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C-001]허생후지(許生後識) : 여러 본에 모두 이 소제(小題)가 없었으나 여기에서는 ‘주설루본’을 좇아서 추록하였다.
[주C-002]Ⅰ : 또 한 편이 발견되었으므로 구별하기 위해서 표시하였다.
[은자주] <진덕재야화>을 말함. 당므 꼬지에 싣는다.
혹자는 이르기를,
“그이는 황명(皇明)의 유민(遺民)이야.”
한다. 숭정(崇禎) 갑진년(甲辰年) 뒤로 명의 사람들이 많이들 동으로 나와 살았으니 허생도 혹시 그런 분이라면 그 성은 반드시 허씨가 아니리라 생각된다. 세속에서 전하는 말이 있으니 다음과 같았다.
[주D-001]숭정(崇禎) 갑진년 : 1664년. 실은 청 나라 강희 4년이었으나 조선에서는 오히려 명의 연호인 숭정을 썼다.
“조 판서(趙判書) 계원(啓遠)이 일찍이 경상 감사(慶尙監司)가 되어 순행차로 청송(靑松)에 이르렀을 때, 길 왼편에 웬 중 둘이 서로 마주 베고 누웠다. 앞선 마졸(馬卒)이 비켜달라 고함을 쳤으나 그들은 피하지를 않고, 채찍으로 갈겨도 일어나지 않기에 여럿이 붙들어 끌어도 움직일 수 없었다. 조(趙)가 이르러 가마를 멈추고는,
‘어디에 살고 있는 중들이냐.’
하고 물었더니,
[주D-002]계원(啓遠) : 조선 효종 때 관리. 자는 자장(子長).
[주D-003]조(趙) : ‘박영철본’에는 조공(趙公)으로 되었으나 김택영(金澤榮)이 추가한 것이므로, 여기에서는 ‘수택본’과 ‘주설루본’을 좇았다. 이 후지(後識) 중 다음에 나오는 것도 이에 따랐다.
두 중은 일어나 앉아 한결 더 뻣뻣한 태도로 눈을 흘기고 한참 동안 있다가 하는 말이,
‘너는 헛된 소리를 치며 출세를 하여 감사의 자리를 얻은 자가 아니냐.’
한다. 조가 중들을 보니 한 명은 붉은 상판이 둥글고, 또 한 명은 검은 상판이 길었으며, 말하는 태가 자못 범상치 않았다. 가마에서 내려 그들과 이야기를 하려고 하니, 중은,
‘따르는 자들을 물리치고 나를 따라 오려무나.’
한다. 조는 몇 리를 따라 가노라니 숨은 가빠지고 땀은 자꾸만 흘러 좀 쉬어서 가기를 청했더니 중은 화를 내어,
‘네가 평소에 여러 사람들과 있을 때는 언제나 큰소리를 하면서 몸에는 갑옷을 입고 창을 잡아 선봉(先鋒)을 맡아서 대명(大明)을 위하여 복수와 설치를 하겠다고 떠들더니, 이제 보아 몇 리의 걸음도 못 걸어서 한 자국에 열 번 헐떡이고, 다섯 자국에 세 번을 쉬려고 하니 이러고서 어찌 요(遼)ㆍ계(薊)의 벌판을 맘대로 달릴 수 있겠느냐.’
하고 꾸짖었다. 그리고 어떤 바위 밑까지 닿으니 나무에 기대어서 집을 만들고, 땔나무를 쌓고는 그 위에 가 눕는 것이었다. 조는 목이 몹시 말라 물을 청하였다. 중은,
‘에퀴이, 귀인이니 또 배도 고프겠지.’
하고는, 황정(黃精)으로 만든 떡을 먹이려고 솔잎 가루를 개천 물에 타서 주었다.
[주D-004]황정(黃精) : 한약재의 일종. 도사(道士)들이 장생(長生)을 위하여 복용했다 한다.
조는 이마를 찡그리며 마시지 못한다. 중은 또,
‘요동 벌은 물이 귀하므로 목이 마르면 말 오줌을 마시는 것이 일쑤렷다.’
하며, 크게 호통치고는, 두 중은 마주 부둥켜 안고 엉엉 울면서,
‘손 노야(孫老爺), 손 노야.’
하고 부르더니, 조에게,
‘오삼계(吳三桂)가 운남(雲南)에서 군사를 일으키어 강소(江蘇)와 절강(浙江) 지방이 소란한 것을 네가 아느냐.’
하고 묻는다. 조는,
‘들은 적이 없소이다.’
하였더니, 두 중은 탄식을 하면서,
‘네가 방백(方伯)의 몸으로서 천하에 이런 큰 일이 있건마는 듣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고는 함부로 큰소리만 쳐서 벼슬자리를 얻었을 뿐이로고.’
한다. 조는,
‘스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하였더니, 중은,
‘물을 필요가 없어. 세상에는 역시 우리를 아는 이가 있을거야. 너는 여기에 앉아서 조금만 기다리렷다. 내가 우리 선생님하고 꼭 같이 와서 너에게 이야기를 하련다.’
하고는, 일어나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간다. 조금 뒤에 해는 지고 오래 지나도 중은 돌아오지 않는다. 조는 밤 늦도록 중이 돌아오기만 기다리고 있었으나 밤은 깊어 푸나무에는 우수수 바람 소리가 나면서 범 싸우는 소리가 들려온다. 조는 기겁을 하고 거의 까무러쳤다. 조금 뒤에 여럿이 횃불을 켜들고 감사를 찾아왔다. 그리하여 조는 거기서 낭패를 당하고 골짜기 속을 빠져 나왔다. 이 일이 있은 지 오래 되어도 조는 언제고 마음이 불안하여 가슴속에는 한을 품게 되었다. 뒷날, 조는 이 일을 우암 송 선생(尤菴宋先生)에게 물었더니, 선생은,
‘이는 아마도 명(明)의 말년 총병관(總兵官) 같아 보이네.’
한다. 조는 또,
‘그는 언제나 저를 깔보고, 네니 또는 너니 하고 부르는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하고 물었더니, 선생은,
‘그들이 스스로 우리나라 중이 아님을 밝히는 것이고, 땔나무를 쌓아둔 것은 와신상담(臥薪嘗膽)을 의미함일세.’
한다. 조는 또,
‘울 때면 반드시 손 노야를 찾으니 이것은 무슨 뜻이겠습니까.’
했더니, 선생은,
‘그는 아마 태학생(太學生) 손승종(孫承宗)을 가리킨 듯싶네. 승종이 일찍이 산해관(山海關)에서 군사를 거느리고 있던 만큼, 두 중은 아마 손(孫)의 부하인 듯하네.’
하였다.”
[주D-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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