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자주] 방경각 외전의 초기구전을 정리해 본다. 이 구전은 앞에서 정리한 <방경각외전 자서>와 함께 읽는 것이 효과적이다. 거기에는 각 작품의 창작 동기를 연암 자신이 밝혔기 때문이다. <양반전>은 앞에서 정리하였지만 여기서 다시 한 번 읽어보기로한다.먼저 연암의 선비론인 <원사>를 <회우록서> 다음에 싣는다. <마장전> 아래 꼭지에는 우정론의 일단을 볼 수 있는 <회우록서>를 싣는다.

 

 

마장전(馬駔傳)

 

 

馬駔舍儈 擊掌擬指

말 거간꾼이나 집주름이

손뼉을 치고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이는 짓이나,

 

管仲蘇秦 鷄狗馬牛之穴 信矣.

관중(管仲)과 소진(蘇秦)이

닭 · 개 · 말 · 소의 피를 바르고 맹세했던 일

은 신뢰를 보이기 위한 것이다.

[주D-001]손뼉을 …… 짓이나 : 맹세할 때 하는 동작들이다. 격장위서(擊掌爲誓)니, 지일서심(指日誓心)이니 하는 성구(成句)들이 있다.
[주D-002]닭 …… 일 :
고대 중국에서 동맹을 맺을 때 천자는 입가에 말이나 소의 피를 바르고, 제후는 개나 돼지의 피를 바르고, 대부 이하는 닭의 피를 바르고 맹세했다.

微聞別離 抛彄裂帨 *彄(구)활고자. *帨(세)수건.

어렴풋이 헤어지잔 말만 들어도 가락지를 벗어던지고 수건을 찢어 버리고

回燈向壁 垂頭呑聲 信妾矣.

등잔불을 돌아앉아 벽을 향하여 고개를 떨구고 울먹거리는 것은 믿을 만한 첩임을 보이기 위한 것이요,

吐肝瀝膽 握手證心 信友也 .*瀝(력)거르다. *餂(첨)낙다, 꾀어내다. *

가슴속의 생각을 다 내보이면서 손을 잡고 마음을 증명해 보이는 것은 믿을 만한 친구임을 보이기 위한 것이다.

然界準(音巀)隔扇

그러나

콧잔등〔準〕

- 음은 ‘절(巀)’이다. - 까지 부채로 가리고

[주D-003]콧잔등〔準〕 : ‘準’ 자를 콧잔등이란 뜻으로 쓸 때는 ‘절’이라 읽는다.

左右瞬目 駔儈之術也.

좌우로 눈짓을 하는 것은 거간꾼들의 술책이며,

動蕩危辭 餂情投忌

위협적인 말로 상대의 마음을 뒤흔들고

상대가 꺼리는 곳을 건드려 속을 떠보며

 

[주D-004]상대가 …… 떠보며 : 원문은 ‘餂情投忌’이다. 《맹자》 진심 하(盡心下)에 “선비가 말을 해서는 안 되는데 말을 하면, 이는 말로써 속을 떠보는 것이다.〔士未可以言而言 是以言餂之〕”라고 비판하였다. 투기(投忌)는 ‘쥐 잡으려 해도 그릇 깨뜨릴까 봐 꺼려진다.〔投鼠忌器〕’는 말의 준말이다.

脅 强 制 弱 散同合異

강한 상대에겐 협박을 하고 약한 상대는 짓눌러서 동맹한 나라들을 흩어 버리거나 분열된 나라들을 통합하게 하는 것은

覇者說士 捭闔之權也 *捭(패)치다, 깨뜨리다. *闔(합)문을 닫다.

패자(覇者)와 유세가들이 이간하고 농락하는 권모술수이다.

昔者 有病心 而使妻煎藥

옛날에 가슴앓이 하는 이가 있어, 아내를 시켜 약을 달이게 하였는데

多寡不適. 怒而使妾 多寡恒適

그 양이 많았다 적었다 들쑥날쑥하였으므로 노하여 첩을 시켰더니, 그 양이 항상 적당하였다. 甚宜其妾 穴牕窺之
그 첩이 너무나 마음에 들어 창구멍을 뚫고 엿보았더니,

多則損地 寡則添水

많으면 땅에 버리고 작으면 물을 더 붓는 것이었다.

此其所以取適之道也.

이것이 바로 그 첩이 양을 적당하게 맞추는 방법이었다.

故附耳底聲 非至言也.

그러므로 귀에 대고 소근거리는 것은 좋은 말이 아니요,訟情淺深 非盛友也. 남에게 누설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는 것은 깊은 사귐이 아니요, 정이 얼마나 깊은지를 드러내는 것은 훌륭한 벗이 아니다.

宋旭 趙闒拖 張德弘 相與論交於廣通橋上.


송욱(宋旭),

조탑타(趙闒拖), 장덕홍(張德弘)이

광통교(廣通橋)

위에서 벗을 사귀는 것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주D-005]송욱(宋旭) : 《연암집》 권7 염재기(念齋記)에 의하면, 송욱은 당시 한양에 실존했던 기인(奇人)이었다.
[주D-006]광통교(廣通橋) :
한양 중부 광통방(廣通坊)에 있던 다리. 광교(廣橋)라고도 한다. 청계천에 놓인 다리 중 가장 큰 다리였다.

闒拖曰“吾朝日 .”

탑타가 말하기를,

鼓瓢行丐 入于布廛.

“내가 아침에 일어나 바가지를 두드리며 밥을 빌다가 포목전에 들렀더니,

有登樓而貿布者

포목을 사려고 가게로 올라온 자가 있었습니다.

擇布而舐之 暎空而視之.

그는 포목을 골라 혀로 핥아 보기도 하고 공중에 비쳐 보기도 하면서

價則在口 讓其先呼.

값은 부르지 않고 주인에게 먼저 부르라고 하더군요.

旣而兩相忘布 布人忽然望遠山 謠其出雲.

그러더니 나중에는 둘 다 포목은 잊어버린 채 포목 장수는 갑자기 먼 산을 바라보며

구름이 나왔다고 흥얼대고,

[주D-007]구름이 나왔다고 흥얼대고 : 무심한 체하는 모양을 표현한 것이다. 도잠(陶潛)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 “구름은 무심하게 산굴에서 나오고〔雲無心以出岫〕”라는 구절이 있다.

 

其人負手逍遙 壁上觀畵

사러 온 사람은 뒷짐을 지고 서성대며

벽에 걸린 그림을 보고 있더군요.

” 하니,

[주D-008]벽에 …… 있더군요 : 원문은 ‘壁上觀畵’인데, 《사기(史記)》 항우본기(項羽本紀)에서 항우의 군대가 거록(鉅鹿)에서 진(秦) 나라 군대를 공격할 때 다른 제후의 장수들이 성벽 위에서 관망만 하고 있었던 고사에서 나온 ‘벽상관전(壁上觀戰)’이란 성어의 패러디이다. 역시 무심한 체하는 모양을 표현한 것이다.

宋旭曰“汝得交態 而於道則未也.”

송욱이 말하기를,“너는 사귀는 태도만 보았을 뿐 사귀는 도(道)는 보지 못했다.” 하였다.

德弘曰“傀儡垂帷 爲引繩也.”

덕홍이 말하기를,“꼭두각시놀음에 장막을 드리우는 것은 노끈을 당기기 위한 것이지요.” 하니,

宋旭曰“汝得交面 而於道則未也.

송욱이 말하기를,“너는 사귀는 겉모습만 보았을 뿐 사귀는 도는 보지 못했다.

夫君子之交三 所以處之者五

무릇 군자가 사람을 사귀는 방법에는 세 가지가 있으며 이에 대한 구체적인 기법으로는 다섯 가지가 있는데

而吾未能一焉

나는 그 가운데 한 가지도 제대로 하는 것이 없다.

故行年三十 無一友焉.

그러기에 나이 삼십이 되었어도 벗 하나 없다.

雖然其道則 吾昔者竊聞之矣.

그러나 그 도만은 내 옛적에 들었노라.

臂不外信 把酒盃也.”

팔이 밖으로 펴지지 않는 것은 술잔을 잡았기 때문이지.

” 하니,

[주D-009]팔이 …… 때문이지 : 우리나라 속담이다. 이덕무(李德懋)의 《열상방언(洌上方言)》에는 “술잔 잡은 팔은 밖으로 굽지 않는다.〔把盃腕 不外卷〕”라고 소개되었다. 《靑莊館全書 卷62》

德弘曰“然. 詩固有之

덕홍이 말하기를,“그렇습니다. 《시경(詩經)》에도 확실히 그런 것이 있지요.


鳴鶴在陰 저 숲 속에 학이 우니

其子和之 그 새끼가 화답하네.

我有好爵 내 벼슬이 아름다우니

吾與爾縻之.* 너와 함께 하여 보세. *注]출전:易經 中孚. 縻(미)고삐.

[주D-010]우는 …… 같이한다 : 《주역(周易)》 중부괘(中孚卦) 구이(九二)의 효사(爻辭)이다. 따라서 인용상 실수를 범했거나, 아니면 이를 《시경》의 일시(逸詩)로 간주한 듯하다.

其斯之謂歟?”

하였는데, 아마도 이를 두고 하는 말이겠지요” 하였다.

宋旭曰“爾可與言友矣.

송욱이 말하기를,“너만 하면 벗에 대한 도를 이야기할 수 있겠다.

吾向者 告其一 爾知其二者矣.

내가 아까 그 한 가지만을 알려 주었는데, 너는 두 가지를 아는구나.

天下之所趨者 勢也.

천하 사람이 붙따르는 것은 형세요,

所共謀者 名與利也.

모두가 차지하려고 도모하는 것은 명예와 이익이다.

盃不與口謀 而臂自屈者 應至之勢也.

술잔이 입과 더불어 약속한 것도 아니건만, 팔이 저절로 굽혀지는 것은 응당 그럴 수밖에 없는 형세이며,

相和以鳴 非名乎?

학과 그 새끼가 울음으로써 서로 화답하는 것은 바로 명예를 구하는 것이며,

夫好爵利也.

벼슬을 좋아하는 것은 이익을 구하는 것이다.

然而趨之者多 則勢分

그러나 붙따르는 자가 많아지면 형세가 갈라지고,

謨之者衆 則名利無功.

도모하는 자가 여럿이면 명예와 이익이 제 차지가 없다.

故君子諱言此三者 久矣.

그러므로 군자는 오랫동안 이 세 가지를 말하기를 꺼려 왔다.

吾故隱而告汝 汝則知之.

내가 그렇기 때문에 은유적인 말로 네게 알려 주었는데 네가 이 뜻을 알아차렸구나.

汝與人交 無譽其善

너는 남과 더불어 교제할 때, 첫째, 상대방의 기정사실이 된 장점을 칭찬하지 말라.

譽其成善 倦然不靈矣.

그러면 상대방이 싫증을 느껴 효과가 없을 것이다.

毋醒其所未及

둘째, 상대방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을 깨우쳐 주지 말라.

將行而及之 憮然失矣.

장차 행하여 거기에 미치게 되면 낙담하여 실망하게 될 것이다.

稠人廣衆 無稱人第一

셋째, 사람 많이 모인 자리에서는 남을 제일이라고 일컫지 말라.

第一則無上 一座索然沮矣.

제일이란 그 위가 없단 말이니 좌중이 모두 썰렁해지면서 기가 꺾일 것이다.

故處交有術

그러므로 사람을 사귀는 데에도 기법이 있다.

將欲譽之 莫如顯責

첫째, 상대방을 칭찬하려거든 겉으로는 책망하는 것이 좋고,

將欲示歡 怒而明之

둘째, 상대방에게 사랑함을 보여 주려거든 짐짓 성난 표정을 드러내 보여야 한다.

將欲親之 注意若植 回身若羞

셋째, 상대방과 친해지려거든 뚫어질 듯 쳐다보다가 부끄러운 듯 돌아서야 하고,

使人欲吾信也 設疑而待之.

넷째, 상대방으로 하여금 나를 꼭 믿게끔 하려거든 의심하게 만들어 놓고 기다려야 한다.

夫烈士多悲 美人多淚

또한 열사(烈士)는 슬픔이 많고 미인은 눈물이 많다.

故英雄善泣 所以動人.

때문에 영웅이 잘 우는 것은 남을 감동시키자는 것이다.

夫此五術者 君子之微權

이 다섯가지 기법은 군자가 은밀하게 사용하는 방법이기는 하지만

而處世之達道也.”

처세(處世)에 있어 어디에나 통용될 수 있는 방법이다.” 하였다.

闒拖問於德弘曰

탑타가 덕홍에게 묻기를,

“夫宋子之言 陳義獒牙

“송 선생님의 말씀은 그 뜻이 너무나 어려워 마치 수수께끼와 같다.

庾辭也 吾不知也.”

나는 도무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하니,

德弘曰“汝奚足以知之?

덕홍이 말하기를,“네까짓 게 어찌 알아?

夫聲其善而責之 譽莫揚焉

잘한 일을 가지고 성토하여 책망하면 이보다 더한 칭찬은 없을 것이다.

夫怒生於愛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 보니 노여움이 생기는 것이요,

情出於譴 家人不厭時嗃嗃也. *嗃(학)엄하다.

꾸지람을 하는 과정에서 정이 붙는 것이므로

가족에 대해서는 이따금 호되게 다루어도 싫어하지 않는 법이다.

[주D-011]가족에 …… 법이다 : 《주역》 가인괘(家人卦) 구삼(九三)의 효사에 “가족을 호되게 다루었으나 엄격함을 뉘우치면 길하니라.〔家人嗃嗃 悔厲 吉〕”라고 하였다.

夫已親而逾疎 親孰踰之

친한 사이일수록 거리를 둔다면 이보다 더 친한 관계가 어디에 있겠는가.

已信而尙疑 信孰密焉?

이미 믿는 사이인데도 오히려 의심을 품게 만든다면 이보다 더 긴밀한 관계가 어디에 있겠는가.

酒闌夜深 衆人皆睡

술이 거나해지고 밤이 깊어 뭇사람은 다 졸고 있을 때

黙然相視 倚其餘醉

말없이 서로 바라보다가 그 남은 취기(醉氣)를 타서

動其悲思 未有不悽然而感者矣.

슬픈 심사를 자극하면 누구든 뭉클하여 공감하지 않는 자 없다.

故交莫貴乎相知 樂莫極乎相感.

그러므로 사람을 사귀는 데에는 상대를 이해해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즐겁기로는 서로 공감하는 것보다 더한 것이 없다.

狷者解其慍 *狷(견):성급하다.

따라서 편협한 사람의 불만을 풀어 주고

恃者平其怨 莫疾乎泣.

시기심 많은 사람의 원망을 진정시켜 주는 데에는 우는 것보다 더 효과적인 것이 없다.

吾與人交 未嘗不欲泣 泣而淚不下

나는 사람을 사귈 때 울고 싶지 않은 적이 없었지만 울어도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故行于國中 三十有一年矣 未有友焉.”

이 때문에 31년 동안 나라 안을 돌아다녀도 친구 하나 사귀지 못한 것이다.” 하였다.闒拖曰 “然則忠而處交 義而得友 何如?”
탑타가 말하기를,
“그렇다면 충(忠)으로써 사귐에 임하고 의(義)로써 벗을 사귀면 어떻겠는가?” 하니,

德弘唾面而罵之曰

덕홍이 그 얼굴에 침을 뱉으며 꾸짖기를,

“鄙鄙哉. 爾之言之也. 此亦言乎哉?

“네 말하는 것을 보니 참으로 비루하구나. 그것도 말이라고 하는 거냐?

汝聽之 夫貧者多所望 故慕義無窮

너는 듣거라. 가난한 놈이란 바라는 것이 너무도 많기 때문에 한없이 의(義)를 사모한다.

何則? 視天莫莫 猶思其雨粟

왜냐하면 저 아득한 하늘만 봐도 곡식을 내려 주지 않나 기대하고,

聞人咳聲 延頸三尺.

남의 기침 소리만 나도 무엇을 주지 않나 고개를 석 자나 빼고 바라기 때문이다.


夫積財者 不恥其吝名

반면에 재물을 모아 놓은 자는 자신이 인색하단 말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所以絶人之望我也.

그것은 남이 자기에게 바라는 것을 끊자는 것이다.

夫賤者 無所惜 故忠不辭難

그리고 천한 자는 아낄 것이 없기 때문에 충심(忠心)을 다하여 어려운 것도 회피하지 않는다.

何則? 水淺不蹇 衣弊袴也.

왜냐하면 물을 건널 때 바짓가랑이를 걷어올리지 않는 것은 떨어진 고의를 입었기 때문이다.

乘車者 靴加坌套 猶恐沾泥

반면에 수레를 타고 다니는 자가 갖신에 덧신을 껴신는 것은 그래도 진흙이 묻을까 염려해서이다.

履底尙愛 而況於身乎?

신 바닥도 아끼거든 하물며 제 몸일까 보냐?

故忠義者 貧賤者之常事

그러므로 충(忠)이니 의(義)니 하는 것은 빈천한 자에게는 일상적인 일이지만

而非所論於富貴耳.”

부귀한 자에게는 관심 밖의 일이다.” 하였다.

闒拖愀然變乎色曰

탑타가 발끈하여 정색하면서 말하기를,

“吾寧無友於世 不能爲君子之交.”

“내 차라리 세상에 벗이 하나도 없을지언정 군자들과는 사귀지 못하겠다.” 하고서

於是 相與毁冠 裂衣垢面

이에 서로 의관을 찢어 버리고 때묻은 얼굴과

蓬髮帶索 而歌於市.

덥수룩한 머리에 새끼줄을 허리에 동여매고 저자에서 노래를 부르며 돌아다녔다.

滑稽先生友情論曰,
골계선생(滑稽先生)은 우정론(友情論)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주D-012]골계선생(滑稽先生)은 …… 말했다 : 골계선생은 작가의 의견을 대변하기 위해 설정한 가상 인물이다. 따라서 우정론 역시 실제로는 작가가 지은 글이다. 골계란 풍자나 궤변(詭辯)을 잘한다는 뜻이니, 《사기》에 골계열전(滑稽列傳)이 있다.

 

續木 吾知其膠魚肺也.

나무를 붙이자면 생선 부레를 녹여서 붙이고,

接鐵 吾知其鎔鵬砂也.

쇠를 붙이자면 붕사(鵬砂)를 녹여서 붙이고,

附鹿馬之皮 莫緻乎糊粳飯

사슴이나 말의 가죽을 붙이자면

멥쌀밥〔粳飯〕

을 이겨서 붙이는 것보다 단단한 것이 없음을 내 안다.

[주D-013]멥쌀밥〔粳飯〕 : 찹쌀밥〔糯飯〕의 오류인 듯하다. 멥쌀은 차지지 않아 풀로 쓰기 어렵다.

至於交也 介然有閒

그러나 사람 사이의 사귐에 있어서는 떨어진 틈이란 것이 있다.

燕越之遠也 非閒也

연(燕) 나라와 월(越) 나라처럼 멀리 떨어져 있어야 틈이 있는 것이 아니요,

山川閒之 非閒也.

산천(山川)이 가로막고 있어야 틈이 있는 것이 아니다.

促膝聯席 非接也

또 무릎을 맞대고 함께 앉아 있다 하여 반드시 밀접한 사이가 아니요,

拍肩摻袂 非合也. / *摻(삼)잡다.

어깨를 치고 소매를 붙잡는 관계라 하여 반드시 마음이 일치하는 것도 아니다.

有閒於其間

그런 사이에도 틈은 있게 마련이다.

衛鞅*張皇 孝公時睡

예를 들어

상앙(商鞅)이 장황한 말을 늘어놓자 효공(孝公)이 꾸벅꾸벅 졸았고,

 

注] 商鞅(상앙):秦孝公을 도와 부국강병책을 설함.

[주D-014]상앙(商鞅)이 …… 졸았고 : 상앙이 진(秦) 나라 총신(寵臣)인 경감(景監)을 통해 진 효공을 만났는데, 첫 번째 만남에서 제도(帝道)에 대하여 유세하였더니 진 효공이 꾸벅꾸벅 졸았다. 이에 경감이 나와서 상앙을 꾸짖자 다음 만남에서는 왕도(王道)에 대해 말하였으나 이 또한 듣지 않았고, 다음에는 패도(覇道)에 대하여 말하자 차츰 관심을 보였다. 마지막으로 강국(强國)에 대하여 말하자 효공이 매우 좋아하였다. 《史記 卷68 商君列傳》

應侯*不怒 蔡澤*噤喑 /*噤(금)입다물다. *喑(음)목이쉬다 벙어리.

범수(范睢)가 성내지 않았다면 채택(蔡澤)이 아무 말도 못했을 것이다.

注] *范雎(범수)응후에 봉해짐. 秦에 들어간 채택이 재상 범저를 대신코자 했으나 범저는 노여워하지 않음.

[주D-015]범수(范睢)가 …… 것이다 : 채택(蔡澤)이 진 나라에 들어가 진 소왕(秦昭王)을 볼 목적으로 먼저 사람을 시켜 당시 승상인 범수에게 자신이 진왕을 만나면 승상의 자리를 빼앗게 될 것이라고 하여 범수를 노하게 만듦으로써 범수와 만나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이를 통해 진왕을 만났다. 《史記 卷79 范睢蔡澤列傳》

故出而讓之 必有其人也

그러므로 밖으로 나와서 상앙을 꾸짖어 주는 사람이 반드시 있었으며,

宜言怒之 必有其人也.

채택의 말을 전하여 범수가 화를 내도록 만든 사람이 반드시 있었던 것이다.

趙公子爲之佋介

 

공자(公子) 조승(趙勝 평원군(平原君))이 소개의 역할을 하였다.

[주D-016]공자(公子) …… 하였다 : 진(秦) 나라 군대가 조(趙) 나라 수도를 포위하자 노중련(魯仲連)이 위(魏) 나라 장수 신원연(新垣衍)을 설득하여 조 나라를 돕도록 하겠노라고 자청했으므로, 공자 조승, 즉 평원군(平原君)이 노중련을 신원연에게 소개하였다. 《史記 卷83 魯仲連列傳》 일개 선비인 노중련이 위 나라 장수 신원연을 상대로 유세할 수 있었던 것은 평원군의 소개 덕분이었다는 뜻이지만, 탈문(脫文)이 있는지, 아니면 지나치게 생략한 탓인지 문맥이 잘 통하지 않는다.

夫成安侯常山王 其交無間

반면에 성안후(成安侯 진여(陳餘))와 상산왕(常山王 장이(張耳))은 사귐에 있어 조금의 틈도 없이 너무나 절친하게 지냈으므로,

故一有間焉 莫能爲之間焉

그들 사이에 한번 틈이 생기자 누구도 그들을 위해 사이에 끼어들 수가 없었다.

[주D-017]성안후(成安侯)와 …… 없었다 : 《사기》 권89 장이진여열전(張耳陳餘列傳)에 자세히 나온다.

 

故可愛非閒 可畏非間 그러기 때문에, 중히 여길 것은 틈이 아니고 무엇이며, 두려워할 것도 틈이 아니고 무엇이랴.

詔由閒合 讒由閒離

아첨도 그 틈을 파고들어가 영합하는 것이요, 참소도 그 틈을 파고들어가 이간질하는 것이다.

故善交人者 善事其間

그러므로 사람을 잘 사귀는 이는 먼저 그 틈을 잘 이용하고,

不善交人者 無所事間.

사람을 잘 사귈 줄 모르는 이는 틈을 이용할 줄 모른다.

夫直則逕矣. 不委曲而就之

성격이 강직한 사람은 외골수여서 자신을 굽히고 남에게 나아가지도 않고

不宛轉而爲之.

우회적으로 말을 하지도 않으며,

一言而不合 非人離之 已自阻也.

한번 말을 꺼냈다가 의견이 합치하지 않으면 남이 이간질하지 않아도 제풀에 막히고 만다.

故鄙言有之曰 “伐樹伐樹 十斫無蹶.”

그러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찍고 또 찍어라.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어디 있으리.”라고 했으며,

與其媚於奧 寧媚於竈. 其此之謂歟?

 

“아랫목에 잘 보이기보다는 아궁이에 잘 보여라.”

라고 했는데, 이를 두고 말한 것이다.

[주D-018]아랫목에 …… 보여라 : 《논어》 팔일(八佾)에 나오는 말이다.

故導諛有術
따라서 아첨을 전하는 데에도 방법이 있다.

飭躬修容 發言愷悌

몸을 정제(整齊)하고 얼굴을 다듬고 말을 얌전스레 하고

澹泊名利 無意交遊

명예와 이익에 담담하며 상대와 사귀려는 마음이 없는 척함으로써

以自獻媚 此上諂也.

저절로 아첨을 하는 것이 상첨(上諂)이다.

其次 讜言款款

다음으로 바른 말을 간곡하게 하여

以顯其情 善事其間

자신의 속을 드러내 보인 다음 그 틈을 잘 이용하여

以通其意 此中諂也.

자신의 의도를 관철하는 것이 중첨(中諂)이다.

穿馬蹄 弊薦席

말굽이 닳도록 조석(朝夕)으로 문안(問安)하며 돗자리가 떨어지도록 뭉개 앉아,

仰脣吻 俟顔色

상대방의 입술을 쳐다보며 얼굴빛을 살펴서,

所言則善之 所行則美之

그 사람이 하는 말마다 다 좋다 하고 그 사람이 행하는 것마다 다 칭송한다면,

初聞則喜 久則反厭

처음 들을 때에야 좋아하겠지만 오래 들으면 도리어 싫증이 난다.

厭則鄙之 乃疑其玩己也. 此下諂也.

싫증이 나면 비루하게 여기게 되어, 마침내는 자기를 가지고 노는 게 아닌가 의심하게 된다. 이는 하첨(下諂)이다.

夫管仲九合諸侯

관중(管仲)이 제후(諸侯)를 여러 번 규합하였고,

蘇秦從約六國

소진(蘇秦)이 육국(六國)을 합종(合縱)시켰으니

可謂天下之大交矣.

천하의 큰 사귐이라 이를 만하다.

然而宋旭闒拖乞食於道

그러나 송욱과 탑타는 길에서 걸식을 하고

德弘狂歌於市

덕홍은 저자에서 미친 듯이 큰 소리로 노래 부르고 다니면서도

猶不爲馬駔之術

오히려 말 거간꾼의 술수를 부리지 않았거늘,

而況君子而讀書者乎?

하물며 군자로서 글 읽는 사람이야 더 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한문학 > 연암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박지원, 민옹전(閔翁傳) -초기 九傳  (0) 2008.09.15
박지원, 예덕선생전/ 초기 九傳  (0) 2008.09.15
4.허생후지(許生後識) Ⅱ  (0) 2008.09.07
허생후지1  (0) 2008.09.07
옥갑야화  (0) 2008.09.07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