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선전(金神仙傳)


金神仙名弘基

김 신선의 이름은

홍기(弘基)

이다.

 

[주D-001]홍기(弘基) : 김홍기는 당시의 실존 인물로, 이덕무의 《이목구심서(耳目口心書)》 권3에는 ‘金洪器’로 소개되어 있다.

 

年十六娶妻 一歡而生子 遂不復近.

나이 16세에 장가를 들어 아내와 한 번 동침하여 아들을 낳고서는 더 이상 가까이하지 않았다.

辟穀面壁坐 坐數歲 身忽輕.

화식(火食)을 물리치고 벽을 향하여 앉아서, 그렇게 하기를 여러 해 만에 몸이 갑자기 가벼워졌다.

遍遊國內名山

국내의 명산을 두루 구경하였는데,

常行數百里 方視日早晏.

항상 수백 리 길을 걷고서야 때가 얼마나 되었나 해를 살폈으며,

五歲一易屨 遇險則步益捷.

5년에 신을 한 번 바꿔 신고, 험한 곳을 만나게 되면 걸음이 오히려 더욱 빨라졌다.

嘗曰 “蹇而涉

그런데도 그는, “물을 만나 바지를 걷고 건너기도 하고,

方而越 故遲我行也.”

배를 타고 건너기도 하느라 이렇게 늦어진 것이다.” 라고 말하곤 하였다.

不食 故人不廉其來客

밥을 먹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가 찾아오는 것을 싫어하지 않았으며,

冬不絮 夏不扇 遂以神仙名.

겨울에도 솜옷을 입지 않고 여름에도 부채질을 하지 않았으므로 마침내 신선이란 이름을 얻게 되었다.
余嘗有幽憂之疾.
나는 예전에 우울증을 앓은 적이 있었다.

盖聞神仙方技 或有奇效 益欲得之.

그때 듣자니 신선의 방술(方術)이 더러 특이한 효험이 있다 하므로 더욱 그를 만나고 싶었다.

使尹生․申生陰求之訪 漢陽中 十日不得.

그래서

윤생(尹生)과 신생(申生)

을 시켜서 가만히 찾아보게 하여, 한양 안을 열흘 동안 뒤졌으나 만나지 못했다.

 

[주D-002]윤생(尹生)과 신생(申生) : ‘광문전 뒤에 쓰다〔書廣文傳後〕’에서 연암은 예전부터 집에서 부리던 사람들에게 여염에서 일어난 얘깃거리가 될 만한 일들을 물었다고 했는데, 윤생과 신생이 바로 그러한 사람들이었던 듯하다.

 

尹生言, 嘗聞弘基家西學洞

윤생이 이렇게 말했다.“예전에 홍기가

서학동(西學洞)

에 산다고 들었는데,

 

[주D-003]서학동(西學洞) : 한양의 사학(四學)의 하나인 서학(西學)이 있던 동네로, 현재 태평로 1가 조선일보사 부근이다.

 

今非也. 乃其從昆弟家寓其妻子.

지금 보니 그게 아니라 바로 그 사촌 형제의 집으로 거기다 처자를 맡겨 두었습디다.

問其子言 “父一歲中 率四三來.

아들에게 물어보았더니, ‘저의 부친은 한 해에 대략 서너 번 찾아올 뿐이지요.

父友在體府洞

부친의 친구 분이 체부동(體府洞)에 살고 있는데

其人好酒 而善家 金奉事云.

그분은 술을 좋아하고 노래를 잘하는 김 봉사(金奉事)라 하더군요.

樓閣洞金僉知 好碁

누각동(樓閣洞)

김 첨지(金僉知)는 바둑을 좋아하고,

 

[주D-004]누각동(樓閣洞) : 누각골이라고도 한다. 누상동(樓上洞 : 효자동), 누하동(樓下洞), 체부동(體府洞)에 걸쳐 있었던 마을이다. 서리(胥吏)들의 거주지로 인왕산 아래 누각이 있었으므로 누각동이라고 했다고 한다.

 

後家李萬戶 好琴

그 뒷집 이 만호(李萬戶)는 거문고를 좋아하고,

三淸洞李萬戶 好客

삼청동(三淸洞) 사는 이 만호는 손님을 좋아하고,

美垣洞徐哨官 毛橋張僉使․司僕川 邊池丞

미원동(美垣洞) 사는

서 초관(徐哨官)

모교(毛橋)

사는 장 첨사(張僉使)와

사복천(司僕川)

가에 사는

지 승(池丞)

 

[주D-005]미원동(美垣洞) : 미동(美洞)을 가리키는 듯하다. 미동은 현재 을지로 1가 소공동 북쪽에 해당한다.
[주D-006]서 초관(徐哨官) :
초관(哨官)은 군대의 편제인 초(哨)의 우두머리로 종 9 품의 벼슬이다.
[주D-007]모교(毛橋) :
청계천에 놓인 다리의 하나로, 모전교(毛廛橋)라고도 한다. 현재의 무교동과 서린동의 사거리 지점에 있었다.
[주D-008]사복천(司僕川) :
한양 중부 수진방(壽進坊 현재 수송동 일대)에 있던 사복시(司僕寺) 앞의 계천(溪川)이다.
[주D-009]지 승(池丞) :
승(丞)은 서(署) · 시(寺) · 감(監) 등 중앙의 각 관청에 있었던, 종 5 품에서 종 9 품에 걸친 벼슬이다.

 

俱好客而喜飮.

모두 손님을 좋아하고 술 마시기를 좋아합니다.

里門內趙奉事 亦父友也

이문안〔里門內〕

조 봉사(趙奉事)라는 분도 역시 부친의 친구 분인데

 

[주D-010]이문안〔里門內〕 : 한양 중부에 있던 동네로, 이문동(里門洞)이라고도 하였다. 세조(世祖) 때 한양의 각 동 입구에 이문을 세우게 했는데, 현재의 남대문로 2가에서 조선호텔로 들어가는 입구에 이문의 터가 있어 이문안이라고 했다.

 

家蒔名花. 桂洞劉判官

그 집엔 이름난 화초가 가득 심겨져 있고, 계동(桂洞) 유 판관(劉判官)은

有奇書古劒. 父常遊居其間

기서(奇書)와 고검(古劍)을 가지고 있어, 부친이 늘 그분들 집에서 놀며 지내고 있으니,

君欲見 訪此數家.”

그대가 만나 뵙고 싶으면 이 몇 집을 찾아보시오.’ 하는 것이었습니다.

遂行歷問之 皆不在.

그래서 이들 집을 다니며 일일이 물어보았으나 어느 집에도 있지 않았습니다.

暮至一家 主人琴

저물녘에 한 집에 들렀더니, 주인은 거문고를 타고 있고

有二客皆靜黙 頭白而不冠.

두 손은 모두 조용히 듣고 있었는데, 허연 머리에 관도 쓰지 않고 있었습니다.

於是 自意得金弘基. 立久之


저는 이제는 김홍기를 만났구나 생각하고 한참 동안 서서 기다렸습니다.

曲終而進曰

거문고 가락이 끝나 가기에 나아가,

“敢問誰爲金丈人?”

‘어느 분이 김 장인(金丈人 장인은 노인에 대한 경칭이다.)이신지 감히 여쭙습니다.’ 했지요.

主人捨琴 而對曰

주인이 거문고를 밀쳐 놓고 대답하기를,

“座無姓金者 子奚問?”

‘좌중에 김씨 성 가진 사람은 없소. 그대는 왜 묻는가?’ 하기에,

曰 “小子齋戒 而後敢來求也. 願老人無諱.”

‘저는 목욕재계하고서 감히 찾아와 뵙는 것이오니 노인께서는 숨기지 마소서.’ 하였더니,

主人笑曰 “子訪金弘基耶? 不來耳.”

주인이 웃으며, ‘그대가 아마 김홍기를 찾는가 보오. 홍기는 오지 않았소.’ 하였습니다.

“敢問來何時?”

‘어느 때나 오시는지 감히 여쭙습니다.’ 하였더니,

曰 “是居無常主 有無定方

‘홍기란 사람은 묵어도 일정한 거처가 없고 놀아도 일정한 곳이 없으며,

來不預期 居不留約.

와도 온다고 예고하지 않고 가도 다시 오겠다는 약조를 하지 않으며,

一日中 或再三過 不來則亦閱歲.

하루에 두세 번 올 때도 있는 반면 안 올 때는 해가 지나도 오지 않소.

聞金多在倉洞․會賢之坊

듣자니 홍기가

창동(倉洞)

이나 회현방(會賢坊)에 주로 있고,

且童關 ․梨峴 ․ 銅峴 ․ 慈壽橋․ 社洞․ 壯洞 ․大陵․ 小陵之間 嘗往來遊居.

동관(董關) · 배오개 · 구리개 · 자수교(慈壽橋) · 사동(社洞) · 장동(壯洞) · 대릉(大陵) · 소릉(小陵)

등지에도 오락가락하며 놀고 자곤 한다는데,

 

[주D-011]창동(倉洞) : 남대문 안 선혜청(宣惠廳)의 창고 부근에 있었던 동네로, 현재 남대문 시장이 있는 남창동 일대이다.
[주D-012]동관(董關) …… 소릉(小陵) :
동관은 미상(未詳)이다. 배오개는 현재 종로 4가 인의동에 있었던 고개이고, 구리개는 현재 을지로 입구, 롯데백화점 맞은편에 있었던 고개이다. 자수교는 현재 옥인동과 효자동 · 궁정동이 만나는 곳에 있던 다리로, 조선 시대에 후궁들의 거처로 쓰인 자수궁(慈壽宮)이 있었던 곳이어서 자수궁교라고도 하였다. 사동은 사직단(社稷壇 : 현재 사직공원) 부근의 동네이다. 장동은 장의동(壯義洞)이라고도 하는데, 현재의 효자동 · 궁정동 · 청운동 일대이다. 대릉과 소릉은 각각 대정동(大貞洞)과 소정동(小貞洞)을 가리킨다. 원래 태조의 계비 신덕왕후(神德王后)의 무덤인 정릉(貞陵)이 있었던 곳으로, 현재 중구 정동 일대이다.

 

然皆不知其主名.

내가 그 주인의 이름은 거의 다 모르고

獨蒼洞 吾知之 子往問焉.”

유독 창동만 알고 있으니 그리로 가서 물어보오.’ 하였습니다.


遂行訪其家. 問焉對曰

그래서 그 집을 찾아가 물었더니,

“是不來者 嘗數月.

‘그가 오지 않은 것이 벌써 두어 달 되었소.

吾聞長暢橋 林同知喜飮酒

내 들으니

장창교(長暢橋)

에 사는 임 동지(林同知)가 술 마시기를 좋아해서

 

[주D-013]장창교(長暢橋) : 청계천에 놓였던 다리의 하나로 한양 중부 장통방(長通坊 : 현재 장교동, 관철동 일대)에 있었다. 장창교(長倉橋), 장통교(長通橋), 장교(長橋)라고도 불렸다.

 

日與金角 今在林否?”

날마다 홍기와 더불어 술 겨루기를 한다는데, 지금 임씨 집에 있는지도 모르겠소.’라고 답했습니다.


遂訪其家

그래서 바로 그 집을 찾아갔더니,

林同知八十餘 頗重聽曰

임 동지라는 이는 나이 80여 세여서 자못 귀가 먹었는데, 하는 말이,

“咄. 夜劇飮 朝日餘醉 入江陵.”

‘쯧쯧, 어젯밤에 나와 술을 잔뜩 마시고 오늘 아침에 취기가 남은 채로 강릉(江陵)에 간다고 떠났소.’ 하였습니다.

於是 悵然久之問曰 “金有異歟?”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어 한참 있다 묻기를, ‘김홍기란 이에게 특이한 점이 있습니까?’ 하니,

曰 “一凡人 特未嘗飯.”

‘그저 평범한 사람으로, 단지 밥 먹는 것을 못 보았소.’ 하였고,

“狀貌何如?”

‘생김생김이 어떠합니까?’ 하였더니,

曰 “身長七尺餘 癯而髥 /*癯(구):여위다.

‘키는 7척이 넘고 몸집은 여위고 수염이 좋으며,

瞳子碧 耳長而黃.”

눈동자는 파랗고 귀는 길고 누렇지요.’ 하였으며,

“能飮幾何?”

‘술은 얼마나 마시오?’ 하였더니,

曰 “飮一杯醉 然一斗 醉不加.

‘한 잔만 마셔도 취하는데 한 말을 마셔도 더 취하지는 않소.

嘗醉臥塗 吏得之

예전에 취하여 길에 누워버린 적이 있었는데, 포리(捕吏)가 잡아다가

拘七日不醒 乃釋去.”

이레 동안 구속했으나 그 술이 깨지 않으므로 마침내 놓아주었다오.’ 하였습니다.

“言談何如?”

‘말할 때는 어떱디까?’ 하였더니,

曰 “衆人言 輒坐睡

‘여러 사람이 모여 이야기를 할 때면 그대로 앉아서 졸고 있다가,

談已 輒笑不止.”

그 말이 끝나면 계속해서 웃기만 한다오.’ 하였으며,

“持身何如?”

‘몸가짐은 어떻습니까?’ 하였더니,

曰 “靜若參禪 拙如守寡.”

‘조용한 품은 참선(參禪)하는 중 같고, 옹졸한 품은 수절하는 과부 같았지요.’ 하였습니다.”

余嘗疑尹生求不力.

나는 한때 윤생이 힘들여 찾지 않았나 의심을 했었다.

然申生亦訪數家 皆不得. 其言亦然.

그러나 신생 역시 수십 집을 찾아다녔어도 다 못 만났고, 그의 말도 윤생과 마찬가지였다.

或曰 “弘基年百餘 所與遊 皆老人.”

어떤 이는 말하기를, “홍기는 나이가 백여 살이고, 더불어 노는 사람들도 모두 노인이다.”하고,

或言 “不然. 弘基年十九娶 卽有男.

어떤 이는, “그렇지 않다. 홍기가 나이 열아홉에 장가들어 곧바로 아들을 낳았고

今其子纔弱冠 弘基年 計今可五十餘.”

지금 그 아들이 겨우 스물 전후이니, 홍기의 나이 지금 쉰 남짓쯤 될 것이다.” 하였으며,

 

[주D-014]홍기가 …… 것이다 : 약간의 착오가 있는 듯하다. 작품의 서두에서는 김홍기가 16세에 장가들었다고 하였다. 설령 그가 열아홉에 장가들었다고 해도 그때 낳은 아들이 스무 살 전후가 되었다면 홍기의 현재 나이는 마흔 살쯤이라야 한다.

 

或言 “金神仙 採藥智異山

어떤 이는, “김 신선이 지리산으로 약초를 캐러 갔다가

墯崖不返 今已數十年.”

벼랑에 떨어져서 돌아오지 못한 지 지금 하마 수십 년이 되었다.” 하고, 或言 “巖穴窅冥 有物熒熒.” /窅(요):깊고 먼 모양어떤 이는, “지금도 컴컴한 바위굴에 번쩍번쩍하는 무언가가 있다.” 하고,

或曰 “此老人眼光也.

어떤 이는, “그게 바로 노인의 눈빛이다.

山谷中時 聞長欠聲.

산골짜기에서 이따금 기지개하는 소리가 들린다.” 하였다.

今弘基 惟善飮酒


그런데 지금 홍기는 단지 술을 잘 마실 뿐이요,

非有術. 獨假其名而行云.”

딴 방술(方術)이 있는 것은 아니고 오직 그 이름을 빌려서 행세한다는 것이다.

然余又使童子福往求之.

그러나 나는 또 동자 복(福)을 시켜서 가서 찾아보라 했으나

從不可得. 歲癸未也.

끝내 만나 보지 못하고 말았는데, 이때는 계미년(1763, 영조 39)이었다.


明年秋 余東遊海上.
그 이듬해 가을에 나는 동으로 바닷가를 여행하다가

夕日登斷髮嶺 望見金剛山

저녁나절 단발령(斷髮嶺)에 올라서 금강산을 바라보았다.

 

[주D-015]그 이듬해 …… 바라보았다 : 박종채의 《과정록》에는 연암이 금강산을 유람한 것은 2년 뒤인 을유년(1765, 영조 41) 가을의 일로 기록되어 있다.

 

其峯萬二千云 其色白.

그 봉우리가 만이천 개나 된다고 하는데 흰빛을 띠고 있었다.

入山 山多楓方丹.

산에 들어가 보니 단풍나무가 많아서 한창 탈 듯이 붉었으며,

赤杻․梗柟․豫章 皆霜黃

싸리나무, 가시나무, 녹나무, 예장(豫章)나무는 다 서리를 맞아 노랗고,

衫檜益碧 又多冬靑樹

삼나무, 노송나무는 더욱 푸르르며, 사철나무가 특히나 많았다.

山中諸奇木 皆葉黃紅 顧而樂之.

산중의 갖가지 기이한 나무들은 다 잎이 노랗고 붉게 물들어 있어 둘러보고 즐거워했다.

問轝僧 “山中有異僧 得道術 可與遊乎?”

가마를 멘 중에게 묻기를,“이 산중에 도승이 있느냐? 있다면 그 도승과 더불어 놀 수 있느냐?” 하니,

曰 “無有. 聞船菴有辟穀者.

“그런 중은 없고,

선암(船菴)

에 벽곡(辟穀)하는 사람이 있다고는 들었소.

 

[주D-016]선암(船菴) : 내금강(內金剛) 표훈사(表訓寺)에 딸린 암자이다.

 

或言 ‘嶺南士人.’ 然不可知.

누구는 말하기를 영남 선비라고 하는데, 꼭 알 수는 없습니다.

船菴道險 無至者.”

선암은 길이 험하여 당도하는 자가 없습니다.” 했다.

余夜坐長安寺 聞諸僧 衆俱對如初.

내가 밤에 장안사(長安寺)에 앉아서 여러 중들에게 물으니, 모두 처음의 대답과 같았으며,

言 “辟穀者 滿百日當去. 今幾九十餘日.”

벽곡하는 자가 100일을 채우고 떠나겠다고 했는데 지금 거의 90일이 되었다고 하였다.

余喜甚 意者 “其仙人乎!”

나는 몹시 기뻐서 ‘아마 그 사람이 선인(仙人)인가 보다.’ 생각하고

卽夜立欲往.

당장에 밤이라도 가고 싶었으나,

朝日 坐眞珠潭下 候同遊

그 이튿날 아침을 기다려서

진주담(眞珠潭)

아래에 앉아 같이 갈 사람을 기다렸다.

 

[주D-017]진주담(眞珠潭) : 금강산 입구 만폭동(萬瀑洞)의 팔담(八潭) 중 가장 장대한 명승지이다.

 

眄睞久之 皆失期不至.

거기서 한참 동안 주위를 돌아보았으나 모두 약조를 어기고 오지 않았다.

觀察使 巡行君邑

게다가 관찰사가 군읍(郡邑)을 순행하다가

遂入山 流連諸寺間.

마침내 산에 들어와 여러 절을 돌아다니며 쉬고 있었으므로,

守令皆來會 供張廚傳

각 고을의 수령들이 모두 모여들어 잔치를 벌이고 음식과 거마(車馬)를 제공했으며,

每出遊 從僧百餘.

매양 구경 나갈 때는 따라다니는 중이 100여 명이나 되었다.


船菴道絶峻險 不可獨至.

선암은 길이 끊기고 험준하여 도저히 혼자 도달할 수는 없으므로

嘗自往來靈源白塔之間 而意悒悒.

영원(靈源)과 백탑(白塔)

사이를 스스로 오가며 애만 태운 적이 있었다.
[주D-018]영원(靈源)과 백탑(白塔) : 골짜기의 이름으로, 내금강 명경대(明鏡臺) 구역에 있는 명승지들이다.

旣而天久雨 留山中六日 乃得之船菴

그 후로 날이 오랫동안 비가 내려 산중에 엿새 동안을 묵고서야 선암에 당도할 수 있었다.

在須彌峯下. 從內圓通 行二十餘里

선암은 수미봉(須彌峯) 아래에 있었으므로 내원통(內圓通)으로부터 20여 리를 들어갔는데,

大石削立 千仞路絶

큰 바위가 깎아질러 천 길이나 되었으며

輒攀鐵索 懸空而行.

길이 끊어질 때마다 쇠줄을 부여잡고 공중에 매달려서 가야만 했다.

旣至庭 空無禽鳥啼

당도하고 보니 뜨락은 텅 비어 우는 새 한 마리도 없고,

榻上小銅佛 唯二屨在.

탑(榻) 위에는 조그마한 구리부처가 놓여 있고

신 두 짝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余悵然徘徊 立而望之

나는

그만 어처구니가 없어 이리저리 서성이며 우두커니 바라만 보다가,

 

[주D-019]신 …… 뿐이었다 : 신선이 득도하여 승천(昇天)한 증거로 흔히 신발만 남기고 행방이 묘연해진 사실을 든다.
[주D-020]나는 :
원문은 ‘余’인데, 이본에는 ‘除’로 되어 있다. 이본에 따라 번역하자면 ‘除’는 섬돌의 뜻으로 앞 구에 연결되어 “신 두 짝만 섬돌에 남아 있을 뿐이었다.”로 해석된다.

 

遂題名巖壁下 歎息而去.

마침내 암벽 아래에다 이름을 써 놓고 탄식하며 떠나왔다.

常有雲氣 風瑟然.

그런데 거기에는 노상 구름 기운이 감돌고 바람이 쓸쓸하게 불었다.或曰 “仙者山人也.”
어떤 책에는 “신선〔仙〕이란 산사람〔山人〕을 의미한다.”
라고 하며

 

[주D-021]어떤 …… 의미한다 : 《석명(釋名)》이나 《자휘(字彙)》 등의 사전류에서 ‘仙’ 자를 풀이한 내용을 인용한 것이다.

 

又曰 “入山爲仙也.”

또 어떤 책에는 “ ‘산에 들어가 있는 사람〔入山〕’을 신선〔屳〕이라고 한다.” 하기도 한다.

又僊者 僊僊然 輕擧之意也.

또한 신선〔僊〕이란 너울너울〔僊僊〕 가볍게 날아오르는 사람을 의미한다.

辟穀者 未必僊也

그렇다면 벽곡하는 사람이 꼭 신선이라고 할 수는 없으며,

其鬱鬱不得志者也.

아마도 뜻을 얻지 못해 울적하게 살다 간 사람일 것이다.

 

[금강산 & 구룡폭포 / 정선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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