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특수정찰기 WC-135 동해상공 긴급 출격…北핵실험 대비

기사입력 2017-04-20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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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북한이 핵실험할 것이란 미확인 소문 돌아…관련부처 긴장"

"北풍계리 핵실험장, 언제든 명령 떨어지면 핵실험 가능한 상태"


(서울=연합뉴스) 김귀근 기자 = 북한이 제6차 핵실험 준비모드에 들어갔다는 관측이 계속되는 가운데 대기 중 방사성 물질을 탐지해 핵실험 여부를 판단하는 미국 특수정찰기 WC-135(콘스턴트 피닉스)가 20일 동해 상공에 긴급 출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특수정찰기의 출격은 북한의 핵실험 징후가 임박했다는 미확인 정보가 돌면서 이뤄졌거나, 실제 핵실험을 했을 때 본격적인 임무 수행을 위한 준비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

정부의 한 소식통은 "미 특수정찰기 WC-135가 오늘 동해 상공에 긴급히 출격한 것으로 안다"면서 "북한 핵실험에 대비한 활동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미 공군 소속 WC-135는 지난 7일 오키나와 가데나(嘉手納) 공군기지에 도착한 임무 수행을 준비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WC-135 출격과 관련해서는 이날 '북한이 중국에 핵실험을 할 것이라는 내용을 통보했다'는 확인되지 않는 소문이 돌고 있는 것과 연관이 있어 보인다.

다른 소식통은 "오늘 북한이 중국에 핵실험을 할 것이라는 내용을 통보했다는 확인되지 않은 정보가 돌아 국방부와 외교부 등 관련 부처에서 확인하느라 분주했다"면서 "WC-135 긴급 출격도 이런 소문에 따른 긴급 임무 수행 차원이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고 전했다.

군 당국은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실험장은 북한 지휘부의 명령만 떨어지면 언제든지 핵실험을 감행할 수 있는 상태라고 전했다.




 

시진핑이 에게 한국을 중국의 속국이라고 소개하여 그 오해를 바로잡기 위하여 동이족의 분포지역지도를 소개하고 발해의 건국에 대하여 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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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는 698년부터 926년까지 한반도 북부와 만주·연해주에 존속하며 남북국을 이루었던 고대국가이다.

 

건국

발해는 고구려가 멸망한 지 30년이 지난 뒤인 698년에 건국되었다. 건국의 기폭제가 된 것은 696년에 요서() 지방의 영주(: 지금의 요령성 )에서 일어난 거란족의 반란이다. 영주는 당나라가 동북쪽 이민족을 통제하던 거점도시로서, 주변 지역에서 귀순해오거나 강제로 끌려온 이민족들이 다수 거주하였다. 그러한 이민족에는 고구려 유민을 비롯하여 거란족, 해족(), 말갈족 등이 있었다.

696년 5월에 거란족 수장인 이진충()과 손만영()이 영주도독의 가혹한 통치에 불만을 품고 반기를 들었고, 이들은 유주(, 지금의 베이징)까지 공격하여 당나라에 큰 타격을 주었지만, 이듬해에 겨우 평정되었다. 영주에 함께 거주하던 대조영 집단도 이들에 동조했고, 이 거사가 실패로 돌아갈 무렵에 무리를 이끌고 영주를 탈출했다. 이 때 말갈 추장인 걸사비우() 집단도 동참했다.

두 집단은 요수()를 건너 요동()으로 건너왔으니, 이들이 영주에서 말갈족의 거주지인 북방으로 손쉽게 탈출하지 않고 아직 당나라 세력이 남아 있는 동쪽의 고구려 옛 땅으로 돌아온 것은 주목할 만하다. 이것은 고구려 유민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사실을 암시하고, 발해 건국이 결국은 고구려의 부흥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당나라에서는 처음에 대조영의 아버지 걸걸중상()에게는 진국공(), 걸사비우에게는 허국공()을 봉하여 이들을 무마하려 했다. 그러나 걸사비우가 이를 거절함에 따라 당나라 군대의 추격이 시작되었다. 이 때 당나라 장수는 이해고()로서 거란 반란군에 가담했다가 당나라에 항복한 인물이다. 그는 먼저 걸사비우를 공격하여 그를 죽였고, 이 무렵에 걸걸중상도 사망하였다. 이에 따라 대조영이 두 집단을 통합하였고, 당나라 군대의 예봉을 피하기 위해 랴오둥을 벗어났다. 그렇지만 이해고는 랴오닝성〔〕과 지린성〔〕경계에 있는 천문령()을 넘어 추격해오자, 대조영 집단은 부득이 당나라 군대와 일전을 벌이게 되었다. 다행히 이 전투에서 이해고가 대패하여 귀환했다.

대조영은 무리를 수습하여 영주로부터 2천리나 떨어진 동모산()에 나라를 세웠다. 발해가 건국된 해는 일본측 기록인『루이쥬코쿠시()』에 전해진다. 건국지는 지린성 돈화()에 있는 성산자산성()으로 여겨진다. 이곳은 말갈족의 터전이기에 기록에는 ‘읍루의 옛 땅’에 도읍했다고 했다. 그렇지만 대조영이 처음부터 건국지로 지목한 것이 아니라, 당나라 추격에 쫓겨서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곳이었다. 산 위에 성을 쌓아 건국한 것은 혹시 있을지 모르는 당나라 군대의 공격에 맞서기 위한 것으로서, 건국 당시 방어에 급급했던 절박한 사정을 추측할 수 있다.

건국 집단은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으로 구성되었다. 영주를 탈출할 때에 걸걸중상과 걸사비우가 독립적으로 망명자를 통솔했으니, 말갈 추장인 걸사비우는 말갈족을 지휘했고, 걸걸중상은 고구려 유민을 지휘했다. 이때의 규모는 1천 명 가량이었다. 발해를 건국하고 난 뒤에 주변에 흩어져 살던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을 점차 흡수함에 따라 세력이 날로 불어나 마침내 10여만 호에 정예병이 수만 명이나 되었다. 이 가운데 주도권은 고구려 유민이 쥐고 있었을 것이니, 현전하는 발해인의 성씨 가운데 고()씨가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고, 발해 왕실과 귀족이 묻힌 육정산고분군()에서 제일 상층부에 속하는 무덤들에 고구려 요소가 강하게 나타나는 사실 등에서 증명된다.

처음에는 국호를 ‘진국()’이라 했다. 진국()이란 기록도 있는데, 이것은 걸걸중상에게 봉해진 진국공에서 유래해서 추후에 잘못 기록된 것으로 보인다. 대조영이 713년당나라로부터 발해군왕()으로 책봉 받은 뒤에는 국호를 ‘발해’로 바꾸었다.『신당서()』발해전에서 이때에 “말갈 칭호를 버리고 발해로만 불렀다”고 한 것은 당나라에서 그렇게 했다는 말이다. 당나라는 발해국을 공식 인정하기 전에는 말갈 집단으로 비하해 불렀기 때문이다.

대조영이 고구려인인지 말갈인인지 끊임없이 논란이 되어 왔다. 이는 발해국의 귀속과 직결된다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는 순수한 고구려인도 순수한 말갈인도 아니었으니, 역사 기록에 고구려 별종()이라 한 것은 이 때문이다. 대조영 집안은 본래 속말말갈() 출신으로서 일찍이 고구려에 귀순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고구려 장수를 역임했으며, 당나라가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반란의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을 중국으로 강제 이주시킬 때에는 그 대상이 되었다. 따라서 고구려 멸망기에는 이미 고구려 유력가문으로 성장해 있었던 것 같다. 따라서 그는 ‘말갈계 고구려인’으로 보아야 한다. 그러기에 건국 시에 고구려 유민과 말갈인을 아울러 통솔할 수 있었다.

건국을 선포한 뒤에 고왕()대조영(?∼719)이 추진한 것은 주변국과의 외교관계 수립이었다. 당나라 군대가 언제 다시 공격해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먼저 당나라와 대립하고 있던 동돌궐()에 사신을 파견했고, 역시 당나라와 불편한 관계에 있던 신라에도 사신을 파견하여 방패막이로 삼았다. 이 때 신라는 대조영에게 제5등 대아찬을 주었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른 뒤 당나라도 발해에 화해의 몸짓을 보내왔다. 707년경에 당중종은 장행급을 파견하여 대조영을 위무했고, 대조영은 그 보답으로 아들을 장안으로 보내 숙위(宿)하게 했다. 마침내 713년에 당현종이 최흔을 파견하여 대조영을 발해군왕, 홀한주도독()으로 책봉하고, 아들 대무예()를 계루군왕()으로 책봉함으로써, 비로소 공식적인 외교관계가 수립되었다. 이로부터 발해는 거의 매해 사신을 파견하였다.

[네이버 지식백과] 발해 [Balhae, 渤海]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뉴스]

“韓, 中 일부였다”… 트럼프-시진핑 회담 발언 파문

원문보기:
http://news.donga.com/3/all/20170420/83952914/1#csidxdf4e763ea61f10382cf572e13d2652b

 

트럼프 “시진핑, 10분간 韓中역사 설명”

… 한국 정부 “일고의 가치도 없는 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최근 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미중 정상회담 당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한국은 중국의 일부였다”고 말했다고 볼 수 있는 발언을 해 논란이 일고 있다. 

원문보기:
http://news.donga.com/3/all/20170420/83952914/1#csidx3f40f397bc73a65bfb07b33b07245c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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