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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시화(惺叟詩話)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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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시화

1. 崔孤雲學士之詩。在唐末亦鄭谷。 韓偓之流。 率佻淺不厚。 최고운학사의 시는 당나라 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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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수시화(惺搜詩話) - 허균.

    ◈ 성수시화(惺搜詩話) - 허 균.     허균은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문인으로 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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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자주]허균 선생이 정리한 <성수시화>를 통해서 한문 독해 공부도 할 겸, 한국 한시의 걸작을 감삼상하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한다. 그는 조선 중기 삼당파 시인의 한 분이신 손곡 이달에게서 시를 배웠으니 시의 역사성보다는 시의 본령인 서정성에 초점을 두고 발췌했으리라 추정된다.

시화의 본문은 82편으로 구성되었다.

허 균 / 성수시화(惺搜詩話)

허균은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문인으로 자는 단보(端甫), 호는 교산(蛟山)∙성소(惺所)이다. 1585년 한성부 초시에 합격한 이래 여러 요직과 외직을 거쳐 병조판서까지 지냈으며, 역모를 했다는 혐의로 처형 당했다.

시 비평집학산초담(鶴山樵談), 성수시화(惺叟詩話)를 엮었으며, 시선집 국조시산(國朝詩刪), 중국의 문장을 뽑은 선집 여러 권을 펴냈다. 그의 글은 귀양지인 부안에서 스스로 엮은 문집 성소부부고(惺所覆·藁)로 남아있다.

홍길동전의 저자로 널리 알려진 그는, 빼어난 감성으로 당시풍(唐詩風)의 시를 썼을 뿐만 아니라 상식을 뒤엎는 행동으로 세상을 놀라게 하였다.

소수자들에 대한 옹호를 분명히 하는 혁명적인 글을 다수 썼으며, 실제로 그러한 사람들과 즐겨 어울렸다. 자신의 생각을 간결하고도 감성적으로 담아내는 소품문(小品文)을 통해서 당대 문단에 새로운 분위기를 일으켰다.

 

성수시화인(惺叟詩話引)-허균(許筠)

 

 

我國自唐末以至今日(아국자당말이지금일) :

 

우리나라는 당 나라 말기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操觚爲詩者殆數千家(조고위시자태수천가) :

 

붓을 쥐고 시를 지은 사람들이 거의 수천 명이 될 것이나

 

而世遠代邈(이세원대막) : 세대가 멀어져서

 

堙沒不傳者(인몰불전자) : 인몰되고 전하지 못하는 자

 

亦過其半(역과기반) : 또한 그 반을 넘고 있다.

 

況經兵燹(황경병선) : 더구나 전란을 겪음으로써

 

載籍略盡(재적략진) : 서적이 거의 없어지고 말았으니

 

爲後學者何從考其遺跡(위후학자하종고기유적호) :

 

뒷날 공부하는 자가 무엇을 가지고 그 남긴 자취를 살필 수 있을지

 

深可慨已(심가개이) : 깊이 개탄스러울 따름이다.

 

 

不佞少習聞兄師之言(불녕소습문형사지언) :

 

나는 어려서 형과 스승들의 말을 익히 듣고,

 

稍長(초장) : 차츰 자라나

 

任以文事(임이문사) : 문사(文事)로 자임(自任)하여 온 지

 

于今三十年矣(우금삼십년의) : 이제 30년이라

 

其所記覽(기소기람) : 기억하고 보아 온 바가

 

不可謂不富(불가위불부) : 적다 할 수 없으며,

 

而亦嘗妄(이역상망) : 또한 일찍이 망령되나마

 

有涇渭乎中(유경위호중) : 청탁(淸濁)의 구분을 마음속에 지니기도 했었다.

 

 

丁未歲(정미세) : 정미년(1607)에

 

刪東詩訖(산동시흘) : 동시(우리나라의 시)의 산정(刪定)을 마치고

 

又著詩評(우저시평) : 또 시평(詩評)을 지었는데,

 

其於東人(기어동인) : 그 동인(東人)으로서

 

稍以詩見於傳記者(초이시견어전기자) : 자못 시로써 전기(傳記)에 나타난 자와

 

及所嘗耳聞目見者(급소상이문목견자) : 일찍이 귀로 듣고 눈으로 본 자들을

 

悉博採幷羅(실박채병라) : 다 함께 널리 채택하고 아울러 망라해서

 

無不雌黃而評騭之(무불자황이평즐지) : 모두 시비를 가리고 평론을 가한 것으로

 

凡二卷(범이권) : 무릇 두 권이었다.

 

 

其所品藻(기소품조) : 그 골라 놓은 시구가

 

或乖大雅(혹괴대아) : 혹 대아(大雅)의 안목에 어그러질지는 모르나

 

而搜訪之殷(이수방지은) : 찾아 본 자료의 풍부함은

 

足備一代文獻也(족비일대문헌야) : 충분히 한 시대의 문헌을 갖추었다 할 만하다.

 

 

書成(서성) : 글이 이루어지자

 

削其稿(삭기고) : 그 원고를 다듬어

 

只書二件(지서이건) : 다만 두 벌을 써서,

 

一在浪州失去(일재랑주실거) : 하나는 낭주(浪州)에 두었는데 잃어버렸고

 

一在京邸遺佚(일재경저유일) : 또 하나는 서울 집에 두었는데 없어지고 말았으니,

 

此殆六丁下取將否(차태륙정하취장부) :

 

이는 아마 육정(도교의 신)이 내려와 가져간 것인가?

 

 

 

欲更記載(욕경기재) : 다시 기재하려 해도

 

而不敢犯天忌(이불감범천기) : 감히 하늘의 꺼림을 범하지 못해

 

聊以縮手耳(료이축수이) : 잠자코 있을 뿐이었다.

 

 

辛亥歲(신해세) : 신해년(1611)에

 

俟罪咸山(사죄함산) : 함산에 귀양가게 되자

 

閑無事(한무사) : 한가하여 일이 없으므로

 

因述所嘗談話者(인술소상담화자) : 일찍이 담화(談話)하던 것을

 

著之于牘(저지우독) : 기술하여

 

旣而看之(기이간지) : 종이에 옮겨 쓰고 나서 보니

 

亦自可意(역자가의) : 또한 마음에 들어

 

命之曰詩話(명지왈시화) : 이를 시화(詩話)라 이름하니

 

凡九十六款(범구십륙관) : 무릇 96관(款)이었다.

 

 

其上下八百餘年之間(기상하팔백여년지간) : 그 상하 8백 년 사이에

 

所蒐出者只此(소수출자지차) : 뽑은 것이 다만 이에 그치니

 

似涉太簡(사섭태간) : 너무 간략한 것도 같지만

 

而要之亦盡之已(이요지역진지이) : 요컨대 이 역시 마음을 다 썼을 뿐이니

 

觀者詳焉(관자상언) : 보는 자는 짐작이 있을 것이다.

 

是歲四月之念日(시세사월지념일) : 이해 4월 20일에

 

蛟山題(교산제) : 교산(蛟山)은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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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산인전(張山人傳)-허균(許筠)

  장산인전(張山人傳)-허균(許筠) 張山人名漢雄(장산인명한웅) : 장산인(張山人)의 이름은 한웅(漢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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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산인전(張山人傳)-허균(許筠)

 

張山人名漢雄

(장산인명한웅) : 장산인(張山人)의 이름은 한웅(漢雄)인데

不知何許人也

(불지하허인야) : 어떠한 내력을 지닌 사람임은 알 수 없다.

自其祖三世業痬醫

(자기조삼세업痬의) : 그의 할아버지로부터 3대에 걸쳐 양의(외과의사) 업무에 종사했었다.

其父嘗餌商陸

(기부상이상륙) : 그의 아버지는 전에 상륙(한약재 이름)을 먹고서

能視鬼而役使之

(능시귀이역사지) : 귀신을 볼 수도, 부릴 수도 있었다 한다.

年九十八

(년구십팔) : 나이 98세 때

如四十許人

(여사십허인) : 40 정도로 보였는데,

出家去莫知所終

(출가거막지소종) : 출가(出家)하여 가신 곳도 알지 못했다.

臨行

(림행) : 그분이 집을 떠날 때,

以二卷付之

(이이권부지) : 2권의 책을 아들에게 주었으니

乃玉樞經及運化玄樞也

(내옥추경급운화현추야) : 바로 <옥추경>과 <운화현추>였다.

 

山人受之

(산인수지) : 산인(山人 장한웅(張漢雄))이 그걸 받아

讀數萬遍

(독수만편) : 수만 번을 읽고나자,

亦能呼召神鬼

(역능호소신귀) : 역시 귀신을 부릴 수 있었고

治瘧癘

(치학려) : 학질(瘧疾)도 낫게 할 수 있었다.

輒已之

(첩이지) : 그런데 갑자기 하던 일을 그만두고는,

四十出家入智異山

(사십출가입지이산) : 마흔살에 출가(出家)하여 지리산(智異山)으로 입산하였다.

嘗逢異人

(상봉이인) : 그곳에서 곧 이인(異人)을 만나

受煉魔法

(수련마법) : 연마법(煉魔法)을 배웠고.

又讀修眞十書

(우독수진십서) : 또 도교(道敎)의 진리에 관한 10권의 책을 읽었다.

坐空菴

(좌공암) : 빈 암자(菴子)에 앉아

不食三年餘

(불식삼년여) : 거의 먹지도 않으면서 3년을 보냈다.

 

一日行峽中

(일일행협중) : 하루는 계곡을 지나는데,

二僧隨之

(이승수지) : 두 사람의 중[僧]이 그를 따랐다.

至林薄間

(지림박간) : 우거진 숲 사이에 이르자,

有雙虎出而伏迎

(유쌍호출이복영) : 두 마리의 호랑이가 나타나 엎드려서 맞아 주고 있었다.

山人叱之

(산인질지) : 산인이 꾸짖자,

虎弭耳搖尾

(호미이요미) : 호랑이들은 귀를 내리고 꼬리를 흔들며

若乞命者

(약걸명자) : 살려 달라고 애걸하는 태도를 보였다.

山人自騎其一

(산인자기기일) : 산인 자신이 한 호랑이에 올라타고,

令二僧竝跨其一

(령이승병과기일) : 두 중으로 하여금 함께 다른 하나에 타게 하여

至寺門虎伏而退去(지사문호복이퇴거) : 절[寺] 문 앞에 이르자 호랑이들이 내려 놓고 물러가 버렸다.

 

住山十八年(주산십팔년) : 산에서 머문 지 18년 만에

而回至洛居于奐仁門外

(이회지락거우환인문외) : 서울로 돌아와 흥인문(興仁門) 밖에서 살았다.

六十而貌不衰

(륙십이모불쇠) : 나이가 60세였으나 용모는 정정하였다.

 

隣有空宅

(린유공댁) : 이웃에 비워 둔 집이 있는데,

凶不可入

(흉불가입) : 흉측하여 거처할 수가 없자,

其主請禳之

(기주청양지) : 그 집의 주인이 귀신을 물리쳐 달라고 그에게 청했다.

山人夜詣之

(산인야예지) : 산인이 밤에 그 집으로 가 보았다.

有神二人來跪曰

(유신이인래궤왈) : 두 명의 귀신이 와서 꿇어 앉아 말하기를,

吾門竈神也

(오문조신야) : "우리는 문(門) 귀신과 부엌 귀신입니다.

有妖蛇據之

(유요사거지) : 요사스러운 뱀이 이 집을 차지하고서

售其奸

(수기간) : 사한 짓을 하고 있으니

請誅之

(청주지) : 제발 그것을 죽여 주십시오."하면서,

卽指庭中大槐根

(즉지정중대괴근) : 곧 뜰 가운데의 큰 홰나무 밑둥을 가리켰다.

山人呪水噴之

(산인주수분지) : 산인(山人)이 주술(呪術)의 물을 뿜어내자

有頃大蛇人面者目如鏡蜿蜒

(유경대사인면자목여경완연) : 조금 뒤에 사람 얼굴 모습의 큰 뱀이 번쩍거리는 눈빛으로

以出其半而斃

(이출기반이폐) : 절반도 나오지 못한 채 죽어버렸다.

令焚之

(령분지) : 그것을 태워버리게 하자

宅遂淸

(댁수청) : 집은 마침내 깨끗해졌다.

 

與人游箭串捉魚

(여인유전관착어) : 사람들과 어울려 놀면서 화살로 꽂아 물고기를 잡으면,

山人擇死者盛於水盆

(산인택사자성어수분) : 산인이 죽은 것만 골라서 물동이에 넣고는

以匙藥投之

(이시약투지) : 숟갈로 약을 떠 넣는다.

魚更活洋洋然

(어경활양양연) :그러면 물고기가 다시 살아나 유유히 헤엄치곤 하였다.

人試以死雉

(인시이사치) : 사람들이 죽은 꿩으로 시험해 보라고 하자,

又以七藥納口中

(우이칠약납구중) : 또 숟갈에 약을 묻혀 입 속으로 넣으면

卽奮迅而活

(즉분신이활) : 훨훨 날개를 치며 살아나곤 하였다.

人皆怪之曰

(인개괴지왈) : 사람들이 모두 이상스럽게 여겨 이르기를

死人亦可蘇否

(사인역가소부) : "죽은 사람도 다시 살려낼 수 있습니까?"물으면,

山人曰

(산인왈) : 산인(山人)이 말하기를

凡人生而咨其情

(범인생이자기정) : "일반 사람들이란 태어나면서 그 정(情)이 방자하여

三魂七魄

(삼혼칠백) : 삼혼과 칠백

離宅舍者三年

(리댁사자삼년) : 택사(宅舍)에서 떠난 사람도 3년이 지난 뒤에야

然後方絶

(연후방절) :끊어지니

不可以藥返之也

(불가이약반지야) : 약으로써는 살려낼 수가 없다."고 대답하였다.

山人繆爲不解文而文自好

(산인무위불해문이문자호) : 산인(山人)은 사실과는 다르게 글자를 해독하지 못한다고 했지만 글만 잘 지어 냈고,

且稱雀眼夜不出

(차칭작안야불출) : 또 밤눈이 어둡다고 말하며 밤에 바깥 출입을 않으면서도

而能於昏讀細字

(이능어혼독세자) : 어두운 곳에서 잔 글씨도 읽을 수 있었다.

其他雜技戲如布甁盛酒

(기타잡기희여포병성주) : 그 이외의 잡기(雜技) 놀이로, 베로 만든 병에 술을 담는 거나

紙罐構火等事

(지관구화등사) : 종이로 만든 그릇에 불을 피우는 것과 같은 일 등

眩耀世人者不可紀

(현요세인자불가기) : 세상 사람의 눈을 휘둥거리게 한 것들이 모두 기록할 수 없이 많았다.

卜人李和方有名

(복인리화방유명) : 점쟁이[卜人] 이화(李和)란 사람이 점 잘 치기로 한창 유명했었는데,

山人第視之

(산인제시지) : 산인은 자기보다 아랫수로 여겼다.

常觀其算命有謬

(상관기산명유류) : 그가 점치는 것을 볼 때마다 잘 맞히지 못하면

則山人輒改之

(칙산인첩개지) : 산인이 고쳐서 말해주는데

言皆中

(언개중) : 모두 적중되는 말이어서

 

和不敢贊一辭

(화불감찬일사) : 이화가 한마디도 감히 보태질 못했다.

和曰

(화왈) : 이화가 이르기를

山人左右

(산인좌우) : "산인(山人)의 좌우에는

常有三百神衛之

(상유삼백신위지) : 항상 3백 명의 귀신들이 호위하고 있으니

眞異人也

(진이인야) : 참으로 이인(異人)이다."하였다.

 

壬辰亂日

(임진란일) : 임진 왜란(壬辰倭亂)이 일어났을 때

山人年七十四

(산인년칠십사) : 산인의 나이는 74세였다.

處其家分與諸姪

(처기가분여제질) : 그는 가산(家産)을 처리하여 조카들에게 나누어 주고는,

一衲携筇

(일납휴공) : 승복(僧服)에 지팡이 하나만 짚고

五月入逍遙山

(오월입소요산) : 5월에 소요산(逍遙山)으로 입산하였다.

語僧曰

(어승왈) : 그곳의 중에게 이르기를,

今年命當訖

(금년명당흘) : "금년은 나의 명(命)이 다하는 해이니

須焚葬之

(수분장지) : 반드시 화장(火葬)해 달라."고 말하였다.

未久

(미구) : 오래지 않아

賊至

(적지) : 적군이 들어와

坐而受刃

(좌이수인) : 앉은 채로 칼에 찔렸는데,

其血如白膏

(기혈여백고) : 그의 피는 하얀 기름 같았으며

立不僵

(립불강) : 시체가 엎어지지도 않았다.

俄而大雷雨

(아이대뢰우) : 잠시 후에 큰 뇌성을 치며 비가 내리자

賊懼而去

(적구이거) : 적군은 겁이 나서 가버렸다.

 

山僧茶毗

(산승다비) : 산승(山僧)이 다비(茶毗)를 하자

則瑞光瞩天三晝夜

(칙서광촉천삼주야) : 서광(瑞光)이 3일 동안 밤낮으로 하늘에 잇대어 있었고

得舍利七十二粒

(득사리칠십이립) : 사리(舍利) 72개를 얻었다.

其大如芡實也

(기대여검실야) : 그 중에서 큰 것은 가시연[芡] 열매만큼 컸었고,

紺碧

(감벽) : 감청(紺靑)의 빛깔을 띠었다.

藏之塔中

(장지탑중) : 모두를 탑(塔) 속에 매장해 두었다.

 

是年九月

(시년구월) : 이 해 9월에

山人至江華鄭䨜家

(산인지강화정붕가) : 산인(山人)은 강화도(江華島)에 사는 정붕(鄭䨜)의 집에 왔었는데,

䨜不知其死

(䨜불지기사) : 정붕은 그의 죽음을 몰랐으며

留三日去

(류삼일거) : 3일이나 머물다가 가면서

自言往金剛山

(자언왕금강산) : 금강산으로 간다고 말하더란다.

明年方知其死

(명년방지기사) : 다음 해에야 비로소 그가 죽었음을 알았는데,

人謂劍解也

(인위검해야) :사람들은, 죽은 뒤에

䨜亦遇異人

(붕역우이인) : 신선(神仙)이 된 사람이었다고 하였다.

 

善占侯風鑑

(선점후풍감) : 정붕(鄭䨜)이란 사람 또한 이인(異人)을 만나서 점(占)을 잘 치고

象律家

(상률가) : 관상을 잘 보던 상률가(象律家)였다.

言多奇中

(언다기중) : 하는 말마다 대부분 기이하게 적중하였으며

爲齋郞不受

(위재랑불수) : 재랑(齋郞 참봉(參奉))을 제수(除授)했으나 받지를 않았다.

或言其能役鬼

(혹언기능역귀) : 혹자는, 그가 귀신을 부릴 수 있었는데

早卒

(조졸) : 젊어서 죽었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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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균은 조선시대 첨지중추부사, 형조참의, 좌참찬 등을 역임한 문신이며 문인이였다. 또한 조선 최초의 양명학자였다. 조선시대 사회모순을 비판한 소설 《홍길동전()》을 집필하였다. 그외 작품으로 《한년참기()》, 《한정록()》 등이 있다. 

본관은 양천(). 자는 단보(), 호는 교산()·학산()·성소()·백월거사(). 아버지는 서경덕(徐敬德)의 문인으로서 학자·문장가로 이름이 높았던 동지중추부사()엽()이다. 어머니는 강릉 김씨()로서 예조판서광철()의 딸이다. 임진왜란 직전 일본통신사의 서장관으로 일본에 다녀온 성()이 이복형이다. 문장으로 이름 높았던 봉()과 난설헌()과 형제이다.

 

허균

 

허균은 5세 때부터 글을 배우기 시작해 9세 때에 시를 지을 줄 알았다. 1580년(선조 13) 12세 때에 아버지를 잃고 더욱 문학 공부에 전념했다. 학문은 유성룡(柳成龍)에게 배웠다. 시는 삼당시인()의 하나인 이달(李達)에게 배웠다. 이달은 둘째 형의 친구로서 당시 원주의 손곡리()에 살고 있었다. 그에게 시의 묘체를 깨닫게 해주었다. 인생관과 문학관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이후 허균은 「손곡산인전(蓀谷山人傳)」을 지어 그를 기렸다.

허균은 26세 때인 1594년(선조 27)에 정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고 설서()를 지냈다. 1597년(선조 30)에는 문과 중시()에 장원을 했다. 이듬해에 황해도도사()가 되었으나 서울의 기생을 끌어들여 가까이했다는 탄핵을 받고 부임한지 6달 만에 파직됐다.

그 뒤에 춘추관기주관()·형조정랑을 지냈다. 1602년(선조 35)사예()·사복시정()을 역임했다. 이 해에 원접사이정구(李廷龜)의 종사관이 되어 활약했다. 1604년(선조 37)수안군수()로 부임했으나 불교를 믿는다는 탄핵을 받아 또다시 벼슬길에서 물러났다.

허균은 1606년에 명나라 사신 주지번()을 영접하는 종사관이 되어 글재주와 넓은 학식으로 이름을 떨쳤다. 누이 난설헌의 시를 주지번에게 보여 이를 중국에서 출판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 공로로 삼척부사가 됐다.

그러나 세 달이 못 되어 불상을 모시고 염불과 참선을 한했다는 탄핵을 받아 쫓겨났다. 그 뒤에 공주목사로 기용되어 서류()들과 가까이 지냈다. 또다시 파직 당한 뒤에는 부안으로 내려가 산천을 유람하며 기생 계생()을 만났다. 천민 출신의 시인 유희경(柳希慶)과도 교분이 두터웠다.

허균은 1609년(광해군 1)에 명나라 책봉사가 왔을 때에 이상의(李尙毅)의 종사관이 됐다. 이 해에 첨지중추부사()가 되고 이어 형조참의가 됐다. 1610년(광해군 2)에 전시(殿)의 시험을 주관하면서 조카와 사위를 합격시켰다는 탄핵을 받아 전라도 함열(咸悅)로 유배됐다. 그 뒤에 몇 년간은 태인()에 은거했다.

1610년(광해군 2) 진주부사(使)로 명나라에 가서 한국 최초의 천주교 신도가 되었고, 천주교 12단()을 얻어왔다. 같은 해 시관()이 되었으나 친척을 참방()했다는 탄핵을 받고 파직 후 태인()으로 물러났다. 명나라에 여러차례 다녀오면서 수천권의 서적을 가져왔는데 이때 양명학을 접하게 되었고 특히 양명학 극좌파에 속하는 태주학파 이탁오의 영향을 받았다. 당시 조선은 주자학이 주류를 이루었으며 이외의 학설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허균은 주자학(성리학)의 허구성을 비판하였고 예학이 중심이 된 외곡된 학문을 개혁하고 민중을 위한 실용적 학문으로 조선사회의 변화를 추구했다. 문학적으로도 일정한 시문의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표현을 사용했다. 또한 불교에도 심취하였다.

허균은 1613년(광해군 5) 계축옥사에 평소 친교가 있던 서류출신의 서양갑(徐羊甲)·심우영(沈友英)이 처형당하자 신변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하여 이이첨(李爾瞻)에게 아부해 대북()에 참여했다. 1614년에 천추사(使)가 돼 중국에 다녀왔다. 그 이듬해에는 동지 겸 진주부사(使)로 중국에 다녀왔다. 두 차례의 사행에서 많은 명나라 학자들과 사귀었으며 귀국할 때에 『태평광기()』를 비롯해 많은 책을 가지고 왔다. 그 가운데에는 천주교 기도문과 지도가 섞여 
 
있었다고 한다.
 
허균은 1617년(광해군 9)좌참찬이 됐다. 폐모론을 주장하다가 폐모를 반대하던 영의정기자헌(奇自獻)과 사이가 벌어졌고 기자헌은 길주로 유배를 가게 됐다. 그 아들 기준격(奇俊格)이 아버지를 구하기 위하여 허균의 죄상을 폭로하는 상소를 올리니 허균도 상소를 올려 변명했다

광해군10년(1618) 8월 24일, 창덕궁의 정전인 인정전 문 앞에서 살벌한 국문이 열렸다. 이른바 허균의 역모사건과 관련된 국문이었다. 바로 이전 해 12월 기준격이 비밀상소를 올렸다. 그 내용은 허균이 영창대군을 옹립하려고 했다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기준격의 상소로 인해 시작된 허균과 관련된 논란은 본인 스스로 무고함을 주장하기도 하였으나 해를 넘기게 되었다. 그리고 광해군 10년 남대문에 한 장의 격문이 나붙었는데 이것이 결국 허균의 외가 서얼인 현응민의 소행으로 판명되면서 더 이상 허균은 역모 혐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었다.

당시 허균의 죄상으로 거론되던 대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즉 무오년(광해군 10년, 1618년) 무렵에 여진족의 침범이 있자. 중국에서 군사를 동원하였다. 그러자 조선이 여진의 본고장인 건주()에서 가까워 혹시 있을지도 모를 여진의 침략으로 인심이 흉흉하고 두려워하는데 허균은 긴급히 알리는 변방의 보고서를 거짓으로 만들고 또 익명서를 만들어, “아무 곳에 역적이 있어 아무 날에는 꼭 일어날 것이다.” 하면서 서울 도성 안 사람을 공갈하였다. 또한 허균은 밤마다 사람을 시켜 남산에 올라가서 부르짖기를, “서쪽의 적은 벌써 압록강을 건넜으며, 유구국() 사람은 바다 섬 속에 와서 매복하였으니, 성 안의 사람은 나가서 피하여야 죽음을 면하게 될 것이다.”고 하였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노래를 지어, “성은 들판보다 못하고, 들판은 강을 건너니만 못하다.” 하였다. 또 소나무 사이에 등불을 달아놓고 부르짖기를, “살고자 하는 사람은 나가 피하라.”고 하니, 인심이 놀라고 두려워하여 아침저녁으로 안심할 수 없어 서울 안의 인가()가 열 집 가운데 여덟아홉 집은 텅 비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김윤황을 사주해서 격문을 화살에 매어 경운궁 가운데 던지게 한 것, 남대문에 붙여진 격문이 허균이 했다는 것 등이다.

허균을 둘러싼 이같은 의혹에 대해서 이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 [광해군일기]에서는 이것이 당시 대북 정권의 핵심이었던 이이첨과 한찬남이 허균 등을 제거하기 위해 모의한 것이라고 기록하였다. 오늘날 이 옥사의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란 쉽지 않다. 또 그럴 필요도 없다. 다만 광해군 10년 8월 24일 인정전 문에서의 국문은, 허균이 자신이 비록 죄를 인정하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국문을 끝으로 생을 마감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한때 정치적 동지였던 기자헌은 허균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예로부터 죄인에게 형장()을 가하며 신문하지 않고 사형이 결정된 문서도 받지 않은 채 단지 죄인의 범죄 사실을 진술한 말로만 사형에 처한 죄인은 없었으니 훗날 반드시 이론이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허균은 그의 동료들과 함께 저자거리에서 능지처참을 당하였다.

허균은 시문()에 뛰어난 천재로 여류시인 허난설헌()의 동생이며 소설 《홍길동전()》은 사회모순을 비판한 조선시대 대표적 걸작이다. 작품으로 《교산시화()》, 《성소부부고()》, 《성수시화()》, 《학산초담()》, 《도문대작()》, 《한년참기()》, 《한정록()》, 《남궁선생전》  등이 있다.

[홍길동전]은 최초의 한글 소설로서, 우리 국문학사상 중요한 위치를 점한다. [홍길동전]하면 허균, 허균하면 [홍길동전]을 떠올리는 것은 무리는 아니다. 그런 만큼 [홍길동전]은 허균의 생애와 사고를 응축해 놓은 결정판이라고 평가되고 있다. 물론 최근에 [홍길동전]의 찬자와 관련해서 이견이 있기는 하다.

 

 



 

광해군 시대 조선 최초의 양명학자 허균

허균은 조선시대 첨지중추부사, 형조참의, 좌참찬 등을 역임한 문신이며 문인이였다. 또한 조선 최초의 양명학자였다. 조선시대 사회모순을 비판한 소설 《홍길동전(洪吉童傳)》을 집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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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 시대 조선 최초의 양명학자 허균

허균은 조선시대 첨지중추부사, 형조참의, 좌참찬 등을 역임한 문신이며 문인이였다. 또한 조선 최초의 양명학자였다. 조선시대 사회모순을 비판한 소설 《홍길동전(洪吉童傳)》을 집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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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처사전(嚴處士傳)-허균(許筠)


嚴處士名忠貞(엄처사명충정) : 엄 처사(嚴處士)는 이름이 충정(忠貞),

江陵人也(강릉인야) : 강릉(江陵) 사람이었다.

父早卒(부조졸) :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家甚貧(가심빈) : 집안이 무척 가난하여

躬薪水自給(궁신수자급) : 몸소 땔감과 먹을 것을 마련하였다.

養其母極孝(양기모극효) : 그 어머니를 봉양하는 데 효성을 다하여

晨夕不離側(신석불리측) : 새벽이나 저녁에는 곁에서 떠나지도 않았다.

母稍恙則不解帶寢(모초양칙불해대침) : 어머니가 조금만 편찮으면 마음 편하게 잠자리에 들지도 않으며,

手調膳以進(수조선이진) : 손수 음식을 만들어 드시게 하였다.

母嗜山雀(모기산작) : 어머니가 비둘기 고기를 즐겨하자,

結網膠竿(결망교간) : 그물을 짜고 간대에 갖풀을 붙여서라도

必獲以供之(필획이공지) : 기필코 잡아다가 대접하였다


其母勸令學取第(기모권령학취제) : 그 어머니가 글을 배워 과거를 보도록 타이르자,

益孜孜着力於問學(익자자착력어문학) : 더욱 열심히 글을 배우는 데에 힘을 기울였다.

爲詩賦甚古(위시부심고) : 시부(詩賦)를 아주 아건(雅健)하게 지어 내서

屢擢鄕解(루탁향해) : 여러번 향시(鄕試)에 뽑혔고,

得司馬以榮之(득사마이영지) :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여 어머니를 기쁘게 하였다.


於書無所不通(어서무소불통) : 책이라면 통하지 않은 것이 없었으나,

而尤遂於易中庸(이우수어역중용) : 유독《주역(周易)》과《중용(中庸)》에 깊이 파고들어

理致超詣(리치초예) : 이치에 높고 멀리 나아가,

所著文墨(소저문묵) : 저술한 글들이

與河洛相契(여하락상계) : 하도낙서와 서로 부합되는 경지였다.

母病殆(모병태) : 어머니 병환이 위독하여

以身禱於天(이신도어천) : 자기를 데려가고 어머니 살려 주기를 하늘에 기도했지만,

不獲祜(불획호) : 회생하지 못하자

水漿不御數旬(수장불어수순) : 여러날 동안 물도 마시지 않아

杖而起(장이기) : 지팡이를 짚어야 일어날 정도였다.

三年廬啜粥(삼년려철죽) : 3년간 여묘(廬墓) 살이에도 죽만 마셨다.


制訖(제흘) : 복제(服制)를 마치자,

朋友勸應擧(붕우권응거) : 벗들이 과거에 응하기를 권했다.

處士泣曰(처사읍왈) : 처사(處士)는 울면서. 이르기를

吾爲老母也(오위로모야) : "나는 늙은 어머니를 위해서 과거보려 하였다.

今奚赴爲(금해부위) : 이제 왜 과거를 보아

身榮而母不享(신영이모불향) : 내 몸만 영화롭게 하고 어머니는 누릴 수 없게 하랴.

吾不忍是(오불인시) : 나는 차마 그럴 수는 없다."하면서

悲咽不止(비인불지) :목메인 울음을 그치지 않으니,

人莫敢更言(인막감경언) : 남들이 감히 다시는 말하지 못하였다.


晩年移居羽溪縣(만년이거우계현) : 만년(晩年)에 우계현으로 이사와 살며

擇山水幽絶處(택산수유절처) : 산수(山水)가 유절(幽絶)한 곳을 택하여

構茆舍(구묘사) : 띠집[茆舍]을 짓고,

若將終身焉(약장종신언) :거기서 일생을 마치려 하였다.

窮乏不自聊(궁핍불자료) : 궁핍하여 제 몸을 의탁하지 못했으나

晏如也(안여야) : 마음만은 편안하게 살았다.


爲人和粹夷曠(위인화수이광) : 사람됨이 화평하고 순수하며, 평탄하고 툭 트여

不與人忤(불여인오) : 남들과 거슬리지 않았다.

恒居肫肫如也(항거순순여야) : 평상시에는 공손하고 지성스러웠으나

及至鄕評臧否(급지향평장부) : 고을에서의 잘잘못을 평하거나,

辭受取與之間(사수취여지간) : 사양하고 받으며 취하고 주어야 할 것들에 있어서는

截然不可犯(절연불가범) : 확고부동하여 범할 수가 없었고,

一切以義裁之(일절이의재지) : 일체를 의(義)로만 재단하자

鄕人皆受而敬之(향인개수이경지) : 고을 사람들이 모두 사랑하고 공경하였다.


訓誨後進(훈회후진) : 제자들을 교육시킬 때도

必以忠孝爲先(필이충효위선) : 반드시 충효(忠孝)를 첫째로 하고

以其紛誶名利(이기분수명리) : 화려한 명리(名利) 따위야 완전히 벗어난 듯

則泊然不一出諸口(칙박연불일출제구) : 한마디도 말한 적이 없었다.


讀史至成敗治亂君子小人之辨(독사지성패치란군자소인지변) : 사서(史書)를 읽으며 성패(成敗)ㆍ치란(治亂)ㆍ군자(君子)ㆍ소인(小人)을 구별함에 이르러서는,

必慷慨論折(필강개론절) : 언제나 강개하여 명확히 판단하고

亹亹可聽(미미가청) : 막힘이 없어 들을 만하였다.

於武穆文山之死(어무목문산지사) : 두목이나 문산이 죽어간 대목에 있어서는

則輒掩卷流涕(칙첩엄권류체) : 별안간 책을 덮고 눈물을 흘리기도 하였다.


爲文簡切有致(위문간절유치) : 문장은 간결하고 절실하여 운치가 있었고,

而詩亦壯麗(이시역장려) : 시도 역시 장려(壯麗)하게 지어 냈다.

所傳誦者百餘篇(소전송자백여편) : 그래서 전해지고 외어지던 것들이 1백여 편이었는데,

皆合作家(개합작가) : 모두 시작(詩作)의 규범에 합치되었으나

處士不屑爲也(처사불설위야) : 처사 자신은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었다.

朝廷聞而嘉之(조정문이가지) : 조정(朝廷)에서도 듣고, 가상히 여겨

再授齋郞(재수재랑) : 두 번이나 재랑을 제수(除授)했으나

終不赴焉(종불부언) : 끝내 부임하지 않고 말았다.


年七十八(년칠십팔) : 향년(享年) 78세였다.

將終之日(장종지일) : 생을 마치려던 무렵에

招所嘗往還者數人(초소상왕환자수인) : 오래 전부터 출입하던 몇 사람과

學者十餘人(학자십여인) : 학자 10여 명을 초대하였다.

設酒肴以飮之(설주효이음지) : 주안상을 차려 대접하고는

因言身後當葬先隴(인언신후당장선롱) : 이어서 자기 죽은 뒤의 일을 말했으니, 반드시 선산에다 장사지내 주고

而托其幼孫(이탁기유손) : 그의 어린 손자를 부탁한다는 것이었다.

以所玩圖書(이소완도서) : 아끼던 도서(圖書)들을

散給門人(산급문인) : 문인(門人)들에게 나누어 주고는

端坐穆然而逝(단좌목연이서) : 단정히 앉아 조용히 서거하였다.

閭巷爭來哭之(려항쟁래곡지) : 마을 사람들이 몰려와서 그의 죽음을 슬퍼하였고,

士夫識與不識(사부식여불식) : 평소에 알지 못하던 선비들까지도

皆相弔于家(개상조우가) : 모두 와서 조상(弔喪)해 주었다.

遺文散失(유문산실) : 유문(遺文)은 흩어지고 잃어버려

不克集也(불극집야) : 모아놓지를 못했다.


外史氏曰(외사씨왈) : 외사씨(外史氏)는 논한다.

處士孝於家廉於鄕(처사효어가렴어향) : 처사(處士)는 가정에서 효도를 다했고 고을에서 절도 있는 행실을 하였으니,

固當得位(고당득위) : 분명히 높은 지위에 오를 수 있었다.


而以母死不賓于王(이이모사불빈우왕) : 그러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이유 때문에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卒窮以終(졸궁이종) : 끝까지 궁하게 살다가 세상을 마쳐

其才不少售(기재불소수) : 그의 훌륭한 재능이 조금도 쓰이질 못했으니,

惜哉(석재) : 애석하도다.


巖穴間有士如(암혈간유사여차) : 선비들이 묻혀 사는 암혈(巖穴)에는 이분처럼

名湮沒而不傳者(명인몰이불전자) : 이름이 인몰(湮沒)하여 전해지지 않는 선비들로는

非獨處士(비독처사) : 처사 한 사람만이 아니어서,

悲夫(비부) : 더욱 슬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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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선생전(南宮先生傳)-허균

先生名斗(선생명두) : 선생의 이름은 두(斗),

世居臨陂(세거림피)

: 대대로 임피(臨陂; 전북 옥구의 옛 지명)에서 살아

家故饒(가고요) : 집안도 오래되고 재산도 넉넉하여

財雄於鄕(재웅어향) : 고을에서 이름 난 집안이었다.

自其祖父二世(자기조부이세) :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 2대에는

皆不肯推擇爲吏斗(개불긍추택위리두)

:과거에 뽑혀 관리되기를 좋아하지 않았으나,

獨以博士弟子業起家(독이박사제자업기가)

: 두(斗)만은 박사의 제자로서 과거공부를 하여 집안을 일으켰다.

年三十(년삼십) : 30세에

始中乙卯司馬(시중을묘사마)

: 처음으로 을묘년(명종 10, 1555)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여

有聲場屋間(유성장옥간) :과장(科場)을 울렸다.

嘗以大信不絇賦(상이대신불구부)

: 일찍이 대신불약부(大信不約賦)라는 글을 지어

魁泮解(괴반해) : 성균관(成均館) 시험에 수석으로 뽑혀

人皆傳誦之(인개전송지)

: 사람들이 모두 그 글을 전송(傳誦)하기도 했다.

斗伉倔自矜懻(두항굴자긍기) : 두(斗)는 거만하고 고집이 세며,

剛忍敢爲(강인감위) : 자신만만하고 오만한 성격이어서

恃才豪橫於閭里(시재호횡어려리)

: 감히 재주만 믿고는 고을에서 호탕한 채 멋대로 지냈었다.

倨不爲禮於長吏(거불위례어장리) : 잘난 체하면서 장리(長吏;고을의 원)에게 예의 바르게 대하지도 않으니

縣上下俱側目於斗(현상하구측목어두)

: 읍내의 상하간이 모두 두(斗)를 흘겨보며 앙심을 품었으나

而積不敢發(이적불감발) : 겉으로 나타내지는 않았다.

始先生移家輦下(시선생이가련하) : 처음으로 선생이 서울로 이사하여

爲進取計(위진취계) : 진취(進取)할 계획을 세우고는,

而留一妾於鄕墅(이류일첩어향서)

: 첩(妾) 한 사람만 시골 집에 남겨 두었다.

每年秋(매년추) : 해마다 가을이면

輒歸(첩귀) : 곧장 내려가

經紀其務(경기기무) : 가을 수확을 처리하였다.

妾卽兵家女而艶慧甚(첩즉병가녀이염혜심)

: 첩(妾)은 무인(武人)의 딸이었으나 매우 예쁘고 영특하여

敎以書計(교이서계) : 글과 계산법을 가르쳐 주면

該捷絶倫(해첩절륜) : 뛰어나게 빨리 알아차렸다.

斗絶嬖之(두절폐지) : 그래서 두(斗)는 그를 가장 사랑했었다.

其在洛也(기재락야) : 그러나 주인이 서울에 살게 되면서

則曠居累月(즉광거루월) : 여러 달 동안 독수공방으로 지냈으므로

故潛與斗之堂姪異姓者私(고잠여두지당질이성자사)

: 몰래 두(斗)의 성(姓)이 다른 당질(堂姪)과 사통(私通)하고 있었다.

戊午秋(무오추) : 무오년(명종 13, 1558) 가을

斗以事急還鄕(두이사급환향)

: 두(斗)는 급한 일 때문에 고향으로 돌아갔는데,

未及一舍所日曛(미급일사소일훈)

: 30리를 남기지 못하고 날이 저물었다.

留傔從(류겸종) : 하인배들만 그곳에 머물러 있게 하고는

獨一騎馳至墅(독일기치지서)

: 혼자서 말 한 필을 타고 시골 집으로 달려와 보니

則已燃燈矣(칙이연등의) : 이미 등불이 밝혀 있는 밤이었다.

僕隷咸休(복례함휴) : 노복들도 모두 잠자리에 들었으나

中門洞啓(중문동계) : 중문(中門)이 활짝 열려 있어

見妾艶粧麗服佇於階(견첩염장려복저어계): 첩(妾)이 보이는데, 곱게 화장하고 화려한 옷을 입고 섬돌에 서 있었다.

而堂姪者踰東短垣(이당질자유동단원)

: 당질(堂姪) 놈이 동쪽의 낮은 담을 넘느라

足未及地者半咫(족미급지자반지)

: 발이 땅에 반자[半尺]쯤 닿지 않고 있는데

妾遽前摟抱(첩거전루포):첩이 급히 달려가 안아서 맞아들이고 있었다.

斗忍怒而姑徐俟其終(두인노이고서사기종) : 두(斗)는 분노를 참으며 짐짓 그 마지막까지를 천천히 기다리고 있었다.

繫馬於外門柱(계마어외문주):말[馬]을 외문(外門)의 기둥에 매어 두고

潛身蔽於隙中以窺之(잠신폐어극중이규지)

: 몸을 숨겨 가린 채, 틈 사이로 그들을 엿보고 있었다.

二人者諧謔極褻(이인자해학극설)

: 두 사람이 희희덕거리며 온갖 추잡을 떨다가,

將解衣竝枕(장해의병침) : 옷을 벗고 함께 잠자리에 들려고 할 때에

斗方窮其實(두방궁기실) : 두(斗)는 당장 그 실제를 확인하기 위해

就暗裏摸壁(취암리모벽) : 어둠 속으로 가서 벽을 더듬으니

則掛箙有二矢一弧(칙괘복유이시일호)

: 걸려 있는 화살통에 화살 두 개와 활 하나가 있었다.

遂關而注射(수관이주사) : 마침내 화살을 당겨서 쏘아,

先貫女胸腹立潰(선관녀흉복립궤)

: 먼저 계집의 흉부를 꿰뚫어 즉시 넘어뜨리니

其男驚起(기남경기) : 그 사내는 놀라서 일어나

跳北囱出(도북창출) : 북쪽 창문으로 뛰어넘으려 하자,

又射之中脅斃(우사지중협폐):또 쏘아 늑골을 적중시켜서 죽게 하였다.

斗欲告官(두욕고관) : 두(斗)는 관(官)에 알리고도 싶었으나

以點汚門戶(이점오문호) : 가문(家門)을 더럽히는 일이자,

且難保長吏心(차난보장리심)

: 또 고을 원님의 마음을 보장하기도 어려운 일이어서

卽牽二屍(즉견이시) : 곧 바로 두 시체를 끌고 가서

埋於稻田瀆內(매어도전독내) : 벼논의 도랑 속에 매장해 버렸다.

卽疾驅回洛(즉질구회락)

:그리고는 곧바로 말을 몰아 서울로 돌아왔었다.

遲明(지명) : 다음날 날이 밝은 훨씬 뒤에야

家僕覺之(가복각지) : 집안의 종들은 첩이 보이지 않음을 알아차렸다.

意其與堂姪逃(의기여당질도) : 그녀와 당질이 도망친 걸로 여기고

問姪家則亦莫知所之(문질가칙역막지소지)

: 당질의 집에 가서 물어보니, 역시 간 곳을 알지도 못하고 있었다.

有莊奴竊斗穀百許石(유장노절두곡백허석)

: 농장의 어떤 종놈이 두(斗)의 곡식 1백여 석(石)을 훔친 적이 있어

常恐斗來則必死(상공두래칙필사)

: 두(斗)가 오면 반드시 죽일 것이라고 항상 염려하고 있었다.

疑斗之殺二人(의두지살이인)

: 그 자는 두(斗)가 두 사람을 죽였지 않을까 의심하고는

尋其跡(심기적) : 그 자취를 찾아대었다.

田瀆有膏沸於水上(전독유고비어수상)

: 벼논 도랑의 물 위에 기름이 떠 있는 걸 보고서

鍤發之(삽발지) : 삽질하여 파보니

二屍俯仰焉(이시부앙언):두 시체가 엎어지고 뒤집어져 있었다.

卽奔告妾家(즉분고첩가) : 곧바로 첩(妾)의 집에 알리자

老革告于令(로혁고우령):늙은 병졸이 현령(縣令)에게 고발하고,

引男家證有宿怨(인남가증유숙원)

: 사내 집안에서 숙원(宿怨)이 있었다는 증거를 세웠다.

令與諸吏固嘗不快於斗(령여제리고상불쾌어두)

: 현령이나 여러 아전들은 본래부터 두(斗)를 불쾌하게 여겼기에

俱喜而欲甘心以私嫌(구희이욕감심이사혐)

: 모두 기뻐하여 잘 걸려들었다고 하면서, 사사로운 미움으로

謀殺堂姪爲案(모살당질위안)

: 당질(堂姪)을 모살(謀殺)했다고 죄안(罪案)을 꾸몄다.

械斗於都下(계두어도하) : 서울에서 두(斗)는 형틀에 묶이고,

五毒備漆(오독비칠) : 오독을 첨가한

攬至尼山(람지니산)

: 죄인의 수레에 태워 이산(尼山; 충남의 지명)에 이르렀다.

斗之妻負幼女追至(두지처부유녀추지)

: 두(斗)의 아내가 어린 딸을 업고 뒤늦게 도착해서는

醉守者(취수자) : 간수(看守)에게 취하도록 술을 먹이고

夜脫械逸去(야탈계일거): 밤에 형틀을 풀어 빠져나가게 하였다.

天亮(천량) : 날이 밝아서야

守者覺之(수자각지) : 간수가 그가 없음을 알아냈으나

跡不獲(적불획) : 찾을 길이 없었다.

以其妻致縣(이기처치현) : 그래서 그의 아내를 읍내까지 데려와

竝女庾死獄中(병녀유사옥중) : 딸과 함께 옥중에서 굶겨 죽였다.

陂池園田臧獲(피지원전장획) : 임피(臨陂)의 전답과 재산을

狼籍分析於二仇家(랑적분석어이구가)

: 모조리 빼앗아 두 피해자 집안에 나누어 주었다.

斗卽入金臺山(두즉입금대산):두(斗)는 곧바로 금대산(金臺山)으로 들어가

落髮爲僧(락발위승) : 낙발(落髮)하고 중이 되었으니,

法名摠持(법명총지) : 법명(法名)을 총지(摠持)라고 하였다.

戒行甚嚴(계행심엄) : 계행(戒行)을 무척 엄하게 지키며

過一臘(과일랍) : 1년을 지냈다.

仇家跡知之(구가적지지) : 원수로 여기던 집에서 있는 곳을 알아내어

率吏士掩之(솔리사엄지) : 병졸들을 거느리고 붙잡으러 오고 있었다.

其曉夢有山神告曰(기효몽유산신고왈) : 그날 새벽에 꿈을 꾸는데, 산신(山神)이 일러주기를,

冤債至(원채지) : "원수진 사람들이 올 것이니

可亟去(가극거) : 급히 달아나야겠다."하였다.

旣覺(기각) : 잠에서 깨어나자

急下山(급하산) : 급히 하산(下山)에 버리니

捕者至(포자지) : 잡으러 오던 사람들이 도착해서는

不獲而返(불획이반) : 붙잡지 못하고 돌아가야 했다.

斗向頭流山(두향두류산) : 두(斗)는 두류산(頭流山; 智異山)으로 향하다가

居雙溪月餘(거쌍계월여) : 쌍계사(雙溪寺)에서 한 달 정도 기거하였다.

厭名刹緇俗所湊集棄(염명찰치속소주집기) : 이름 있는 절이라 중들이나 속인들이 모여드는 것에 싫증을 느끼고 그곳을 버리고

向太白山至宜寧野庵憩焉(향태백산지의녕야암게언) : 태백산(太白山)으로 향했다. 의령(宜寧)에 있는 야암(野庵)에 이르러 휴식을 취했다.

續有一僧至(속유일승지) : 뒤따라 중 한 사람이 도착하였다.

丰秀年少(봉수년소) : 예쁘게 생겼고 나이도 어린데

解襆距堂廉睨曰(해복거당렴예왈) : 삿갓을 벗고 당(堂)으로 오르더니 자세히 얼굴을 살펴보면서,

君士族也(군사족야) : "그대는 사족(士族)이군요.

何脫削乎(하탈삭호) : 왜 뒤늦게 삭발하였습니까?"하고는

俄曰(아왈) : 조금 뒤에,

性忍者(성인자) : "참을성이 있는 분이군요."하더니

少頃曰(소경왈) : 잠시 뒤에는,

業侕而得一名也(업이이득일명야) : "유도(儒道)를 업으로 하시면 큰 벼슬 하실 텐데."하였다.

良久笑曰(량구소왈) : 얼마쯤 지나서는 껄걸 웃으면서,

傷二人命(상이인명) : "두 사람의 목숨을 상하게 하고

負罪逃者(부죄도자) : 죄를 지어 도망온 사람이군요."하는데,

發四言皆合(발사언개합) : 말한 네 마디가 모두 딱 들어맞는 말이었다.

斗大駴錯愕失措(두대해착악실조) : 두(斗)는 깜짝 놀라서 허둥지둥 어찌할 줄을 모르다가,

夜就其寢(야취기침) : 밤이 되어 그의 침소로 찾아가

扣頭服賓(구두복빈) : 머리를 조아리며 해준 말이 사실이라고 승복하여

且請敎甚懇(차청교심간) : 이어서 무척 간곡하게 스승이 되어달라고 청했었다.

少年僧曰(소년승왈) : 나이 젊은 중은,

我只解相人耳(아지해상인이) : "나는 겨우 관상(觀相)만을 이해하고 있을 뿐이오.

吾師多藝(오사다예) : 우리 스승께서는 모든 방술(方術)을 아십니다.

相某人當傳某藝(상모인당전모예) : 어떤 사람을 관상하고는 어떤 방술을 전해 주시니,

或符呪或象緯或堪輿或推占(혹부주혹상위혹감여혹추점) : 더러는 부주(符呪)로, 더러는 상위(象緯)로, 더러는 감여(堪輿; 풍수지리)로, 더러는 추점(推占)을 전해 주시며

隨其器誘掖之(수기기유액지) : 그 그릇에 따라 친절하게 가르쳐 주십니다.

我受相法(아수상법) : 나는 상법(相法; 관상법)을 전수받았으나

尙未造極(상미조극) : 아직 지극한 경지에 도달하지도 못했는데

安敢爲人師(안감위인사) : 어떻게 감히 남의 스승이 되겠습니까."하였다.

斗問師今焉在(두문사금언재) : 두(斗)가 지금 스승이 어디에 계시냐고 묻자

僧曰(승왈) : 그 중은,

住茂朱雉裳山(주무주치상산) : "무주(茂朱; 전북의 지명)의 치상산(雉裳山)에 계시오.

你往則可見(니왕칙가견) : 그대가 그곳으로 가면 만나 뵐 수 있을 겁니다."하자,

斗拜而退(두배이퇴) : 두(斗)는 절하고 나왔다.

迨曙往候(태서왕후) : 다음날 날이 밝아 안부를 살피러 가 보았더니

則已去矣(칙이거의) : 이내 떠나버렸다.

卽回錫到雉裳山(즉회석도치상산) : 곧바로 방향을 돌려 막대를 짚고, 치상산에 도착하여

環山伽藍殆數十區(환산가람태수십구) : 온 산을 두루 살폈다. 절이 거의 수십 곳이었으나

俱無異僧(구무이승) : 모든 절에 유별한 중[異僧]이라고는 없었다.

留一歲苦心(류일세고심) : 한 해 동안을 머물며, 온갖 고생을 하면서

參訪層硿絶頂鳥迹所不到處(참방층공절정조적소불도처) : 돌이 구르는 층계와 산의 정상(頂上), 나는 새도 이른 적이 없는 곳까지를 찾아다녔다.

搜覓三四周而不能得(수멱삼사주이불능득) : 세번 네번을 돌며 뒤졌으나 찾을 수가 없었다.

以爲少年僧相誑(이위소년승상광) : 그래서 젊은 중이 속였다고 여기고

悵然欲返(창연욕반) : 창연(悵然)히 돌아가려 하였다.

忽到一洞(홀도일동) :그런데 우연히 한 골짜기에 이르자

有川注於林薄間(유천주어림박간) : 숲속으로 흐르는 시내가 있었는데,

流出大桃核(류출대도핵) : 물 위에 큰 복숭아씨가 흐르고 있었다.

斗心欣然曰(두심흔연왈) : 두(斗)는 마음 속으로 기뻐서,

是中莫是仙師所否(시중막시선사소부) : "이 계곡 가운데가 선사(仙師)가 계시는 곳이 아닐는지."하고는

促步沿流可數里許(촉보연류가수리허) : 걸음을 재촉하여 물줄기를 따라 몇 리(里) 정도를 걸어 들어가

仰觀一峯陡起(앙관일봉두기) : 우뚝 솟은 한 봉우리를 바라보니,

松杉翳日(송삼예일) : 소나무와 삼목(杉木)이 해를 가리고 있는 곳에

有素屋三楹倚崖而構(유소옥삼영의애이구) : 허름한 세 칸 집이 있었다. 벼랑에 기대어 지은 집인데

砌石爲臺(체석위대) : 돌로 쌓은 층계로 대(臺)를 만들었고

位置淸塏(위치청개) : 맑고 깨끗한 곳에 위치를 정하였다.

攬衣經登其上(람의경등기상) : 옷깃을 거머쥐고 길을 따라 그 위로 오르니

則有一小童迎曰(칙유일소동영왈) : 동자(童子)가 맞이해 주며 묻기를

問何方來(문하방래) : "어디서 오시오?"하기에,

斗揖曰(두읍왈) : 두(斗)는 읍(揖)하고서,

摠持來參仙師(총지래참선사) : "총지(摠持)가 선사(仙師)를 찾아 뵈러 왔습니다."했더니,

童闢東偏左閤子(동벽동편좌합자) : 동자가 동편의 왼쪽 합문(閤門)을 열어주었다.

有老僧形如槁木(유로승형여고목) : 노승(老僧)이 계시는데 모습은 마른 나무 같았으며

披破衲出曰(피파납출왈) : 해진 가사(袈裟)를 입고 나오면서,

和尙風神聳溢(화상풍신용일) : "화상(和尙)의 풍신이 우람하여

非恒人也(비항인야) : 보통 사람 같지 않은데,

曷爲至(갈위지) : 무엇 때문에 오셨나?"하였다.

斗跽曰(두기왈) : 두(斗)는 꿇어앉으며,

愚魯無他技(우로무타기) : "어리석고 우둔한 저는 아무런 기예(技藝)가 없습니다.

聞老師多藝(문로사다예) : 노사(老師)께서 많은 방술(方術)을 알고 계심을 듣고

欲行一方技以行世(욕행일방기이행세) : 세상에서 한 가지의 방술이라도 행하고 싶어서

千里求師而來(천리구사이래) : 천리 먼 길에 스승을 구하고자 왔습니다.

週一歲方得樞衣(주일세방득추의) : 1년을 지내고야 겨우 찾았습니다.

幸進而敎之(행진이교지) : 제자가 되어 배우려 하오니 가르쳐 주소서."하였다.

長老曰(장로왈) : 장로(長老)가,

山野濱死之夫耳(산야빈사지부이) : "산야(山野)에서 죽음이 임박해 있는 사람일 뿐인데

安有藝耶(안유예야) : 무슨 방술이 있겠나."하자,

斗百拜懇乞(두백배간걸) :두(斗)는 계속 절하며 간절히 애걸했으나

固拒之(고거지) : 굳게 거절하며

閤戶不出(합호불출) : 문에서 나오지도 않았다.

斗伏於廡下(두복어무하) : 두(斗)는 처마 아래서 엎드린 채,

達曉哀訴(달효애소) : 새벽이 되도록 애소(哀訴)하였고

至朝不休(지조불휴) : 아침이 되어도 그만두지 않았으나,

長老視若無人(장로시약무인) : 장로는 아무도 없는 것같이 여기며

趺坐入定(부좌입정) : 부좌(趺坐)하고 선정(禪定)에 들어가

不顧者三日(불고자삼일) : 돌아보지도 않은 채 3일을 보냈다.

斗僉不懈(두첨불해) : 두(斗)가 갈수록 더 정성을 드리자,

長老方鑑其誠(장로방감기성) : 장로는 그때에야 그의 정성을 알아보고는

闢戶令入室(벽호령입실) : 문을 열어주며 방으로 들어오도록 해주었다.


室大方丈(실대방장) : 방이 한 길[丈]밖에 되지 않았고

只安一木枕(지안일목침) : 목침(木枕) 하나가 놓여 있으며

鑑北龕爲六谷(감북감위륙곡) : 북쪽 벽을 뚫어 여섯 굽이의 감실(龕室)을 만들었다.

鑰閉而掛一匕於龕柱(약폐이괘일비어감주) : 자물쇠로 닫아 놓고 열쇠 하나를 감실 기둥에 걸어 놓았고

南囱上懸板(남창상현판) : 남쪽 창문 위의 선반에는

兒有五六卷書而已(아유오륙권서이이) : 책 5-6권이 있을 뿐이었다.

長老熟視之(장로숙시지) : 장로가 오래도록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笑曰(소왈) : 웃으면서,

君忍人也(군인인야) : "그대는 참을성이 많은 사람이네.

推朴不可訓他技(추박불가훈타기) : 투박한 성품이니 다른 방술은 가르쳐 줄 수 없고

唯可以不死敎之(유가이불사교지) : 오직 죽지 않는 방술은 가르쳐 줄 수 있겠네."했다.

斗起拜曰(두기배왈) : 두(斗)가 일어나 절하며,

是足矣(시족의) : "그거면 족합니다.

奚用他爲(해용타위) : 다른 무엇이 필요하겠습니까?"하였다.

長老曰(장로왈) : 장로(長老)가,

凡諸方先聚精神(범제방선취정신) : "대저 모든 방술(方術)이란 먼저 정신(精神)을 모은

而後乃可成(이후내가성) : 후에 이룰 수 있는 것인데,

矧煉魄飛神(신련백비신) : 더구나 혼(魂)과 정신을 단련하여

欲求仙蛻者乎(욕구선태자호) : 신선(神仙)으로 탈바꿈하고 싶어하는 사람에게 있어서야 더 말할 게 있겠나.

聚精神自不睡始(취정신자불수시) : 정신을 모으는 일은 잠을 자지 않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니,

你先不睡(니선불수) : 그대는 먼저 잠을 자지 않도록 하게나."하였다.

斗到此四日(두도차사일) : 두(斗)가 그곳에 도착한 지 4일이 되어도

而長老不食飮(이장로불식음) : 장로는 음식을 먹지 않고

猶童日一食黑豆米一合(유동일일식흑두미일합) : 어린아이처럼 하루에 한 차례 흑두말(黑豆末 검은 콩가루) 한 홉만 먹고도

了無飢疲色(료무기피색) : 전혀 배고프고 피로한 기색이 없어,

心已異之(심이이지) : 마음에 별다르게 여기고 있었는데,

及承此誨(급승차회) : 그러한 가르침을 받고는

至誠發大願(지성발대원) : 온 정성을 다하여 큰 소원을 이뤄 달라고 빌었다.

初夜坐到四更眼自合(초야좌도사경안자합) : 첫날 밤에는 앉아서 사경(四更)을 지내자 눈이 저절로 감겼으나

忍而至曙(인이지서) : 참아내고 새벽까지 보냈으며,

第二夜昏倦不省事(제이야혼권불성사) : 둘째 날에도 정신이 흐리고 고달파 움직일 수도 없었으나

刻意堅忍(각의견인) : 각고의 뜻으로 굳게 참아냈다.

三夜四夜倦困不能植坐(삼야사야권곤불능식좌) : 셋째와 넷째 날의 밤에도 피로하고 고달파 앉아 있을 수도 없어,

頭或撞於壁楣(두혹당어벽미) : 더러는 머리를 벽에 찧고 부딪히며

猶忍過(유인과) : 겨우 참았다.

第七夜(제칠야) : 일곱째 밤을 지냈더니

脫然朗悟(탈연랑오) : 툭 트이듯 정신이 밝게 깨쳐

精神自覺醒爽(정신자각성상) : 상쾌함을 자각할 수 있었다.

長老喜曰(장로희왈) : 장로(長老)가 기뻐하며,

君有許大忍力(군유허대인력) : "그대에게는 정말로 큰 인내력이 있으니

何事不可做乎(하사불가주호) : 무슨 일인들 이룰 수 없겠나."하고는

因出二經授之曰(인출이경수지왈) : 이어서 두 가지의 경전(經傳)을 꺼내 주면서,

伯陽參同契(백양참동계) : "위백양의《참동계(參同契)》라는 책이니

乃修煉至訣(내수련지결) : 수련(修煉)하는 데 가장 좋은 비결(祕訣)이며

仙家最上乘(선가최상승) : 선가(仙家)의 가장 높은 교리[上乘]이다.

黃庭內外玉景經(황정내외옥경경) : <황정경>의 내옥경경(內玉景經)은

乃導氣煉臟至要(내도기련장지요) : 기(氣)를 인도하고 오장(五臟)을 단련하는 지요(至要)한 것으로

亦道家妙諦(역도가묘체) : 역시 도가(道家)의 묘체(妙諦)다.

讀之萬遍(독지만편) : 이 두 책을 만 번 정도 읽으면

自可悟解(자가오해) : 저절로 오해(悟解)할 수 있으리니,

令日各誦十遍(령일각송십편) : 매일 열 번씩 읽도록 하게나."하였다.

又曰(우왈) : 또,

大凡學飛昇者(대범학비승자) : "무릇 학문이 비승(飛昇)하는 사람은

斷除念頭(단제념두) : 염두(念頭)를 단제(斷除)하고

安坐煉精氣神(안좌련정기신) : 편안히 앉아서 기신(氣神)을 연정(煉精)해야 하며,

三寶令坎离龍虎交濟成丹(삼보령감리룡호교제성단) : 삼보를 밀폐시켜 용호(龍虎)가 서로 싸우는 틈에서도 도술(道術)은 이루어지니

是大捷徑(시대첩경) : 그런 게 제일의 첩경이네.

而自非上智與宿稟(이자비상지여숙품) : 자신이 상지(上智)나 숙품(宿稟; 뛰어난 성품)이 아니고서야

不可晬爲(불가수위) : 빨리 이루어질 수는 없네.

君性朴固剛忍(군성박고강인) : 대의 성품은 박고(朴固)하고 강인(剛忍)하니

難以上乘訓之(난이상승훈지) : 그높은 교리(敎理)로써 가르쳐주기는 어렵네.

姑先絶粒(고선절립) : 맨 먼저 곡식으로 식사하는 걸 끊어보게나.

爲下學上達計也(위하학상달계야) : 그렇게 하는 것이 제일 낮은 곳에서 최상까지 도달하는 방법일세.

凡人之生(범인지생) : 무릇 사람의 생명이란

稟精於五行(품정어오행) : 오행(五行)에서 정기(精氣)를 받았기 때문에

故五臟各主五行(고오장각주오행) : 오장(五臟)은 각각 오행(五行)이 주관하는 거라네.

脾受土氣(비수토기) : 위장(胃臟; 脾胃)은 토기(土氣)를 받아

人之飮啖(인지음담) : 사람이 마시거나 씹어먹는 것은

皆歸於脾胃(개귀어비위) : 모두 위장으로 들어가네.

雖以穀精強健無疾(수이곡정강건무질) : 비록 곡정(穀精)으로 몸을 건강하게 하고 병이 없게 한다 하더라도

而氣引於土(이기인어토) : 기(氣)가 토(土)에 끌려

終至於魄歸乎地(종지어백귀호지) : 끝내는 찌꺼기[魄]가 되어 땅으로 돌아가니

古之碎穀者(고지쇄곡자) : 옛날의 곡식을 먹지 않던 사람들이란

皆爲此也(개위차야) : 모두 그래서였네.

君試先碎穀(군시선쇄곡) : 그대는 먼저 곡식 먹지 않는 것을 시험해 보게나."하였다.

卽令斗曰再食(즉령두왈재식) : 그리고는 곧 두(斗)로 하여금 7일 동안 하루에 두 끼니만 먹도록 하였다.

七日又一飯一粥(칠일우일반일죽) : 또 7일 동안은 한 끼니는 밥, 한 끼니는 죽을 먹도록 하고,

七日減一粥(칠일감일죽) : 다시 7일 동안은 한 끼니의 죽을 없애고 밥만 한 끼니 먹도록 하였다.

更七日以粥替飯(경칠일이죽체반) : 다시 7일 동안은 밥 대신 죽만 한 끼니 먹도록 하고는

過四七日撤飯粥(과사칠일철반죽) : 28일이 지나자 밥이건 죽이건 먹지 못하게 하고,

以匕開上龕鑰(이비개상감약) : 열쇠로 윗 감실(龕室)의 자물쇠를 열어

取漆盒二個(취칠합이개) : 칠(漆)을 입힌 합(盒) 두 개를 꺼냈다.

一黑豆末(일흑두말) : 하나는 흑두말(黑豆末)이 든 것이고

一黃精屑桃(일황정설도) : 하나는 황정(黃精; 죽대 뿌리임)과 복숭아씨 가루였다.

各一匙(각일시) : 각각 한 숟가락씩

和水餌之曰再焉(화수이지왈재언) : 물에 타서 하루에 두 차례 먹으라 하였다.

斗食腸素寬(두식장소관) : 두(斗)는 본래 식량(食量)이 커서

飢之殆不可忍(기지태불가인) : 허기증을 참을 수 없는 지경이었고,

身瘐體倦(신유체권) : 몸이 수척해지고 피곤해지며

眼昏花不辨物(안혼화불변물) : 눈이 흐려져 물건을 분별할 수 없었지만

猶忍之(유인지) : 계속 참아냈다.

服黑豆三七日(복흑두삼칠일) : 흑두말을 21일째 복용했던 날,

忽若充然不思食(홀약충연불사식) : 갑자기 배 안이 채워진 듯하여 먹고 싶은 생각이 없어졌다.

卽令餌柏葉胡麻數(즉령이백엽호마수) : 그 후에는 곧바로 측백나무 잎과 호마(胡麻; 참깨)를 먹도록 해 주자,

遍身生瘡(편신생창) : 온몸에 촘촘히 부스럼이 돋아

疼不能忍(동불능인) : 참을 수가 없었다.

又百日痂脫(우백일가탈) : 또 1백 일이 지나자 부스럼 딱지가 떨어지고

肉生方如常(육생방여상) : 새 살이 나와 완전히 전대로 되어졌다.

長老喜曰(장로희왈) : 장로가 기뻐하며

君眞利器也(군진리기야) : "그대는 참으로 훌륭한 성품과 체질을 타고났네.

但息慾念(단식욕념) : 다만 욕념(慾念)을 없애면 되겠군."하였다.

留三年讀二訣凡萬遍(류삼년독이결범만편) : 3년 동안 머무르며 두 가지의 비결(祕訣)을 모두 만 번씩 읽었다.

胸次洒然(흉차쇄연) : 가슴속이 씻은 듯이 시원해져

若有神會(약유신회) : 신회(神會; 신이 통함)가 있는 듯하였다.

長老敎以數息(장로교이수식) : 장로(長老)가 호흡 자주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고,

旣又敎之運氣(기우교지운기) : 또 운기(運氣)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어

氣已運矣(기이운의) : 기(氣)가 이미 움직여졌다.

遂以子午卯酉行六子祕訣(수이자오묘유행륙자비결) : 마침내 자(子)ㆍ오(午)ㆍ묘(卯)ㆍ유(酉)로서 육자 비결(六子祕訣)을 행하여

呼吸道成(호흡도성) : 호흡도(呼吸道)를 이루자,

顏漸腴氣益爽(안점유기익상) : 얼굴에 점점 살이 찌고 기운은 갈수록 상쾌해지며

萬念俱灰(만념구회) : 온갖 상념이 모두 사라졌다.

居六年(거륙년) : 6년을 지내서

長老曰(장로왈) : 장로(長老)가,

君有道骨(군유도골) : "그대에게는 도골(道骨)이 있어

法當上昇(법당상승) : 법으로는 마땅히 상승(上昇; 신선이 되어 승천함)할 만하네.

下此則不失爲喬鏗矣(하차칙불실위교갱의) : 이 수준에서 내려간다 해도 왕자교(王子喬)ㆍ전갱(錢鏗) 정도는 될 것이네.

慾念雖動地(욕념수동지) : 욕념(慾念)이 비록 동(動)하더라도

忍之(인지) : 오직 그걸 참아야 하네.

凡念雖非食色(범념수비식색) : 무릇 욕념이란 비록 식색(食色)의 욕념이 아니더라도

一切妄想(일절망상) : 일체의 망상(妄想)은

俱害於眞(구해어진) : 참[眞]에 해로우니

須空諸有(수공제유) : 반드시 모든 유(有)를 없애고

靜以煉之(정이련지) : 고요한 마음으로 단련해야 하네."하였다.

因空第二屋(인공제이옥) : 그런 후에 비어 있는 두 번째 집에다

坐斗其其中(좌두기기중) : 두(斗)를 앉히고는,

敎以昇降顚倒之法(교이승강전도지법) : 오르고 내리며 구르고 넘어지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口訣諄至(구결순지) : 가르쳐 주는 말마다 자상하고 친절하였다.

斗依所訓(두의소훈) : 두(斗)는 가르쳐 주는 바에 의거하여

兀然堅坐不動(올연견좌불동) : 태연히 앉아 움직이지 않으며,

閉眼內視長老(폐안내시장로) : 눈을 감고 내면으로 장로(長老)를 보았다.

時寒燠飢飽以保持之(시한욱기포이보지지) : 그런 때에는 춥고 더움, 주림과 배부름을 견디어 낼 수 있었다.

一日(일일) : 하루는

覺自上齶如小李狀甘涎注舌上(각자상악여소리상감연주설상) : 윗 잇몸에서 조그마한 오얏 같은 물건이 단물을 혀 위로 흐르게 하는 것을 깨닫고

告長老(고장로) : 장로(長老)에게 알리자,

長老令徐嚥歸腹中(장로령서연귀복중) : 장로는 천천히 빨아 뱃속으로 삼키라 하고는

喜曰(희왈) : 기뻐하며,

黍珠基立(서주기립) : "서주기(黍柱基)가 세워졌으니

可運火侯(가운화후) : 화후(火候)를 움직일 수 있네."하면서

卽掛三才鏡于壁(즉괘삼재경우벽) : 곧바로 벽에 삼재경(三才鏡; 天ㆍ地ㆍ人을 비추는 거울)을 걸고

植七星劍二口於左右(식칠성검이구어좌우) : 좌우에 칠성검(七星劍) 두 개를 꽂아

禹步呪祝(우보주축) : 절름발이 걸음을 걸으며 주문(呪文)을 외어

冀以却魔成道(기이각마성도) : 마귀를 물리치고 도(道)를 이루게 해달라고 빌었었다.

煉幾六朔(연기륙삭) : 단련한 지 거의 6개월 만에

丹田充盈(단전충영) : 단전(丹田)이 가득 채워지고

若有金彩發於臍下(약유금채발어제하) : 배꼽 아래서 금빛이 나오고 있었다.

斗喜其將成(두희기장성) : 두(斗)는 도(道)가 이루어짐을 기뻐하다

欲速之心遽萌芽不能制(욕속지심거맹아불능제) : 급히 이루고 싶은 마음이 갑자기 솟아남을 억제할 수 없더니

姹女(차녀离火리화) : 타녀(姹女; 神丹의 물)에 불이 붙어

上燒泥丸(상소니환) : 이환(泥丸)이 타오르자

絶叫趨出(절규추출) : 고함을 지르며 뛰어나왔다.

長老以杖擊其頭曰(장로이장격기두왈) : 장로(長老)가 지팡이로 그의 머리를 치면서,

噫其不成也(희기불성야) : "슬프다, 크게 이루어지지 못하는구려."하고는

亟令斗安坐降氣(극령두안좌강기) : 급히 두(斗)를 편안히 앉게 하여 기(氣)를 내리게 하였다.

氣雖制伏(기수제복) : 기(氣)는 비록 수그러졌으나

而心沖沖終日不定(이심충충종일불정) : 마음이 두근거려 온종일 안정되지 않았다.

長老歎曰(장로탄왈) : 장로가 탄식하면서,

曠世逢人(광세봉인) : "세상에서 드문 사람을 만났기에

敎非不盡(교비불진) : 가르쳐 주지 않은 것이 없었는데,

而業障未除(이업장미제) : 업(業)의 가로막음을 제거하지 못하여

遂致顚敗(수치전패) : 끝내 엎지러지고 말았으니

君之命也(군지명야) : 그대의 운명(運命)이지,

吾何力焉(오하력언) : 내 힘으로 어떻게 하겠나."하고는

因以蘇茶飮之(인이소다음지) : 이어서 소다(蘇茶; 회복시키는 차)를 마시게 하였다.

至七日心方恬(지칠일심방념) : 7일 만에야 마음이 편안해지고

而氣不上炎(이기불상염) : 기에 뜨거움이 오르지 않았다.

長老曰(장로왈) : 장로(長老)가,

君雖不成神胎(군수불성신태) : "그대는 비록 신태(神胎)를 이루지는 못했으나

亦可爲地上仙(역가위지상선) : 역시 지상(地上)의 신선(神仙)은 될 수 있을 것이며,

少加樽養(소가준양) : 조금만 더 수양한다면

則八百年之壽可享矣(칙팔백년지수가향의) : 8백 세의 수(壽)를 누릴 수 있을 거네.

君命當有子(군명당유자) : 그대의 운명(運命)에는 당연히 아들을 두도록 되어 있으나

洩精之竅已塞(설정지규이색) : 정자(精子)가 나오는 길이 이미 막혔으니

可服藥以通之(가복약이통지) : 복약(服藥)하여 트이도록 하게나."하면서

出二粒赤桐子丸嚥之(출이립적동자환연지) : 붉은 오동 열매와 같은 환약(丸藥) 두 알을 꺼내 주어 그걸 삼켰다.

斗請曰(두청왈) : 두(斗)가 청(請)하기를,

庸戆不任敎(용당불임교) : "우둔한 사람이 가르침대로 하지 못했음은

自我命薄(자아명박) : 나 자신의 운명이 기박함이니

何恨(하한) : 무엇을 한스러워하겠습니까.

弟子侍師七歲于玆(제자시사칠세우자) : 그러나 제자(弟子)가 스승님을 모신 지가 이제 7년입니다만

尙不知師之出處(상불지사지출처) : 아직도 스승님의 출처(出處)도 모르고 있습니다.

幸賜其詳(행사기상) :제발 자세하게 가르쳐 주셔서

慰異日嚮往之誠若何(위이일향왕지성약하) : 뒷날에라도 사모하는 정성이 위안받을 수 있게 해주심이 어떨까요?"했다.

長老笑曰(장로소왈) : 장로(長老)가 웃으면서,

他人問之(타인문지) : "다른 사람이 묻는다면

固不敢言(고불감언) : 결코 말할 수 없지만

君能忍者(군능인자) : 그대는 참아낼 수 있는 사람이었으므로

故告之詳(고고지상) : 자세히 말해 주겠네.

我卽上洛大姓子大師幸之曾孫子也(아즉상락대성자대사행지증손자야) : 나는 상락(上洛; 尙州의 옛 이름)의 큰 성씨(姓氏)의 후손으로 태사(太師) 권행(權幸)의 증손자였네.

生於宋煕寧二年(생어송희녕이년) : 송(宋) 나라 희령(熙寧; 神宗의 연호) 2년(고려 문종 23, 1069)에 태어났네.

十四有風癩(십사유풍라) : 열네 살에 나병[風癩]에 걸려

父母不收(부모불수) : 부모가 거두어 주지를 않고

棄之林中(기지림중) : 숲속에 버렸네.

夜有虎攬而置諸石室(야유호람이치제석실) : 밤에 호랑이가 안아다가 석실(石室)에 놓아 주고는

耽耽乳其二子(탐탐유기이자) : 눈에 불을 켜고 두 마리의 새끼에게 젖을 먹이며

其旁終不害意(기방종불해의) : 그 곁에 있는 나를 끝내 해치려 하지 않더군.

痛方極(통방극) : 통증이 한창 극도에 달하여

恨不速斃於其牙齒(한불속폐어기아치) : 호랑이의 어금니에 물려 속히 죽지 못하는 것만이 한스럽더군.

有草羅生於崖窽(유초라생어애?) : 초라(草羅)라는 풀이 벼랑의 구멍에서 자라고 있었는데,

葉敷根大(엽부근대) : 잎이 넓고 뿌리가 크더군.

試洗而食之(시세이식지) : 시험삼아 씻어서 먹었더니

腹稍果(복초과) : 뱃속이 조금 채워졌네.

食數月瘡漸損(식수월창점손) : 그걸 먹으며 몇 개월이 지나자 부스럼이 줄어지고

稍自起立(초자기립) : 점점 혼자서 일어섰었네.

遂多掘而頓食之(수다굴이돈식지) : 그리하여 많이 캐다가 끼니마다 그걸 먹었었네.

殆盡半山(태진반산) : 산 중턱의 것을 거의 전부를 캐 먹으며

幾百日瘡悉脫(기백일창실탈) : 몇백 일을 지내자 부스럼이 다 벗겨지고

遍生綠毛(편생록모) : 온몸에 푸른 털이 돋아나기에

喜而強食之(희이강식지) : 기뻐하며 실컷 먹었더니

又百日(우백일) : 또 1백 일이 지나자

身自擧倏昇於峯巓(신자거숙승어봉전) : 몸이 저절로 움직여져 산의 정상에 올라가지더군.

旣已愈其疾(기이유기질) : 이미 나병은 나았으나

不辨古邑來路(불변고읍래로) : 옛날의 마을을 판별하지 못하여

方棲邊靡所之(방서변미소지) : 길에 나와서도 갈 곳을 몰라 서성거리고 있었네.

忽有一僧過于峯下(홀유일승과우봉하) : 뜻밖에 중 한 사람이 산봉우리 아래로 지나가고 있어

頫身就其途遮問曰(부신취기도차문왈) : 그곳으로 찾아가 길을 막으며 묻기를

此何山也(차하산야) : '이곳은 어떤 산입니까?' 했더니

僧曰(승왈) : 중이

此乃太白山(차내태백산) : '이건 태백산(太白山)이요,

而地係眞珠府也(이지계진주부야) : 지역은 진주부(眞珠府)의 소속입니다.' 하더군.

近有寺否(근유사부) : 그래서 근방에 절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曰西峯有蘭若(왈서봉유란약) : 중은 '서쪽 봉우리에 절이 있으나

路絶不易攀陟(로절불역반척) : 길이 단절되어 쉽게 올라갈 수 없을 것이오.' 하였네.

吾卽飛至其庵(오즉비지기암) : 나는 곧 날아서 그 암자에 이르렀더니

禪寮晝閉闃爾無人(선료주폐격이무인) : 선방(禪房)은 낮에도 문이 닫히고 사람이라곤 없더군.

手闢廊戶(수벽랑호) : 손으로 곁 채의 문을 열고 들어가

行到中寮(행도중료) : 가운데에 있는 집으로 가보았더니,

有一老病僧擁布褐(유일로병승옹포갈) : 늙고 병든 중 한 사람이 굵은 베옷을 두르고

隱几而喘(은궤이천) : 탁자에 기대어 숨차하며

幾死(기사) : 거의 죽어가는 모습이었네.

擡眼見之曰(대안견지왈) : 눈을 뜨고 바라보면서

夜夢老相言傳我師祕書者今當至(야몽로상언전아사비서자금당지) : '간밤의 꿈에 노인이 말하기를 「우리 스승님 비결서(祕訣書)를 전할 사람이 지금 오고 있다.」고 하더니,

相君面(상군면) : 그대의 얼굴을 보니

眞其人也(진기인야) : 진정 그 사람이군.' 하면서,

起解裳出一函書(기해상출일함서) : 일어나 보자기를 풀어 한 뭉치의 책을 꺼내서 주었네.

授之曰(수지왈) : 그리고는 주면서

讀此萬周(독차만주) : '이걸 만 번 읽으면

其義自見(기의자견) : 그 의미를 저절로 알 것이니

努力勿怠(노력물태) : 노력하고 게으름 피우지 말게나.' 하였네.

吾問其誰傳(오문기수전) : 내가 그건 누가 전해준 것이냐고 물었더니

曰新羅義相大師入中原(왈신라의상대사입중원) : '신라(新羅) 의상대사(義湘大師)께서 중국에 들어가

逢正陽眞人(봉정양진인) : 정양진인(正陽眞人)을 만났더니

授此書(수차서) : 이 책을 주셨고

臨化囑我(림화촉아) : 임종(臨終)에 나에게 부탁하시며

二百年後(이백년후) : 2백 년 뒤에는

當有傳者(당유전자) : 반드시 전할 사람이 있을 것이다고 하였는데,

君應其讖(군응기참) : 그대가 그분의 예언에 합치되는 사람이니

可受持勉力(가수지면력) : 받아가지고 힘쓰게나,

吾得所傳(오득소전) : 나는 전해줄 사람을 만났으니

從此逝矣(종차서의) : 이제는 죽으려네.' 하면서

趺坐寂然化(부좌적연화) : 부좌(趺坐)하고 조용히 입적(入寂)하였었네.

吾卽茶毗之(오즉다비지) : 나는 곧바로 그분을 다비(茶毗)하여

得紺舍利百粒(득감사리백립) : 감색(紺色)의 사리(舍利) 1백 알맹이를 얻어 내어

藏之塔中(장지탑중) : 탑(塔) 속에 매장하였네.

解函視之(해함시지) : 책 뭉치를 풀고 살펴보니

乃黃帝陰符及金碧龍虎經(내황제음부급금벽룡호경) : 《황제음부경(黃帝陰符經)》및《금벽용호경(金碧龍虎經)》ㆍ

參同契(참동계) : 《참동계(參同契)》ㆍ

黃庭內外經(황정내외경) : 《황정내외경(黃庭內外經)》ㆍ

崔公入藥鏡(최공입약경) : 《최공입약경(崔公入藥經)》ㆍ

胎息心印(태식심인) : 《태식심인(胎息心印》ㆍ

洞古定觀(동고정관) : 《통고정관(洞古定觀)》ㆍ

大通淸靜等經(대통청정등경) : 《대통청정(大通淸淨)》등의 경전(經傳)이었네.

就其庵獨居修煉(취기암독거수련) : 그 암자에 들어가 독거(獨居)하면서 수련(修煉)을 하였네.

魔鬼萬方來撓(마귀만방래요) : 마귀(魔鬼)들이 만방에서 와서 둘러쌌으나

以不聞不見消之(이불문불견소지) : 듣지도 않고 보지도 않으니 사라져 갔네.

凡苦志十一年(범고지십일년) : 온갖 애를 쓰며 11년 만에야

乃成神胎(내성신태) : 신태(神胎)를 이루었네.

法當解去(법당해거) : 법으로는 당연히 해탈해서 떠났겠지만

上帝命留此(상제명류차) : 상제(上帝)께서 이곳에 머물러서

統東國三道諸神(통동국삼도제신) : 동국(東國) 삼도(三道)의 모든 신(神)을 거느리라고 명령하셨네.

故留此五百餘年(고류차오백여년) : 그래서 여기에 머문 지 5백여 년이었네.

限滿則當上昇矣(한만칙당상승의) : 기한이 차면 당연히 상승(上昇)할 걸세.

吾經歷數十人(오경력수십인) : 내가 수십 명을 만나 보았지만

或氣過銳(혹기과예) : 더러는 기(氣)가 지나치게 예민(銳敏)하고,

或太鈍(혹태둔) : 더러는 너무 둔하기도 하고,

或少忍力(혹소인력) : 더러는 인내력이 적거나,

或緣淺(혹연천) : 더러는 인연이 옅고,

或多慾念(혹다욕념) : 더러는 욕념(慾念)이 많아

俱不能成(구불능성) : 모두 성공할 수가 없었네.

若有成道者(약유성도자) : 만약 성도(成道)하는 사람이 있었다면

吾當擧授吾任(오당거수오임) : 마땅히 내 임무를 맡기고

上歸玉京(상귀옥경) : 옥경(玉京)으로 돌아갔으련만,

而曠百年不得一人(이광백년불득일인) : 수백 년을 헛되이 보내고 한 사람도 만나지 못했으니

此我塵緣未盡而然也(차아진연미진이연야) : 이건 나의 티끌 세상과의 인연이 다하지 못해서 그런 걸 거야."하였다.

斗與長老久同寢(두여장로구동침) : 두(斗)는 장로와 함께 오랫동안 같은 방에서 잠을 자곤 했지만

常怪其祕臍下寸地(상괴기비제하촌지) : 그가 숨기는 것이 있어 늘 이상하게 여겼다. 그의 배꼽 아래 한 치[寸] 정도의 부분을 가리고

不許人見(불허인견) : 남이 보지 못하도록 하는 점이었다.

問其故欲覩之(문기고욕도지) : 그 까닭을 물으며 그걸 보고 싶다고 했더니,

長老笑曰(장로소왈) : 장로(長老)는 웃으면서,

何容易耶(하용역야) : "그걸 왜 쉽게 보여 주랴.

見則恐驚君耳(견칙공경군이) : 보여 주면 그대는 깜짝 놀라 까무러칠 것인데."하였다.

斗曰(두왈) : 두(斗)는,

奚驚爲(해경위) : "왜 놀라겠습니까,

願一見(원일견) : 한 번 보는 것이 원입니다."하자,

長老解下包(장로해하포) : 장로(長老)가 싸맨 것을 풀어 놓으니

金光百道(금광백도) : 반짝이는 금빛 1백여 줄기가

射於屋梁(사어옥량) : 천장까지 쏘아댔다.

不能定視(불능정시) : 바로 볼 수도 없어

蒲伏於榻(포복어탑) : 의자 밑으로 숨으니

長老還包之如故(장로환포지여고) : 장로(長老)는 다시 그걸 싸매서 전과 같이 하였다.

斗又曰(두우왈) : 두(斗)는 또,

師旣治諸神(사기치제신) : "스승님은 벌써부터 모든 신(神)들을 다스린다면서

何無一個來修覲者(하무일개래수근자) : 왜 한 사람도 찾아와 받드는 사람이 없습니까?"하니,

長老曰(장로왈) : 장로(長老)는,

吾飛神而受其朝矣(오비신이수기조의) : "나는 정신을 날려서 그들의 조회를 받곤 했었네."하였다.

又請觀諸神(우청관제신) : 또 여러 귀신 구경하기를 청했더니,

曰可待明年上元也(왈가대명년상원야) : "내년 정월 보름날을 기다려야 하네."하였다.

至期(지기) : 그날이 되자

長老出龕中衣箱(장로출감중의상) : 장로(長老)는 감실(龕室) 속에서 옷 상자를 꺼내서

戴八霞方山巾(대팔하방산건) : 여덟 가지 채색의 방산건(方山巾)을 쓰고,

服七星日月繡袍(복칠성일월수포) : 일곱 개의 별ㆍ해ㆍ달의 수를 놓은 도포(道袍)를 입고,

係圓靑玉束獅帶(계원청옥속사대) : 둥근 청옥(靑玉)에 둥근 끈을 달고 사자를 그린 띠[帶]를 두르고

穿五花文履(천오화문리) : 다섯 가지 꽃으로 무늬진 신을 신고,

手持八角玉如意(수지팔각옥여의) : 손에는 여덟 모진 옥(玉)으로 만든 여의주(如意珠)를 붙잡고

趺坐砌臺上(부좌체대상) : 섬돌대 위에 부좌(趺坐)하였다.

斗西向侍(두서향시) : 두(斗)는 서쪽으로 향해서 모셨고,

童子偶立(동자우립) : 동자(童子)는 모퉁이에 서 있었다.

忽於臺上雙檜(홀어대상쌍회) : 갑자기 대(臺) 위의 두 잣나무에

各掛彩花燈(각괘채화등) : 각각 울긋불긋한 꽃등불이 걸리더니

俄而滿洞千萬樹(아이만동천만수) : 조금 지나자 산골에 가득한 수천 수만의 나무에

俱各掛花燈(구각괘화등) : 모두 꽃등불이 걸려

紅焰漲空如白晝(홍염창공여백주) : 붉은 불꽃이 공간을 가득 채워 대낮 같았다.

有奇形怪狀之獸(유기형괴상지수) : 기이하고 괴상한 모습의 짐승들이 나타나는데,

或熊虎或獅象(혹웅호혹사상) : 더러는 곰이나 호랑이 같기도 하고, 어떤 것은 사자나 코끼리 같았다.

或豹而雙脚(혹표이쌍각) : 어떤 것은 표범인데 다리가 둘이고,

或虯形而翼(혹규형이익) : 어떤 것은 규룡(虯龍)의 모양에 날개가 있고,

或龍而無角(혹룡이무각) : 어떤 것은 용이면서 뿔이 없었다.

或龍身馬頭(혹룡신마두) : 어떤 것은 용의 몸에 말의 머리가 달렸고

或三角而人立決驟(혹삼각이인립결취) : 어떤 것은 뿔이 세 개인데 사람처럼 서서 빨리 달리고,

或人面三眸者以百數(혹인면삼모자이백수) : 어떤 것은 사람 얼굴처럼 생겨 눈동자가 세 개나 달린 것들로 수백 마리나 되었다.

又有象獐鹿彘形者(우유상장록체형자) : 또 코끼리ㆍ노루ㆍ사슴ㆍ돼지의 모양을 지닌 것으로

金目雪牙(금목설아) : 노오란 눈에 하얀 이빨,

赭毳霜蹄(자취상제) : 붉은 털 하얀 발굽에

夭矯拏攫以千計(요교나확이천계) : 뛰고 할퀴고 하는 것들이 1천여 마리 정도나 되었는데

俱羅侍於左右(구라시어좌우) : 그를 모두가 열지어 좌우에 모시고 섰었다.

又有金童玉女捧幢節數百人(우유금동옥녀봉당절수백인) : 또 금동(金童)과 옥녀(玉女)가 지휘 깃발을 들고 수백 명이 서 있었다.

介戟具三伏者千餘人(개극구삼복자천여인) : 기치 창검을 든 군대도 1천여 명으로 삥 둘러 서 있었다.

環立臺上(환립대상) : 대(臺) 위에는

衆香馥郁(중향복욱) : 온갖 향기가 욱욱하고

璜佩丁東(황패정동) : 패옥[璜珮] 부딪치는 소리들이 쟁쟁거렸다.

續有靑衫象(속유청삼상) : 바로 이어서 푸른 장삼을 입고 상아 홀(笏)을 들고,

簡佩水蒼戴弁者二人(간패수창대변자이인) : 옥[水蒼]을 차고 고깔을 쓴 두 사람이

鞠躬階下(국궁계하) : 섬돌 아래서 국궁(鞠躬)하고는

唱曰(창왈) : 창(唱)하기를,

東方極好林(동방극호림) : "동방(東方)의 극호림(極好林)ㆍ

廣霞(광하) : 광하(廣霞)ㆍ

紅映山三大神(홍영산삼대신군견) : 홍영산(紅暎山) 등 삼대신군(三大神君)이 뵙습니다."하였다.

有三神俱頂紫金梁冠(유삼신구정자금량관) : 그들 삼대신(三大神)은 모두 빨간 금관을 쓰고

紫袍玉帶(자포옥대) : 붉은 도포에 옥띠를 띠고,

端笏雲履(단홀운리) : 홀을 단정히 잡고, 구름이 그려진 신을 신고,

佩劍珩者(패검형자) : 칼과 노리개를 찼으며

頎而晢長(기이절장) : 키가 헌칠했다. 얼굴은 희맑고 길었으며

眉目皆朗秀(미목개랑수) : 미목(眉目)이 밝고 수려하였다.

長老起立拱手(장로기립공수) : 장로(長老)가 일어서서 공수(拱手)하니

三神皆再揖而退(삼신개재읍이퇴) : 삼대신은 함께 두 번 읍(揖)하고는 물러갔다.

又唱曰(우창왈) : 또 창(唱)하기를,

蓬壺方丈圖嶠祖洲瀛海等五洲眞官見(봉호방장도교조주영해등오주진관견) : "봉호(蓬壺)ㆍ방장(方丈)ㆍ도교(圖嶠)ㆍ조주(祖洲)ㆍ영해(瀛海) 등 오주(五洲)의 진관(眞官)이 뵙습니다."하였다.

有五神各披方色袍冠佩如前(유오신각피방색포관패여전) : 다섯 신(神)은 각각 지방색을 보이는 도포를 입고 관(冠)이나 패물은 앞의 것과 같았고,

而俱頎秀(이구기수) : 모두 헌걸차고 수려했다.

長老起立(장로기립) : 장로(長老)가 일어서니

五神皆再拜而退(오신개재배이퇴) : 다섯 신(神)들이 모두 두 번 절하고 물러갔다.

又唱曰(우창왈) : 또 창(唱)하기를,

東南西海長離廣野沃焦玄隴地昁摠眞(동남서해장리광야옥초현롱지昁총진) : 동해ㆍ남해ㆍ서해의 장리(長離)ㆍ광야(廣野)ㆍ옥초(沃焦)ㆍ현롱(玄隴)ㆍ지폐(地肺)ㆍ총진(摠眞)ㆍ

女几東華仙源琳宵等十島女官見(녀궤동화선원림소등십도녀관견) : 여궤(女几)ㆍ동화(東華)ㆍ선원(仙源)ㆍ임소(琳宵) 등 십도(十島)의 여관(女官)들이 뵙습니다."하자,

有仙女十人(유선녀십인) : "선녀(仙女) 10인이

俱戴花絨金襪巾(구대화융금말건) : 모두 꽃으로 수놓은 금말건(金襪巾)을 쓰고

揷赤珠步搖(삽적주보요) : 붉은 구슬로 된 보요(步搖)를 꽂아,

珠翠玲瓏映其面(주취령롱영기면) : 구슬과 비취옥이 영롱하게 얼굴에 반사하여

不可定視(불가정시) : 똑바로 바라볼 수도 없었다.

服素練金鳳紋衫(복소련금봉문삼) : 금봉(金鳳)의 무늬를 놓은 하얀 저고리에

施翠羅襕膝長裙(시취라?슬장군) : 파란 비단으로 만든 무릎 아래까지 닿는 긴 치마를 드리웠다.

佩太乙靈符赩(패태을령부혁) : 태을영부(太乙靈符)를 차서

奕有電光(혁유전광) : 번쩍번쩍 번갯불이 나고,

穿綠花方底履(천록화방저리) : 푸르고 붉은 모가 난 낮은 신을 신었다.

頎長而男子拜(기장이남자배) : 헌칠하고 긴 허리로 남자들이 하던 절을 올리니

長老不起(장로불기) : 장로(長老)는 일어나지 않고

坐受之(좌수지) : 앉아서 절을 받자

女官退(녀관퇴) : 여관(女官)들이 물러갔다.

又唱曰(우창왈) : 또 창(唱)하기를,

天印紫蓋金馬丹陵天梁南壘(천인자개금마단릉천량남루) : "천인(天印)ㆍ자개(紫蓋)ㆍ금마(金馬)ㆍ단릉(丹陵)ㆍ천량(天梁)ㆍ남루(南壘)ㆍ

穆洲等七道司命神將見(목주등칠도사명신장견) : 목주(穆洲) 등 칠도(七道)의 사명신장(司命神將)이 뵙습니다."하니

有紅抹額揷羽(유홍말액삽우) : 붉은 말액(抹額; 巾의 일종)에 깃을 꽂고

戎袴褶(융고습) : 무인(武人)들이 입는 고의(袴衣)와

繡花掩心金搭(수화엄심금탑) : 꽃으로 수놓은 앞가림 옷을 입고,

肘佩矢房弧箙(주패시방호복) : 팔에는 활집과 화살통을 비스듬히 걸었고,

手朱殳而俱獅形虎姿(수주수이구사형호자) : 손에는 붉은 창을 붙잡고 있었다. 모두 사자의 형태에 범의 모습으로

植赤髮金目虯髥者揖不拜退(식적발금목규염자읍불배퇴) : 붉은 머리털을 세우고 금빛 눈동자에 용의 수염이 달렸었다. 읍(揖)만 하고 절은 하지 않고 물러갔다.

又唱曰(우창왈) : 또 창(唱)하기를,

丹山玄林蒼兵素泉(단산현림창병소천) : "단산(丹山)ㆍ현림(玄林)ㆍ창구(蒼丘)ㆍ소천(素泉)ㆍ

赭野等五神所繞(자야등오신소요) : 자야(赭野) 등 다섯신의 거느림을 받는

山林藪澤嶺瀆城隍諸鬼伯鬼母俱見(산림수택령독성황제귀백귀모구견) : 산림(山林)ㆍ수택(藪澤)ㆍ영독(嶺瀆)ㆍ성황(城隍) 등의 모든 귀백(鬼伯)ㆍ귀모(鬼母)는 함께 뵙습니다."하였다.

五大神將如七道神形者(오대신장여칠도신형자) : 5대 신장들의 모습은 앞의 7도 신장들의 모습과 같았고,

各領一隊百餘靈官(각령일대백여령관) : 각각 한 부대(部隊)가 1백여 명이나 되는 영관(靈官)을 거느리고 있었는데,

或短醜(혹단추) : 어떤 것은 키가 작고 누추했으며

或長大(혹장대) : 어떤 것은 키가 컸으며,

或潔脩而雅(혹결수이아) : 어떤 것은 말쑥하고

或六臂四目者(혹륙비사목자) : 어떤 것은 여섯 개의 팔과 네 개의 눈을 지닌 자들이었다.

女或老醜或姸少者(녀혹로추혹연소자) : 여자 중에는 더러 늙은 추녀이고 더러는 곱고 젊었으나

被服俱隨方色(피복구수방색) : 그들의 옷은 모두 지방색을 따라 입었는데

列立四拜(렬립사배) : 열지어 서서 네 번 절하고

退爲五隊(퇴위오대) : 물러나와 다섯 대열이 되었다.

長老命小童持小綘幡(장로명소동지소綘번) : 장로(長老)가 소동(小童)에게 명령하여 붉은 깃발을 들고

從北方指東環南抵西(종북방지동환남저서) : 북쪽에서 동쪽으로 향해 가서 남쪽으로 돌아 서쪽에 이르러

立于中隊之前(립우중대지전) : 중대(中隊)의 앞에 서게 하니,

告曰(고왈) : 고하기를

諸靈俱會(제령구회) : "여러 신령(神靈)들이 모두 모였으나

而魏州趙夫人未至矣(이위주조부인미지의) : 오직 위주(魏州)의 조 부인(趙夫人)만 오지 않았습니다."고 아뢰었다.

素泉神出跪曰(소천신출궤왈) : 소천신(素泉神)이 나와서 꿇어 앉으며 말하기를,

他以謫(타이적) : "그는 귀양살이 가서

今降爲人(금강위인) : 이제는 사람으로 강등되었고

其代不來矣(기대불래의) : 그를 대신할 사람이 오지 못했습니다."하였다.

長老招廣霞三眞人至前(장로초광하삼진인지전) : 장로(長老)는 광하(廣霞) 등 세 진인(眞人)을 불러서 앞에 세워 놓고

謂曰(위왈) : 말하기를,

卿輩分理三方(경배분리삼방) : "경(卿)들은 세 방면(方面)을 나누어 다스리면서

體上帝好生之德(체상제호생지덕) : 상제님의 어진 덕(德)을 실천하여

黎庶受卿澤久矣(려서수경택구의) : 백성들이 경들의 은택(恩澤)을 입은 지 오래였다.

今者厄會將至(금자액회장지) : 요즈음 액운이 다가오고 있어

萬姓當罹其殃(만성당리기앙) : 만 백성이 재앙(災殃)에 걸려 들었는데

思所以捄之榮耶(사소이구지영야) : 이에 대하여 구출할 방책을 강구하였는가?"하고 물었다.

三人者俱唏咨(삼인자구희자) : 세 사람은 모두 탄식을 거듭하며,

誠如所諭(성여소유) : "정말로 유시(諭示)하신 바와 같습니다.

昨者蓬萊治水大監(작자봉래치수대감) : 어제 봉래산(蓬萊山)의 치수대감(治水大監)이

自紫霞元君所來過紅映山言(자자하원군소래과홍영산언) : 자하원군(紫霞元君)이 계신 곳으로부터 와서 홍영산(紅映山)에 들러 말하기를

衆眞在九光殿上侍上帝(중진재구광전상시상제) : '여러 진인(眞人)들이 구광전(九光殿) 위에 있으며 상제(上帝)를 모시는데,

有三島帝君道(유삼도제군도) : 삼도제군(三島帝君)이 있어 말하기를

閻浮提三韓之民(염부제삼한지민) : 「염부제에 살고 있는 삼한(三韓)의 백성들이

機巧姦騙誑惑暴殄(기교간편광혹폭진) : 지나치게 교사스럽고 간사하여 속임수를 잘 쓰고

不惜福不畏天(불석복불외천) : 복(福)을 아끼지 않으며, 하늘을 두려워하지 않고,

不孝不忠(불효불충) : 불효(不孝)ㆍ불충(不忠)하고,

嫚神瀆鬼(만신독귀) : 귀신을 모독하였다.

故借句林洞貍面大魔(고차구림동리면대마) : 그래서 구림동(句林洞)에 사는 이면(狸面)의 대마(大魔)를 빌려다가

拳赤土之兵往勦之(권적토지병왕초지) : 적토(赤土)의 군대를 모두 모아 가서 소탕하려 한다.

連兵七年(련병칠년) : 그래서 연속된 전쟁 7년째에

國幸不亡(국행불망) : 나라는 다행히 망하진 않을지라도

三方之民(삼방지민) : 3방의 백성들을

十集其五六以警之(십집기오륙이경지) : 10에 5-6을 살육하여서 경계하려 한다.」고 했다.' 하였습니다.

臣等聞之(신등문지) : 신하인 저희들도 그 말을 듣고

亦皆心怵(역개심출) : 역시 모두 두려워서 마음이 떨리더이다.

而大運所關(이대운소관) : 그러나 큰 운수의 소관인데

何敢容力乎(하감용력호) : 어찌 감히 힘으로 해결되겠습니까?" 한다.

長老亦嗟吁不已(장로역차우불이) : 장로(長老)도 역시 탄식하기를 그만두지 못했다.

俄自中隊發炮一響(아자중대발포일향) : 잠깐 사이에 중대(中隊)로부터 대포 한 알을 쏘는 소리가 나자

四隊皆應(사대개응) : 네 개의 대열이 모두 호응하여

擂鼓伐金以助之(뢰고벌금이조지) : 북과 쇠를 울려서 도왔다.

樹上燈一一落地(수상등일일락지) : 그리하여 나무 위의 등불이 하나하나 땅에 떨어지고

窅然幽谷(요연유곡) : 아득히 깊은 골짜기에

太雲平鋪(태운평포) : 많은 구름이 내리 깔렸다.

長老入房(장로입방) : 장로는 방으로 들어와

襆其冠服(복기관복) : 관(冠)과 옷을 벗고

明燈坐室中(명등좌실중) : 등불을 밝히고 방 가운데 앉았다.

斗愕眙自失者久之(두악이자실자구지) : 두(斗)는 깜짝 놀라서 오랫동안 정신을 잃고 있었다.

翌日(익일) : 다음날

招斗謂曰(초두위왈) : 두(斗)를 불러들여 말하기를,

你旣緣薄(니기연박) : "그대는 이미 인연이 엷어서

不合久于此(불합구우차) : 여기에 오래 남아 있기에는 합당치 못하니

其下山長髮餌黃精(기하산장발이황정) : 하산(下山)하여 머리를 기르고 황정(黃精)을 먹으며

拜北斗(배북두) : 북두칠성에 절하도록 하게나.

不殺婬盜(불살음도) : 음탕한 사람이나 도둑도 죽이지 말고

不茹葷狗牛肉(불여훈구우육) : 매운 채소ㆍ소ㆍ개고기 등을 먹지 말며,

不陰害人(불음해인) : 타인을 음해(陰害)하지 않는다면

則此地上仙(칙차지상선) : 이는 곧 땅 위의 신선이네.

行脩之不息(행수지불식) : 행하고 수양하는 일을 쉬지 않는다면

亦可上昇矣(역가상승의) : 또한 승선(昇仙)도 할 수 있을 거네.

黃庭參同(황정참동) : 황정경(黃庭經)》과《참동계(參同契)》는

道家上乘(도가상승) : 《도가(道家)의 높은 교리이니

誦持不懈(송지불해) : 외는 일을 게을리하지 말게.

而度人經(이도인경) : 《도인경(度人經)》은

乃老君傳道之書(내로군전도지서) : 노자(老子)의 도(道)를 전하는 글이고,

玉樞經(옥추경) : 《옥추경(玉樞經)》은

乃雷府諸神所尊(내뢰부제신소존) : 바로 뇌부의 여러 신들을 존숭하는 글이니

佩之(패지) : 항상 지니고 다니면

則鬼畏神欽(즉귀외신흠) : 귀신들이 두려워하고 흠앙할 것이네.

此外修心之要(차외수심지요) : 이 밖에 마음을 닦는 요체는

唯不欺爲上(유불기위상) : 남을 속이지 않는 것이 최상이 되는 것이네.

凡人一念之善惡(범인일념지선악) : 일반 사람이 한 번 선과 악을 생각하여도

鬼神布列於左右(귀신포렬어좌우) : 귀신들이 좌우에 벌려 있어

皆先知之(개선지지) : 모두를 먼저 알아내고,

上帝降臨孔邇(상제강림공이) : 상제(上帝)께서 강림(降臨)하심이 무척 가까워

作一事輒錄之於斗宮(작일사첩록지어두궁) : 하나의 일을 하면 곧바로 그걸 두궁(斗宮)에 기록하여 억제하고

報應之效(보응지효) : 응답해 주는 효과가

捷於影響(첩어영향) : 그림자나 메아리보다 더 빠른 거네.

昧者褻之(매자설지) : 이치에 어두운 사람이 이를 업신여기고

以爲茫昧不足畏(이위망매불족외) : 꽉 막힌 하늘이니 두려울 게 없다고 하지만,

彼焉知蒼蒼上之有眞宰者操其柄耶(피언지창창상지유진재자조기병야) : 그들이 어떻게 창창(蒼蒼)한 하늘 위에 참다운 주재자(主宰者)가 처리하는 자루[柄]를 조종하고 있음을 알 수 있겠는가.

你忍心雖剛(니인심수강) : 자네야 참아내는 마음이 강하긴 하지만

而慾念不除(이욕념불제) : 욕념(慾念)이 제거되지 않았으니

倘或不愼(당혹불신) : 혹시라도 삼가지 않는다면

則一墜異趣(칙일추이취) : 한 차례 이단(異端)에 떨어지는 경우

曠劫受苦(광겁수고) : 끝없이 오랜 괴로움을 당할 걸세.

可無懼哉(가무구재) : 삼감이 없어서야 되겠나."하였다.

斗涕泣而受其誨(두체읍이수기회) : 두(斗)는 눈물을 흘리며 그의 가르침을 받고

卽告辭下山回視(즉고사하산회시) : 곧 하직하여 하산(下山)하였다. 돌아보니

則無復人居焉(칙무부인거언) : 사람이 살았던 곳이라고는 온데간데 없어져 버렸다.

展轉至臨陂(전전지림피) : 이곳저곳을 헤매다가 임피(臨陂)에 이르고 보니,

則舊盧無遺址(칙구로무유지) : 옛날의 집이라고는 터도 남지 않았고

田畝皆再四易主(전무개재사역주) : 전장(田莊)은 모두 2-4차례씩 주인이 바뀌었다.

又屆洛下(우계락하) : 또 서울로 가보아도

則故宅只有基(칙고댁지유기) : 옛날의 집은 터만 남아

柱礎縱橫於宿莽中(주초종횡어숙망중) : 주춧돌만이 묵은 풀 속에 종횡으로 놓여 있었다.

忍淚而歸(인루이귀) : 눈물을 삼키며 돌아오고 말았다.

常念有老實奴在海南(상념유로실노재해남) : 늘 생각하던 착실한 늙은 종이 있었는데 해남(海南)에 살며

富有田宅(부유전댁) : 충분한 전택(田宅)도 있다기에

往投之而初不識焉(왕투지이초불식언) : 찾아가 몸을 의탁하였는데 처음에는 알아보지도 못하더니

久乃認爲其主(구내인위기주) : 얼마 후에 자기 주인임을 알아차리고는

相持號慟(상지호통) : 서로 붙잡고 통곡하며 울어댔다.

空其居而處之(공기거이처지) : 그가 살던 곳을 비워 주며 거처하도록 하였다.

爲娶民家女(위취민가녀) : 상민(常民)의 딸을 아내로 맞아서

生子女各一(생자녀각일) : 아들 딸 하나씩을 낳았다.

先生雖更立家業(선생수경립가업) : 선생은 비록 다시 가업(家業)을 세웠으나

佩服師訓(패복사훈) : 스승의 교훈을 가슴에 새기고

終始不少懈(종시불소해) : 끝까지 조금도 게으름을 피우지 않았다.

去隱于龍潭地(거은우룡담지) : 해남에서 떠나 용담(龍潭)의 지역에 은거하였다.

擇深谷以居(택심곡이거) : 깊은 산 골짜기를 골라서 살았으니,

爲近雉裳(위근치상) : 치상산(雉裳山)에서

冀再遏仙師計(기재알선사계) : 가까운 곳이어서 다시 선사(仙師) 만나기를 바라던 계획이었으리라.

而數十年採黃精松葉食之(이수십년채황정송엽식지) : 수십 년 동안 황정(黃精)과 솔잎을 채취하여 식사로 했으니

身日益強(신일익강) : 몸이 날이 갈수록 더욱 건강해져

鬚髮不白(수발불백) : 수염도 희지 않고

步履如飛(보리여비) : 걸음걸이도 나는 듯하였다.

萬曆戊申秋(만력무신추) : 만력(萬曆; 明 神宗의 연호) 무신년(선조 41, 1608) 가을

筠罷公州(균파공주) : 허균(許筠)이 공주(公州)에서 파직을 당하고

家扶安(가부안) : 부안(扶安)에서 살았다.

先生自古阜步訪於旅邸(선생자고부보방어려저) : 선생이 고부(古阜)로부터 도보로 나의 여관방을 찾아 주셨다.

因以四經奧旨授之(인이사경오지수지) : 그리하여 네 가지 경(經)의 오묘한 뜻을 나에게 전해 주시고,

且以遇師顚末詳言之如右(차이우사전말상언지여우) : 또 그분이 선사(仙師) 만났던 전말(顚末)에 대한 상세한 이야기를 위에서와 같이 말해 주었다.

先生今年八十三(선생금년팔십삼) : 선생의 나이는 그해에 83세였으나

而容若四十六七歲人(이용약사십륙칠세인) : 얼굴은 마치 46-47세 된 사람과 같았다.

視聽精力不少衰(시청정력불소쇠) : 시력(視力)이나 청력(聽力)이 조금도 쇠약하지 않았고,

鸞瞳綠髮脩然(란동록발수연) : 톡 쏘는 눈동자나 검은 머리털이 의젓하여

如廋鶴(여수학) : 여윈 학(鶴)과 같았다.

或數日絶食不寐(혹수일절식불매) : 어떤 때는 며칠을 먹지도 않고 잠을 자지도 않으며

誦參同(송참동) : 《참동계(參同契)》나

黃庭不綴(황정불철) : 《황정경(黃庭經)》을 쉬지 않고 외곤 하였다.

輒曰(첩왈) : 간혹,

毋陰行險(무음행험) : "몰래 해로운 일을 하지 말며,

毋曰無鬼神(무왈무귀신) : 귀신이 없다고 말하지 말게.

行善積德(행선적덕) : 착한 일을 행하고 덕을 쌓으며

絶慾煉念(절욕련념) : 욕심을 끊고 마음을 단련한다면

則上仙可立致(칙상선가립치) : 상선(上仙)의 극치를 세울 수 있으며,

鸞鶴不日下迎矣(란학불일하영의) : 난새[鸞]와 학(鶴)이 며칠 사이에 내려와 맞아줄 것이네."하였다.

不佞見先生飮啖食息如平人(불녕견선생음담식식여평인) : 나는 선생의 음식ㆍ거처가 보통 사람과 같음을 보고서

怪之(괴지) : 이상하게 여겼더니,

先生曰(선생왈) : 선생은,

吾初擬飛昇(오초의비승) : "내가 처음에는 비승(飛昇)하리라 여겼는데

而欲速不果成(이욕속불과성) : 빨리 이루고 싶어하다가 이루지를 못하고 말았네.

吾師旣許以地上仙(오사기허이지상선) : 우리 스승님께서 이미 지상의 신선은 되었으니

勤脩則八百歲可期矣(근수칙팔백세가기의) : 부지런히 수련하면 8백 세의 나이는 기약할 수 있다고 허락하셨네.

近日山中頗苦閑寂(근일산중파고한적) : 요즘 산중(山中)이 너무 한가하고 적막하여

下就人寰(하취인환) : 속세로 내려왔으나

則無一個親知(칙무일개친지) : 아는 사람 한 사람 없을뿐더러,

到處年少輩輕其老醜(도처년소배경기로추) : 가는 곳마다 젊은이들이 나의 늙고 누추함을 멸시하여

了無人間興味(료무인간흥미) : 인간의 재미라고는 전혀 없네.

人之欲久視者(인지욕구시자) : 사람이 오래도록 보고 싶어하는 것이란

原爲樂事(원위악사) : 본래 즐거운 일인데,

而悄然無樂(이초연무악) : 쓸쓸하고 즐거움이라고는 없으니

吾何用久爲(오하용구위) : 내가 왜 오래 살려고 하겠는가?

以是不禁煙火(이시불금연화) : 이 때문에 속세의 음식을 금하지 않고

抱子弄孫以度餘年(포자롱손이도여년) : 아들을 안고 손자를 재롱부리게 하며 여생을 보내다가

乘化歸盡(승화귀진) : 승화(乘化)하여 깨끗이 돌아가

以順天所賦也(이순천소부야) : 하늘이 주신 바에 순종하려네.

君有仙才道骨(군유선재도골) : 그대야말로 선재(仙才)와 도골(道骨) 있으니

力行不替(력행불체) : 힘써 행하고 쉬지 않는다면

眞仙去君何遠哉(진선거군하원재) : 진선(眞仙)이 되기에 아무런 어려움이 없을 것이네.

吾師嘗許我以忍(오사상허아이인) : 우리 스승께서 일찍이 나에게 인내력이 있다고 하셨는데

不能忍而至是(불능인이지시) : 참아 내지를 못하고 이 지경이 되었네.

忍之一字(인지일자) : 인(忍)이라는 글자 하나는

仙家妙訣(선가묘결) : 선가(仙家)의 오묘한 비결(祕訣)이니

君亦愼持勿墜也(군역신지물추야) : 그대 또한 삼가 지니고 놓치지 말게나." 하였다.

留數旬(류수순) : 얼마 동안 머무시다가

拂衣辭去(불의사거) : 붙잡는 손을 뿌리치고 떠나갔으니,

人言其還向龍潭云(인언기환향룡담운) : 사람들은 그가 용담(龍潭)으로 다시 갔다고들 하였다.

許子曰(허자왈) : 허균(許筠)은 논한다.

傳言東人尙佛不尙(전언동인상불불상도) : 전해오는 말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불교(佛敎)는 숭상했어도 도교(道敎)는 숭상하지 않았다.'라는 말이 있다.

自羅逮鮮數千載(자라체선수천재) : 신라 시대부터 조선(朝鮮)에 이르기까지 몇천 년이 지났으나

未聞有一人得道仙去者(미문유일인득도선거자) : 득도(得道)하여 신선되어 간 사람이 있음을 듣지 못했다.

其果徵哉(기과징재) : 그렇다면 전해오는 말이 과연 징험이 되는 말이랴.

然以余所覩南宮先生言之(연이여소도남궁선생언지) : 그러나 내가 보았던 남궁 선생(南宮先生)으로 말한다면

可異焉(가이언) : 이상할 수밖에 없다.

先生所師者果何人(선생소사자과하인) : 선생이 스승으로 여겼던 분은 과연 어떤 사람이고,

而得於相師者(이득어상사자) : 상(相) 보는 사람에게 알아냈다는 것도

未必的然可信(미필적연가신) : 결코 확실히 믿을 만한 것은 못 되며,

所悅亦未必盡然(소열역미필진연) : 말했던 것들도 역시 모두 그렇지만은 않으리라.

要之影響之間也(요지영향지간야) : 요컨대 그림자나 메아리 같은 실체 없는 소리이리라.

但以先生年貌看之(단이선생년모간지) : 다만 선생의 나이와 용모로 본다면

非眞能得道者耶(비진능득도자야) : 참으로 득도(得道)할 수 있었던 사람이 아닐 것인지.

那能八十而若是康健耶(나능팔십이약시강건야) : 어찌하여 80의 나이이고도 그처럼 건강했으랴.

此又不可決以爲實無是事也(차우불가결이위실무시사야) : 이건 또 도교 숭상하는 일이 실제로 없었다고 결정내릴 수도 없으리라.

噫其奇哉(희기기재) : 아아, 그거야말로 기이하도다.

我國僻在海外之遐(아국벽재해외지하) : 우리나라가 궁벽한 바다 밖 멀리에 있어

氣之士如羨門安期(기지사여선문안기) : 뛰어난 은사(隱士)로 선문자(羨門子)나 안기생(安期生)과 같은 분들이 드물었으나

而巖石間乃有此異人(이암석간내유차이인) : 암석(巖石)의 사이에 그러한 이인(異人)이 있어

累千百年(루천백년) : 여러 천백 년 만에

俾先生一得遇之(비선생일득우지) : 남궁 선생으로 하여금 만날 수 있게 하였으니

孰謂偏壤而無其人耶(숙위편양이무기인야) : 그 누가 '좁은 지역이니 그러한 인물이 없다.'라고 말하랴.

達道則仙(달도칙선) : 도(道)에 통달하면 신선이고

昧道則凡(매도칙범) : 도에 몽매하면 범인이다.

傳所言者與耳食奚殊(전소언자여이식해수) : 전해진다는 말이 이식과 무엇이 다르리오.

使先生毋望其速成(사선생무망기속성) : 선생으로 하여금 빨리 이루려던 욕망이 없게 하여

卒收爐鼎之效(졸수로정지효) : 끝내 단련하던 효과를 거둘 수 있게만 했다면

則彼羨門安期(칙피선문안기) : 저들 선문자ㆍ안기생과 어깨를 맞대고

亦何難拍肩而等夷之(역하난박견이등이지) : 나란히 맞서기에 무슨 어려움이 있었으랴.

唯其不忍(유기불인) : 다만 그분이 참아 내지 못하여

以敗垂成之功(이패수성지공) : 다 이루어진 공(功)을 실패하고 말았으니

嗚呼惜哉(오호석재) : 오호, 애석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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