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옹전(閔翁傳)

-초기九傳

 

閔翁者 南陽人也.

민옹이란 이는 남양(南陽) 사람이다.

戊申軍興從征 功授僉使.

무신년 난리에 출정하여 그 공으로 첨사(僉使)가 되었는데,

後家居 遂不復仕.

그 뒤로 집으로 물러나 다시는 벼슬하지 않았다.

 

[주D-001]무신년 난리 : 영조 4년(1728)에 일어난 이인좌(李麟佐)의 난을 가리킨다.

 

翁幼警悟聰給

옹(翁)은 어려서부터 영민하고 총명하였다.

獨慕古人奇節偉跡 慷慨發憤

유독 옛사람들의 뛰어난 절개와 위대한 자취를 사모하여 강개(慷慨)히 분발하였으며,

每讀其一傳 未嘗不歎息泣下也.

그들의 전기를 하나씩 읽을 때마다 탄식하며 눈물을 흘리지 않은 적이 없었다.

七歲 大書其壁曰 項橐爲師.

7세 때에는 벽에다 큰 글씨로

“항탁(項槖)이 스승이 되었다.”

라고 썼으며,

十二書 甘羅爲將.

12세 때에는

“감라(甘羅)가 장수가 되었다.”

고 하고,

十三書 外黃兒遊說.

13세 때에는

“외황(外黃) 고을 아이가 유세를 하였다.”

고 썼으며,

十八益書 去病出祈連.

18세 때에는 더욱 쓰기를

“곽거병(霍去病)이 기련산(祈連山)에 나갔다.”

고 했으며,

二十四書 項籍渡江.

24세 때에는

“항적(項籍)이 강을 건넜다.”

고 썼다.

 

[주D-002]항탁(項槖)이 스승이 되었다 : 항탁은 7세에 공자(孔子)의 스승이 되었다고 한다. 감라(甘羅)가 여불위(呂不偉)를 설득하면서 한 말이다. 《戰國策 秦策》 《史記 卷71 甘茂列傳》
[주D-003]감라(甘羅)가 장수가 되었다 :
이본에는 ‘승상〔相〕이 되었다’로 되어 있다. 여불위는 진(秦) 나라 장수 장당(張唐)이 연(燕) 나라 승상으로 부임하기를 바랐으나, 장당이 이를 거부하자 감라가 그를 대신하여 장당을 설득하고 조(趙) 나라에 가서 유세한 것을 말한다. 감라는 진 나라 명장 감무(甘茂)의 손자로 여불위의 가신(家臣)이었다. 여불위에게 등용되어 12세에 조 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조 나라를 설득하여 5개의 성을 할양받고 연 나라를 공격하게 하여 영토를 획득하였다. 《戰國策 秦策》 《史記 卷71 甘茂列傳》
[주D-004]외황(外黃) …… 하였다 :
항우가 진류(陳留)의 외항을 공격하였는데 외항 사람들이 항복하지 않고 버티다 며칠 후 항복하자 항우가 노하여 15세 이상 남자들을 성의 동쪽에다 파묻으려 하였다. 이에 외황 영(外黃令) 사인(舍人)의 13세 된 아들이 항우에게 유세하여 외황 백성들을 살렸다. 《史記 卷7 項羽本紀》
[주D-005]곽거병(霍去病)이 …… 나갔다 :
곽거병이 18세에 대장군 위청(衛靑)을 따라 표요교위(剽姚校尉)가 되어 흉노족을 공격하여 공을 세웠다. 그러나 기련산에까지 출정하여 공을 세운 것은 그가 표기장군(驃騎將軍)이 된 21세 때의 일이다. 기련산은 중국 감숙성(甘肅省)과 청해성(靑海省) 경계에 있는 고산(高山)이다. 《史記 卷111 將軍驃騎列傳》 《太平寰宇記 卷191 匈奴篇》
[주D-006]항적(項籍)이 강을 건넜다 :
항우는 24세 때 처음 기병(起兵)하여, 진(秦) 나라 군대에 포위당한 조왕(趙王)을 구하기 위해 오강(烏江)을 건넜다. 《史記 卷7 項羽本紀》

 

至四十 益無所成名.

40세가 되었으나 더욱더 이름을 날린 바가 없었기에

乃大書曰 孟子不動心.

마침내

“맹자는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

라고 크게 써 놓았다.

 

[주D-007]맹자는 …… 않았다 : 《맹자》 공손추 상(公孫丑上)에서 맹자가 “나는 40세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我四十不動心〕”고 하였다.

 

年年書益不倦 壁盡黑.

이렇게 해마다 쓰기를 게을리 하지 않아 벽이 다 온통 새까맣게 되었다.

及年七十 其妻嘲曰

70세가 되자 그의 아내가 조롱하기를,

“翁今年畵烏未?”

“영감, 금년에도 까마귀를 그리지 않겠소?” 하니,

翁喜曰 “若疾磨墨.”

영감이 기뻐하며,“당신이 빨리 먹을 가시오.” 하고,

遂大書曰 “范增好奇計.”

마침내 크게 쓰기를,

“범증(范增)이 기발한 계책을 좋아하였다.”

하니,

 

[주D-008]범증(范增)이 …… 좋아하였다 : 범증은 기발한 계책을 좋아하여, 나이 70세 때 항우의 숙부인 항량(項梁)을 찾아가 진(秦) 나라에 대해 반란을 일으키도록 권하였다. 《史記 卷7 項羽本紀》

 

其妻益恚曰 /*恚(에)성내다.

그 아내가 더욱 화를 내면서,

“計雖奇 將幾時施乎?”

“계책이 아무리 기발한들 장차 언제 쓰시려우?” 하니,

翁笑曰

옹이 웃으며 말하기를,

“昔呂尙 八十鷹揚.

“옛날에 강 태공(姜太公)은 80살에 매가 날아오르듯이 용맹하였으니

 

 

[주D-009]옛날에 …… 용맹하였으니 : 《시경》 대아(大雅) 대명(大明)에 “태사(太師) 상보(尙父)는 당시 매가 날아오르는 듯하였네.〔維師尙父 時維鷹揚〕”라는 구절이 있다. 강 태공이 무왕(武王)을 도와 은(殷) 나라를 정벌한 사실을 가리킨다. 단 그때 그의 나이가 80살이었다는 것은 어디에 근거한 설인지 알 수 없다.

 

今翁視呂尙 猶少弱弟耳.”

지금 나는 그에 비하면 젊고 어린 아우뻘이 아니오?” 하였다.

歲癸酉甲戌之間

계유 · 갑술년 간,

 

[주D-010]계유 · 갑술년 간 : 영조 29년(1753)과 영조 30년(1754)이다.

 

余年十七八 病久困

내 나이 17, 8세 즈음 오랜 병으로 몸이 지쳐 있을 때

劣留好聲歌書畵 古劒琴彛器諸雜物.

집에 있으면서 노래나 서화, 옛 칼, 거문고, 이기(彝器)와 여러 잡물들에 취미를 붙이고,

益致客 俳諧古譚

더욱더 손님을 불러들여 우스갯소리나 옛이야기로

慰心萬方 無所開其幽鬱.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백방으로 노력해 보았으나 그 답답함을 풀지 못하였다.

有言 閔翁奇士

이때 어떤 이가 나에게 민옹을 소개하면서, 그는 기이한 선비로서

工歌曲 善譚辨 俶怪譎恢

노래를 잘하며 담론도 잘하는데 거침없고 기묘하여

聽者 人無不爽然意豁也. /*豁(활):뚫린 골

듣는 사람마다 후련해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하기에,

余聞甚喜 請與俱至

나는 그 말을 듣고 너무나 반가워 함께 와 달라고 청하였다.

翁來 而余方與人樂.

옹이 찾아왔을 때 내가 마침 사람들과 풍악을 벌이고 있었는데,

翁不爲禮 熟視管者

옹은 인사도 하지 아니하고 물끄러미 피리 부는 자를 보고 있더니

批其頰大罵曰

별안간 그의 따귀를 갈기며 크게 꾸짖기를,

“主人懽 汝何怒也?”

“주인은 즐거워하는데 너는 왜 성을 내느냐?” 하였다.

余驚問其故.

내가 놀라 그 까닭을 물었더니,

翁曰 “彼瞋目而盛氣 匪怒而何?”

옹이 말하기를, “그놈이 눈을 부라리고 기를 쓰니 성낸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하므로,

余大笑.

나는 크게 웃고 말았다.

翁曰“豈獨管者怒也?

옹이 말하기를, “어찌 피리 부는 놈만 성낼 뿐이겠는가.

笛者反面若啼

젓대 부는 놈은 얼굴을 돌리고 울 듯이 하고 있고

缶者嚬若愁

장구 치는 놈은 시름하듯 인상을 찌푸리고 있으며

一座黙然若大恐.

온 좌중은 입을 다문 채 크게 두려워하는 듯이 앉아 있고,

僮僕忌諱笑語 樂不可爲歡也..”

하인들은 마음대로 웃고 떠들지도 못하고 있으니, 이러고서야 음악이 즐거울 리 없지.”하기에,

余遂立撤去 延翁坐.

나는 당장에 풍악을 걷어치우고 옹을 자리에 맞아들였다.

翁殊短小 白眉覆眼

옹은 매우 작은 키에 하얀 눈썹이 눈을 내리덮고 있었다.

自言 “名有信 年七十三.”

그는 자신의 이름은 유신(有信)이며 나이는 73세라고 소개하고는

因問余 “君何病? 病頭乎?”

이내 나에게 물었다.“그대는 무슨 병인가? 머리가 아픈가?”

曰 “不.”

“아닙니다.”

曰 “病腹乎?”

“배가 아픈가?”

曰 “不.”

“아닙니다.”

曰 “然則君不病也.”

“그렇다면 병이 든 게 아니구먼.”

遂闢戶揭牖 風來颼然.

그리고는 드디어 문을 열고 들창을 걷어 올리니, 바람이 솔솔 들어와

余意稍豁 甚異昔也.

마음속이 예전과는 아주 다르게 조금은 후련해졌다.

謂翁

그래서 옹에게 말하기를,

“吾特厭食 夜失睡 是爲病也.”

“저는 단지 밥을 잘 먹지 못하고 밤에 잠을 잘 못 자는 것이 병입니다.” 했더니,

翁起賀.

옹이 일어나서 나에게 축하를 하는 것이었다.

余驚曰 “翁何賀也?”

나는 놀라며,“옹은 어찌하여 저에게 축하를 하는 것입니까?” 하니,

曰 “君家貧 幸厭食 財可美也.

옹이 말하기를,“그대는 집이 가난한데 다행히 밥을 잘 먹지 못하고 있으니 재산이 남아돌 게고,

不寐則兼夜 幸倍年.

잠을 못 잔다면 밤까지 겸해 사는 것이니 남보다 갑절 사는 턱이 아닌가.

財美而年培 壽且富也.”

재산이 남아돌고 남보다 갑절 살면 오복(五福) 중에 수(壽)와 부(富) 두 가지는 이미 갖춘 셈이지.” 하였다.

須臾飯至

잠시 후 밥상을 들여왔다.

余呻蹙不擧 諫物而嗅.

내가 신음 소리를 내며 인상을 찌푸리고 음식을 들지 못한 채 이것저것 집어서 냄새만 맡고 있었더니,

翁忽大怒 欲起去.

옹이 갑자기 크게 화를 내며 일어나 가려고 하였다.

余驚問 “翁何怒去也?”

내가 놀라 옹에게 왜 화를 내고 떠나려 하는지 물었더니,

翁曰“君招客 不爲具

옹이 대답하기를,“그대가 손님을 초대해 놓고는 식사를 차려 내오지 않고

獨自先飯 非禮也.”

혼자만 먼저 먹으려 드니 예(禮)가 아닐세.” 하였다.

余謝留翁 且促爲具食.

내가 사과를 하고는 옹을 주저앉히고 빨리 식사를 차려 오게 하였더니

翁不辭讓 腕肘呈袒

옹은 조금도 사양하지 않고 팔뚝을 걷어 올린 다음

匙箸磊落.

수저를 시원스레 놀려 먹어 대는데

余不覺口津 心鼻開張

나도 모르게 입에서 군침이 돌고 막혔던 가슴과 코가 트이면서

乃飯如舊.

예전과 같이 밥을 먹게 되었다.夜翁闔眼端坐.
밤이 되자 옹은 눈을 내리감고 단정히 앉아 있었다.

余要與語

내가 얘기 좀 하자고 하였으나,

翁益閉口 余殊無聊.

옹은 더욱 입을 다문 채 말을 하지 않아 나는 꽤나 무료하였다.

久之 翁忽剔燭 謂曰

이렇게 한참이 지나자 옹이 갑자기 일어나서 촛불을 돋우면서 하는 말이,

“吾年少時 過眼輒誦 今老矣

“내가 어릴 적에는 눈만 스쳐도 바로 외워 버렸는데 지금은 늙었소그려.

與君約生平所未見書 各涉三再乃誦.

그대와 약속하여 평소에 못 보던 글을 두세 번 눈으로 읽어 보고 나서 외우기로 하세.

若錯一字 罰如契誓.”

만약 한 자라도 틀리게 되면 약속대로 벌을 받기로 하세나.” 하기에,

余侮其老曰 “諾.”

나는 그가 늙었음을 업수이 여겨,“그렇게 합시다.” 하고서,

卽抽架上周禮

곧바로 서가 위에 놓인 《주례(周禮)》를 뽑아 들었다.

翁拈考工 余得春官.

그래서 옹은 고공기(考工記)를 집어 들고 나는 춘관(春官)을 집어 들었는데

小閒翁呼曰 “吾已誦.”

조금 지나자 옹이,“나는 벌써 다 외웠네.” 하고 외쳤다.

余未及下一遍 驚止翁且居.

그때 나는 한 번도 다 내리 읽지 못한 상태였으므로 놀라서 옹에게 잠시만 기다리라고 하였더니,

翁語侵頗困 而余益不能誦

옹이 자꾸만 말을 걸고 방해를 하여 나는 더욱 외울 수가 없었다.

思睡乃睡.

그러는 사이에 잠이 와서 그만 잠이 들고 말았다.

天旣明. 問

다음날 날이 밝자 옹에게 묻기를,

“翁能記宿誦乎?”

“어젯밤에 외운 것을 기억할 수 있겠습니까?” 하니,

翁笑曰 “吾未嘗誦.”

옹이 웃으며,“나는 처음부터 아예 외우지를 않았다네.” 하였다.嘗與翁夜語.
하루는 옹과 더불어 밤에 얘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翁弄罵坐客 人莫能難.

옹이 좌객들을 조롱하기도 하고 매도하기도 하였으나 아무도 막아 낼 사람이 없었다.

有欲窮翁者問

그들 중에 한 사람이 옹을 궁지에 몰아넣고자 하여 옹에게 물었다.

“翁見鬼乎?”

“옹은 귀신을 본 일이 있소?”

曰 “見之.”

“보았지.”

“鬼何在?”

“귀신이 어디 있습니까?”

翁瞠目熟視 有一客坐燈後 遂大呼曰

옹이 눈을 부릅뜨고 물끄러미 둘러보다가 손 하나가 등잔 뒤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는 크게 외치면서,

“鬼在彼.”

“귀신이 저기 있지 않소.” 하였다.

客怒詰翁.

그 손이 노하여 따져 들자,

翁曰 “夫明則爲人 幽則爲鬼.

“밝은 데 있는 것은 사람이요, 껌껌한 데 있는 것은 귀신인데,

今者處暗而視明 匿形而何人

지금

어두운 데 앉아 밝은 데를 보고 제 몸을 감추고 사람들을 엿보고 있으니,

 

[주D-011]지금 : 원문은 ‘今者’인데, 이본에는 ‘今子’로 되어 있다. 이본에 따라 번역하면 ‘지금 그대는’ 이다.

 

豈非鬼乎?”

귀신이 아니고 무엇이오.” 하니,

一座皆笑.

온 좌중이 크게 웃었다.

又問 “翁見仙乎?”

손이 또 물었다.“옹은 신선을 본 일이 있소?”

曰 “見之.”

“보았지.”

“仙何在?”

“신선이 어디에 있던가요?”

曰 “家貧者仙耳.

“가난뱅이가 모두 신선이지.

富者常戀世 貧者常厭世

부자들은 늘 세상에 애착을 가지지만 가난뱅이는 늘 세상에 싫증을 느끼거든.

厭世者 非仙耶?”

세상에 싫증을 느끼는 사람이 신선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翁能見長老者乎?”

“옹은 나이 많이 먹은 사람을 보았소?”

曰 “見之. 吾朝日立林中 蟾與免爭長.

“보았지. 내가 아침나절 숲 속에 갔더니 두꺼비와 토끼가 서로 나이가 많다고 다투고 있더군.

免謂蟾曰

토끼가 두꺼비에게 하는 말이

“吾與彭祖同年 若乃晩生也.”

‘나는

팽조(彭祖)

와 동갑이니 너는 나보다 늦게 태어났다.’ 하니,

 

[주D-012]팽조(彭祖) : 800살까지 살았다는 전설적인 인물로, 유향(劉向)의 《열선전(列仙傳)》, 갈홍(葛洪)의 《신선전(神仙傳)》 등에 소개되어 있다.

 

蟾俛首而泣.

두꺼비가 고개를 푹 숙이고 울더군.

免驚問曰

토끼가 놀라

“若乃若悲也?”

 

‘너는 왜 그처럼 슬퍼하느냐?’

하고 물으니,

 

[주D-013]너는 …… 슬퍼하느냐 : 원문은 ‘若乃若悲也’인데, 이본에는 ‘若乃何悲也’로 되어 있다. 이본에 따라 번역하면 ‘너는 어째서 슬퍼하느냐?’이다.

 

蟾曰

두꺼비가 말했지.

“吾與東家孺子同年.

‘나는 동쪽 이웃집의 어린애와 동갑인데

孺子五歲 乃知讀書

그 어린애가 5살 먹어서 글을 배우게 되었지.

生于木德 肇紀攝提 迭王更帝

그 애는

목덕(木德)으로 태어나서 섭제격(攝提格 인년(寅年))으로 왕조의 기년(紀年)을 시작한 이래

여러 왕대를 거치다가,

 

[주D-014]목덕(木德)으로 …… 이래 : 《십팔사략(十八史略)》 첫머리에, “천황씨(天皇氏)는 목덕으로 왕이 되니 세성(歲星 : 목성)이 섭제(攝提), 즉 인방(寅方)에 나타났다.”라고 하였는데, 《십팔사략》에서는 천황씨를 삼황오제(三皇五帝) 이전 중국 최초의 왕으로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이 구절은 초학(初學) 역사 교과서인 《십팔사략》을 읽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統絶王春 純成一曆

 

주(周) 나라의 왕통(王統)이 끊어짐으로써 순수한 역서(曆書) 한 권이 이루어졌고,

乃閏于秦 歷漢閱唐

 

마침내 진(秦) 나라로 이어졌으며,

한(漢) 나라와 당(唐) 나라를 거친 다음

 

[주D-015]주(周) 나라의 …… 이루어졌고 : 상고(上古)부터 주 나라 때까지의 정통 왕조의 역사를 섭렵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춘추(春秋)》에서는 일 년의 첫 달을 “춘(春) 왕정월(王正月)”이라 표기하여 주 나라의 왕통을 받들고 있음을 나타냈다. 순수한 역서란 《춘추》를 가리키는 듯하다.
[주D-016]마침내 …… 이어졌으며 :
원문은 ‘乃閏于秦’이다. 진 나라와 같이 정통으로 인정받지 못한 왕조는 윤달과 같다고 해서 윤통(閏統)이라 폄하(貶下)한다.

 

暮朝宋明

아침에는 송(宋) 나라, 저녁에는 명(明) 나라를 거쳤지.

窮事更變 可喜可驚

그러는 동안에 갖가지 일을 다 겪으면서 기뻐하기도 하고 놀라기도 하였으며,

弔死送往 支離于今.

죽은 이를 조문하기도 하고 장례를 치르기도 하면서 지금까지 지루하게 이어져 왔지.

然而 耳目聰明 齒髮日長

그런데도 귀와 눈이 밝고 이와 머리털이 갈수록 자라나니,

長年者 乃莫如孺子

나이가 많기로는 그 어린애만 한 자가 없겠지.

而彭祖乃八百歲蚤夭 閱世不多

팽조는 기껏 800살 살고 요절하여 시대를 겪은 것도 많지 않고

 

[주D-017]팽조는 …… 요절하여 : 《장자(莊子)》 제물론(齊物論)에서 “요절한 아이보다 더 오래 산 자가 없으니, 그에 비하면 팽조도 요절한 셈이다.〔莫壽乎殤子 而彭祖爲夭〕”라고 하였다.

 

更事未久 吾是以悲耳.”

일을 겪은 것도 오래지 않으니, 이 때문에 나는 슬퍼한 것이다.’

免乃再拜郤走曰 /郤(극):원망하다.

토끼가 이 말을 듣고는 거듭 절하고 뒤로 물러나 달아나면서

“若乃大父行也.”

‘너는 내 할아버지뻘이다.’ 하였네.

由是觀之 讀書多者 最壽耳.”

이로 미루어 보건대 글을 많이 읽은 사람이 가장 오래 산 사람이 될 걸세.”

“翁能見味之至者乎?”

“옹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것을 보았소?”

曰 “見之. 月之下弦 潮落步土

“보았지. 달이 하현(下弦)이 되어 조수(潮水)가 빠지고 갯벌이 드러나면

耕而爲田 煮其斥鹵

그 땅을 갈아 염전을 만들고 소금흙을 굽는데,

粗爲水晶 纖爲素金

알갱이가 거친 것은 수정염(水晶鹽)이 되고 가는 것은 소금염(素金鹽)이 된다네.

百味齊和 孰爲不鹽?”

온갖 음식 맛을 내는 데에 소금 없이 되겠는가?”

皆曰 “善.”

좌중의 사람들이 모두 말하기를, “참으로 좋은 말입니다.

“然不死藥 翁必不見也.”

그러나 불사약(不死藥)만은 옹도 못 보았을 것입니다.” 하니,

翁笑曰

옹이 빙그레 웃으며,

“此吾朝夕常餌者 惡得而不知?

“그거야 내 아침저녁으로 늘 먹는 것인데 어찌 모르겠는가.

大壑松盤 甘露其零 入地千年 化爲茯靈

깊은 골짜기의

반송(盤松)에 맺힌 감로(甘露)가 땅에 떨어져 천 년이 지나면 복령(茯靈)이 되지.

蔘伯羅産 形端色紅

삼(蔘)은 영남(嶺南)에서 나는 것이 으뜸인데

모양이 단아하고 붉은빛을 띠며,

四體俱備 雙紒如童

사지를 다 갖추고

동자처럼 쌍상투를 틀고 있지.

 

 

[주D-018]반송(盤松)에 …… 되지 : 복령(茯靈)은 곧 버섯의 일종인 복령(茯苓)을 말한다. 송진〔松脂〕이 땅에 스민 지 천 년이 되면 변하여 복령이 되고, 복령이 변하여 호박(琥珀)이 된다고 한다. 《廣東通志 卷52 寶》
[주D-019]삼(蔘)은 …… 으뜸인데 :
원문은 ‘蔘伯羅産’인데, 우리나라 인삼 중에서 영남(嶺南)에서 나는 것을 나삼(羅蔘)이라 하고, 영동(嶺東)에서 나는 것을 산삼(山蔘)이라 하며, 강계(江界)에서 나는 것을 강삼(江蔘)이라 하고, 집에서 재배하는 것을 가삼(家蔘)이라 한다. 《心田考 3 應求漫錄》
[주D-020]동자처럼 …… 있지 :
쌍상투〔雙紒〕는 고대 중국의 예법에 따른 남녀 아동의 머리 모양이다. 《居家雜服攷 卷3 幼服》 조선 시대의 아동은 변발(辮髮)을 하고 있었는데, 연암은 정온(鄭蘊)이나 송시열 등의 선구적 시도를 계승하여 이를 쌍상투로 개혁하고 싶어했다. 《過庭錄》

 

枸杞千歲 見人則吠.

구기자(枸杞子)는 천 년이 되면 사람을 보고 짖는다 하네.

吾嘗餌之 不復飮食者皆百日

내가 이것들을 먹은 다음 백 일가량을 아무것도 먹지 않은 채 지냈더니

喘喘然將死.

숨이 차면서 곧 죽을 것만 같았네.

隣媼來視歎曰

이웃 할머니가 와서 보고는 한숨을 지으며 하는 말이,

“子病饑也.

‘그대는 주림병이 들었소.

昔神農氏嘗百草 始播五穀.

옛날 신농씨(神農氏)가 온갖 풀을 맛본 다음에야 비로소 오곡을 파종하였소.

夫效疾爲藥 療饑爲食.

무릇 병을 낫게 하는 것은 약이 되고 주림병을 고치는 것은 밥이 되니,

非五穀 將不治.”

그대의 병은 오곡이 아니면 낫지 못하오.’ 하고는

遂飯稻梁而餌之 得以不死

밥을 지어 먹여 주는 바람에 죽지 않았지.

不死藥莫如飯.

불사약으로는 밥만 한 것이 없네.

吾朝一盂 夕一盂 今已七十餘年矣.

나는 아침에 밥 한 사발 저녁에 밥 한 사발로 지금껏 이미 70여 년을 살았다네.” 하였다.” 翁嘗支離其事 遷就而爲之
민옹은 말을 할 때면 장황하면서도

이리저리 둘러대지만,

 


[주D-021]이리저리 둘러대지만 : 원문은 ‘遷就而爲之’이다. 가의(賈誼)의 치안책(治安策)에서, 대신(大臣)을 중히 여기는 까닭에 그에게 분명히 죄가 있어도 그 죄상(罪狀)을 직접 가리켜 말하지 않고 “둘러대어 말함으로써 이를 덮어 준다.〔遷就而爲之諱也〕”고 하였다.


莫不曲中

어느 것 하나 곡진히 들어맞지 않는 것이 없었으며

內含譏諷 蓋辯士也.

그 속에는 풍자를 담고 있었으니, 그는 달변가라 할 만하다.

客索然問無以復詰. 乃忿然曰

손이 옹에게 물을 말이 다하여 더 이상 따질 수 없게 되자, 마침내 분이 올라 하는 말이,

“翁亦見畏乎?”

“옹도 역시 두려운 것을 보았습니까?” 하니,

翁黙然良久 忽厲聲曰

옹이 말없이 한참 있다가 소리를 버럭 지르며,

“可畏者 莫吾若也.

“두려워할 것은 나 자신만 한 것이 없다네.

吾右目爲龍 左目爲虎.

내 오른 눈은 용이 되고 왼 눈은 범이 되며,

 

舌下藏斧 彎臂如弓.

혀 밑에는 도끼가 들었고 팔목은 활처럼 휘었으니,

念則赤子 差爲夷戎

깊이 잘 생각하면

갓난아기처럼 순수한 마음을 보존하겠으나

생각이 조금만 어긋나도 되놈이 되고 만다네.

 

[주D-022]내 …… 되며 : 위엄이 있거나 무시무시한 모습을 용정호목(龍睛虎目)이라 한다.
[주D-023]갓난아기처럼 …… 보존하겠으나 :
《맹자》 이루 하(離婁下)에 “대인이란 그의 갓난아기 때의 마음을 잃지 않는 사람이다.〔大人者 不失其赤子之心者也〕”라고 하였다.

 

不戒則將自噉自齧 . /*噉(담):씹다. 齧(설):물다.

이를 경계하지 않으면 장차 제 자신을 잡아먹거나 물어뜯고,

自戕自伐. /*戕(장):죽이다.

쳐 죽이거나 베어 버릴 것이야.

是以聖人克己復禮

이 때문에 성인은 사심(私心)을 극복하여 예(禮)로 돌아간 것이며

閑邪存誠

사악함을 막아 진실된 자신을 보존한 것이니,

未嘗不自畏也.”

나는 나 자신을 두려워하지 않은 적이 없다네.” 하였다.

 

[주D-024]사심(私心)을 …… 것이니 : 원문은 ‘克己復禮 閑邪存誠’이다. 극기복례(克己復禮)는 《논어》 안연(顔淵)에 나오는 공자의 말이고, 한사존성(閑邪存誠)은 《주역》 건괘(乾卦) 풀이에 나오는 공자의 말이다.

 

語數十難

수십 가지 난제(難題)를 물어보아도

皆辨捷如響 竟莫能窮.

모두 메아리처럼 재빨리 대답해 내 끝내 아무도 그를 궁지에 몰 수 없었다. 自贊自譽 嘲倣旁人
자신에 대해서는 추어올리기도 하고 칭찬하기도 한 반면 곁에 있는 사람에게는 조롱도 하고 업신여기기도 하였다.

人皆絶倒 而翁顔色不變.

사람들이 옹의 말을 듣고 배꼽을 잡고 웃어도 옹은 안색 하나 변하지 않았다.

或言 “海西蝗 官督民捕之.”

누가 말하기를, “황해도는 황충(蝗蟲)이 들끓어 관에서 백성을 독려하여 잡느라 야단들입니다.” 하자,

翁問“捕蝗何爲?”

옹이, “황충을 뭐 하려고 잡느냐?” 하고 물었다.

曰 “是虫也 小於眠蚕

“이 벌레는 크기가 첫잠 잔 누에보다도 작으며,

色斑而毛

색깔은 알록달록하고 털이 나 있습니다.

飛則爲螟 緣則爲蟊 / *螟(명);마디충. 蝥(모):집게벌레.

날아다니는 것을 명(螟)이라 하고 볏줄기에 기어오르는 것을 모(蟊)라 하는데,

害我嫁穡 號爲減穀

우리의 벼농사에 피해를 주므로 이를 멸구〔滅穀〕라 부릅니다.

故將捕而瘞之耳.” /瘞(예):묻다.

그래서 잡아다가 파묻을 작정이지요.” 하니,

翁曰 “此小虫 不足憂.

옹이 말하기를,“이런 작은 벌레들은 근심할 거리도 못 된다네.

吾見種樓塡道者 皆蝗耳.

내가 보기에 종루(鐘樓) 앞길을 가득 메우고 있는 것들이 있는데 이것들이 모두 황충이오.

長皆七尺餘 頭黔目熒

길이는 모두 7척 남짓이고, 머리는 까맣고 눈은 반짝거리고

口大運拳

입은 커서 주먹이 들락날락할 정도인데,

咿啞偊族 蹠接尻連 /*咿啞(이아):조잘대다. 偊(우):혼자 걷다. 蹠(척):밟다

웅얼웅얼 소리를 내고 꾸부정한 모습으로 줄줄이 몰려다니며

損嫁殘穀 無如是曹.

곡식이란 곡식은 죄다 해치우는 것이 이것들만 한 것이 없더군.

我欲捕之 恨無大匏.”

그래서 내가 잡으려고 했지만, 그렇게 큰 바가지가 없어 아쉽게도 잡지를 못했네.” 하였다.

左右皆大恐 若眞有是虫然.

그랬더니 주위 사람들이 모두 정말로 이러한 벌레가 있는 줄 알고 크게 무서워하였다.
一日翁來 余望而爲隱曰
하루는 옹이 오고 있기에, 나는 멀찍이 바라보다가 은어(隱語)로 “春帖子啼.”‘춘첩자방제(春帖子狵啼)’라는 글귀를 써서 보였더니,

翁笑曰

옹이 웃으며,

“春帖子榜門之文 乃吾姓也. /*門之文:閔.

“춘첩자(春帖子)란 문(門)에 붙이는 글월〔文〕이니 바로 내 성 민(閔)이요, 老犬 乃辱我也. 방(狵)은 늙은 개를 지칭하니 바로 나를 욕하는 것이구먼.

啼則厭聞

그 개가 울면 듣기가 싫은데,

吾齒豁 音嵲兀也. /* 嵲(얼):산이 높다. 兀(올):우뚝하다.

이 또한 나의 이가 다 빠져 말소리가 분명치 않은 것을 비꼰 것이로군. 雖然 君若畏 莫如去犬. 아무리 그렇다 해도, 그대가 늙은 개를 무서워한다면 개 견(犬) 변을 떼어 버리면 될 것이고,

若又厭啼 且塞其口.

또 우는 소리가 싫으면 그 입 구(口)변을 막아 버리면 그만이지.

夫啼者 造化也. 尨者大物也.

무릇 제(帝)란 조화를 부리고 방(尨)은 큰 물건을 가리키니,

著帝傳尨 化而爲大

제(帝) 자에 방(尨) 자를 붙이면 조화를 일으켜 큰 것이 되니

其惟[帝尨]乎?

바로

용(

)

이라네.

 

[주D-025]용(

)이라네 : ‘龍’ 자를 ‘

’ 자로 쓰기도 한다. 원래는 얼룩덜룩할 ‘망’ 자로 읽어야 한다.

 

君非能辱我也 乃反善贊我也.”

그렇다면 이는 그대가 나를 욕한 것이 아니라, 그만 나를 좋게 칭송한 것이 되어 버렸구먼.” 하였다.

 

明年翁死.
다음 해에 옹이 죽었다.

翁雖恢奇俶蕩 性介直樂善.

옹이 비록 기발하고 거침없이 살았지만 천성이 곧고 착한 일 하기를 좋아한 데다,

明於易 好老子之言

《주역(周易)》에 밝고 노자(老子)의 말을 좋아하였으며,

於書 蓋無所不窺云.

책이란 책은 안 본 것이 없었다 한다.

二子皆登武科 未官.

두 아들이 다 무과에 급제하였으나 아직 벼슬은 받지 못했다.今年秋 余又益病 而閔翁不可見.
금년 가을에 나의 병이 도졌으나, 이제는 더 이상 민옹을 볼 수 없게 되었다.

遂著其與余爲隱俳詼 ․ 言談 ․譏諷하여

이에 나와 함께 주고받은 은어와 우스갯소리, 담론(談論)과 풍자 등을 기록하여

爲閔翁傳.

민옹전을 지었으니,

歲丁丑秋也..

때는 정축년(1757, 영조 33) 가을이다.

余誄閔翁曰,

注]誄:생전의 공덕을 칭송하는 글
나는 민옹을 위하여 뇌문(誄文 추도문)을 지었는데 다음과 같다.

嗚呼閔翁

오호민옹, 아아! 민옹이시여

可怪可奇

가괴가기,

괴상하고 기이하기도 하며

可驚可愕

가경가악, 놀랍고 어처구니없기도 하고

可喜可怒

가희가로, 기뻐함직도 하고 성냄직도 하며

而又可憎

이우가증, 게다가 밉살스럽기도 하구려

壁上烏 

벽상오, 벽에 그린 까마귀

未化鷹

미화응, 매가 되지 못하였듯이

翁蓋有志士

옹개유지사, 옹은 뜻 있는 선비였으나

竟老死莫施

경로사막시, 늙어 죽도록 포부를 펴지 못했구려

我爲作傳

아위작전, 내가 그대 위해 전을 지었으니

嗚呼死未曾

오호사미증, 아아! 죽어도 죽지 않았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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