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해왕 신화

-三國遺事 紀異第四 脫解王

[은자주] 1989년 9월27일 박인호(57), 유성미씨(50)의 1녀1남 중 둘째로 태어난 마린보이 박태환이 수영장에 처음 발을 담근 것은 5살 때였다고 한다.

박태환의 기사 중 눈길을 끄는 것은 한겨레닷컴 기사였다. 무용수의 유연성과 색소폰 연주자의 폐활량, 아마 맞을 것이다. 원조(遠祖)를 찾는다면 탈해왕과 역시 바다에서 출현한 김수로 왕비 허황후를 들 수 있다.

허황후는 이 불로그에서 소개한 바 있다.

http://blog.paran.com/kydong/24616056

http://blog.paran.com/kydong/24772353

‘천재성+노력’이 피운 ‘불모지의 꽃’

지난해 초부터 1년 남짓 박태환 전담코치를 맡았던 박석기 <문화방송> 해설위원은 박태환의 강점을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타고난 신체와 재질”이라고 잘라 말했다. “수영은 우선 기술부터 만들어줘야 한다. 태환이는 무엇보다 기술이 뛰어나다. 1m83, 74㎏으로 서양 선수들보다 작지만 기술로 체력을 이긴다.” 박태환의 유연성이 남다른 것은, 젊었을 때 무용을 했던 어머니 유성미(51)씨의 피를 물려받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폐활량은 보통 사람의 경우 3천∼4천㏄ 정도인데, 7천㏄나 된다는 게 코칭스태프의 설명. 이것도 색소폰 주자였던 부친 박인호(58)씨의 영향을 받았다.

脫解齒叱今(一作吐解尼師今)

*[은자주]叱과 師는 사잇소리 "ㅅ“ 표기임, 齒는 훈독,尼는 음독.

탈해 닛금(토해 닛금)은

南解王時

남해왕 때에

(古本云 壬寅年至者謬矣. 近則後於弩禮卽位之初 無爭讓之事 前則在於赫居之世 故知壬寅非也)

(일연주;고본에 이르기를, 임인년에 왔다는 것은 잘못이다. 가깝다면 노례왕 즉위초보다 뒤이니 왕위를 다투어 양보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요, 앞서다면 혁거세왕 때에 있었을 것이므로 임인년은 아니다.)

駕洛國海中有船來泊

가락국의 바다에 어떤 배가 와서 닿았다.

其國首露王

그 나라의 수로왕이

與臣民鼓譟而迎 將欲留之

신하와 백성들과 북을 치고 떠들면서 머무르게 하려고 했으나

而舡乃飛走 至於鷄林東下西知村阿珍浦(今有上西知下西知村名)

배는 급히 달아나 계림의 동쪽 하서지촌 아진포에 이르렀다.

時浦邊有一嫗 名阿珍義先

이때 갯가에 한 늙은 할멈이 이름을 아진의선이라 하였는데

乃赫居王之海尺之母

이가 바로 혁거세왕 때의 고기잡이 할멈이었다.

望之謂曰

그녀는 배를 바라보고 말했다.

此海中元無石嵓

“이 바다 가운데에 원래 바위가 없는데

何因鵲集而鳴

어찌해서 까치가 모여서 울고 있는가.”

拏舡尋之 鵲集一舡上

배를 끌어당겨 찾아보니 까치가 배 위에 모여들고

舡中有一櫃子 長二十尺 廣十三尺

그 배 안에 궤 하나가 있었는데, 길이는 스무자나 되고 넓이는 열 세 자였다.

曳其船 置於一樹林下

그 배를 끌어다가 나무 숲 밑에 매어두고

而未知凶乎吉乎

이것이 흉한 일인지 길하 일인지를 몰라

向天而誓爾

하늘을 향해 고하였다.

俄而乃開見 有端正男子

얼마 후에 궤를 열어보니 잘 생긴 사내아이가 있었고,

竝七寶奴婢滿載其中

또 일곱 가지 보물과 노비가 그 속에 가득하였다.

供給七日 迺言曰

이레동안 잘 대접하였더니 그 사내아이는 말하였다.

我本龍城國人(亦云正明國 或云琓夏國 琓夏或作花廈國 龍城在倭東北一千里)

“나는 본시 용성국 사람으로

我國嘗有二十八龍王 從人胎而生

우리나라엔 일찌기 28용왕이 있었는데 모두 다 사람의 태에서 났으며,

自五歲六歲 繼登王位

5-6세 때부터 왕위에 올라

敎萬民修正性命

만민을 가르쳐 성명(性命)을 바르게 하였습니다.

而有八品姓骨

팔품의 성골이 있는데

然無揀擇 皆登大位

그들은 간택하는 일이 없이 모두 왕위에 올랐습니다.


時我父王含達婆 聘積女國王女爲妃

이때 우리 부왕 함달파가 적녀국의 왕녀를 맞이하여 왕비로 삼았는데

久無子胤 禱祀求息

오래도록 아들이 없으므로 기도를 하여 자식을 빌었는데

七年後産一大卵

7년만에 커다란 알 하나를 낳았습니다.

於是大王會問群臣

이에 대왕은 군신을 소집하여 묻기를,

人而生卵

“사람으로 알을 낳은 일은

古今未有 殆非吉祥

고금에 없는 일이며 아마도 길하고 상서로운 일은 아닐 것이다.“ 하고

乃造櫃置我

궤를 만들어서 나를 그 속에다 넣고

幷七寶奴婢載於舡中

일곱 가지 보물과 노비들을 함께 배 안에 실은 후에

浮海而祝曰

바다에 띄우고 축원하기를,

任到有緣之地 立國成家

‘마음대로 인연이 있는 땅에 닿아 국가를 세우라.’고 하였습니다.

便有赤龍 護舡而至此矣

문득 붉은 용이 나타나 배를 호위하고 여기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言訖 其童子曳杖率二奴

말을 끝내자 그 아이는 지팡이를 끌고 두 종을 데리고

登吐含山上作石塚 留七日

토함산 위에 올라가 돌집을 지어 그 곳에서 아레 동안 머물렀다.

望城中可居之地 見一峯如三日月

성 안에 살만한 곳을 바라보다가 마치 초승달 모양으로 된 봉우리가 보았는데

勢可久之地

그 지세가 오래 살만한 땅이었다.

乃下尋之 卽瓠公宅也

이에 내려와서 그 곳을 찾아가 보니 바로 호공[朴公]의 집이었다.

乃設詭計 潛埋礪炭於其側

이에 지략을 써서 몰래 숫돌과 숯을 그 집 곁에 묻어놓고

詰朝至門云

다음날 아침 그 집 문 앞에 가서 말했다.

此是吾祖代家屋

“이 집은 조상 대대로 이어온 우리집입니다.”

瓠公云 否 爭訟不決 乃告于官

호공이 그렇지 않다고 하여 쟁송이 판결나지 않아 관가에 고했다.

官曰 以何驗是汝家

관가에서 동자에게 물었다.

“무슨 증거로 너의 집인고?”

童曰

아이가 말했다.

我本冶匠 乍出隣鄕

“나는 본시 대장장이였는데 잠시 이웃 고을에 나간 동안에

而人取居之 請掘地撿看

다른 사람이 빼앗아서 살고 있으므로 땅을 파서 조사해 보기를 청합니다.”

從之 果得礪炭

그 말을 따랐다. 과연 숫돌과 숯이 나왔다.

乃取而居焉

이에 그 집을 빼앗아 살았다.

時南解王知脫解是智人

이 때 남해왕은 탈해가 지혜로운 사람임을 알고

以長公主妻之 是爲阿尼夫人

맏공주를 그의 아내로 삼게 하니 이가 곧 아니부인이었다.


一日吐解登東岳 廻程次

하루는 탈해가 동악에 올랐다가 돌아오는 길에

令白衣索水飮之

백의(白衣)에게 물을 찾아 떠오게 하였다.

白衣汲水中路先嘗而進

백의는 물을 떠서 가지고 오다가 중도에서 자기가 먼저 마시고 탈해에게 올리려고 하였다.

其角杯貼於口不解. 因而嘖之 白衣誓曰

뿔잔이 입이 붙어 떨어지지 않아 탈해가 이로 인하여 꾸짖었다. 백의가 맹세했다.

爾後若近遙不敢先嘗

“이제는 가까운 곳이든 먼 곳이든 먼저 마시지 않겠습니다.”

然後內解

걸한 후에 뿔잔이 입에서 떨어졌다.

自此白衣 讋服 不敢欺罔

그 이후로 백의는 탈해를 두려워하여 감히 속이지 않았다.

今東岳中有一井 俗云遙乃井是也

지금 동악에 우물 하나가 있는데, 세상사람들이 요내정이라 말하는 것이 바로 그 우물이다.

及弩禮王崩 以光虎帝中元六(二)年丁巳六月 乃登王位

노례왕이 붕어하시고 광무제 중원 6년(57년) 6월에 탈해는 왕위에 올랐다.


以昔是吾家取他人家 故因姓昔氏

옛날에 자기 집이라 하여 남의 집을 빼앗았으므로 인하여 성을 석(昔)씨라고 하였다.

或云 因鵲開櫃 故去鳥字 姓昔氏

혹은 까치로 인해서 상자를 열었으므로 ‘鵲자에서 새 조(鳥)를 제거하고 성을 석(昔)씨로 했다고도 한다.

解櫃脫卵而生 故因名脫解

그리고 궤를 열자 알을 깨고 나왔으므로 탈해라고 이름했다고 한다.


在位二十三年 建初四年己卯崩

왕위에 오른 지 23년만인 건초 4년(79년)에 붕어하셨다.

葬䟽川丘中 後有神詔

소천구에 장례를 지냈는데 그 후 신이 명령하기를,

愼埋葬我骨

'내 뼈를 조심해서 묻어라' 했다고 한다.

其觸髏周三尺二寸 身骨長九尺七寸

두개골의 둘레는 3자 2치였고 신장 뼈의 길이는 9자 7치였다.

齒凝如一 骨節皆連琑

치아[齒]는 서로 엉기어 하나가 된 듯하고 뼈마디 사이는 모두 연이어져 있어,

所謂天下無敵力士之骨

이른바 바로 천하에 적이 없는 역사의 골격이었다.

碎爲塑像 安闕內

뼈를 부수어서 소상(塑像)을 만들어 대궐 안에 안치했다.

神又報云

탈해신이 또 말하기를,

我骨置於東岳 故令安之

“내 뼈를 동악에 안치하라,” 고 하였다. 그러므로 그 곳에 모시게 하였다.

(一云 崩後二十七世文虎王代 調露二年庚辰三月十五日辛酉夜

見夢於太宗 有老人貌甚威猛曰

태종에게 현몽하였다. 노인의 모습이 심히 위엄 있고 용맹한 이가 말하기를,

我是解脫也 拔我骨於䟽川丘

“나는 탈해이다. 소천구에서 내 유골을 추려서

塑像安於土含山.

소상을 토함산에 안치하라.”고 했다

王從其言 故至今國祀不絶

태종대왕은 그 말을 따랐으므로 지금껏 나라에서 지내는 제사가 끊어지지 아니하니,

卽東岳神也云)

곧 동악신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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