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老子韓非列傳 /사기 권63

 

3-4.한비(韓非)

 

韓非者,韓之諸公子也。喜刑名法術之學,而其歸本於黃老。

한비(韓非)는 한(韓)나라 공자(公子)이다. 형명과 법술(法術)의 학설을 좋아하였으나, 그의 학설의 근본은 황로사상에 있었다.

 

非為人口吃,不能道說,而善著書。與李斯俱事荀卿,斯自以為不如非。

한비는 선천적으로 말더듬이어서 변론에는 서툴렀으나 저술에는 뛰어났다. 이사(李斯)와 더불어 순경(荀卿)에게서 공부하였는데, 이사는 자기 스스로 한비보다 못하다고 인정하였다.

 

非見韓之削弱,數以書諫韓王,韓王不能用。

한비는 한나라가 날로 쇠미해짐을 보고 여러 차례 상서하여 한왕(韓王)에게 간언하였으나 한왕은 그의 의견을 채택하지 않았다.

 

於是韓非疾治國 不務脩明其法制,執勢以禦其臣下,富國彊兵 而以求人任賢,反舉浮淫之蠹 而加之於功實之上。

이에 한비는 한왕이 나라를 다스림에 법제를 정비하고 권세를 장악하여 신하를 통제하며 부국강병하게 하고 어진 인재를 등용하는 데에 힘쓰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실속 없는 소인배들을 등용시켜그들을 실질적인 공로자 윗자리에 앉히는 것을 통탄하였다.

 

以為儒者用文亂法,而俠者以武犯禁。寬則寵名譽之人,急則用介胄之士。

한비는 또 유학자는 경전으로 나라의 법도를 어지럽히고 협사(俠士)는 무력으로 나라의 금령(禁令)을 범하고 있다고 하였다. 그런데 군주는 나라가 태평할 때에는 명성을 누리는 유학자나 유사들을 총애하고 나라가 위급할 때에는 갑옷을 입고 투구를 쓴 무사를 등용하였다.

 

今者所養非所用,所用非所養。

따라서 지금 나라에서 녹을 주어 기르는 자는 위급할 때에 쓰일 자가 아니고 위급할 때 쓰이는 자는 평소 녹을 주어 기르던 자가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悲廉直不容於邪枉之臣,觀往者得失之變,그래서 한비는 청렴하고 강직한 사람들이 사악한 권신(權臣)들에 의해서 배척당하는 것을 슬퍼하며, 예전 정치의 성패와 득실의 변천을 관찰하여

 

故作孤憤、五蠹、內外儲、說林、說難十餘萬言。

그래서 고분(孤憤), 오두(五蠹),내외저(內外儲), 세림(說林), 세난(說難) 편 등 10여 만 자의 글을 저술하였다.

 

然韓非知說之難,為說難書甚具,終死於秦,不能自脫。

그러나 유세(遊說)의 어려움을 알고 있던 한비는 <세난> 편을 상세하게 저술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진(秦)나라에서 죽음을 당해서 스스로는 화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說難曰:凡說之難,非吾知之有以說之難也;又非吾辯之難能明吾意之難也;又非吾敢橫失能盡之難也。

그는 「세난」 편에서 이르기를, 무릇 유세의 어려움이란 나의 지식으로써 상대방을 설득시키는 어려움이 아니며, 또 나의 언변으로 나의 뜻을 분명히 밝히지 못하는 어려움도 아니며, 또 내가 감히 해야 할 말을 자유분방하게 다하기 어렵다는 것도 아니다.

 

凡說之難,在知所說之心,可以吾說當之。

유세의 어려움이란 상대방의 마음을 잘 알아, 나의 말을 거기에 들어맞게 하는 데 있는 것이다.

 

所說出於為名高者也,而說之以厚利,則見下節而遇卑賤,必棄遠矣。

상대방이 높은 명성을 얻고자 하는데 유세자가 큰 이익을 얻도록 설득한다면 속된 사람이라고 천시 받을 것이니, 그 사람은 등용되지 못하고 배척당할 것이 틀림없다.

 

所說出於厚利者也。而說之以名高,則見無心而遠事情,必不收矣。

그런데 상대방이 큰 이익을 얻고자 하는데 유세자가 높은 명성을 얻도록 설득한다면 몰상식하고 세상 물정에 어둡다고 하여 반드시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다.

 

所說實為厚利 而顯為名高者也,而說之以名高,則陽收其身而實疏之

상대방이 속으로는 큰 이익을 바라면서도 겉으로는 높은 명성을 얻고자 하는 척할 때에 유세자가 높은 명성을 얻도록 설득한다면 겉으로는 유세자를 받아들이는 척하지만 실제로는 그를 멀리할 것이며,

 

若說之以厚利,則陰用其言 而顯棄其身。此之不可不知也。만약 이런 경우에 큰 이익을 얻도록 설득하면 속으로는 유세자의 의견을 채용하면서도 공개적으로는 그를 배척할 것이다. 이런 점들을 유세자는 잘 알아두어야 한다.

 

夫事以密成,語以泄敗。未必其身泄之也,而語及其所匿之事,如是者身危。

무릇 일은 비밀을 유지함으로써 성사되고 말은 누설됨으로써 실패하게 된다. 그러나 유세자 자신이 꼭 누설하려고 해서가 아니라 말을 하다가 상대가 숨기고 있는 은밀한 일을 언급하게 될 때가 있는데, 이렇게 되면 유세자는 신상이 위태롭게 된다.

 

貴人有過端,而說者明言善議以推其惡者,則身危。

또 군주에게 과실의 여지가 있을 경우, 유세자가 분명한 직언과 교묘한 의론으로 그 잘못을 추궁한다면 유세자의 신상은 위태롭게 된다.

 

周澤未渥也 而語極知,說行而有功 則德亡,

군주의 신임과 은택이 아직 두텁지도 않은데 유세자가 아는 바를 다 말해버리면 설령 그 주장이 실행되어 효과를 보더라도 군주는 그 공로를 잊어버리게 될 것이며,

 

說不行 而有敗 則見疑,如是者身危。

그 주장이 실행되지 않아 실패하게 되면 군주의 의심을 살 것이니 이런 경우에도 유세자의 신상은 위태롭게 될 것이다.

 

夫貴人得計而欲自以為功,說者與知焉,則身危。

또 군주가 좋은 계책을 내어 자기의 공로로 삼고자 하는데 유세자가 그 계책을 알아버리면 그의 신상이 위태롭게 되며,

 

彼顯有所出事,乃自以為也故,說者與知焉,則身危。

군주가 겉으로는 어떤 일을 하는 척하나 실제로는 다른 일을 꾸미고 있는데 유세자가 이것을 알아버리면 신상이 위태롭게 된다.

 

彊之以其所必不為,止之以其所不能已者,身危。

또 군주가 결코 하지 않으려는 일을 억지로 시키거나, 그만둘 수 없는 일을 중지하게 하면 신상이 위태롭게 된다.

 

故曰:與之論大人,則以為間己;與之論細人,則以為粥權。

그러므로 이르기를 군주와 그의 대신(大臣)에 관해서 담론하면 자기를 이간질시킨다고 여기며, 지위가 낮은 인물에 관해서 담론하면 권세를 부린다고 생각하며,

 

論其所愛,則以為借資;論其所憎,則以為嘗己。

군주가 총애하는 자에 관해서 이야기하면 그들을 이용하려고 한다고 여기며, 군주가 미워하는 자에 관해서 논하면 자기를 떠보려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徑省其辭,則不知而屈之;汎濫博文,則多而久之。

말을 직접적으로 간략히 하면 무지하다고 경시할 것이고, 장황하게 수식을 늘어놓으면 말이 너무 길고 많다고 할 것이며,

 

順事陳意,則曰怯懦而不盡;慮事廣肆,則曰草野而倨侮。

사실에 적합하게 이치대로 의견을 진술하면 소심하고 겁이 많아 할 말을 다 못한다고 할 것이고, 생각한 바를 거침없고 빠짐없이 두루 다 말해버리면 버릇없고 거만하다고 할 것이다.

 

此說之難,不可不知也。

이런 점들이 유세의 어려움이니 잘 알아두지 않으면 안 된다.

 

凡說之務,在知飾所說之所敬,而滅其所醜。

무릇 유세에서 힘써야 할 것은 상대방이 추앙하는 바를 미화하고 상대방이 추악하게 여기는 것을 덮어버릴 줄 아는 것이다.

 

彼自知其計,則毋以其失窮之;自勇其斷,則毋以其敵怒之

상대가 그 자신의 계책을 탁월하게 여긴다면 그의 결점을 들어 궁지로 몰아서는 안 되며, 자신의 결단을 용감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그 반대의견을 들어 화나게 해서는 안 되며,

 

自多其力,則毋以其難概之。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면 그가 해내기 어려운 일을 들어 억압해서는 안 된다.

 

規異事與同計,譽異人與同行者,則以飾之無傷也。

(군주가 어떤 계획을 갖고 있는 경우에는) 다른 일로 같은 계획을 하고 있는 사람을 예를 들고 다른 사람이 같은 일을 하고 있는 것을 칭송하여 그것이 탈이 없음을 덮어 주어야 한다.

 

有與同失者,則明飾其無失也。군주와 같은 실수를 범하는 자가 있으면 그에게 과실이 없음을 명확한 언변으로 덮어주어야 한다.

 

大忠無所拂悟,辭言無所擊排,乃後申其辯知焉。此所以親近不疑,知盡之難也。

군주가 유세자의 충심에 대하여 반감을 가지지 않고 언사에 대하여 배척함이 없는 뒤라야 유세자는 그의 지혜와 언변을 마음껏 펼 수 있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군주의 신임을 얻어 의심받지 않으며 아는 바를 다 말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得曠日彌久,而周澤既渥,深計而不疑,交爭而不罪,

오랜 시일이 지나서 유세자에 대한 군주의 총애가 깊어지면, 심원한 계략이라도 의심받지 않게 되고 서로 논쟁하여도 죄를 받지 않을 것이니,

 

乃明計利害以致其功,直指是非以飾其身,以此相持,此說之成也。

유세자는 이해를 명백하게 따지어 군주가 공적을 이룰 수 있게 하며 시비를 직접적으로 지적하여 군주가 언행을 단정히 하도록 한다. 이러한 관계를 서로 유지하게 된다면, 그것은 유세가 성공한 것이다.

 

伊尹為庖,百里奚為虜,皆所由幹其上也。

이윤은 요리사가 되고 백리해는 포로가 되었는데, 이는 모두 군주에게 등용되기 위한 수단이었다.

 

故此二子者,皆聖人也,不能無役身 而涉世如此其汙也,則非能仕之所設也。

그러므로 이 두 사람은 모두 성인이었으면서도 자신의 몸을 수고롭게 하지 않을 수 없어 세상을 사는데 그렇게도 천한 일을 하였던 것이다. 그렇게 보면 재능이 있는 인사라고 그런 수고로운 일을 부끄러워 할 것이 없다

 

 

宋有富人,天雨牆壞。

송(宋)나라에 한 부자가 있었는데, 비가 와서 그의 집 담장이 무너졌다.

 

其子曰「不築且有盜」,其鄰人之父亦云,

그의 아들이 이르기를 "다시 쌓지 않으면 도둑이 들 것입니다"라고 말하니, 이웃집 주인도 역시 그렇게 말하였다.

 

暮而果大亡其財,其家甚知其子 而疑鄰人之父。

날이 저물자 도둑이 들어 과연 많은 재물을 잃었는데, 그 집에서는 그 아들을 매우 똑똑하다고 여기면서도 이웃집 주인에게는 의심을 품었다.

 

昔者鄭武公欲伐胡,乃以其子妻之。

예전에 정 무공이 호나라를 정벌하려고 하면서도, 자기 딸을 호나라 군주에게 시집보냈다.

 

因問群臣曰:「吾欲用兵,誰可伐者?」

그리고는 대신들에게 물어 이르기를, "내가 전쟁을 일으키려 하는데 어느 나라를 치면 좋겠는가?" 하니

 

關其思曰:「胡可伐。」

관기사(關其思)라는 자가 이르기를 "호나라를 쳐야 합니다"라고 하였다.

 

乃戮關其思,曰:「胡,兄弟之國也,子言伐之,何也?」

그러자 관기사를 죽이며 이르기를 "호나라는 형제의 나라인데 그대는 호를 치라고 하니 어째서인가?"라고 하였다.

 

胡君聞之,以鄭為親己而不備鄭。鄭人襲胡,取之。

호나라 군주는 이 소식을 듣고 정나라를 친밀한 우방이라고 여기고는 방비하지 않았다. 그러자 정나라 군사들이 호나라를 습격하여 이를 취했다.

 

此二說者,其知皆當矣,然而甚者為戮,薄者見疑。非知之難也,處知則難也。

이 두 사람이 알고 있던 것은 모두 타당하였다 그러나 심한 자는 죽음을 당하고 가벼운 자는 의심을 받았으니, 안다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라 아는 것을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어려운 일이다.

 

昔者彌子瑕見愛於衛君。衛國之法,竊駕君車者罪至刖。

예전에 미자하라는 사람이 위 나라 군주에게 총애를 받았는데, 위나라 국법으로는 군주의 수레를 훔쳐 타는 자는 월형(刖刑)에 처하도록 되어 있었다.

 

既而彌子之母病,人聞,往夜告之,

얼마 후에 미자하의 모친이 병이 나자 어떤 사람이 이 소식을 듣고 밤에 미자하에게 가서 이 사실을 알렸다.

 

彌子矯駕君車而出。君聞之而賢之曰:

미자하는 임금의 명을 사칭하여 군주의 수레를 타고 갔다. 임금이 이 일을 알고 미자하를 어질다고 하면서 이르기를

 

「孝哉,為母之故而犯刖罪!」

"효성스럽도다! 어머니를 위해서 월형까지 범하다니." 라고 말하였다.

 

與君遊果園,彌子食桃而甘,不盡而奉君。

또 미자하가 군주와 과수원에 놀러 갔다가, 복숭아를 먹어보니 맛이 달아 다 먹지 않고 군주에게 바쳤다.

 

君曰:「愛我哉,忘其口而念我!」

그러자 임금이 이르기를, "나를 끔찍이도 위해주는구나. 자기 입도 잊어버리고 나를 생각하다니!"라고 말하였다.

 

及彌子色衰而愛弛,得罪於君。君曰:「是嘗矯駕吾車,又嘗食我以其餘桃。」

그러다가 미자하가 미색(美色)이 쇠해지고 임금의 총애를 잃었을 때, 임금에게 죄를 지었다. 그러자 임금이 이르기를 "이자는 예전에 군명을 사칭하여 내 수레를 탔고, 또 먹다 남은 복숭아를 나에게 먹인 자로다." 라고 하였다.

 

故彌子之行未變於初也,前見賢而後獲罪者,愛憎之至變也。

미자하의 행위는 처음과 다를 바가 없었으나 전에는 현명하다고 여겨졌으나 후에는 죄를 받은 것은 군주의 애증이 완전히 변하였기 때문이다.

 

故有愛於主,則知當而加親;見憎於主,則罪當而加疏。

그러므로 군주에게 총애를 받을 때에는 지혜가 군주의 마음에 들어 더욱 친밀해지고, 군주에게 미움을 받을 때에는 죄가 마땅한 것이라 여겨져 더욱 소원해지는 것이다.

 

故諫說之士不可不察愛憎之主而後說之矣。

따라서 간언하는 유세자는 군주의 애증을 살펴보고 난 이후에 유세하여야만 한다.

 

夫龍之為蟲也,可擾狎而騎也。然其喉下有逆鱗徑尺,人有嬰之,則必殺人。

용이란 짐승은 잘 길들이면 그 등에 탈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목 줄기 아래에 한 자 길이의 거꾸로 난 비늘이 있는데 사람이 이것을 건드리면 반드시 그 사람을 죽여 버린다.

 

人主亦有逆鱗,說之者能無嬰人主之逆鱗,則幾矣。

군주에게도 거꾸로 난 비늘이 있으니, 유세하는 사람이 군주의 거꾸로 난 비늘을 건드리지 않을 수 있으면 거의 성공적인 유세에 가깝다

 

人或傳其書至秦。秦王見孤憤、五蠹之書,曰:「嗟乎,寡人得見此人與之遊,死不恨矣!」

어떤 사람이 한비의 저서를 진(秦)나라에 가지고 갔다. : 진왕(秦王)이 <고분>, <오두> 2편의 문장을 보더니 이르기를 "아! 과인이 이 사람을 만나 그와 사귈 수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李斯曰:「此韓非之所著書也。」秦因急攻韓。이사(李斯)가 이르기를 "이것은 한비가 저술한 책입니다"라고 말하자, 진나라는 급히 한(韓)나라를 공격하였다.

 

韓王始不用非,及急,乃遣非使秦。

한왕(韓王)은 처음에 한비를 등용하지 않았으나 상황이 급해지자 한비를 진나라에 사신으로 파견하였다.

 

秦王悅之,未信用。李斯、姚賈害之,毀之曰:

진왕은 한비를 좋아하였으나 아직은 그를 신용하지 않았다. 이사와 요고(姚賈)는 한비를 해롭게 하여 비방하여 이르기를

 

「韓非,韓之諸公子也。今王欲並諸侯,非終為韓不為秦,此人之情也。

“한비는 한나라의 공자(公子)입니다. 지금 왕께서 천하를 통일하려 하시는데, 한비는 결국 한나라를 위하지 진나라를 위하지 않으리라는 것 이것은 인간의 정입니다.

 

今王不用,久留而歸之,此自遺患也,不如以過法誅之。」

그러나 지금 왕께서 등용하지 않고 오랫동안 억류하였다가 돌려보낸다면 이는 스스로 후환을 남기는 일이오니, 차라리 잘못을 잡아내어 법대로 처형하시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秦王以為然,下吏治非。李斯使人遺非藥,使自殺。

진왕은 그 말을 그럴듯하게 여기어 옥리에게 한비를 넘겨 처리하도록 하였다. 이사는 사람을 시켜 한비에게 사약을 보내어 자살하도록 하였다.

 

韓非欲自陳,不得見。秦王後悔之,使人赦之,非已死矣。

한비는 직접 진왕에게 진언하고자 하였으나 그렇게 할 길이 없었다. 진왕은 이를 후회하고 사신을 보내 한비를 사면하려 하였으나 이미 죽은 뒤여서 불가능했다

 

申子、韓子皆著書,傳於後世,學者多有。

신자(신불해), 한자(한비)는 모두 책을 저술하여 후세에 전하니, 이를 배우는 자가 많이 있다.

 

余獨悲韓子為說難 而不能自脫耳。나는 다만 한비가 <세난> 편을 저술하고도 자신은 화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 슬플 따름이다.

 

太史公曰:

태사공은 말한다.

 

老子所貴道,虛無,因應變化於無為,故著書辭稱微妙難識。

"노자가 귀히 여긴 도(道)라는 것은 ‘허무’이다. 자연에 순응한 무위 속에서도 각종 변화에 적응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저서의 언사는 미묘하고 이해하기가 어렵다.

 

莊子散道德,放論,要亦歸之自然。

장자는 노자의 도덕을 확대하여 자유분방하게 의론하였는데 그 요지는 자연(自然)으로 귀결된다.

 

申子卑卑,施之於名實。

신자는 부지런히 형명(刑名)에 힘을 썼으며,

 

韓子引繩墨,切事情,明是非,其極慘礉少恩。

한자는 법률에 의거하여 모든 세상사를 결단하고 시비를 분명히 하였으나 너무나 가혹하여 은덕이 결핍되었다.

 

皆原於道德之意,而老子深遠矣。

이들의 학설은 모두 도덕에 근원을 두고 있기는 하였지만 그중 노자가 가장 심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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