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전(虞裳傳)

-초기구전

 

이언진(李彦瑱 : 1740 ~ 1766)의 자(字)이다. 호는 운아(雲我), 송목관(松穆館) 등이다.

 

日本關白新立.

일본 관백(關白)이 새로 들어서자,

[주D-001]일본 …… 들어서자 : 관백은 천황을 대신하여 섭정(攝政)한다는 뜻으로, 막부(幕府)의 최고 실력자인 쇼군〔將軍〕을 가리킨다. 제 10 대 쇼군인 도쿠가와 이에하루〔德川家治〕가 1761년(영조 37) 정식으로 관백에 즉위하였다.

於是 廣儲書 繕宮館 理舟檝

널리 재정을 비축하고 이궁(離宮)과 별관을 수리하고 선박을 정비하고서,

括屬國諸島 奇材劒客

속국

의 각 섬들에서 남다른 재주를 갖춘 검객과

[주D-002]속국 : 당시 일본은 기내(畿內) 5국(國), 동해도(東海道) 15국, 동산도(東山道) 8국, 북륙도(北陸道) 7국, 산음도(山陰道) 8국, 산양도(山陽道) 8국, 남해도(南海道) 6국, 서해도(西海道) 9국 등의 소국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蜻蛉國志 卷2 輿地》

詭技淫巧 書畵文學之士

기이한 기예를 갖춘 사람과 서화나 문학에 재능이 있는 인사를 샅샅이 긁어내어,

聚之都邑 練肄玩具. 數年然後

도읍으로 불러 모아놓고 수년 동안 훈련을 시킨 다음에,

乃敢請師於我 若待命策之爲者.

마치 시험 문제 내기를 기다리기라도 하듯이 우리나라에 사신을 요청해 왔다.

朝廷極選文臣三品以下 備三价以送之.

이에 조정에서는 3품 이하의 문관을 엄선하여

삼사(三使)를 갖추어 보냈다.

 

[주D-003]삼사(三使)를 갖추어 보냈다 : 영조 39년(1763) 정사(正使) 조엄(趙曮), 부사(副使) 이인배(李仁培), 종사관(從事官) 김상익(金相翊)을 통신사(通信使)의 삼사로 임명하여 파견하였다.

其幕佐賓客 皆宏辭博識

사신을 보좌하는 이들도 모두 문장이 뛰어나고 식견이 많은 자들이었으며,

自天文地理․算數卜筮․醫相武力之士

천문, 지리, 산수(算數), 복서(卜筮), 의술, 관상, 무예에 뛰어난 자들로부터,

以至吹竹彈絲․諧浪戱笑․歌呼飮酒․博奕騎射

피리나 거문고 등의 연주, 해학이나 만담, 음주 가무, 장기, 바둑, 말타기, 활쏘기 등에 이르기까지

以一藝名國者 悉從行

한 가지 재주로써 나라 안에서 이름난 자들을 모두 딸려 보냈다.

而最重詞章書畵

그러나 그들은 시문(詩文)과 서화(書畵)를 가장 중하게 여겼으니,

得朝鮮一字 不齎糧而適千里.

조선 사람이 쓴 글을 한 자라도 얻는다면 양식을 지니지 않아도 천 리를 갈 수 있었다.

其所居館 皆翠銅甍

사신들이 거처하는 건물은 모두 비췻빛 구리 기와를 이었고

除嵌文石 而楹檻朱漆

섬돌은 무늬를 아로새긴 돌이었으며 기둥과 난간에는 붉은 옻칠을 하고,

帷帳飾以火齊․靺鞨․瑟瑟

휘장은

화제주(火齊珠),

 

말갈아(靺鞨芽),

 

슬슬(瑟瑟)

등으로 치장하고,

 

[주D-004]섬돌은 …… 돌이었으며 : 원문은 ‘除嵌文石’인데, 무늬 있는 돌로 된 궁궐의 섬돌을 ‘문석계(文石階)’ 또는 ‘문석지계(文石之階)’라고 한다.
[주D-005]화제주(火齊珠) :
보석의 일종으로 청색, 홍색, 황색 등 빛깔이 다양하다. 매괴주(玫瑰珠)라고도 하며 일설에는 유리(琉璃)라고도 한다.

[주D-006]말갈아(靺鞨芽) : 보석의 일종으로 붉은빛을 띤다. 홍마노(紅瑪瑙)라고도 하며 주로 말갈 지역에서 생산되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주D-007]슬슬(瑟瑟) :
보석의 일종으로 푸른빛을 띤다. 녹주(綠珠)라고도 한다.

 

食皆金銀鍍 侈靡瑰麗

식기는 모두 금은(金銀)으로 도금하여 사치스럽고 화려하였다.

千里往往 說爲奇巧

천 리를 가는 동안 그들은 곳곳에 기묘한 볼거리를 제공하였을 뿐만 아니라,

庖丁驛夫 據牀而坐

하찮은 포정(庖丁)이나 역부(驛夫)에게까지도 의자에 걸터앉아 垂足於枇子桶 使花衫蠻童洗之.
발을 비자(枇子)나무로 만든 통에 드리우게 하고 꽃무늬 적삼 입은 왜놈 아이종으로 하여금 씻어 주게 하였다.

其陽浮慕尊如此.

이처럼 그들이 겉으로 순종하는 척하며 존모(尊慕)의 뜻을 보였으나,

而象驛持虎豹․貂鼠․人蔘․諸禁物

우리 역관들이 호랑이 가죽, 표범 가죽, 담비 가죽, 인삼 등 금지된 물건들을 가져다

潛貨璣珠․寶刀

보석과 보도(寶刀)와 몰래 바꾸는 바람에

駔儈機利 殉財賄如鶩

그곳의 거간꾼들이 이익을 노려 재물에 목숨을 걸기를 마치 말이 치달리듯 하니,

倭外謬爲恭敬 不復衣冠慕之.

그 이후로는 왜인들이 겉으로만 공경하는 척할 뿐 더 이상 문명인으로 존모하지 않았다.
虞裳以漢語通官隨行 獨以文章 大鳴日本中.
그런데

우상(虞裳)

만은 한어(漢語)의 통역관으로 수행하여 홀로 문장으로 일본에 큰 명성을 날렸다.

其名釋․貴人 皆稱“雲我先生 國士無雙也.”

이에 일본의 이름난 중이나 귀한 신분의 사람들이 모두 칭찬하기를, “운아(雲我) 선생은 둘도 없는 국사(國士)이다.” 라고 하였다.

大坂以東 僧如妓 寺刹如傳舍

오사카〔大阪〕 이동(以東)에는 중들이 기생처럼 많고 절들이 여관처럼 즐비한데,

責詩文如博

도박에 돈을 걸듯이 시문(詩文)을 지어 보이라고 요구하였다.

進繡牋花軸 堆床塡案

그들이 수전(繡牋)과 화축(花軸)을 상에 그득 쌓아놓고,

而類爲難題․强韻以窮之

대개는 어려운 글제와 억센 운(韻)을 내어 궁지에 몰려 했으나

虞裳每倉卒口占 如誦宿搆[構]

우상은 매번 즉석에서 읊어 대기를 마치 진작에 지어 놓은 것을 외우듯이 하였으며,

步押平妥․從容.

운을 맞추는 것도 평탄하고 여유가 있었다.

席散無罷色 無軟詞.

자리가 파할 때까지도 피로한 기색이 없었으며 기운 없는 글귀가 없었다.
其海覽篇曰,
그가 지은

《해람편(海覽篇)》

의 시를 보면 다음과 같다.

[주D-009]《해람편(海覽篇)》 : 이언진의 《송목관신여고(松穆館燼餘稿)》와 이덕무의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에도 수록되어 있다. 《송목관신여고》는 1860년에 저자의 시문(詩文) 잔편들을 수집하여 간행한 본으로서 같은 해에 중국과 조선 두 곳에서 함께 출간되었다. 중국본은 이상적(李尙迪)이 간행한 목판본(국립중앙도서관 소장)이고, 조선본은 후손 이진명(李鎭命) 등이 간행한 활자본(한국문집총간 252집)이다. 그리고 《청장관전서》는 1809년경에 이덕무의 아들 이광규(李光葵)가 재편한 것을 1900년대 초에 등사한 본(한국문집총간 258집)으로서 이들 《송목관신여고》 2종을 포함한 4종의 판본 사이에는 글자나 구절상의 차이가 다소 있다.

 

坤輿內萬國

대지 안에 널려 있는 일만 나라가

[주D-010]대지 …… 나라가 : 마테오리치〔利瑪竇〕가 제작한 곤여만국전도(坤輿萬國全圖)를 가리킨다.

 

碁置而星列 바둑알 놓이듯 별이 깔리듯于越之魋結 머리 틀어 상투 쫒은 우월(于越)의 나라 竺乾之祝髮 머리를 박박 깎은 인도의 나라 齊魯之縫腋 소매 너른 옷 입은 제로(齊魯)의 나라 胡貊之氈毼 모포를 뒤집어쓴 호맥(胡貊)의 나라

 

[주D-011]소매 …… 나라 : 제로(齊魯)는 제 나라와 노 나라로, 공자와 맹자가 태어난 문화국가이다. 공자는 노 나라에서 성장하여 소매 너른 옷을 입었다고 한다. 《禮記 儒行》 봉액(縫腋)은 봉액(逢掖)이라고도 하며, 옷 소매가 넓은 유자(儒者)의 복장을 가리킨다.
[주D-012]모포를 …… 나라 :
호맥(胡貊)은 중국 북방에 사는 흉노(匈奴) 등의 민족을 가리킨다. 원문의 ‘氈’가 《송목관신여고》에는 ‘氀’로 되어 있다.

 

或文明魚雅 혹은 문명하여 위의를 갖추기도 하고
或兜離侏佅 혹은 미개하여 음악이 요란스럽기만 하네
群分而類聚 무리로 나뉘고 끼리끼리 모여서遍土皆是物 온 땅에 펼쳐진 게 모두 인간인데日本之爲邦 일본이란 나라를 볼작시면波壑所蕩潏 깊은 파도 넘실대는 섬나라其藪則搏木 숲 속엔

부목

이 울창하여

[주D-013]부목(搏木) : 부상(扶桑), 부상(榑桑), 부상(搏桑)이라고도 하며, 전설상 해 돋는 곳에서 자란다는 신목(神木)이다. 일본을 가리키기도 한다. 원문의 ‘搏’는 《송목관신여고》 중국본에는 ‘榑’로 되어 있다.

其次則賓日 그곳에선 해돋이를 볼 수 있고女紅則文繡 여인네 하는 일은 비단에 수놓기요土宜則橙橘 토산품은 등자와 감귤이며魚之怪章擧 고기 중에 괴이한 게 낙지라면木之奇蘇鐵 나무 중에 기이한 건 소철이라네其鎭山芳甸 그 진산(鎭山)은

방전산(芳甸山)

인데句陳配厥秩 구진성(句陳星)처럼 차례로 섬들이 늘어서 있어

 

[주D-014]나무 …… 소철이라네 : 원문의 ‘木’과 ‘奇’가 《송목관신여고》 및 《청장관전서》에는 ‘卉’와 ‘怪’로 되어 있다.
[주D-015]방전산(芳甸山) :
미상(未詳)이다. 뒤에 나오는 ‘꼭대기엔 태곳적 눈이 영롱하네’란 구절로 미루어, 후지산〔富士山〕이 아닌가 한다.

[주D-016]구진성(句陳星) : 자미원(紫微垣)에 속하는 별로, 모두 6개의 소성(小星)으로 이루어져 있다.

 

南北春秋異 남북으론 가을과 봄이 다르고
東西晝夜別 동서로는 낮과 밤이 갈라지도다
中央類覆敦 중앙은 그릇 엎어 놓은 것과 같아서
嵌空龍漢雪 꼭대기엔 태곳적 눈이 영롱하네蔽牛之鉅材 그늘로 소 떼를 뒤덮는 큰 나무
抵鵲之美質 까치 잡는 데나 쓰이는 흔한 옥돌

 

[주D-017]그늘로 …… 나무 : 《장자(莊子)》 인간세(人間世)에, “장석(匠石)이 제(齊) 나라에 가서 신목(神木)을 보았는데 그 크기가 수천 마리의 소를 그늘로 가릴 정도나 된다.” 하였다.
[주D-018]까치 …… 옥돌 :
환관(桓寬)의 《염철론(鹽鐵論)》에, “곤륜산(崑崙山) 근처에서는 박옥(璞玉)으로 까치를 잡는다.” 하였다. 즉 귀하게 여기는 물건이 아주 흔하게 있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與丹砂金錫 단사나 금이나 주석들이
皆往往山出 모두 다 산에서 흔히 나온다네
大阪大都會 오사카는 큰 도회지라
瓌寶海藏竭 진기한 보물들은 용궁의 보물을 다 털어낸 듯奇香爇龍涎 기이한 향은

용연향(龍涎香)

을 사른 것이요寶石堆雅骨 보석은

아골석(雅鶻石)

을 쌓아 놓았네

 

[주D-019]진기한 …… 듯 : 《송목관신여고》 및 《청장관전서》에는 이 구절 다음에 “빛나는 것은 수시은(朱提銀)이요 둥근 것은 말갈아(靺鞨芽)요 붉은 것 푸른 것은 화제주(火齊珠)와 슬슬(瑟瑟)이라네.〔光者是朱提 圓者是靺鞨 赤者與綠者 火齊映瑟瑟〕”라는 구절이 더 들어 있다.

[주D-020]용연향(龍涎香) : 고래의 분비물로 만든 명향(名香)의 이름이다.
[주D-021]아골석(雅鶻石) :
슬슬(瑟瑟)과 비슷한 청록색 보석이다. 《송목관신여고》에는 ‘雅’가 ‘鴉’로 되어 있다.

 

牙象口中脫 입에서 뽑은 코끼리 어금니角犀頭上截 머리에서 잘라낸 무소뿔
波斯胡目眩 페르시아의 상인들도 눈이 부셔하고
浙江市色奪 절강의 저자들도 빛이 바랬네

[주D-022]절강의 …… 바랬네 : 《송목관신여고》에는 이 구절 다음에 “수레를 밀며 떼 지어 몰려가니 수많은 거간꾼들 늘어섰는데〔却車而攈至 駔儈千戶埒〕”라는 구절이 더 들어 있다.

 

寰海地中海 온 섬이 지중해를 이루어中涵萬象活 오만 가지 산 것들이 구물거려라鱟背帆幔張 돛을 펼친 후어(鱟魚)의 등이며鰌尾旌旗綴 깃발을 달아맨 해추(海鰌)의 꼬리며堆壘蠣粘房 다닥다닥 무더기 진 굴껍데기며

 

[주D-023]돛을 …… 등이며 : 후어(鱟魚)는 참게를 말한다. 등 위에는 7, 8촌(寸) 되는 껍질이 있는데 바람이 없으면 이 껍질을 눕히고 바람이 불면 이 껍질을 돛처럼 펴서 바람을 타고 다닌다고 한다. 《酉陽雜俎》
[주D-024]깃발을 …… 꼬리며 :
해추(海鰌)는 꼬리지느러미가 솟아 있는 긴흰수염고래를 말한다. 유순(劉恂)의 《영표록이(嶺表錄異)》에 의하면 그 지느러미가 붉은 깃발을 흔드는 것 같다고 하였다.
[주D-025]다닥다닥 무더기 진 :
원문의 ‘壘’가 《송목관신여고》에는 ‘磊’로, 《청장관전서》에는 ‘疊’으로 되어 있다.

 

屭贔龜次窟 무거운 것을 등에 진 거북 굴일레忽變珊瑚海 산호 바다로 문득 변하니煜耀陰火烈 번쩍번쩍

음화

가 타오르고

[주D-026]음화(陰火) : 산호가 물 속에서 내는 빛을 가리킨다.

 

忽變紺碧海 검푸른 바다로 문득 변하니霞雲衆色設 노을 비치어 갖가지 빛깔이로세忽變水銀海 수은 바다로 문득 변하니星宿萬顆撒 수만 개가 뿌려진 큰 별 작은 별忽變大染局 커다란 염색가게로 문득 변하니綾羅爛千匹 천 필의 능라 비단 찬란도 하고忽變大鎔鑄 커다란 용광로로 문득 변하니五金光迸發 오금의 빛이 터져 퍼지네龍子劈天飛 용이

하늘을 가르며

힘차게 나니

 

[주D-027]오금(五金) : 황색의 금, 백색의 은, 적색의 구리, 청색의 납, 흑색의 철을 가리킨다.
[주D-028]하늘을 가르며 :
원문의 ‘劈天’이 《송목관신여고》에는 ‘擘天’으로 되어 있다.

 

千霆萬電戞 천 벼락 만 번개가 치고髮鱓馬甲柱 발선과 마갑주

 

[주D-029]천 벼락 …… 치고 : 이 구절이 《송목관신여고》 중국본에는 ‘千電萬霆戞’, 조선본에는 ‘雷霆極閃戞’로 되어 있고, 《송목관신여고》에는 이 구절 다음에 “동쪽 구름 사이론 용의 비늘과 발톱이 번뜩이고 서쪽 구름 사이론 지체가 드러났네.〔東雲閃鱗爪 西雲露肢節〕”라는 구절이 더 들어 있다.
[주D-030]발선(髮鱓)과 마갑주(馬甲柱) :
발선은 드렁허리의 일종이다. 마갑주는 살조개, 또는 꼬막이라고 하며, 그 육주(肉柱)가 맛있다.

 

秘怪恣怳惚 신비하고 기괴해 마구 얼을 빼네其民祼而冠 백성들은 알몸에다 관을 썼는데外螫中則蝎 독하게 쏘아 대니 속이 전갈 같구나
遇事則麋沸 일 만나면

죽 끓듯

요란 떨고

[주D-031]죽 끓듯 : 원문의 ‘麋’가 《송목관신여고》 조선본과 《청장관전서》에는 ‘糜’로 되어 있다.

謀人則鼠黠 사람을 모략할 땐 쥐처럼 교활하네苟利則蜮射 이익을 탐낼 땐 물여우가 독을 쏘듯小拂則豕突 조금만 거슬려도 돼지처럼 덤벼들고

[주D-032]조금만 거슬려도 : 원문의 ‘拂’이 《송목관신여고》 조선본에는 ‘怒’로 되어 있다.

 

婦女事戱謔 계집들은 남자에게 농지거리 잘하고童子設機括 아이들은 잔꾀를 잘 부리네背先而淫鬼 조상은 등지면서 귀신에 혹하고嗜殺而侫佛 살생을 즐기면서 부처에 아첨하네書未離鳥鳦 글자는 제비 꼬락서니 못 면하고詩未離鴃舌 말은

때까치 울음소리

나 다를 바 없네

 

[주D-033]글자는 …… 면하고 : 원문의 ‘鳥鳦’은 ‘鳦鳥’ 즉 제비를 뜻한다. 한자의 초서체(草書體)에서 만들어진 일본의 히라카나〔平假名〕가 제비 모양과 같다고 풍자한 것이다. 《송목관신여고》에는 ‘鳥鳦’이 ‘鳥跡’으로 되어 있는데, ‘鳥跡’은 조전(鳥篆), 즉 새의 형태와 같은 장식을 가하여 전체(篆體) 비슷하게 된 예술적인 자체(字體)를 가리키는 것으로 춘추전국 시대에 유행하였다. 따라서 ‘鳥跡’으로 하면 일본의 글자 모양과는 무관하게 된다.
[주D-034]말은 :
원문의 ‘詩’가 《송목관신여고》에는 ‘語’로 되어 있어 이에 따라 번역하였다.
[주D-035]때까치 울음소리 :
다른 나라의 잘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를 ‘鴃舌’이라고 한다.

 

牝牡類麀鹿 남녀간은 사슴처럼 문란하고友朋同魚鱉 또래끼린 물고기처럼 몰려다니며言語之鳥嚶 씨부려 대는 소린

새 지저귀듯

象譯亦未悉 통역들도 잘 알지 못한다네

 

[주D-036]남녀간은 사슴처럼 문란하고 : 《예기》 곡례 상(曲禮上)에 “저 금수(禽獸)만은 예가 없다. 그러므로 부자가 암컷을 공유한다.〔父子聚麀〕”고 하였다.
[주D-037]또래 :
원문의 ‘友朋’이 《송목관신여고》 조선본에는 ‘朋流’로 되어 있다.
[주D-038]새 지저귀듯 :
원문의 ‘鳥嚶’이 《송목관신여고》에는 ‘啁啾’로 되어 있다.

[주D-039]통역들도 …… 못한다네 : 이 구절이 《송목관신여고》 및 《청장관전서》에는 ‘鞮象譯未悉’로 되어 있다.

 

草木之瓌奇 진귀한 풀과 나무들은羅含焚其帙 나함조차 자기 책을 불사를 지경百泉之源滙 수없이 뻗어 있는 물길들은酈生瓮底蠛 역생조차

항아리 속 진디등에

로 만드네

[주D-040]나함(羅含) : 동진(東晉) 때의 인물로서 상수(湘水) 지역의 산수를 다룬 《상중산수기(湘中山水記)》를 저술하였다.
[주D-041]역생(酈生) :
북위(北魏) 때의 인물인 역도원(酈道元 : 466 ~ 527)을 가리킨다. 그는 중국지리학의 명저인 《수경주(水經注)》를 저술하였다.
[주D-042]항아리 속 진디등에 :
‘우물 안 개구리’와 비슷한 말로 식견이 좁다는 뜻이다.

 

水族之弗若 요사스러운 수족들은思及閟圖說 사급조차 도설을 덮게 하고刀釰之款識 도검에 새겨진

꽃무늬와 글자

들은貞白續再筆 정백이 속편을 다시 지어야 하리

 

[주D-043]사급(思及) : 예수회 선교사 알레니〔艾儒略 : Julio Aleni, 1582 ~ 1649〕의 자(字)이다. 그는 명 나라 때에 중국에 들어와 《직방외기(職方外紀)》를 저술하였다. 그 내용은 권두에 마테오리치의 곤여만국전도(坤輿萬國全圖)를 수록한 뒤 아시아 등 오대주에 대해 기록하고 사해총설(四海總說)을 덧붙여 각국의 풍물들을 소개하고 있다.
[주D-044]꽃무늬와 글자 :
원문의 ‘識’이 《송목관신여고》에는 ‘銘’으로 되어 있다.
[주D-045]정백(貞白) :
양(梁) 나라 때의 인물인 도홍경(陶弘景 : 452 ~ 536)의 시호이다. 그는 역대 제왕들과 각국 인물들의 도검(刀劍)에 대하여 기술한 《고금도검록(古今刀劍錄)》을 저술하였다.

 

地毬之同異 지구상의 차이며海島之甲乙 섬들의 등급에 관해서는西泰利瑪竇 서태 이마두線織而刃割 치밀하고 명쾌하게 밝혀 놓았네

 

[주D-046]서태(西泰) 이마두(利瑪竇) : 서태는 마테오리치(Matteo Ricci)의 자(字)이다. ‘西泰’가 《송목관신여고》에는 서양을 뜻하는 ‘泰西’로 되어 있다.

[주D-047]치밀하고 …… 놓았네 : 원문의 ‘刃’이 《송목관신여고》에는 ‘刀’로 되어 있다.

 

鄙夫陳此詩 무식한 제가 이 시를 지어 바치노니辭俚意甚實 말은 촌스러도 뜻은 퍽 진실하이善隣有大謨 이웃 나라와 잘 지내는 큰 법 있으니羈縻和勿失 잘 구슬려서 화평을 잃지 마소

 

[주D-048]말은 촌스러도 : 원문의 ‘辭俚意’가 《송목관신여고》에는 ‘語俚義’로 되어 있다.
[주D-049]잘 …… 마소 :
기미(羈縻)란 말에 굴레를 씌우거나 소에 고삐를 매어 통제한다는 뜻으로, 억센 상대를 회유(懷柔)하는 것을 말한다. 중국은 주변의 이민족(異民族)들에 대해 ‘잘 구슬리면서 외교 관계를 끊지 않는〔羈縻勿絶〕’ 정책을 취하였다.

 

如虞裳者 豈非所謂華國之譽耶?
위의 시로 볼 때 우상 같은 자는 이른바 ‘문장으로 나라를 빛낸 사람’이라는 칭송을 받을 만한 자가 아니겠는가.


神宗萬曆壬辰 倭秀吉潛師襲我

신종(神宗) 만력(萬曆) 임진년에 왜적 평수길(平秀吉)이 군사를 몰래 출동시켜 우리나라를 엄습하여,

躪我三都 劓辱我髦倪

우리의

삼도(三都)

를 유린하고 우리의 노약자들을 코를 베어 욕보였으며

[주D-050]삼도(三都) : 경주〔東都〕, 한양, 평양〔西都〕을 가리킨다.

 

躑躅冬柏植於三韓

왜철쭉과 동백을 우리나라 각지에 심었다.

昭敬大王 避兵灣上 奏 聞 天子

우리 소경대왕(昭敬大王 선조(宣祖))이 의주로 피난을 가서 천자께 사연을 아뢰자,

天子大驚 提天下之兵 東援之.

천자가 크게 놀라 천하의 군사를 동원하여 동으로 구원을 보냈다.

大將軍李如松 提督 陳璘․麻貴․劉綎․楊元 有古名將之風

당시에 대장군(大將軍) 이여송(李如松), 제독(提督) 진린(陳璘) · 마귀(麻貴) · 유정(劉綎) · 양원(楊元)은 모두 다 옛날 명장의 기풍이 있었으며,

御史楊鎬․萬世德․邢玠 才兼文武 略驚鬼神

어사(御史) 양호(楊鎬) · 만세덕(萬世德) · 형개(邢玠)는 재주가 문무(文武)를 겸하고 도략이 귀신을 놀래킬 만했으며,

其兵皆秦․鳳․陜․浙․雲․登․貴․萊 驍騎射士

그 군사 역시 모두

진봉(秦鳳)

· 섬서(陝西) · 절강(浙江) · 운남(雲南) · 등주(登州) · 귀주(貴州) · 내주(萊州)의 날랜 기병과 활 잘 쏘는 군사들이며,

大將軍家僮千人 幽․薊劒客

대장군의 가동(家僮) 1000여 명과

유주(幽州) 계지(薊地)

의 검객들이었다.

 

[주D-051]진봉(秦鳳) : 봉상부(鳳翔府)의 진계(秦階), 농봉(隴鳳) 일대를 가리킨다. 《大淸一統志》
[주D-052]유주(幽州) 계지(薊地) :
북경을 포함한 하북성(河北省) 일대를 가리킨다. 전국(戰國) 시대 연(燕) 나라의 땅이었다.

 

然卒與倭平 僅能驅之出境而已.

그런데도 끝내 왜적과 화평을 맺고 겨우 나라 밖으로 몰아내는 데에 그치고 말았다.


數百年之間 使者冠盖 數至江戶.
수백 년 동안 사신의 행차가 자주 에도〔江戶〕를 내왕하였다.

然謹體貌 嚴使事

그러나 사신으로서 체통을 지키고 임무를 수행하는 데에 치중하느라

其風謠人物 險塞强弱之勢

그 나라의 민요, 인물(人物), 요새, 강약(强弱)의 형세에 대해서는

卒不得其一毫 徒手來去.

마침내 털끝만큼도 실상을 파악하지 못한 채 그저 왔다갔다만 하였다.

虞裳力不能勝柔毫. 然吮精撮華

그런데 우상은 힘으로는 붓대 하나도 이기지 못할 정도였지만, 그 나라의 정화(精華)를 붓끝으로 남김없이 빨아들여

使水國萬里之都 木姑川渴

섬나라 만리의 도성(都城)으로 하여금 산천초목이 다 마르게 하였으니,

雖謂之“筆拔山河”可也.

비록 ‘붓대 하나로써 한 나라를 무너뜨렸다’고 말하더라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虞裳名湘藻

우상의 이름은

상조(湘藻)

이다.

[주D-053]상조(湘藻) : 상조는 이언진이 스스로 지은 또 하나의 이름이다. 《淸脾錄 卷3 李虞裳》

 

嘗自題其畵象曰

일찍이 손수 제 화상(畵像)에 제(題)하기를,

供奉白鄴侯泌

공봉백(供奉白)

업후필(鄴侯泌)

 

[주D-054]공봉백(供奉白) : 당(唐) 나라 시인 이백(李白)을 가리킨다. 공봉한림(供奉翰林)에 제수되었으므로 공봉백이라 한 것이다.
[주D-055]업후필(鄴侯泌) :
당 나라 문장가 이필(李泌 : 722 ~ 789)을 가리킨다. 신선술을 좋아하였다. 업후(鄴侯)에 봉하여졌으므로 업후필이라 한 것이다.

 

合鐵拐爲滄起 철괴와 합쳐 창기가 되니古詩人古仙人 옛 시인과 옛 선인古山人皆姓李 옛 산인이 모두 다

이씨(李氏)라네

 

 

[주D-056]철괴(鐵拐) : 중국 전설상의 팔선(八仙) 중의 하나인 이철괴(李鐵拐)를 가리킨다.
[주D-057]공봉백(供奉白)과 …… 이씨(李氏)라네 :
이 시는 《송목관신여고》 조선본에 ‘동호거실(衕衚居室)’이라는 제목의 장편 육언시 중의 한 수로 수록되어 있고, 원문의 ‘古詩人古仙人 古山人皆姓李’가 《송목관신여고》에는 ‘古詩人古山人 古仙人皆姓李’로 되어 있다.

 

李其姓也 滄起又其號也.
했는데, 이(李)는 그 성이요, 창기(滄起)는 그의 또 다른 호이다.

夫士伸於知己 屈於不知己.
대체로 선비란 자신을 알아주는 이 앞에서는 재능을 펴고 자신을 몰라주는 이 앞에서는 재능을 펴지 못하는 법이다.

鵁鶄․鸂鵣 禽之微者也.

교청(鵁鶄 푸른 백로)과 계칙(鸂鶒 자원앙(紫鴛鴦))은 새 중에서도 보잘것없는 새이지만,

然猶自愛其羽毛 暎水而立 翔而後集.

그럼에도 제 깃털에 도취되어 물에 비추어 보고 서 있다가 다시 하늘을 맴돌다 내려앉거늘,

人之有文章 豈羽毛之美而已哉?

사람이 지닌 문장을 어찌 고작 새 깃털의 아름다움에 비하겠는가.

昔慶卿 夜論劒 聶怒而目之.

옛날에 경경(慶卿)이 밤에 검술을 논하자 합섭(蓋聶)이 성을 내며 눈총을 주어 나가게 하였으며,

及高漸離擊筑 刑軻和而歌

고점리(高漸離)가 축(筑)을 연주하자 형가(荊軻)가 화답하여 노래하더니

已而相泣 旁若無人者

이윽고 주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서로 붙들고 운 일이 있었다.

 

[주D-058]옛날에 …… 있었다 : 형가(荊軻)는 전국 시대 말기 위(衛) 나라 사람으로 위 나라에서는 경경(慶卿)으로 불렸다. 진(秦) 나라가 위 나라를 멸망시키자 연(燕) 나라로 망명한 다음 연 나라 태자 단(丹)과 모의하여 진왕(秦王) 정(政)을 죽이려다 실패한 인물이다. 형가가 어느날 유차(楡次) 고을을 지나다가 합섭(蓋聶)과 검술에 대하여 이야기하게 되었는데 합섭이 성을 내며 눈총을 주자 형가가 그만 기분이 상해 나가 버렸다. 또 형가가 연 나라에 가서 고점리와 시장에서 술을 마셨는데 술에 취한 고점리가 축(筑)을 연주하자 형가가 이에 화답하여 노래를 부르고 이어 주위도 아랑곳 않고 서로 붙들고 울었다. 형가에게 있어서 합섭은 자신을 알아주지 못하는 사람에 해당하고 고점리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에 해당한다. 《史記 卷86 刺客列傳》

 

夫樂亦極矣. 復從而泣之 何也?

무릇 그 즐거움이야 극에 달했겠지만, 더 나아가 울기까지 한 것은 무엇 때문인가?

中心激 而哀之無從也.

마음이 복받쳐서 엉겁결에 슬퍼진 것이다.

雖問諸其人者 亦將不自知其何心矣.

비록 그 당사자에게 물어본다 해도 역시 그때 제 마음이 무슨 마음이었는지를 알지 못할 것이다.

人之以文章相高下 豈區區劒客之一技哉?

사람이 문장으로써 서로 높이고 낮추고 하는 것이 어찌 구구한 검사(劒士)의 한 기예 정도에 비할 뿐이겠는가?

虞裳其不遇者耶?

우상은 아마도 때를 제대로 만나지 못한 사람일까? [그의 말에 어쩌면 그렇게도 슬픔이 많단 말인가? 그의 시에,]

 

鷄戴勝高似幘 닭의 머리 위 벼슬은 높기가 관과 같고

牛垂胡大如袋 소의 축 처진 멱미레는 크기가 전대 같네家常物百不奇 집에 있는 보통 물건이란 하나도 기이할 것 없지만大驚怪槖駝背 크게 놀랍고 괴이한 건 낙타의 등이로세

 

[주D-059]닭의 …… 등이로세 : 이 시 또한 《송목관신여고》에 ‘호동거실(衚衕居室)’의 한 수로 수록되어 있다.

 

未嘗不自異也.
우상은 늘 자신을 남다르게 여겼던 것이다.

及其疾病且死 悉焚其藁曰

병이 위독하여 죽게 되자 그동안 지어 놓은 작품들을 모조리 불태우면서,

“誰復知者?”

“누가 다시 알아주겠는가.” 하였으니,

其志豈不悲耶?

그 뜻이 어찌 슬프지 아니하랴!

孔子曰 “才難. 不其然乎?

공자가 말하기를,

“재주 나기가 어렵다는 말은 참으로 맞는 말이 아니겠는가.”

하였고,

管仲之器 小哉.”

또,

“관중(管仲)은 그릇이 작다.”

하였다.

 

[주D-060]재주 …… 아니겠는가 : 《논어》 태백(泰伯)에 보인다.
[주D-061]관중(管仲)은 그릇이 작다 :
《논어》 팔일(八佾)에 보인다.

 

子貢曰 “賜何器也?”

자공(子貢)이 묻기를,“저는 무슨 그릇입니까?” 하니,

子曰 “汝瑚璉也.”

공자가 말하기를,“너는

호련(瑚璉)이다.”

하였다.

[주D-062]자공(子貢)이 …… 호련(瑚璉)이다 : 《논어》 공야장(公冶長)에 보인다. 호련은 종묘(宗廟)에서 서직(黍稷)을 담는 데 쓰는 그릇이다.

 

盖美而小之也.

이는 자공의 재주를 칭찬하면서도 작게 여긴 것이다.

故德譬則器也 才譬則物也.

그러므로 덕은 그릇에 비유되고 재주는 그 속에 담기는 물건에 비유된다.

詩云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瑟彼玉瓚 “결이 쪼록쪼록 저 옥 술잔이여, 黃流在中 황금빛 울창주가 그 속에 들었도다.”라 했고,

[주D-063]《시경(詩經)》에…… 했고 : 《시경》 대아(大雅) 한록(旱麓)에 나오는 구절이다.

 

易曰

《주역》에 이르기를

“鼎折足 覆公餗”

솥이 발이 부러져 공(公)의 먹을 것이 엎어졌도다.” 했으니,

 

[주D-064]《주역》에 …… 했으니 : 《주역》 정괘(鼎卦) 구사(九四)의 효사이다. 구사는 대신(大臣)의 지위를 상징하고, 공(公)은 임금을 가리킨다. 소인(小人)이 대신의 중책을 감당하지 못해 국사를 그르친다는 뜻이다.

 

有德而無才 則德爲虛器

덕만 있고 재주가 없으면 그 덕이 빈 그릇이 되고,

有才而無德 則才無所貯

재주만 있고 덕이 없으면 그 재주가 담길 곳이 없으며,

其器淺者 易溢.

있다 해도 그 그릇이 얕으면 넘치기가 쉽다.

人參天地 是爲三才.

인간은 천지(天地)와 나란히 서니 바로 삼재(三才)가 된다.

故鬼神者才也 天地其大器歟?

그러므로

귀신은 재(才)에 속하며

천지는 큰 그릇이 아니겠는가?

[주D-065]귀신은 재(才)에 속하며 : 《예기》 예운(禮運)에 “그러므로 사람이란 천지(天地)의 덕(德)이며, 음양이 서로 교통하고, 귀신이 서로 만난 것이다.〔鬼神之會也〕”라고 하였다. 귀(鬼)는 형체(形體), 신(神)은 정령(精靈)을 뜻한다.

 

彼潔潔者 福無所遇

깔끔을 떠는 자에게는 복이 붙을 데가 없고,

善得情狀者 人不附.

남의 정상(情狀)을 잘 꿰뚫어 보는 자에게는 사람이 붙지를 않는 법이다.

文章者 天下之至寶也.

문장이란 천하의 지극한 보배이다.

發精蘊於玄樞

오묘한 근원에서 정화(精華)를 끄집어내고,

探幽隱於無形

형적이 없는 데서 숨겨진 이치를 찾아내어

漏洩陰陽 神鬼嗔怨矣.

천지 음양의 비밀을 누설하니, 귀신이 원망하고 성낼 것은 뻔한 일이다.

木有才 人思伐之

재목〔木〕 중에 좋은 감〔才〕이 있으면 사람이 베어 갈 생각을 하고,

貝有才 人思奪之.

재물〔貝〕 중에 좋은 감〔才〕이 있으면 사람이 뺏어 갈 생각을 한다.

故才之爲字 內撇而 不外颺也.

그러므로 재목 재(材) 자와 재물 재(財) 자 속에 있는 ‘재(才)’ 자의 글자 모양이 밖으로 삐치지 않고 안으로 삐치는 것이다.
虞裳一譯官 居國中
우상은 일개 역관에 불과한 자로서, 나라 안에 있을 때는

聲譽不出里閭 衣冠不識面目

소문이 제 마을 밖을 벗어나지 못하였고 벼슬아치들이 그의 얼굴조차 몰랐다.

一朝名震耀海外萬里之國

그런데 하루아침에 이름이 바다 밖 만리의 나라에 드날리고,

身傾側鯤鯨龍鼉之家

몸소

곤어(鯤魚)

와 악어의 소굴까지 뒤졌으며,

手沐日月 氣薄虹蜃

솜씨는 햇빛과 달빛으로 씻은 듯 환히 빛났고,

기개는 무지개와 신기루에 닿을 듯이 뻗치었다.

故曰 “慢藏誨盜

그러므로

‘재물을 허술하게 보관하는 것은 훔쳐 가라고 가르쳐 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고 한 것이며,

魚不可脫於淵 利器不可以示人.”

 

‘물고기란 못을 떠날 수 없는 법이니 이기(利器)를 남에게 보여 주면 안 된다.’

고 한 것이다.

可不戒哉.

어찌 경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주D-066]곤어(鯤魚) : 북쪽 대해(大海)에 산다는 큰 물고기이다. 《莊子 逍遙遊》
[주D-067]솜씨는 …… 빛났고 :
원문은 ‘手沐日月’이다. 우(禹) 임금이 남악(南岳)에 올라 금간옥자(金簡玉字)의 비서(秘書)를 얻었는데 거기에 ‘목일욕월(沐日浴月)’ 운운한 표현이 있었다고 한다. ‘목일욕월’은 햇빛과 달빛으로 목욕한 듯이 윤택하다는 뜻이다. 《庾仲雍 荊州記》
[주D-068]재물을 …… 다름없다 :
《주역》 계사전(繫辭傳)에, “재물을 허술하게 보관하는 것은 훔쳐 가라고 가르쳐 주는 것이나 다름없고, 얼굴을 예쁘게 꾸미는 것은 음심(淫心)을 갖도록 가르쳐 주는 것이나 다름없다.〔慢藏誨盜, 冶容誨淫〕” 하였다.
[주D-069]물고기란 …… 된다 :
《노자》 및 《장자(莊子)》 거협(胠篋)에, “물고기란 못을 떠날 수 없는 법이니 나라의 이기(利器)를 남에게 보여 주면 안 된다.〔魚不可脫於淵 國之利器 不可以示人〕” 하였다.

過勝本海作詩曰,

승본해(勝本海)를 지나면서 다음의 시를 지었다.

[주D-070]승본해(勝本海) : 승본(勝本)은 현 장기현(長崎縣) 북쪽 일기도(壹岐島)에 소속된 지명으로 그 일대의 바다를 승본해라 한다.

 

蠻奴赤足貌

魀 맨발의 왜놈 사내 몰골조차 수상한데鴨色袍背繪星月 압색의 윗도리 등엔 별과 달이 그려져 있네花衫蠻女走出門 꽃무늬 적삼 입은 계집들 달음질해 문 나서니

[주D-071]압색(鴨色)의 윗도리 : 오리 머리 빛깔인 녹색을 가리키는 것으로 압두록(鴨頭綠)이라고도 한다. ‘袍’는 ‘우에노기누’라고 하는 윗도리를 말한다.
[주D-072]꽃무늬 적삼 :
원문의 ‘花衫’이 《송목관신여고》 및 《청장관전서》에는 ‘花裙’으로 되어 있다.

 

頭梳未竟髽其髮 머리 빗다 못 마친 양 그 머리 동여 맸네小兒號嗄乳母乳 어린아이 칭얼대며 어미 젖을 빨아 대니母手拍背鳴嗚咽 어미가 등을 때리자

울음소리

잦아드네須臾擂鼓官人來 이윽고 북 울리며

관인

이 들어오니

[주D-073]울음소리 : 원문의 ‘鳴’이 《송목관신여고》에는 ‘聲’으로 되어 있다.
[주D-074]관인(官人) :
우리나라 사신을 가리킨다.

 

萬目圍繞如活佛 오만 눈이 둘러싸고 활불인 양 여기누나蠻官膜拜獻厥琛 왜놈 관리 무릎 꿇고 절하며 값진 보물 올리는데珊瑚大貝擎盤出 산호랑

대패

를 소반 받쳐 내오누나眞如啞者設賓主 주인과 손님이 늘어섰으나 실로 벙어리인 양眉睫能言筆有舌 눈짓으로

말을 하고

붓끝으로 얘기하네蠻府亦耀林園趣 왜놈의 관부(官府)에도 정원 풍취 풍부하여栟櫚靑橘配庭實 종려나무 푸른 귤이 뜨락에 가득

찼네

 

[주D-075]대패(大貝) : 바닷조개 중 가장 크다는 거거(車渠)와 흡사한 조개의 일종이다. 껍질은 장식품으로 쓴다.
[주D-076]말을 하고 :
원문의 ‘言’이 《송목관신여고》 및 《청장관전서》에는 ‘語’로 되어 있다.
[주D-077]왜놈의 …… 풍부하여 :
이 부분이 《송목관신여고》에는 ‘蠻府亦解園林趣’로 되어 있다.
[주D-078]맨발의 …… 찼네 :
이 시는 ‘일기도(壹岐島)’라는 제목으로 《송목관신여고》에 수록되어 있다.

 

病痔舟中 臥念梅南老師言 乃作詩曰,
배 안에서 치질 병이 생겨 매남노사(梅南老師)의 말을 누워 생각하며 다음의 시를 지었다.
宣尼之道麻尼敎 공자의 유교와

석가

의 불교는

[주D-079]석가 : 원문의 ‘麻’가 《송목관신여고》에는 ‘牟’, 《청장관전서》에는 ‘摩’로 되어 있다.

 

經世出世日而月 각각 경세와 출세로서 해라면 달이로세西士嘗至五印度 서양 선비 일찍이

오인도 가 보았으나

 

[주D-080]일찍이 : 원문의 ‘嘗’이 《청장관전서》에는 ‘常’으로 되어 있다.
[주D-081]오인도(五印度) 가 보았으나 :
인도를 오천축(五天竺)이라고도 한다. 고대 인도가 동, 서, 남, 북, 중의 5부로 구획되어 있었으므로 생긴 이름이다. 이는 예수회 선교사들이 16세기에 인도에 진출한 사실을 가리킨다.

 

過去現在無箇佛 과거나 현재에 부처 하나 없었다오.儒家有此俾販徒 유가에도

장사꾼

이 있기로는 마찬가지

弄筆舌神吾說 붓과 혀를 까불려서

괴이한 말

퍼뜨려披毛戴角墜地犴 산발을 하고 뿔이 난 채 지옥에 떨어진다 하니當受生日欺人律 생시에 남 속인 죄 마땅히 받으리라毒焰亦及震旦東 해독의 불길이

진단의 동쪽

에도 미쳐 와서精藍大衍都鄙列 화려하고 큰

절들이

도시와 시골에 널렸구려

 

[주D-082]장사꾼 : 원문의 ‘俾販徒’가 《송목관신여고》에는 ‘稗販徒’, 《청장관전서》에는 ‘裨販徒’로 되어 있다.
[주D-083]괴이한 말 :
원문은 ‘吾說’인데, 《송목관신여고》 조선본에는 ‘怪’로 되어 있어 이에 따라 번역하였다.
[주D-084]산발을 …… 하니 :
원문의 ‘墜’와 ‘犴’이 《송목관신여고》와 《청장관전서》에는 ‘墮’와 ‘獄’으로 되어 있다.
[주D-085]생시에 …… 죄 :
원문의 ‘日欺’가 《송목관신여고》에는 ‘前誣’, 《청장관전서》에는 ‘日誣’로 되어 있다.
[주D-086]진단(震旦)의 동쪽 :
일본을 가리킨다. 진단은 고대 인도에서 중국을 일컫던 말이다.
[주D-087]절들이 :
원문의 ‘衍’이 《송목관신여고》와 《청장관전서》에는 ‘刹’로 되어 있다.

 

睢盱島衆怵禍福 섬 백성 흘겨보며 화복으로 겁을 주니炷香施米無時缺

향화(香火)라 공양미가 끊일 날이 없고말고

[주D-088]향화(香火)라 …… 없고말고 : 원문의 ‘無時’가 《송목관신여고》 조선본에는 ‘長無’로 되어 있다. 《송목관신여고》에는 이 구절 다음에 “부처를 받들면서 부처가 싫어하는 것 되레 좋아하여 물고기 구워 먹고 회 쳐 먹고 마구마구 죽여 대니〔好佛反好佛所惡 燒剔魚鼈恣屠殺〕”라는 구절이 더 들어 있다.

 

譬如人子戕人子 비하자면 제 자식이 남의 자식 죽여 놓고入養父母必不說 들어와 봉양하면 어느 부모 좋아하리六經中天揚文明 육경이 중천에서 밝은 빛을 비추는데此邦之人眼如漆 이 나라 사람들은 눈에 옻칠한 듯하네暘谷昧谷無二理 양곡이나 매곡이 이치가 둘이겠나順之則聖背檮杌 순종하면 성인 되고 배반하면 악인 되네吾師詔吾詔介衆 우리 스승 나더러 뭇사람께 고하라기以詩爲金口木舌 목탁 대신 이 시 지어 네거리에 울리노라

 

[주D-089]육경이 …… 비추는데 : 원문의 ‘揚文’이 《송목관신여고》 중국본에는 ‘揭文’, 조선본에는 ‘揭大’로 되어 있다.
[주D-090]양곡(暘谷)이나 매곡(昧谷) :
양곡은 해 뜨는 곳, 매곡은 해 지는 곳을 가리킨다.
[주D-091]우리 ……고하라기 :
원문의 전후에 있는 ‘詔’가 모두 《송목관신여고》 조선본에는 ‘訓’으로 되어 있다.
[주D-092]공자의 …… 울리노라 :
마지막 구 ‘以詩爲金口木舌’의 ‘爲’가 《송목관신여고》에는 ‘替’로 되어 있다. 이 시는 ‘일양의 배 안에서 혜환노사의 말씀을 생각하며〔壹陽舟中念惠寰老師言〕’라는 제목으로 《송목관신여고》에 수록되어 있는데, 혜환(惠寰)은 이언진의 스승 이용휴(李用休 : 1708 ~ 1782)의 호이다.

 

詩皆可傳也.
우상의 이러한 시들은 모두 후세에 전할 만하다.

及旣還過所次 皆已梓印云.

나중에 머물렀던 곳을 다시 들렀더니 그새 이 시들이 모두 책으로 인출(印出)되었다고 한다.
余與虞裳生不相識
나는 우상과는 생전에 상면이 없었다.

然虞裳數使示其詩曰,

그러나 우상은 자주 사람을 시켜 나에게 시를 보여 주며 하는 말이,

“獨此子庶能知吾.”

“유독 이분만이 나를 알아줄 수 있을 것이다.” 했다기에,

余戱謂其人曰,

나는 농담 삼아 그 사람더러 이르기를,

“此吳儂細唾 瑣瑣不足珍也.”

“이거야말로

오농(吳儂)의 간드러진 말투

이니 너무 잗달아서 값나갈 게 없다.” 했더니,

虞裳怒曰“倡夫其人.”

우상이 성을 내며,

“창부(傖夫)

약을 올리는군!” 하고는

 

[주D-093]오농(吳儂)의 간드러진 말투 : 오농은 오(吳) 나라 사람, 즉 화려하고 세련됨을 추구한 강남(江南)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삼국 시대 때 오 나라 땅이었던 이 지역 사람들의 말투가 간드러진 느낌을 주었으므로 ‘오농연어(吳儂軟語)’니 ‘오농교어(吳儂嬌語)’니 하였다. 원문의 ‘오농세타(吳儂細唾)’도 같은 뜻의 말이다.
[주D-094]창부(傖夫) :
창부는 시골뜨기라는 뜻으로, 강남 사람들이 중원(中原) 사람들을 비하하여 부른 말이다. 오 나라 출신인 육기(陸機)가 동생 육운(陸運)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의 문학적 경쟁 상대로서 중원 출신인 좌사(左思)를 ‘창부’라 비웃은 적이 있다. 《晉書 卷92 文苑傳 左思》 여기서 이언진은 자신과 연암의 관계를 육기와 좌사의 관계에 비긴 것이다.

 

久之歎曰“吾其久於世哉.”

한참 있다가 마침내 한탄하며 말하기를,“내가 어찌 세상에 오래갈 수 있겠는가?” 하고

因泣數行下 余亦聞而悲之.

두어 줄의 눈물을 쏟았다기에, 나 역시 듣고서 슬퍼했다.

旣而虞裳死 年二十七.

 

얼마 후 우상이 죽으니 그의 나이 스물일곱 살이었다.

其家人夢見 仙子醉騎蒼鯨

그의 집안사람이 꿈속에서, 신선이 술에 취하여 푸른 고래를 타고 가고

黑雲下垂 虞裳披髮而隨之.

그 아래로 검은 구름이 드리웠는데 우상이 머리를 풀어 헤치고 그 뒤를 따라가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良久虞裳死.

얼마 후에 우상이 죽으니,

或曰“虞裳仙去.”

사람들 가운데는 “우상이 신선이 되어 떠나갔다.”고들 말하기도 하였다.

嗟乎 余嘗內獨愛其才.

아! 나는 일찍이 속으로 그 재주를 남달리 아꼈다.

然獨挫之 以爲虞裳年少

그럼에도 유독 그의 기를 억누른 것은, 우상이 아직 나이 젊으니

俛就道 可著書數歲也.

머리를 숙이고 도(道)로 나아간다면, 글을 저술하여 세상에 남길 만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乃今思之 虞裳必以余爲不足喜也.

그런데 지금 와 생각하니 우상은 필시 나를 좋아할 만한 사람이 못 된다고 여겼을 것이다.

有輓歌之者 歌曰,

우상의 죽음에 대해

만가(輓歌)를 지은 이

가 있어 노래하기를,

[주D-095]만가(輓歌)를 지은 이 : 《송목관신여고》 중국본에 ‘만이우상(挽李虞裳)’이라는 제목의 오언고시 10수가 실려 있으며 그 작자가 이용휴(李用休)로 되어 있다. 연암은 그 중 5수를 차례로 소개하고 있다.

 

五色非常鳥 오색을 두루 갖춘 비범한 새가偶集屋之脊 우연히도 지붕 꼭대기에 날아 앉았네衆人爭來看 뭇사람들 다투어 달려가 보니驚起忽無跡 놀라 일어나 홀연 자취를 감추었네하였고,

[주D-096]놀라 일어나 : 원문의 ‘驚起’가 《송목관신여고》 중국본에는 ‘飛去’로 되어 있다.

 

其二曰,
그 두 번째 노래에,
無故得千金 까닭 없이 천금을 얻고 나면은其家必有災 그 집엔 재앙이 따르는 법矧此稀世寶 더구나 이처럼 세상에 드문 보배를焉能久假哉 오래도록 빌릴 수 있으리요하였고,

其三曰,

그 세 번째 노래에,
渺然一匹夫 조그마한 하나의 필부였건만死覺人數減 죽고 나니 사람 수가 준 걸 알겠네豈非關世道 세도와 관련된 일이 아니겠는가人多如雨點 사람들은 빗방울처럼 많다마는하였다.

 

又歌曰, 또 노래하기를,
其人膽如瓠 그 사람은 쓸개가 박마냥 크고其人眼如月 그 사람은 눈빛이 달같이 밝고其人腕有鬼 그 사람은 팔목에 귀신 붙었고其人筆有舌 그 사람은 붓끝에 혀가 달렸네하였고,


又曰, 또,
他人以子傳 남들은 아들로써 대를 잇지만虞裳不以子 우상은 그렇게 하지 않았지血氣有時盡 혈기야 때로는 끊어지지만聲名無窮已 명성은 끝질 날이 없으리하였다.

余旣不見虞裳每恨之

나는 이전에 우상을 보지 못하여 매양 한스럽게 여겼는데,

且旣焚其文章無留者 益無知者

그 문장까지 불살라서 남은 것이 없다 하니, 세상에 그를 알 사람이 더욱 없게 되었다.

乃發筴中舅藏 得其前所示纔數篇.

그래서 상자 속에 오래 수장한 것을 꺼내어 그가 예전에 보여 준 것을 찾았는데, 겨우 두어 편뿐이었다.

於是悉著之 以爲之傳虞裳.

이에 모조리 다 기록하여 우상전을 지었다.虞裳有弟 亦能(以下 落張으로 인하여 缺損됨)
우상에게 아우가 있는데, 그 역시도

- 이하 원문 빠짐 -

 

[은자주]방경각외전 자서에 의하면 끝의 두 작품을 찢어 불살랐는데 마지막 부분이 그 낙장에 걸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됨. 더구나 아우의 얘기여서 없어도 <우상전> 이해에는 무방하다고 생각한 듯하다.

[두타산 & 청옥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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