한 구차스러운 조치를 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水火鴆繯 如蹈樂地

물에 빠져 죽거나 불에 뛰어들어 죽거나 독약을 먹고 죽거나 목매달아 죽기를 마치 낙토를 밟듯이 하니,

烈則烈矣 豈非過歟?

열녀는 열녀지만 어찌 지나치지 않은가!
昔有昆弟名宦
예전에 이름난 벼슬아치 형제가 있었다.

將枳人之淸路 議于母前.

장차 남의

청환(淸宦)

의 길을 막으려 하면서 어머니 앞에서 이를 의논하자,

[주D-006]청환(淸宦) : 봉록은 많치 않으나 명예롭게 여겨졌던 홍문관, 예문관, 규장각 등의 하위 관직을 가리킨다. 학식과 문벌을 갖춘 인물에 한하여 허용되었다.

 

母問 “奚累而枳?”

어머니는, “그 사람에게 무슨 허물이 있기에 이를 막으려 하느냐?” 하고 물었다.

對曰 “其先有寡婦 外議頗喧.”

아들들이 대답하기를,“그 윗대에 과부된 이가 있었는데 그에 대한 바깥의 논의가 자못 시끄럽기 때문입니다.” 하였다.

母愕然曰 “事在閨房 安從而知之?”

어머니가 깜짝 놀라며,“그 일은 규방의 일인데 어떻게 알았단 말이냐?” 하자,

對曰 “風聞也.”

아들들이 대답하기를,“풍문(風聞)이 그렇습니다.” 하였다.

母曰

어머니는 말하였다.

“風者 有聲而無形也.

“바람이란 소리는 있으되 형체가 없다.

目視之而無覩也. 手執之而無獲也.

눈으로 보자 해도 보이는 것이 없고, 손으로 잡아 봐도 잡히는 것이 없으며,

從空而起 能使萬物浮動

허공에서 일어나서 능히 만물을 들뜨게 하는 것이다.

奈何以無形之事 論人於浮動之中乎?

어찌하여 무형(無形)의 일을 가지고 들뜬 가운데서 사람을 논하려 하느냐?

且若乃寡婦之子.

더구나 너희는 과부의 자식이다.

寡婦子尙能論寡婦耶?

과부의 자식이 오히려 과부를 논할 수 있단 말이냐?

居, 吾有以示若.”

앉거라. 내가 너희에게 보여줄 게 있다.” 하고는

出懷中銅錢一枚曰

품고 있던 엽전 한 닢을 꺼내며 말하였다.“이것에 테두리가 있느냐?”“此有輪郭乎?”

曰 “無矣.”

“없습니다.”

“此有文字乎?”

“이것에 글자가 있느냐?”

曰 “無矣.”

“없습니다.”

母垂淚曰

어머니는 눈물을 드리우며 말하였다.

“此汝母忍死符也.

“이것은 너희 어미가 죽음을 참아 낸 부적이다.

十年手摸 磨之盡矣.

10년을 손으로 만졌더니 다 닳아 없어진 것이다.

大抵 人之血氣 根於陰陽

무릇 사람의 혈기는 음양에 뿌리를 두고,

情欲鍾於血氣

정욕은 혈기에 모이며,

思想生於幽獨

그리운 생각은 고독한 데서 생겨나고,

傷悲因於思想.

슬픔은 그리운 생각에 기인하는 것이다.

寡婦者 幽獨之處 而傷悲之至也.

과부란 고독한 처지에 놓여 슬픔이 지극한 사람이다.

血氣有時而旺 則寧或寡婦而無情哉?

혈기가 때로 왕성해지면 어찌 혹 과부라고 해서 감정이 없을 수 있겠느냐?


殘燈弔影 獨夜難曉.

가물거리는 등잔불에

제 그림자 위로하며

홀로 지내는 밤은 지새기도 어렵더라.

[주D-007]제 그림자 위로하며 : 원문은 ‘弔影’인데, ‘형영상조(形影相弔)’라 하여 아무도 없고 자신의 몸과 그림자만이 서로를 위로한다는 뜻으로 의지할 데 없는 외톨이 신세를 표현한 말이다.

 

若復簷雨淋鈴 窓月流素

만약에 또 처마 끝에서 빗물이 똑똑 떨어지거나 창에 비친 달빛이 하얗게 흘러들며,

一葉風庭 隻雁叫天.

낙엽 하나가 뜰에 지고 외기러기 하늘을 울고 가며,

遠鷄無響 穉婢牢鼾. /穉=稚.. 鼾한:코골다.

멀리서 닭 울음도 들리지 않고 어린 종년은 세상 모르고 코를 골면

耿耿不寐 訴誰苦衷?

이런저런 근심으로 잠 못 이루니 이 고충을 누구에게 호소하랴.

 

吾出此錢而轉之 遍模室中.

그럴 때면 나는 이 엽전을 꺼내 굴려서 온 방을 더듬고 다니는데

圓者善走 遇域則止.

둥근 것이라 잘 달아나다가도 턱진 데를 만나면 주저앉는다.

吾索而復轉.

그러면 내가 찾아서 또 굴리곤 한다.

夜常五六轉 天亦曙矣.

밤마다 늘상 대여섯 번을 굴리면 먼동이 트더구나.

十年之間 歲減其數 十年以後

10년 사이에 해마다 그 횟수가 점차 줄어서 10년이 지난 이후에는

則或五夜一轉 或十夜一轉.

때로는 닷새 밤에 한 번 굴리고, 때로는 열흘 밤에 한 번 굴렸는데,

血氣旣衰 而吾不復轉此錢矣.

혈기가 쇠해진 뒤로는 더 이상 이 엽전을 굴리지 않게 되었다.

然吾猶十襲 而藏之者 二十餘年.

그런데도 내가 이것을 열 겹이나 싸서 20여 년 동안이나 간직해 온 것은

所以不忘其功 而時有所自警也.

엽전의 공로를 잊지 않으며 때로는 스스로를 경계하기 위해서였다.”

遂子母相持而泣.

말을 마치고서 모자는 서로 붙들고 울었다.

君子聞之曰

당시의 식자(識者)들은 이 이야기를 듣고서

“是可謂烈女矣.”

“이야말로 열녀라고 이를 만하다.”고 했다.

噫, 其苦節淸修 若此矣.

아! 그 모진 절개와 맑은 행실이 이와 같은데도 無以表見於當世 名堙沒而不傳 何也?
당시 세상에 알려지지 않고 이름이 묻혀 후세에도 전해지지 않은 것은 무엇 때문인가?

寡婦之守義 乃通國之常經

과부가 의를 지켜 개가하지 않는 것이 마침내 온 나라의 상법(常法)이 되었으므로,

故微一死 無以見殊節於寡婦之門.

한번 죽지 않으면 과부의 집안에서 남다른 절개를 보일 길이 없기

때문이다.

 

[주D-008]제(齊) 나라(작품 서두) …… 때문이다 : 이 부분이 열녀 함양박씨전의 서문에 해당된다.

 

[

이하는 실기

(實記)]

余視事安義之越明年 癸丑月日.
내가 안의 현감(安義縣監)으로 정사를 보던 이듬해 계축년(1793, 정조 17) 의 어느 달 어느 날이다.

夜將曉 余睡微醒

밤이 새려 할 무렵 내가 잠이 살짝 깼을 때,

聞廳事前 有數人隱喉密語.

마루 앞에서 몇 사람이 낮은 목소리로 소곤거리다가

復有慘怛歎息之聲.

또 탄식하고 슬퍼하는 소리를 들었다.

蓋有警急 而恐擾余寢也.

무슨 급히 알릴 일이 있는 모양인데, 내 잠을 깨울까 두려워하는 듯하였다.

余遂高聲問“鷄鳴未?”

그래서 내가 목소리를 높여,“닭이 울었느냐?” 하고 묻자

左右對曰 “已三四號矣.”

좌우에서,“이미 서너 머리 울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外有何事?”

“밖에 무슨 일이 있느냐?”

對曰 “通引朴相孝之兄之子之嫁咸陽

余命之疾去.

“통인(通引)

박상효(朴相孝)의 조카딸로서 함양(咸陽)으로 출가하여

[주D-009]통인(通引) : 수령의 잔심부름을 하던 아전을 말한다.

 

而早寡者

일찍 홀로 된 이가

畢其三年之喪 飮藥將殊

그 남편의 삼년상을 마치고 약을 먹어 숨이 끊어지려 하니,

急報來救

와서 구환해 달라고 급히 연락이 왔사옵니다.

而相孝方守番 惶恐不敢私去.”

그런데 상효가 마침 숙직 당번이라 황공하여 감히 사사로이 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余命之疾去. 及晩爲問

나는 빨리 가 보라고 명하고, 늦을녘에 미쳐서

“咸陽寡婦得甦否?”

“함양의 과부가 소생했느냐?”고 물었더니,

左右言曰 “聞已死矣.”

좌우에서“이미 죽었다고 들었습니다.” 하는 것이었다.

余喟然長歎曰

나는 길게 탄식하며

“烈哉 斯人!”

“열녀로다, 그 사람이여!”라고 하고 나서

乃招群吏而詢之曰

뭇 아전들을 불러 놓고 물었다.

“咸陽有烈女 其本安義出也.

“함양에 열녀가 났는데, 본시 안의(安義) 출신이라니

女年方幾何?

그 여자의 나이가 방금 몇 살이나 되고,

嫁咸陽誰家?

함양의 뉘 집에 시집갔으며,

自幼志行如何? 若曹有知者乎?”

어려서부터 심지와 행실은 어떠했는지 너희들 중에 아는 자가 있느냐?”

群吏歔欷而進曰

그러자 뭇 아전들이 한숨지으며 아뢰었다.

“朴女家 世縣吏也.

“박녀(朴女)의 집안은 대대로 이 고을 아전입니다.

其父名相一 早歿 獨有此女

그 아비 이름은 상일(相一)이온대, 일찍 죽었고 이 외동딸만을 두었습니다.

而母亦早歿.

어미 역시 일찍 죽어서 어려서부터

則幼養於其大父母 盡子道.

그 조부모에게서 자랐사온대 자식된 도리를 다하였습니다.

及年十九

열아홉 살이 되자

嫁爲咸陽林述曾妻 亦家世郡吏也.

출가하여 함양 임술증(林述曾)의 처가 되었는데, 그 시댁 역시 대대로 고을 아전입니다.

述曾素羸弱

술증이 본디 약하여

一與之醮 歸未半歲而歿.

한 번 초례(醮禮)를 치르고 돌아간 지 반년이 채 못 되어 죽었습니다.

朴女執夫喪 盡其禮

박녀는 지아비상을 치르면서 예(禮)를 극진히 하였고,

事舅姑 盡婦道.

시부모를 섬기는 데도 며느리된 도리를 다해

兩邑之親戚隣里 莫不稱其賢.

두 고을의 친척과 이웃들이 그 어짊을 칭찬하지 않는 이가 없었는데,

今而後果驗之矣.”

오늘 이러한 일이 있고 보니 과연 그 말이 맞습니다.”

有老吏感慨曰

어느 늙은 아전이 감개하여 말하였다.

“女未嫁時 隔數月.

“박녀가 아직 시집가기 몇 달 전에

有言 ‘述曾病入髓

‘술증의 병이 이미 골수에 들어

萬無人道之望 盍退期?’

부부 관계를 맺을 가망이 만무하다 하니 어찌 혼인 약속을 물리지 않느냐.’는 말이 있었습니다.

其大父母 密諷其女 女黙不應.

그 조부모가 넌지시 박녀에게 일러 주었으나 박녀는 잠자코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迫期 女家使人覵述曾

혼인 날짜가 박두하여 여자의 집에서 사람을 시켜 술증의 상태를 엿보게 하였더니,

述曾雖美姿貌 病勞且咳

술증이 비록 용모는 아름다우나 노점(勞漸 폐결핵)에 걸려 콜록콜록거리며

菌立而影行也. 家大懼

버섯이 서 있는 듯하고 그림자가 걸어 다니는 것 같았으므로, 집안에서는 모두 크게 두려워하여

擬招他媒.

다른 중매쟁이를 부르려고 하였습니다.

女斂容曰

그러자 박녀가 정색을 하고 말하기를‘曩所裁縫 ‘전날 재봉한 옷들은

爲誰稱體 又號誰衣也?

누구의 몸에 맞게 한 것이며, 누구의 옷이라 불렀던 것입니까?

女願守初製.’

저는 처음 지은 옷을 지키기를 원합니다.’ 하기에

家知其志 遂如期迎婿.

집안에서는 그 뜻을 알고 마침내 기일을 정한 대로 사위를 맞이했으니,

雖名合巹 其實 竟守空衣云.”

비록 명색은 혼례식을 치렀다 하나 사실은 끝내

빈 옷만 지켰다고 합니다.”

[주D-010]빈 옷만 지켰다고 합니다 : 부부 관계가 한 번도 성사되지 못했다는 뜻이다.

 

旣而咸陽郡守尹侯光碩

얼마 후 함양 군수인 윤광석(尹光碩) 사또가

夜得異夢 感而作烈婦傳

밤에 이상한 꿈을 꾸고 느낀 바가 있어 열부전(烈婦傳)을 지었고,

而山淸縣監李侯勉齋 亦爲之立傳

산청 현감(山淸縣監)

이면제(李勉齊)

사또도 박녀를 위해 전(傳)을 지었으며,

[주D-011]이면제(李勉齊) : 원문은 ‘李侯勉齊’라고 되어 있는데, 후(侯)는 고대 중국의 제후에 해당한다는 뜻으로 사또에 붙이는 경칭이다. 원문에는 이면제의 ‘齊’ 자가 ‘齋’ 자로 되어 있으나, 여러 이본들에 따라 바로잡았다. 《문과방목(文科榜目)》에 의하면 이면제는 1743년생으로, 1783년 진사 급제하였다.

 

居昌愼敦恒 立言士也

거창(居昌)의 신돈항(愼敦恒)은 후세에 훌륭한 글을 남기고자 하는 선비였는데,

爲朴氏 撰次其節義.

박녀를 위하여 그 절의의 전말을 엮었다.
始終其心 豈不曰
생각하면 박녀의 마음이 어찌 이렇지 않았으랴!

“弱齡嫠婦之久留於世

나이 젊은 과부가 오래 세상에 남아 있으면

長爲親戚之所嗟憐

길이 친척들이 불쌍히 여기는 신세가 되고,

未免隣里之所妄忖

동리 사람들이 함부로 추측하는 대상이 됨을 면치 못하니

不如速無此身也.”

속히 이 몸이 없어지는 것만 못하다고.

 

噫, 成服而忍死者 爲有窀穸也. /*窀(둔):광중. 穸(석):광중.
아! 슬프구나. 성복(成服)을 하고도 죽음을 참은 것은 장사 지내는 일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요,

旣葬而忍死者 爲有小祥也.

장사를 지내고도 죽음을 참은 것은 소상(小祥)이 있었기 때문이요,

小祥而忍死者 爲有大祥也.

소상을 지내고도 죽음을 참은 것은 대상(大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旣大祥 則祥期盡

대상이 끝이 났으니 상기(喪期)가 다한 것이요,

而同日同時之殉 竟遂其初志

한날 한시에 따라 죽어 마침내 처음 뜻을 완수했으니

豈非烈也?

어찌 열녀라 아니 할 수 있겠는가.

[설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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