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열전 제70 자서
[사마천 자서의 변]
52만6천5백자로 130편의 <태사공서>를 짓다
(은자주)‘사기(史記)’의 처음 이름은 ‘태사공서(太史公書)’였다. 남북조시대부터 ‘사기’란 이름으로 바뀌었다.
1384. 維我漢繼五帝末流(유아한계오제말류),
우리 한나라는 오제의 뒤를 이었으며
1385. 接三代(統)(絶)業(접삼대(통)(절)업).
삼대의 유업을 계승하였다.
1386. 周道廢(주도폐),
주나라의 도가 폐하게 되니
1387. 秦拔去古文(진발거고문),
진나라가 서서 옛날의 고적들을 없애고
1388. 焚滅<詩><書>(분멸<시><서>),
<시(詩)>와 <서(書)>를 불살랐다.
1389. 故明堂石室金櫃玉版圖籍散亂(고명당석실금궤옥판도적산란).
그 결과 명당(明堂)의 석실에 보관되어 있던 금궤와 옥판의 지도와 서적들이 모두 흩어져 엉망이 되어버렸다.
1390. 于是漢興(우시한흥),
이어서 한나라가 흥기하자
1391. 蕭何次律令(소하차율령),
소하가 율령을 차례로 발하고
1392. 韓信申軍法(한신신군법),
한신(韓信)은 군법을 밝혔으며
1393. 張蒼爲章程(장창위장정),
장창은 법규를,
1394. 叔孫通定禮儀(숙손통정예의),
그리고 숙손통은 예의를 정했다.
1395. 則文學彬彬稍進(즉문학빈빈초진),
이로써 한나라는 문학이 일어나 찬란하게 빛나게 되었고
1396. <詩><書>往往間出矣(<시><서>왕왕간출의).
<시(詩)>와 <서(書)>가 세상에 나돌기 시작했다.
1397. 自曹參 盖公言黃老(자조참천개공언황노).
조참은 개공을 무제에게 천거하여 황제와 노자의 사상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고
1398. 而賈生(이가생),
또한 가생과
1399. 晁錯明申, 商(조착명신, 상),
조착은 신자와 상군의 법가사상을 밝혔다.
1400. 公孫弘以儒顯(공손홍이유현),
공손홍은 유학으로써 세상에 빛을 발하고
1401. 百年之間(백년지간),
그 백년 동안의
1402. 天下遺文古事靡不畢集太史公(천하유문고사미불필집태사공).
천하에 남겨진 글과 옛날 전적들이 태사공에게 모이지 않은 것들이 없었다.
1403. 太史公仍父子相續纂其職(태사공잉부자상속찬기직.
태사공의 직책에는 사마담과 사마천 부자가 계속해서 임명되었다.
1404. 曰: "於戱! (왈 : "어희)
사마천이 말했다. " 아아!
1405. 余維先人嘗掌斯事(여유선인상장사사),
우리들 선조들께서 이 이일을 일찍이 맡아하여
1406. 顯于唐虞(현우당우),
우임금 때 벌써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하여
1407. 至于周(지우주),
주조에 이르러
1408. 復典之(복전지),
다시 그 직을 맡게 되었다.
1409. 故司馬氏世主天官(고사마씨세주천관).
이런 연고로 사마씨는 대를 이어 천관을 맡아하다가
1410. 至于余乎(지우여호),
이윽고 나에게까지 이른 것인가?
1411. 欽念哉!(흠념재)"
경건한 마음을 갖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1412. 罔羅天下放失舊聞(망라천하방실구문),
이미 없어진 구문들을 천하에서 모아서
1413. 王迹所興(왕적소흥),
왕들의 사적을 통해서 그 흥함의 처음을 찾고
1414. 原始察終(원시찰종),
끝을 살펴서
1415. 見盛觀衰(견성관쇠),
흥망성쇠를 보고자 하였으며
1416. 論考之行事(논고지행사),
그 일의 진행을 사실적으로 고찰하여
1417. 略推三代(략추삼대),
삼대의 일을 간략히 추정하였으며,
1418. 錄秦漢(록진한),
진한시대의 기록에 유추하여
1419. 上記軒轅(상기헌원),
위로는 황제부터 기록하여
1420. 下至于玆(하지우자),
지금의 금상폐하에 이르기까지
1421. 著十二本紀(저십이본기),
모두
12본기
를 지은 것은
1422. 旣科條之矣(기과조지의).
모두 조례를 만들어 그 틀 안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1423. 幷時異世(병시지세),
시대가 같기도 하고, 세대가 다르기도 하여
1424. 年差不明(연차불명),
그 연차가 확실하지 않아
1425. 作十表(작십표).
모두 10개의 연표를 만들었다.
1426. 禮樂損益(예악손익),
예와 악은 없어지고 혹은 더하여지기도 하였으며
1427. 律歷改易(율력개이),
율력은 새로 바뀌어 졌다.
1428. 兵權, 山川, 鬼神(병권, 산천, 귀신),
또한 병사와 권모의 일, 지방제도, 제사에 관한 일
1429. 天人之際(천인지제),
하늘과 사람과의 관계 등에 대해
1430. 承 通變(승폐통변),
그 폐단을 밝혀 변화에 응하게하고자
1431. 作八書(작팔서).
<서(書)> 8편을 지었다.
1432. 二十八宿環北辰(이십팔수환북신),
28팔 수가 북극성을 중심으로 돌고있고
1433. 三十輻共一 (삼십복공일곡),
30개의 바퀴살이 모두 한 개의 속바퀴에 집중되어 있으나
1434. 運行無窮(운행무궁)
그 운행의 법측은 무궁하듯이
1435. 輔拂股肱之臣配焉(보불고굉지신배언),
왕들을 보필하던 고굉지신들을 이것에 빗대어
1436. 忠信行道(충신행도),
충신들이 도를 행하고
1437. 以奉主上(이봉주상),
그 임금을 받든 사람들에 관하여
1438. 作三十世家(작삼십세가).
세가 30편을 지었다.
1439. 扶義 (부의숙당),
의를 부양하고 기개가 있어 남에게 억눌리지 않으며
1440. 不令己失時(불령기실시),
세상에 처하여 기회를 놓치지 않고
1441. 入功名于天下(입공명우천하),
공명을 세상에 세운
1442. 作七十列傳(작칠십열전).
열전 70편을 지었다.
1443. 凡百三十篇(범백삼입편),
모두 130편에
1444. 五十二萬六千五百字(오십이만육천오백자),
52만6천5백자
로
1445. 爲<太史公書>(위<태사공서>.)
<태사공서>라 이름 짓는다.
1446. 序略以拾遺補藝(서략이습유보예),
이 서문은 개략적으로 흩어져 있는 것을 수습하여
1447. 成一家之言(성일가지언),
일가의 말을 이루어
1448. 厥協<六經>異傳(궐협<육경>이전),
육경 외에 전하여지는 것을 보충하여
1449. 整齊百家雜語(정제백가잡어),
백가와 잡어를 정리한 것이다.
1450. 藏之名山(장지명산),
정본은 명산에 보관하고
1451. 副在京師(부재경사),
부본은 서울에 두어
1452. 俟后世聖人君子 第七十
(의후세성인군자 제칠십)..
후세의 성인군자들의 손길을 기다리기로 했다. 열전 제70.
[은자주] 열전 제70은 ‘태사공 자서’이다.
1453. 太史公曰(태사공왈):
태사공이 말한다.
1454. 余述曆黃帝以來至太初而訖(여술력황제이래지태초이흘),
"내가 황제로부터 태초연간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기술하여
1455. 百三十篇(백삼십편)
130편의 역사서를 지었다."
[太史公自序 大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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