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자주]한글날을 맞아 아래 주소창에서 한글의 우수성을 다시 요약해 본다.

1445년 4월 《용비어천가》의 완성은 시사하는 바 크다. 언문이라 비하하는 훈민정음으로 125장에 달하는조선왕조의 대서사시를 창작하여 제시함으로써 국운을 건 세종의 도전과 모험은 반대론자들의 분분한 불평을 잠재우기에 충분했던 것으로 보여진다. 더이상 다시 반론을 제기했다가는 역적의 반열에 오를지도 모르는 분위기가 되었다. 드디어 1446년(세종 28) 9월에 훈민정음이 완성·반포하게 된 것이다.

참고로 훈민정음 제정의 경과도 살펴본다.

원문 http://blog.paran.com/kydong/27416819

[참고]최만리 등의 반대상소

http://blog.paran.com/kydong/27693095

한글창제가 독창적이고 과학적이라는 근거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1.한자의 음절분석은 성모와 운모 2분법인데, 우리말을 초성 중성 종성 3분법으로 파악한 점.

2.초성의 창제 원리는 오행 사상을 바탕으로 발음기관의 조음 위치에 따라 아음, 설음, 순음, 치음, 후음의 오음으로 확정하고 "ㄱ , ㄷ, ㅂ, ㅅ, 여린히읗"을 기본 글자로 하여 가획하고, 따로 3개의 음운[옛이응, 반치음, 반설음 'ㄹ']을 추가하여 17자를 만듦. 경음[된소리]은 각자병서하였으나 17자에는 포함하지 않음.

이를 도표화하면 아래와 같다.

아음

설음

순음

치음

후음

전청

여린히읗

차청

전탁

여린쌍히읗

불청불탁

옛이응

ㄴ,

ㄹ(반설음)

반치음

[초성 17자중 현행 한글에서 소멸된 문자는 여린히읗, 반치음, 옛이응이 있으나 엣이응은 ㅇ 형태로 바뀌어 초성에서는 음가를 지니지 않고 종성에서는 음가를 지님.]

3. 중성의 창제의 원리는 음양이론을 바탕으로 우주의 에센스인 삼재(三才), 곧 天地人 [아래아, ㅡ, ㅣ]세 글자를 기본글자로 하여 순열 조합하여 11자를 제정함.

아래아, ㅏ, ㅑ, ㅓ,ㅕ, ㅗ, ㅛ, ㅜ, ㅠ, ㅡ, ㅣ

[중성 11자중 아래아자 소멸.]

4.종성 음운은따로 문자를 만들지 아니하고 초성을 다시 쓴 점.

그것도 팔종성으로 제한한 점.

ㄱ, ㄴ, ㄷ, ㄹ, ㅁ, ㅂ, ㅅ, ㅇ.

실제로는 7종성임: ㅅ은 종성에서 ㄷ으로 발음됨

〈훈민정음 제정의 경과〉

세종의 훈민정음 제정이 언제부터 구상되었고 착수되어 어떤 과정을 거쳐 완성되었는지에 대하여는 기록이 전혀 없어 알 수 없다. 다만 《세종실록(世宗實錄)》에 의하면 세종 25년 12월조에 “이달에 상께서 언문 28자를 친히 제정하였다(是月 上親制諺文二十八字)”라고 기록했을 뿐, 그 경과에 대하여는 전혀 언급이 없다. 다만, 처음에는 세종 단독으로 구상하였다 하더라도 여러 신하의 중지(衆智)를 모아 상당한 기간에 걸쳐 추진되었을 것으로 추측될 따름이다.

이리하여 훈민정음이 제정되자 문자 창제의 목적을 수행하기 위하여 집현전과는 별도로 궁중에 언문청을 설치하고, 훈민정음의 보급과 이에 부수되는 문헌의 간행 등을 추진하는 한편, 해례와 같은 원리면의 연구도 여기에서 나온 듯하다.

이후 훈민정음과 관련된 기사는 44년 2월 《운회(韻會)》를 언해하고 같은 달에 최만리(崔萬理) 일파의 반대 상소에 부닥친다. 반대의 골자는 한자를 버리고 새 문자를 만듦이 사대모화(事大慕華)에 어긋날 뿐 아니라 선인이 만들어 놓은 운서를 뜯어 고치고 언문을 다는 것이 모두 무계(無稽)한 짓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45년 4월 《용비어천가》가 완성되고, 이듬해 3월 《석보상절(釋譜詳節)》의 언해를 명하였으며, 그 해 9월 책으로서의 《훈민정음》이 이루어져 반포되고, 47년 9월 《동국정운》의 완성 및 《용비어천가》의 반포, 48년(세종 30) 11월 《동국정운》 반포, 55년(단종 3) 봄에 《홍무정운》 역훈(譯訓) 완성 등, 사업은 매우 의욕적으로 추진되었다.

먼저 《운회》를 번역한 것은 곧 《동국정운》의 편찬을 뜻하므로 그 사업은 이 무렵부터 진행되었다고 볼 수 있으며, 훈민정음 해례의 작성은 아마도 1444년 최만리 일파의 반대 상소가 있은 직후부터 착수한 것이 아닌가 짐작된다.

이 동안에 중국 운학(韻學)의 이론을 연구하고, 한편으로는 《용비어천가》와 《석보상절》 등의 찬정(撰定)을 통하여 그 실제적 효용성을 실험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훈민정음 해례 본문에 나타나는 모든 자류(字類)를 추려 보면 처음 1443년에 제정하였던 28자를 훨씬 상회하고 있다.

그것은 그 동안 운서 편찬과정에서, 또는 국어 표기를 통해서 거기에 필요한 자류가 더 요청되었기 때문에 그것을 보완하기 위하여 더 많은 글자를 만들어 내는 방법을 강구하였던 까닭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하여 훈민정음은 더욱 갈고 다듬어졌으며 이론적으로나 실제적으로 흠이 없는 것이 되었다고 믿기에 이르러 언문청에서 곧 간행에 착수, 46년(세종 28) 9월에 완성·반포하게 된 것으로 생각된다.



한글날 공개될, 세종로에 세워질 세종대왕 동상 사진을 모아 미리 본다. 이천에서 제작되어 이송 준비 작업 때 촬영 장면이다.

높이 6.2 미터, 무게만 20톤이 넘는다니 그 위용이 짐작된다.
























정보통신(IT)시대에 빛나는 한글의 우수성

http://hoyahouse.com/bbs/board.php?bo_table=qnaboard&wr_id=122&page=0&page=0


아~ 세종대왕님!

중국인이 컴퓨터 자판을 치는 모습을 3만개가 넘는다는 한자를 어떻게 좁은 자판에서 칠까?

한자를 자판에 나열하는 게 불가능하여 중국어 발음을 먼저 영어로 묘사해 알파벳으로 입력한 다음에,

단어마다 입력키를 눌러야 화면에서 한자로 바뀐다.


불편한 게 더 있다. 같은 병음을 가진 글자가 20개 정도는 보통이다.

그 중에서 맞는 한자를 선택해야 한다.

한국의 인터넷 문화가 중국을 앞선 이유 하나가 여기에 있다.


타이핑을 많이 하는 전문적 중국인들은 한자의 획과 부수를 나열한 또 다른 자판을 이용한다.

자판을 최대 다섯 번 눌러 글자 하나가 구성되므로 오필자형(五筆字型)이라고 한다.

속도가 빠르지만 익히기 어려워 일반인은 못한다.


일본인은 어떨까?

컴퓨터 자판을 보니 역시 알파벳이다.

일본인들은 '世'를 영어로 'se'로 컴퓨터에 입력하는 방법을 쓴다.

각 단어가 영어 발음 표기에 맞게 입력해야 화면에서 '가나'로 바뀐다.

게다가 문장마다 한자가 있어 쉼없이 한자변환을 해줘야 하므로 속도가 더디다.


나아가 '추'로 발음되는 한자만 해도 '中'을 비롯하여 20개 이상이나 골라줘야 한다.

일본어는 102개의 '가나'를 자판에 올려 '가나'로 입력하는 방법도 있지만 익숙해지기 어려워 이용도가 낮다.

이러니 인터넷 친화도가 한국보다 낮을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말레이시아처럼 언어가 여러 가지인 국가들은 컴퓨터 입력 방식 개발부터 골칫덩어리다.


24개의 자음과 모음만으로 자판 내에서 모든 문자 입력을 단번에 해결할 수 있는 한글은 하늘의 축복이자 과학이다.

휴대전화로 문자를 보낼 때, 한글로 5초면 되는 문장을 중국, 일본 문자는 35초 걸린다는 비교가 있다.


한글의 입력속도가 일곱 배 빠르다는 얘기다.

정보통신(IT) 시대에 큰 경쟁력이다.

한국인이 부지런하고 급한 성격과 승부근성에 한글이 '디지털 문자'로서 세계 정상의 경쟁력이 있는 덕에

우리가 인터넷 강국이 됐다고 해석할 수 있다.


한글로 된 인터넷 문자 정보의 양은 세계 몇 번째는 된다.

세종이 수백 년 뒤를 내다본 정보통신대왕이 아니었나 하는 감탄이 나온다.


26개인 알파벳은 한글과 같은 소리문자이고 조합도 쉽지만, 'a'라도 위치에 따라 발음이 다르고

나라별로 독음이 다른 단점이 있다. 그러나 한글은 하나의 글자가 하나의 소리만 갖는다.


어휘 조합 능력도 가장 다양하다.

소리 표현만도 8800 여개여서 중국어의 400 여개, 일본어의 300 여개와 비교가 안 된다.


세계적 언어학자들은 한글이 가장 배우기 쉽고 과학적이어서 세계 문자 중 으뜸이라고 말한다.

'알파벳의 꿈'이라고 표현한다.


그래서 거의 0%인 세계 최저의 문맹률이 가능했고 이게 국가 발전의 원동력이었다.

한글은 발음기관의 모양까지 반영한 음성공학적 문자여서 세계의 언어를 다 표현해 낸다.

'맥도날드'를 중국은 '마이딩로우', 일본은 '마쿠도나르도' 라고밖에 표현하지 못한다.


이것이 네팔 등의 문자가 없는 민족에게 한글로 문자를 만들어 주는 운동이 추진되는 이유다.

외국인에게 5분만 설명하면 자신의 이름을 한글로 쓰게 할 수 있다.


한글은 기계적 친화력도 가장 좋아 정보통신시대의 준비된 문자다.

세계화의 잠재력이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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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위대하신음운학자 세종대왕


[은자주] 앞의 최만리 상소문 뒤에서 세종게서는 “너희가 4성7음을 아느냐고 나무랬다. 여기 성삼문 <동국정운> 서문을 보니 그 말이 허언이 아니로다. 다음 인용문이 이를 증빙한다.

“이에 옛사람의 편성한 음운과 제정한 자모를 가지고 합쳐야 할 것은 합치고 나눠야 할 것은 나누되, 하나의 합침과 하나의 나눔이나 한 성음과 한 자운마다 모두 위에 결재를 받고, 또한 각각 고증과 빙거를 두어서, 이에 사성(四聲)으로써 조절하여 91운(韻)과 23자모(字母)를 정하여 가지고 어제(御製)하신 훈민정음으로 그 음을 정하고, 또 ‘질(質)’·‘물(勿)’ 둘의 운(韻)은 ‘여린히읗’ 으로써 ‘ㄹ'를 기워서 속음을 따르면서 바른 음에 맞게 하니, ”

마지막 어구는 중국의 입성을 우리말에서 ‘ㄹ’ 종성을 사용하여 사성이 바뀌는 것을 바로잡는 수단으로 여린히읗을 붙여 입성을 표시한 것을 말한다.


세종 117 29/09/29(무오) /

《동국정운》 완성에 따른 신숙주의 서문

[원문 주소창]

http://blog.daum.net/kydong7/7034507

원문이 포함된 글은 하단에 다시 실었습니다.

이 달에 《동국정운》이 완성되니 모두 6권인데, 명하여 간행하였다. 집현전 응교(集賢殿應敎) 신숙주(申叔舟)가 교지를 받들어 서문(序文)을 지었는데, 이르기를, “하늘과 땅이 화합하여 조화(造化)가 유통하매 사람이 생기고, 음(陰)과 양(陽)이 서로 만나 기운이 맞닿으매 소리가 생기나니, 소리가 생기매 칠음(七音)이 스스로 갖추이고, 칠음이 갖추이매 사성(四聲)이 또한 구비된지라, 칠음과 사성이 경위(經緯)로 서로 사귀면서 맑고 흐리고 가볍고 무거움과 깊고 얕고 빠르고 느림이 자연으로 생겨난다.

 

이러한 까닭으로, 포희가 괘(卦)를 그리고 창힐이 글자를 만든 것이 역시 다 그 자연의 이치에 따라서 만물의 실정을 통한 것이고, 심약(沈約), 육법언(陸法言) 등 여러 선비에 이르러서, 글자로 구분하고 종류로 모아서 성조(聲調)를 고르고 운율(韻律)을 맞추면서

성운(聲韻)의 학설이 일어나기 시작하매, 글 짓는 이가 서로 이어서 각각 기교(技巧)를 내보이고, 이론(理論)하는 이가 하도 많아서 역시 잘못됨이 많았는데, 이에 사마 온공(司馬 溫公)이그림으로 나타내고, 소강절(小康節)이 정수학(數學)으로 밝히어서 숨은 것을 찾아내고 깊은 것을 긁어내어 여러 학설을 통일하였으나, 오방(五方)의 음(音)이 각각 다르므로 그르니 옳으니 하는 분변이 여러가지로 시끄러웠다.

대저 음(音)이 다르고 같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다르고 같음이 있고, 사람이 다르고 같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지방이 다르고 같음이 있나니, 대개 지세(地勢)가 다름으로써 풍습과 기질이 다르며, 풍습과 기질이 다름으로써 호흡하는 것이 다르니, 동남(東南) 지방의 이[齒]와 입술의 움직임과 서북(西北) 지방의 볼과 목구멍의 움직임이 이런 것이어서, 드디어 글뜻으로는 비록 통할지라도 성음(聲音)으로는 같지 않게 된다.

우리 나라는 안팎 강산이 자작으로 한 구역이 되어 풍습과 기질이 이미 중국과 다르니, 호흡이 어찌 중국음과 서로 합치될 것이랴. 그러한즉, 말의 소리가 중국과 다른 까닭은 이치의 당연한 것이고, 글자의 음에 있어서는 마땅히 중국음과 서로 합치될 것 같으나, 호흡의 돌고 구르는 사이에 가볍고 무거움과 열리고 닫힘의 동작이 역시 반드시 말의 소리에 저절로 끌림이 있어서, 이것이 글자의 음이 또한 따라서 변하게 된 것이니, 그 음(音)은 비록 변하였더라도 청탁(淸濁)과 사성(四聲)은 옛날과 같은데, 일찍이 책으로 저술하여 그 바른 것을 전한 것이 없어서,

용렬한 스승과 속된 선비가 글자를 반절(反切)하는 법칙을 모르고 자세히 다져 보는 요령이 어두워서 혹은 글자 모양이 비슷함에 따라 같은 음(音)으로 하기로 하고, 혹은 전대(前代)의 임금이나 조상의 이름을 피하여 다른 음(音)으로 빌어서 하기도 하며, 혹은 두 글자로 합하여 하나로 만들거나, 혹은 한 음을 나누어 둘을 만들거나 하며, 혹은 다른 글자를 빌어 쓰거나, 혹은 점(點)이나 획(劃)을 더하기도 하고 감하기도 하며, 혹은 한음(漢音)을 따르거나, 혹은 속음[俚語]에 따르거나 하여서,

자모(字母) 칠음(七音)과 청탁(淸濁)·사성(四聲)이 모두 변한 것이 있으니, 아음(牙音)으로 말할 것 같으면 계모(溪母)의 글자가 태반(太半)이 견모(見母)에 들어갔으니, 이는 자모(字母)가 변한 것이고, 계모(溪母)의 글자가 혹 효모(曉母)에도 들었으니, 이는 칠음(七音)이 변한 것이라.

우리 나라의 말소리에 청탁(淸濁)의 분변이 중국과 다름이 없는데, 글자음[字音]에는 오직 탁성(濁聲)이 없으니 어찌 이러한 이치가 있을 것인가. 이는 청탁(淸濁)의 변한 것이고, 말하는 소리에는 사성(四聲)이 심히 분명한데, 글자 음에는 상성(上聲)·거성(去聲)이 구별이 없고, ‘질(質)’의 운(韻)과 ‘물(勿)’의 운(韻)들은 마땅히 댠모(端母)로서 종성(終聲)을 삼아야 할 것인데, 세속에서 내모(來母)로 발음하여 그 소리가 느리게 되므로 입성(入聲)에 마땅하지 아니하니, 이는 사성(四聲)의 변한 것이라.

‘단(端)’을 ‘래(來)소리’로 하는 것이 종성(終聲)에만 아니고, 차제(次第)의 ‘제’와 목단(牧丹)의 ‘단’같은 따위와 같이 초성(初聲)의 변한 것도 또한 많으며, 우리 나라의 말에서는 계모(溪母)를 많이 쓰면서 글자 음에는 오직 ‘쾌(快)’라는 한 글자의 음뿐이니, 이는 더욱 우스운 것이다.

이로 말미암아 글자의 획이 잘못되어 ‘어(魚)’와 ‘노(魯)’에 참것이 혼란되고, 성음(聲音)이 문란하여 경(涇)과 위(渭)가 함께 흐르는지라 가로[橫]로는 사성(四聲)의 세로줄[經]을 잃고 세로[縱]로는 칠음(七音)의 가로줄[緯]에 뒤얽혀서, 날[經]과 씨[緯]가 짜이지 못하고 가볍고 무거움이 차례가 뒤바뀌어, 성운(聲韻)의 변한 것이 극도에 이르렀는데,

세속에 선비로 스승된 사람이 이따금 혹 그 잘못된 것을 알고 사사로이 자작으로 고쳐서 자제(子弟)들을 가르치기도 하나, 마음대로 고치는 것을 중난하게 여겨 그대로 구습(舊習)을 따르는 이가 많으니, 만일 크게 바로잡지 아니하면 오래 될수록 더욱 심하여져서 장차 구해낼 수 없는 폐단이 있을 것이다.

대개 옛적에 시(詩)를 짓는 데에 그 음을 맞출 뿐이었는데, 3백편으로부터 내려와 한(漢)·위(魏)·진(晉)·당(唐)의 모든 작가(作家)도 또한 언제나 같은 운율에만 구애하지 아니하였으니, ‘동(東)’운을 ‘동(冬)’운에도 쓰고, ‘강(江)’운을 ‘양(陽)’운에도 씀과 같은 따위이니, 어찌 운(韻)이 구별된다 하여 서로 통하여 맞추지 못할 것이랴.

또 자모(字母)를 만든 것이 소리에 맞출 따름이니, 설두(舌頭)·설상(舌上)과 순중(唇重)·순경(唇經)과 치두(齒頭)·정치(正齒)와 같은 따위인데, 우리 나라의 글자 음에는 분별할 수 없으니 또한 마땅히 자연에 따라 할 것이지, 어찌 꼭 36자(字)에 구애할 것이랴.

공손히 생각하건대 우리 주상 전하(主上殿下)께옵서 유교를 숭상하시고 도(道)를 소중히 여기시며, 문학을 힘쓰고 교회를 일으킴에 그 지극함을 쓰지 않는 바가 없사온데, 만기(萬機)를 살피시는 여가에 이일에 생각을 두시와,

이에 신(臣) 신숙주(甲叔舟)와 수 집현전 직제학(守集賢殿直提學) 신(臣) 최항(崔恒), 수 직집현전(守直集賢殿) 신(臣) 성삼문(成三問)·신(臣) 박팽년(朴彭年), 수 집현전 교리(守集賢殿校理) 신(臣) 이개(李愷), 수 이조 정랑(守吏曹正郞) 신(臣) 강희안(姜希顔), 수 병조 정랑(守兵曹正郞) 신(臣) 이현로(李賢老), 수 승문원 교리(守承文院校理) 신(臣) 조변안(曹變安), 승문원 부교리(承文院副校理) 신(臣) 김증(金曾)에게 명하시와

세속의 습관을 두루 채집하고 전해 오는 문적을 널리 상고하여, 널리 쓰이는 음(音)에 기본을 두고 옛 음운의 반절법에 맞추어서 자모(字母)의 칠음(七音)과 청탁(淸濁)과 사성(四聲)을 근원의 위세(委細)한 것까지 연구하지 아니함이 없이 하여 옳은 길로 바로잡게 하셨사온데, 신들이 재주와 학식이 얕고 짧으며 학문 공부가 좁고 비루하매,뜻을 받들기에 미달(未達)하와 매번 지시하심과 돌보심을 번거로이 하게 되겠삽기에,

이에 옛사람의 편성한 음운과 제정한 자모를 가지고 합쳐야 할 것은 합치고 나눠야 할 것은 나누되, 하나의 합침과 하나의 나눔이나 한 성음과 한 자운마다 모두 위에 결재를 받고, 또한 각각 고증과 빙거를 두어서, 이에 사성(四聲)으로써 조절하여 91운(韻)과 23자모(字母)를 정하여 가지고 어제(御製)하신 훈민정음으로 그 음을 정하고, 또 ‘질(質)’·‘물(勿)’ 둘의 운(韻)은 ‘여린히읗’ 으로써 ‘ㄹ'를 기워서 속음을 따르면서 바른 음에 맞게 하니, 옛 습관의 그릇됨이 이에 이르러 모두 고쳐진지라,

글이 완성되매 이름을 하사하시기를, ‘《동국정운(東國正韻)》’이라 하시고, 인하여 신(臣) 숙주(叔舟)에게 명하시어 서문(序文)을 지으라 하시니, 신 숙주(叔舟)가 그윽이 생각하옵건대 사람이 날 때에 천지의 가운을 받지 않은 자가 없는데 성음(聲音)은 기운에서 나는 것이니,

청탁(淸濁)이란 것은 음양(陰陽)의 분류(分類)로서 천지의 도(道)이요, 사성(四聲)이란 것은 조화(造化)의 단서(端緖)로서 사시(四時)의 운행이라, 천지의 도(道)가 어지러우면 음양이 그 자리를 뒤바꾸고, 사시(四時)의 운행이 문란하면 조화(造化)가 그 차례를 잃게 되나니, 지극하도다 성운(聲韻)의 묘함이여. 음양(陰陽)의 문턱은 심오(深奧)하고 조화(造化)의 기틀은 은밀한지고.

더구나 글자[書契]가 만들어지지 못했을 때는 성인의 도(道)가 천지에 의탁했고, 글자[書契]가 만들어진 뒤에는 성인의 도가 서책(書冊)에 실리었으니, 성인의 도를 연구하려면 마땅히 글의 뜻을 먼저 알아야 하고, 글의 뜻을 알기 위한 요령은 마땅히 성운(聲韻)부터 알아야 하니, 성운은 곧 도를 배우는 시작[權輿]인지라, 또한 어찌 쉽게 능통할 수 있으랴. 이것이 우리 성상(聖上)께서 성운(聲韻)에 마음을 두시고 고금(古今)을 참작하시어 지침(指針)을 만드셔서 억만대의 모든 후생들을 길 열어 주신 까닭이다.

옛사람이 글을 지어 내고 그림을 그려서 음(音)으로 고르고 종류로 가르며 정절(正切)로 함과 회절(回切)로 함에 그 법이 심히 자상한데, 배우는 이가 그래도 입을 어물거리고 더듬더듬하여 음(音)을 고르고 운(韻)을 맞추기에 어두었더니, 훈민정음(訓民正音)이 제작됨으로부터 만고(萬古)의 한 소리로 털끝만큼도 틀리지 아니하니, 실로 음(音)을 전하는 중심줄[樞紐]인지라.

청탁(淸濁)이 분별되매 천지의 도(道)가 정하여지고, 사성(四聲)이 바로잡히매 사시(四時)의 운행이 순하게 되니, 진실로 조화(造化)를 경륜(經綸)하고 우주(宇宙)를 주름잡으며, 오묘한 뜻이 현관(玄關)에 부합(符合)되고 신비한 기미(幾微)가 대자연의 소리에 통한 것이 아니면 어찌 능히 이에 이르리요. 청탁(淸濁)이 돌고 구르며 자모(字母)가 서로 밀어 칠음(七音)과 12운율(韻律)과 84성조(聲調)가 가히 성악(聲樂)의 정도(正道)로 더불어 한 가지로 크게 화합하게 되었도다.

아아, 소리를 살펴서 음(音)을 알고, 음(音)을 살펴서 음악을 알며, 음악을 살펴서 정치를 알게 되나니, 뒤에 보는 이들이 반드시 얻는 바가 있으리로다.”하였다.

아! 위대하신 음운학자 세종대왕

[은자주] 앞의 최만리 상소문 뒤에서 세종게서는 “너희가 4성7음을 아느냐고 나무랬다. 여기 성삼문 <동국정운> 서문을 보니 그 말이 허언이 아니로다. 다음 인용문이 이를 증빙한다.

“이에 옛사람의 편성한 음운과 제정한 자모를 가지고 합쳐야 할 것은 합치고 나눠야 할 것은 나누되, 하나의 합침과 하나의 나눔이나 한 성음과 한 자운마다 모두 위에 결재를 받고, 또한 각각 고증과 빙거를 두어서, 이에 사성(四聲)으로써 조절하여 91운(韻)과 23자모(字母)를 정하여 가지고 어제(御製)하신 훈민정음으로 그 음을 정하고, 또 ‘질(質)’·‘물(勿)’ 둘의 운(韻)은 ‘여린히읗’ 으로써 ‘ㄹ'를 기워서 속음을 따르면서 바른 음에 맞게 하니, ”

마지막 어구는 중국의 입성을 우리말에서 ‘ㄹ’ 종성을 사용하여 사성이 바뀌는 것을 바로잡는 수단으로 여린히읗을 붙여 입성을 표시한 것을 말한다.

세종 117 29/09/29(무오) /

《동국정운》 완성에 따른 신숙주의 서문

○是月, 《東國正韻》 成, 凡六卷, 命刊行。

이달에 《동국정운(東國正韻)》이 완성되니 모두 6권인데, 명하여 간행하였다.

集賢殿應敎 申叔舟 奉敎序曰:

집현전 응교(集賢殿應敎) 신숙주(申叔舟)가 교지를 받들어 서문(序文)을 지었는데, 이르기를,

天地絪縕, 大化流行而人生焉;

“하늘과 땅이 화합하여 조화(造化)가 유통하매 사람이 생기고,

陰陽相軋, 氣機交激而聲生焉。

음(陰)과 양(陽)이 서로 만나 기운이 맞닿으매 소리가 생기나니,

聲旣生焉, 而七音自具,

소리가 생기매 칠음(七音)이 스스로 갖추이고,

七音具而四聲亦備,

칠음이 갖추이매 사성(四聲)이 또한 구비된지라,

七音四聲, 經緯相交,

칠음과 사성이 경위(經緯)로 서로 사귀면서

而淸濁輕重深淺疾徐, 生於自然矣。

맑고 흐리고 가볍고 무거움과 깊고 얕고 빠르고 느림이 자연으로 생겨난다.

是故 庖犧 畫卦, 蒼頡 制字,

이러한 까닭으로, 포희(犧)가 괘(卦)를 그리고 창힐(蒼)이 글자를 만든 것이

亦皆因其自然之理, 以通萬物之情,

역시 다 그 자연의 이치에 따라서 만물의 실정을 통한 것이고,

及至 ,

심약(沈約)·육법언(陸法言) 등 여러 선비에 이르러서,

諸子彙分類集, 諧聲協韻,

글자로 구분하고 종류로 모아서 성조(聲調)를 고르고 운율(韻律)을 맞추면서

而聲韻之說始興。

성운(聲韻)의 학설이 일어나기 시작하매,

作者相繼, 各出機杼;

글 짓는 이가 서로 이어서 각각 기교(技巧)를 내보이고,

論議旣衆, 舛誤亦多。

이론(理論)하는 이가 하도 많아서 역시 잘못됨이 많았는데,

於是, 溫公 著之於圖,

이에 사마 온공(司馬溫公)이 그림으로 나타내고,

康節 明之於數,

소강절(邵康節)이 수학(數學)으로 밝히어서

探賾鉤深, 以一諸說。

숨은 것을 찾아내고 깊은 것을 긁어내어 여러 학설을 통일하였으나,

然其五方之音各異, 邪正之辨紛紜。

오방(五方)의 음(音)이 각각 다르므로 그르니 옳으니 하는 분변이 여러가지로 시끄러웠다.

夫音非有異同, 人有異同;

대저 음(音)이 다르고 같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다르고 같음이 있고,

人非有異同, 方有異同,

사람이 다르고 같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지방이 다르고 같음이 있나니,

盖以地勢別而風氣殊,

대개 지세(地勢)가 다름으로써 풍습과 기질이 다르며,

風氣殊而呼吸異,

풍습과 기질이 다름으로써 호흡하는 것이 다르니,

東南之齒唇, 西北之頰喉是已。

동남(東南) 지방의 이[齒]와 입술의 움직임과 서북(西北) 지방의 볼과 목구멍의 움직임이 이런 것이어서,

遂使文軌雖通, 聲音不同焉。드디어 글뜻으로는 비록 통할지라도 성음(聲音)으로는 같지 않게 된다.

吾東方表裏山河, 自爲一區,

우리 나라는 안팎 강산이 자작으로 한 구역이 되어

風氣已殊於 中國 ,

풍습과 기질이 이미 중국과 다르니,

呼吸豈與華音相合歟!

호흡이 어찌 중국음과 서로 합치될 것이랴.

然則語音之所以與 中國 異者, 理之然也。

그러한즉, 말의 소리가 중국과 다른 까닭은 이치의 당연한 것이고,

至於文字之音 則宜若與華音相合矣,

글자의 음에 있어서는 마땅히 중국음과 서로 합치될 것 같으나,

然其呼吸旋轉之間, 輕重翕闢之機,

호흡의 돌고 구르는 사이에 가볍고 무거움과 열리고 닫힘의 동작이

亦必有自牽於語音者,

역시 반드시 말의 소리에 저절로 끌림이 있어서,

此其字音之所以亦隨而變也。

이것이 글자의 음이 또한 따라서 변하게 된 것이니,

其音雖變, 淸濁四聲則猶古也,

그 음(音)은 비록 변하였더라도 청탁(淸濁)과 사성(四聲)은 옛날과 같은데,

而曾無著書以傳其正,

일찍이 책으로 저술하여 그 바른 것을 전한 것이 없어서,

庸師俗儒不知切字之法,

용렬한 스승과 속된 선비가 글자를 반절(反切)하는 법칙을 모르고

昧於紐躡之要,

자세히 다져 보는 요령이 어두워서

或因字體相似而爲一音,

혹은 글자 모양이 비슷함에 따라 같은 음(音)으로 하기로 하고,

或因前代避諱而假他音,

혹은 전대(前代)의 임금이나 조상의 이름을 피하여 다른 음(音)으로 빌어서 하기도 하며,

或合二字爲一,

혹은 두 글자로 합하여 하나로 만들거나,

或分一音爲二,

혹은 한 음을 나누어 둘을 만들거나 하며,

或借用他字,

혹은 다른 글자를 빌어 쓰거나,

或加减點畫,

혹은 점(點)이나 획(劃)을 더하기도 하고 감하기도 하며,

或依 音, 或從俚語, 혹은 한음(漢音)을 따르거나, 혹은 속음[俚語]에 따르거나 하여서,

而字母七音淸濁四聲, 皆有變焉。 자모(字母) 칠음(七音)과 청탁(淸濁)·사성(四聲)이 모두 변한 것이 있으니,

若以牙音言之, 溪母之字, 太半入於見母,

아음(牙音)으로 말할 것 같으면 계모(溪母)의 글자가 태반(太半)이 견모(見母)에 들어갔으니,

此字母之變也;溪母之字, 或入於曉母,

이는 자모(字母)가 변한 것이고, 계모(溪母)의 글자가 혹 효모(曉母)에도 들었으니,

此七音之變也。

이는 칠음(七音)이 변한 것이라.

我國語音, 其淸濁之辨, 與 中國 無異,

우리 나라의 말소리에 청탁(淸濁)의 분변이 중국과 다름이 없는데,

而於字音獨無濁聲, 豈有此理!

글자음[字音]에는 오직 탁성(濁聲)이 없으니 어찌 이러한 이치가 있을 것인가.

此淸濁之變也。 語音則四聲甚明,

이는 청탁(淸濁)의 변한 것이고, 말하는 소리에는 사성(四聲)이 심히 분명한데,

字音則上去無別。

글자 음에는 상성(上聲)·거성(去聲)이 구별이 없고,

質勿諸韻, 宜以端母爲終聲,

‘질(質)’의 운(韻)과 ‘물(勿)’의 운(韻)들은 마땅히 단모(端母)로서 종성(終聲)을 삼아야 할 것인데,

而俗用來母, 其聲徐緩,

세속에서 내모(來母)로 발음하여 그 소리가 느리게 되므로

不宜入聲, 此四聲之變也。

입성(入聲)에 마땅하지 아니하니, 이는 사성(四聲)의 변한 것이라.

端之爲來, 不唯終聲,

단(端)’을 ‘내(來)소리’로 하는 것이 종성(終聲)에만 아니고

如次第之第、牧丹之丹之類, 初聲之變者亦衆。

차제(次第)의 ‘제’와 목단(牧丹)의 ‘단’같은 따위와 같이 초성(初聲)의 변한 것도 또한 많으며,

國語多用溪母, 而字音則獨夬之一音而已,

우리 나라의 말에서는 계모(溪母)를 많이 쓰면서 글자 음에는 오직 ‘쾌(快)’라는 한 글자의 음뿐이니,

此尤可笑者也。

이는 더욱 우스운 것이다.

由是字畫訛而魚魯混眞,

이로 말미암아 글자의 획이 잘못되어 ‘어(魚)’와 ‘노(魯)’에 참것이 혼란되고,

聲音亂而涇渭同流,

성음(聲音)이 문란하여 경(涇)위(渭)가 함께 흐르는지라

橫失四聲之經, 縱亂七音之緯,

가로[橫]로는 사성(四聲)의 세로줄[經]을 잃고 세로[縱]로는 칠음(七音)의 가로줄[緯]에 뒤얽혀서,

經緯不交, 輕重易序,

날[經]과 씨[緯]가 짜이지 못하고 가볍고 무거움이 차례가 뒤바뀌어,

而聲韻之變極矣。

성운(聲韻)의 변한 것이 극도에 이르렀는데,

世之爲儒師者, 徃徃或知其失, 세속에 선비로 스승된 사람이 이따금 혹 그 잘못된 것을 알고

私自改之, 以敎子弟,

사사로이 자작으로 고쳐서 자제(子弟)들을 가르치기도 하나,

然重於擅改, 因循舊習者多矣。

마음대로 고치는 것을 중난하게 여겨 그대로 구습(舊習)을 따르는 이가 많으니,

若不大正之, 則兪久兪甚,

만일 크게 바로잡지 아니하면 오래 될수록 더욱 심하여져서

將有不可救之弊矣。

장차 구해낼 수 없는 폐단이 있을 것이다.

盖古之爲詩也, 協其音而已。

대개 옛적에 시(詩)를 짓는 데에 그 음을 맞출 뿐이었는데,

自三百篇而降, 諸家,

3백편(三百篇)으로부터 내려와 한(漢)·위(魏)·진(晉)·당(唐)의 모든 작가(作家)도

亦未嘗拘於一律,

또한 언제나 같은 운율에만 구애하지 아니하였으니,

如東之與冬、江之與陽之類,

‘동(東)’운을 ‘동(冬)’운에도 쓰고, ‘강(江)’운을 ‘양(陽)’운에도 씀과 같은 따위이니,

어찌 운(韻)이 구별된다 하여 서로 통하여 맞추지 못할 것이랴.

豈可以韻別而不相通協哉!

且字母之作, 諧於聲耳。

또 자모(字母)를 만든 것이 소리에 맞출 따름이니,

如舌頭舌上、唇重唇輕、齒頭正齒之類,

설두(舌頭)·설상(舌上)과 순중(唇重)·순경(唇經)과 치두(齒頭)·정치(正齒)와 같은 따위인데,

於我國字音, 未可分辨,

우리 나라의 글자 음에는 분별할 수 없으니

亦當因其自然, 何必泥於三十六字乎?

또한 마땅히 자연에 따라 할 것이지, 어찌 꼭 36자(三十六字)에 구애할 것이랴.

恭惟我主上殿下崇儒重道,

공손히 생각하건대 우리 주상 전하(主上殿下)께옵서 유교를 숭상하시고 도(道)를 소중히 여기시며,

右文興化, 無所不用其極,

문학을 힘쓰고 교회를 일으킴에 그 지극함을 쓰지 않는 바가 없사온데,

萬機之暇, 慨念及此,

만기(萬機)를 살피시는 여가에 이일에 생각을 두시와,

爰命臣 叔舟 及守集賢殿直提學臣 崔恒 、守直集賢殿臣 成三問 ㆍ臣 朴彭年 、守集賢殿校理臣 李愷 、守吏曹正郞臣 姜希顔 、守兵曹正郞臣 李賢老 、守承文院校理臣 曺變安 、承文院副校理臣 金曾 ,

이에 신(臣) 신숙주(甲叔舟)와 수 집현전 직제학(守集賢殿直提學) 신(臣) 최항(崔恒), 수 직집현전(守直集賢殿) 신(臣) 성삼문(成三問)·신(臣) 박팽년(朴彭年), 수 집현전 교리(守集賢殿校理) 신(臣) 이개(李愷), 수 이조 정랑(守吏曹正郞) 신(臣) 강희안(姜希顔), 수 병조 정랑(守兵曹正郞) 신(臣) 이현로(李賢老), 수 승문원 교리(守承文院校理) 신(臣) 조변안(曹變安), 승문원 부교리(承文院副校理) 신(臣) 김증(金曾)에게 명하시와

旁採俗習, 博考傳籍,

세속의 습관을 두루 채집하고 전해 오는 문적을 널리 상고하여,

本諸廣用之音, 協之古韻之切,

널리 쓰이는 음(音)에 기본을 두고 옛 음운의 반절법에 맞추어서

字母七音、淸濁四聲,

자모(字母)의 칠음(七音)과 청탁(淸濁)과 사성(四聲)을

靡不究其源委, 以復乎正。

근원의 위세(委細)한 것까지 연구하지 아니함이 없이 하여 옳은 길로 바로잡게 하셨사온데,

臣等才識淺短, 學問孤陋,

신들이 재주와 학식이 얕고 짧으며 학문 공부가 좁고 비루하매,

奉承未達, 每煩指顧,

뜻을 받들기에 미달(未達)하와 매번 지시하심과 돌보심을 번거로이 하게 되겠삽기에,

乃因古人編韻定母, 可倂者倂之, 可分者分之,

이에 옛사람의 편성한 음운과 제정한 자모를 가지고 합쳐야 할 것은 합치고 나눠야 할 것은 나누되,

一倂一分、一聲一韻,

하나의 합침과 하나의 나눔이나 한 성음과 한 자운마다

皆禀宸斷, 而亦各有考據。

모두 위에 결재를 받고, 또한 각각 고증과 빙거를 두어서,

於是調以四聲, 定爲九十一韻二十三母,

이에 사성(四聲)으로써 조절하여 91운(韻)과 23자모(字母)를 정하여 가지고

以御製 《訓民正音》 定其音。

어제(御製)하신 훈민정음으로 그 음을 정하고,

又於質勿諸韻, 以影補來, 因俗歸正,

또 ‘질(質)’·‘물(勿)’ 둘의 운(韻)은 ‘여린히읗’ 으로써 ‘ㄹ'를 기워서 속음을 따르면서 바른 음에 맞게 하니,

舊習譌謬, 至是而悉革矣。

옛 습관의 그릇됨이 이에 이르러 모두 고쳐진지라,

書成, 賜名曰 《東國正韻》 ,

글이 완성되매 이름을 하사하시기를, ‘《동국정운(東國正韻)》’이라 하시고,

仍命臣 叔舟 爲序。

인하여 신(臣) 숙주(叔舟)에게 명하시어 서문(序文)을 지으라 하시니,

叔舟 竊惟人之生也, 莫不受天地之氣,

신 숙주(叔舟)가 그윽이 생각하옵건대 사람이 날 때에 천지의 가운을 받지 않은 자가 없는데

而聲音, 生於氣者也。

성음(聲音)은 기운에서 나는 것이니,

淸濁者, 陰陽之類, 而天地之道也;

청탁(淸濁)이란 것은 음양(陰陽)의 분류(分類)로서 천지의 도(道)이요,

四聲者, 造化之端, 而四時之運也。

사성(四聲)이란 것은 조화(造化)의 단서(端緖)로서 사시(四時)의 운행이라,

天地之道亂, 而陰陽易其位;

천지의 도(道)가 어지러우면 음양이 그 자리를 뒤바꾸고,

四時之運紊, 而造化失其序,

사시(四時)의 운행이 문란하면 조화(造化)가 그 차례를 잃게 되나니,

至哉, 聲韻之妙也!

지극하도다 성운(聲韻)의 묘함이여.

其陰陽之閫奧、造化之機緘乎!

음양(陰陽)의 문턱은 심오(深奧)하고 조화(造化)의 기틀은 은밀한지고.

况乎書契未作, 聖人之道, 寓於天地;

더구나 글자[書契]가 만들어지지 못했을 때는 성인의 도(道)가 천지에 의탁했고,

書契旣作, 聖人之道, 載諸方策!

글자[書契]가 만들어진 뒤에는 성인의 도가 서책(書冊)에 실리었으니,

欲究聖人之道, 當先文義;

성인의 도를 연구하려면 마땅히 글의 뜻을 먼저 알아야 하고,

欲知文義之要, 當自聲韻。

글의 뜻을 알기 위한 요령은 마땅히 성운(聲韻)부터 알아야 하니,

聲韻, 乃學道之權輿也,

성운은 곧 도를 배우는 시작[權輿]인지라,

而亦豈易能哉!

또한 어찌 쉽게 능통할 수 있으랴.

此我聖上所以留心聲韻,

이것이 우리 성상(聖上)께서 성운(聲韻)에 마음을 두시고

斟酌古今, 作爲指南,

고금(古今)을 참작하시어 지침(指針)을 만드셔서

以開億載之群蒙者也。

억만대의 모든 후생들을 길 열어 주신 까닭이다.

古人著書作圖, 音和類隔,

옛사람이 글을 지어 내고 그림을 그려서 음(音)으로 고르고 종류로 가르며

正切回切, 其法甚詳,

정절(正切)로 함과 회절(回切)로 함에 그 법이 심히 자상한데,

而學者尙不免含糊囁嚅, 昧於調協。

배우는 이가 그래도 입을 어물거리고 더듬더듬하여 음(音)을 고르고 운(韻)을 맞추기에 어두었더니,

自正音作而萬古一聲, 毫釐不差,

훈민정음(訓民正音)이 제작됨으로부터 만고(萬古)의 한 소리로 털끝만큼도 틀리지 아니하니,

實傳音之樞紐也。

실로 음(音)을 전하는 중심줄[樞紐]인지라.

淸濁分而天地之道定;

청탁(淸濁)이 분별되매 천지의 도(道)가 정하여지고,

四聲正而四時之運順,

사성(四聲)이 바로잡히매 사시(四時)의 운행이 순하게 되니,

苟非彌綸造化, 轇輵宇宙,

진실로 조화(造化)를 경륜(經綸)하고 우주(宇宙)를 주름잡으며,

妙義契於玄關, 神幾通于天籟,

오묘한 뜻이 현관(玄關)에 부합(符合)되고 신비한 기미(幾微)가 대자연의 소리에 통한 것이 아니면

安能至此乎?

어찌 능히 이에 이르리요.

淸濁旋轉, 字母相推,

청탁(淸濁)이 돌고 구르며 자모(字母)가 서로 밀어

七均而十二律而八十四調, 可與聲樂之正同其大和矣。

칠음(七音)과 12운율(韻律)과 84성조(聲調)가 가히 성악(聲樂)의 정도(正道)로 더불어 한 가지로 크게 화합하게 되었도다.

吁! 審聲以知音,

아아, 소리를 살펴서 음(音)을 알고,

審音以知樂,

음(音)을 살펴서 음악을 알며,

審樂以知政,

음악을 살펴서 정치를 알게 되나니,

後之觀者, 其必有所得矣。

뒤에 보는 이들이 반드시 얻는 바가 있으리로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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