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과거를 포기한 후 그의 삶은 북학에 취한 화려한 백수였지만 44세에 잡은 단 한 번의 연행 경험은 조선후기 저술중 제1반열을 차지하는 불후의 명작 <열하일기> 를 기술하는 데 성공했다. 일반 연행록은 낙점에서 이별잔치, 출발 등으로 시작하지만 그의 연행록은 대뜸 '도강록'에서 시작된다. 인상 깊은 것을 적어야 한다는 글쓰기의 탄탄한 기본이 유감없이 발휘되는 현장이다. 그가 읽은 명문들은 다 그랬기 때문이다. 출사에 대한 보장은 없었지만 국가경영은 이렇게 해야 한다는 20년에 걸친 북학공부를 단 한 권의 책에 녹여냈다. 국가경영에 대한 그의 경륜을 압축한 것이 <허생전>이라고 보면 된다. 그래서 작품의 구성도 그의 지론인 이용, 후생, 정덕, 현실비판으로 맞아떨어진다.작품 속의 무인도 개척은 흔히 <홍길동전>의 율도국애 비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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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생전(許生傳)-박지원(朴趾源)

  허생전(許生傳)-박지원(朴趾源)   허생전-박지원(朴趾源)   許生居墨積洞(허생거묵적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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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생전(許生傳)-박지원(朴趾源)

 

[1]이용(利用)

 

1)선비 허생의 가난한 삶

 

許生居墨積洞(허생거묵적동) : 허생은 묵적골(墨積洞)에 살았다.

直抵南山下(직저남산하) : 곧장 남산(南山) 밑에 닿으면,

井上有古杏樹(정상유고행수) : 우물 위에 오래 된 은행나무가 서 있고,

柴扉向樹而開(시비향수이개) : 은행나무를 향하여 사립문이 열였는데,

草屋數間(초옥수간) : 두어 칸 초가는

不蔽風雨(불폐풍우) : 비바람을 막지 못할 정도였다.

然許生好讀書(연허생호독서) : 그러나 허생은 글읽기만 좋아하고,

妻爲人縫刺以糊口(처위인봉자이호구)

: 그의 처가 남의 바느질 품을 팔아서 입에 풀칠을 했다.

一日妻甚饑(일일처심기) : 하루는 그 처가 몹시 배가 고파서

泣曰(읍왈) : 울음 섞인 소리로 말했다.

子平生不赴擧(자평생불부거) : "당신은 평생 과거(科擧)를 보지 않으니,

讀書何爲(독서하위) : 글을 읽어 무엇 합니까?"

許生笑曰(허생소왈) : 허생은 웃으며 대답했다.

吾讀書未熟(오독서미숙) : "나는 아직 독서를 익숙히 하지 못하였소."

妻曰(처왈) : 처가 말하기를

不有工乎(불유공호) : "그럼 장인바치 일이라도 못 하시나요?"

生曰(생왈) : 허생이 이르기를

工未素學奈何(공미소학내하)

: "장인바치 일은 본래 배우지 않았는 걸 어떻게 하겠소?"

妻曰(처왈) : 처가 이르기를

不有商乎(불유상호) : "그럼 장사는 못 하시나요?"

生曰(생왈) : 허생이 이르기를

商無本錢奈何(상무본전내하) : "장사는 밑천이 없는 걸 어떻게 하겠소?"

其妻恚且罵曰(기처에차매왈) : 처는 왈칵 성을 내며 꾸짓지를

晝夜讀書(주야독서) : "밤낮으로 글을 읽더니

只學奈何(지학내하) : 기껏 '어떻게 하겠소?' 소리만 배웠단 말씀이오?

不工不商(불공불상) : 장인바치 일도 못 한다, 장사도 못 한다면,

何不盜賊(하불도적) : 도둑질은 어찌 못 하시나요?"

 

2)열받은 허생, 이용(利用)에 나서다

 

(1)허생, 변부자에게 만냥을 빌리다

 

許生掩卷起曰(허생엄권기왈) : 허생은 읽던 책을 덮어놓고 일어나며 이르기를

惜乎(석호) : "아깝다.

吾讀書本期十年(오독서본기십년) : 내가 당초 글읽기로 십 년을 기약했는데,

今七年矣(금칠년의) : 인제 칠 년이로다."하고

出門而去(출문이거) : 문 밖으로 나가 버렸다.

無相識者(무상식자) : 허생은 거리에 서로 알 만한 사람이 없었다.

直之雲從街(직지운종가) : 바로 운종가(雲從街)로 나가서

問市中人曰(문시중인왈) : 시중의 사람을 붙들고 묻기를

漢陽中誰最富(한양중수최부) : "누가 서울 성중에서 제일 부자요?"

有道卞氏者(유도변씨자) : 변씨(卞氏)를 말해 주는 이가 있어서,

遂訪其家(수방기가) : 마침내 곧 변씨의 집을 찾아갔다.

 

許生長揖曰(허생장읍왈) : 허생은 변씨를 대하여 길게 읍(揖)하고 말했다.

吾家貧(오가빈) : "내가 집이 가난해서

欲有所小試(욕유소소시) : 무얼 좀 해 보려고 하니,

願從君借萬金(원종군차만금) : 만 냥(兩)을 뀌어 주시기 바랍니다."

卞氏曰諾(변씨왈낙) : 변씨는 말하기를 "그러시오." 하고

立與萬金(립여만금) : 당장 만 냥을 내주었다.

客竟不謝而去(객경불사이거) : 허생은 감사하다는 인사도 없이 가 버렸다.

 

子弟賓客(자제빈객) : 변씨 집의 자제와 손들이

視許生丐者也(시허생개자야) : 허생을 보니 거지였다.

絲絛穗拔(사조수발) : 실띠의 술이 빠져 너덜너덜하고,

革屨跟顚(혁구근전) : 갖신의 뒷굽이 자빠졌으며,

笠挫袍煤(립좌포매) : 쭈그러진 갓에 허름한 도포를 걸치고,

鼻流淸涕(비류청체) : 코에서 맑은 콧물이 흘렀다.

 

客旣去(객기거) : 허생이 나가자,

皆大驚曰(개대경왈) : 모두들 크게 놀라서 묻기를

大人知客乎(대인지객호) : "대인은 저이를 아시나요?"

曰不知也(왈불지야) : 이르기를 "모르지"

今一朝(금일조) : "아니, 이제 하루 아침에,

浪空擲萬金於生平所不知何人(랑공척만금어생평소불지하인)

: 평생 누군지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만 냥을 그냥 내던져 버리고

而不問其姓名何也(이불문기성명하야)

: 성명도 묻지 않으시다니, 대체 무슨 영문인가요?"

 

卞氏曰(변씨왈) : 변씨가 이르기를

此非爾所知(차비이소지) : "이건 너희들이 알 바 아니다.

凡有求於人者(범유구어인자) : 대체로 남에게 무엇을 빌리러 오는 사람은

必廣張志意(필광장지의) : 반드시 자기 뜻을 대단히 선전하고,

先耀信義(선요신의) : 신용을 자랑하면서도

然顔色媿屈(연안색괴굴) : 비굴한 빛이 얼굴에 나타나고,

言辭重複(언사중복) : 말을 중언부언하게 마련이다.

彼客衣屨雖弊(피객의구수폐) : 그런데 저 객은 형색은 허술하지만,

辭簡而視傲(사간이시오) : 말이 간단하고, 눈을 오만하게 뜨며,

容無怍色(용무작색) : 얼굴에 부끄러운 기색이 없는 것으로 보아,

不待物而自足者也(불대물이자족자야)

: 재물이 없어도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사람이다.

彼其所試術不小(피기소시술불소)

: 그 사람이 해 보겠다는 일이 작은 일이 아닐 것이매,

吾亦有所試於客(오역유소시어객) : 나 또한 그를 시험해 보려는 것이다.

不與則已(불여칙이) : 안 주면 그만둘지 언정

旣與之萬金(기여지만금) : 이왕 만 냥을 주는 바에

問姓名何爲(문성명하위) : 성명은 물어 무엇하겠느냐?"

 

(2)허생, 안성에서 제수 과일을 독과점하다

 

於是許生旣得萬金(어시허생기득만금) : 허생은 만 냥을 얻자,

不復還家(불부환가) : 다시 자기 집에 들르지도 않고 바로 안성(安城)으로 내려갔다.

以爲安城畿湖之交(이위안성기호지교) : 언뜻 생각하기를,

‘저 안성(安城)은 기(畿)ㆍ호(湖)의 접경이요,

三南之綰口(삼남지관구) : 삼남(三南)의 어귀이다.’하고는,

遂止居焉(수지거언) : 곧 이에 머물러 살았다.

棗栗柹梨柑榴橘柚之屬(조률시리감류귤유지속)

: 그리하여 대추ㆍ밤ㆍ감ㆍ배ㆍ감자ㆍ석류ㆍ귤ㆍ유자 등을

皆以倍直居之(개이배직거지) : 모두 값을 배로 주고 사서 저장했다.

許生榷菓(허생각과) : 허생이 과일을 몽땅 쓸었기 때문에

而國中無以讌祀(이국중무이연사) : 온 나라가 잔치나 제사를 못 지낼 형편에 이르렀다.

居頃之(거경지) : 얼마 안 가서,

諸賈之獲倍直於許生者(제가지획배직어허생자)

: 허생에게 두 배의 값으로 과일을 팔았던 사람들이

反輸十倍(반수십배) : 도리어 열 배의 값을 주고 사 가게 되었다.

許生喟然嘆曰(허생위연탄왈) : 허생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탄식하며 이르기를.

以萬金傾之(이만금경지) : "만 냥으로 온갖 과일의 값을 좌우했으니,

知國淺深矣(지국천심의) : 우리 나라의 형편을 알 만하구나."

 

(3)제주도에 들어가 말총을 독과점하다

 

以刀鏄布帛綿入濟州(이도단포백면입제주) : 그는 다시 칼, 호미, 포목 따위를 가지고 제주도(濟州島)에 건너가서

悉收馬鬉鬣曰(실수마종렵왈) : 말총을 죄다 사들이면서 이르기를

居數年(거수년) : "몇 해 지나면

國人不裹頭矣(국인불과두의) : 나라 안의 사람들이 머리를 싸매지 못할 것이다."

居頃之(거경지) : 얼마 안 가서

網巾價至十倍(망건가지십배) : 과연 망건값이 열 배로 뛰어올랐다.

 

[2]후생(厚生)

1)허생, 사공에게 길을 묻다

 

許生問老篙師曰(허생문로고사왈) : 허생은 늙은 사공을 만나 말을 묻기를

海外豈有空島可以居者乎(해외기유공도가이거자호)

: "바다 밖에 혹시 사람이 살 만한 빈 섬이 없던가?"

篙師曰(고사왈) : 사공이 이르기를

有之(유지) : "있습지요.

常漂風直西行三日夜(상표풍직서행삼일야)

: 언젠가 풍파를 만나 서쪽으로 줄곧 사흘 동안을 흘러가서

泊一空島(박일공도) : 어떤 빈 섬에 닿았습지요.

計在沙門長崎之間(계재사문장기지간)

: 아마 사문(沙門)과 장기(長崎)의 중간쯤 될 겁니다.

花木自開(화목자개) : 꽃과 나무는 제멋대로 무성하여

菓蓏自熟(과라자숙) : 과일 열매가 절로 익어 있고,

麋鹿成群(미록성군) : 짐승들이 떼지어 놀며,

游魚不驚(유어불경) : 물고기들이 사람을 보고도 놀라지 않습니다."

許生大喜曰(허생대희왈) : 그는 대단히 기뻐하며 이르기를

爾能導我(이능도아) : "자네가 만약 나를 그 곳에 데려다 준다면

富貴共之(부귀공지) : 함께 부귀를 누릴 걸세."라고 말하니,

篙師從之(고사종지) : 사공이 그러기로 승낙을 했다.

遂御風東南(수어풍동남) : 드디어 바람을 타고 동남쪽으로 가서

入其島(입기도) : 그 섬에 들어갔다.

許生登高而望(허생등고이망) : 허생은 높은 곳에 올라가서 사방을 들러보고

悵然曰(창연왈) : 실망하여 말하기를

地不滿千里(지불만천리) : "땅이 천 리도 못 되니

惡能有爲(악능유위) : 무엇을 해 보겠는가?

土肥泉甘(토비천감) : 토지가 비옥하고 물이 좋으니

只可作富家翁(지가작부가옹) : 단지 부가옹(富家翁)은 될 수 있겠구나."

 

篙師曰(고사왈) : 사공이 이르기를

島空無人(도공무인) : "텅 빈 섬에 사람이라곤 하나도 없는데,

尙誰與居(상수여거) : 대체 누구와 더불어 사신단 말씀이오?"

許生曰(허생왈) : 허생이 이르기를

德者人所歸也(덕자인소귀야) : "덕(德)이 있으면 사람이 절로 모인다네.

尙恐不德(상공불덕) : 덕이 없을까 두렵지,

何患無人(하환무인) : 사람이 없는 것이야 근심할 것이 있겠나?"

 

2)변산 도적떼를 빈 섬으로 데려가다

 

是時邊山群盜數千(시시변산군도수천)

: 이 때, 변산(邊山)에 수천의 군도(群盜)들이 우글거리고 있었다.

州郡發卒逐捕(주군발졸축포) : 각 지방에서 군사를 징발하여 수색을 벌였으나

不能得(불능득) : 좀처럼 잡히지 않았고,

然群盜亦不敢出剽掠(연군도역불감출표략) : 군도들도 감히 나가 활동을 못 해서

方饑困(방기곤) : 바야흐로 배고프고 곤란한 판이었다.

 

許生入賊中說其魁帥曰(허생입적중설기괴수왈)

: 허생이 군도의 산채를 찾아가서 우두머리를 달래어 이르기를

千人掠千金(천인략천금) : "천 명이 천 냥을 빼앗아 와서

所分幾何(소분기하) : 나누면 하나 앞에 얼마씩 돌아가지요?"

曰人一兩耳(왈인일량이) : 이르기를 "일 인당 한 냥이지요."

許生曰(허생왈) : 허생이 이르기를

爾有妻乎(이유처호) : "모두 아내가 있소?"

群盜曰無(군도왈무) : 군도들이 이르기를 "없소."

曰爾有田乎(왈이유전호) : 이르기를 "논밭이 있소?"

群盜笑曰(군도소왈) : 군도들이 어이없어 웃었다.

有田有妻(유전유처) : "땅이 있고 처자식이 있는 놈이

何苦爲盜(하고위도) : 무엇 때문에 괴롭게 도둑이 된단 말이오?"

 

許生曰(허생왈) : 허생이 이르기를

審若是也(심약시야) : "정말 그렇다면,

何不娶妻樹屋(하불취처수옥) : 왜 아내를 얻고, 집을 짓고,

買牛耕田(매우경전) : 소를 사서 논밭을 갈고 지내려 하지 않는가?

生無盜賊之名(생무도적지명) : 그럼 도둑놈 소리도 안 듣고 살면서,

而居有妻室之樂(이거유처실지악) : 집에는 부부의 낙(樂)이 있을 것이요,

行無逐捕之患(행무축포지환) : 돌아다녀도 잡힐까 걱정을 않고

而長享衣食之饒乎(이장향의식지요호) : 길이 의식이 요족을 누릴 텐데."

 

群盜曰(군도왈) : 군도가 이르기를

豈不願如此(기불원여차) : "아니, 왜 이렇게 되기를 바라지 않겠소?

但無錢耳(단무전이) : 다만 돈이 없어 못할 뿐이지요."

許生笑曰(허생소왈) : 허생이 웃으며 이르기를

爾爲盜何患無錢(이위도하환무전) : "도둑질을 하면서 어찌 돈을 걱정할까?

吾能爲汝辦之(오능위여판지) : 내가 능히 당신들을 위해서 마련 할 수 있소.

明日(명일) : 내일

視海上風旗紅者(시해상풍기홍자) : 바다에 나와 붉은 깃발을 단 것이 보이면

皆錢船也(개전선야) : 모두 돈을 실은 배이니,

恣汝取去(자여취거) : 마음대로 가져가구려."

許生約群盜(허생약군도) : 허생이 군도와 언약하고

旣去(기거) : 내려가자,

群盜皆笑其狂(군도개소기광) : 군도들은 모두 그를 미친 놈이라고 비웃었다.

 

及明日(급명일) : 이튼날이 되어,

至海上(지해상) : 군도들이 바닷가에 나가 보았더니,

許生載錢三十萬(허생재전삼십만) : 과연 허생이 삼십만 냥의 돈을 싣고 온 것이었다.

皆大驚羅拜曰(개대경라배왈) : 모두들 대경(大驚)해서 허생 앞에 줄지어 절했다.

唯將軍令(유장군령) : "오직 장군의 명령을 따르겠소이다."

許生曰(허생왈) : 허생이 이르기를

惟力負去(유력부거) : "힘을 생각하여 지고 가거라힘껏 백 냥도 못 지면서

於是群盜(어시군도) : 너희들, 이에 군도들이

爭負錢(쟁부전) : 다투어 돈을 질머졌으나

人不過百金(인불과백금) : 사람마다 백 금을 넘지 못했다

許生曰(허생왈) : 허생이 이르기를

爾等力不足以擧百金(이등력불족이거백금)

: 이제 너희들이 힘이 부족하여 백 금도 들 수 없으니

何能爲盜(하능위도) : 무슨 도둑질을 하겠느냐?

今爾等雖欲爲平民(금이등수욕위평민)

: 인제 너희들이 양민(良民)이 되려고 해도,

名在賊簿(명재적부) : 이름이 도둑의 장부에 올랐으니,

無可往矣(무가왕의) : 갈 곳이 없다.

 

吾在此俟汝各持百金而去(오재차사여각지백금이거)

: 내가 여기서 너희들을 기다릴 것이니, 한 사람이 백 냥씩 가지고 가서

人一婦一牛來(인일부일우래)

: 사람마다 여자 하나, 소 한 필을 거느리고 오너라."

群盜曰諾(군도왈낙) : 군도들은 ‘좋다’고 하고

皆散去(개산거) : 모두 흩어져 갔다.

許生自具二千人一歲之食以待之(허생자구이천인일세지식이대지)

: 허생은 몸소 이천 명이 1 년 먹을 양식을 준비하고 기다렸다.

及群盜至(급군도지) : 군도들이 빠짐없이 모두 돌아왔다.

無後者(무후자) : 뒤진 자가 아무도 없었다

遂俱載入其空島(수구재입기공도) : 드디어 다들 배에 싣고 그 빈 섬으로 들어갔다.

許生榷盜而國中無警矣(허생각도이국중무경의) : 허생이 도둑을 몽땅 쓸어 가서 나라 안에 시끄러운 일이 없었다

 

3)농산물을 장기도에 가서 무역하다-해외무역

 

於是伐樹爲屋(어시벌수위옥) : 그들은 나무를 베어 집을 짓고,

編竹爲籬(편죽위리) : 대(竹)를 엮어 울을 만들었다.

地氣旣全(지기기전) : 땅기운이 온전하기 때문에

百種碩茂(백종석무) : 백곡이 잘 자라서,

不菑不畬(불치불여) : 한 해나 세 해만큼 걸러 짓지 않아도

一莖九穗(일경구수) : 한 줄기에 아홉 이삭이 달렸다.

留三年之儲(류삼년지저) : 3 년 동안의 양식을 비축해 두고,

餘悉舟載往糶長崎島(여실주재왕조장기도) : 나머지를 모두 배에 싣고 장기도(長崎島)로 가져가서 팔았다.

長崎者(장기자) : 장기라는 곳은

日本屬州(일본속주) : 일본(日本)의 속주(屬州)이니

戶三十一萬(호삼십일만) : 삼십만여 호가 된다

方大饑(방대기) : 그 지방이 한참 흉년이 들어서

遂賑之(수진지) : 구휼하고

獲銀百萬(획은백만) : 은 백만 냥을 얻게 되었다.

 

4)이상적인 섬의 새로운 질서를 만들다

 

許生歎曰(허생탄왈) : 허생이 탄식하며 이르기를

今吾已小試矣(금오이소시의) : "인제 나의 조그만 시험이 끝났구나."하고,

於是悉召男女二千人(어시실소남녀이천인) : 이에 남녀 이천 명을 모아 놓고 말했다.

令之曰(령지왈) :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吾始與汝等入此島(오시여여등입차도) : "내가 처음에 너희들과 이 섬에 들어올 때엔

先富之(선부지) : 먼저 부(富)하게 한 연후에

然後別造文字(연후별조문자) : 따로 문자를 만들고

刱製衣冠(창제의관) : 의관(衣冠)을 새로 제정하려 하였다.

地小德薄(지소덕박) : 그런데 땅이 좁고 덕이 엷으니

吾今去矣(오금거의) : 나는 인제 여기를 떠나련다.

兒生執匙敎以右手(아생집시교이우수)

: 다만, 아이들을 낳거들랑 오른손에 숟가락을 쥐게 가르치라

一日之長(일일지장) : 하루라도 먼저 난 사람이

讓之先食(양지선식) : 먼저 먹도록 양보케하여라."

悉焚他船曰(실분타선왈) : 다른 배들을 모조리 불사르면서 이르기를

莫往則莫來(막왕칙막래) : "가지 않으면 오는 이도 없으렷다."하고

投銀五十萬於海中曰(투은오십만어해중왈)

: 돈 오십만 냥을 바다 가운데 던지며 이르기를

海枯有得者(해고유득자) : "바다가 마르면 주워 갈 사람이 있겠지.

百萬無所容於國中(백만무소용어국중)

: 백만 냥은 우리 나라에도 용납할 곳이 없거늘,

况小島乎(황소도호) : 하물며 이런 작은 섬에서랴!"했다.

有知書者載與俱出曰(유지서자재여구출왈)

: 그리고 글을 아는 자들을 골라 모조리 함께 배에 태우며 이르기를

爲絶禍於此島(위절화어차도) : "이 섬에 화근을 없애야 되지."

 

[3]정덕(正德)

 

1)변씨에게서 빌린 돈을 십만냥으로 청산하다

 

於是遍行國中(어시편행국중) : 이리하여 허생은 나라 안을 두루 돌아다니며

賑施與貧無告者(진시여빈무고자) : 가난하고 의지 없는 사람들을 구제했다.

銀尙餘十萬曰(은상여십만왈) : 그러고도 여전히 은이 십만 냥이 남아 이르기를

此可以報卞氏(차가이보변씨) : "이건 변씨에게 갚을 것이다."

往見卞氏曰(왕견변씨왈) : 허생이 가서 변씨를 보고 이르기를

君記我乎(군기아호) : "나를 알아보시겠소?"

卞氏驚曰(변씨경왈) : 변씨는 놀라 말하기를

子之容色(자지용색) : "그대의 안색이

不少瘳(불소추) :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으니,

得無敗萬金乎(득무패만금호) : 혹시 만 냥을 실패 보지 않았소?"

許生笑曰(허생소왈) : 허생이 웃으며 이르기를

以財粹面(이재수면) : "재물에 의해서 얼굴에 기름이 도는 것은

君輩事耳(군배사이) : 당신들 일일 뿐이오.

萬金何肥於道哉(만금하비어도재) : 만 냥이 어찌 도(道)를 살찌게 하겠소?"

於是以銀十萬付卞氏曰(어시이은십만부변씨왈)

: 이리하여 십만 냥을 변씨에게 내놓고 이르기를

吾不耐一朝之饑(오불내일조지기) : "내가 하루 아침의 주림을 견디지 못하고

未竟讀書(미경독서) : 글읽기를 중도에 폐하고 말았으니,

慙君萬金(참군만금) : 당신에게 만 냥을 빌렸던 것이 부끄럽소."

卞氏大驚(변씨대경) : 변씨는 크게 놀라

起拜辭謝(기배사사) : 일어나 절하여 사양하고,

願受什一之利(원수십일지리) : 십분의 일로 이자를 쳐서 받겠노라 했다.

許生大怒曰(허생대노왈) : 허생이 잔뜩 역정을 내어 이르기를

君何以賈竪視我(군하이가수시아) : "당신은 어찌 나를 장사치로 보는가?" 하고는

拂衣而去(불의이거) : 소매를 뿌리치고 가 버렸다.

 

2)변씨, 허생에게 돈을 되돌려 주었으나 받지 않다

 

卞氏潛踵之(변씨잠종지) : 변씨는 가만히 그의 뒤를 따라가며

望見客向南山下入小屋(망견객향남산하입소옥)

: 허생이 남산 밑으로 가서 조그만 초가로 들어가는 것이 멀리서 보였다.

有老嫗(유로구) : 한 늙은 할미가 있어

井上澣(정상한) : 우물터에서 빨래하는 것을 보고

卞氏問曰(변씨문왈) : 변씨가 물어 이르기를

彼小屋誰家(피소옥수가) : "저 조그만 초가가 누구의 집이오?"

嫗曰(구왈) : 늙은 할미가 이르기를

許生員宅(허생원댁) : "허 생원 댁입지요.

貧而好讀書(빈이호독서) : 가난한 형편에 글공부만 좋아하더니,

一朝出門不返者已五年(일조출문불반자이오년)

: 하루 아침에 집을 나가서 5 년이 지나도록 돌아오지 않고,

獨有妻在(독유처재) : 부인이 혼자 사는데,

祭其去日(제기거일) : 집을 나간 날로 제사를 지냅지요."

卞氏始知客乃姓許(변씨시지객내성허) : 변씨는 비로소 그의 성이 허씨라는 것을 알고

歎息而歸(탄식이귀) : 탄식하며 돌아갔다.

 

明日悉持其銀往遺之(명일실지기은왕유지)

: 이튼날, 변씨는 돈을 모두 가지고 그 집을 찾아가서 돌려 주려 했으나,

許生辭曰(허생사왈) : 허생은 받지 않고 거절하고 이르기를

我欲富也(아욕부야) : "내가 부자가 되고 싶었다면

棄百萬而取十萬乎(기백만이취십만호) : 백만 냥을 버리고 십만 냥을 받겠소?

吾從今得君而活矣(오종금득군이활의) : 이제부터는 당신의 도움으로 살아가겠소.

君數視我計口送糧(군수시아계구송량) : 당신은 가끔 나를 와서 보고 양식이나 떨어지지 않고

度身授布(도신수포) : 옷이나 입도록 하여 주오.

一生如此足矣(일생여차족의) : 일생을 그러면 족하지요.

孰肯以財勞神(숙긍이재로신) : 그 누가 재물 때문에 정신을 괴롭힐 것이오?"

卞氏說許生百端(변씨설허생백단) : 변씨가 허생을 여러 가지로 권유하였으나,

竟不可奈何(경불가내하) : 끝끝내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卞氏自是度許生匱乏(변씨자시도허생궤핍) : 변씨는 그 때부터 허생의 집에 양식이나 옷이 떨어질 때쯤 되면

輒身自往遺之(첩신자왕유지) : 바로 몸소 찾아가 도와 주었다.

許生欣然受之(허생흔연수지) : 허생은 그것을 흔연히 받아들였으나,

或有加則不悅曰(혹유가칙불열왈) : 혹 많이 가지고 가면 좋지 않은 기색으로 이르기를

君奈何遺我災也(군내하유아재야) : "나에게 재앙을 갖다 맡기면 어찌하오?"하였고,

以酒往則益大喜(이주왕칙익대희) : 혹 술병을 들고 찾아가면 아주 반가워하며

相與酌至醉(상여작지취) : 서로 술잔을 기울여 취하도록 마셨다.

旣數歲(기수세) : 이렇게 몇 해를 지나는 동안에

情好日篤(정호일독) : 두 사람 사이의 정의가 날로 두터워 갔다.

 

3)변씨, 허생에게 돈번 내력을 듣다

 

嘗從容言五歲中(상종용언오세중) : 어느 날, 변씨가 5 년 동안에

何以致百萬(하이치백만)

: 어떻게 백만 냥이나 되는 돈을 벌었던가를 조용히 물어 보았다.

許生曰(허생왈) : 허생이 대답하기를,

此易知耳(차역지이) : "그야 가장 알기 쉬운 일이지요.

朝鮮舟不通外國(조선주불통외국) : 조선이란 나라는 배가 외국에 통하질 않고,

車不行域中(차불행역중) : 수레가 나라 안에 다니질 못해서,

故百物生于其中(고백물생우기중) : 온갖 물화가 제자리에 나서

消于其中(소우기중) : 제자리에서 사라지지요.

夫千金小財也(부천금소재야) : 무릇, 천 냥은 적은 돈이라

未足以盡物(미족이진물) : 한 가지 물종(物種)을 독점할 수 없지만,

然析而十之百金(연석이십지백금) : 그것을 열로 쪼개면 백 냥이 열이라,

十亦足以致十物(십역족이치십물) : 또한 열 가지 물건을 살 수 있겠지요.

物輕則易轉(물경칙역전) : 단위가 작으면 굴리기가 쉬운 까닭에,

故一貨雖絀(고일화수출) : 한 물건에서 실패를 보더라도

九貨伸之(구화신지) : 다른 아홉 가지의 물건에서 재미를 볼 수 있으니,

此常利之道(차상리지도) : 이것은 보통 이(利)를 취하는 방법으로

小人之賈也(소인지가야) : 조그만 장사치들이 하는 짓 아니오?

夫萬金足以盡物(부만금족이진물)

: 대개 만 냥을 가지면 족히 한 가지 물종을 독점할 수 있기 때문에,

故在車專車(고재거전거) : 수레면 수레 전부,

在船專船(재선전선) : 배면 배를 전부,

在邑專邑(재읍전읍) : 한 고을이면 한 고을을 전부,

如綱之有罟(여강지유고) : 마치 총총한 그물로

括物而數之(괄물이수지) : 훑어 내듯 할 수 있지요.

陸之產萬(륙지산만) : 뭍에서 나는 만 가지 중에

潛停其一(잠정기일) : 한 가지를 슬그머니 독점하고,

水之族萬(수지족만) : 물에서 나는 만 가지 중에

潛停其一(잠정기일) : 슬그머니 하나를 독점하고,

醫之材萬(의지재만) : 의원의 만 가지 약재 중에

潛停其一(잠정기일) : 슬그머니 하나를 독점하면,

一貨潛藏(일화잠장) : 한 가지 물종이 한 곳에 묶여 있는 동안

百賈涸(백가학) : 모든 장사치들에게는 고갈될 것이매,

此賊民之道也(차적민지도야) : 이는 백성을 해치는 길이 될 것입니다.

後世有司者(후세유사자) : 후세에 당국자들이

如有用我道(여유용아도) : 만약 나의 이 방법을 쓴다면

必病其國(필병기국) : 반드시 나라를 병들게 만들 것이오."

卞氏曰(변씨왈) : 변씨가 이르기를

初子何以知吾出萬金而來吾求也(초자하이지오출만금이래오구야)

: "처음에 내가 선뜻 만 냥을 뀌어 줄 줄 알고 찾아와 청하였습니까?"

許生曰(허생왈) : 허생이 이르기를

不必君與我也(불필군여아야) : "당신만이 내게 꼭 빌려 줄 수 있었던 것은 아니고,

能有萬金者(능유만금자) : 능히 만 냥을 지닌 사람치고는

莫不與也(막불여야) : 누구나 다 주었을 것이오.

吾自料吾才足以致百萬(오자료오재족이치백만)

: 내 스스로 나의 재주가 족히 백만 냥을 모을 수 있다고 생각했으나,

然命則在天(연명칙재천) : 운명은 하늘에 매인 것이니,

吾何能知之(오하능지지) : 낸들 그것을 어찌 알겠소?

故能用我者(고능용아자) : 그러므로 능히 나의 말을 들어 주는 사람은

有福者也(유복자야) : 복 있는 사람이라,

必富益富(필부익부) : 반드시 더욱더 큰 부자가 되게 하는 것은

天所命也(천소명야) : 하늘이 시키는 일일 텐데

安得不與(안득불여) : 어찌 주지 않았겠소?

旣得萬金(기득만금) : 이미 만 냥을 빌린 다음에는

憑其福而行(빙기복이행) : 그의 복력에 의지해서 일을 한 까닭으로,

故動輒有成(고동첩유성) : 하는 일마다 곧 성공했던 것이고,

若吾私自與(약오사자여) : 만약 내가 사사로이 했었다면

則成敗亦未可知也(칙성패역미가지야) : 성패는 알 수 없었겠지요."

 

[4]현실비판

 

1) 허생, 재야의 인재들을 아까워하다

 

卞氏曰(변씨왈) : 변씨가 이르기를

方今士大夫欲雪南漢之恥(방금사대부욕설남한지치) : "방금 사대부들이 남한산성(南漢山城)에서 오랑캐에게 당했던 치욕을 씻어 보고자 하니,

此志士扼腕奮智之秋也(차지사액완분지지추야)

: 지금이야말로 지혜로운 선비가 팔뚝을 뽐내고 일어설 때가 아니겠소?

以子之才(이자지재) : 선생의 그 재주로

何自苦沉冥以沒世耶(하자고침명이몰세야)

: 어찌 괴롭게 파묻혀 지내려 하십니까?"

許生曰(허생왈) : 허생이 이르기를

古來沉冥者何限(고래침명자하한)

: "어허, 자고로 묻혀 지낸 사람이 한둘이었겠소?

趙聖期拙修齋可使敵國(조성기졸수재가사적국) : 졸수재(拙修齋) 조성기(趙聖期) 같은 분은 적국(敵國)에 사신으로 보낼 만한 인물이었건만

而老死布褐(이로사포갈) : 베잠방이로 늙어 죽었고,

柳馨遠磻溪居士(류형원반계거사) : 반계 거사(磻溪居士) 유형원(柳馨遠) 같은 분은

足繼軍食(족계군식) : 군량(軍糧)을 조달할 만한 재능이 있었건만,

而逍遙海曲(이소요해곡) : 저 바닷가에서 소요하고 있지 않았습니까?

今之謀國政者(금지모국정자) : 지금의 집정자들은

可知已(가지이) : 가히 알 만한 것들이지요.

吾善賈者也(오선가자야) : 나는 장사를 잘 하는 사람이라,

其銀足以市九王之頭(기은족이시구왕지두)

: 내가 번 돈이 족히 구왕(九王)의 머리를 살 만하였으되

然投之海中而來者(연투지해중이래자) : 바닷속에 던져 버리고 돌아온 것은,

無所可用故耳(무소가용고이) : 도대체 쓸 곳이 없기 때문이었지요."

卞氏喟然太息而去(변씨위연태식이거) : 변씨는 한숨만 내쉬고 돌아갔다.

 

2)변씨, 이완대장에게 허생 만나기를 주선하다

 

卞氏本與李政丞浣善(변씨본여리정승완선)

: 변씨는 본래 이완(李浣) 이 정승과 잘 아는 사이였다.

李公時爲御營大將(리공시위어영대장) : 이완이 당시 어영 대장이 되어서

嘗與言委巷閭閻之中(상여언위항려염지중) : 변씨에게 위항(委巷)이나 여염(閭閻)에

亦有奇才可與共大事者乎(역유기재가여공대사자호) : 혹시 쓸 만한 인재가 없는가를 물었다.

卞氏爲言許生(변씨위언허생) : 변씨가 허생의 이야기를 하였더니,

李公大驚曰(리공대경왈) : 이 대장은 깜짝 놀라면서 이르기를

奇哉(기재) : "기이하다.

眞有是否(진유시부) : 그게 정말인가?

其名云何(기명운하) : 그이 이름이 무엇이라 하던가?"하고 묻는 것이었다.

卞氏曰(변씨왈) : 변씨가 이르기를

小人與居三年(소인여거삼년) : "소인은 그분과 상종해서 3 년이 지니도록

竟不識其名(경불식기명) : 여태껏 이름도 모르옵이다."

李公曰(이공왈) : 이공이 이르기를

此異人(차이인) : "그인 이인(異人)이야.

與君俱往(여군구왕) : 자네와 같이 가 보세."

夜公屛騶徒(야공병추도) : 밤에 이 대장은 구종들도 다 물리치고

獨與卞氏俱步至許生(독여변씨구보지허생) : 변씨만 데리고 걸어서 허생을 찾아갔다.

卞氏止公立門外(변씨지공립문외) : 변씨는 이 대장을 문 밖에 서서 기다리게 하고

獨先入(독선입) : 혼자 먼저 들어가서,

見許生具道李公所以來者(견허생구도리공소이래자)

: 허생을 보고 이 대장이 몸소 찾아온 연유를 이야기했다.

許生若不聞者曰(허생약불문자왈) : 허생은 못 들은 체하고 이르기를

輒解君所佩壺(첩해군소패호) : "당신 차고 온 술병이나 어서 이리 내놓으시오."했다.

相與歡飮(상여환음) : 그리하여 즐겁게 술을 들이켜는 것이었다.

 

3)허생은 이완 만나 시사삼책(時事三策)을 말하다

 

卞氏閔公久露立數言之(변씨민공구로립수언지) : 변씨는 이 대장을 밖에 오래 서 있게 하는 것이 민망해서 자주 말하였으나,

許生不應(허생불응) : 허생은 대꾸도 않다가

旣夜深(기야심) : 야심해지자

許生曰可召客(허생왈가소객) : 허생이 이르기를 “손님을 불러도 좋습니다” 하니

李公入(리공입) : 이 대장이 방에 들어왔다.

許生安坐不起(허생안좌불기) : 허생은 자리에서 일어서지도 않았다.

李公無所措躬(리공무소조궁) : 이 대장은 몸둘 곳을 몰라하며

乃叙述國家所以求賢之意(내서술국가소이구현지의) : 나라에서 어진 인재를 구하는 뜻을 설명하자,

許生揮手曰(허생휘수왈) : 허생은 손을 휘저으며 이르기를

夜短語長(야단어장) : "밤은 짧은데 말이 너무 길어서

聽之太遲(청지태지) : 듣기에 지루하다.

汝今何官(여금하관) : 너는 지금 무슨 벼슬에 있느냐?"

曰大將(왈대장) : 이르기를 "대장이오."


(1)재야 인사로 새 피를 수혈하라

許生曰(허생왈) : 허생이 이르기를

然則汝乃國之信臣(연칙여내국지신신) : "그렇다면 너는 나라의 신임받는 신하로군.

我當薦臥龍先生(아당천와룡선생) : 내가 와룡 선생(臥龍先生) 같은 이를 천거하겠으니,

汝能請于朝三顧草廬乎(여능청우조삼고초려호) : 네가 임금께 아뢰어서 삼고 초려(三顧草廬)를 하게 할 수 있겠느냐?"

公低頭良久曰(공저두량구왈) : 이 대장은 고개를 숙이고 한참 생각하고 이르기를

難矣(난의) : "어렵습니다.

 

(2)명나라 유민에게 종실의 딸을 시집보내라

 

願得其次(원득기차) : 제이(第二)의 계책을 듣고자 하옵니다."했다.

許生曰(허생왈) : 허생이 이르기를

我未學第二義(아미학제이의)

: "나는 원래 '제이'라는 것은 모른다."하고 허생은 외면했으나

固問之(고문지) : 이 대장이 굳이 물으니

許生曰(허생왈) : 허생이 이르기를

明將士以朝鮮有舊恩(명장사이조선유구은)

: "명(明)나라 장졸들이 조선은 옛 은혜가 있다고 하여,

其子孫多脫身東來(기자손다탈신동래) : 그 자손들이 많이 우리 나라로 망명해 와서

流離惸鰥(류리경환) : 정처 없이 떠돌고 있으니,

汝能請于朝(여능청우조) : 너는 조정에 청하여

出宗室女遍嫁之(출종실녀편가지)

: 종실(宗室)의 딸들을 내어 모두 그들에게 시집 보내고,

奪勳戚權貴家(탈훈척권귀가) : 훈척(勳戚) 권귀(權貴)의 집을 빼앗아서

以處之乎(이처지호) : 그들에게 나누어 주게 할 수 있겠느냐?"

公低頭良久曰(공저두량구왈) : 이 대장은 또 머리를 숙이고 한참을 생각하더니 이르기를

難矣(난의) : "어렵습니다."고 했다.

 

(3)국중 자제를 선발하여 변발에 호복 입혀 청나라 호걸들과 친교를 맺고 서민들에겐 해외무역을 권장하라

 

許生曰(허생왈) : 허생이 이르기를

此亦難彼亦難(차역난피역난) : "이것도 어렵다, 저것도 어렵다 하면

何事可能(하사가능) : 도대체 무슨 일을 하겠느냐?

有最易者(유최이자) : 가장 쉬운 일이 있는데,

汝能之乎(여능지호) : 네가 능히 할 수 있겠느냐?"

李公曰(리공왈) : 이공이 이르기를

願聞之(원문지) : "말씀을 듣고자 하옵니다."

許生曰(허생왈) : 허생이 이르기를

夫欲聲大義於天下(부욕성대의어천하) : "무릇, 천하에 대의(大義)를 외치려면

而不先交結天下之豪傑者(이불선교결천하지호걸자)

: 먼저 천하의 호걸들과 접촉하여 결탁하지 않고는

未之有也(미지유야) : 그러한 일이 된 일이 없고

欲伐人之國而不先用諜(욕벌인지국이불선용첩)

: 남의 나라를 치려면 먼저 첩자를 보내지 않고는

未有能成者也(미유능성자야) : 성공한 일이 없는 것이다.

今滿洲遽而主天下(금만주거이주천하) : 지금 만주 정부가 갑자기 천하의 주인이 되어서

自以不親於中國(자이불친어중국) : 중국 민족과는 친근해지지 못하는 판에,

而朝鮮率先他國而服(이조선솔선타국이복) : 조선이 다른 나라보다 먼저 섬기게 되어

彼所信也(피소신야) : 저들이 우리를 가장 믿는 터이다.

誠能請遣子弟入學遊宦如唐元故事(성능청견자제입학유환여당원고사) : 진실로 당(唐)나라, 원(元)나라 때처럼 우리 자제들이 유학 가서 벼슬까지 하도록 허용해 줄 것과,

商賈出入不禁(상가출입불금) : 상인의 출입을 금하지 말도록 할 것을 간청하면,

彼必喜其見親而許之(피필희기견친이허지) : 저들도 반드시 자기네에게 친근하려 함을 보고 기뻐 승낙할 것이다.

妙選國中之子弟(묘선국중지자제) : 국중의 자제들을 가려 뽑아

薙髮胡服(치발호복) : 머리를 깎고 되놈의 옷을 입혀서,

其君子往赴賓擧(기군자왕부빈거) : 그 중 선비는 가서 빈공과(賓貢科)에 응시하고,

其小人遠商江南(기소인원상강남)

: 또 서민은 멀리 강남(江南)에 건너가서 장사를 하면서,

覘其虛實(첨기허실) : 저 나라의 실정을 정탐하는 한편,

結其豪傑(결기호걸) : 저 땅의 호걸들과 결탁한다면

天下可圖而國恥可雪(천하가도이국치가설) : 한번 천하를 뒤집고 국치(國恥)를 씻을 수 있을 것이다.

若求朱氏而不得率天下諸侯(약구주씨이불득솔천하제후) : 그리고 만약 명나라 황족에서 구해도 사람을 얻지 못할 경우, 천하의 제후(諸侯)를 거느리고

薦人於天(천인어천) : 적당한 사람을 하늘에 천거한다면,

進可爲大國師(진가위대국사) : 잘 되면 대국(大國)의 스승이 될 것이고,

退不失伯舅之國矣(퇴불실백구지국의)

: 못 되어도 백구지국(伯舅之國)의 지위를 잃지 않을 것이다."

李公憮然曰(리공무연왈) : 이공이 무안하여 이르기를

士大夫皆謹守禮法誰肯薙髮胡服乎(사대부개근수례법수긍치발호복호) : "사대부들이 모두 조심스럽게 예법(禮法)을 지키는데, 누가 변발(辯髮)을 하고 호복(胡服)을 입으려 하겠습니까?"

 

4)이완 대장이 시사삼책 불가를 말하자 허생이 칼로 찌르려하다

 

許生大叱曰(허생대질왈) : 허생은 크게 꾸짖어 이르기를

所謂士大夫(소위사대부) : "소위 사대부란 것들이

是何等也(시하등야) : 무엇이란 말이냐?

產於彛貊之地(산어이맥지지) : 오랑캐 땅에서 태어나

自稱曰士大夫(자칭왈사대부) : 자칭 사대부라 뽐내다니,

豈非騃乎(기비애호) : 이런 어리석을 데가 있느냐?

衣袴純素(의고순소) : 의복은 흰옷을 입으니

是有喪之服(시유상지복) : 그것이야말로 당을 당한 사람의 옷이요

會撮如錐(회촬여추) : 머리털을 한데 묶어 송곳같이 만드는 것은

是南蠻之椎結也(시남만지추결야) : 남쪽 오랑캐의 습속에 지나지 못한데,

何謂禮法(하위례법) : 대체 무엇을 가지고 예법이라 한단 말인가?

 

樊於期(번오기) : 번오기(樊於期)는

欲報私怨而不惜其頭(욕보사원이불석기두)

: 원수를 갚기 위해서 자신의 머리를 아끼지 않았고,

武靈王(무령왕) : 무령왕(武靈王)은

欲强其國而不恥胡服(욕강기국이불치호복)

: 나라를 강성하게 만들기 위해서 되놈의 옷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다.

乃今欲爲大明復讎(내금욕위대명부수) : 이제 대명(大明)을 위해 원수를 갚겠다 하면서,

而猶惜其一髮(이유석기일발) : 그까짓 머리털 하나를 아끼고,

乃今將馳馬擊釖刺鎗弓飛石(내금장치마격도자쟁궁비석) : 또 장차 말을 달리고 칼을 쓰고 창을 던지며, 활을 당기고 돌을 던져야 할 판국에

而不變其廣袖(이불변기광수) : 넓은 소매의 옷을 고쳐 입지 않고

自以爲禮法乎(자이위례법호) : 딴에 예법이라고 한단 말이냐?

吾始三言(오시삼언) : 내가 세 가지를 들어 말하였는데,

汝無一可得而能者(여무일가득이능자) : 너는 한 가지도 행하지 못한다면서

自謂信臣(자위신신) : 그래도 스스로 신임받는 신하라 하겠는가?

信臣固如是乎(신신고여시호) : 신임받는 신하라는 게 참으로 이렇단 말이냐?

是可斬也(시가참야) : 너 같은 자는 칼로 목을 잘라야 할 것이다."하고

左右顧索釖欲刺之(좌우고색도욕자지) : 좌우를 돌아보며 칼을 찾아서 찌르려 했다.

公大驚而起(공대경이기) : 이 대장은 놀라서 일어나

躍出後牖疾走歸(약출후유질주귀) : 급히 뒷문으로 뛰쳐나가 도망쳐서 돌아갔다.

明日復往(명일부왕) : 이튼날, 다시 찾아가 보았더니,

已空室而去矣(이공실이거의) : 집이 텅 비어 있고, 허생은 간 곳이 없었다.

[남아공 테이블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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