兩班傳(양반전)
◇ <兩班傳>의 성공 비결
1)충격적 소재:양반 매매. 중세의 가치관과 질서의식 파괴-양반과 천부의 전도(顚倒) 신분 맞바뀜.
2)수사법:반어법(신분과 부의 불일치, 士族의 존칭에서 멀어진 양반론), 열거법(두 문권)
3)허상과 실상의 대비: 제일문권에서는 양반 행동양식의 허위의식을, 제이문권에서는 양반지배계층의 특권의식과 횡포[도둑]를 고발함.
[은자주] 고전번역원의 주석을 첨가하였다. 주석의 필요성을 느꼈으나 번거로움을 피해왔는데, 민추의 해박한 주석이 있어 여기에 옮긴다. 어구가 맞지 않더라도 바로 위의 주석임을 감안하고 보면 된다.
1]권위의 상징인 양반의 권위가 땅바닥에 떨어지다
兩班者 士族之尊稱也.
'양반'이란 사족(士族)을 높여서 부르는 말이다.
旌善之郡 有一兩班 賢而好讀書.
정선 고을에 한 양반이 살고 있었는데, 그는 현명하고 글읽기를 좋아하였다.
每郡守新至 必親造其廬而禮之.
그래서 군수가 새로 부임할 때마다 반드시 그 집에 몸소 나아가서 예의를 갖추었다.
然家貧 歲食郡糶 積歲至千石.
그러나 그는 살림이 가난해서, 해마다 관가에서 환자를 빌어먹었다. 여러 해가 지나고 보니, 환곡(還穀)은 천 석이나 되었다.
觀察使巡行郡邑 閱糶糴 大怒曰,
관찰사가 여러 고들을 돌아다니다가 이곳에 이르러 환곡의 출납을 검열하고는 매우 노하였다.
“何物兩班 乃乏軍興?”
"어떤 놈의 양반이 군량미를 이렇게 축냈단 말이냐?"
命囚其兩班
그 양반을 가두도록 명령하였다.
郡守意哀 其兩班貧 無以爲償.
군수는 그 양반이 가난해서 갚을 길이 없는 것을 없으니
不忍囚之 亦無可奈何.
차마 가두고 싶지 않았지만 또한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兩班日夜泣 計不知所出.
그 양반은 밤낮으로 울음을 삼켰지만 대책은 세우지 못했다.
其妻罵曰,
그의 아내는 불평을 털어 놓았다.
“生平 子好讀書 無益縣官糴. 咄 兩班. 兩班不直一錢.”
"한평생 당신은 글읽기를 좋아했지만, 관가의 환곡을 갚는데 아무런 도움도 못 되는군요.
쯧쯧, 양반! 양반은한 푼짜리도 못 되는 구려.”
양반(兩班)을 양반(兩半)으로 풀어 한 냥의 절반밖에 안 된다고 풍자한 것이다.
2]부자 농부는 양반신분을 사서 양반이 되다.
其里之富人 私相議曰,
그 마을의 부자가 가족들과 서로 의논하였다.
“兩班雖貧 常尊榮 我雖富 常卑賤 不敢騎馬.
"양반은 아무리 가난해도 언제나 높고 영광스럽지만, 우리들은 아무리 부자가 되어도 언제나 낮고 천하여 감히 말을 탈수도 없다.
見兩班 則跼蹜屛營 匍匐拜庭
양반만 보면 저절로 기가 죽어서 굽실거리며 엉금엉금 기어가서 뜰 밑에서 절해야 한다.
曳鼻膝行 我常如此 其僇辱也.
코가 땅에 닿도록 무릎으로 기다시피 하면서, 우리네는 줄창 이렇게 창피를 당해야 한다.
今兩班貧 不能償糴 方大窘.
지금 저 양반이 가난해서 환자를 갚지 못해 몹시 곤란해질 모양이야.
其勢誠不能保其兩班 我且買而有之.”
참으로 그의 가세가 양반 신븐을 보전할 수 없으니 내가 그것을 사서 가지려 한다."
遂踵門 而請償其糴.
부자는 곧 양반의 집을 찾아가서 그 환자를 대신 갚겠다고 청하였다.
兩班大喜許諾.
양반은 크게 기뻐하면서 허락하였다.
於是 富人立輸其糴於官.
그래서 부자가 곧 그 환곡을 관가로 수송했다.
郡守大驚異之 自往勞其兩班 且問償糴狀.
군수는 매우 놀라면서도 이상하게 생각하였다. 직접 양반에게 찾아가 위로하면서, 환자를 갚은 사정을 물으려 하였다.
兩班氈笠衣短衣 伏塗謁稱小人 不敢仰視.
그러자 양반은 벙거지를 쓰고 베잠방이를 입은 채로 길바닥에 엎드려, '쇤네'라고 칭하면서 감히 올려다보지를 못하였다.
[주D-002]벙거지 : 하인들이 쓰던 털모자.
郡守大驚 下扶曰, 군수가 깜짝 놀라 내려가서 그를 부축하며,
“足下 何自貶辱若是?”
"선생께서 어찌 이다지도 스스로를 욕되게 하시는지요." 하였다.
兩班益恐懼 頓首俯伏曰,
양반은 더욱 황송하여 어쩔 줄 몰라하며, 머리를 조아리고 엎드렸다.
“惶悚 小人非敢自辱 已自鬻其兩班 以償糴 里之富人 乃兩班也.
"황송하옵니다. 쇤네가 감히 일부러 이런 짓을 하는 것은 아니옵니다. 쇤네는 벌써 스스로 양반을 팔아 환자를 갚았으니, 마을의 부자가 바로 양반이옵니다.
小人安敢冒其舊號 而自尊乎?”
쇤네가 어찌 다시금 뻔뻔스럽게 옛날처럼 양반 행세를 하면서 스스로 높이겠습니까?"
郡守歎曰,
군수가 감탄하면서 말하였다.
“君子哉 富人也 兩班哉 富人也.
"군자답구려 부자시여. 양반답구려 부자시여.
富而不吝 義也 急人之難 仁也 惡卑而慕尊 智也 此眞兩班.
부유하면서도 아끼지 않음은 의(義)요, 남의 어려움을 돌봐 줌은 인(仁)이요, 낮은 신분을 싫어하고 높은 자리를 그리워함은 지(智)로다. 이것이야말로 참된 양반이로다.
雖然私自交易 而不立券 訟之端也.
비록 그러하더라도 사사로이 신분을 바꾸고 문권(文券)을 작성하지 않으면 소송의 단서가 된다.
我與汝約 郡人而證之 立券而信之 郡守當自署之.”
내가 그대와 약조하노니, 고을 사람들을 모아 증인을 세우고, 문권을 작성하여 증거하리라. 군수인 내가 마땅히 서명해야 하네."
於是 郡守歸俯 悉召郡中之士族 及農工商賈 悉至于庭.
군수가 곧 동헌으로 돌아와서 온 고들 사족과, 농민, 공장(工匠), 장사치까지 모두들 불러 뜰에 모았다.
富人坐鄕所之右 兩班立於公兄之下.
부자는 향소(鄕所)의 오른쪽에 앉히고 양반은 공형(公兄)의 아래에 세웠다.
[주D-003]향소(鄕所) : 향청(鄕廳)의 좌수(座首).
[주D-004]공형(公兄) : 호장(戶長)과 이방(吏房) 및 수형리(首刑吏)를 삼공형(三公兄)이라 한다.
3]문권 작성
1)제1문권 -양반의 행동규범[허위의식]
乃爲立券曰,
바로 증서를 작성하였다.
“乾隆十年九月日 右明文段
"건륭(乾隆) 10년 9월 모일에 아래와 같이 문권을 밝힌다.
[주D-005]명문(明文) : 증명서란 뜻으로, ‘적발’이라고도 한다.
국(厂下屮2)賣兩班 爲償官穀 其直千斛.
*厂下屮2(국):持也
양반을 팔아서 관가의 곡식을 갚은 일이 생겼는데, 그 곡식은 천 섬이나 된다.
維厥兩班 名謂多端
이 양반의 이름은 여러 가지다.
讀書曰士 從政爲大夫 有德謂君子
글만 읽으면 '선비'라 하고, 정치에 종사하면 '대부(大夫)'라 하며, 착한 덕이 있으면 군자(君子)라고 한다.
武階列西 文秩敍東 是謂兩班.
무관의 계급은 서쪽에 벌여 있고, 문관의 차례는 동쪽에 자리 잡았으며, 이들을 '양반'이라고 한다.
[주D-006]무관 …… 동쪽이라 : 궁궐에서 무관과 문관이 각각 서쪽과 동쪽에 나누어 서는 것을 가리킨다.
任爾所從 絶棄鄙事 希古尙志
이 여러 가지 양반 가운데서 그대 마음대로 골라잡되, 오늘부터는 지금까지 하던 야비한 일들을 깨끗이 끊어 버리고, 옛 사람을 본받아 뜻을 고상하게 가져야 한다.
五更常起 點硫燃脂
오경(五更)이 되면 언제나 일어나서 성냥을 그어 등불을 켜고,
目視鼻端 會踵支尻
눈으로 코끝을 내려다보며, 두 발굽을 한데다가 모아 볼기를 괴고 앉아서
[주D-007]눈은 …… 보며 : 호흡법의 일종이다. 주자(朱子)의 조식잠(調息箴)에 보인다. 《연암집》 권4 담원팔영(澹園八詠) 중 소심거(素心居)를 노래한 제 3 수에도 나온다.
東萊博議 訟如氷瓢.
"동래박의"처럼 어려운 글을 얼음 위에 박 밀듯이 외워야 한다.
[주D-008]《동래박의(東萊博議)》 : 남송(南宋) 때 여조겸(呂祖謙)이 지은 《동래좌씨박의(東萊左氏博議)》를 말한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서 주제를 취해 평론한 것인데, 과거(科擧)에서 논설을 짓는 데 도움 되는 책으로 중국과 조선에서 널리 읽혔다.
叩齒彈腦 細嗽嚥津 *嗽(수):기침.
아래 윗니를 맞부딪쳐 똑똑 소리를 내며, 손가락으로 뒤통수를 튕긴다.
가는 기침이 나면 가래침을 씹어 넘기고,
袖刷毳冠 拂塵生派.
[주D-009]이빨을 …… 삼키며 : 도가(道家)에서 유래한 양생법(養生法)이다. 가볍게 윗니와 아랫니를 36번 부딪치고, 손바닥으로 귀를 막고 둘째와 셋째 손가락으로 뒷골을 24번 퉁긴다. 입 안에 고이게 한 침을 가볍게 양치질하듯이 부걱부걱하기를 36번 하면 이를 수진(漱津)이라 하여 맑은 물이 되는데, 이것을 3번에 나누어 꾸르륵 소리를 내며 삼켜서 단전(丹田)에 이르게 한다. 퇴계(退溪) 선생의 유묵(遺墨)으로 전하는 명(明) 나라 현주도인(玄洲道人) 함허자(涵虛子)의 《활인심방(活人心方)》에 자세하다. 《열하일기》 도강록(渡江錄) 7월 6일 조를 보면 연암이 고치탄뇌(叩齒彈腦)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털 감투를 쓸 때에는 소맷자락으로 털어서 티끌 물결을 일으킨다.
盥無擦拳 潄口無過. *潄(수):양치질하다.
세수 할 때에는 주먹의 때를 비비지 말 것이며, 양치질할 때에는 지나치게 하지 말아야 한다.
[주D-010]냄새 …… 닦고 : 원문은 ‘漱口無過’인데, 입냄새를 구과(口過)라 한다. 당(唐) 나라 측천무후(則天武后)는 송지문(宋之問)이 재주 있는 시인임을 알았으나 그의 입냄새가 심한 것을 싫어하여 기용하지 않았다. 《고문진보(古文眞寶)》에도 수록되어 있는 송지문의 걸작 명하편(明河編)은 그러한 자신의 처지를 슬퍼하여 지은 시라고 한다.
長聲喚婢 緩步曳履
긴 목소리로 '아무개야' 계집종을 부르고, 느리게 걸으면서 신뒤축을 끌어야 한다.
古文眞寶 唐詩品彙 鈔寫如荏 一行百字.
『고문진보』나 『당시품휘』 같은 책들을 깨알처럼 가늘게 배껴 쓰되, 한 줄에 백 자씩 써야 한다.
[주D-011]《당시품휘(唐詩品彙)》 : 명(明) 나라 때 고병(高棅)이 편찬한 당시집(唐詩集)이다. 모두 90권으로 시인 620인의 작품 5700여 수를 형식별로 수록하였다. 따로 습유(拾遺) 10권이 있다.
手毋執錢 不問米價
손에 돈을 지니지 말 것이며, 쌀값을 묻지도 말아야 한다.
暑毋跣襪 飯毋徒髻
날씨가 더워도 버선을 벗지 말며, 밥을 먹을 때에도 맨상투 꼴로 앉지 말아야 한다.
食毋先羹 歠毋流聲*歠(철):마시다.
식사하면서 국물부터 먼저 마셔 버리지 말며, 마시더라도 훌쩍거리는 소리를 내지 말아야 한다.
下箸毋舂 毋餌生葱
젓가락을 내리면서 밥상을 찧어 소리 내지 말며, 생파를 씹지 말아야 한다.
飮醪毋嘬鬚 吸煙毋輔窳.*嘬(최):물다. *窳(유):비뚤다.
막걸리를 마신 뒤에 수염을 빨지 말며, 담배를 태울 때에도 볼이 오목 파이도록 빨아들이지 말아야 한다.
忿毋搏妻 怒毋踢器
아무리 분하더라도 아내를 치지 말며, 화가 나더라도 그릇을 차지 말아야 한다.
毋拳毆兒女 毋罵死奴僕. *毆(구):때리다.
맨주먹으로 아녀자들을 때리지 말며, 죽일놈의 종놈이라고 꾸짖지 말아야 한다.
[주D-012]뒈져라고 …… 말고 : 《연암집》 권3 수소완정하야방우기(酬素玩亭夏夜訪友記)에도 “뒈져라고 악담하다〔惡言詈死〕”와 같은 표현이 있다. 이덕무의 《사소절(士小節)》 권1 사전(士典) 1 언어조(言語條)에, 종에게 ‘뒈질 놈〔可殺〕’ ‘왜 안 뒈지냐〔胡不死〕’와 같은 욕을 하지 말라고 하였다.
叱牛馬 毋辱鬻主.
말이나 소를 꾸짖으면서 팔아먹은 주인을 들추지 말아야 한다.
病毋招巫 祭不齋僧
병이 들어도 무당을 불러오지 말고, 제사에 중을 불러다 재(齋)를 올리지 말아야 한다.
爐不煮手 語不齒唾
화롯가에 손을 쬐지 말며, 말할 때에 침이 튀지 말아야 한다.
毋屠牛 毋賭錢.
소백정 노릇을 하지 말며, 도박도 하지 말아야 한다.
凡此百行 有違兩班 持此文記 卞正于官.
이러한 여러 가지 행위 가운데 양반의 규범에 한 가지라도 어긋남이 있으면, 양반은 이 증서를 가지고, 관청에 와서 송사하여 바로잡을 수 있다.
城主 旌善郡守 押. 座首別監 證署.”
성주(城主) 정선 군수 화압(花押)
좌수(座首) 별감(別監) 증서(證署)
於是 通引搨印 *搨(탑):박다, 베끼다.
증서를 다 쓰고는 통인(通引)이 인(印)을 받아서 찍었다.
錯落聲中嚴鼓 斗縱參橫.
뚜욱뚜욱하는 그 소리는 마치 엄고(嚴鼓) 치는 소리 같았고, 그 찍어 놓은 모습은 마치 북두칠성이 세로 놓인 듯, 삼성(參星)이 가로놓인 듯 벌렸다.
[주D-013]엄고(嚴鼓) : 임금이 행차할 때 치던 큰북이다.
戶長讀旣畢.
호장(戶長)이 읽기를 마쳤다.
“兩班只此而已耶? 吾聞兩班如神仙 審如是 太乾沒. 願改爲可利.”
"양반이 겨우 이것뿐입니가? 나는 '양반은 신선과 같다'고 들었지요. 정말 이와 같다면, 너무 지나치게 재산을 몰수합입니다. 아무쪼록 좀 더 이롭게 고쳐 주시오."[주D-014]너무도 …… 셈이니 : 원문은 ‘太乾沒’인데, ‘乾沒’은 물을 말려 없애듯이 남의 재산을 마구 횡령하거나 몰수하는 것을 말한다. 부자가 양반을 대신해서 환곡 천 석을 갚아 주었으나 그 대가가 너무도 보잘것없어서 그렇게 말한 것이다.
2)제2문권-양반지배계층의 특권의식과 횡포[도둑]
於是 乃更作券曰,
그래서 다시 증서를 만들었다.
“維天生民 其民維四
"하늘이 백성을 낳으실 때에, 그 갈래를 넷으로 나누셨다.
四民之中 最貴者士 稱以兩班 利莫大焉.
이 네 갈래 백성들 가운데 가장 존귀한 이가 선비이고, 이 선비를 양반이라고 부른다. 이 세상에서 양반보다 더 큰 이문은 없다.
不耕不商 粗涉文史 大決文科 小成進士.
그들은 농사 짓지도 않고, 장사하지도 않는다. 옛글이나 역사를 대략만 알면 과거를 치르는데, 크게 되면 문과(文科)요, 작게 이르더라도 진사(進士)다.
文科紅牌 不過二尺 百物備具 維錢之橐. *橐(탁):전대
문과의 홍패(紅牌)는 두 자도 채 못 되지만, 온갖 물건이 이것으로 갖추어지니 돈 자루나 다름없다.
進士三十 乃筮初任 猶爲名蔭
진사는 나이 서른에 첫 벼슬을 하더라도 오히려 이름난 음관(蔭官)이 될 수 있다.
[은자주] 연암도 쉰 살에 음관으로 처음 출사하였다.
善事雄南 耳白傘風 腹皤鈴諾
지체 높은 음관을 잘 섬기면, [수령 노릇을 하느라고] 귓바퀴는 일산(日傘) 바람에 희어지고, 배는 동헌(東軒) 사령(使令)들의 '예이'하는 소리에 살찌게 됩니다.
[주D-015]웅남행(雄南行) : 음관을 남행(南行)이라 한다. 웅남행은 위품(位品)이 높은 음관을 가리킨다.
수령은 행차할 때 일산을 받쳐 얼굴에 그늘을 드리우므로 햇빛을 쏘이지 않아 귀가 희어지고, 일을 시킬 때 설렁줄을 당겨 사람을 부르면 되므로 편해서 배에 살만 찐다는 뜻이다.
室珥治妓 庭穀鳴鶴.
방안의 귀고리로 기생이나 놀리고, 뜰 앞에 곡식으로 학을 기른다.
[주D-017]방 안에 …… 것이요 : 기생이 놀다 간 뒤라 귀걸이가 떨어져 있다는 뜻이다. 《사기》 골계열전에서 순우곤(淳于髡)이 제(齊) 나라 위왕(威王)에게 자신의 주량(酒量)을 설명하며 한 말 중에, 주려(州閭)의 모임에 남녀가 뒤섞여 앉아 술을 즐겁게 마시고 나면 “앞에는 귀걸이가 떨어져 있고 뒤에는 비녀가 남겨져 있다.〔前有墮珥 後有遺簪〕”고 하였다.
窮士居鄕 猶能武斷.
궁한 선비로 시골에 살더라도, 무력을 마음대로 단행할 수 있다.
先耕隣牛 借耘里氓 孰敢慢我?
이웃집 소를 몰아다가 내 밭을 먼저 갈고, 동네 농민을 잡아내어 내 밭을 김 매게 하더라도, 어느 놈이 감히 나를 괄시하랴.
灰灌汝鼻 暈髻汰鬢 無敢怨咨.”*暈(훈):무리. *咨(자):묻다.
네 놈의 코에 잿물을 따르고 상투를 범벅이며 수염을 뽑더라도 원망조차 못하리라."
4]부자 농부는 양반신분을 포기하다
富人中其券 而吐舌曰,
부자가 그 증서 만들기를 중지시키고, 혀를 빼면서 말하였다.
“已之已之 孟浪哉. 將使我爲盜耶?”
"그만 두시오. 제발 그만 두시오. 참으로 맹랑합니다. 나를 도둑놈이 되게 하시렵니까?"
掉頭而去
농부는 머리를 내두르며 달아났다.
終身不復言兩班之事.
그는 죽을 때까지 다시는 '양반'의 일을 입에 담지 않았다.
[금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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