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記 卷六十五
孫子吳起列傳 第五
[주]여기에는 손무와 오기의 열전이 수록되었다.
다음 순서로 소개한다.
5-1. 孫武(손무)
5-2. 吳起(오기)
5-1. 孫武列傳(손무열전)
孫子武者,齊人也。〔一〕
以兵法見於吳王闔廬。
손자(孫子) 무(武)는 제나라 사람이다.
병법으로 이름이 나, 오왕 합려(閤閭)를 접견하게 되었다.
闔廬曰:「子之十三篇,〔二〕
吾盡觀之矣,可以小試勒兵乎?」
합려가 말했다.
" 그대가 지은 병법 13편을 내가 모두 읽어 봤소.
한 번 시험삼아 적은 군사로 시험해 볼 수 있겠습니까?"
對曰:「可。」
손자 "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闔廬曰:「可試以婦人乎?」
합려 " 그러면 부녀자라도 가능하겠습니까?"
曰:「可。」
손자 " 가능합니다."
於是許之,出宮中美女,得百八十人。
孫子分為二隊,以王之寵姬二人各為隊長,〔三〕
皆令持戟。令之曰:
그의 용병술을 시험해 보도록 허락히여
합려는 손무에게 궁중의 미녀 중 모두 180명을 주었다.
손자는 궁녀들을 2대로 나눈 다음에,
합려가 사랑하는 총희(寵姬) 2명에게 그 각대의 대장으로 삼았다.
손자는 모든 궁녀들에게 극(戟)을 들게 하고 군령을 내렸다.
「汝知而心與左右手背乎?」
" 너희들은 가슴, 왼손과 오른손, 그리고 등을 알고 있는가?"
婦人曰:「知之。」
궁녀들이 대답했다.
“압니다.”
孫子曰:
손자가 다시 령을 내렸다.
「前,則視心;左,視左手;
右,視右手;後,即視背。」
" '앞으로' 하면 너희들은 가슴을 보고,
'좌로' 하면 왼손을,
'우로' 하면 오른손을,
'뒤로'하면 등을 본다. "
婦人曰:「諾。」
궁녀들이 대답했다.
" 잘 알았습니다."
約束既布,乃設鈇鉞,
即三令五申之。
於是鼓之右,婦人大笑。
손자가 자기의 말을 군령으로 선포하고
대오의 좌우에 부월(鈇鉞)을 설치했다.
손자는 자기의 군령에 대하여 여러 차례에 설명했다.
이윽고 북소리를 울리며 '우로'라는 구령을 내렸지만
궁녀들은 크게 웃기만 할 뿐이었다.
孫子曰:
「約束不明,申令不熟,將之罪也。」
손자가 궁녀들을 향해 다시 말했다.
" 군령이 불분명하여 군사들이 구령에 숙달되지 않은 것은
그 장수의 잘못이다."
復三令五申
而鼓之左,婦人復大笑。
손자가 다시 군령에 대해 여러 차례 반복해서 설명한 후에
북소리를 울리며 '좌로'라는 구령을 내렸지만
궁녀들은 여전히 크게 웃기만 할뿐이었다.
孫子曰:
「約束不明,申令不熟,將之罪也;
既已明而不如法者,吏士之罪也。」
손자가 다시 궁녀들을 향해 말했다.
" 군령이 확실치 않고 군사들이 익숙하지 않은 것은 장수의 죄이다.
그러나 군령이 이미 확실해 졌음에도 구령에 따르지 않은 것은
군리(軍吏)와 군사들의 잘못이다."
乃欲斬左古隊長。吳王從臺上觀,
見且斬愛姬,大駭。
趣使使〔四〕下令曰:
손자는 오왕의 총희인 두 대장을 끌어내어 참수하려고 했다.
오왕은 높은 대에 올라 참관하다가
두 총희가 참수 당하려는 것을 보고 크게 놀라
사자를 손자에게 보내 자기의 말을 전하게 했다.
「寡人已知將軍能用兵矣。
寡人非此二姬,食不甘味,願勿斬也。」
" 과인은 이미 장군이 능히 용병을 할 수 있음을 알았습니다.
과인에게 두 총희가 없으면 음식을 먹어도 맛을 느낄 수 없습니다.
원컨대, 참수형을 면케 해주기 바랍니다."
孫子曰:
「臣既已受命為將,
將在軍,君命有所不受。」
손자 " 저는 이미 대왕의 명을 받아 장수가 되었습니다.
장수된 자가 군중에 있을 때는
비록 임금의 명이라도 받들지 않을 경우가 있습니다."
遂斬隊長二人以徇。
用其次為隊長,於是復鼓之。
婦人左右前後跪起
皆中規矩繩墨,無敢出聲。
於是孫子使使報王曰:
드디어 오왕의 두 회첩을 참수형에 처해 그 목을 장대에 매달아 군사들에게 보였다.
이어서 두 희첩 대신에 다른 궁녀를 뽑아 대장으로 삼은 후에
북소리를 울리고 구령을 발했다.
궁녀들은 모두 좌로, 우로, 앞으로, 뒤로 등의 구령이나 꿇어앉거나 일어서거나
모두 규율을 지켜 호령대로 움직여,
감히 다른 소리를 내지 못했다.
[궁녀들이 구령대로 움직일 수 있게 되자 ]
손자가 사자를 오왕에게 보내 말을 전하게 했다.
「兵既整齊,王可試下觀之,
唯王所欲用之,雖赴水火猶可也。」
" 군사들이 이미 정비되었으니
대왕께서는 내려오셔서 한번 시험삼아 호령해 보시기 바랍니다.
대왕께서 그들을 부리고 싶다면
물 속이건, 불구덩이 속이건 가리지 않을 것입니다."
吳王曰:
「將軍罷休就舍,寡人不願下觀。」
오왕이 말했다.
" 장군은 이제 조련을 파하시고 숙사에 돌아가 쉬시기 바랍니다.
과인은 내려가 군사를 부리고 싶지 않습니다."
孫子曰:「王徒好其言,不能用其實。」
손자
" 대왕께서는 단지 저의 병법의 이론만을 좋아하실 뿐이고,
그 실제적인 것은 쓰실 줄 모르고 계십니다."
於是闔廬知孫子能用兵,卒以為將。
西破彊楚,入郢,
北威齊晉,顯名諸侯,
孫子與有力焉。
그러자 합려는 손무의 용병 능력을 인정하고
결국은 그를 대장으로 삼았다.
후에 오왕 합려가 서쪽의 강대국인 초나라의 군사들을 파하고
그 서울인 영도(郢都)를 점령하여,
북쪽의 제(齊)와 당진(唐晉)에 위세를 떨치고,
제후들 사이에서 이름을 크게 드러낸 것은
모두 이에 참여한 손자의 능력에 힘입은 바가 큰 것이다.
孫武既死,〔一〕後百餘歲有孫臏。
손무가 이미 죽고
백 년쯤 지나 손빈이 나타났다.
臏生阿鄄之閒,
臏亦孫武之後世子孫也。
孫臏嘗與龐涓〔二〕俱學兵法。
손빈은 아·견이라는 두 고을 사이에서 태어났다.
손빈은 손무의 후손이다.
손빈은 일찍이 방연과 함께 병법을 배웠다.
龐涓既事魏,得為惠王將軍,
방연은 공부를 마친 다음 위나라를 섬겨
혜왕의 장군이 되었다.
而自以為能不及孫臏,乃陰使召孫臏。
臏至,龐涓恐其賢於己,疾之,
그러나 스스로 손빈을 당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으므로
가만히 사람을 보내 손빈을 불러들였다.
손빈이 찾아오자
방연은 그의 재능이 자기보다 훨씬 뛰어난 것을 두려워하여
그를 미워했다.
則以法刑 斷其兩足而黥之,欲隱勿見。
없는 죄를 뒤집어 씌어
두 다리를 끊고 이마에 묵형을 가하였다.
그렇게 되면 손빈이 숨어서 나타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齊使者如梁,〔一〕
孫臏以刑徒陰見,說齊使。
그 뒤 제나라 사신이 위나라 서울 대량을 방문하였다.
손빈은 형을 당한 상태로 비밀리에 그를 만나
제나라 사신을 설득했다.
齊使以為奇,竊載與之齊。
齊將田忌善而客待之。
제 나라 사신은 손빈의 기인이라 여기고
몰래 자기의 수레에 숨겨 제 나라로 데리고 갔다.
제 나라에 간 손빈은 곧 장군 전기의 인정을 받아 그의 빈객으로 머물렀다.
忌數與齊諸公子 馳逐重射。
孫子見其馬足不甚相遠,
馬有上、中、下、輩。
전기는 때마침 도박에 빠져 공자들과 기마와 활쏘기를 즐겼다.
손빈은 그 내기를 구경하다가 그 기마의 발길이 심히 먼 것을 간파하였다.
당시의 말에는 상중하의 등급이 있었다.
於是孫子謂田忌曰:
「君弟重射,〔二〕臣能令君勝。」
이에 손자빈은 전기에게 말했다.
“임금의 아우가 활쏘기를 중히 여기니
내가 장군을 이기게 해 드리겠습니다.”
田忌信然之,
與王及諸公子逐射千金。〔三〕及臨質,〔四〕
전기는 그를 그러하리라 믿고
왕과 공자들에게 다시 천 금을 건 활쏘기 내기를 하자고 제안했다.
지금은 상대하여 활쏘기를 하려고 할 때가 아닙니다.
〔四〕索隱按:質猶對也。將欲對射之時也。一云質謂堋,非也。
孫子曰:
「今以君之下駟與彼上駟,
取君上駟與彼中駟,
取君中駟與彼下駟。」
孫子曰(손자왈) :
손빈이 말했다.
“지금 당군의 제일 느린 하등 수레를
상대방의 가장 빠른 상등 수레와 달리게 하고
장군의 상등 수레는 상대방의 중등 수레와 달리게 하고
장군의 중등 수레는 상대방의 하등 수레와 달리게 하십시오.”
既馳三輩畢,
而田忌一不勝而再勝,卒得王千金。
달리기 경기가 3차례 끝나자
전기는 2승 1패의 결과로
결국 내기에 이겨 왕은 천금을 얻었다.
於是忌進孫子於威王。威王問兵法,遂以為師。
이 일로 전기는 손자를 위왕에게 그를 천거했다.
위왕 역시 손빈과 병법에 관한 문답을 가진 뒤로
마침내 스승로 삼았다.
其後魏伐趙,趙急,請救於齊。
齊威王欲將孫臏,臏辭謝曰:
「刑餘之人不可。」
그 후에 위 나라가 조 나라를 공격하자
조 나라는 위급해져 제나라에 구원을 청했다.
제 나라 위왕은 손빈을 장군으로 삼아 조 나라를 구원하려 했으나
손빈은 사양하여 말했다.
“죄를 진 사람이므로 불가 합니다.”
於是乃以田忌為將,而孫子為師,
居輜車中,坐為計謀。
이에 위왕은 전기를 장군으로 삼되
손빈은 군사로서
치차 속에 들어앉아
작전 지휘를 하도록 했다.
田忌欲引兵之趙,孫子曰:
전기가 군대를 이끌고 조 나라로 가려 하자
손빈이 말했다.
「夫解雜亂紛糾者〔一〕不控捲,〔二〕
救鬪者不搏撠,〔三〕批亢擣虛,〔四〕
形格勢禁,則自為解耳。〔五〕
“실이 엉킨 것을 풀려면 잡아당기거나 두들겨서는 안 됩니다.
싸움을 편들려면 덮어 놓고 주먹만 휘둘러서는 안됩니다.
상대방이 노리는 점을 막을 것이 아니라 허점을 칠 때
모양이 바로 잡히고 세력이 그쳐
싸움은 자연히 풀립니다.
今梁趙相攻,輕兵銳卒必竭於外,
老弱罷於內。
지금 위 나라와 조 나라가 서로 싸우기 때문에
정예부대는 반드시 바깥 방어에 주력할 것입니다.
위 나라에 남은 자는 다만 노약자에 불과합니다.
君不若引兵疾走大梁,
據其街路,衝其方虛,
彼必釋趙而自救。
이제 장군께선 군사를 이끌고 위 나라 서울 대량으로 달려가
신속히 그 길을 점령하고 그 허점을 찔러야 합니다.
그러면 위 나라 군사는 조나라에 대한 공격을 포기하고
자기네의 도성을 구하고자 할 것입니다.
是我一舉解趙之圍 而收獘於魏也。」〔六〕
이야말로 저의 한 번 움직여 조 나라의 포위를 풀고
동시에 위나라를 피폐하게 만드는 일입니다.”
田忌從之,魏果去邯鄲,
與齊戰於桂陵,大破梁軍。
전기가 손빈의 계책을 따랐다.
위나라 군사는 과연 조나라 서울 한단에서 철수했다.
계릉에서 제나라와 싸워
크게 양군을 격파했다.
後十三歲,〔一〕魏與趙攻韓,
韓告急於齊。
그로부터 13년 뒤
위 나라는 조 나라와 더불어 한 나라를 공격했다.
한 나라는 위급한 사정을 제 나라에 고했다.
齊使田忌將而往,直走大梁。
魏將龐涓聞之,去韓而歸,
齊軍既已過而西矣。
제나라는 전기를 대장으로 임명하여 가서 구하게 했다.
전기는 또다시 곧장 대량을 향해 달려갔다.
위나라 대장 방연은 급보를 받자
즉시 한나라를 버려두고 귀로에 올랐으나
이미 국경을 넘어선 제나라 군사는 계속 서쪽으로 진격해 왔다.
孫子謂田忌曰:
「彼三晉之兵 素悍勇
而輕齊,齊號為怯,
善戰者因其勢而利導之。
이때 손빈은 전기에게 이르기를
“저들 3진의 군사는 원래 사납고 용맹스럽습니다.
제나라를 경멸하여 제나라 군사를 겁쟁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전쟁을 잘하는 사람은 주어진 형세를 잘 이용하여
자기에게 유리하도록 이끌어 나갑니다.
兵法,百里而趣利者蹶上將,〔二〕
五十里而趣利者軍半至。
병법에는
‘승리에 취해 백 리를 급히 달리는 군사는 그 상장군을 꺾이게 되고
50리를 급히 달리는 군사는 반밖에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使齊軍入魏地為十萬竈,明日為五萬竈,
又明日為三萬竈。」
우리 제나라 군대로 하여금 위나라 땅에 들어가 10만개의 아궁이를 만들고
내일은 5만 개로 만들고
모래는 3만개로 만들어 줄여 나가는 것입니다.”고 했다.
龐涓行三日,大喜,曰:
「我固知齊軍怯,入吾地三日,
士卒亡者過半矣。」
한나라에서 되돌아온 방연은 제나라 군대를 추격하기 사흘째에 이르자
크게 기뻐하여 이르기를
“나는 처음부터 제나라 군사가 겁쟁이인 것을 알고 있지만
우리 땅을 침입한 3일만에
사졸 중에서 도망한 자가 절반을 넘었다.”고 했다.
乃棄其步軍,與其輕銳 倍日并行逐之。
孫子度其行,暮當至馬陵。
그리고 곧 보병은 따로 떼어놓은 채로
기병 등 정예부대만을 이끌고
이틀 길을 하루로 단축시켜 급히 제나라 군대를 추격했다.
손빈이 위나라 군사의 속도를 계산해 본 결과
저녁 무렵이면 마릉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馬陵道陝,而旁多阻隘,可伏兵,
乃斫大樹白而書之曰
「龐涓死于此樹之下」。
마릉은 길이 좁고
양쪽에는 험한 지형이 많아
복병을 두기에 알맞은 곳이었다.
손빈은 길 옆에 있는 큰 나무를 골라 껍질을 벗기고 그 흰 부분에다
글씨를 쓰기를,
“방연은 이 나무 밑에서 죽으리라.” 고 했다.
於是令齊軍善射者萬弩,
夾道而伏,期曰
「暮見火舉而俱發」。
이에 제나라 군사들 가운데서 활 잘 쏘는 사람을 뽑아 무수한 쇠뇌를 가지고
길 양쪽에 숨어 있도록 한 다음 기약하기를,
‘날이 저물어 이곳에 불이 밝혀지는 즉시 일제히 쏘아라.’고 명령해 두었다.
龐涓果夜至斫木下,
見白書,乃鑽火燭之。
讀其書未畢,齊軍萬弩俱發,
魏軍大亂相失。
방연은 과연 날이 저문 뒤에야 그 나무 밑에 이르렀고
흰 부분에 씌어진 글씨를 보기 위해
불을 일으켜 그것을 밝혔다.
방연이 미처 다 읽기도 전에
제나라 복병의 수많은 화살이 일제히 쏟아져 내렸다.
위나라 군사는 크게 어지러워져 서로 앞뒤를 분간하지 못했다.
龐涓自知智窮兵敗,乃自剄,曰:
「遂成豎子之名!」〔三〕
방연은 더 이상 지혜를 써 볼 수도 없이 싸움에 패했음을 알고
스스로 칼로 목을 찔러 이르기를,
“기어코 그 녀석의 이름을 떨치게 만들었구나.”라고 했다.
齊因乘勝盡破其軍,虜魏太子申以歸。
孫臏以此名顯天下,世傳其兵法。
제나라 군사는 승세를 몰아 위나라 군사를 전멸하다시피 하고
위나라 태자 신을 포로로 잡아 귀국하였다.
손빈은 이 승리로 이름이 천하에 알려졌고
세상에 그의 병법이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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