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초사 <이소경> 374구의 뜻을 온전히 이해하기는 지난한 일이다. 번역을 통해서나마 순수를 지향했던 굴원의 시정신을 감지한다면 시를 이해하는 데 큰 밑거름이 될 것이다. 작품을 몇 회로 나누어 싣는다.

육조시대 소통의 《文選 》에서 초사를 騷의 문체로 분류하기 시작했다. 흔히 戰國末 屈原(BC.343? ~BC.290?) 계통의 서정적 작품을 辭로 통칭하는데 이것은 후한 때 王逸(89?~158?)이 《楚辭章句 》를 편찬한 데서 비롯한다. 이 책에는 굴원, 宋玉, 景差, 漢代의 東方朔, 莊忌, 淮南小山, 王褒 및 왕일 자신의 작품을 수록하였다. 시경의 시가 歌唱的 樂歌라면 초사와 한부는 九歌 이외엔 읊조리는 운문인 讀式詩이다.

초사 작품

◇ 屈原(B.C.343추정~ ?) 25편:

◊九歌 11편은 초사의 효시로 BC.5세기 이후에 이루어지기 시작하여 BC.4~3세기에 정착된 초나라 湘江 민족들 사이에 전해오던 종교 舞歌이며 民間戀歌 중 猥褻한 부분을 제거하고 개작함.

① 東皇太一:天神,

② 湘君:상수의 신,

③ 大司命:수명의 신,

④ 東君:태양의 신, Apollo.

⑤ 山鬼:산의 精靈, Nymph,

⑥ 雲中君:구름의 신,

⑦ 湘夫人:상수의 여신,

⑧ 小司命:아이들 운명의 신,

⑨ 河伯:황하의 신,

⑩ 國殤:나라의 英靈,

⑪ 禮魂:鎭魂歌

◊離騷經. 374구.

◊天問

◊九章:惜誦, 涉江, 哀郢, 抽思, 懷沙, 思美人, 惜往日, 橘頌, 悲回風,

◊遠遊, 卜居, 漁父 3편은 후인들의 擬作으로 의심 받기도 함.

◇宋玉:九辯 9편, 招魂(작자를 사마천은 굴원, 왕일은 송옥이라 함)

◇景差:大招(작자를 왕일은 굴원, 혹자는 경차라 함)

屈原, <離騷經> 374구.離騷 ① 離는 遭也 騷는 愁也. 憂愁 幽思하여 離騷 지음.② 不平의 뜻:牢愁, 聲의 轉化로 牢騷, 뇌소는 離騷의 訛.

◊<離騷經> 해설

영균이라 불리우는 靈的 인물의 독자적 서술 가운데 여수․영분 ․무함 등의 言辭를 섞어 극히 상징적이고 완곡하게 ‘시름을 만난 심정’을 노래했다. 거기에는 신선적 환상, 전설 신화의 나라들을 지나는 공상이 화려하게 펼쳐진다. 지극히 낭만적인 시편인데도 거기에는 초나라 현실정치에 대한 울분의 토로는 작품의 여러 곳에 드러나 있다. 그리하여 최후의 난사에는 명료히 표현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이소>는 <구장>과 함께 지극히 현실주의 작품이라 말할 수 있다.

이 작품이 만약 신선의 단순한 仙遊의 노래에 그쳤다면 그 가치는 크게 감소할 것이다. 굴원의 정치상의 입장, 도의적 정신, 그리고 그러한 배경을 가진 초나라의 운명 등이 그의 비통으로 더군다나 뛰어나게 완곡한 辭句에 영탄된다. 이 작품이야말로 시인 굴원의 생명의 연소인 정신의 結晶으로 천고불멸의 예술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1] 1-20구.영균이 世系의 존귀함, 생일의 嘉祥함, 名字를 述하여 소질이 좋은데다 재능이 있고 修養을 중히 여겼다. 그러나 부림을 받을 시기를 놓치고 임이 年老하실까 걱정한다.

[2] 21-36구군왕이 선을 취하여 악을 물리치지 아니한다고 詰問하고 자신이 선도하여 聖王의 道로 이끌어 들이겠다고 다짐한다. 고대의 聖王 三后의 덕이 선미하여 뭇 현인들이 모여 들었다. 堯舜은 광대한 덕을 지닌 도를 얻었고 桀紂는 가까운 길을 급히 좇다 실패했다. 黨人들이 安樂을 훔쳐 그 때문에 世道는 암담해진다. 자신에게 화가 닥칠 것을 알지만 오직 君國의 붕괴를 두려워할 뿐이다.

[3] 37-48구분주히 임금을 선도하려 해 보지만 임금은 영균의 중정을 살피기는 커녕 참언을 믿고 진노하였다. 충간이 화를 부를 줄 알지만 꿈에도 잘못은 없다. 하늘에 맹세코 오직 임금 때문에 충성을 다하였다. 영균은 물러남을 違約 때문이라 생각한다. 오직 군왕의 변심 때문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4] 49-56구.영균이 향초를 심어 무성하기를 기다려 베기를 소원했으나 시든 데다 잡초에 묻힌 것을 슬퍼한다. 노력하여 양성한 善人이 물러나고 惡人이 득세하여 뻗어났다. 자신을 지키려 선인의 영광 없앰을 슬퍼한다.

[5] 57-76구.모든 사람들이 영리를 다투어 구하지만 영균은 노년까지 명성을 떨치지 못할까 두려워한다. 봄에는 목란의 구르는 이슬을,가을에는 국화의 꽃잎을 먹어 심신을 고결히 수양하여 향목과 향초로 만든 服飾도 세속과 다르고, 전대의 현인의 것이어서 지금 사람에게 맞지 않는다 해도 옛날 팽함이 남긴 법도를 따르련다.

[6] 77-104구.인생의 다난함을 슬퍼한다. 아침에 간하고 저녁에 쫓겨난 불우함을 탄식한다. 절의를 지켜 아홉 번 죽더라도 뉘우침 없지만 임금 측근의 간악한 이들과 추악한 세속의, 도의도 법칙도 없이 영합하기만을 일삼는 것에 분노한다. 죽음으로써 간악함을 물리치고 옛 성인이 중히 여긴 대로 도의 때문에 죽기를 각오한다.

[7] 105-128구.정직하고 결백하다 하여 물러난 영균은 잠시 물러나 수양하기를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의 정신을 신뢰하여 높은 갓과 아름다운 패옥으로 마음을 상징하여, 밝은 바탕에 조금도 손상 없는 데 의지하기도 하고 혹은 천하에 遠遊를 생각한다. 그런 조건에 부합할 때까지 절의를 지켜 몸은 갈갈이 찢어질지라도 변심 않기를 맹서한다.

[8] 129-140구영균이 늘 절조를 지켜 그 때문에 화를 당하는 것을 보고 누이가 간하였다.「하나라 우왕의 아버지 곤이 강직한 성격 때문에 우산 벌에서 요절했다. 영균의 절조에 반대하는 무리들이 그들에게서 고립시켜 영균을 위험에 빠뜨릴까 걱정된다.」

[9] 141-180구여수의 간함을 듣고 영균은 고대의 聖王을 본받아 내 행동의 中正을 지킬 것을 다짐하고 구의산에 장례한 순임금 무덤에 나아가 心中을 호소한다. 그 신령 앞에 진술한 32구는 모두 옛날 名王과 폭군의 성패의 발자취이다. 夏后 啓 이하 夏나라 桀王, 殷의 紂王, 湯王. 禹王, 주나라 모든 왕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헤아려 논술하여 폭군에 대하여 正言하고 그 때문에 죽임을 당하고 소금에 절임을 당한 忠諫한 선비에 생각이 미친다. 初心에 변함없이 불굴의 신념을 진술하고는 불우한 자신을 탄식하여 눈물을 흘린다.

[10] 181-212구.영균은 구의산에서 나와 우주 여행을 떠난다. 전설로 가득찬 신비한 하늘에서 천체와 풍운의 신과 함께 歷遊타가 하늘 나라 문을 열라고 한다. 해는 저물어 가는데 구하는 미인은 뵈지 않고 사람들은 질투심에 차서 남의 미덕 가림을 슬퍼한다.이 단락의 환상적 서술은 웅대화려하여 실로 <이소>편의 압권이다.

[11] 213-256구영균은 서쪽 백수를 건너 낭풍산을 찾아갔으나 高丘에는 구하는 神女는 없어 문득 동방의 春宮에서 노닐며 하계의 전설의 미녀를 찾아나섰다. 복비를 찾게 했으나 궁석산에서 잠자던 그녀는 후예와 음낙하며 무례히 굴었다. 그녀를 버려두고 유융씨의 딸을 찾게 했으나 고신씨에 뒤져 성공하지 못한다. 다음으로 유우씨의 두 딸 만나기를 소망했지만 소강에게 시집갔다. 구하던 미인은 깊은 규중에 거주해 뜻을 이루지 못했다. 임금은 실정을 알지 못하고 간악한 이들은 선을 덮고 악을 칭찬한다.

[12] 257-276구영균은 무 영기에게 점을 쳐서 미래의 행동을 결정하려 한다. 영기는 미인 미남이 합해지기 마련이므로 멀리 다른 나라에 가기를 권한다. 초나라 黨人輩는 영균과 영기와는 好惡가 정반대여서 타인의 미덕을 인정하지 않는 무리들이다.

[13] 277-304구무함이 하강한다고 듣고 거기에서 나가 맞이하여 판단을 청취하였다. 무함은 원정하여 함께 지조 있는 군왕을 구하라고 역사상 실례를 들어 설명하기를, 영기의 길한 점을 좇아 지금 또다시 노년이 오기 전에 출발하기를 권하였다.「勉陞降以上下兮」 이하 20구는 무함의 말로 생각된다.

[14] 305-332구시류가 변화하여 거기에 오래 머물 수 없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난초․산초 같다고 믿었던 인물들이 모두 세속을 좇아 변화하였으나 귀중한 지조를 지켜 천지에 오르내리며 미인을 찾는다. 이상적인 군왕을 만나 벼슬하겠다고 말한다.

[15] 333-368구영균은 영분의 길한 점과 무함의 권유를 좇아 자기 분수에 맞는 여인인 知己를 찾아 遠征의 길에 오른다. 동방의 은하수 나루에서 문득 곤륜산에 이른다. 웅대한 천로역정, 용거에 운기를 나부끼며 난여를 몰아 자유로이 천공을 날아다닌다. 그리하여 서쪽 끝 유사, 적수를 건너 하늘에 오르기 직전에 구가와 소라는 고대 천자의 음악을 연주하고 춤추어 마음을 즐겁게 했다. 햇빛 휘황한 하늘에 오르니 바로 아래 초나라의 고향이 내려다 보였다. 잠시 향수에 젖었는데 마부도 思鄕에 슬퍼하고 말도 고향이 그리워 걸음을 옮기지 못했다.

[16] 369-374구현실정치에 좌절한 굴원이 殷의 현대부로 왕을 諫하다 받아들여지지 않자 강물에 투신자살한 彭咸(팽함)을 따라 그가 거처하는 멱라수에 몸을 던지겠다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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