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abc.dongguk.edu/content/view?itemId=ABC_IT&cate=bookName&depth=3&upPath=C&dataId=ABC_IT_K0549_T_020

 

단락/경판 - 불교학술원 아카이브

ABC_IT_K0549_T_020 URL복사 통합뷰어 014_0695_c_01L대지도론 제20권 014_0695_c_01L大智度論釋初品中三三昧義第三十二卷第二十 통합뷰어 용수 지음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김성구 번역/김형준 개역 014_069

kabc.dongguk.edu

   

 

大智度論釋初品中四無量心義四無色定第三十三

33. 초품 중 사무량(四無量)의 뜻을 풀이함

 

四無量心者。慈悲喜捨。慈名愛念衆生。常求安隱樂事以饒益之。悲名愍念衆生。受五道中種種身苦心苦。喜名欲令衆生。從樂得歡喜。捨名捨三種心。但念衆生不憎不愛。修慈心爲除衆生中瞋覺故。修悲心爲除衆生中惱覺故。修喜心爲除不悅樂故。修捨心爲除衆生中愛憎故。

  4무량심(無量心)이란 자(慈)?비(悲)?희(喜)ㆍ사(捨)를 말한다. 자는 중생들을 사랑하고 염려해서 항상 안온하고 즐거운 일을 구하여 요익하게 해 주는 것이요, 비는 중생들이 5도에서 갖가지 몸을 받아서 몸과 마음으로 괴로워함을 가엾이 여기는 것이요, 희는 중생들로 하여금 즐거움에서 환희를 얻게 하고자 하는 것이요, 사는 세 가지 마음을 버리고 오직 중생들을 생각하되 미워하지도 않고 사랑하지도 않는 것이다.

  자심을 닦는 것은 중생들에 대하여 미워하는 생각을 제하기 위함이요, 비심을 닦는 것은 중생들에 대하여 번거롭다는 생각을 제하기 위함이요, 희심을 닦는 것은 함께 기뻐하지 못함을 제하기 위함이요, 사심을 닦는 것은 중생들에 대하여 사랑도 미움도 제하기 위함이다. 

問曰。四禪中已有四無量心乃至十一切處。今何以故別說。

  [문] 4선에 이미 4무량심과 나아가서는 10일체처까지 있거늘 이제 어찌하여 따로 논하는가? 

答曰。雖四禪中皆有。是法若不別說名字。則不知其功德。譬如囊中寶物。不開出則人不知。若欲得大福德者。爲說四無量心。患厭色如在牢獄。爲說四無色定。於緣中不能得自在隨意觀所緣。爲說八勝處。若有遮道不得通達爲說八背捨。心不調柔不能從禪起次第入禪。爲說九次第定。不能得一切緣遍照隨意得解。爲說十一切處。若念十方衆生。令得樂時心數法中生法名爲慈。是慈相應受想行識衆。是法起身業口業及心不相應諸行。是法和合皆名爲慈名爲慈故。是法生以慈爲主。是故慈得名。譬如一切心心數法。雖皆是後世業因緣。而但思得名。於作業中思最有力故。悲喜捨亦如是。是慈在色界。或有漏或無漏。或可斷或不可斷。亦在根本禪中亦禪中間。三根相應除苦根憂根。如是等阿毘曇分別說。取衆生相故有漏。取相已入諸法實相故無漏。以是故無盡意菩薩問中說。慈有三種。一者衆生緣二者法緣三者無緣。

  [답] 비록 4선 가운데 모두 있기는 하나 이 법은 따로 말하지 않는다면 그 공덕을 알지 못한다. 비유하건대 주머니 속의 보물은 꺼내 놓지 않는다면 아무도 알지 못하는 것과 같다. 

  만일 큰 복덕을 얻고자 하는 이에게는 4무량심을 말해 주고, 색(色)에 근심하고 싫어하기를 마치 감옥에 갇혀 있는 것같이 하는 이에게는 4무색정(無色定)을 말해 주고, 대상에 대해 자재로움을 얻어 마음대로 반연할 바를 관찰하지 못하는 이에게는 8승처(勝處)를 말해 주고, 도에 가로막힘이 있어 통달치 못한 이에게는 8배사(背捨)를 말해 주고, 마음이 유연하지 못하여 선에서 일어나 다음 선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이에게는 9차제정(次第定)을 말해 주고, 일체의 대상을 두루 비추어 마음대로 이해[解]를 얻지 못하는 이에게는 10일체처(一切處)를 말해 준다. 

  만일 시방의 중생들로 하여금 즐거움을 얻게 하리라 할 때 마음에 속하는 법 가운데 생겨나는 법을 일컬어 자(慈)라 한다. 이 자와 서로 응하는 느낌?생각?지어감?분별[識衆]이 마음에 속하는 법으로 몸의 업?입의 업 및 마음에 서로 응하지 않는 모든 지어감을 일으키는데, 이 법과 화합된 것을 모두 자라 부른다. 

  이름이 자인 까닭에 이 법이 생길 때엔 자로써 우두머리를 삼는다. 그러므로 자라는 이름을 얻는 것이다.

  비유하건대, 일체의 마음과 마음에 속하는 법이 모두 후세의 업의 인연이지만 오직 생각[思]만이 이름을 얻나니, 업을 짓는 가운데서 생각이 가장 힘이 있기 때문이다. 비?희?사 역시 이와 같다. 

  이 자는 색계에서는 유루이기도 하고 무루이기도 하며, 혹은 끊을 수 있기도 하고 끊을 수 없기도 하다. 근본선 가운데나 선중간에도 있기도 하며, 세 ()에 서로 응하되 고근(苦根)과 우근(憂根)은 제외한다

  이러한 일들은 아비담에서 분별하여 말하기를 “중생의 모습을 취하기 때문에 유루이며, 모습을 취한 뒤에 모든 법의 진실한 모습에 들어가기 때문에 무루이다. 이런 까닭에 무진의보살(無盡意菩薩)의 질문에 대답하시기를 “자(慈)에 세 종류가 있으니, 하나는 중생연(衆生緣)이요, 둘은 법연(法緣)이요, 셋은 무연(無緣)7)이다” 하신 것이다.

問曰。是四無量心云何行。

  [문] 이 4무량심은 어떻게 행하는가? 

答曰。如佛處處經中說。有比丘以慈相應心。無恚無恨無怨無惱。廣大無量善修慈心得解遍滿。東方世界衆生。慈心得解遍滿。南西北方四維上下十方世界衆生。以悲喜捨相應心亦如是。慈相應心者。慈名心數法。能除心中憒濁。所謂瞋恨慳貪等煩惱。譬如淨水珠著濁水中水卽淸。無恚恨者。於衆生中若有因緣若無因緣而瞋。若欲惡口罵詈殺害劫奪是名瞋。待時節得處所有勢力當加害是名恨。以慈除此二事故。名無瞋恨無怨無惱。恨卽是怨。初嫌爲恨。恨久成怨身口業加害。是名惱。復次初生瞋結名爲瞋。瞋增長籌量持著。心中未決了是名恨。亦名怨。若心已定無所畏忌。是名惱。以慈心力除捨離此三事。是名無瞋無恨無怨無惱。此無瞋無恨無怨無惱佛以是讚歎慈心。一切衆生皆畏於苦貪著於樂。瞋爲苦因緣慈是樂因緣。衆生聞是慈三昧。能除苦能與樂故。一心懃精進行是三昧。以是故無瞋無恨無怨無惱。

  [답] 부처님께서는 곳곳의 경(經)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비구가 자에 서로 응하는 마음으로 성냄 없고, 한(恨) 없고, 원망 없고, 번뇌 없으며 광대하고 무량하게 자심을 잘 닦고 이해[解]를 얻어 두루 채운다. 동방세계의 중생에게도 자심으로 이해를 얻어 두루 채우며, 남?서?북과 네 간방[四維]?위아래의 시방세계 중생에게도 비ㆍ희ㆍ사에 상응하는 마음으로 두루 채우기를 이와 같이 한다.”

  자에 서로 응하는 마음이라 했는데, 자는 마음에 속하는 법을 이름하며, 능히 마음속의 시끄러움과 혼탁함을 제하나니, 이른바 성냄?원망?인색함?탐냄 등의 번뇌이다. 마치 물을 정화하는 보배 구슬[浮水珠]을 흐린 물에 담구면 즉시에 물이 맑아지는 것과 같다. 

  성냄과 한(恨)이 없다 했는데, 먼저 성냄이란 중생들에 대하여 인연이 있건 인연이 없건 화를 내는 것이다. 곧 욕하고 꾸짖고 해치고 위협하려는 것이니, 이를 성냄이라 한다. 그것이 시절을 기다리고 장소를 만나 세력이 생겨서 해코지하려 한다면 이것을 한이라 한다. 

  자심으로써 이 두 가지 일을 제거하므로 성냄과 한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원망과 번뇌가 없다 했는데, 한이 곧 원망이다. 처음으로 혐오하는 것을 한이라 하고, 한이 오래 되면 원망이라 하며, 몸과 입의 업으로 해를 가하면 이를 번뇌라 한다. 

  다시 처음 성냄의 번뇌가 생겨나는 것을 성냄이라 하고, 성냄이 늘어나서 따지고 헤아리면서 마음속에 꼭 간직하여 결단치 못하는 것을 한이라고도 하고 원망이라고도 하며, 마음이 이미 결정되어 두려움도 거리낌도 없는 것을 번뇌라 한다.

  자심의 힘으로 제해 버려서 이 세 가지 일을 여의면 이것을 일컬어 성냄 없고, 원한 없고, 원망 없고, 번뇌 없다고 하는 것이다. 

  이 성냄 없음?원한 없음?원망 없음?번뇌 없음을 가지고 부처님께서는 자심을 찬탄하신 것이다.

  일체 중생은 모두 괴로움을 두려워하고 즐거움을 탐착하거니와 성냄은 괴로움의 인연이 되고, 자는 즐거움의 인연이 된다.

  중생들이 이 자삼매(慈三昧)를 듣고는 능히 괴로움을 제거하고 즐거움을 주는 까닭에 일심으로 부지런히 정진해 이 삼매를 행하여야 한다.

  이런 까닭에 ‘성냄 없고, 원한 없고, 원망 없고, 번뇌 없다’고 하는 것이다.

廣大無量者。一大心分別有三名。廣名一方大名高遠無量名下方及九方。復次下名廣中名大上名無量。復次緣四方衆生心。是名廣。緣四維衆生心。是名大。緣上下方衆生心。是名無量。復次破瞋恨心是名廣。破怨心是名大。破惱心是名無量。

  ‘광대하고 한량없다’고 함은 하나의 큰 마음을 말한다. 분별하면 세 이름이 있나니, 광(廣)이란 한 방향을 말하고, 대(大)란 높고 멀다는 뜻이며, 한량없음이란 아래쪽 및 나머지 아홉 방위이다. 

  또한 아래는 광이요, 중간은 대요, 위는 한량없음이다. 

  또한 사방의 중생심을 반연하는 것을 광이라 하고, 네 간방[四維]의 중생심을 반연하므로 대라 하고, 위와 아래의 중생심을 반연하는 것을 한량없음이라 한다. 

復次一切煩惱心小人所行生小事故名爲小。復小於此故名瞋恨怨惱。破是小中之小。是名廣大無量。所以者何。大因緣常能破小事故。廣心者。畏罪畏墮地獄故除心中惡法大心者。信樂福德果報故除惡心。無量心者。爲欲得涅槃故除惡心。復次行者持戒淸淨故是心廣。禪定具足故是心大。智慧成就故是心無量。以是慈心念得道聖人。是名無量心。用無量法分別聖人故。念諸天及人尊貴處故。名爲大心。念諸餘下賤衆生及三惡道。是名廣心。於所愛衆生中。以慈念廣於念已故。名爲廣心。以慈念中人是名大心。以慈念怨憎其功德多故。名無量心。復次爲狹緣心故名爲廣。爲小緣心故名爲大。爲有量心故名爲無量。如是等分別義。

 

  또한 성내고 한하는 마음을 깨뜨리는 것을 광(廣)이라 하고, 원망하는 마음을 깨뜨리는 것을 대라 하고, 번뇌심을 깨뜨리는 것을 한량없음이라 한다. 

  또한 일체의 번뇌심은 소인(小人)들이 행하는 것으로 작은 일을 내기 때문에 소(小)라 하고, 다시 이보다 더 작기 때문에 성냄?원한?원망?번뇌라 하며, 이렇게 작은 가운데서도 작은 것을 깨뜨리는 것을 광대하고 한량없음이라 한다. 그것은 왜냐하면 큰 인연은 항상 작은 일을 깨뜨리기 때문이다.

  넓은 마음이란 죄를 두려워하고 지옥에 떨어질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마음속의 삿됨[惡法]을 제거하는 것이요, 큰 마음이란 복덕의 과보를 믿고 즐기어 나쁜 마음을 제거하는 것이요, 한량없는 마음이란 열반을 얻기 위하여 나쁜 마음을 제하는 것이다. 

 

善修者是慈心牢固初得慈心不名爲修。非但愛念衆生中。非但好衆生中。非但益己衆生中。非但一方衆生中。名爲善修。久行得深。愛樂愛憎及中三種衆生正等無異。十方五道衆生中。以一慈心視之。如父如母如兄弟姊妹子姪知識。常求好事。欲令得利益安隱。如是心遍滿十方衆生中。如是慈心名衆生緣。多在凡夫人行處或有學人未漏盡者行。

法緣者。諸漏盡阿羅漢辟支佛諸佛。是諸聖人破吾我相。滅一異相故。但觀從因緣相續生。諸欲以慈念衆生時。從和合因緣相續生但空。五衆卽是衆生。念是五衆以慈念。衆生不知是法空。而常一心欲得樂。聖人愍之令隨意得樂。爲世俗法故。名爲法緣。

無緣者是慈但諸佛有。何以故。諸佛心不住有爲無爲性中。不依止過去世未來現在世知諸緣不實顚倒虛誑故。心無所緣。佛以衆生不知是諸法實相。往來五道心著諸法分別取捨。以是諸法實相智慧。令衆生得之。是名無緣。譬如給賜貧人。或與財物或與金銀寶物。或與如意眞珠。衆生緣法緣無緣亦復如是。是爲略說慈心義。

悲心義亦如是。以憐愍心遍觀十方衆生苦。作是念衆生可愍莫令受是種種苦。無瞋無恨無怨無惱心乃至十方亦如是。

問曰。有三種衆生。有受樂如諸天及人少分。有受苦如三惡道及人中少分。有受不苦不樂五道中少分。云何行慈者觀一切衆生皆受樂。行悲者觀一切衆生皆受苦。答曰。

行者欲學是慈無量心時。先作願。願諸衆生受種種樂。取受樂人相。攝心入禪。是相漸漸增廣。卽見衆生皆受樂。譬如鑽火先以軟草乾牛屎。火勢轉大能燒大濕木。慈三昧亦如是。初生慈願時唯及諸親族知識。慈心轉廣怨親同等皆見得樂。是慈禪定增長成就故。悲喜捨心亦如是。

  또한 수행자는 계행을 깨끗하게 지니기 때문에 그 마음이 넓고, 선정을 구족하기 때문에 그 마음이 크고, 지혜를 성취하기 때문에 그 마음이 한량이 없다. 

  이러한 자심으로써 도를 얻은 성인을 생각하는 것을 한량없는 마음이라 한다. 한량없음으로써 성인을 분별하고 모든 하늘과 사람의 존귀한 곳을 생각하는 까닭에 큰 마음이라 하고, 나머지 하천한 중생과 3악도를 생각하는 것이 넓은 마음이다. 

  사랑하는 중생에 대하여 자애로운 생각을 하되 자신에 대해서 보다 넓게 하기 때문에 넓은 마음이라 하고, 인자한 마음으로 사람들에게 맞추기 때문에 큰 마음이라 하고, 인자한 생각으로 원수와 미운 이를 대해 그 공덕이 많기에 한량없는 마음이라 한다. 

  또한 좁게 반연하는 마음이기 때문에 넓다 하고, 작게 반연하는 마음이기 때문에 크다 하고, 한량이 있는 마음이기 때문에 한량이 없다고 한다.

  이와 같이 이치를 분별한다.

  ‘잘 닦는다’고 함은 이 자심이 견고해지는 것을 말한다. 처음으로 자심을 얻은 것을 닦는다[修]고 하지는 않는다. 단지 사랑하고 염려하는 중생에 대해서가 아니고, 단지 좋아하는 중생에 대해서가 아니고, 단지 자기에게 이로운 중생에 대해서가 아닌, 곧 어느 치우친[一方] 중생에 대해서가 아닌 것을 일컬어 ‘잘 닦는다’고 하는 것이다.

  오랫동안 행하면 얻는 것이 깊으니, 애락과 애증 및 그 중간 등 세 종류의 중생은 꼭 같아서 다름이 없는 것이다.

  시방 5도의 중생을 하나의 자애로운 마음으로 관찰하되 마치 부모?형제?자매?자식?조카?친지와 같이 하며, 항상 좋은 일을 구해서 그들로 하여금 이로움과 평온함을 얻게 하고자 한다. 

  이러한 마음이 시방의 중생에 두루하면 이와 같은 자심을 중생연(衆生緣)이라 한다. 대체로 범부들의 행하는 경지, 혹은 배울 것이 있는 이로서 아직 누(漏)가 다하지 못한 이에게 속한다.

  법연(法緣)을 행한다고 했는데, 모든 누가 다한 아라한ㆍ벽지불ㆍ부처님들과 같은 성인들은 나다 남이다 하는 상(相)을 깨뜨렸고, 같다 다르다 하는 상을 멸한 까닭에 오직 인연의 상속을 따라 모든 욕망이 생함을 관찰하며, 그로써 인자한 마음으로 중생을 생각할 때에 화합된 인연의 상속에 의하여 생겨났기에 오직 공한 것이다.

  5중이 곧 중생이니, 이 5중을 인자한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중생들은 이 법의 공함을 알지 못하고 항상 일심으로 쾌락을 얻으려고만 한다. 성인은 그들을 가엾이 여기어 생각에 따라 즐거움을 얻게 하나니, 그것이 세속의 법이기 때문이다. 이것을 법연이라 한다.

  무연(無緣)이라 했는데, 이 인자함은 부처님들에게만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부처님들의 마음은 유위나 무위의 성품에 머무르지 않고, 과거ㆍ미래ㆍ현재의 세상에 의지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모든 반연이 진실치 않고, 뒤바뀌어 허망한 줄을 아시기 때문에 마음에 반연하는 바가 없는 것이다.

  부처님은 중생들이 이러한 법의 실상을 알지 못한 채 다섯 길에 왕래하면서 마음이 모든 법에 집착되어 분별하거나 취하고 버리기 때문에 이러한 모든 법의 진실한 모습을 아시는 지혜로써 중생들로 하여금 이를 얻게 하시니, 이를 무연이라 한다. 

  비유하건대 가난한 사람에게 베풀어 줄때 혹은 재물을 주거나 혹은 금은보물을 주거나 혹은 여의주를 주는 것과도 같으니, 중생연ㆍ법연?무연 역시 이와 같다. 

  이것이 자심의 뜻을 간략히 설명한 것이다. 

  비심(悲心) 역시 이와 같으니, 가엾이 여기는 마음으로 시방 중생들의 고통을 관찰하고는 생각하기를 ‘중생들은 가엾기도 하구나. 이런 갖가지 고통을 받게 하지 않으리라’ 한다. 

  성냄 없고 원망 없고 번뇌 없는 마음에서 시방에 이르기까지 모두 이와 같다.

 

問曰。悲心中取受苦人相。喜心中取受喜人相。捨心中取何等相。

答曰。取受不苦不樂人相。行者以是心漸漸增廣。盡見一切受不苦不樂。

 

問曰。是三種心中應有福德。是捨心於衆生不苦不樂。有何等饒益。

答曰。行者作是念。一切衆生離樂時得苦。苦時卽是苦。得不苦不樂則安隱。以是饒益。行者行慈喜心。或時貪著心生行悲心。或時憂愁心生。以是貪憂故。心亂。入是捨心除此貪憂。貪憂除故名爲捨心。

問曰。悲心捨心可知有別。慈心令衆生樂。喜心令衆生喜。樂與喜有何等異。

答曰。身樂名樂心樂名喜。五識相應樂名樂。意識相應樂名喜。五塵中生樂名樂。法塵中生樂名喜。先求樂願令衆生得從樂。因令衆生得喜。如人憐愍貧人。先施寶物是名樂。後敎令賣買得受五欲樂。是名喜。復次欲界樂願令衆生得是名樂。色界樂願令衆生得是名喜。復次欲界中五識相應樂。初禪中三識相應樂。三禪中一切樂。是名樂。欲界及初禪意識相應樂。二禪中一切樂。是名喜。麤樂名樂細樂名喜。因時名樂果時名喜。初得樂時是名樂。歡心內發樂相。外現歌舞踊躍是名喜。譬如初服藥時是名樂。藥發遍身時是名喜。

 

問曰。若爾者何以不和合二心作一無量。而分別爲二法。

答曰。行者初心未攝。未能深愛衆生故。但與樂。攝心深愛衆生故與喜。以是故先樂而後喜。

問曰。若爾者何以不慈喜次第。

答曰。行慈心時。愛衆生如兒子。願與樂出慈三昧故。見衆生受種種苦。發深愛心憐愍衆生。令得深樂。譬如父母雖常愛子。若得病急是時愛心轉重。菩薩亦如是。入悲心觀衆生苦憐愍心生便與深樂。以是故悲心在中。

問曰。若如是深愛衆生復何以行捨心。

答曰。行者如是觀。常不捨衆生。但念捨是三種心。何以故。妨廢餘法故。亦以是慈心。欲令衆生樂。而不能令得樂。悲心欲令衆生離苦。亦不能令得離苦。行喜心時亦不能令衆生得大喜。此但憶想未有實事。欲令衆生得實事。當發心作佛。行六波羅蜜具足佛法。令衆生得是實樂。以是故捨是三心入是捨心。復次如慈悲喜。心愛深故捨衆生難。入是捨心故易得出離。

問曰。菩薩行六波羅蜜。乃至成佛亦不能令一切衆生離苦得樂。何以故。但言是三心憶想心生無有實事。

答曰。是菩薩作佛時。雖不能令一切衆生得樂。但菩薩發大誓願。從是大願得大福德果報。得大報故能大饒益凡夫。聲聞行是四無量。爲自調自利故。亦但空念衆生。諸菩薩行是慈心。欲令衆生離苦得樂。從此慈心因緣。亦自作福德。亦敎他作福德。受果報時或作轉輪聖王多所饒益。菩薩或時出家行禪。引導衆生敎令行禪。得生淸淨界受無量心樂。若作佛時共無量阿僧祇衆生。入無餘涅槃。比於空心願益是爲大利。乃至舍利餘法多所饒益。復次若一佛盡度一切衆生。餘佛則無所復度。是則無未來佛爲斷佛種。有如是等過。以是故一佛不度一切衆生。復次是衆生性從癡而有。非實定法。三世十方諸佛。求衆生實不可得。云何盡度一切。

問曰。若空不可得盡度者少亦俱空。何以度少。

答曰。我言三世十方佛求一切衆生不可得故無所度。汝難言何以不盡度。是爲墮負處。汝於負處不能自拔。而難言無衆生中多少一種何以度少。是爲重墮負處。復次諸法實相第一義中則無衆生。亦無度。但以世俗法故說言有度。汝於世俗中。求第一義。是事不可得。譬如瓦石中求珍寶不可得。復次諸佛從初發心。乃至法盡。於其中間所有功德。皆是作法有限有量有初有後故。所度衆生亦應有量。不應以隨因緣果報有量法盡度無量衆生。如大力士弓勢雖大箭遠必墮。亦如劫盡大火燒三千世界明照無量雖久必滅。菩薩成佛亦如是。從初發意執精進弓用智慧箭。深入佛法大作佛事亦必當滅。菩薩得一切種智時。身出光明照無量世界。一一光明變化作無量身。度十方無量衆生。涅槃後八萬四千法聚。舍利化度衆生。如劫盡火照久亦復滅。

問曰。汝自言光明變化作無量身。度十方無量衆生。今何以言有量因緣故。所度亦應有量。

答曰。無量有二種。一者實無量。諸聖人所不能量。譬如虛空涅槃衆生性是不可量。二者有法可量。但力劣者不能量。譬如須彌山大海水斤兩渧數多少。諸佛菩薩能知。諸天世人所不能知。佛度衆生亦如是。諸佛能知。但非汝等所及故言無量。復次諸法因緣和合生故無有自性。自性無故常空。常空中衆生不可得。如佛說。

  [답] 한량없음에는 두 종류가 있다. 

  첫째는 실제로 한량없음이니, 성인들도 헤아리지 못하는 바이다. 예를 들어 허공?열반?중생의 성품이니, 이것들은 헤아릴 수가 없다. 

  둘째는 가히 헤아릴 수는 있는 법이나 오직 힘이 적어서 헤아리지 못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수미산?바닷물의 무게ㆍ빗방울의 많고 적음이니, 이는 부처님들과 보살들은 능히 아시지만 하늘이나 인간 세계의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부처님께서 중생을 제도하는 것도 이와 같으니, 부처님들은 능히 아시지만 다만 그대들이 미칠 바가 아니므로 한량없다고 말할 뿐이다.

  또한 모든 법은 인연이 화합하여 생겨나는 까닭에 자성이 없으며, 자성이 없는 까닭에 항상 공하니, 항상 공한 가운데서는 중생을 얻을 수 없다.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我坐道場時  智慧不可得

 空拳誑小兒  以度於一切

  내가 도량에 앉았을 때

  지혜로운 이 볼 수 없었으니

  빈주먹으로 어린애를 꼬이듯 

  모든 중생을 구제하였네. 

 

 諸法之實相  則是衆生相

 若取衆生相  則遠離實道

  모든 법의 진실한 모습은

  그대로가 중생의 모습이니

  만일 중생의 모습에 집착하면

  진실한 도에서 멀어지네.

 

 常念常空相  是人非行道

 不生滅法中  而作分別相

  항상 영원히 공한 모습을 생각하면

  이 사람은 도를 행하는 것이 아니니 

  생멸치 않는 법 가운데에서 

  분별의 모습을 짓는 자이네.

 

 若分別憶想  則是魔羅網

 不動不依止  是則爲法印

  분별하거나 기억해 생각하면 

  이는 마라의 그물이니

  움직이지 않고 기대지 않으면 

  이것이 곧 법인(法印)이어라.

 

問曰。若樂有二分。慈心喜心。悲心觀苦何以不作二分。

答曰。樂是一切衆生所愛重故作二分。是苦不愛不念故不作二分。又受樂時心軟。受苦時心堅。如阿育王弟違陀輸。七日作閻浮提王。得上妙自恣五欲。過七日已。阿育王問言。閻浮提主受樂歡暢不。答言。我不見不聞不覺。何以故。旃陀羅日日振鈴高聲唱。七日中已爾許日過。過七日已汝當死。我聞是聲雖作閻浮提王上妙五欲。憂苦深故不聞不見。以是故知苦力多樂力弱。若人遍身受樂。得一處針刺衆樂皆失但覺刺苦。樂力弱故。二分乃强苦力多故一處足明。

問曰。行是四無量心。得何等果報。

答曰。佛說入是慈三昧。現在得五功德。入火不燒。中毒不死。兵刃不傷。終不橫死。善神擁護。以利益無量衆生故。得是無量福德。以是有漏無量心。緣衆生故生淸淨處。所謂色界。

問曰。何以故。佛說慈報生梵天上。

答曰。以梵天衆生所尊貴。皆聞皆識故。佛在天竺國。天竺國常多婆羅門。婆羅門法所有福德盡願生梵天。若衆生聞行慈生梵天。皆多信向行慈法。以是故說行慈生梵天。復次斷婬欲天皆名爲梵。說梵皆攝色界。以是故斷婬欲法名爲梵行。離欲亦名梵。若說梵則攝四禪四無色定。復次覺觀難滅故。不說上地名。譬如五戒中口律儀。但說一種不妄語則攝三事。

問曰。慈有五功德。悲喜捨何以不說有功德。

答曰。如上譬喩。說一則攝三事此亦如是。若說慈則已說悲喜捨。復次慈是眞無量。慈爲如王餘三隨從如人民。所以者何。先以慈心欲令衆生得樂。見有不得樂者故生悲心。欲令衆生離苦心得法樂故生喜心。於三事中。無憎無愛無貪無憂故生捨心。復次慈以樂與衆生故。增一阿含中說有五功德悲心。於摩訶衍經處處說其功德。如明網菩薩經中說。菩薩處衆生中。行三十二種悲。漸漸增廣轉成大悲。大悲是一切諸佛菩薩功德之根本。是般若波羅蜜之母。諸佛之祖母。菩薩以大悲心故。得般若波羅蜜。得般若波羅蜜故得作佛。如是等種種讚大悲。喜捨心餘處亦有讚。慈悲二事遍大故。佛讚其功德。慈以功德難有故。悲以能成大業故。

問曰。佛說四無量功德。慈心好修善修福極遍淨天。悲心好修善修福極虛空處。喜心好修善修福極識處。捨心好修善修福極無所有處。云何言慈果報應生梵天上。

答曰。諸佛法不可思議。隨衆生應度者如是說。復次從慈定起。迴向第三禪易。從悲定起向虛空處。從喜定起入識處。從捨定起。入無所有處易故。復次慈心願令衆生得樂。此果報自應受樂。三界中遍淨最爲樂故。言福極遍淨。悲心觀衆生老病殘害苦行者憐愍心生。云何令得離苦。若爲除內苦外苦復來。若爲除外苦內苦復來。行者思惟有身必有苦。唯有無身乃得無苦。虛空能破色。是故福極虛空處。喜心欲與衆生心識樂。心識樂者。心得離身如鳥出籠。虛空處心雖得出身。猶繫心虛空識處無量。於一切法中皆有心識。識得自在無邊。以是故喜福極在識處。捨心者。捨衆生中苦樂。苦樂捨故得眞捨法。所謂無所有處。以是故捨心福。極無所有處。如是四無量。但聖人所得非凡夫。

復次佛知未來世諸弟子鈍根故。分別著諸法。錯說四無量相。是四無量心。衆生緣故但是有漏。但緣欲界故。無色界中無。何以故。無色界不緣欲界故。爲斷如是人妄見故。說四無量心無色界中。佛以四無量心。普緣十方衆生故。亦應緣無色界中。如無盡意菩薩問中說。慈有三種。衆生緣法緣無緣。論者言。衆生緣是有漏無緣是無漏。法緣或有漏或無漏。如是種種略說四無量心。

四無色定者。虛空處識處無所有處非有想非無想處。是四無色有三種。一者有垢。二者生得。三者行得。有垢者。無色中攝三十一結。及此結使中起心相應行。生得者。行是四無色定業報因緣故。生無色界得不隱沒無記四衆。行得者。觀是色麤惡重苦老病殺害等種種苦惱因緣。如重病如癰瘡如毒刺。皆是虛誑妄語應當除却。如是思惟已。過一切色相。滅一切有對相。不念一切異相。入無邊虛空處定。

問曰。云何能滅是三種相。

答曰。是三種相。皆從因緣和合生故無自性。自性無故。是三種虛誑無實易可得滅。復次是色分別分分破散後皆無。以是故若後無今亦無。衆生顚倒故。於和合色中。取一相異相心著色相。我今不應隨愚人學。當求實事。實事中無是一相異相。復次行者作是念。我若除却離諸法得利爲深。我先捨財物妻子。出家得淸淨持戒。心安隱不怖不畏。離諸欲諸惡不善法。離生喜樂得初禪。離覺觀內淸淨故。得第二禪中大喜樂。離喜在第三禪地。於諸樂中最第一。捨是樂得念捨淸淨第四禪。今捨是四禪。應更得妙定。以是故過是色相。滅有對相不念異相。

佛說三種色。有色可見有對。有色不可見有對。有色不可見無對。過色相者。是可見有對色。滅有對相者。是不可見有對色。不念異相者。是不可見無對色。復次眼見色壞故名過色。耳聲鼻香舌味身觸壞故過有對相。於二種餘色及無敎色種種分別故名異相。如是觀離色界中染。得無邊虛空處。得三無色。因緣方便如禪波羅蜜品中說。是四無色一常有漏三當分別。虛空處或有漏或無漏。有漏者。虛空處攝有漏四衆。無漏者虛空處攝無漏四衆。識處無所有處亦如是。一切皆有爲。善有漏虛空處是有報無記。及無漏虛空處是無報。識處無所有處亦如是。善非有想非無想處是有報無記非有想非無想處是無報。善四無色定是可修無記。四無色定非可修。隱沒者是有垢。不隱沒者是無垢。一有三中。有漏者是有。無漏者是非有。四無色定攝。心心數法是相應因。心不相應諸行是非相應因。有善法非四無色中。有四無色中非善法。有亦善法亦四無色中。有非善法亦非四無色中。有善法非四無色者。一切善色衆。及四無色不攝四衆及智緣盡。有四無色中非善法者。無記四無色。有亦善法亦四無色者。善四無色。有非善法亦非四無色者。一切不善五衆。及無記色衆。及四無色不攝無記四衆虛空。及非智緣盡。不善法中不相攝。有無記法非四無色。有四無色非無記法。有亦無記法亦四無色。有非無記亦非四無色。有無記法非四無色者。無記色衆及四無色不攝無記四衆虛空及非智緣盡。有四無色中非無記法者。善四無色。亦無記法亦四無色者。無記四無色。亦非無記法亦非四無色者。不善五衆善色衆無色不攝善四衆及智緣盡。或漏非四無色或四無色非漏。或漏亦四無色或非漏亦非四無色。漏非四無色者。一漏及二漏少分。四無色非漏者。漏不攝四無色。亦漏亦四無色者。二漏少分非漏非四無色者。色衆及漏無色不攝四衆及無爲法。或有漏非四無色。或四無色非有漏。或有漏亦四無色。或非有漏非四無色。有漏非四無色者。有漏色衆。及無色不攝有漏四衆。四無色非有漏者。三無色少分。亦有漏亦四無色者。一無色及三無色少分。亦非有漏非四無色者。無漏色衆無色不攝無漏四衆及三無爲。或無漏非四無色。或四無色非無漏。或無漏亦四無色。或非無漏亦非四無色。無漏非四無色者。無漏色衆及無色不攝無漏四衆。及三無爲。四無色非無漏者。一無色及三無色少分。亦無漏亦四無色者。三無色少分。非無漏非四無色者。有漏色衆及無色不攝有漏四衆。

虛空處或見諦斷或思惟斷或不斷。見諦斷者。信行法行人。用見諦忍斷。何者是二十八使。及二十八使相應。虛空處及此起心不相應諸行。思惟斷者。學見道用思惟斷。何者是思惟所斷。三使及此相應虛空處。及此起心不相應諸行。及無垢有漏虛空處。不斷者。無漏虛空處。識處無所有處亦如是。

非有想非無想處。或見諦斷或思惟斷。見諦斷者信行法行人。用見諦忍斷。何者是二十八使。及此相應非有想非無想處。及此起心不相應諸行。思惟斷者。學見道用思惟斷。何者是思惟所斷。三使及此相應非有想非無想處。及此起心不相應諸行。及無垢非有想非無想處。四無色中攝心不相應諸行。是非心非心數法非心相應。受衆想衆及此相應行衆是心數法。亦心相應心意識獨心四無色。或有隨心行非受相應。或受相應非隨心行。或隨心行亦受相應。或非隨心行非受相應。隨心行非受相應者。隨心行心不相應諸行及受。受相應不隨心行者心是。隨心行亦受相應者。想衆及此相應行衆。非隨心行非受相應者。除隨心行心不相應諸行。餘殘心不相應諸行。想相應行相應。亦應如是說。

虛空處或從身見因不還與身見作因。或從身見因亦還與身見作因。或不從身見因。亦不還與身見作因。從身見因不還與身見作因者。除過去現在見苦斷諸使及此相應虛空處。亦除過去現在見集斷諸邊結及此相應虛空處。亦除未來世中身見及相應虛空處。亦除身見生老住滅。餘殘有垢虛空處。從身見因亦還與身見作因者。上所除者是。亦不從身見因亦不還與身見作因者。無垢虛空處。識處無所有處非有想非無想處亦如是。四無色定一切有因緣亦與因緣。虛空處或次第不與次第緣。或次第亦與次第緣。或非次第亦不與次第緣。次第不與次第緣者未來世中欲生。心心數法虛空處及阿羅漢。過去現在最後滅時。心心數虛空處。次第亦與次第緣者。除過去現在阿羅漢最後滅時。心心數虛空處。餘殘過去現在心心數法虛空處。非次第。亦不與次第緣者。除未來世中。欲生心心數虛空處。餘殘未來世中心心數虛空處。及心不相應諸行。識處無所有處亦如是。

非有想非無想處。或次第不與次第緣。或次第亦與次第緣。或非次第亦不與次第緣。次第不與次第緣者。未來世中欲生心心數法非有想非無想處。及阿羅漢。過去現在最後滅時心心數法非有想非無想處及滅受想。若生若欲生。次第亦與次第緣者。除過去現在阿羅漢最後滅時心心數非有想非無想處。餘殘過去現在心心數非有想非無想處。非次第亦非與次第緣者。除未來世中欲生心心數非有想非無想處。餘殘未來世中心心數非有想非無想處。除心次第心不相應諸行。餘殘心不相應諸行。四無色中攝諸心心數法有緣亦與緣緣。四無色攝心不相應諸行非緣與緣緣。四無色皆是增上。亦與增上緣。如是等種種分別四無色。如阿毘曇分中說。此中應廣說。

問曰。摩訶衍中。四無色云何。

  [문] 마하연에서의 4무색은 어떠한가?

答曰。與諸法實相共智慧行。是摩訶衍中四無色。

  [답] 모든 법의 실상(實相)에 맞추어 지혜를 행하는 것이 마하연의 4무색이다.

問曰。何等是諸法實相。

  [문] 어떤 것이 모든 법의 실상인가? 

答曰。諸法諸法自性空。

  [답] 모든 법은 법으로서의 자성이 공한 것이다. 

問曰。色法和合分別因緣故空。此無色中云何空。

  [문] 색법(色法)은 화합ㆍ분별ㆍ인연 때문에 공하다. 그렇다면 이 무색 가운데 무엇이 공하다는 것인가?

答曰。色是眼見耳聞麤事能令空。何況不可見無有對。不覺苦樂而不空。復次色法分別。乃至微塵皆散滅歸空。是心心數法。在日月時節須臾頃乃至一念中不可得。是名四無色定義。

  [답] 색은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거친 일도 능히 공하게 하거늘 하물며 볼 수 없고 대할 수 없고 고락을 느낄 수 없는데 공하지 않을 수 있으랴. 

  또한 색법을 분별하여 미진(微塵)에까지 이르면 모두가 흩어져 빈 것으로 돌아간다. 이 마음과 마음에 속하는 법은 해와 달과 시절과 나아가서는 잠깐 사이에 이르기까지 한 생각도 얻을 수 없나니, 이것이 4무색정의 의의이다. 

如是等種種。略說四無色。

이와 같이 갖가지로 4무색정을 간략히 설명했다.

 

 

www.youtube.com/watch?v=S9COX-5Ks2k

 

kabc.dongguk.edu/content/view?itemId=ABC_IT&cate=bookName&depth=3&upPath=C&dataId=ABC_IT_K0549_T_020

 

단락/경판 - 불교학술원 아카이브

ABC_IT_K0549_T_020 URL복사 통합뷰어 014_0695_c_01L대지도론 제20권 014_0695_c_01L大智度論釋初品中三三昧義第三十二卷第二十 통합뷰어 용수 지음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김성구 번역/김형준 개역 014_069

kabc.dongguk.edu

 

 

大智度論釋初品中三三昧四禪義第三十二 (卷第二十)

32. 초품 중 세 가지 삼매[三三昧]의 뜻을 풀이함

 

【經】空三昧無相三昧無作三昧。四禪四無量心四無色定。八背捨八勝處九次第定十一切處。 

  [經] 공삼매1) · 무상(無相)삼매2) · 무작(無作)삼매3)와 4선(禪) · 4무량심(無量心) · 4무색정(無色定) · 8배사(背捨) · 8승처(勝處) · 9차제정(次第定) · 10일체처(一切處)[를 구족해야 하느니라.]

【論】問曰。何以故次三十七品。後說八種法。

  [論] [문] 무슨 까닭으로 37품에 이어 여덟 가지 법을 말하는가? 

答曰。三十七品是趣涅槃道。行是道已得到涅槃城。涅槃城有三門。所謂空無相無作。已說道次應說到處門。

  [답] 37품은 열반에 나아가는 길이다. 이 길을 행하면 열반의 성에 이르게 된다.

열반의 성에는 세 문이 있으니, 이른바 공?무상?무작이다.  · 

  이미 길을 말했으니 다음에는 이르른 곳의 문을 말해야 하리라.

四禪等是助開門法。復次三十七品是上妙法。欲界心散亂。行者依何地何方便得。當依色界無色界諸禪定。

於四無量心八背捨八勝處九次第定十一切處中試心知得柔軟自在隨意不。

  4선 등은 문을 여는 데 도움이 되는 법이다. 또한 37품은 높고 묘한 법이니, 욕계의 마음이 산란하면 행자는 어떤 지위와 어떤 방편을 의지하여야 되는가? 곧 색계ㆍ무색계의 여러 선정에 의지해서 4무량심ㆍ8배사ㆍ8승처ㆍ9차제정ㆍ10일체처 가운데 머물러서 마음이 보드랍고 자재하고 마음대로 되는가를 시험해야 한다. 

譬如御者試馬曲折隨意然後入陣。十一切處亦如是。觀取小許靑色。視一切物皆能使靑。一切黃一切赤一切白皆如是。

  비유하건대 말을 타는 이가 말을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지를 시험한 뒤에야 진중(陣中)에 들어가는 것과 같다. 10일체처도 그와 같아서 약간의 푸른 빛을 보고서 일체의 물건을 모두 푸르게 하니, 모든 누런빛, 붉은빛, 흰빛도 모두 이와 같이 한다.

復次於八勝處緣中自在。初二背捨觀身不淨。第三背捨觀身還使淨。

  또한 8승처의 반연에 대하여 자재하나니, 처음의 두 배사에서는 몸의 부정함을 관찰하고, 셋째 배사에서는 몸이 도리어 깨끗한 것으로 관찰한다. 

四無量心慈觀衆生皆樂。悲觀衆生皆苦。喜觀衆生皆喜。捨是三心但觀衆生無有憎愛。

  4무량심이란, 자(慈)는 중생 모두가 즐겁다고 관찰하는 것이요, 비(悲)는 중생 모두가 괴롭다고 관찰하는 것이요, 희(喜)는 중생 모두가 기쁘다고 관찰하는 것이요, 사(捨)4)는 이러한 세 가지 마음을 버리고 단지 중생들에 대하여 미움도 사랑도 없다고 관찰하는 것이다. 

復次有二種觀。一者得解觀二者實觀。實觀者。是三十七品。以實觀難得故。次第說得解觀。得解觀中心柔軟易得實觀。用實觀得入三涅槃門。

  또한 두 가지 관법이 있으니, 첫째는 견해를 얻는 관법[得解觀]이요, 둘째는 진실한 관법[實觀]이다. 

  진실한 관법이라 함은 이 37품이다. 진실한 관법으로는 얻기 어려우므로 차례로 견해를 얻는 관법을 말하는 것이다. 

  견해를 얻는 관법에서 마음이 유연해져 진실한 관법을 얻기 쉽고, 진실한 관법에 의해서 세 가지 열반의 문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問曰。何等空涅槃門。

  [문] 무엇이 공열반의 문인가? 

答曰。觀諸法無我我所空。諸法從因緣和合生。無有作者無有受者。是名空門。

復次空門。如忍智品中說。知是無我我所已。衆生云何於諸法中心著。

  [답] 모든 법은 나와 내 것(我所)이 없어서 공하며, 모든 법은 인연의 화합으로 생긴 것이어서 짓는 이[作者]도 없고 받는 이도 없다고 관찰하는 것이니, 이것을 일컬어 공의 문이라 한다. 

  또한 공의 문은 인지품(忍智品)에서 말한 바와 같으니, 나와 내 것이 없는 줄 안 뒤에 중생들이 어찌 모든 법에 대하여 마음이 집착되겠는가. 

行者思惟作是念。

  수행자는 이렇게 생각한다.

諸法從因緣生無有實法。但有相。而諸衆生取是相著我我所我今當觀是相有實可得不。審諦觀之都不可得。若男相女相一異相等。是相實皆不可得。何以故。諸法無我我所故空。空故無男無女。一異等法我我所中名字。是一是異。以是故男女一異法實不可得。

  ‘모든 법은 인연으로 부터 생긴 것이어서 진실한 법이 없고, 오직 모습만 있거늘 중생들이 그 형상을 탐내어 나와 내 것에 집착되는구나. 나는 이제 이 모습에서 실로 얻을 것이 있는가를 관찰하리라.’

  자세히 관찰하여도 전혀 얻을 수 없으니, 남자와 여자의 모습, 하나와 다름의 모습 등 이러한 모습을 실로 모두 얻을 수 없다. 왜냐하면 모든 법은 나와 내 것이 없으므로 공하며, 공하기 때문에 남자도 여자도 없고, 하나도 다름 등의 법도 없건만 나와 내 것 가운데서 이름하여 하나다 다르다 한다. 이런 까닭에 남자?여자ㆍ하나?다름의 법을 얻을 수 없다.

 

復次四大及造色。圍虛空故名爲身。是中內外入因緣和合。生識種身。得是種和合。作種種事言語坐起去來。於空六種和合中强名爲男。强名爲女。

若六種是男應有六男。不可以一作六六作一。亦於地種中無男女相。

  또한 4대(大)와 그로 인해 지어진 물질이 허공을 둘러쌌기 때문에 몸이라 하는데 여기에서 안팎의 입(入)의 인연이 화합해서 의식의 종자[識種]를 내거늘 몸은 이 종자와 화합하므로써 갖가지 일을 하여 말하고 이야기하고 가고 오고 앉고 일어서나니, 허공 가운데 여섯 가지가 화합한 것에다 굳이 남자라 여자라 이름할 뿐이다. 

  만일 여섯 가지가 남자라 하면 마땅히 여섯 남자가 있어야 하리니, 하나를 여섯이라 할 수 없고, 여섯을 하나라 할 수도 없다. 

乃至識種亦無男女相。若各各中無。和合中亦無。如六狗。各各不能生。師子和合亦不能生。無性故。

  또한 땅 가운데도 남녀의 모습이 없고, 나아가서는 의식의 종자에도 남녀의 모습이 없다. 만일 개체 가운데에 없다면 화합한 가운데에도 없다. 마치 여섯 마리의 개가 제각기 사자를 낳을 수도 없고 화합해서 사자를 낳을 수도 없는 것과 같으니, 성품이 없기 때문이다. 

 

問曰。何以故無男女。雖神無有別。卽身分別有男女之異。是身不得離身分。身分亦不得離身。如見身分足。知有有分法名爲身。足等身分異身。身卽是男女相。

  [문] 무슨 까닭에 남녀가 없는가? 정신은 비록 차별이 없지만 신분(身分)은 차별이 있어서 남녀의 차이가 있다. 이 몸은 신분을 여의지 않고, 신분도 몸을 여의지 않는다. 

  예컨대 신분을 보면 부분이 있는 법[有分法], 즉 몸?발 등이 있음을 족히 알 수 있나니, 신분은 몸과는 다르지만 몸은 남녀의 모습이 될 것이다. 

答曰。神已先破身相亦壞。今當重說。若有是有分名身。爲各各分中具足有爲身分。分在諸分中。若諸分中具足有身者。頭中應有脚。何以故。頭中具足有身故。若身分分在諸分中。是身與分無有異。有分者隨諸分故。

  [답] 신(神)은 이미 먼저 파하였고, 몸의 상(相)도 역시 무너졌거니와 이제 다시 설명하리라. 

  만일 이러한 부분 있는 법을 몸이라 한다면 제각기의 부분 안에 갖추어져 있는가, 아니면 신분이 모든 부분 안에 나뉘어져 있는가? 

  만일 모든 부분 가운데에 갖추어 몸이 있는 것이라면 머리 가운데에도 다리가 있어야 한 것이다. 그것은 왜냐하면 머리 가운데 몸이 갖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만일 몸의 부분이 모든 부분 가운데 나뉘어져 있다면 이 몸은 부분과 다름이 없을 것이니, 부분 있음[有分]이란 것은 모든 부분을 따르기 때문이다. 

 

問曰。若足等身分與有分異。是有咎。今足等身分與有分身法不異故無咎。

  [문] 만일 발 등 몸의 부분이 부분 있음과 다르다면 허물이 되겠지만 지금은 발 등 몸의 부분이 부분 있음, 즉 몸이란 법과 다르지 않다고 하므로 허물이 없을 것이다. 

答曰。若足等身分。與有分不異。頭卽是足。何以故。二事是身不異故。又身分多有分一。不應多作一一作多。復次因無故果無。非果無故因無。身分與有分不異。應果無故因無。何以故。因果一故。若一若異中求身不可得。身無故何處有男女。若有男女爲卽是身爲異身。身則無可得。若在餘法餘法非色故。無男女之別。但二世因緣和合。以顚倒心故。謂爲男女。如說。

  [답] 만일 발 등 몸의 부분이 부분 있음과 다르지 않다면 머리가 곧 발이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왜냐하면 두 가지 경우가 모두 몸이어서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몸의 부분은 많고 부분[有分]은 하나인데, 많음이 하나가 될 수 없고, 하나가 많음이 될 수 없을 것이다. 다시 원인이 없어지므로써 결과가 없어지는 것이요, 결과가 없어지므로써 원인이 없어지는 것인데 이제 몸의 부분이 부분 있음과 다르지 않다면 응당 결과가 없어지므로써 원인이 없어지는 것이 될 것이다. 그것은 왜냐하면 원인과 결과는 하나이기 때문이다. 

  하나와 다름 가운데서 몸을 구하여도 얻을 수 없음은 몸이 없기 때문이거늘 어떻게 남녀의 모습이 있으랴. 만일 남녀가 있다면 이 몸 그대로인가? 아니면 이 몸과는 다른 것인가? 몸에서는 얻을 수 없다. 만일 다른 법에 있다면 다른 법은 물질이 아니기 때문에 남녀의 차별이 없거늘 다만 두 세상의 인연이 화합한 곳에 뒤바뀐 마음으로써 남녀라고 말할 뿐이다.

  이런 게송이 있다. 

 

 俯仰屈申立去來  視瞻言語中無實

 風依識故有所作  是識滅相念念無

  구부렸다 폈다 하는 곳에 과거와 미래를 세우나

  우러러보고 이야기하는 가운데 실체가 없다. 

  바람이 식에 의지하므로 작용이 있으나

  이 식은 모습이 없어서 잠시도 있지 않다. 

 

 彼此男女有我心  無智慧故妄見有

 骨鎖相連皮肉覆  機關動作如木人

  너와 나, 남자와 여자는 나란 마음 있기 때문이니

  지혜가 없으므로 허망하게 있다고 여긴다. 

  뼈마디가 서로 이어진 곳에 가죽이 덮이었고

  신체 기관 움직임은 허수아비 같도다.

 

 內雖無實外似人  譬如洋金投水中

 亦如野火焚竹林  因緣合故有聲出

  실체는 없으나 겉만 사람 같으니

  금을 녹여 물속에 던질 때 같고

  들불이 대숲을 태울 때 같아서

  인연이 화합하면 소리도 난다.

 

如是等諸相如先所說。此中應廣說。

是名無相門。無作者旣知無相。都無所作。是名無作門。

  이러한 갖가지 모습은 전에 이미 말했거니와 여기에서 다시 자세히 말하리라. 

이것을 모습 없음의 문[無相門]이라 하며,

지을 이 없음[無作者]이라 하나니,

이미 모습 없음이어서 짓는 바가 없음을 도무지 없음을 알면 이것을 지음 없는 문[無作門]이라 한다. 

 

問曰。是三種以智慧觀空觀無相觀無作。是智慧何以故名三昧。

  [문] 세 가지는 지혜로써 공을 관찰하고, 모습 없음을 관찰하고, 지음 없음을 관찰하는 것인데 이 지혜를 어찌하여 삼매라 하는가? 

答曰。是三種智慧若不住定中則是狂慧。多墮邪疑無所能作。若住定中則能破諸煩惱。得諸法實相。復次是道異一切世間。與世間相違。諸聖人在定中得實相說。非是狂心語。復次諸禪定中無此三法。不名爲三昧。何以故。還退失墮生死故。如佛說。

  [답] 이 세 가지 지혜가 선정에 머무르지 않으면 이는 미친 지혜로서 대개는 삿된 의혹에 빠져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하지만 만일 선정에 머무르면 모든 번뇌를 깨뜨리고 모든 법의 실상을 깨닫게 된다.

  또한 다시 이 모든 온갖 세간과 다르고 세간과 서로 맞지 않거니와 모든 성현들이 선정에 머물러 실상을 얻고서 말씀하신 것은 미친 마음의 말씀이 아니다.

  또한 다시 모든 선정 가운데 이 세 가지 법이 없으면 삼매라 하지 못한다. 그것은 왜냐하면 도리어 물러나서 생사에 떨어지기 때문이다. 

  부처님께서 이렇게 게송으로 말씀하신 적이 있다. 

 

 能持淨戒名比丘  能觀空名行定人

 一心常懃精進者  是名眞實行道人

  청정한 계율을 지키면  비구라 부르고

  공을 관하면  선정을 닦는 이라 한다. 

  일심으로 항상 부지런히 정진을 행하는 이는 

  이를 일러 진실한 도인이라 부른다. 

 

 於諸樂中第一者  斷諸渴愛滅狂法

 捨五衆身及道法  是爲常樂得涅槃  

  모든 즐거움 중에서 으뜸가는 것으로는 

  모든 애욕을 끊고 미친 법을 없애는 일이니

  5중(衆)의 몸과 도법(道法)까지 버리면

  이를 일러 항상하고 즐거워 열반을 얻었다 한다

以是故三解脫門。佛說名爲三昧。

이런 까닭에 세 가지 해탈문을 부처님께서는 삼매라 하신다.

 

問曰。今何以故名解脫門。

  [문] 이제는 무슨 까닭에 해탈문(解脫門)이라 하는가? 

答曰。行是法時。得解脫到無餘涅槃。以是故名解脫門。無餘涅槃是眞解脫。於身心苦得脫。有餘涅槃爲作門。

[답] 이 법을 행할 때에 해탈을 얻어서 무여열반(無餘涅槃)5)에 이르게 된다. 이런 까닭에 해탈문이라 한다. 

  무여열반이야말로 참해탈이어서 몸과 마음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된다. 반면 유여열반은 그 문호(門戶)가 된다. 

此三法雖非涅槃。涅槃因故名爲涅槃。世間有因中說果果中說因。是空無相無作是定性。是定相應心心數法。隨行身業口業。此中起心不相應。諸行和合皆名爲三昧。

  이 세 가지 법은 비록 열반은 아니지만 열반의 원인이기 때문에 열반이라 한다. 세간에도 원인에서 결과를 말할 때도 있고, 결과에서 원인을 말할 때도 있는데 이 공ㆍ모양 없음?지음 없음은 정의 성품이요, 이 정과 상응하는 마음과 마음에 속하는 법의 법과 몸의 업과 입의 업과 여기에서 일어나는 마음에 상응하지 않는 모든 행의 화합은 모두가 삼매라 불린다. 

譬如王來必有大臣營從。三昧如王智慧如大臣餘法如營從。

餘法名雖不說必應有。何以故。定力不獨生。不能獨有所作故。是諸法共生共住共滅共成事互相利益。

  비유하건대 왕이 가면 대신과 들러리[營從]가 반드시 있는 것 같으니, 삼매는 왕과 같고 지혜는 대신과 같으며, 다른 법은 들러리와 같다. 

  다른 법의 명칭은 말하지는 않았으나 반드시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선정의 힘은 홀로 생길 수 없고, 혼자서는 작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모든 법은 함께 생기고, 함께 머무르고, 함께 일을 이루어서 서로가 이익을 이룬다. 

  

是空三昧二行。一者觀五受衆一相異相無故空。二者觀我我所法不可得故無我。

이 공의 삼매에는 두 가지 행이 있으니, 첫째는 5수중(受衆)이 같은 모습도 다른 모습도 없는 것이라 관찰하는 까닭에 공이요, 둘째는 나와 내 것이란 법이 얻을 수 없는 것으로 관찰하기 때문에 무아(無我)이다. 

無相三昧四行。觀涅槃種種苦盡故名爲盡。

三毒等諸煩惱火滅故名爲滅。一切法中第一故名爲妙。離世間故名爲出。

  모습 없는 삼매[無相三味]의 네 가지 행으로 열반에는 갖가지 괴로움이 다한 것으로 관찰하기 때문에 다함[盡]이라 하고, 3독 등 모든 번뇌의 불길이 사라졌으므로 사라짐[滅]이라 하고, 모든 법 가운데서 으뜸이기 때문에 묘함[妙]이라 하고, 세간을 여의었기 때문에 벗어남[出]이라 한다. 

無作三昧二行。觀五受衆因緣生故無常。身心惱故苦。觀五受衆因四行。煩惱有漏業和合能生苦果故名爲集。以六因生苦果故名爲因。四緣生苦果故名爲緣。不多不少等因緣生果故名爲生。

  지음 없는 삼매[無作三昧]의 두 가지 행으로 5중(五衆)이 인연 따라 생겼기 때문에 무상하다고 관찰하고, 몸과 마음이 번거롭기 때문에 괴롭다고 관찰하고, 5수음[五受衆]의 네 가지 행이 번뇌와 유루의 업과 화합함으로 인하여 능히 괴로운 결과를 내기 때문에 집(集)이라 하고, 여섯 가지 원인으로 괴로운 결과를 내기 때문에 인(因)이라 하고, 네 가지 대상[緣]이 괴로운 결과를 내기 때문에 연(緣)이라 하고, 많지도 적지도 많은 인연들이 결과를 내기 때문에 생(生)이라 한다. 

觀五不受衆四行。

是八聖道分能到涅槃故道不顚倒故正。一切聖人去處故迹。愛見煩惱不遮故必到。

 5불수중(不受衆)을 관찰함에 네 가지 행이 있다. 

  이 8성도분은 능히 열반에 이르기 때문에 도이고, 뒤바뀌지 않기 때문에 바름[正]이며, 일체의 성인의 가는 곳이기 때문에 자취[迹]이며, 애견(愛見)의 번뇌가 가로막지 못하기 때문에 반드시 이른다고 한다. 

是三解脫門在九地中。

四禪未到地禪中間三無色。無漏性故。 

  이 세 가지 해탈문은 아홉 지위 가운데 있다.

곧 4선(禪)ㆍ미도지(未到地)ㆍ선중간(禪中間)ㆍ3무색(無色)이 그것으로, 무루의 성품이다.

或有說者。三解脫門一向無漏。三三昧或有漏或無漏。以是故三昧解脫有二名。

  어떤 이는 말하기를 “3해탈문은 오로지 무루이고, 3삼매는 혹은 유루이기도 하고 혹은 무루이기도 하다. 이런 까닭에 삼매와 해탈이라는 두 명칭이 있다”고 한다. 

如是說者在十一地。六地三無色欲界及有頂地。若有漏者繫在十一地。無漏者不繫。

  이와 같이 말한다면 11지(地)에도 있게 되니, 곧 6지(地)와 3무색(無色)과 욕계와 유정지(有頂地)6)가 그것이다. 

  만약에 유루라면 얽매여 11지에 있고, 무루라면 얽매이지 않는다.

喜根樂根捨根相應。初學在欲界中。成就在色無色界中。如是等成就不成就修不修。如阿毘曇中廣說。

  희근(喜根)?낙근(樂根)?사근(捨根)에 상응하는 초학자는 욕계에 속하고, 성취한 이는 색계와 무색계에 속한다. 이와 같이 성취함과 성취하지 못함, 닦음과 닦지 않음 등은 아비담에서 자세히 말한 바와 같다. 

復次有二種空義。觀一切法空。所謂衆生空法空。衆生空如上說。法空者諸法自相空。如佛告須菩提。色色相空受想行識識相空。

  다시 두 가지의 공한 이치가 있어서 일체법의 공함을 관찰하나니, 이른바 중생의 공함과 법의 공함이다. 

  중생의 공함은 위에서 말한 바와 같거니와 법의 공함이란 모든 법의 자상이 공하다는 것이다. 예컨대 부처님께서는 수보리에게 말씀하시기를 “색과 색의 모습은 공하며, 수?상?행?식과 식의 모습이 공하니라” 하셨다.

問曰。衆生空法不空是可信。法自相空是不可信。何以故。若法自相空則無生無滅。無生無滅故無罪無福。無罪無福故何用學道。

  [문] 중생이 공하고 법이 공하지 않다면 이는 믿을 수 있겠지만, 법의 자상이 공하다 함은 믿을 수 없다. 왜냐하면 만일 법의 자상이 공하다면 생도 멸도 없을 것이요, 생멸이 없다면 죄도 복도 없을 것이요, 죄와 복이 없다면 어찌 도를 배울 필요가 있겠는가?

答曰。有法空故有罪福。若無法空不應有罪福。何以故。若諸法實有自性則無可壞。性相不從因緣生。若從因緣生便是作法。若法性是作法則可破。若言法性可作可破。是事不然。性名不作法。不待因緣有。諸法自性有。自性有則無生者性先有故。若無生則無滅。生滅無故無罪福。無罪福故何用學道。若衆生有眞性者。則無能害無能利。自性定故。如是等人則不知恩義破業果報。法空中亦無法空相。汝得法空心著故而生是難。是法空諸佛以憐愍心。爲斷愛結除邪見故說。復次諸法實相能滅諸苦。是諸聖人眞實行處。若是法空有性者。說一切法空時。云何亦自空。若無法空性汝何所難。以是二空能觀諸法空。心得離諸法知世間虛誑如幻。如是觀空。若取是諸法空相。從是因緣生憍慢等諸結使言。我能知諸法實相。是時應學無相門。以滅取空相故。若於無相中生戲論。欲分別有所作著是無相。是時復自思惟。我爲謬錯。諸法空無相中。云何得相取相作戲論。是時應隨空無相行身口意。不應有所作。應觀無作相滅三毒。不應起身口意業。不應求三界中生身。如是思惟時。還入無作解脫門。是三解脫門。摩訶衍中是一法。以行因緣故。說有三種。觀諸法空是名空。於空中不可取相。是時空轉名無相。無相中不應有所作爲三界生。是時無相轉名無作。譬如城有三門。一人身不得一時從三門入。若入則從一門。諸法實相是涅槃城。城有三門。空無相無作。若人入空門不得是空。亦不取相。是人直入事辦故不須二門。若入是空門取相得是空。於是人不名爲門。通塗更塞。若除空相是時從無相門入。若於無相相。心著生戲論。是時除取無相相。入無作門。阿毘曇義中。是空解脫門。緣苦諦攝五衆。無相解脫門緣一法。所謂數緣盡。無作解脫門。緣三諦攝五衆。摩訶衍義中。是三解脫門。緣諸法實相。以是三解脫門觀世間卽是涅槃。何以故。涅槃空無相無作。世間亦如是。

  [답] 법의 공함이 있는 까닭에 죄와 복이 있다. 만일 법의 공함이 없다면 죄와 복이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만일 모든 법이 실로 자성이 있다면 가히 무너뜨릴 수 없으며, 성품과 모습이 인연을 따라 생기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인연을 따라 생긴 것이라면 이것은 만들어진 것[作法]이니, 만일 법성이 만들어진 것이라면 이는 무너뜨릴 수 있을 것이다. 

  만일 법성이 지을 수 있고, 파괴할 수 있는 것이라면 이는 옳지 않다. 성품이란 지어지지 않는 법을 이르는 말이니, 인연을 기다려서 있는 것은 아니다.

  모든 법에는 자성이 있고, 자성이 있다면 곧 날 것이 없으리니, 성품이 먼저부터 있기 때문이다. 

  만일 남이 없으면 멸함도 없고, 남과 멸함이 없기 때문에 죄와 복도 없고, 죄와 복이 없기 때문에 도를 배울 필요도 없다. 

  만일 중생에게 참성품이 있다면 능히 해칠 이도 없고 이롭게 할 수도 없나니, 자성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람이라면 은혜도 의리도 알지 못하고, 업도 과보도 파괴한다. 법의 공함 가운데에는 법이 공하다는 모습도 없거늘 그대는 법의 공함을 얻으려는 마음에 집착되었기 때문에 이러한 질문을 하는 것이다.

  이 법공은 부처님들께서 가엾이 여기는 마음으로 애욕의 매듭을 끊고 삿된 소견을 제해 주기 위하여 말씀하신 것이다

  또한 모든 법의 진실한 모습은 능히 모든 괴로움을 멸하나니, 이는 모든 성인들의 진실한 수행처이다. 만일 이 법공에 성품이 있다면, 일체법의 공을 말할 때 어떻게 자신마저도 공해질 수 있겠는가. 

  만일 법공의 성품이 없는 것이라면 그대는 무엇을 힐난하려는가?

  이 두 가지 공으로써 모든 법의 공함을 관찰하여 마음이 모든 법을 여읠 수 있고, 세간이 거짓되어 허깨비 같은 줄도 알게 된다. 이렇게 공을 관찰하고서 이 모든 법의 공한 모습을 집착한다면 이러한 인연으로 교만 등 번뇌를 일으키고는 말하기를 “나는 능히 모든 법의 실상을 아노라” 한다.

  이럴 때에는 무상문(無相門)을 배워야 하나니, 공의 모습을 취하려는 마음을 없애주기 때문이다. 

  만일 무상(無相) 가운데에서 희론을 일으키면 분별하여 지은 바 있기를 원해 이 무상에 집착하게 된다. 이때는 다시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착각했구나. 모든 법은 공하고 모습도 없거늘 어찌하여 모습을 얻고 모습에 집착되어 희론을 하는가. 이럴 때엔 공과 모습 없음을 따라 몸?입?뜻으로 짓는 바가 있게 하지 말아야 한다. 지음 없는 모습을 관찰하여 삼독을 멸하고, 몸?입?못의 업을 일으키지 않아야 하며, 삼계 안에 태어나기를 구하지 않아야 하리라.’

  이렇게 생각할 때에 도리어 지음 없는 해탈문에 들어가나니, 이 3해탈문은 마하연 가운데서는 동일한 법이건만 수행의 인연에 따라 세 가지가 있다고 말한다.

  모든 법이 공하다고 관찰함이 공이다. 공 가운데서는 모습을 취할 수 없나니, 이때 공은 모습 없음이라 바뀌어 불린다.

  모습 없음에는 어떤 작위(作爲)나 삼계에 태어날 일이 있을 수 없나니, 이때 모습 없음은 작위 없음[無作]이라 바뀌어 불린다. 

  비유하건대 성에 세 문이 있는데 한 사람이 동시에 세 문으로 들어갈 수는 없어서 들어가려면 한 문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과 같다. 모든 법의 진실한 모습이 열반의 성인데, 그 성에 공ㆍ모습 없음?지음 없음이라는 세 개의 문이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공의 문으로 들어가서 이 공을 얻거나 모습에 집착되지 않는다면 이 사람은 곧장 들어가 일을 마치기 때문에 나머지 두 문이 필요치 않다.

  그러나 이 공의 문으로 들어가서 모습을 취하여 이 공을 얻으면 이런 사람에게는 문이라 할 수 없고, 트인 길이 도리어 막힌다. 

  만일 공의 모습을 제하면 이때에 모습 없음의 문을 통해 들어가게 된다. 

  만일 모습 없음의 모습에 집착하는 마음을 내어 희론을 일으키면 이때에 무상의 모습을 제하고 지음 없음의 문[無作門]으로 들어가게 된다.

  아비담의 이치에서는 이 공의 해탈문은 고제(苦諦)를 반연하고 5중을 포섭한다. 모습 없음의 해탈문은 한 법을 반연하나니, 이른바 수효와 반연의 다함이다. 지음 없음의 해탈문은 세 가지 진리[三諦]를 반연하고 5중을 포섭한다.

  마하연의 이치에서는 이 3해탈문은 모든 법의 실상을 반연하며, 이 3해탈문으로써 세간이 곧 열반이라고 관찰한다. 왜냐하면 열반은 공ㆍ모습 없음?지음 없음이며, 세간 역시 그러하기 때문이다. 

 

問曰。如經說涅槃一門。今何以說三。

  [문] 경에서는 말하기를 “열반은 한 문이다” 하였는데 지금은 어찌하여 셋이라 하는가?

答曰。先已說。法雖一而義有三。

[답] 법은 하나지만 이치에는 세 가지가 있다고 먼저 이미 말했다. 

復次應度者有三種。愛多者見多者愛見等者。見多者爲說空解脫門。見一切諸法從因緣生無有自性。無有自性故空。空故諸見滅。愛多者爲說無作解脫門。見一切法無常苦從因緣生。見已心厭離愛卽得入道。愛見等者爲說無相解脫門。聞是男女等相無故斷愛。一異等相無故斷見。佛或一時說二門。或一時說三門。菩薩應遍學知一切道。故說三門。更欲說餘事故。三解脫門義略說。

  다시 제도해야 할 이에 세 종류가 있으니, 애욕이 많은 이와 사견이 많은 이와 애욕과 사견이 균등한 이이다. 

  사견이 많은 이에게는 공의 해탈문을 말해 준다. 곧 일체법이 인연으로부터 생겨서 자성이 없음을 보게 한다. 자성이 없으므로 공하고, 공하므로 모든 사견이 사라진다.

  애욕이 많은 이에게는 지음 없음의 해탈문을 말해 준다. 곧 일체법이 무상하고 괴로우며 인연을 따라 생긴다는 것을 보게 한다. 본 뒤에는 싫어하는 마음을 내어 애욕을 여의고 곧 도에 들어간다. 

  애욕과 사견이 균등한 이에게는 모습 없음의 해탈문을 말해 준다. 곧 이러한 남녀 등의 모습이 없다고 듣기 때문에 애욕을 끊고, 같음과 다름 등의 모습이 없다고 듣기 때문에 사견을 끊는다.   

 부처님께서는 일시에 두 문을 말씀하시고 혹은 일시에 세 문을 말씀하셨다. 보살은 두루 배워서 일체의 길을 알아야 하기 때문에 세 문을 말해 주시고, 다시 다른 일을 말씀하시기 위하여 3해탈문의 이치를 간략히 말씀하신 것이다.

  

四禪有二種。一者淨禪。二者無漏禪。云何名淨禪。有漏善五衆是。云何名無漏。無漏五衆。是四禪中所攝身口業是色法。餘殘非色法一切不可見無對。或有漏或無漏。有漏者善有漏五衆。無漏者無漏五衆。皆是有爲。有漏者色界繫。無漏者不繫。禪攝身業口業及心不相應。諸行是非心非心數法非心相應。禪攝受衆想衆及相應行衆。是心數法亦心相應。禪攝心意識但心。四禪或有隨心行。非受相應。或受相應非隨心行。或隨心行亦受相應。或非隨心行非受相應。隨心行非受相應者。四禪攝身業口業隨心行心不相應諸行及受。受相應非隨心行者。四禪攝心意識。隨心行亦受相應者。四禪攝想衆及相應行衆。非隨心行亦非受相應者。除四禪中攝隨心行心不相應諸行。餘殘心不相應。諸行想行相應亦如是。

4선(禪)에 두 종류가 있으니, 첫째는 정선(淨禪)이요, 둘째는 무루선(無漏禪)이다. 

  무엇을 정선이라 하는가? 곧 유루의 선한 5중(衆)이다. 

  무엇을 무루선이라 하는가? 곧 무루의 5중이다. 

  4선에 포섭되는 몸과 입의 업은 색법(色法)이요, 나머지 비색법은 일체가 볼 수도 없고 대할 수 없다.

  혹은 유루이기도 하고 무루이기도 하다. 

  유루라 함은 선한 유루의 5중이요, 무루라 함은 무루의 5중이다. 모두가 유위이다.

  유루는 색계에 얽매이고 무루는 얽매이지 않는다. 

  선(禪)은 몸ㆍ입의 업과 마음과 서로 응하지 않는 모든 행[心不相應行]을 포섭하나니, 이는 마음도 아니요, 마음에 속하는 법도 아니요, 마음과 서로 응하는 법도 아니다. 

  선은 느낌[受衆]과 생각[想衆]과 그리고 서로 응하는 법을 포섭하나니, 이는 마음에 속하는 법이며, 마음과 서로 응하는 법이기도 하다. 

  선은 마음?뜻?의식을 포섭하나니, 마음뿐이다. 

  4선(禪)에는 마음은 따르나 느낌에는 서로 응하지 않는 것도 있으며, 혹은 느낌과는 서로 응하나 마음은 따르지 않는 것도 있으며, 흑은 마음을 따르기도 하고 느낌과 서로 응하는 것도 있으며, 혹은 마음을 따르지도 않고 느낌과 서로 응하지도 않는 것도 있다. 

  마음은 따르나 느낌과는 서로 응하지 않는다 함은 4선이 몸ㆍ입의 업과 마음을 따르는 행과 마음과 서로 응하지 않는 모든 행 및 느낌[受]을 포섭한다는 것이다.

  느낌과는 서로 응하나 마음을 따르지 않는다 함은 4선이 마음?뜻?의식을 포섭함을 말한다.

  마음을 따르고 또한 느낌과도 서로 응한다 함은 4선이 생각[想衆] 및 상응하는 지어감[行衆]을 포섭함을 말한다.

  마음을 따르지도 않고 느낌과 서로 응하지도 않는다 함은 4선에 포섭되는 마음을 따르는 행과 마음에 서로 응하지 않는 모든 행을 제외한 나머지 마음에 서로 응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모든 행과 생각과 행과 상응하는 것 역시 이와 같다. 

是四禪中三禪非隨覺行。亦非觀相應。初禪或有隨覺行。非觀相應。或觀相應非隨覺行。或有隨覺行亦觀相應。或有非隨覺行非觀相應。隨覺行非觀相應者。初禪攝身業口業及隨覺行心不相應諸行及觀。觀相應非隨覺行者。謂覺隨覺行。亦觀相應者。覺觀相應諸心心數法。非隨覺行亦非觀相應者。除隨覺行心不相應諸行。餘殘心不相應諸行。四禪皆有因緣亦與因緣。四禪中初禪。或次第非與次第緣。或次第亦與次第緣。或非次第亦非與次第緣。次第非與次第緣者。未來世中欲生心心數法。

  4선ㆍ3선 가운데 2선은 각행(覺行)을 따르지도 않고 또한 관(觀)과 서로 응하지도 않는다. 초선은 각행을 따르나 관과 서로 응하지 않기도 하고, 혹은 관과 서로 응하나 각행을 따르지 않기도 하며, 혹은 각행을 따르면서 또한 관과 서로 응하기도 하며, 혹은 각행을 따르지도 않고 관과 서로 응하지 않기도 한다. 

  각행은 따르나 관과 서로 응하지 않는다 함은 초선이 신업ㆍ구업과 각을 따르는 행과 마음에 서로 응하지 않는 모든 행 및 관을 포섭함을 말한다.

  관과 서로 응하나 각의 행을 따르지는 않는다 함은 각(覺)을 이르는 말이다. 

  각의 행을 따르기도 하고 관과 서로 응하기도 한다 함은 각과 관이 서로 응하는 모든 마음과 마음에 속하는 법이다. 

  각의 행을 따르지도 않고, 관과 서로 응하지도 않는다 함은 각의 행을 따르는 것과 마음에 서로 응하지 않는 모든 지어감을 제외한 나머지 마음에 서로 응하지 않는 모든 지어감이다.

  4선에는 모두가 인연이 있고, 또한 인연이 되어 주기도 한다. 4선에서 초선은 차례대로 연(緣)이 되기도 하고 차례대로 연이 되어 주지 않기도 하며, 혹은 차례대로 연이 되기도 하고 차례대로 연이 되어 주기도 하며, 혹은 차례대로 연이 되지도 않고, 차례대로 연이 되어 주지 않기도 한다. 

  차례대로 연이 되기도 하고, 차례대로 연이 되어 주지 않는다 함은 미래에 내려는 마음과 마음에 속하는 법이요, 차례대로 연이 되고 또한 차례대로 연이 되어 준다 함은 과거와 현재의 마음과 마음에 속하는 법이요, 차례대로 연이 되지 않고 또한 차례대로 연이 되어 주지 않는다 함은 미래에 내려는 마음과 마음에 속하는 법을 제외한 나머지인 마음과 마음에 속하는 법으로  서 몸과 입의 업, 그리고 마음에 서로 응하지 않는 모든 지어감이다. 

  제2선과 제3선도 이와 같으며, 제4선의 차제연이 되고 또한 차제연이 되어 주지 않는다 함은 미래에 내려는 마음과 마음에 속하는 법, 그리고 무상정(無想定)을 이미 낸 것과 내려는 것이다. 

  차제연이 되고 또한 차제연이 되어 주기로 한다 함은 과거와 현재의 마음과 마음에 속하는 법이다. 

  차례대로 연이 되고 또한 차례대로 연이 되어 주지 않는다 함은 미래에 내려는 마음과 마음에 속하는 법을 제외한 나머지 미래의 마음과 마음에 속하는 법, 그리고 다음에 일어날 마음과 마음에 서로 응하지 않는 모든 지어감을 제외한 나머지 마음에 서로 응하지 않는 모든 지어감과 몸?입의 업들이다. 

  4선에 포섭되는 몸 입의 업, 그리고 마음에 서로 응하지 않는 모든 지어감은 연이 되어 주지만 연은 되지 않고, 나머지는 연도 되고 연이 되어 주기도 한다. 

  이 4선은 증상연(增上緣)이기도 하고 증상연이 되어 주기도 하나니, 이러한 일들은 아비담에서 자세히 분별한 것과 같다. 

  보살이 선의 방편과 선의 모습과 선의 가닥[支]을 얻는 일은 선바라밀에서 이미 자세히 말한 바이다. 

次第亦與次第緣者。過去現在心心數法。非次第亦不與次第緣者。除未來世欲生心心數法。餘殘未來世中心心數法。身業口業及心不相應諸行。第二第三禪亦如是。第四禪次第不與次第緣者。未來世中欲生心心數法。及無想定若生若欲生。次第亦與次第緣者。過去現在心心數法。非次第亦非與次第緣者。除未來世中欲生心心數法。餘殘未來世心心數法。除心次第心不相應諸行。餘殘心不相應諸行。及身業口業。四禪中攝身業口業及心不相應諸行與緣非緣餘殘亦緣亦與緣。是四禪亦增上緣。亦與增上緣。如是等阿毘曇分中廣分別。菩薩得禪方便及禪相禪支禪波羅蜜中已廣說。

  각의 행을 따르기도 하고 관과 서로 응하기도 한다 함은 각과 관이 서로 응하는 모든 마음과 마음에 속하는 법이다. 

  각의 행을 따르지도 않고, 관과 서로 응하지도 않는다 함은 각의 행을 따르는 것과 마음에 서로 응하지 않는 모든 지어감을 제외한 나머지 마음에 서로 응하지 않는 모든 지어감이다.

  4선에는 모두가 인연이 있고, 또한 인연이 되어 주기도 한다. 4선에서 초선은 차례대로 연(緣)이 되기도 하고 차례대로 연이 되어 주지 않기도 하며, 혹은 차례대로 연이 되기도 하고 차례대로 연이 되어 주기도 하며, 혹은 차례대로 연이 되지도 않고, 차례대로 연이 되어 주지 않기도 한다. 

  차례대로 연이 되기도 하고, 차례대로 연이 되어 주지 않는다 함은 미래에 내려는 마음과 마음에 속하는 법이요, 차례대로 연이 되고 또한 차례대로 연이 되어 준다 함은 과거와 현재의 마음과 마음에 속하는 법이요, 차례대로 연이 되지 않고 또한 차례대로 연이 되어 주지 않는다 함은 미래에 내려는 마음과 마음에 속하는 법을 제외한 나머지인 마음과 마음에 속하는 법으로 

  

 

[781 / 2071] 쪽 

  서 몸과 입의 업, 그리고 마음에 서로 응하지 않는 모든 지어감이다. 

  제2선과 제3선도 이와 같으며, 제4선의 차제연이 되고 또한 차제연이 되어 주지 않는다 함은 미래에 내려는 마음과 마음에 속하는 법, 그리고 무상정(無想定)을 이미 낸 것과 내려는 것이다. 

  차제연이 되고 또한 차제연이 되어 주기로 한다 함은 과거와 현재의 마음과 마음에 속하는 법이다. 

  차례대로 연이 되고 또한 차례대로 연이 되어 주지 않는다 함은 미래에 내려는 마음과 마음에 속하는 법을 제외한 나머지 미래의 마음과 마음에 속하는 법, 그리고 다음에 일어날 마음과 마음에 서로 응하지 않는 모든 지어감을 제외한 나머지 마음에 서로 응하지 않는 모든 지어감과 몸?입의 업들이다. 

  4선에 포섭되는 몸 입의 업, 그리고 마음에 서로 응하지 않는 모든 지어감은 연이 되어 주지만 연은 되지 않고, 나머지는 연도 되고 연이 되어 주기도 한다. 

  이 4선은 증상연(增上緣)이기도 하고 증상연이 되어 주기도 하나니, 이러한 일들은 아비담에서 자세히 분별한 것과 같다. 

  보살이 선의 방편과 선의 모습과 선의 가닥[支]을 얻는 일은 선바라밀에서 이미 자세히 말한 바이다. 

 

 

問曰。是般若波羅蜜論議中。但說諸法相空。菩薩云何於空法中能起禪定。

  [문] 이 반야바라밀의 논리에서는 모든 법의 공한 모습만을 말했거늘

보살은 어찌하여 공한 법 가운데서 능히 선정을 일으키는가?

 

答曰。菩薩知諸五欲及五蓋從因緣生無自性空無所有。捨之甚易。

  [답] 보살이 5욕(欲)과 5개(蓋)가 모두 인연 따라 생긴 것이어서 자성이 없으며, 공하여 있는 바가 없는 줄을 안다면, 그것을 버리기가 매우 쉽다.

衆生顚倒因緣故。著此少弊樂。而離禪中深妙樂。

菩薩爲是衆生故。起大悲心修行禪定繫心緣中離五欲除五蓋入大喜初禪。

  중생들은 뒤바뀐 인연 때문에 이러한 사소하고 보잘것없는 즐거움에 집착되어 선정 가운데의 깊고도 묘한 즐거움을 여읜다.

보살은 이러한 중생들을 위하기 때문에 대비심을 일으켜 선정을 닦나니, 그는 마음을 대상에 매어 두고 5욕을 여의고 5개를 제거해 커다란 기쁨이 있는 초선에 들어간다. 

滅覺觀攝心。深入內淸淨得微妙喜。入第二禪。

  다시 각관을 멸하고 마음을 거두어 깊은 내면의 청정함에 들어가 미묘한 기쁨을 얻는 제2선에 들어간다.

以深喜散定故。離一切喜得遍滿樂入第三禪。

  다시 깊은 기쁨이 집중을 산란시키기에 일체의 기쁨을 여의고 두루 가득한 즐거움을 얻는 제3선에 들어간다. 

離一切苦樂。除一切憂喜及出入息。以淸淨微妙捨而自莊嚴。入第四禪。

다시 일체의 괴로움과 즐거움을 여의고 일체의 근심과 기쁨 및 들고나는 호흡을 제하여 청정미묘한 무관심[捨]으로 스스로를 장엄하는 제4선에 들어간다. 

是菩薩雖知諸法空無相。以衆生不知故。以禪相敎化衆生。

이 보살은 모든 법이 공하여 모습이 없는 줄 알지만 중생들이 알지 못하기 때문에 선의 모습으로 중생을 교화하는 것이다.

若實有諸法空。是不名爲空。亦不應捨五欲而得禪。無捨無得故。今諸法空相亦不可得。不應作是難言。

만일 모든 법의 공함이 실제로 있다면 이는 공이라 이름하지 못한다. 또한 5욕을 버리고서 선을 얻을 수도 없으니, 버릴 수도 없고 얻을 수 없는 까닭에 지금 모든 법의 공한 모습도 얻을 수 없는 것이다. 

若諸法空云何能得禪。  

  그러므로 “만일 모든 법이 공하다면 어떻게 능히 선을 얻을 수 있겠는가”라고 묻지 말아야 할 것이다. 

復次是菩薩不以取相愛著故。行禪如人服藥欲以除病不以美也。爲戒淸淨智慧成就故行禪。

  또한 다시 이 보살은 모습을 취해 애착하여 선을 행하는 것이 아니다. 마치 사람이 약을 먹는 것과 같으니, 병을 제하기 위함일 뿐 아름다워지기 위해서가 아니다. 곧 계를 청정히 하고 지혜를 성취하기 위한 까닭에 선을 행하는 것이다.

菩薩於一一禪中。行大慈觀空。於禪無所依止。以五欲麤誑顚倒故。以細微妙虛妄法治。譬如有毒能治諸毒。

  보살은 하나하나의 선 가운데에서 대자(大慈)를 행하고 공을 관하면서도 선에 의지하지 않는다. 5욕이 거칠고 거짓되고 뒤바뀐 까닭에 미묘하고 허망하다는 법으로 다스리니, 비유하건대 독으로써 능히 독을 다스리는 것과 같다.

 

kabc.dongguk.edu/content/view?itemId=ABC_IT&cate=bookName&depth=3&upPath=C&dataId=ABC_IT_K0549_T_019

 

단락/경판 - 불교학술원 아카이브

ABC_IT_K0549_T_019 URL복사 통합뷰어 014_0683_b_01L대지도론 제19권 014_0683_b_01L大智度論釋初品中三十七品義第三十一卷第十九 통합뷰어 용수 지음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김성구 번역/김형준 개역 014_

kabc.dongguk.edu

 

大智度論釋初品中三十七品義第三十一 (卷第十九)

31. 초품 중 삼십칠품(三十七品)의 뜻을 풀이함

김성구 번역/김형준 개역

 

【經】菩薩摩訶薩以不住法。住般若波羅蜜中。不生故應具足四念處四正懃四如意足五根五力七覺分八聖道分。

【經】 보살마하살은 머무르지 않는 법으로써 반야바라밀 가운데 머무르되 [머문다는 생각을] 내지 않는 까닭에 4념처(念處)‧4정근(正勤)‧4여의족(如意足)‧5근(根)‧5력(力)‧7각분(覺分)‧8성도분(聖道分)을 구족한다.

【論】問曰。三十七品。是聲聞辟支佛道。六波羅蜜是菩薩摩訶薩道。何以故於菩薩道中說聲聞法。

【論】 【문】 37품은 성문ㆍ벽지불의 도요, 6바라밀은 보살마하살의 도이거늘 무슨 까닭에 보살의 도에서 성문의 법을 말하는가?

答曰。菩薩摩訶薩。應學一切善法一切道。如佛告須菩提。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悉學一切善法一切道。所謂乾慧地乃至佛地。是九地應學而不取證。佛地亦學亦證。

【답】 보살마하살은 일체의 착한 법과 일체의 도를 배워야 한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시기를 “보살마하살이 반야바라밀을 행하려면 일체의 착한 법과 일체의 도를 모두 배운다. 이른바 건혜지(乾慧地)1) 내지는 불지(佛地)이다”라고 하신 것과 같다. 이 아홉 지위는 마땅히 배우되 깨달음[證]을 취해서는 안 된다. 불지는 배우기도 하고 깨닫기도 한다.

復次何處說三十七品。但是聲聞辟支佛法。非菩薩道。是般若波羅蜜摩訶衍品中。佛說四念處乃至八聖道分。是摩訶衍三藏中。亦不說三十七品獨是小乘法。

또한 어디에서 37품이 성문과 벽지불만의 법이요, 보살의 도가 아니라 하였는가? 이 『반야바라밀경』의 「마하연품(摩詞衍品)」 가운데 부처님께서는 4념처로부터 8성도분에 이르기까지를 말씀하셨으며, 이 마하연의 삼장 가운데에도 역시 37품이 오직 소승만의 법이라고는 말하지 않는다.

佛以大慈故。說三十七品涅槃道。隨衆生願隨衆生因緣各得其道。欲求聲聞人。得聲聞道。種辟支佛善根人。得辟支佛道。求佛道者得佛道。隨其本願諸根利鈍。有大悲無大悲。譬如龍王降雨普雨天下。雨無差別。大樹大草根大故多受。小樹小草根小故少受。

부처님께서 대자대비하신 까닭에 37품의 열반도(涅槃道)를 말씀하시어 중생들의 서원과 중생들의 인연에 따라 제각기 도를 얻게 하시니, 성문을 구하는 이는 성문의 도를 얻게 하고, 벽지불의 선근을 심은 이는 벽지불의 도를 얻게 하고, 불도를 구하는 이는 불도를 얻게 하여 그들의 본원(本願)과 근기의 날카롭고 둔함에 따라 크게 가엾이 여김이 있기도 하고 혹은 가엾이 여김이 없기도 하다.
비유하건대 용왕이 비를 내려 온 천하를 적실 때 비에는 차별이 없지만 큰 나무나 큰 풀은 뿌리가 큰 까닭에 많이 받고 작은 나무나 작은 풀은 뿌리가 작은 까닭에 적게 받는 것과 같다.

問曰。三十七品雖無處說獨是聲聞辟支佛道非菩薩道。以義推之可知。菩薩久住生死往來五道。不疾取涅槃。是三十七品但說涅槃法。不說波羅蜜。亦不說大悲。以是故知非菩薩道。

【문】 37품에 관해서는 어디에서도 비록 성문ㆍ벽지불만의 도이지 보살의 도가 아니라고 말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의미로써 추측하건대 보살은 오랫동안 생사에 머물러 다섯 길을 왕래하면서 신속히 열반을 취하지 않거늘 이 37품은 열반의 법만을 말하고 바라밀을 말하거나 대비를 말하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보살의 도가 아님을 알 수 있다.

答曰。菩薩雖久住生死中。亦應知實道非實道是世間是涅槃。知是已立大願。衆生可愍。我當拔出著無爲處。以是實法行諸波羅蜜能到佛道。菩薩雖學雖知是法。未具足六波羅蜜故不取證。如佛說。譬如仰射空中箭箭相柱不令落地。菩薩摩訶薩亦如是。以般若波羅蜜箭。射三解脫門空中。復以方便箭射般若箭。令不墮涅槃地。

【답】 보살이 비록 오랜 동안 생사에 머물지만, 마땅히 진실한 도와 진실치 않은 도를 알고 세간과 열반을 알아야 한다.
이것을 안 뒤에는 큰 서원을 세우되 “중생들은 가엾도다. 내가 마땅히 건져내서 무위의 경지로 데려가리라” 하고는 이러한 진실한 법으로 모든 바라밀을 행하여 능히 불도(佛道)에 이른다.
보살이 비록 이 법을 배우거나 알았더라도 아직 6바라밀을 갖추지 못한 까닭에 깨달음을 취하지 않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비유하건대 허공을 우러러 활을 쏠 때, 화살마다 서로 버티게 하면 땅에 떨어지지 않을 수 있는 것과 같다” 하셨다. 보살마하살도 그와 같아서 반야바라밀의 화살로써 3해탈문(解脫門)의 허공에 쏘아올리고, 다시 방편의 화살로써 반야의 화살을 쏘아 올려서 열반의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여야 한다” 하셨다.

復次若如汝所說。菩薩久住生死中。應受種種身心苦惱。若不得實智。云何能忍是事。以是故菩薩摩訶薩求是道品實智時。以般若波羅蜜力故。能轉世間爲道果涅槃。何以故。三界世間。皆從和合生。和合生者無有自性。無自性故是則爲空。空故不可取。不可取相是涅槃。以是故說菩薩摩訶薩。不住法住般若波羅蜜中。不生故應具足四念處。

또한 그대가 말하듯이 보살이 오랜 동안 생사에 머물러 응당 몸과 마음의 갖가지 고뇌를 받아야 한다면, 만일 진실한 지혜를 얻지 못했다면 어찌 능히 그런 일을 참겠는가? 그러므로 보살마하살은 이 도품(道品)의 진실한 지혜를 구할 때, 반야바라밀의 힘으로써 능히 세간을 바꾸어 도과의 열반으로 삼는 것이다.
왜냐하면 삼계의 세간이 모두가 화합으로부터 생긴 까닭이다. 화합으로 생긴 것은 자성이 없고, 자성이 없기에 공하고, 공하기에 취할 수 없으니, 취할 수 없는 모습이 곧 열반이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보살은 머무르지 않는 법으로 반야바라밀 가운데 머무르되 머문다는 생각을 내지 않는 까닭에 마땅히 4념처를 구족한다” 했다.

復次聲聞辟支佛法中。不說世間卽是涅槃。何以故。智慧不深入諸法故。菩薩法中說世間卽是涅槃。智慧深入諸法故。如佛告須菩提。色卽是空空卽是色。受想行識卽是空。空卽是受想行識。空卽是涅槃。涅槃卽是空。中論中亦說。

또한 그대가 말하듯이 보살이 오랜 동안 생사에 머물러 응당 몸과 마음의 갖가지 고뇌를 받아야 한다면, 만일 진실한 지혜를 얻지 못했다면 어찌 능히 그런 일을 참겠는가? 그러므로 보살마하살은 이 도품(道品)의 진실한 지혜를 구할 때, 반야바라밀의 힘으로써 능히 세간을 바꾸어 도과의 열반으로 삼는 것이다.
왜냐하면 삼계의 세간이 모두가 화합으로부터 생긴 까닭이다. 화합으로 생긴 것은 자성이 없고, 자성이 없기에 공하고, 공하기에 취할 수 없으니, 취할 수 없는 모습이 곧 열반이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보살은 머무르지 않는 법으로 반야바라밀 가운데 머무르되 머문다는 생각을 내지 않는 까닭에 마땅히 4념처를 구족한다” 했다.

 

 涅槃不異世間  世間不異涅槃

 涅槃際世間際  一際無有異故

열반이 세간과 다르지 않고
세간이 열반과 다르지 않으니
열반의 경계와 세간의 경계는
한 경계이어서 차이가 없다.

菩薩摩訶薩得是實相故。不厭世間不樂涅槃。三十七品是實智之地。

보살마하살은 이러한 실상(實相)을 얻는 까닭에 세간을 싫어하지 않고 열반을 좋아하지도 않나니, 37품(品)이 진실한 지혜의 길이다.

問曰。四念處則能具足得道何以說三十七。若汝以略說故四念處。廣說故三十七。此則不然。何以故。若廣應無量。

【문】 4념처만으로도 도를 갖추어 얻을 수 있다면, 무엇 때문에 37품을 말씀하셨는가? 만일 그대가 말하기를 “간략히 말하기 위하여 4념처이고, 자세히 말하기 위하여 37품이다”라고 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만일 자세히 말해야 한다면 한량이 없어야 되기 때문이다.

答曰。四念處雖具足能得道。亦應說四正懃等諸法。何以故衆生心種種不同。結使亦種種。所樂所解法亦種種。佛法雖一實一相。爲衆生故。於十二部經八萬四千法聚。作是分別說。若不爾初轉法輪。說四諦則足。不須餘法。

【답】 4념처가 구족되어 비록 능히 도를 얻지만, 또한 4정근(精勤) 등의 모든 법도 말해야 된다. 왜냐하면 중생들의 마음은 갖가지로 동일하지 않고 번뇌도 또한 갖가지이며, 원하는 바도 이해하는 바도 역시 갖가지이기 때문이다.
불법이 비록 하나의 진실, 하나의 모습이기는 하나 중생을 위하는 까닭에 12부경(部經)2), 8만 4천의 법무더기[法聚]에 대해 이렇게 분별하여 말씀하신 것이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처음에 법륜(法輪)을 굴리실 때 4성제(聖諦)를 말씀하심으로써 족했을 것이다. 무엇 때문에 다른 법이 필요하겠는가.

以有衆生厭苦著樂。爲是衆生故。說四諦身心等諸法皆是苦無有樂。是苦因緣由愛等諸煩惱。是苦所盡處名涅槃。方便至涅槃。是爲道。

하지만 중생들이 괴로움을 싫어하고 즐거움에 집착되었기에 이런 중생들을 위하여 4성제를 말씀하시어 “몸과 마음 등의 모든 법은 모두가 괴로움이어서 즐거움이 없다. 이 괴로움의 인연은 애착[愛] 등의 모든 번뇌에서 유래한다. 이 괴로움이 다한 곳을 열반이라 하며, 방편으로 열반에 이르니 이것을 일컬어 도라 한다” 하셨다.

有衆生多念亂心顚倒故。著此身受心法中。作邪行。爲是人故說四念處。如是等諸道法。各各爲衆生說。譬如藥師不得以一藥治衆病。衆病不同藥亦不一。佛亦如是隨衆生心病種種。以衆藥治之。

이렇듯 갖가지 도법은 각각 중생을 위하여 설한 것이다. 비유하건대 약사가 한 가지 약으로 뭇 병을 고칠 수 없으니, 병이 같지 않다면 약 또한 하나가 되지 않는 것과 같다.
부처님도 그와 같아서 중생들의 마음의 병이 갖가지임을 따라서 뭇 약으로써 그것을 다스리신다.

或說一法度衆生。如佛告一比丘。非汝物莫取。比丘言。知已世尊。佛言。云何知。比丘言。諸法非我物不應取。

혹은 한 법으로 중생을 제도하시니, 부처님께서 어떤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네 물건이 아니거든 가지지 말라.”
비구가 대답했다.
“알고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 다시 물으셨다.
“어떻게 알았느냐?”
비구가 대답했다.
“모든 법이 내 것이 아니기에 가지지 말아야 하옵니다.”

或以二法度衆生。定及慧。或以三法戒定慧。或以四法四念處。

혹은 두 가지 법으로 중생을 제도하시니, 선정ㆍ지혜요, 혹은 세 가지 법으로 중생을 제도하시니, 계율ㆍ선정ㆍ지혜요, 혹은 네 가지 법으로 중생을 제도하시니, 4념처이다.

是故四念處雖可得道。餘法行異分別多少異觀亦異。以是故應說四正懃等諸餘法。

그러므로 비록 4념처로써 도를 얻을 수는 있으나, 다른 법의 행(行)이 다르고 분별하는 수량[多少]이 다르다면 관법 역시 다른 것이다. 그러므로 마땅히 4정근 등 다른 법도 말해야 하는 것이다.

復次諸菩薩摩訶薩信力大故。爲度一切衆生故。是中佛爲一時說三十七品。若說異法道門十想等。皆攝在三十七品中。是三十七品衆藥和合。足療一切衆生病。是故不用多說。如佛雖有無量力但說十力。於度衆生事足。

또한 모든 보살마하살들은 믿음의 힘이 크고 일체 중생을 제도하려는 까닭에 여기에서 부처님께서는 일시에 37품을 말씀하신 것이다.
만일 다른 법의 도문(道門)이나 10상(想) 등을 말하더라도 모두가 37품 가운데 포함된다. 이 37품의 뭇 약이 화합해서 일체 중생의 병을 치유하기에 족한 것이다.
그러므로 더 이상 말씀하실 필요가 없으니, 예컨대 부처님에게는 비록 한량없는 힘이 있으시나 다만 10력(力)만 말해도 중생을 제도하기에 족한 것이다.

是三十七品。十法爲根本。何等十。信戒思惟精進念定慧除喜捨。信者信根信力。戒者正語正業正命。精進者四正懃精進根精進力精進覺正精進。念者念根念力念覺正念。定者四如意足定根定力定覺正定。慧者四念處慧根慧力擇法覺正見。

이 37품은 10법으로 근본을 삼는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곧 믿음[信]ㆍ계율[戒]ㆍ사유(思惟)ㆍ정진(精進)ㆍ기억[念]ㆍ선정[定]ㆍ지혜[慧]ㆍ제함[除]ㆍ기쁨[喜]ㆍ버림[捨]3)이다.
믿음이라 함은 신근(信根)과 신력(信力)이요, 계율이라 함은 정어(正語)와 정업(正業)과 정명(正命)이요, 정진이라 함은 4정근과 정진근(精進根)과 정진력(精進力)과 정진각지(精權覺支)와 정정진(正精進)이요, 기억이라 함은 염근(念根)과 염력(念力)과 염각지(念覺支)와 정념(正念)이요, 선정이라 함은 4여의족과 정근(定根)과 정력(定力)과 정각[定覺支]과 정정(正定)이요, 지혜라 함은 4념처(念處)와 혜근(慧根)과 혜력(慧力)과 택법각지(擇法覺支)와 정견(正見)이다.

是諸法念隨順智慧緣中正住。是時名念處。破邪法正道中行故。名正懃。攝心安隱於緣中故。名如意足。軟智心得故名根利。智心得故名力。修道用故名覺。見道用故名道。

이러한 모든 법의 생각[念]이 지혜에 수순해서 대상[緣] 가운데 머문다면, 이러한 때를 염처(念處)라 한다.
삿된 법을 깨뜨리고 바른 도 가운데에 행하는 까닭에 정근(正勤)이라 하고, 마음을 안온하게 대상 가운데서 거두는 까닭에 여의족(如意足)이라 하고, 부드러운 지혜를 마음으로 얻는 까닭에 근(根)이라 하고, 날카로운 지혜를 마음으로 얻는 까닭에 힘[力]이라 하고, 수도[修道位]의 작용인 까닭에 각(覺)이라 하고, 견도[見道位]의 작용이기 때문에 도(道)라 한다.

問曰。應先說道。何以故行道然後得諸善法。譬如人先行道然後得所至處。今何以顚倒先說四念處。後說八正道。

【문】 도를 먼저 말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왜냐하면 도를 행한 뒤에야 모든 착한 법을 얻기 때문이다. 비유하건대 사람이 길을 간 뒤에야 갈 곳에 이르게 되는 것과 같다. 그런데 이제는 어찌하여 뒤바꿔 4념처를 먼저 말하고, 나중에 8정도(正道)를 말하는가?

答曰。不顚倒也。三十七品是初欲入道時名字。如行者到師所聽道法時。先用念持是法。是時名念處。持已從法中求果故。精進行。是時名正懃。多精進故心散亂。攝心調柔故名如意足。

【답】 뒤바뀌지 않았으니, 37품은 처음으로 도에 들고자 할 때의 이름이다. 마치 수행자가 스승에게 가서 도법(道法)을 듣는 것과도 같다. 먼저 기억하여 이 법을 간직하나니, 이때를 염처라 한다. 간직한 뒤에는 그 법 가운데서 과위를 구하는 까닭에 정진하나니, 이때를 정근이라 한다.
정진을 많이 하기 때문에 마음이 산란한데 마음을 거두어 부드럽게 조절하는 까닭에 여의족이라 한다.

心調柔已生五根。諸法實相甚深難解。信根故能信是名信根。不惜身命一心求道。是名精進根。常念佛道不念餘事是名念根。常攝心在道是名定根。觀四諦實相是名慧根。

마음이 길들여진 뒤에는 5근이 생겨난다. 모든 법의 실상은 매우 깊어서 이해하기 어렵지만 신근(信根) 때문에 능히 믿게 되니, 이를 신근(信根)이라 하고,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고 일심으로 도를 구하니, 이를 정진근(精進根)이라 하고, 항상 불도(佛道)만을 생각하고 다른 일을 생각하지 않으니, 이를 염근(念根)이라 하고, 항상 마음을 거두어 도에 두니, 이를 정근(定根)이라 하고, 4제의 진실한 모습을 관찰하니, 이를 혜근(慧根)이라 한다.

是五根增長能遮煩惱。如大樹力能遮水。是五根增長時能轉入深法。是名爲力。

이 5근이 늘어나 능히 번뇌를 가리나니, 마치 큰 나무의 힘이 능히 홍수를 막는 것과 같다. 이 5근이 늘어나면 능히 깊은 법으로 옮겨 들어가나니, 이를 힘[力]이라 한다.

得力已分別道法有三分。擇法覺精進覺喜覺。此三法行道時。若心沒能令起除覺定覺捨覺。此三法若行道時。心動散能攝令定念覺在二處。能集善法能遮惡法。如守門人有利者令入。無益者除却。若心沒時念三法起。若心散時念三法。攝無覺實覺。此七事能到故名爲分。

힘을 얻은 뒤에는 도법(道法)을 분별하는데 세 부분이 있다. 택법각지[擇法覺]와 정진각지[精進覺]와 희각지(喜覺支) 등 이 세 법은 도를 행할 때에 마음이 침몰하면 제각지(除覺支)ㆍ정각지(定覺支)ㆍ사각지(捨覺支)를 일으키고, 다시 이 세 법은 도를 행할 때에 마음이 흔들리고 흩어지면 능히 거두어서 정ㆍ염각지를 두 곳에 있게 하며, 능히 착한 법을 모으고 악한 법을 막는다.
마치 문을 지키는 사람이 이익이 되는 이는 들어오게 하고, 이익이 없는 이는 막아서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것과 같다.
마음이 침몰할 때엔 염(念)의 세 가지 법을 일으키고, 마음이 산란할 때에는 염의 세 가지 법은 무각(無覺)과 실각(實覺)에 포섭된다.
이 일곱 가지로 능히 이르게 되기 때문에 부분[分]이라 한다.

得是法安隱具足已。欲入涅槃無爲城故行是諸法。是時名爲道。

이 법을 얻어서 안온함이 구족한 뒤에는 열반의 무위성(無爲城)에 들고자 하기 때문에 이 모든 법을 행하나니, 이때를 도라 한다.

 

問曰何等是四念處

【문】 무엇이 4념처인가?

身念處法念處是爲四念處

【답】 신념처(身念處)와 수(受)ㆍ심(心)ㆍ법(法)의 염처이니, 이것이 4념처이다.

觀四法四種。觀身不淨。觀受是苦。觀心無常。觀法無我。是四法雖各有四種。身應多觀不淨受多觀苦心多觀無常法多觀無我。何以故。凡夫人未入道時。是四法中邪行起四顚倒。諸不淨法中淨顚倒。苦中樂顚倒。無常中常顚倒。無我中我顚倒。破是四顚倒故。說是四念處。破淨倒故說身念處。破樂倒故說受念處。破常倒故說心念處。破我倒故說法念處。以是故說四不少不多。

네 가지 법을 네 종류로 관찰하니, 곧 몸이 부정하다고 관찰하고, 느낌은 괴롭다고 관찰하고, 마음은 무상하다고 관찰하고, 법은 나가 없다고 관찰한다.
이 네 가지 법이 각각 네 가지 법을 갖추고 있으나, 몸에서는 부정을 많이 관하고, 느낌에서는 괴로움을 많이 관하고, 마음에서는 무상함을 많이 관하고, 법에서는 나 없음을 많이 관해야 한다.
그것은 왜냐하면 범부가 아직 도에 들지 않았을 때 이 네 가지 법에서 삿된 행을 하거나 네 가지 뒤바뀐 생각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모든 부정한 법에 대하여 깨끗하다는 뒤바뀐 생각을 일으키며, 괴로움에 대하여 즐겁다는 뒤바뀐 생각, 무상함에 대하여 항상하다는 뒤바뀐 생각, 나가 없는데 대하여 나라는 뒤바뀐 생각을 일으킨다.
이런 네 가지 뒤바뀜을 깨뜨리기 위한 까닭에 이 4념처를 말하는 것이다.
깨끗하다는 뒤바뀐 생각을 깨뜨리려는 까닭에 신념처(身念處)를 말하고, 즐겁다는 뒤바뀐 생각을 깨뜨리려는 까닭에 수념처(受念處)를 말하고, 항상하다는 뒤바뀐 생각을 깨뜨리려는 까닭에 심념처(心念處)를 말하고, 나가 있다는 뒤바뀐 생각을 깨뜨리려는 까닭에 법념처(法念處)를 말한다.
이런 까닭에 넷을 말하니, 이는 모자라지도 많지도 않은 것이다.

問曰。云何得是四念處。

【문】 어찌하여야 이 4념처를 얻는가?

答曰行者依淨戒住一心行精進觀身五種不淨相何等五一者生處不淨二者種子不淨三者自性不淨四者自相不淨五者究竟不淨

【답】 수행자는 청정한 계에 의하여 일심으로 정진을 행해 몸의 다섯 가지 부정함을 관찰한다. 무엇이 다섯 가지인가? 첫째는 태어나는 곳이 부정함[生處不淨]이요, 둘째는 종자가 부정함[種子不淨]이요, 셋째는 자성이 부정함[自性不淨]이요, 넷째는 자상이 부정함[自相不淨]이요, 다섯째는 끝까지 부정함[究竟不淨]이다.

云何名生處不淨

무엇이 태어나는 곳이 부정한 것인가?

頭足腹脊脇肋。諸不淨物和合名爲女身。內有生藏熟藏屎尿不淨。外有煩惱業因緣風。吹識種令入二藏中間。若八月若九月如在屎尿坑中。如說。

머리ㆍ발ㆍ배ㆍ등ㆍ옆구리ㆍ갈비 등 모든 부정한 물건이 화합된 것을 여자의 몸이라 하는데, 안으로는 생장(生藏)과 숙장(熟藏)과 오줌ㆍ똥 등 부정한 것이 있고, 밖으로는 번뇌와 업인연의 바람이 식의 종자[識種]를 불어 두 장[藏] 사이로 들어가서 8개월이나 9개월 동안 있게 하니, 마치 분뇨 구덩이 사이에 있는 것 같다.
이런 게송이 있다.

 是身爲臭穢  不從花間生

 亦不從瞻蔔  又不出寶山

이 몸은 냄새 나고 더러운 것
꽃 사이에서 난 것도 아니요
첨복(瞭舊)4)에서 난 것도 아니며
보배산[寶山]에서 난 것도 아니네.

是名生處不淨。

이것을 태어나는 곳이 부정하다 한다.

種子不淨者。父母以妄想邪憶念風吹婬欲火故。血髓膏流熱變爲精。宿業行因緣識種子。在赤白精中住。是名身種子。如說。

종자가 부정하다 함은 부모가 망상과 삿된 생각[邪憶念]의 바람이 음욕의 불에 분 까닭에 피와 골수가 흐르고 열이 변하여 정자[精]가 되었는데, 숙업행의 인연인 식의 종자는 붉은 정[赤精]과 흰 정[白精] 사이에 머무르니, 이를 몸의 종자라 한다.
이런 게송이 있다.

 

 是身種不淨  非餘妙寶物

 不由淨白生  但從尿道出

이 몸의 종자는 부정한 것이니
별달리 묘한 보물이 아니네.
맑고 깨끗함에서 생긴 것이 아니라
오직 요도(尿道)를 따라 나온 것일 뿐이네.

是名種子不淨。

이를 종자가 부정하다 한다.

自性不淨者。從足至頂四邊薄皮。其中所有不淨充滿。飾以衣服澡浴花香。食以上饌衆味餚膳。經宿之間皆爲不淨。假令衣以天衣。食以天食。以身性故亦爲不淨。何況人衣食。如說。

자성이 부정하다 함은 발에서부터 정수리에 이르기까지 사방이 얇은 가죽으로 덮였고, 그 속은 부정한 것으로 가득 찬 것을 말한다. 의복으로 장식하고 목욕시키고 꽃과 향으로 치장하며, 최상의 반찬과 온갖 맛난 음식을 먹이나 하룻밤 사이에 모두가 부정한 것이 되고 만다.
설사 하늘의 옷을 입히거나 하늘의 음식을 먹이더라도 몸의 성질 때문에 역시 더러워질 것이거늘 하물며 인간의 의식(衣食)이겠는가.
이런 게송이 있다.

 地水火風質  能變除不淨

 傾海洗此身  不能令香潔

흙ㆍ물ㆍ불ㆍ바람의 성질은
부정한 것 없앨 수 있으나
바닷물 다하도록 이 몸 씻어도
향기롭고 맑게 하지는 못하리.

是名自性不淨。

이것이 자성이 부정한 것이다.

自相不淨者。是身九孔常流不淨。眼流眵淚耳出結聹鼻中涕流口出涎吐。廁道水道常出屎尿。及諸毛孔汗流不淨。如說。

자상의 부정함이라 함은 이 몸의 아홉 구멍에서 항상 더러운 것이 흘러내리니, 눈에서는 눈곱과 눈물이 흐르고, 귀에서는 귀지가 나오고, 코에서는 콧물이 흐르고, 입에서는 침이 흐르고, 배설기관에서는 항상 똥오줌이 흘러나오고, 모든 털구멍에서는 땀이 흘러 부정하다.
이런 게송이 있다.

 種種不淨物  充滿於身內

 常流出不止  如漏囊盛物

갖가지 더러운 물건이
몸 안에 가득하여
항상 쉬지 않고 흘러나오니
새는 주머니에 물건을 담은 듯하네.

是名自相不淨。

이것이 자상의 부정이다.

究竟不淨者。是身若投火則爲灰。若虫食則爲屎。在地則腐壞爲土。在水則膖脹爛壞。或爲水虫所食。一切死屍中人身最不淨。不淨法九相中當廣說。如說。

끝까지 부정하다 함은 이 몸을 불에 던지면 재[灰]가 되고, 벌레가 먹으면 똥[尿]이 되고, 땅에 묻으면 썩어서 흙이 되고, 물에 두면 불어터지거나 혹은 물벌레에게 먹힌다.
일체의 시체 가운데서는 인간의 몸이 가장 부정하다. 부정한 법에 대하여는 9상(相)5) 가운데 자세히 설명하리라.
이런 게송이 있다.

 審諦觀此身  終必歸死處

 難御無反復  背恩如小人

이 몸을 자세히 관찰하니
마침내는 무덤으로 돌아가네.
힘들여 모셔도 돌아오지 않으니
은혜를 저버리기 소인(小人)과 같도다.

是名究竟不淨。

이것이 끝까지 부정한 것이다.

復次是身生時死時。所近身物所安身處皆爲不淨。如香美淨水隨百川流旣入大海變成醎苦。身所食噉種種美味好色好香細滑上饌。入腹海中變成不淨。是身如是從生至終。常有不淨甚可患厭。

또한 이 몸이 살았을 때나 죽은 뒤에 이 몸이 가까이했던 곳이나 몸을 두었던 곳은 모두가 부정하다. 예컨대 향기롭고 아름답고 깨끗하던 물도 백 가닥의 개울을 따라 바다로 들어가면 짜고 쓴 맛으로 변하듯이 이 몸에 먹었던 갖가지 맛난 맛과 좋은 빛과 좋은 향기와 부드러운 반찬들도 배라는 바다 속으로 들어가면 부정한 것이 되고 만다.
이 몸은 이와 같이 생겨날 때부터 종극에 이르기까지 항상 부정한 것이 있으니, 몹시 싫증날 일이다.

行者思惟是身雖復不淨。若少有常者。猶差而復無常。

수행자들은 생각하라. 이 몸이 부정하건만 조그만치의 항상함이 있으면 조금 나은 것 같다가 다시 무상해진다.

雖復不淨無常。有少樂者。猶差而復大苦。是身是衆苦生處。如水從地生風從空出火因木有。是身如是內外諸苦皆從身出。內苦名老病死等。外苦名刀杖寒熱飢渴等。有此身故有是苦。

또한 부정하고 무상하건만 조그만치의 즐거움만 있으면 조금 나은 것 같다가 다시 매우 괴로워진다.
이 몸은 뭇 고통이 생기는 곳이니, 마치 물이 땅에서 나고, 바람이 허공에서 나오고, 불이 나무로 인하여 생기는 것과 같다. 이 몸도 그와 같아서 안팎의 괴로움은 모두 몸에서 나온다.
안의 괴로움이란 늙음ㆍ앓음ㆍ죽음 등이요, 밖의 괴로움이란 폭력[刀杖]ㆍ추위ㆍ더위ㆍ주림ㆍ목마름 등을 말한다. 이 몸이 있기 때문에 이런 괴로움이 있는 것이다.

問曰。身非但是苦性。亦從身有樂。若令無身隨意。五欲誰當受者。

【문】 몸은 괴로운 성품일 뿐 아니라 몸으로 인하여 즐거움도 있다. 만약에 몸이 뜻을 따르지 못하게 한다면 5욕을 누가 누리겠는가?

答曰。四聖諦苦。聖人知實是苦。愚夫謂之爲樂。聖實可依愚惑宜棄。是身實苦以止大苦故。以小苦爲樂。譬如應死之人得刑罰代命甚大歡喜。罰實爲苦以代死故謂之爲樂。

【답】 4성제(聖諦)의 괴로움을 성인은 실로 괴로운 것인 줄 알지만 우매한 범부는 즐겁다 한다. 성인은 실로 의지할 만하거니와 어리석은 이는 미혹하니 마땅히 버려야 한다.
이 몸은 실로 괴롭거늘 큰 괴로움이 그쳤으므로 작은 괴로움을 즐겁다 여긴다. 예컨대 죽임을 당하게 된 사람이 형벌로 목숨을 대신하게 되면 몹시 기뻐하는 것과 같다. 형벌이 실로 괴롭거늘 죽음을 대신하였기 때문에 즐겁다고 여기는 것이다.

復次新苦爲樂故苦爲苦。如初坐時樂久則生苦。初行立臥亦樂久亦爲苦。屈申俯仰視眴喘息苦常隨身。從初受胎出生至死無有樂時。若汝以受婬欲爲樂。

또한 새로운 괴로움은 즐겁고 묵은 괴로움은 고통스럽나니, 마치 처음 앓았을 때엔 즐겁다가 오래 되면 곧 괴로움이 일어나고, 처음으로 다니거나 앉거나 누었을 때는 즐겁다가 오래되면 역시 괴로운 것과 같다.
구부리고 펴고 숙이고 우러르고 바로 보고 곁눈으로 보고 헐떡이고 숨을 쉴 때에도 괴로움은 항상 몸을 따르니, 처음 태에 들어 출생할 때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즐거울 때가 없다.

婬病重故求外女色。得之愈多患至愈重。如患疥病向火。揩炙當時小樂大痛轉深。如是小樂亦是病因緣故有。非是實樂無病。觀之爲生慈愍。離欲之人觀婬欲者亦復如是。愍此狂惑爲欲火所燒多受多苦。如是等種種因緣。知身苦相苦因。

만일 그대가 음욕을 느낌으로써 즐겁다 한다면 음욕의 법이 중해진 까닭에 밖의 여색을 구하니, 얻어지는 것이 많을수록 병은 더욱 중해질 것이다. 마치 소양병을 근심해 불을 쏘이는 것과 같은 일이다. 불에 쪼여서 긁으면 당시에는 조금 즐거운 듯하나 이내 큰 아픔이 더욱 깊어지는 것과 같다.
이처럼 작은 쾌락도 역시 병의 인연으로 있는 것이지 실제로 즐거운 것이 아니다. 병 없는 사람이 그를 본다면 가엾다는 생각을 내듯이 음욕을 여읜 사람이 음욕에 빠진 이를 관찰하는 것 역시 이와 같아서 이 어리석은 자가 음욕의 불에 타서 많은 고통 받음을 가엾이 여긴다.
이러한 갖가지 인연으로 몸의 괴로운 모습과 괴로움의 원인을 안다.

行者知身但是不淨無常苦物。不得已而養育之。

수행자는 오직 몸은 부정하고 무상하고 괴로운 물건인 줄을 알지만, 부득이 하여 그것을 양육하는 것이다.

譬如父母生子。子復弊暴以從己生故。要當養育成就。

비유하건대 부모가 아들을 낳았는데 아들이 포악하더라도 자기가 낳았기 때문에 반드시 잘 양육해 길러주는 것과 같다.

 

身實無我。何以故?不自在故。譬如病風之人,不能俯仰行來;病咽塞者,不能語言。以是故,知身不自在。

몸은 진실로 나가 없나니, 왜냐하면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비유하건대 중풍 병에 걸린 사람은 구부리거나 쳐들거나 가거나 오지 못하며, 목병을 앓는 사람은 말을 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이런 까닭에 몸은 자유롭지 못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어떤 사람이 어떤 물건을 가지고 있으면 마음대로 가져다가 써야 하는데 몸은 그렇지 못하다.
자재롭지 못한 까닭에 나 없는 것임을 분명히 알 수 있다.

行者思惟是身如是不淨無我有如是等無量過惡是等種種觀身是名身念處

 수행자는 이 몸이 이렇게 부정하고 무상하고 괴롭고 공하고 나 없다고 사유한다. 이러한 한량없는 허물이 있으니, 이러한 갖가지 방법으로 몸을 관찰하는 것을 신념처라 한다.

得是身念處觀已復思惟衆生以何因緣故貪著此身樂受故所以者何從內六外六塵和合故生六種識六種識中生三種受苦受樂受不苦不樂受是樂受一切衆生所欲苦受一切衆生所不欲不苦不樂受不取不棄如說

이 신념처를 얻은 뒤에는 다시 생각한다.
‘중생은 무슨 까닭에 이 몸에 탐착하는가? 곧 즐거운 느낌 때문이니, 왜냐하면 안의 6정(情)과 밖의 6진(塵)의 화합을 따르는 까닭에 6식을 내고, 6식 가운데 세 가지 느낌[三受]을 내나니, 곧 괴로운 느낌[苦受]ㆍ즐거운 느낌[樂受]ㆍ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不苦不樂受]이다.’
이 즐거운 느낌은 일체 중생이 바라는 바이고, 괴로운 느낌은 일체 중생이 바라지 않는 바이며,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은 취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는다.
이런 게송이 있다.

 

 若作惡人及出家  諸天世人及蠕動

 一切十方五道中  無不好樂而惡苦

 狂惑顚倒無智故  不知涅槃常樂處

악을 짓는 이나 출가한 이나
하늘 무리나 인간이나 벌레들이나
일체 시방의 5도 가운데 모두가
즐거움을 좋아할 뿐, 괴로움을 싫어하는 이 없네.

미치고 뒤바뀌고 어리석어서
열반의 항상한 즐거움 알지 못하네.

 

行者觀是樂受。以實知之無有樂也。但有衆苦。何以故。樂名實樂無有顚倒。一切世間樂受。皆從顚倒生無有實者。復次是樂受。雖欲求樂能得大苦。如說。

수행자는 이 즐거운 느낌을 관찰하여 실제로 그것을 안다면, 즐거움은 없고 오로지 못 고통이 있을 뿐이다. 왜냐하면 즐거움이 진실한 즐거움이라고 한다면 뒤바뀜이 없어야 하거늘 일체 세간의 즐거운 느낌은 모두 뒤바뀜으로부터 생겨나 진실됨이 없기 때문이다.

以是故,知樂受能生種種苦。
이런 까닭에 즐거운 느낌은 능히 갖가지 괴로움을 낸다는 것을 안다.

 若人入海遭惡風  海浪崛起如黑山

 若入大陣鬪戰中  經大險道惡山間

어떤 사람이 바다에 들어가 폭풍을 만나면
파도가 솟구쳐 마치 흑산(黑山)과 같고,
어떤 사람이 큰 싸움터에 들어가면
매우 험하고 거친 길을 지나야 하리.

 豪貴長者降屈身  親近小人爲色欲

 如是種種大苦事  皆爲著樂貪心故

귀한 장자(長者)도 신분을 낮추어
소인들을 가까이함은 색욕 때문이니
이러한 갖가지 큰 고통들은
모두가 쾌락에 집착하는 탐심 때문이네.

以是故知樂受能生種種苦。

이런 까닭에 즐거운 느낌은 능히 갖가지 괴로움을 낸다는 것을 안다.

 

復次雖佛說三種受有樂受。樂少故名爲苦。如一斗蜜投之大河則失氣味。

또한 부처님께서 세 가지 느낌에 비록 즐거운 느낌이 있다고 말씀하셨지만, 즐거움이 적은 까닭에 괴로움이라 하는 것이다. 마치 한 말[斗]이나 되는 꿀도 강에 던져지면 꿀의 기운을 잃어버리는 것과 같다.

 

問曰。若世間樂顚倒因緣故苦。諸聖人禪定生無漏樂。應是實樂。何以故。此樂不從愚癡顚倒有故。此云何是苦。

【문】 만약에 세간의 즐거움이 뒤바뀐 인연 때문에 괴롭다면 성인들의 선정은 무루의 즐거움을 내니, 마땅히 실다운 즐거움이어야 하리라. 왜냐하면 이 즐거움은 어리석은 뒤바뀜에서 생겨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것을 어찌 괴로움이라 하는가?

答曰。非是苦也。雖佛說無常卽是苦。爲有漏法故說苦。何以故。凡夫人於有漏法中心著。以有漏法無常失壞故生苦。無漏法心不著故。雖無常不能生憂悲苦惱等故。不名爲苦。亦諸使不使故。復次若無漏樂。是苦者。佛不別說道諦。苦諦攝故。

【답】 이것은 괴로움이 아니다. 부처님께서는 비록 무상한 것이 곧 괴로움이라 하셨지만, 유루의 법이기 때문에 괴롭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왜냐하면 범부들은 유루의 법에 대하여 마음이 집착하기 때문이다. 유루의 법은 무상하여 잃어지고 무너지는 까닭에 괴로움을 내거니와 무루의 법은 마음으로 집착할 수 없기에 비록 무상하더라도 근심ㆍ슬픔ㆍ괴로움ㆍ고뇌 등을 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괴로움이라 하지 않는다.
또한 모든 번뇌[結使]가 부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問曰有二種樂。有漏樂無漏樂。有漏樂下賤弊惡。無漏樂上妙。何以故。於下賤樂中生著。上妙樂中而不生著。上妙樂中生著應多。如金銀寶物貪著應重。豈同草木。

答曰。無漏樂上妙。而智慧多。智慧多故能離此著。有漏樂中愛等結使多。愛爲著本。實智慧能離。以是故不著。復次無漏智慧。常觀一切無常。觀無常故。不生愛等諸結使。譬如羊近於虎。雖得好草美水而不能肥。如是諸聖人雖受無漏樂。無常空觀故。不生染著脂。復次無漏樂。不離三三昧十六聖行。常無衆生相。若有衆生相則生著心。以是故無漏樂。雖復上妙而不生著。如是種種因緣。觀世間樂受是苦。觀苦受如箭。不苦不樂受。觀無常壞敗相。如是則樂受中不生欲著。苦受中不生恚。不苦不樂受中不生愚癡。是名受念處。

行者思惟以樂故貪身誰受是樂。思惟已知從心受。衆生心狂顚倒故。而受此樂。當觀是心無常生滅相一念不住。無可受樂。人以顚倒故。謂得受樂。何以故。初欲受樂時心生異。樂生時心異。各各不相及。云何言心受樂。過去心已滅故不受樂。未來心不生故不受樂。現在心一念住疾故不覺受樂。

問曰。過去未來不應受樂。現在心一念住時應受樂。云何言不受。

答曰。我已說去疾故不覺受樂。復次諸法無常相故無住時。若心一念住。第二念時亦應住。是爲常住無有滅相。如佛說。一切有爲法三相住中。亦有滅相。若無滅者不應是有爲相。復次若法後有滅。當知初已有滅。譬如人著新衣。初著日若不故第二日亦不應故。如是乃至十歲應常新不應故。而實已故。當知與新俱有。微故不覺。故事已成方乃覺知。以是故知諸法無有住時。云何心住時得受樂。若無住而受樂是事不然。以是故知無有實受樂者。但世俗法。以諸心相續故。謂爲一相受樂。

問曰。云何當知一切有爲法無常。

答曰。我先已說今當更答。是有爲法一切屬因緣故無常。先無今有故今有後無故無常。復次無常相。常隨逐有爲法故。有爲法無有增損故。一切有爲法相侵剋故無常。

復次有爲法有二種老常隨逐故。一者將老二者壞老。有二種死常隨逐故。一者自死二者他殺。以是故知一切有爲法皆無常。於有爲法中心無常最易得。如佛說凡夫人或時知身無常。而不能知心無常。若凡夫言身有常。猶差以心爲常是大惑。何以故。身住或十歲二十歲。是心日月時頃須臾過去。生滅各異念念不停。欲生異生欲滅異滅。如幻事實相不可得。如是無量因緣故知心無常。是名心念處。

行者思惟是心屬誰。誰使是心觀已不見有主。一切法因緣和合故不自在。不自在故無自性。無自性故無我。若無我誰當使是心。

問曰。應有我。何以故。心能使身。亦應有我能使心。譬如國主使將將使兵。如是應有我使心有心使身。爲受五欲樂故。復次各各有我心故知實有我。若但有身心顚倒故計我者。何以故。不他身中起我。以是相故知各各有我。

答曰。若心使身有我使心。應更有使我者。若更有使我者是則無窮。又更有使我者則有兩神。若更無我但我能使心。亦應但心能使身。若汝以心屬神除心則神無所知。若無所知云何能使心。若神有知相復何用心爲。以是故知但心是識相故。自能使身不待神也。如火性能燒物不假於人。

問曰。火雖有燒力。非人不用心雖有識相非神不使。

答曰。諸法有相故有。是神無相故無。汝雖欲以氣息出入苦樂等爲神相。是事不然。何以故。出入息等是身相。受苦樂等是心相。云何以身心爲神相。復次或時火自能燒不待於人。但以名故名爲人燒。汝論墮負處。何以故神則是人。不應以人喩人。又復汝言各各有我心故。知實有我。若但有身心顚倒故。計我者。何以不他身中起我。汝於有我無我未了而問。何以不他身中起我。自身他身皆從我有。我亦不可得。若色相若無色相若常無常有邊無邊。有去者不去者。有知者不知者。有作者無作者。有自在者不自在者。如是等我相皆不可得。如上我聞品中說。如是等種種因緣。觀諸法和合因緣生無有實法有我。是名法念處。

是四念處有三種。性念處共念處緣念處。云何爲性念處。觀身智慧是身念處。觀諸受智慧是名受念處。觀諸心智慧是名心念處。觀諸法智慧是名法念處。是爲性念處。

云何名共念處。觀身爲首因緣生道。若有漏若無漏是身念處。觀受觀心觀法爲首因緣生道。若有漏若無漏。是名受心法念處。是爲共念處。云何爲緣念處。一切色法。所謂十入及法入少分是名身念處。六種受眼觸生受。耳鼻舌身意觸生受。是名受念處。六種識眼識耳鼻舌身意識。是名心念處。想衆行衆及三無爲。是名法念處。是名緣念處。

是性念處智慧性故。無色不可見無對。或有漏或無漏。有漏有報無漏無報。皆有爲因緣生。三世攝名攝外入攝。以慧知有漏是斷。知無漏非斷。知有漏是可斷無漏非可斷。是修法是無垢。是果亦有果。一切非受法非四大造。有上法有漏念處。是有無漏念處。是非有皆是相應因。四念處攝六種善中一種行衆善分。行衆善分攝四念處。不善無記漏中不相攝。或有四念處非有漏。或有漏非四念處。或有四念處亦有漏。或非四念處亦非有漏。有四念處非有漏者。是無漏性四念處。有漏非四念處者。除有漏性四念處。餘殘有漏分。四念處亦有漏法者。有漏性四念處。非四念處非有漏法者。除無漏性四念處。餘殘無漏法。無漏四句亦如是。

共念處是共念處中。身業口業是爲色。餘殘非色。一切不可見皆無對。或有漏或無漏皆有爲。有漏念處有報。無漏念處無報。因緣生三世攝。身口業色攝。餘殘名攝。心意識內入攝。餘殘外入攝。以慧知有漏是斷。知無漏非斷。知有漏可斷無漏非可斷。皆修法皆無垢。是果亦有果。一切非受法。身口業是四大造。餘殘非四大造。皆有上法有漏念處。是有無漏念處。是非有身口業及心不相應諸行。是非相應因。餘殘是相應因。五善分攝四念處。四念處亦攝五善分。餘殘不相攝。不善無記漏法不攝。或有四念處非有漏。或有漏非四念處。或有四念處亦有漏。或非四念處亦非有漏。有四念處非有漏者。無漏四念處。有漏非四念處者。除有漏四念處。餘殘有漏法有四念處亦有漏者。有漏四念處。非四念處非有漏者。虛空數緣盡。非數緣盡。或有四念處非無漏。或有無漏非四念處。或有四念處亦無漏。或非四念處非無漏。有四念處非無漏者。有漏四念處。有無漏非四念處者。三無爲法。有四念處亦無漏者。無漏四念處。非四念處非無漏者。除有漏四念處。餘殘有漏法。是緣念處。緣念處中一念處是色。三念處非色。三不可見。一當分別。身念處有可見有不可見。可見者一入。不可見者九入。及一入少分。三無對一當分別。身念處有對。十入無對。一入少分。身念處有漏十入及一入少分。無漏一入少分。受念處有漏。意相應是有漏。無漏意相應是無漏。心念處亦如是。法念處有漏。想衆行衆是有漏。無漏想衆行衆及無爲法是無漏。三是有爲一當分別。法念處想衆行衆是有爲。三無爲法是無爲。不善身念處及善有漏身念處是有報。無記身念處及無漏是無報。受念處心念處法念處亦如是。三從因緣生一當分別。法念處有爲從因緣生。無爲不從因緣生。三三世攝。一當分別。法念處有爲是三世攝。無爲非三世攝。一念處攝色。三攝名。一念處內入攝。受念處法念處外入攝。一當分別。身念處或內入攝。或外入攝。五內入是內入攝。五外入及一入少分是外入攝。以慧知有漏者是斷見。無漏者非斷見。有漏者可斷。無漏者非可斷。修當分別。身念處善應修不善及無記不應修受心念處。亦如是。法念處有爲善法應修。不善及無記及數緣盡不應修。垢當分別。身念處隱沒是垢。不隱沒非垢。受心法念處亦如是。三念處是果亦有果。一當分別。法念處或果非有果。或果亦有果或非果非有果。數緣盡是果非有果。有爲法念處是果亦有果。虛空非數緣盡。是非果非有果三不受一當分別。身念處墮身數是受。不墮身數非受。三非四大造一當分別。身念處九入及二入少分四大造。一入少分非四大造。三念處有上一當分別。法念處有爲及虛空非數緣盡是有上。涅槃是無上。四念處若有漏是有。若無漏是非有。二念處相應因一念處不相應因一當分別。受念處心念處相應因。身念處不相應因。法念處想衆及相應行衆是相應因。餘殘是不相應因。四念處分攝六善法。六善法亦攝四念處分。不善分無記分亦如是。隨種相攝。三漏攝一念處分。一念處分亦攝三漏。有漏攝四念處分。四念處分亦攝有漏。無漏攝四念處分。四念處分亦攝無漏。如是等義千難中廣說。

問曰。何等爲內身。何等爲外身。如內身外身皆已攝盡。何以復說內外身觀。

答曰。內名自身外名他身。自身有二種。一者身內不淨。二者身外皮毛爪髮等。復次行者觀死屍膖脹爛壞。取是相。自觀身亦如是相如是事。我未離此法。死屍是外身行者身是內身。如行者或時見端政女人心著。卽時觀其身不淨。是爲外。自知我身亦爾。是爲內。復次眼等五情爲內身。色等五塵爲外身。四大爲內身。四大造色爲外身。覺苦樂處爲內身。不覺苦樂處爲外身。自身及眼等諸根是爲內身。妻子財寶田宅所用之物。是爲外身。所以者何。一切色法盡是身念處故。行者求是內身有淨常樂我。審悉求之都不可得。如先說觀法。內觀不得外或當有耶。何以故。外物是一切衆生著處。外身觀時亦不可得。復作是念。我內觀不得。外或有耶。外觀亦復不得。自念我或誤錯。今當總觀內外。觀內觀外是爲別相。一時俱觀是爲總相。總觀別觀了不可得。所觀已竟。

問曰。身念處可得內外。諸受是外入攝。云何分別有內受外受。

答曰。佛說有二種受。身受心受。身受是外心受是內。復有五識相應受是外。意識相應受是內。十二入因緣故。諸受生。內六入分生受。是爲內。外六入分生受。是爲外。麤受是爲外細受是爲內。

二種苦。內苦外苦。內苦有二種身苦心苦。身苦者身痛頭痛等。四百四種病是爲身苦。心苦者憂愁瞋怖嫉妬疑如是等。是爲心苦。二苦和合是爲內苦。

外苦有二種。一者王者勝己惡賊師子虎狼蚖蛇等逼害。二者風雨寒熱雷電礔礰等。是二種苦名爲外受。樂受不苦不樂受亦如是。復次緣內法是爲內受。緣外法是爲外受。復次一百八受是爲內受。餘殘是外受。

問曰。心是內入攝。云何言觀外心。

答曰。心雖內入攝緣外法故。名爲外心緣內法故是爲內心。意識是內心五識是外心。攝心入禪是內心。散亂心是外心。內五蓋內七覺相應心。是爲內心。外五蓋外七覺相應心。是爲外心。如是等種種分別內外。是爲內外心。

問曰。法念處是外入攝。云何言觀內法。

答曰。除受餘心數法。能緣內法心數法是內法。緣外法心數法及無爲心不相應行是爲外法。復次意識所緣法。是名爲法。如佛所說。依緣生意識。是中除受餘心數法。是爲內法。餘心不相應行及無爲法。是爲外法。

四正懃有二種。一者性正懃。二者共正懃。性正懃者。爲道故四種精進。遮二種不善法。集二種善法。四念處觀時。若有懈怠心。五蓋等諸煩惱覆心。離五種信等善根時。不善法若已生爲斷故。未生不令生故。懃精進。信等善根未生爲生故。已生爲增長故。懃精進。精進法於四念處多故。得名正懃。

問曰。何以故。於七種法中此四名正懃。後八名正道。餘者不名正。

答曰。四種精進心勇發動畏錯誤故。言正懃。行道趣法故。畏墮邪法故。言正道。

性者四種精進性。共者四種精進性爲首。因緣生道若有漏若無漏。若有色若無色如上說。行四正懃時心小散故。以定攝心故。名如意足。譬如美食少鹽則無味。得鹽則味足如意。又如人有二足。復得好馬好車如意所至。行者如是得四念處實智慧四正懃中正精進。精進故智慧增多。定力小弱。得四種定攝心故。智定力等所願皆得故。名如意足。

問曰。四念處四正懃中已有定。何以故不名如意足。

答曰。彼雖有定。智慧精進力多定力弱故。行者不得如意願。四種定者。欲爲主得定。精進爲主得定。定因緣生道。若有漏若無漏心爲主得定。思惟爲主得定。定因緣生道。若有漏若無漏。共善五衆名爲共如意。欲主等四種定。名爲性如意。四正懃四如意足。如性念處共念處中廣分別說。

五根者。信道及助道善法。是名信根。行者行是道助道法時。懃求不息是名精進根。念道及助道法。更無他念是名念根。一心念不散是名定根。爲道及助道法。觀無常等十六行。是名慧根。是五根增長不爲煩惱所壞。是名爲力。如五根中說。是五根五力行衆中攝。常共相應。隨心行心數法。共心生共心住共心滅。若有是法心墮正定。若無是法心墮邪定。七覺如先說義。

問曰。先雖說義。非以阿毘曇法說。

答曰。今當更說。如四念處義是七覺分。無色不可見無對無漏有爲因緣生。三世攝名攝外入攝。慧知非斷見不可斷。修法無垢法。是果亦有果。非受法非四大造。有上法非有相應因。二善分攝七覺分。七覺分攝二善分。不善無記漏有漏法不相攝。無漏二分攝七覺分。七覺分攝無漏二分。如是等種種。如千難中廣說。

八聖道分如先說。正見是智慧。如四念處慧根慧力擇法覺中說。正思惟觀四諦時。無漏心相應。思惟動發覺知籌量。正方便如四正懃精進根精進力精進覺中說。正念如念根念力念覺中說。正定如如意足定根定力定覺中說。正語正業正命今當說。除四種邪命攝口業。以無漏智慧除捨。離餘口邪業。是名正語。正業亦如是。五種邪命以無漏智慧除捨。離是爲正命。

問曰。何等是五種邪命。

答曰。一者若行者爲利養故詐現異相奇特。二者爲利養故自說功德。三者爲利養故占相吉凶爲人說。四者爲利養故高聲現威令人畏敬。五者爲利養故稱說所得供養以動人心。邪因緣活命故。是爲邪命。

是八正道有三分。三種爲戒分。三種爲定分。二種爲慧分。慧分定分分別如先說。戒分今當說。戒分是色性不可見。無對無漏有爲無報因緣生。三世攝色攝。非名攝外入攝。慧知非斷見不可斷。修法無垢法。是果亦有果。非受法非四大造有上法非有法。相應因。一善分攝三正。三正攝一善分。不善無記漏有漏不相攝。無漏一法攝三正。三正亦攝無漏一法。如是等種種分別。如阿毘曇廣說。

是三十七品。初禪地具有。未到地中三十六。除喜覺。第二禪中亦三十六。除正行禪中間第三第四禪三十五。除喜覺除正行。三無色定中三十二。除喜覺正行正語正業正命。有頂中二十二。除七覺分八聖道分。欲界中二十二亦如是。是爲聲聞法中分別義。

問曰摩訶衍所說。三十七品義云何。答曰菩薩摩訶薩。行四念處觀是內身無常苦如病如癰。焰聚敗壞不淨充滿九孔流出。是爲行廁。如是觀身惡露無一淨處。骨幹肉塗筋纏皮裹。先世受有漏業因緣。今世沐浴華香衣服飮食臥具醫藥等所成。如車有兩輪牛力牽故能有所至。二世因緣以成身車。識牛所牽周旋往反。是身四大和合造。如水沫聚虛無堅固。是身無常久必破壞。是身相身中不可得。亦不在外亦不在中間。身不自覺無知無作如牆壁瓦石。是身中無定身相。無有作是身者。亦無使作者。是身先際後際中際皆不可得。八萬戶虫無量諸病。及諸飢渴寒熱刑殘等常惱此身。菩薩摩訶薩觀身如是。知非我身亦非他有。不得自在有作及所不作。是身身相空從虛妄因緣生。是身假有屬本業因緣。菩薩自念我不應惜身命。何以故。是身相不合不散不來不去不生不滅不依猗。循身觀。是身無我無我所故空。空故無男女等諸相。無相故不作願。如是觀者得入無作智門。知身無作。無作者。但從諸法因緣和合生。是諸因緣作是身者。亦從虛妄顚倒故有。是因緣中亦無因緣相。是因緣生亦無生相。如是思惟知是身從本以來無有生相。知是身無相無可取。無生故無相。無相故無生。但誑凡夫故名爲身。菩薩如是觀身實相時。離諸染欲著。心常繫念在身。循身觀如是名爲菩薩身念處。觀外身觀內外身亦如是。

菩薩云何觀諸受。觀內受是受有三種。若苦若樂若不苦不樂。是諸受無所從來。滅無所至。但從虛誑顚倒妄想生。是報果屬先世業因緣。是菩薩如是求諸受。不在過去不在未來不在現在。知是諸受空無我無我所。無常破壞法。觀是三世諸受空無相無作入解脫門。亦觀諸受生滅。亦知諸受不合不散不生不滅。如是入不生門。知諸受不生故無相。無相故不生。如是知已繫心緣中。若有苦樂不苦不樂來。心不受不著不作依止。如是等因緣觀諸受。是名受念處。觀外受觀內外受亦如是。

菩薩云何觀心念處。菩薩觀內心。是內心有三相。生住滅。作是念是心無所從來。滅亦無所至。但從內外因緣和合生。是心無有定實相。亦無實生住滅。亦不在過去未來現在世中。是心不在內不在外不在中間。是心亦無性無相。亦無生者無使生者。外有種種雜六塵因緣。內有顚倒心相。生滅相續故强名爲心。如是心中實心相不可得。是心性不生不滅。常是淨相客煩惱相著故。名爲不淨心。心不自知。何以故是心心相空故。是心本末無有實法。是心與諸法無合無散。亦無前際後際中際。無色無形無對。但顚倒虛誑生。是心空無我。無我所無常無實。是名隨順心觀。知心相無生。入無生法中。何以故。是心無生無性無相。智者能知。智者雖觀是心生滅相。亦不得實生滅法。不分別垢淨。而得心淸淨。以是心淸淨故。不爲客煩惱所染。如是等觀內心觀外心。觀內外心亦如是。

菩薩云何觀法念處。觀一切法不在內不在外。不在中間。不過去未來。現在世中但從因緣和合妄見生無有實定。無有是法是誰法。諸法中法相不可得。亦無法若合若散。一切法無所有。如虛空。一切法虛誑如幻。諸法性淨不相汚染。諸法無所受。諸受無所有故。諸法無所知。心心數法虛誑故。如是觀時不見有法若一相若異相。觀一切法空無我。是時作是念。一切諸法因緣生故無有自性。是爲實空。實空故無有相。無有相故無作。無作故不見法若生若滅住。是智慧中入無生法忍門。爾時雖觀諸法生滅。亦入無相門。何以故一切法離諸相。智者之所解。如是觀時繫心緣中。隨順諸法相。不念身受心法。知是四法無處所。是爲內法念處。外法念處內外法念處亦如是。四正懃四如意足。亦如是應分別觀空無處所。

云何爲菩薩所行五根。菩薩摩訶薩。觀五根修五根。信根者。信一切法從因緣生顚倒妄見心生如旋火輪如夢如幻。信諸法不淨無常苦無我如病如癰如刺災變敗壞。信諸法無所有如空拳誑小兒。信諸法不在過去不在未來不在現在。無所從來滅無所至。信諸法空無相無作不生不滅。無信相無相而信持戒禪定智慧解脫解脫知見。得是信根故不復退轉。以信根爲首。善住持戒。住持戒已信心不動不轉。一心信。依業果報離諸邪見更不信餘語。但受佛法信衆僧。住實道中直心柔軟能忍。通達無礙不動不壞得力自在。是名信根。

精進根者。晝夜常行精進。除却五蓋攝護五根。

諸深經法欲得欲知欲行欲誦欲讀乃至欲聞。若諸不善惡法起令疾滅。未生者令不生。未生諸善法令生。已生令增廣。亦不惡不善法亦不愛。善法得等精進。直進不轉得正精進。定心故名爲精進根。

念根者。菩薩常一心念。欲具足布施持戒禪定智慧解脫。欲淨身口意業。諸法生滅住異。智中常一心念。一心念苦集盡道。一心念分別根力覺道禪定解脫生滅入出。一心念諸法不生不滅無作無說。爲得無生智慧具足諸佛法故。一心念不令聲聞辟支佛心得入。常念不忘。如是諸法甚深淸淨觀行得故。得如是自在念。是名念根。

定根者菩薩善取定相。能生種種禪定。了了知定門。善知入定善知住定善知出定。於定不著不味不作依止。善知所緣善知壞緣。自在遊戲諸禪定。亦知無緣定不隨他語。不專隨禪定。行自在出入無礙。是名爲定根。

慧根者。菩薩爲盡苦聖智慧成就。是智慧爲離諸法爲涅槃。以智慧觀一切三界無常。爲三衰三毒火所燒觀已於三界中。智慧亦不著。一切三界。轉爲空無相無作解脫門。一心爲求佛法如救頭然。是菩薩智慧無能壞者。於三界無所依。於隨意五欲中心常離。慧根力故。積聚無量功德。於諸法實相。利入無疑無難。於世間無憂。於涅槃無喜。得自在智慧。故名爲慧根。

菩薩得是五根。善知衆生諸根相。知染欲衆生根。知離欲衆生根。知瞋恚衆生根。亦知離瞋恚衆生根。知愚癡衆生根。亦知離愚癡衆生根。知欲墮惡道衆生根。知欲生人中衆生根。知欲生天上衆生根。知鈍衆生根。知利衆生根。知上中下衆生根。知罪衆生根。知無罪衆生根。知逆順衆生根。知常生欲界色界無色界衆生根知厚善根薄善根衆生根。知正定邪定不定衆生根。知輕躁衆生根。知持重衆生根。知慳貪衆生根。知能捨衆生根。知恭敬衆生根。知不恭敬衆生根。知淨戒不淨戒衆生根。知瞋恚忍辱衆生根。知精進懈怠衆生根。知亂心攝心愚癡智慧衆生根。知無畏有畏衆生根。知增上慢不增上慢衆生根。知正道邪道衆生根。知守根不守根衆生根。知求聲聞衆生根。知求辟支佛衆生根。知求佛道衆生根。於知衆生根中。得自在方便力故。名爲知根。

菩薩行是五根增長。能破煩惱度衆生得無生法忍。是名五力。復次天魔外道不能沮壞。是名爲力。

七覺分者。菩薩於一切法不憶不念。是名念覺分。一切法中求索善法不善法無記法不可得。是名擇法覺分。不入三界破壞諸界相。是名精進覺分。於一切作法不生著樂。憂喜相壞故是名喜覺分。於一切法中。除心緣不可得故。是名除覺分。知一切法常定相不亂不定。是名定覺分。於一切法不著不依止。亦不見。是捨心是名捨覺分。菩薩觀七覺分空如是。

問曰。此七覺分何以略說。

答曰。七覺分中。念慧精進定。上已廣說。三覺今當說。菩薩行喜覺分。觀是喜非實。何以故。是喜從因緣生。作法有法無常法可著法。若生著是無常相。變壞則生憂。凡夫人以顚倒故心著。若知諸法實空。是時心悔我則受虛誑。如人闇中飢渴所逼食不淨物。晝日觀知乃覺其非。若如是觀。於實智慧中生喜是爲眞喜。得是眞喜先除身麤。次除心麤。然後除一切法相。得快樂遍身心中。是爲除覺分。旣得喜除捨諸觀行。所謂無常觀苦觀空無我觀生滅觀不生不滅觀有觀無觀非有非無觀。如是等戲論盡捨。何以故。無相無緣無作無戲論常寂滅。是實法相。若不行捨便有諸諍。若以有爲實則以無爲虛。若以無爲實則以有爲虛。若以非有非無爲實。則以有無爲虛。於實愛著於虛恚憎。生憂喜處云何不捨。得如是喜除捨。七覺分則具足滿。

八聖道分者。正見正方便正念正定上已說。正思惟今當說。菩薩於諸法空無所得。住如是正見中觀正思惟相。知一切思惟皆是邪思惟。乃至思惟涅槃思惟佛皆亦如是。何以故。斷一切思惟分別。是名正思惟。諸思惟分別。皆從不實虛誑顚倒故有分別。思惟相皆無。菩薩住如是正思惟中。不見是正是邪。過諸思惟分別。是爲正思惟。一切思惟分別皆悉平等。悉平等故心不著。如是等名爲菩薩正思惟相。

正語者。菩薩知一切語皆從虛妄不實顚倒取相分別生是時菩薩作是念。語中無語相。一切口業滅知諸語實相。是爲正語。是諸語皆無所從來。滅亦無所去。是菩薩行正語法。諸有所語皆住實相中說。以是故諸經說。菩薩住正語中能作淸淨口業。知一切語言眞相。雖有所說不墮邪語。

正業者。菩薩知一切業邪相虛妄無實皆無作相。何以故無有一業可得定相。

問曰。若一切業皆空。云何佛說布施等是善業。殺害等是不善業。餘事動作是無記業。

答曰。諸業中尙無有一。何況有三。何以故。如行時已過則無去業。未至亦無去業。現在去時亦無去業。以是故無去業。

問曰。已過處則應無。未至處亦應無。今去處應是有去。

答曰。今去處亦無去。何以故。除去業今去處不可得。若除去業今去處可得者。是中應有去而不然。除今去處則無去業。除去業則無今去處。是相與共緣故。不得但言今去處有去。復次若今去處有去業。離去業應當有今去處。離今去處應當有去業。

問曰。若爾者有何咎。

答曰。一時有二去業故。若有二去業。則有二去者。何以故。除去者則無去。若除去者今去處不可得。無今去處故亦無去者。復次不去者亦不去故無去業。若除去者不去者。更無第三去者。

問曰。不去者不去應爾。去者何以故言不去。

答曰。除去業去者不可得。除去者去業不可得。如是等一切業空。是名正業。諸菩薩入一切諸業平等。不以邪業爲惡。不以正業爲善。無所作不作正業不作邪業。是名實智慧。卽是正業。復次諸法等中無正無邪。如實知諸業。如實知已不造不休。如是智人常有正業無邪業。是名爲菩薩正業。

正命者。一切資生活命之具悉正不邪。住不戲論智中不取正命不捨邪命。亦不住正法中。亦不住邪法中。常住淸淨智中。入平等正命不見命不見非命。行如是實智慧。以是故名正命。若菩薩摩訶薩。能觀是三十七品。得過聲聞辟支佛地。入菩薩位中。漸漸得成一切種智。

 

kabc.dongguk.edu/content/view?itemId=ABC_IT&cate=bookName&depth=3&upPath=C&dataId=ABC_IT_K0549_T_018

 

단락/경판 - 불교학술원 아카이브

ABC_IT_K0549_T_018 URL복사 통합뷰어 014_0673_a_01L대지도론 제18권 014_0673_a_01L大智度論釋初品中般若波羅蜜第二十九卷第十八 통합뷰어 용수 지음후진 구자국 구마라집 한역김성구 번역/김형준 개역 014_

kabc.dongguk.edu

 

大智度論釋般若相義第三十

 

問曰。何以獨稱般若波羅蜜爲摩訶。而不稱五波羅蜜。

答曰。摩訶秦言大。般若言慧。波羅蜜言到彼岸。以其能到智慧大海彼岸。到一切智慧邊窮盡其極故。名到彼岸。一切世間中十方三世諸佛第一大。次有菩薩辟支佛聲聞。是四大人皆從般若波羅蜜中生。是故名爲大。復次能與衆生大果報。無量無盡常不變異。所謂涅槃。餘五波羅蜜不能爾。布施等離般若波羅蜜。但能與世間果報。是故不得名大。

問曰。何者是智慧。

答曰。般若波羅蜜攝一切智慧。所以者何。菩薩求佛道。應當學一切法得一切智慧。所謂聲聞辟支佛佛智慧。是智慧有三種。學無學非學非無學。非學非無學。智者如乾慧地不淨安那般那欲界繫四念處煖法頂法忍法世間第一法等。學智者苦法智忍慧乃至向阿羅漢第九無礙道中金剛三昧慧。無學智者阿羅漢第九解脫智。從是已後一切無學智。如盡智無生智等。是爲無學智求辟支佛道智慧亦如是。

問曰。若辟支佛道亦如是者。云何分別聲聞辟支佛。

答曰。道雖一種而用智有異。若諸佛不出佛法已滅。是人先世因緣故。獨出智慧不從他聞。自以智慧得道。如一國王出在園中遊戲。淸朝見林樹華菓蔚茂甚可愛樂。王食已而臥。王諸夫人婇女。皆共取華毁折林樹。王覺已見林毁壞而自覺悟。一切世間無常變壞皆亦如是。思惟是已無漏道心生斷諸結使得辟支佛道。具六神通卽飛到閑靜林間。如是等因緣。先世福德願行果報。今世見少因緣。成辟支佛道如是爲異。

復次辟支佛有二種。一名獨覺。二名因緣覺。因緣覺如上說。獨覺者。是人今世成道。自覺不從他聞。是名獨覺辟支迦佛。獨覺辟支迦佛有二種。一本是學人在人中生。是時無佛佛法滅。是須陀洹已滿七生。不應第八生自得成道。是人不名佛。不名阿羅漢。名爲小辟支迦佛。與阿羅漢無異。或有不如舍利弗等大阿羅漢者。大辟支佛亦於一百劫中。作功德增長智慧。得三十二相分。或有三十一相或三十二十九相乃至一相。於九種阿羅漢中。智慧利勝於諸深法中總相別相。能入久修習定。常樂獨處。如是相名爲大辟支迦佛。以是爲異。求佛道者從初發心作願。願我作佛度脫衆生。得一切佛法行六波羅蜜。破魔軍衆及諸煩惱。得一切智成佛道。乃至入無餘涅槃。隨本願行。從是中間所有智慧總相別相一切盡知。是名佛道智慧。是三種智慧盡能知盡到其邊。以是故言到智慧邊。

問曰。若如所說一切智慧。盡應入若世間若出世間。何以但言三乘智慧盡到其邊不說餘智。

答曰。三乘是實智慧。餘者皆是虛妄。菩薩雖知而不專行。如除摩梨山一切無出栴檀木。若餘處或有好語。皆從佛法中得自非佛法。初聞似好久則不妙。譬如牛乳驢乳。其色雖同牛乳攢則成酥。驢乳攢則成尿。佛法語及外道語。不殺不盜慈愍衆生攝心離欲觀空雖同。然外道語初雖似妙。窮盡所歸則爲虛誑。一切外道皆著我見。若實有我應墮二種。若壞相若不壞相。若壞相應如牛皮。若不壞相應如虛空。此二處無殺罪無不殺福。若如虛空雨露不能潤。風熱不能乾。是則墮常相。若常者苦不能惱樂不能悅。若不受苦樂。不應避禍就福。若如牛皮則爲風雨所壞。若壞則墮無常。若無常則無罪福。外道語若實如是。何有不殺爲福殺生爲罪。

問曰。外道戒福所失如是。其禪定智慧復云何。

答曰。外道以我心逐禪故。多愛見慢故。不捨一切法故。無有實智慧。

問曰。汝言外道觀空。觀空則捨一切法。云何言不捨一切法故。無有實智慧。

答曰。外道雖觀空。而取空相。雖知諸法空。而不自知我空。愛著觀空智慧故。

問曰。外道有無想定。心心數法都滅。都滅故無有取相愛著智慧咎。

答曰。無想定力强令心滅。非實智慧力。又於此中生涅槃想。不知是和合作法。以是故墮顚倒中。是中心雖暫滅。得因緣還生。譬如人無夢睡時心想不行悟則還有。

問曰無想定其失如是。更有非有想非無想定。是中無一切妄想。亦不如强作無想定滅想。是中以智慧力故無想。

答曰。是中有想細微故不覺若無想佛弟子。復何緣更求實智慧。佛法中是非有想非無想中識。依四衆住。是四衆屬因緣故無常。無常故苦。無常苦故空。空故無我。空無我故可捨。汝等愛著智慧故不得涅槃。譬如尺蠖屈安後足然後進前足。所緣盡無復進處而還。外道依止初禪捨下地欲。乃至依非有想非無想處。捨無所有處。上無所復依。故不能捨非有想非無想處。以更無依處恐懼失我。畏墮無所得中故。復次外道經中。有聽殺盜婬妄語飮酒言。爲天祠呪殺無罪。爲行道故。若遭急難欲自全身。而殺小人無罪。又有急難爲行道故。除金餘者得盜取以自全濟。後當除此殃罪。除師婦國王夫人善知識妻童女。餘者逼迫急難得邪婬。爲師及父母爲身爲牛爲媒故。聽妄語。寒鄕聽飮石蜜酒。天祠中或聽嘗一渧二渧酒。佛法中則不然。於一切衆生慈心等視。乃至蟻子亦不奪命。何況殺人。一針一縷不取。何況多物無主。婬女不以指觸何況人之婦女。戲笑不得妄語。何況故作妄語。一切酒一切時常不得飮。何況寒鄕天祠。汝等外道與佛法懸殊有若天地。汝等外道法。是生諸煩惱處。佛法則是滅諸煩惱處。是爲大異。諸佛法無量有若大海。隨衆生意故種種說法。或說有或說無或說常或說無常或說苦或說樂或說我或說無我或說懃行三業攝諸善法或說一切諸法無作相。如是等種種異說。無智聞之謂爲乖錯。智者入三種法門。觀一切佛語。皆是實法不相違背。何等是三門。一者蜫勒門。二者阿毘曇門。三者空門。

問曰。云何名蜫勒。云何名阿毘曇。云何名空門。

答曰。蜫勒有三百二十萬言。佛在世時大迦栴延之所造。佛滅度後人壽轉減。憶識力少不能廣誦。諸得道人撰爲三十八萬四千言。若人入蜫勒門論議則無窮。其中有隨相門對治門等種種諸門。隨相門者。如佛說偈。

 

 諸惡莫作  諸善奉行 

 自淨其意  是諸佛敎

 

是中心數法盡應說。今但說自淨其意。則知諸心數法已說。何以故。同相同緣故。如佛說四念處。是中不離四正懃四如意足五根五力。何以故。四念處中四種精進則是四正懃四種定是爲四如意足。五種善法是爲五根五力。佛雖不說餘門但說四念處。當知已說餘門。如佛於四諦中或說一諦或二或三。如馬星比丘爲舍利弗說偈。

 

 諸法從緣生  是法緣及盡

 我師大聖王  是義如是說

 

此偈但說三諦。當知道諦已在中不相離故。譬如一人犯事。擧家受罪。如是等名爲隨相門。

對治門者。如佛但說四顚倒。常顚倒樂顚倒我顚倒淨顚倒。是中雖不說四念處。當知已有四念處義。譬如說藥已知其病說病則知其藥。若說四念處則知已說四倒。四倒則是邪相。若說四倒則已說諸結。所以者何。說其根本則知枝條皆得。如佛說一切世間有三毒。說三毒當知已說三分八正道。若說三毒當知已說一切諸煩惱毒。十五種愛是貪欲毒。十五種瞋是瞋恚毒。十五種無明是愚癡毒。諸邪見憍慢疑屬無明。如是一切結使皆入三毒。以何滅之。三分八正道。若說三分八正道。當知已說一切三十七品。如是等種種相名爲對治門。如是等諸法名爲蜫勒門。

云何名阿毘曇門。或佛自說諸法義。或佛自說諸法名。諸弟子種種集述解其義。如佛說。若有比丘於諸有爲法不能正憶念。欲得世間第一法無有是處。若不得世間第一法。欲入正位中無有是處。若不入正位。欲得須陀洹斯陀含阿那含阿羅漢無有是處。有比丘於諸有爲法。正憶念得世間第一法斯有是處。若得世間第一法入正位。入正位得須陀洹斯陀含阿那含阿羅漢必有是處。如佛直說。世間第一法不說相義。何界繫何因何緣何果報。從世間第一法。種種聲聞所行法乃至無餘涅槃。一一分別相義。如是等是名阿毘曇門。

空門者生空法空。如頻婆娑羅王迎經中。佛告大王。色生時但空生。色滅時但空滅。諸行生時但空生。滅時但空滅。是中無吾我。無人無神。無人從今世至後世。除因緣和合名字等衆生。凡夫愚人逐名求實。如是等經中佛說生空。

法空者。如佛說大空經中。十二因緣無明乃至老死。若有人言是老死。若言誰老死皆是邪見。生有取愛受觸六入名色識行無明亦如是。若有人言身卽是神。若言身異於神。是二雖異同爲邪見。佛言。身卽是神。如是邪見非我弟子。身異於神亦是邪見。非我弟子。是經中佛說法空。若說誰老死。當知是虛妄是名生空。若說是老死當知是虛妄是名法空。乃至無明亦如是。

復次佛說梵網經中六十二見。若有人言。神常世間亦常。是爲邪見。若言神無常世間無常是亦邪見。神及世間常亦無常。神及世間非常亦非非常。皆是邪見。以是故知諸法皆空是爲實。

問曰。若言神常應是邪見。何以故。神性無故。若言世間常亦應是邪見。何以故。世間實皆無常。顚倒故言有常。若言神無常亦應是邪見。何以故。神性無故。不應言無常。若言世間無常不應是邪見。何以故。一切有爲法性實皆無常。

答曰。若一切法實皆無常。佛云何說世間無常是名邪見。是故可知非實是無常。

問曰。佛處處說觀有爲法無常苦空無我令人得道。云何言無常墮邪見。

答曰。佛處處說無常。處處說不滅。如摩訶男釋王來至佛所白佛言。是迦毘羅人衆殷多。我或値奔車逸馬狂象鬪人時。便失念佛心。是時自念。我今若死當生何處。佛告摩訶男。汝勿怖勿畏。汝是時不生惡趣必至善處。譬如樹常東向曲。若有斫者必當東倒。善人亦如是。若身壞死時。善心意識長夜以信戒聞施慧熏心故。必得利益上生天上。若一切法念念生滅無常。佛云何言諸功德熏心故必得上生。以是故知非無常性。

問曰。若無常不實。佛何以說無常。

答曰。佛隨衆生所應而說法。破常顚倒故說無常。以人不知不信後世故。說心去後世上生天上。罪福業因緣百千萬劫不失。是對治悉檀。非第一義悉檀。諸法實相非常非無常。佛亦處處說諸法空。諸法空中亦無無常。以是故說世間無常是邪見。是故名爲法空。復次毘耶離梵志名論力。諸梨昌等大雇其寶物令與佛論。取其雇已。卽以其夜思撰五百難。明旦與諸梨昌至佛所。問佛言。一究竟道爲衆多究竟道。佛言。一究竟道無衆多也。梵志言。佛說一道。諸外道師各各有究竟道。是爲衆多非一。佛言。是雖各有衆多皆非實道。何以故。一切皆以邪見著故。不名究竟道。佛問梵志。鹿頭梵志得道不。答言。一切得道中是爲第一。是時長老鹿頭梵志比丘在佛後扇佛。佛問梵志。汝識是比丘不。梵志識之慚愧低頭。是時佛說義品偈。

 

 各各謂究竟  而各自愛著

 各自是非彼  是皆非究竟

 

 是人入論衆  辯明義理時

 各各相是非  勝負懷憂喜

 

 勝者墮憍坑  負者墮憂獄

 是故有智者  不隨此二法

 

 論力汝當知  我諸弟子法

 無虛亦無實  汝欲何所求

 

 汝欲壞我論  終已無此處

 一切智難勝  適足自毁壞

 

如是等處處聲聞經中說諸法空。摩訶衍空門者。一切諸法性常自空。不以智慧方便觀故空。如佛爲須菩提說色。色自空受想行識識自空。十二入十八界十二因緣三十七品十力四無所畏十八不共法大慈大悲薩婆若乃至阿耨多羅三藐三菩提皆自空。

問曰。若一切諸法性常自空眞空無所有者。云何不墮邪見。邪見名無罪無福無今世後世與此無異。

答曰。無罪無福人。不言無今世。但言無後世。如草木之類自生自滅。或人生或人殺。止於現在更無後世生。而不知觀身內外所有自相皆空以是爲異。復次邪見人多行衆惡斷諸善事。觀空人善法尙不欲作。何況作惡。

問曰。邪見有二種。有破因破果。有破果不破因。如汝所說破果不破因。破果破因者。言無因無緣無罪無福則是破因。無今世後世罪福報是則破果。觀空人言皆空。則罪福因果皆無。與此有何等異。

答曰。邪見人於諸法斷滅令空。摩訶衍人知諸法眞空不破不壞。

問曰。是邪見三種。一者破罪福報不破罪福。破因緣果報不破因緣。破後世不破今世。二者破罪福報亦破罪福。破因緣果報亦破因緣。破後世亦破今世。不破一切法。三者破一切法皆令無所有。觀空人亦言眞空無所有。與第三邪見有何等異。

答曰。邪見破諸法令空。觀空人知諸法眞空不破不壞。復次邪見人言諸法皆空無所有。取諸法空相戲論。觀空人知諸法空不取相不戲論。

復次邪見人雖口說一切空。然於愛處生愛。瞋處生瞋。慢處生慢。癡處生癡。自誑其身。如佛弟子實知空心不動。一切結使生處不復生。譬如虛空烟火不能染大雨不能濕。如是觀空。種種煩惱不復著其心。復次邪見人言無所有。不從愛因緣出。眞空名從愛因緣生是爲異。四無量心諸淸淨法。以所緣不實故。猶尙不與眞空智慧等。何況此邪見。

復次是見名爲邪見。眞空見名爲正見。行邪見人今世名爲弊惡人。後世當入地獄。行眞空智慧人今世致譽後世得作佛。譬如水火之異。亦如甘露毒藥天食須陀以比臭糞。復次眞空中有空空三昧。邪見空雖有空而無空空三昧。復次觀眞空人。先有無量布施持戒禪定。其心柔軟。諸結使薄。然後得眞空。邪見中無此事。但欲以憶想分別邪心取空。譬如田舍人。初不識鹽。見貴人以鹽著種種肉菜中而食。問言。何以故爾。語言此鹽能令諸物味美故。此人便念此鹽能令諸物美自味必多。便空抄鹽滿口食之醎苦傷口。而問言。汝何以言鹽能作美。貴人言。癡人。此當籌量多少和之令美。云何純食鹽。無智人聞空解脫門不行諸功德。但欲得空。是爲邪見斷諸善根。如是等義名爲空門。若人入此三門則知佛法義不相違背。能知是事卽是般若波羅蜜力。於一切法無所罣礙。若不得般若波羅蜜法。入阿毘曇門則墮有中。若入空門則墮無中。若入蜫勒門則墮有無中。復次菩薩摩訶薩。行般若波羅蜜。雖知諸法一相亦能知一切法種種相。雖知諸法種種相亦能知一切法一相。菩薩如是智慧名爲般若波羅蜜。

問曰。菩薩摩訶薩。云何知一切法種種相。云何知一切法一相。

答曰。菩薩觀諸法相。所謂有相。因是有諸法中有心生。如是等一切有。

問曰。無法中云何有心生。

答曰。若言無是事卽是有法。復次菩薩觀一切法一相。所謂無相。如牛中無羊相羊中無牛相。如是等諸法中各各無他相。如先言因有故有心生。是法異於有。異故應無。若有法是牛羊亦應是牛。何以故。有法不異故。若異則無。如是等一切皆無。復次菩薩觀一切法一因。是一法諸法中一心生諸法各各有一相。合衆一故名爲二名爲三。一爲實。二三爲虛。復次菩薩觀諸法有所因故有。如人身無常。何以故。生滅相故。一切法皆如是有所因故有。復次一切諸法無所因故有。如人身無常生滅故。因生滅故知無常。此因復應有因。如是則無窮。若無窮則無因。若是因更無因是無常。因亦非因。如是等一切無因。

復次菩薩觀一切法有相。無有法無相者。如地堅重相水冷濕相火熱照相風輕動相虛空容受相。分別覺知是爲識相。有此有彼是爲方相。有久有近是爲時相。濁惡心惱衆生是爲罪相。淨善心愍衆生是爲福相。著諸法是爲縛相。不著諸法是爲解脫相。現前知一切法無礙是爲佛相。如是等一切各有相。

復次菩薩觀一切法皆無相。是諸相從因緣和合生。無自性故無。如地色香味觸四法和合故名地。不但色故名地。亦不但香但味但觸故名爲地。何以故。若但色是地。餘三則不應是地。地則無香味觸。香味觸亦如是。復次是四法云何爲一法。一法云何爲四法。以是故不得以四爲地。亦不得離四爲地。

問曰。我不以四爲地。但因四法故地法生。此地在四法中住。

答曰。若從四法生地。地與四法異。如父母生子子則異父母。若爾者今眼見色鼻知香舌知味身知觸。地若異此四法者。應更有異根異識知。若更無異根異識知則無有地。

問曰。若上說地相有失。應如阿毘曇說地相。地名四大造色。但地種是堅相。地是可見色。

答曰。若地但是色先已說失。又地爲堅相。但眼見色如水中月鏡中像草木影。則無堅相。堅則身根觸知故。復次若眼見色是地。堅相是地種眼見色。亦是水火濕熱相。是水火種。若爾者風風種亦應分別而不分別如說何等是風風種。何等風種風。若是一物不應作二種。答若是不異者。地及地種不應異。

問曰。是四大各各不相離。地中有四種。水火風各有四種但地中地多故。以地爲名。水火風亦爾。

答曰。不然。何以故。若火中有四大應都是熱。無不熱火故。若三大在火中。不熱則不名爲火。若熱則捨自性皆名爲火。若謂細故不可知則與無無異。若有麤可得則知有細。若無麤亦無細。如是種種因緣地相不可得。若地相不可得。一切法相亦不可得。是故一切法皆一相。

問曰。不應言無相。何以故。於諸法無相卽是相。若無無相則不可破一切法相。何以故。無無相故。若有是無相則不應言一切法無相。

答曰。以無相破諸法相。若有無相相則墮諸法相中。若不入諸法相中則不應難。無相皆破諸法相亦自滅相。譬如前火木然諸薪已亦復自然。是故聖人行無相。無相三昧破無相故。

復次菩薩。觀一切法不合不散無色無形無對無示無說一相。所謂無相。如是等諸法一相。云何觀種種相。一切法攝入二法中。所謂名色色無色可見不可見有對無對有漏無漏有爲無爲等。二百二法門如千難品中說。復次有二法。忍辱柔和。又二法親敬供養。二施財施法施。二力慧分別力修道力。二具足戒具足正見具足。二相質直相柔軟相。二法定智。二法明解說。二法世間法第一義法。二法念巧慧。二諦世諦第一義諦。二解脫待時解脫不壞心解脫。二種涅槃有餘涅槃無餘涅槃。二究竟事究竟願究竟。二見知見斷見。二具足義具足語具足。二法少欲知足。二法易養易滿。二法法隨法行。二智盡智無生智。如是等分別無量二法門。

復次知三道。見道修道無學道。三性斷性離性滅性。三修戒修定修慧修。三菩提佛菩提辟支迦佛菩提聲聞菩提。(更不復學智滿足之名也)三乘佛乘辟支迦佛乘聲聞乘。三歸依佛法僧。三住梵住天住聖住。三增上自增上他增上法增上。諸佛三不護身業不護口業不護意業不護。三福處布施持戒善心。三器杖聞器杖離欲器杖慧器杖。三輪變化輪示他心輪敎化輪。三解脫門空解脫門無相解脫門無作解脫門。如是等無量三法門。

復知四法。四念處四正懃四如意足四聖諦四聖種四沙門果四智四信四道四攝法四依四通達善根四道四天人輪四堅法四無所畏四無量心。如是等無量四法門。

復知五無學衆五出性五解脫處五根五力五大施五智五阿那含五淨居天處五治道五智三昧五聖分支三昧五如法語道。如是等無量五法門。

復知六捨法六愛敬法六神通六種阿羅漢六地見諦道六隨順念六三昧六定六波羅蜜。如是等無量六法門。

復知七覺意七財七依止七想定七妙法七智七善人去處七淨七財福七非財福七助定法。如是等無量七法門。

復知八聖道分八背捨八勝處八大人念八種精進八丈夫八阿羅漢力。如是等無量八法門。

復知九次第定九名色等滅(從名色至生死爲九)九無漏智得盡智故除等智也。九無漏地六禪三無色九地思惟道。如是等無量九法門。

復知十無學法十想十智十一切入十善大地佛十力。如是等無量十法門。

復知十一助聖道法。復知十二因緣法。復知十三出法。十四變化心。十五心見諦道。十六安那般那行。十七聖行。十八不共法。十九離地思惟道中一百六十二道。能破煩惱賊。一百七十八沙門果。八十九有爲果。八十九無爲果。如是等種種無量異相法。生滅增減得失垢淨悉能知之。

菩薩摩訶薩知是諸法已。能令諸法入自性空而於諸法無所著。過聲聞辟支佛地。入菩薩位中。入菩薩位中已。以大悲憐愍故。以方便力分別諸法種種名字。度衆生令得三乘。譬如工巧之人。以藥力故。能令銀變爲金金變爲銀。

問曰。若諸法性眞空。云何分別諸法種種名字。何以不但說眞空性。

答曰。菩薩摩訶薩。不說空是可得可著。若可得可著。不應說諸法種種異相。不可得空者無所罣礙。若有罣礙是爲可得。非不可得空。若菩薩摩訶薩。知不可得空。還能分別諸法。憐愍度脫衆生。是爲般若波羅蜜力。取要言之諸法實相。是般若波羅蜜。

問曰。一切世俗經書。及九十六種出家經中。皆說有諸法實相。又聲聞法三藏中。亦有諸法實相。何以不名爲般若波羅蜜。而此經中諸法實相。獨名般若波羅蜜。

答曰。世俗經書中。爲安國全家身命壽樂故非實。外道出家墮邪見法中。心愛著故是亦非實。聲聞法中雖有四諦。以無常苦空無我觀諸法實相。以智慧不具足不利。不能爲一切衆生。不爲得佛法故。雖有實智慧。不名般若波羅蜜。如說佛入出諸三昧。舍利弗等乃至不聞其名。何況能知。何以故。諸阿羅漢辟支佛初發心時。無大願無大慈大悲。不求一切諸功德。不供養一切三世十方佛。不審諦求知諸法實相。但欲求脫老病死苦故。諸菩薩從初發心弘大誓願有大慈悲。求一切諸功德。供養一切三世十方諸佛。有大利智求諸法實相。除種種諸觀。所謂淨觀不淨觀常觀無常觀樂觀苦觀空觀實觀我觀無我觀。捨如是等妄見心力諸觀。但觀外緣中實相。非淨非不淨非常非非常非樂非苦非空非實非我非無我。如是等諸觀不著不得世俗法故非第一義。周遍淸淨不破不壞。諸聖人行處。是名般若波羅蜜。

問曰。已知般若體相是無相無得法。行者云何能得是法。

答曰。佛以方便說法。行者如所說行則得。譬如絶崖嶮道假梯能上。又如深水因船得渡。初發心菩薩。若從佛聞若從弟子聞若於經中聞。一切法畢竟空。無有決定性可取可著。第一實法滅諸戲論。涅槃相是最安隱。我欲度脫一切衆生。云何獨取涅槃。我今福德智慧神通力未具足故。不能引導衆生。當具足是諸因緣。行布施等五波羅蜜。財施因緣故得大富。法施因緣故得大智慧。能以此二施引導貧窮衆生令入三乘道。以持戒因緣故。生人天尊貴。自脫三惡道。亦令衆生免三惡道。以忍辱因緣故。障瞋恚毒得身色端政威德第一。見者歡喜敬信心伏。況復說法。以精進因緣故。能破今世後世福德道法懈怠。得金剛身不動心。以是身心破凡夫憍慢。令得涅槃。以禪定因緣故。破散亂心離五欲罪。樂能爲衆生說離欲法。禪是般若波羅蜜依止處。依是禪般若波羅蜜自然而生。如經中說。比丘一心專定能觀諸法實相。

復次知欲界中多以慳貪罪業閉諸善門。行檀波羅蜜時。破是二事開諸善門。欲令常開故。行十善道。尸羅波羅蜜未得禪定智慧。未離欲故。破尸羅波羅蜜。以是故行忍辱。知上三事能開福門。又知是福德果報無常。天人中受樂還復墮苦。厭是無常福德故。求實相般若波羅蜜。是云何當得。必以一心乃當可得。如貫龍王寶珠。一心觀察能不觸龍。則得價直閻浮提。一心禪定除却五欲五蓋。欲得心樂大用精進。是故次忍辱說精進波羅蜜。如經中說。行者端身直坐繫念在前。專精求定正使肌骨枯朽終不懈退。是故精進修禪。若有財而施不足爲難。畏墮惡道恐失好名。持戒忍辱亦不爲難。以是故上三度中不說精進。今爲般若波羅蜜實相從心求定。是事難故應須精進。如是行能得般若波羅蜜。

問曰。要行五波羅蜜然後得般若波羅蜜。亦有行一二波羅蜜。得般若波羅蜜耶。

答曰。諸波羅蜜有二種。一者一波羅蜜中相應隨行。具諸波羅蜜。二者隨時別行波羅蜜。多者受名。譬如四大共合雖不相離以多者爲名。相應隨行者。一波羅蜜中具五波羅蜜是不離五波羅蜜。得般若波羅蜜。隨時得名者。或因一因一得般若波羅蜜。若人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布施。是時求布施相。不一不異非常非無常非有非無等。如破布施中說。因布施實相解。一切法亦如是。是名因布施得般若波羅蜜。或有持戒不惱衆生心無有悔。若取相生著則起諍競。是人雖先不瞋衆生。於法有憎愛心故而瞋衆生。是故若欲不惱衆生。當行諸法平等。若分別是罪是無罪則非行尸羅波羅蜜。何以故。憎罪愛不罪。心則自高還墮惱衆生道中。是故菩薩。觀罪者不罪者心無憎愛。如是觀者。是爲但行尸羅波羅蜜。得般若波羅蜜。菩薩作是念若不得法忍則不能常忍。一切衆生未有逼迫能忍。苦來切已則不能忍。譬如囚畏杖楚而就死苦。以是因緣故。當生法忍。無有打者罵者亦無受者。但從先世顚倒果報因緣故。名爲受。是時不分別是忍事忍。法忍者深入畢竟空故。是名法忍。得是法忍。常不復瞋惱衆生。法忍相應慧。是般若波羅蜜。精進常在一切善法中。能成就一切善法。若智慧籌量分別諸法。通達法性。是時精進助成智慧。又知精進實相離身心如實不動。如是精進能生般若波羅蜜。餘精進如幻如夢。虛誑非實是故不說。若深心攝念。能如實見諸法實相。諸法實相者。不可以見聞念知能得。何以故。六情六塵皆是虛誑因緣果報。是中所知所見皆亦虛誑。是虛誑知都不可信。所可信者。唯有諸佛於阿僧祇劫所得實相智慧。以是智慧依禪定一心觀諸法實相。是名禪定中生般若波羅蜜。或有離五波羅蜜。但聞讀誦思惟籌量。通達諸法實相。是方便智中。生般若波羅蜜。或從二或三四波羅蜜。生般若波羅蜜。如聞說一諦而成道果。或聞二三四諦而得道果。有人於苦諦多惑故。爲說苦諦而得道。餘三諦亦如是。或有都惑四諦故。爲說四諦而得道。如佛語比丘。汝若能斷貪欲。我保汝得阿那含道。若斷貪欲當知恚癡亦斷。六波羅蜜中亦如是。爲破多慳貪故。說布施法。當知餘惡亦破。爲破雜惡故具爲說六。是故或一一行。或合行普爲一切人故。說六波羅蜜。非爲一人。復次若菩薩不行一切法不得一切法故得般若波羅蜜。所以者何。諸行皆虛妄不實。或近有過或遠有過。如不善法近有過罪。善法久後變異時。著者能生憂苦。是遠有過罪。譬如美食惡食俱有雜毒。食惡食卽時不悅。食美食卽時甘悅。久後俱奪命故。二不應食。善惡諸行亦復如是。

問曰。若爾者佛何以說三行梵行天行聖行。

答曰。行無行故名爲聖行。何以故。一切聖行中。不離三解脫門故。梵行天行中因取衆生相故生。雖行時無過後皆有失。又卽今求實皆是虛妄。若賢聖以無著心行此二行則無咎。若能如是行無行法皆無所得。顚倒虛妄煩惱畢竟不生。如虛空淸淨故。得諸法實相。以無所得爲得。如無所得般若中說。色等法。非以空故空從本已來常自空。色等法。不以智慧不及故無所得。從本已來常自無所得。是故不應問行幾波羅蜜得般若波羅蜜。諸佛憐愍衆生隨俗故。說行非第一義。

問曰。若無所得無所行。行者何以求之。

答曰。無所得有二種。一者世間欲。有所求不如意。是無所得。二者諸法實相中。受決定相。不可得故。名無所得。非無有福德智慧增益善根。如凡夫人分別世間法故有所得。諸善功德亦如是。隨世間心故說有所得。諸佛心中則無所得。

是略說般若波羅蜜義。後當廣說。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