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문자전(廣文者傳)

-초기구전

 

[은자주]광문은 실존인물이다. 여기 등장하는 다른 인물들도 실존했던 인물들이 많다. 다른 소설에서와 마찬가지로 서울 태생답게 서울의 지리와 문화도 자상하게 소개하여 서울의 풍속도를 문자로 보는 느낌이다. 거지 광문은 장안의 이름난 광대로 성장하여 그의 검무는 이름난 기생들에게 특히 인기가 있었고, 광문의 가짜 동생에 가짜 아들까지 만들어졌으니 상공업의 발달한 세태에 힘입은 바 크다 하겠다.

 

廣文者 丐者也.

광문(廣文)이라는 자는 거지였다.

嘗行乞鍾樓市 道中群丐兒

일찍이 종루(鐘樓)의 저잣거리에서 빌어먹고 다녔는데,

推文作牌頭 使守窠.

거지 아이들이 광문을 추대하여 패거리의 우두머리로 삼고, 소굴을 지키게 한 적이 있었다.

一日天寒雨雪

하루는 날이 몹시 차고 눈이 내리는데,

群兒相與出丐 一兒病不從.

거지 아이들이 다 함께 빌러 나가고 그중 한 아이만이 병이 들어 따라가지 못했다.

旣而兒寒專纍 欷聲甚悲. /*纍(루):매다.

조금 뒤 그 아이가

추위에 떨며

숨을 몰아쉬는데 그 소리가 몹시 처량하였다.

 

[주D-001]추위에 떨며 : 원문은 ‘寒專’인데, ‘寒戰’ 또는 ‘寒顫’과 같은 뜻으로 풀이된다.

 

文甚憐之 身行丐得食

광문이 너무도 불쌍하여 몸소 나가 밥을 빌어 왔는데,

將食病兒 兒業已死.

병든 아이를 먹이려고 보니 아이는 벌써 죽어 있었다. 群兒返 乃疑文殺之
거지 아이들이 돌아와서는 광문이 그 애를 죽였다고 의심하여

相與搏逐文.

다 함께 광문을 두들겨 쫓아내니,

文夜匍匐 入里中舍

광문이 밤에 엉금엉금 기어서 마을의 어느 집으로 들어가다가

驚舍中犬 舍主得文縛之.

그 집 개를 놀라게 하였다. 집주인이 광문을 잡아다 꽁꽁 묶으니,

文呼曰

광문이 외치며 하는 말이,

“吾避仇 非敢爲盜.

“나는 날 죽이려는 사람들을 피해 온 것이지 감히 도적질을 하러 온 것이 아닙니다.

如翁不信 朝日辨於市.”

영감님이 믿지 못하신다면 내일 아침에 저자에 나가 알아 보십시오.” 하는데,

辭甚樸 舍主心知廣文非盜賊. 曉縱之.

말이 몹시 순박하므로

집주인이 내심 광문이 도적이 아닌 것을 알고서 새벽녘에 풀어 주었다.

 

[주D-002]말이 몹시 순박하므로 : 원문은 ‘辭甚樸’인데, 이본에는 ‘辭甚款樸’이라고 되어 있다. 이본에 따라 번역하면 ‘말이 몹시 진실되고 순박하므로’이다.

 

文辭謝 請弊席而去.

광문이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는, 떨어진 거적을 달라 하여 가지고 떠났다.

舍主終已怪之 踵其後 望見

집주인이 끝내 몹시 이상히 여겨 그 뒤를 밟아 멀찍이서 바라보니,

群丐兒 曳一尸

거지 아이들이 시체 하나를 끌고

수표교(水標橋)

에 와서

 

[주D-003]수표교(水標橋) : 청계천에 놓여 있던 다리의 하나로, 홍수에 대비하여 수심을 재는 눈금이 교각(橋脚)에 표시되어 있었다.

 

至水標橋 投尸橋下.

그 시체를 다리 밑으로 던져 버리는데,

文匿橋中 裹以弊席 潛負去

광문이 다리 속에 숨어 있다가 떨어진 거적으로 그 시체를 싸서

埋之西郊之墦間. 且哭且語. /* 墦(번)무덤

가만히 짊어지고 가, 서쪽 교외 공동묘지에다 묻고서 울다가 중얼거리다가 하는 것이었다.於是 舍主執詰文.
이에 집주인이 광문을 붙들고 사유를 물으니,

文於是 盡告其前所爲 及昨所以狀.

광문이 그제야 그전에 한 일과 어제 그렇게 된 상황을 낱낱이 고하였다.

舍主心義文 與文歸家 予文衣 厚遇文.

집주인이 내심 광문을 의롭게 여겨, 데리고 집에 돌아와 의복을 주며 후히 대우하였다.

竟薦文藥肆富人 作傭保久之.

그리고 마침내 광문을 약국을 운영하는 어느 부자에게 천거하여 고용인으로 삼게 하였다.富人出門數數顧 還復入室 視其扃
오랜 후 어느 날 그 부자가 문을 나서다 말고 자주자주 뒤를 돌아보다, 도로 다시 방으로 들어가서 자물쇠가 걸렸나 안 걸렸나를 살펴본 다음

出門而去 意殊怏怏.

문을 나서는데, 마음이 몹시 미심쩍은 눈치였다.

旣還 大驚熟視文

얼마 후 돌아와 깜짝 놀라며, 광문을 물끄러미 살펴보면서

欲有所言 色變而止.

무슨 말을 하고자 하다가, 안색이 달라지면서 그만두었다.

文實不知 日黙黙 亦不敢辭去.

광문은 실로 무슨 영문인지 몰라서 날마다 아무 말도 못하고 지냈으며, 그렇다고 그만두겠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旣數日富人妻兄子 持錢還富人曰
그 후 며칠이 지나, 부자의 처조카가 돈을 가지고 와 부자에게 돌려주며,

“向者 吾要貸於叔

“얼마 전 제가 아저씨께 돈을 빌리러 왔다가,

會叔不在 自入室取去

마침 아저씨가 계시지 않아서 제멋대로 방에 들어가 가져갔는데,

恐叔不知也.”

아마도 아저씨는 모르셨을 것입니다.” 하는 것이었다.

於是 富人大慚廣文 謝文曰

이에 부자는 광문에게 너무도 부끄러워서 그에게,

“吾小人也 以傷長者之意.

“나는 소인이다. 장자(長者)의 마음에 상처를 주었으니

吾將無以見若矣.”

나는 앞으로 너를 볼 낯이 없다.” 하고 사죄하였다.

於是 遍譽所知諸君 及他富人大商賈 “廣文義人.”

그리고는 알고 지내는 여러 사람들과 다른 부자나 큰 장사치들에게 광문을 의로운 사람이라고 두루 칭찬을 하고,

而又過贊廣文諸宗室賓客 及公卿門下左右.

또 여러 종실(宗室)의 빈객들과 공경(公卿) 문하(門下)의 측근들에게도 지나치리만큼 칭찬을 해 대니,

公卿門下左右 及宗室賓客

공경 문하의 측근들과 종실의 빈객들이

皆作話套 以供寢.

모두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밤이 되면 자기 주인에게 들려주었다.

數月間 士大夫盡聞廣文如古人.

그래서 두어 달이 지나는 사이에 사대부까지도 모두 광문이 옛날의 훌륭한 사람들과 같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當是時 漢陽中 皆稱 “廣文前所厚遇舍主之賢能知人”

그 당시에 서울 안에서는 모두, 전날 광문을 후하게 대우한 집주인이 현명하여 사람을 알아본 것을 칭송함과 아울러,

而益多 “藥肆富人長者也.”

약국의 부자를 장자(長者)라고 더욱 칭찬하였다.時殖錢者 大較典當 首飾․璣翠 衣件․器什 宮室田․僮奴之薄書
이때 돈놀이하는 자들이 대체로 머리꽂이, 옥비취, 의복, 가재도구 및 가옥 · 전장(田庄) · 노복 등의 문서를 저당잡고서

參五本幣 以得當.

본값의 십분의 삼이나 십분의 오를 쳐서 돈을 내주기 마련이었다.

然文爲人保債 不問當 一諾千金.

그러나 광문이 빚보증을 서 주는 경우에는 담보를 따지지 아니하고 천금(千金)이라도 당장에 내주곤 하였다.文爲人極醜 言語不能動人
광문은 사람됨이 외모는 극히 추악하고, 말솜씨도 남을 감동시킬 만하지 못하며,

口大幷容兩拳

입은 커서 두 주먹이 들락날락하고,

善曼碩戱 爲鐵拐舞.

만석희(曼碩戲)

를 잘하고

철괴무(鐵拐舞)

를 잘 추었다.

 

[주D-004]만석희(曼碩戲) : 개성 지방에서 음력 4월 8일에 연희되던 무언 인형극이다. 이 놀이는 개성의 명기 황진이(黃眞伊)의 미색과 교태에 미혹되어 파계하였다는 지족선사(知足禪師)를 조롱하기 위하여 연희되었다는 속전이 있으며, 일설에는 지족선사가 불공 비용을 만 석이나 받은 것을 욕하기 위하여 연희되었다고도 한다.
[주D-005]철괴무(鐵拐舞) :
중국 전설상의 팔선(八仙) 중의 하나인 이철괴(李鐵拐)의 모습을 흉내 내어 추는 춤이다. 이철괴는 그 모습이 머리를 산발하고 얼굴에는 때가 자욱하고 배는 훌떡 걷어 올리고 다리는 절뚝거리며 쇠로 만든 지팡이를 짚고 다녔다고 한다.

 

三韓兒相訾傲 稱

우리나라 아이들이 서로 욕을 할 때면,

“爾兄達文.” 達文又其名也.

“니 형은 달문(達文)이다.”라고 놀려 댔는데, 달문은 광문의 또다른 이름이었다.


文行遇鬪者 文亦解衣如鬪.
광문이 길을 가다가 싸우는 사람을 만나면 그도 역시 옷을 홀랑 벗고 싸움판에 뛰어들어,

啞啞俯劃地 若辨曲直狀

뭐라고 시부렁대면서 땅에 금을 그어 마치 누가 바르고 누가 틀리다는 것을 판정이라도 하는 듯한 시늉을 하니,

一市皆笑 鬪者亦笑 皆解云.

온 저자 사람들이 다 웃어 대고 싸우던 자도 웃음이 터져, 어느새 싸움을 풀고 가 버렸다.文年四十餘 尙編髮.
광문은 나이 마흔이 넘어서도 머리를 땋고 다녔다.

人勸之妻 則曰,

남들이 장가가라고 권하면, 하는 말이,

“夫美色 衆所嗜也.

“잘생긴 얼굴은 누구나 좋아하는 법이다.

然非男所獨也 唯女亦然也.

그러나 사내만 그런 것이 아니라

비록 여자라도 역시 마찬가지다.

 


[주D-006]비록 …… 마찬가지다 : 원문은 ‘唯女亦然’인데, 이 경우 ‘唯’ 자는 ‘비록’이란 뜻으로 ‘雖’ 자와 같다.


故吾陋 而不能自爲容也.”

그러기에 나는 본래 못생겨서 아예 용모를 꾸밀 생각을 하지 않는다.” 하였다.

人勸之家 則辭曰

남들이 집을 가지라고 권하면,

“吾無父母兄弟妻子 何以家爲?

“나는 부모도 형제도 처자도 없는데 집을 가져 무엇 하리.

且吾朝而歌呼入市中

더구나 나는 아침이면 소리 높여 노래를 부르며 저자에 들어갔다가,

暮而宿富貴家門下

저물면 부귀한 집 문간에서 자는 게 보통인데,

漢陽戶 八萬爾.

서울 안에 집 호수가 자그만치 팔만 호다.

吾逐日 而易其處 不能盡吾之年壽矣.”

내가 날마다 자리를 바꾼다 해도 내 평생에는 다 못 자게 된다.” 하였다.
漢陽名妓 窈窕都雅
서울 안에 명기(名妓)들이 아무리 곱고 아름다워도,

然非廣文聲之 不能直一錢.

광문이 성원해 주지 않으면 그 값이 한 푼어치도 못 나갔다.
初羽林兒 各殿別監
예전에 궁중의

우림아(羽林兒),

각 전(殿)의

별감(別監),

 

[주D-007]우림아(羽林兒) : 궁궐의 호위를 맡은 친위(親衛) 부대 중의 하나인 우림위(羽林衛) 소속의 군인들을 말한다. 우림위는 영조 때 용호영(龍虎營)에 소속되었다.
[주D-008]별감(別監) :
궁중의 하례(下隸)로서 대전(大殿)과 중궁전(中宮殿) 등에서 잡무를 수행하는 한편 국왕이 행차할 때 시위와 봉도(奉導)를 맡았다.

 

駙馬都尉 傔從垂袂

부마도위(駙馬都尉)의 청지기들이 옷소매를 늘어뜨리고

過雲心 心名姬也.

운심(雲心)의 집을 찾아간 적이 있다. 운심은 유명한 기생이었다.

堂上置酒鼓瑟 屬雲心舞.

대청에서 술자리를 벌이고 거문고를 타면서 운심더러 춤을 추라고 재촉해도,

心故遲 不肯舞也.

운심은 일부러 느리대며 선뜻 추지를 않았다.


文夜往 彷徨堂下

광문이 밤에 그 집으로 가서 대청 아래에서 어슬렁거리다가,

遂入座 自坐上座.

마침내 자리에 들어가 스스로 상좌(上坐)에 앉았다.

文雖弊衣袴 擧止無前 意自得也.

광문이 비록 해진 옷을 입었으나 행동에는 조금의 거리낌도 없이 의기가 양양하였다.

眦膿而眵 陽醉噎 / *眦(제):눈초리. 膿(농):고름. 眵(치):눈꼽. 噎(역):목메다.

눈가는 짓무르고 눈꼽이 끼었으며 취한 척 게욱질을 해 대고,

羊髮北髻

헝클어진 머리로

북상투〔北髻〕

를 튼 채였다.

一座愕然. 瞬文欲毆之

온 좌상이 실색하여

광문에게 눈짓을 하며 쫓아내려고 하였다.

 

[주D-009]북상투〔北髻〕 : 여자의 쪽머리(낭자머리)를 모방하여 뒤통수에 상투처럼 묶은 머리 모양을 가리킨다. 《硏經齋集 外集 卷5 蘭室譚叢 北髻》
[주D-010]광문에게 …… 하였다 :
원문은 ‘瞬文欲敺之’인데, 여기서 ‘敺’는 ‘驅’의 고자(古字)로 ‘쫓아내다’로 새겨야 한다.

 

文益前坐 拊膝度曲 鼻吟高低.

광문이 더욱 앞으로 나아가 무릎을 치며 곡조에 맞춰 높으락나지락 콧노래를 부르자,

心卽起更衣 爲文劒舞.

운심이 곧바로 일어나 옷을 바꿔 입고 광문을 위하여 칼춤을 한바탕 추었다.

一座盡歡 更結友而去.

그리하여 온 좌상이 모두 즐겁게 놀았을 뿐 아니라, 또한 광문과 벗을 맺고 헤어졌다.

 

書廣文傳後
광문전 뒤에 쓰다

余年十八時 嘗甚病

내 나이 열여덟 살 적에 몹시 병을 앓아서,

常夜召門下舊傔

늘 밤이면 예전부터 집에서 부리던 사람들을 불러 놓고

微問閭閻奇事 其言大抵廣文事.

여염(閭閻)에서 일어난 얘깃거리 될 만한 일들을 묻곤 하였는데, 대개는 광문의 일을 말하는 것이었다.

余亦幼時 見其貌極醜.

나 또한 어렸을 적에 그 얼굴을 보았는데 너무도 못났었다.

余方力爲文章 作爲此傳.

나는 한창 문장을 배우기에 힘쓰던 판이라, 이 전(傳)을 만들어

傳示諸公長者

여러 어른들께 돌려 보였는데,

一朝以古文辭 大見推詡.

하루아침에 고문(古文)을 잘 한다는 칭찬을 크게 받게 되었다.

蓋文時已南遊湖嶺諸郡 所至有聲

광문은 이때 호남과 영남의 여러 고을을 돌아다니면서 가는 곳마다 명성을 남겼고,

不復至京師數十年.

더 이상 서울에 올라오지 않은 지가 이미 수십 년이나 지났다.

海上丐兒 嘗乞食於開寧水多寺.

바닷가에서 온 거지 아이 하나가

개령(開寧)의 수다사(水多寺)

에서 빌어먹고 있었다.

 

[주D-011]개령(開寧)의 수다사(水多寺) : 개령은 현재 경상북도 김천시에 속하는 고을이고, 수다사는 그 이웃 고을인 선산군(善山郡)에 있다. 신라 때 진감국사(眞鑑國師)가 창건했다고 한다.

 

夜聞寺僧閒話廣文事

밤이 되어 그 절의 중들이 광문의 일을 한가롭게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皆愛慕感嘆 想見其爲人.

모두 그의 사람됨을 상상하며 흠모하고 감탄해 마지않았다.

於是 丐兒囁嚅

이때 그 거지 아이가 눈물을 흘리고 있자 사람들이 이상히 여겨 그 까닭을 물었다.

遂自稱廣文兒.

그 거지 아이는 한동안 머뭇거리다 마침내 광문의 아들이라 자칭하니,

寺僧皆大驚.

그 절의 중들이 모두 크게 놀랐다.

時賞予飯瓢

이때까지 그에게 밥을 줄 때는 박짝에다 주었는데,

及聞廣文兒 洗盂盛飯

광문의 아들이라는 말을 듣고서는 씻은 사발에 밥을 담고

具匙箸蔬醬 每飯而進之.

수저에다 푸성귀랑 염장을 갖추어서 매번 소반에 차려 주었다.

時嶺中妖人 有潛謀不軌者

이 무렵에 영남에는 몰래 역모를 꾀하는 요사한 사람이 있었는데,

見丐兒如此其盛待也.

거지 아이가 이와 같이 융숭한 대우를 받는 것을 보고

冀得以惑衆 潛說丐兒曰

대중을 현혹시킬 수 있겠다 생각하여 가만히 거지 아이를 달래기를,

“爾能呼我叔 富貴可圖也.”

“네가 나를 숙부라 부르면 부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하고,


乃稱廣文弟 自名廣孫 以附文.

마침내 저는 광문의 아우라 칭하고 제 이름을 광손(廣孫)이라 하여 광문의 돌림자를 땄다.

或有疑廣文自不知姓 生平獨無昆弟妻妾

어떤 사람이 의심하기를,“광문은 본래 제 성도 모르고 평생을 형제도 처첩도 없이 독신으로 지냈는데,

今安得忽有長弟長兒也?

지금 어떻게 저런 나이 많은 아우와 장성한 아들이 있을 수 있겠는가.” 하고서,

遂上變 皆得逐捕

마침내 고변(告變)을 하였다. 관청에서 이들을 모두 다 잡아들여

及對質驗問 各不識面.

광문과 대질심문을 벌였는데, 제각기 얼굴을 몰랐다.

於是 遂誅其妖人 而流丐兒.

이에 그 요사한 자를 베어 죽이고 거지 아이는 귀양 보냈다.

廣文旣得出

광문이 석방되자,

 

 

[주D-012]광문이 석방되자 : 영조 40년(1764년)에 일찍이 나주(羅州) 괘서(掛書) 사건으로 처형된 나주 목사(羅州牧使) 이하징(李夏徵)의 서얼 이태정(李太丁)이란 자가 달손(達孫) 즉 광문의 동생을 자처하면서, 광문의 아들이라는 자근만(者斤萬)을 시켜 유언비어를 퍼뜨리다가 체포되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덩달아 체포되었던 광문은 역모 혐의는 벗었으나 함경도 경성(鏡城)으로 유배되었다. 《推案及鞫案 卷22》 《英祖實錄 40年 4月 17日》

 

老幼皆往觀

늙은이며 젊은이 모두가 가서 구경하는 바람에

漢陽市數日爲空.

한양의 저잣거리가 며칠 동안 텅 비게 되었다.

文指表鐵柱曰

광문이

표철주(表鐵柱)

를 가리키며,


[주D-013]표철주(表鐵柱) : 실존 인물로서 당시 서울의 무뢰배 조직인 검계(劍契)의 일원이었다. 이들은 자칭 왈짜〔曰者〕라고도 하는데, 노름판과 사창가 등을 무대로 활동하면서 살인과 약탈, 강간 등을 자행하였다.


“汝豈非善打人表望同耶?”

“너는 사람 잘 치던 표망둥이〔表望同〕가 아니냐.

“今老無能矣.”

지금은 늙어서 너도 별 수 없구나.” 했는데,

蓋望同其號也.

망둥이는 그의 별명이었다.

因相與勞苦.文問

서로 고생을 위로하고 나서 광문이 물었다.

“靈城君豐原君無恙乎?”

“영성군(靈城君 박문수(朴文秀))과 풍원군(豊原君 조현명(趙顯命))은 무고들 하신가?”

曰 “皆已下世矣.”

“모두 다 세상을 떠나셨다네.”

“金君擎方何官?”

“김경방(金擎方)은 지금 무슨 벼슬을 하고 있지?”

曰 “爲龍虎將.”

“용호장(龍虎將)이 되었다네.”

 

[주D-014]용호장(龍虎將) : 용호영(龍虎營)의 정 3 품 벼슬이다.

 

文曰

그러자 광문이 말했다.

“此兒美男子. 體雖肥

“이 녀석은 미남자로서 몸이 그렇게 뚱뚱했어도

能挾妓超墻. 用錢如糞土.

기생을 껴안고 담을 잘도 뛰어넘었으며 돈 쓰기를 더러운 흙 버리듯 했는데,

今貴人 不可見.

지금은 귀인(貴人)이 되었으니 만나 볼 수가 없겠군.

粉丹何去?”

분단(粉丹)이는 어디로 갔지?”

曰 “已死矣.”

“벌써 죽었다네.”

文嘆曰

그러자 광문이 탄식하며 말했다.

“昔豐原君冶讌麒麟閣

“옛날에 풍원군이 밤에 기린각(麒麟閣)에서 잔치를 벌인 후

獨留粉丹宿

유독 분단이만 잡아 두고서 함께 잔 적이 있었지.

曉起將赴闕

새벽에 일어나 대궐에 들어갈 차비를 하는데,

丹執燭誤爇貂帽惶恐.” /.*爇(설)불사르다.

분단이가 촛불을 잡다가 그만 잘못하여 초모(貂帽)를 태워 버리는 바람에 어쩔 줄을 몰라 하였네.

君笑曰

풍원군이 웃으면서

“爾羞乎? 卽與壓羞錢五千.”

‘네가 부끄러운 모양이구나.’ 하고는 곧바로

압수전(壓羞錢)

오천 냥을 주었었지.

吾時擁首帕副裙候

나는 그때 분단이의

수파(首帕)와 부군(副裙)

을 들고

 

[주D-015]압수전(壓羞錢) : 부끄러움을 진정시킨다는 명분으로 주는 돈이다.

[주D-016]수파(首帕)와 부군(副裙) : 수파는 여자들의 머리를 감싸는 머릿수건이고, 부군은 덧치마를 가리킨다.

 

闌干下黑而鬼立

난간 밑에서 기다리며 시커멓게 도깨비처럼 서 있었네. 君拓戶唾倚丹而耳曰풍원군이 창문을 열고 가래침을 뱉다가 분단이의 귀에 대고 말하기를, “彼黑者何物?”‘저 시커먼 것이 무엇이냐?’ 하니, 對曰 “天下誰不知廣文也.”분단이가 대답하기를 ‘천하 사람이 다 아는 광문입니다.’ 했지. 君笑曰, “是汝後陪耶?”풍원군이 웃으며 ‘바로 네

후배(後陪)

냐?’ 하고는,

呼與一大鍾.

나를 불러들여 큰 술잔에 술을 한 잔 부어 주고,

君自飮紅露七鍾 乘軺而去.

자신도

홍로주(紅露酒)

일곱 잔을 따라 마시고 초헌(軺軒)을 타고 나갔지.

 

[주D-017]후배(後陪) : 뒤를 따르는 하인을 말한다.
[주D-018]홍로주(紅露酒) :
소주에다 멥쌀로 만든 누룩과 계피 등을 넣고 우려 만든 약주로, 감홍로(甘紅露), 감홍주(甘紅酒)라고도 부른다.

 

皆昔年事也.

이 모두 다 예전 일이 되어 버렸네그려.

“漢陽纖兒 誰最名?”

요즈음 한양의 어린 기생으로는 누가 가장 유명한가?”

曰 “小阿.”

“작은아기〔小阿其〕라네.”

“其助房誰?”

“조방(助房)

은 누군가?”

 

[주D-019]조방(助房) : 기생의 기둥서방으로, 조방(助幇)이라고도 한다.

 

“崔撲滿.”

“최박만(崔撲滿)이지.”

曰 “朝日尙古堂遣人勞我 聞移家圓橋下.

“아침나절

상고당(尙古堂)

에서 사람을 보내어 나에게 안부를 물어왔네.

堂前有碧梧桐樹

듣자니 집을

둥그재〔圓嶠〕

아래로 옮기고 대청 앞에는 벽오동 나무를 심어 놓고

常自煮茗. 其下使鐵突鼓琴.”

그 아래에서 손수 차를 달이며

철돌(鐵突)

을 시켜 거문고를 탄다고 하데.”

 

[주D-020]상고당(尙古堂) : 김광수(金光遂)의 호이다. 숙종 22년(1696) 이조 판서 김동필(金東弼)의 아들로 출생하였다. 서른 살에 진사 급제 후 잠시 인제 군수(麟蹄郡守)를 지냈다. 서화에 뛰어났으며, 골동품 수집과 감정으로 명성이 높았다. 《연암집》 권3 필세설(筆洗說), 권7 관재소장청명상하도발(觀齋所藏淸明上河圖跋)에도 그에 관한 언급이 있다.
[주D-021]둥그재〔圓嶠〕 :
서대문 밖 아현동 부근에 있었던 고개로, 원현(圓峴)이라고도 한다.
[주D-022]철돌(鐵突) :
거문고의 명수로 알려진 실존 인물로, 김철석(金哲石)이라고 한다. 가객(歌客) 이세춘(李世春), 가기(歌妓) 추월(秋月) · 매월(梅月) · 계섬(桂蟾) 등과 한 그룹을 이루어 직업적인 연예 활동으로 자못 명성이 높았다고 한다.

 

曰 “鐵突昆弟 方擅名.” / *擅(천)멋대로[마음대로]하다.

“철돌은 지금 그 형제가 다 유명하다네.”

曰 “然. 此金鼎七兒也. 吾與其父善.”

“그런가? 이는 김정칠(金鼎七)의 아들일세. 나는 제 애비와 좋은 사이였거든.”

復悵然久之曰

이렇게 말하고 다시 서글퍼하며 한참 있다가 말하기를,

“此皆吾去後事耳.”

“이는 다 나 떠난 후의 일들이군.” 하였다.

文斷髮猶辮如鼠尾

광문은 머리털을 짧게 자르기는 하였지만 그래도 쥐꼬리처럼 땋아 내리고 있었으며,

齒豁口窳 不能內拳云. / *窳(유)비뚤다.

이가 빠지고 입이 틀어져 이제는 주먹이 들락거리지 못한다고 한다.

語鐵柱曰

광문이 표철주더러 말하였다.

“汝今老矣. 何能自食?”

“너도 이제는 늙었구나. 어떻게 해서 밥을 먹고사나?”

曰 “家貧爲舍儈.”

“집이 가난하여 집주름이 되었다네.”

文曰 “汝今免矣. 嗟乎! 昔汝家貲鉅萬 /*貲(자)재물. *兜(두)투구.

“너도 이제는 가난을 면했구나.

아아! 옛날 네 집 재산이 누거만(累鉅萬)이었지.


[주D-023]너도 …… 면했구나 : 원문은 ‘汝今免矣’인데, 가난에서 벗어나는 것을 ‘면궁(免窮)’이라 한다.


時號汝黃金兜 今兜安在?”

그때에는 너를 ‘황금투구’라고 불렀는데 그 투구 어따 두었노?”

曰 “今而後 吾知世情矣.”

“이제야 나는 세상 물정을 알았다네.”

文笑曰

광문이 허허 웃으며 말하기를,

“汝可謂學匠而眼暗矣.”

“네 꼴이 마치

‘기술을 배우고 나자 눈이 어두워진 격’

이로구나.” 하였다.

 

[주D-024]기술을 …… 격 : ‘복이 박하다’는 뜻의 우리나라 속담이다. 이덕무의 《청장관전서》 권62 열상방언(洌上方言)에 “기술 익히자 눈에 백태 낀다.〔技纔成 眼有眚〕”는 유사한 속담이 소개되어 있다.

 

文後不知所終云.

그 뒤로 광문이 어디서 어떻게 죽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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