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정집서(楚亭集序)

연암집 제 1 권

연상각선본(煙湘閣選本)

박제가 [朴齊家] (1750~1805).

법고(法古)와창신(刱新 )

문장을 어떻게 지어야 할 것인가? 논자(論者)들은 반드시 ‘법고(法古 옛것을 본받음)’해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마침내 세상에는 옛것을 흉내내고 본뜨면서도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자가 생기게 되었다. 이는 왕망(王莽)의 《주관(周官)》으로 족히 예악을 제정할 수 있고, 양화(陽貨)가 공자와 얼굴이 닮았다 해서 만세의 스승이 될 수 있다는 셈이니, 어찌 ‘법고’를 해서 되겠는가.
그렇다면 ‘창신(刱新 새롭게 창조함)’이 옳지 않겠는가. 그래서 마침내 세상에는 괴벽하고 허황되게 문장을 지으면서도 두려워할 줄 모르는 자가 생기게 되었다. 이는
세 발〔丈〕 되는 장대가 국가 재정에 중요한 도량형기(度量衡器)보다 낫고, 이연년(李延年)의 신성(新聲)을 종묘 제사에서 부를 수 있다는 셈이니, 어찌 ‘창신’을 해서 되겠는가.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옳단 말인가? 나는 장차 어떻게 해야 하나? 아니면 문장 짓기를 그만두어야 할 것인가?


[주C-001]초정집서(楚亭集序) : 박제가(朴齊家 : 1750 ~ 1805)의 초기 문집인 《초정집》에 부친 서문이다. 박제가는 초명을 제운(齊雲)이라 했으며, 초정은 그의 여러 호 중의 하나이다. 박제가의 《정유각문집(貞蕤閣文集)》 권1에도 단지 ‘서(序)’라는 이름으로 동일한 글이 수록되어 있는데, ‘법고(法古)’를 ‘학고(學古)’라고 하는 등 표현상의 차이가 상당히 있고 박제가의 나이를 ‘스물셋’이 아니라 ‘열아홉’이라 기술한 점으로 미루어, 이 글을수년 뒤에 손질한 것이 초정집서인 듯하다.
[주D-001]왕망(王莽)의 《주관(周官)》 :
왕망(기원전 45 ~ 기원후 23)은 한(漢) 나라 평제(平帝)를 시해한 뒤 섭황제(攝皇帝)로 자칭하며 섭정(攝政)을 행하다가 결국 황제의 자리를 찬탈하고 신(新) 나라를 세웠다. 그는 주공(周公)의 선례를 들어 자신의 집권을 정당화하면서 주공이 지었다는 《주례(周禮)》에 근거하여 각종 개혁을 시도했으나, 시대착오적인 개혁으로 혼란을 초래하여 민심을 잃고 농민 반란군에게 피살되었다. 《주관》은 곧 《주례》를 말한다. 왕망이 집권할 때 그에게 아부하기 위해 유흠(劉歆)이 비부(秘府)에 소장되어 있던 《주관》을 개찬(改竄)하고 《주례》로 이름을 고쳐 유가 경전의 하나로 격상시켰다는 설이 유력하다. 유흠 등은 태후에게 올린 글에서 섭황제인 왕망을 극구 예찬하여 “드디어 비부를 열고 유자들을 모아 예와 악을 제작했으며〔遂開秘府 會群儒 制禮作樂〕”, “《주례》를 발굴하여 하(夏) 나라와 은(殷) 나라의 예를 본받았음을 밝히셨다.〔發得周禮 以明因監〕”고 하였다. 《漢書 卷99 王莽傳上》
[주D-002]양화(陽貨)가 …… 닮았다 :
양화는 이름이 호(虎)이며, 춘추 시대 노(魯) 나라 계씨(季氏)의 가신(家臣)이었다. 공자(孔子)가 그와 얼굴이 비슷한 탓에 진(陳) 나라로 가던 도중 광(匡) 땅에서 양화로 오인되어 곤욕을 당한 일이 있다. 《史記 卷47 孔子世家》
[주D-003]세 발〔丈〕 되는 장대 :
진(秦) 나라 효공(孝公) 때에 상앙(商鞅)이 자기가 만든 법령을 공포하기에 앞서 백성들이 이를 믿지 않을까 염려하여 도성 남문에 세 발 되는 장대를 세워 놓고, 이것을 북문에 옮겨 놓는 자에게는 상금을 주겠다고 하여 이를 옮겨 놓은 자에게 약속대로 상금을 주었다. 《史記 卷68 商君列傳》
[주D-004]이연년(李延年)의 신성(新聲) :
이연년은 한 나라 무제(武帝)가 총애한 이 부인(李夫人)의 오빠로, 노래를 매우 잘했으며, 신성 즉 신작 가곡을 지었다. 그 덕분에 협률도위(協律都尉)까지 되었으나 이 부인이 죽음에 따라 그에 대한 총애도 식어 결국에는 죄에 연좌되어 죽었다. 《史記 卷125 佞幸列傳》
[주D-005]어떻게 해야 옳단 말인가 :
원문은 ‘如之何其可也’인데, 이본들에 따라 ‘如之何而可也’로도 되어 있으나 뜻은 같다.


아! 소위 ‘법고’한다는 사람은 옛 자취에만 얽매이는 것이 병통이고, ‘창신’한다는 사람은 상도(常道)에서 벗어나는 게 걱정거리이다. 진실로 ‘법고’하면서도 변통할 줄 알고 ‘창신’하면서도 능히 전아하다면, 요즈음의 글이 바로 옛글인 것이다.
옛사람 중에 글을 잘 읽은 이가 있었으니
공명선(公明宣)이 바로 그요, 옛사람 중에 글을 잘 짓는 이가 있었으니 회음후(淮陰侯)가 바로 그다. 그것이 무슨 말인가?


[주D-006]공명선(公明宣) : 춘추 시대 노 나라 남무성(南武城) 사람으로 증자(曾子)의 제자이다. 아래의 일화는 《설원(說苑)》과 《소학(小學)》 등에 나온다.
[주D-007]회음후(淮陰侯) :
한 나라 때의 명장 한신(韓信)의 봉호이다. 아래의 일화는 《사기》 권92 회음후열전에 나온다.


공명선이 증자(曾子)에게 배울 때 3년 동안이나 책을 읽지 않기에 증자가 그 까닭을 물었더니,

“제가 선생님께서 집에 계실 때나 손님을 응접하실 때나 조정에 계실 때를 보면서 그 처신을 배우려고 하였으나 아직 제대로 배우지 못했습니다. 제가 어찌 감히 아무것도 배우지 않으면서 선생님 문하에 머물러 있겠습니까.”

라고 대답하였다.
물을 등지고 진(陣)을 치는 배수진(背水陣)은 병법에 보이지 않으니, 여러 장수들이 불복할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회음후는 이렇게 말했다.

“이것은 병법에 나와 있는데, 단지 그대들이 제대로 살피지 못한 것뿐이다. 병법에 그러지 않았던가? ‘죽을 땅에 놓인 뒤라야 살아난다.’고.”

그러므로 무턱대고 배우지는 아니하는 것을 잘 배우는 것으로 여긴 것은 혼자 살던 노(魯) 나라의 남자요, 아궁이를 늘려 아궁이를 줄인 계략을 이어 받은 것은 변통할 줄 안 우승경(虞升卿)이었다. 이로 말미암아 보건대, 하늘과 땅이 아무리 장구해도 끊임없이 생명을 낳고, 해와 달이 아무리 유구해도 그 빛은 날마다 새롭듯이, 서적이 비록 많다지만 거기에 담긴 뜻은 제각기 다르다. 그러므로 날고 헤엄치고 달리고 뛰는 동물들 중에는 아직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것도 있고 산천초목 중에는 반드시 신비스러운 영물(靈物)이 있으니, 썩은 흙에서 버섯이 무럭무럭 자라고, 썩은 풀이 반디로 변하기도 한다.


[주D-008]혼자 …… 남자 : 노 나라에 안숙자(顔叔子)라는 남자가 혼자 살고 있었는데, 이웃에 사는 과부가 밤중에 폭풍우로 집이 무너지자 그를 찾아와 하룻밤 재워 줄 것을 청하니 문을 잠그고 열어 주지 않았다. 과부가 “당신은 어찌하여 유하혜(柳下惠)처럼 하지 않소?” 하자, 그는 “유하혜는 그래도 되지만 난 안 되오. 나는 장차 나의 할 수 없는 점을 가지고 유하혜의 할 수 있는 점을 배우려고 하오.”라고 하였다. 이에 공자가 “유하혜를 배우고자 하는 사람 중에 이와 비슷한 경우는 아직 없었다.”고 칭찬했다 한다. 《詩經 小雅 巷伯 毛傳》 《孔子家語 卷2 好生》
[주D-009]아궁이를 …… 우승경(虞升卿)이었다 :
손빈(孫臏)이 제(齊) 나라의 군사를 거느리고 위(魏) 나라의 장수 방연(龐涓)과 싸우게 되자 첫날에는 취사하는 아궁이를 10만 개 만들었다가 이튿날엔 5만 개로 줄이고 또 그 이튿날엔 3만 개로 줄여 군사들이 겁먹고 도망친 것처럼 보이게 하였다. 이에 방연이 방심하고 보병을 버려둔 채 기병만으로 추격을 하다 마릉(馬陵)에서 손빈의 복병을 만나자 자결하였다. 《史記 卷65 孫子吳起列傳》 후한(後漢) 때의 장수 우후(虞詡)는 자가 승경(升卿)으로, 북방의 오랑캐가 침범했을 때 병력의 열세로 인해 몰리게 되자 구원병이 온다는 거짓 소문을 내고는 아궁이의 수를 매일 늘려 구원병이 계속 늘어나는 것처럼 보이게 하였다. 이에 어떤 이가 묻기를, “손빈은 아궁이의 수를 줄였다는데 그대는 늘리고 있으니, 무슨 까닭이오?” 하자, “손빈은 허약한 척하느라고 아궁이 수를 줄인 것이고 나는 반대로 강하게 보이려고 아궁이 수를 늘린 것이니, 이는 형세가 같지 않기 때문이다.” 하였다. 《後漢書 卷88 虞詡列傳》
[주D-010]해와 …… 유구해도 :
원문은 ‘日月雖久’인데, 《하풍죽로당집》, 《백척오동각집》, 《동문집성(東文集成)》 등에는 ‘日月雖舊’로 되어 있다.


또한 예에 대해서도 시비가 분분하고 악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다. 문자는 말을 다 표현하지 못하고 그림은 뜻을 다 표현하지 못한다. 어진 이는 도를 보고 ‘인(仁)’이라고 이르고 슬기로운 이는 도를 보고 ‘지(智)’라 이른다.
그러므로 백세(百世) 뒤에 성인이 나온다 하더라도 의혹되지 않을 것이라 한 것은 앞선 성인의 뜻이요, 순 임금과 우 임금이 다시 태어난다 해도 내 말을 바꾸지 않으리라 한 것은 뒷 현인이 그 뜻을 계승한 말씀이다. 우 임금과 후직(后稷), 안회(顔回)가 그 법도는 한 가지요, 편협함〔隘〕과 공손치 못함〔不恭〕은 군자가 따르지 않는 법이다.


[주D-011]문자는 …… 못한다 : 《주역》 계사전 상에서 공자가 말하기를 “문자는 말을 다 표현하지 못하고 말은 뜻을 다 표현하지 못한다.〔書不盡言 言不盡意〕”고 하였다. 그런데 《열하일기(熱河日記)》 태학유관록(太學留舘錄) 8월 11일 조에도 공자의 말로 “문자는 말을 다 표현하지 못하고 그림은 뜻을 다 표현하지 못한다.〔書不盡言 圖不盡意〕”고 한 점을 보면, 연암은 《주역》에 나오는 위의 구절을 일부 잘못 기억하고 인용한 듯하다.
[주D-012]어진 …… 이른다 :
역시 《주역》 계사전 상(繫辭傳上)에 나오는 말로, 각자의 본성으로 인해 도(道)를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한다는 뜻이다.
[주D-013]백세(百世) …… 뜻이요 :
《중용장구(中庸章句)》 제 29 장에 “군자의 도는 자기 몸에 근본하여 백성들에게 징험하며, 삼왕(三王)에게 상고하여도 틀리지 않으며, 천지에 세워 놓아도 어긋나지 않으며, 귀신에게 질정하여도 의심이 없으며, 백세 뒤에 성인이 나온다 하더라도 의혹되지 않을 것이다.〔君子之道 本諸身 徵諸庶民 考諸三王而不謬 建諸天地而不悖 質諸鬼神而無疑 百世以俟聖人而不惑〕”라고 한데서 나온 말이다. 앞선 성인은 공자(孔子)를 가리킨다.
[주D-014]순(舜) 임금과 …… 말씀이다 :
《맹자(孟子)》 등문공 하(滕文公下)에, “성인이 다시 태어난다 하더라도 내 말을 바꾸지 않으리라.〔聖人復起 不易吾言矣〕” 한 데서 나온 말이다. 뒷 현인은 맹자를 가리킨다.
[주D-015]우(禹) 임금과 …… 한 가지요 :
《맹자》 이루 하(離婁下)에서 맹자는, 태평성대에 나랏일을 돌보느라 자신의 집을 세 번이나 지나치고도 들르지 않은 우 임금과 후직, 난세를 만나 가난 속에서도 자신의 즐거움을 변치 않은 안회에 대하여 공자가 칭송한 점을 들면서 “우 임금과 후직, 안회는 그 도가 같다.〔禹稷顔回同道〕”고 하였다. 또 같은 편에서 맹자는, 순 임금과 문왕이 살던 지역이 서로 천여 리나 떨어져 있고 살던 시대가 천여 년이나 차이가 있어도 뜻을 얻어 중국에 시행한 것이 마치 부절(符節)을 합한 듯이 똑같음을 들어 “앞선 성인과 뒷 성인이 그 법도는 한 가지이다.〔先聖後聖 其揆一也〕”라고 하였다.
[주D-016]편협함〔隘〕과 …… 법이다 :
《맹자》 공손추 상(公孫丑上)에서 맹자는, 자신의 깨끗함을 지키기 위해 지나칠 정도로 타협하지 않은 백이(伯夷)와 더러운 세태에 아랑곳 않고 그 속에서 자신을 지켜 간 유하혜(柳下惠)를 예로 들면서 “백이는 편협하고 유하혜는 공손하지 못하니 편협함과 공손치 못함은 군자가 따르지 않는다.〔伯夷隘 柳下惠不恭 隘與不恭 君子不由也〕”고 하였다.


박씨의 아들 제운(齊雲)이 나이 스물셋으로 문장에 능하고 호를 초정(楚亭)이라 하는데, 나를 따라 공부한 지 여러 해가 되었다. 그는 문장을 지음에 있어 선진(先秦)과 양한(兩漢) 때 작품을 흠모하면서도 옛 표현에 얽매이지 않는다. 그러나 진부한 말을 없애려고 노력하다 보면 혹 근거 없는 표현을 쓰는 실수를 범하기도 하고, 내세운 주장이 너무 고원하다 보면 혹 상도(常道)에서 자칫 벗어나기도
한다.

이래서 명 나라의 여러 작가들이 ‘법고’와 ‘창신’에 대하여 서로 비방만 일삼다가 모두 정도를 얻지 못한 채 다 같이 말세의 자질구레한 폐단에 떨어져, 도를 옹호하는 데는 보탬이 없이 한갓 풍속만 병들게 하고 교화를 해치는 결과를 낳고 만 것이다. 나는 이렇게 되지나 않을까 두렵다. 그러니 ‘창신’을 한답시고 재주 부릴진댄 차라리 ‘법고’를 하다가 고루해지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주D-017]명 나라의 여러 작가들 : 명 나라 때 이반룡(李攀龍) · 왕세정(王世貞) 등 이른바 칠자(七子)들은 “산문은 반드시 선진(先秦) 양한(兩漢)을 본받고 시는 반드시 성당을 본받아야 한다.〔文必秦漢 詩必盛唐〕”고 하면서 법고만을 일방적으로 주장한 반면, 원굉도(袁宏道) 형제 등 소위 공안파(公安派)들은 “성령을 독자적으로 표현하고 상투적 표현에 얽매이지 말아야 한다.〔獨抒性靈 不拘格套〕”고 하면서 창신만을 일방적으로 추구하였다.


내 지금 《초정집》을 읽고서 공명선과 노 나라 남자의 독실한 배움을 아울러 논하고, 회음후와 우후(虞詡)의 기이한 발상이 다 옛것을 배워서 잘 변화시키지 않은 것이 없음을 나타내 보였다. 밤에 초정(楚亭)과 함께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는 마침내 그 책머리에 써서 권면하는 바이다.

문장을 논한 정도(正道)라 하겠다. 사람을 깨우치는 대목이 마치 구리 고리 위에 은빛 별 표시가 있어 안 보고 더듬어도 치수를 알 수 있는 것과 같다.


이 글에는 두 짝의 문이 있는데, 하나는 끊어진 벼랑이 되고, 다른 하나는 긴 강물이 되었다. ‘명 나라의 여러 작가들이 서로 비방만 일삼다가 하나로 의견이 합치하지 못하고 말았다.’고 한 말은 편언절옥(片言折獄)이라고 이를 만하다.


[주D-018]편언절옥(片言折獄) : 한마디 말로 판정을 내림을 말한다. 《논어》 안연(顔淵)에서 공자는 “한마디 말로 옥사를 결단할 수 있는 자는 아마도 자로(子路)일 것이다.〔片言可以折獄者 其由也與〕”라고 하였다.
[주D-019]문장을 …… 만하다 :
이는 연암의 처남인 이재성(李在誠 : 1751 ~ 1809)이 글 뒤에 붙인 평어(評語)이다. 이하의 평어는 모두 그가 붙인 것이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