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소총 제607- 홍시 따다 낭패 보다 (摘枾嘗糞)

옛날에 매우 어리석은

총각이 장가를 갔다.

혼례를 마치고 나서 그 신랑은

점심 밥상에 올라온

홍시를 먹어 보고

맛이 있자 모두 다 먹어 치웠다.

그러고도 더 먹고 싶은

욕심이 난 신랑은

첫날밤 신부에게 묻는 것이었다.

"오늘 점심 밥상에 올라온

둥글고 빨간 것이

매우 달고 맛있던데

그게 무슨 과일이요?"

"예, 서방님 그건

홍시라고 하는 과일입니다."

"그게 홍시라고?

그렇다면 그것은 어디서 얻는 거요?"

"예! 서방님 우리 집 후원에는

감나무가 있는데,

그 나무에서 감이 익어

빨갛게 된 것을 딴 것이랍니다."

"그러면 지금도 감나무에 그것이 있소?

그렇다면 그 나무가 있는 곳을

나에게 좀 알려 주시오."

이에 신부는 방 뒤쪽

창문을 조금 열고,

감나무를 가리켜 알려 주었다.

신랑은 잠도 제대로 자지 않고

새벽이 되기를 기다려

옷을 모두 벗고는 몰래 나갔다.

그리고 신부가 일러준 대로

후원에 가서

감나무를 찾아 올라갔다.

이렇게 홍시를 따먹고 있는데,

마침 장인 역시

새신랑의 아침상에 올릴

홍시를 따려고

감나무 밑으로 왔다.

날은 아직 완전히 밝지 않아

어두컴컴한데,

장인은 긴 막대기에

끈으로 갈고리를 만들어서

나무를 쳐다보며

불그레한 것을

그 갈고리에 걸어 잡아당겼다.

그런데 거기에 걸린 것은

홍시가 아니라,

나무 위에 올라가 있는

신랑의 음낭(陰囊)이었다.

이에 음낭이

갈고리에 걸려 당겨지자

어찌나 아프던지,

신랑이 크게 놀라 힘을 주는 사이

그만 소변과 묽은 대변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이 오물이 나무 아래 있는

장인의 손등에 떨어졌는데,

장인은 실수로 나무에서

홍시가 뭉개져 떨어지는 것으로 알고,

'이것 참, 아깝구나, 아까워!

홍시가 뭉개져 떨어지네.'

라고 중얼거리면서

그 손등에 떨어진 것을

입으로 가져가니,

지독한 냄새가 풍기는 것이었다.

 

그러자 장인은

급히 손을 뿌리치면서 말했다.

"아뿔사! 벌써 홍시가

묵어서 썩었나 보구나.

이렇게 지독한 냄새가 나다니,

이따 날이 밝거든

잘 보고 따야지."

이러고 장인은

사랑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 사이 신랑은 살그머니

나무에서 내려와 신방으로 돌아갔다.

이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사위와 장인의 어리석음이 이와 같으니,

가히 사람을 웃길 만한 일이

많이 벌어지겠다고 했더라 한다.

 

고금소총 제606- 지나친 축약 (太簡莫曉)

옛날 호조(戶曺)에 한 서리가 있었는데,

그 문장력이 정말로 수준 이하였다.

여러 가지 사건보고서를 작성해 낭관(郎官)에게 올리는 것을 보면,

장황하게 단어만 늘어놓고 도무지 무슨 뜻인지 모르게 쓰곤 했다.

보다 못한 낭관이 하루는 이 서리를 불러 타일렀다.

"자네가 쓰는 보고서는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으니,

지금 부터는 요점만 들어 간략하게 작성하도록 하라."

이 말을 들은 서리는 명령대로 시행하겠다면서 물러났다.

 

그리하여 뒷날 이 서리가 낭관에게 보고서를 올렸는데 보니까,

'이판동고송(吏判東高送)' 이라고 달랑 다섯 자만 적혀 있었다.

낭관이 아무리 연구해 봐도 그 뜻을 모르겠기에,

주위 사람들에게 물었지만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보고서를 작성한 그 서리를 불러 물어 보자,

그의 설명은 이러했다.

"이는 '금일 이조판서(吏曺判書) 대감께서

동대문(東大門) 밖에서 고성군수(高城郡守)를  전송(餞送)했음'이란 뜻으로 쓴 것이옵니다.

지난 번 낭관어른께서 보고서를 간략하게 쓰라고 지시하시기에,

분부 받들어 이렇게 작성했사옵니다."

이에 낭관은 크게 웃었고,

주위에서 듣고 있던 사람들도 모두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더라 한다.

 

고금소총 제605- 원만함이 좋으니라 (以圓爲主)

한 노인이 젊어서부터 성품이 부드러워

매사에 원만함을 중심으로 삼았다.

그래서 사람들과 다투려 하지 않아 칭송을 받았으며,

늙어 백수가 되도록 한 번도 시비를 해본 적이 없었다.

이 노인에게 어느 날 갑자기 한 사람이 나타나 이렇게 말했다.

"어르신! 오늘 아침에 남산이 모두 붕괴되어 무너졌습니다요."

"아, 남산은 몇 백 년 묵은 산이라 바람과 비에 시달려 무너질 수도 있으니,

크게 괴이한 일은 아니지요."

이 대화를 옆에서 듣고 있던 다른 한 사람이 물었다.

"영감님! 어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입니까?

아무리 오래 묵었다 해도 산이 어찌 무너지겠어요?"

"자네 말도 옳구먼. 남산은 위가 뾰족하고 아래가 넓으며

바위와 돌로 단단히 뭉쳐 있으니,

바람과 비에 시달렸다 하더라도 쉽게 무너질 염려는 없을 걸세."

이렇게 얘기하고 있는 동안에 또 한 사람이 와서 말했다.

"영감님! 조금 전에 참으로 괴이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니, 무슨 괴이한 이야기를 들었단 말인가?"

"예, 들어 보십시오. 소가 말입니다.

그 큰 몸집인 소가 쥐구멍으로 들어갔답니다.

그것 참 괴이한 일이 아닙니까?"

"어, 자네가 들은 얘기도 그렇게 괴이한 일은 아닐세.

소의 성품이 워낙 우직해서, 비록 쥐구멍이라 해도

밀어붙여 들어갔을 수도 있으니 괴이하다 할 수가 없지."

그러자 옆에 있던 한 사람이 언성을 높였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습니까? 비록 소의 성품이 우직하다 해도,

어찌 그 작은 쥐구멍으로 들어간단 말입니까?"

"자네 말도 역시 맞구먼, 그래. 소는 머리에 두 뿔이 떡 벌어져 있으니,

그 뿔에 걸려 작은 굴속으로는 못 들어갈 걸세."

이와 같이 잠깐 사이에 노인은 여러 사람의 말을 모두 옳다고 하니

듣고 있던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노인장은 어찌 이렇게도 불성실한 대답을 하십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모두 옳다고 하니 어찌된 영문입니까?"

그러자 노인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것은 내가 늙도록 몸을 잘 보전하고 있는 비결이니

여러분은 비웃지 마시구려.

내 이런 성품은 아마도 성질이 급해

잘 싸우는 사람에게 경계가 될 것이로세."

이 말에 모두들 일리가 있다면서 승복하였더라 한다.

 

고금소총 제604- 탐욕이 지나친 재상 (貪取兩帖)

옛날에 한 재상이 있었는데, 재물에 대한 탐욕이 지나쳐서

지방으로 나가는 관장들에게 많은 뇌물을 요구하곤 했다.

하루는 이 재상이 집에서 한가롭게 앉아 쉬고 있는데,

마침 풍요로운 고을의 관장으로 나가있는 무관(武官) 한 사람이

인사차 방문하자 늘 그랬던 것처럼 슬그머니 말을 던졌다.

"내 근래 집을 한 채 짓는데 자금이 조금 부족하다네.

자네가 어떻게 좀 도와줄 수 없겠는가?

지금 첩지(帖紙)1)를 써주면 사람을 시켜서 찾아오도록 하겠네."

1)첩지(帖紙 : 오늘날의 어음처럼 금액을 적어 주고 뒤에 돈을 찾게 하는 쪽지.

이 말에 관장은 자기 형편에 넘치게 2백냥을 써서 내놓았다.

 

본디 이 재상은 항상 요강을 깨끗이 씻어 말려 방안에 두었는데,

이것은 소변용이 아니라 달리 사용하기 위해 늘 마른 상태로 비워 두었던 것이다.

이에 재상은 이 첩지를 보더니 서운한 표정을 지으면서 똑바로 앉아 말했다.

"내 가까운 사이여서 말을 꺼냈던 것인데,

자네가 나를 이리 박절하게 대접할 줄은 몰랐네.

내 지금 그리 말한 것을 크게 후회하는 터이니 없었던 일로 하게나."

이러면서 그 첩지를 요강 속으로 던져 넣는 것이었다.2)

2)남이 보기에는 그 첩지가 소변에 젖어 파기된 것 같지만,

사실은 요강 속이 말라있으므로 첩지는 그대로 있음.

 

그러자 관장은 당황하여 앞서 그 첩지가 못 쓰게 된 줄로 알고,

새로 4백 냥을 적어 앞으로 내놓았다.

이에 재상은 웃으면서,

"이 정도면 내 약간은 도움이 될 만하구먼."

이라 말하고 그 첩지를 받아 챙기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관장은 인사를 하고 물러 나왔는데,

뒤에 보니 재상은 사람을 보내 앞서 요강에 던져 넣은 2백 냥과

뒤의 4백 냥 첩지를 함께 가지고 와서 6백 냥을 찾아가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듣고 더럽다며 침을 뱉으며 재상을 욕했더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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