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공 스님의 신통력

釋惠空 天眞公之家傭嫗之子 小名憂助(盖方言也)

혜공(惠空) 스님은 천진공(天眞公)의 집에서 품팔이하던 노파의 아들이다.

어릴 때의 이름은 우조(憂助)*였다.

憂助, 방언(方言)인 듯하다.

公嘗患瘡濱於死 而候慰塡街 憂助年七歲

謂其母曰 家有何事 賓客之多也

천진공이 종기를 앓아 거의 죽을 지경에 빠졌다.

그러자 문병하는 사람으로 거리가 메워질 정도가 되었다.

이때 우조의 나이 7세였는데, 어머니에게 물었다.

“집에 무슨 일이 있나요? 웬 손님이 이렇게 많아요?”

母曰 家公發惡疾將死矣 爾何不知

어머니가 대답하였다

“어르신[家公]께서 몹쓸 병이 걸려 곧 돌아가시게 생겼구나.

뭘 하느라고 넌 그것도 알지 못했니?”

家公, 보통은 자신의 아버지나 할아버지를 부르는 말.

여기서는 제가 섬기는 주인을 가리킨다

助曰 吾能右之

우조가 말하였다.

“제가 그 병을 고쳐[右] 보겠습니다.”

母異其言 告於公 公使喚來 至坐床下 無一語

須庾瘡潰 公謂偶爾 不甚異之

어머니가 이상하게 여겨 공에게 아뢨더니 공이 그를 오라고 불렀다.

오더니 침상 아래 앉았는데 한 마디도 뻥긋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런데 잠시 후 앓고 있던 공의 종기가 갑자기 터졌다.

공은 우연이려니 싶어 그다지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旣壯 爲公養鷹 甚愜公意 初公之弟 有得官赴外者 請公之選鷹歸治所

우조는 천진공을 위해 매를 길렀는데, 그 솜씨가 공의 마음에 썩 들었다.

한 번은 공의 아우로 벼슬을 얻어 지방으로 부임하는 이가 있었다.

그는 공이 골라 준 좋은 매를 가지고 임지로 갔다.

一夕公忽憶其鷹 明晨擬遣助取之 助已先知之 俄頃取鷹 昧爽獻之

公大驚悟 方知昔日救瘡之事 皆叵測也 謂曰

어느 날 밤이었다. 공이 갑자기 그 매 생각이 나 새벽이 오면 우조를 시켜

매를 가져오게 하리라 생각하였다.

그런데 우조가 이것을 미리 알고 단걸음에 달려가 새벽녘에 매를 공에게 바쳤다.

공은 화들짝 놀라 깨닫고는, 그제야 지난번에 종기를 고쳤던 일이 모두 헤아리기

어려운 일이었음을 알고 말하였다.

僕不知至聖之托吾家 狂言非禮汚辱之 厥罪何雪

而後乃今願爲導師 導我也 遂下拜

“우리 집에 덕이 지극한 성인(聖人)께서 와 계신 것도 모르고 몹쓸 말을

지껄이고 무례한 짓을 저질러 욕을 보였습니다.

이 죄를 어떻게 씻을 수 있겠습니까.

이제부터는 부디 도사(導師)가 되어 저를 이끌어 주십시오.”

공은 마당으로 내려가 절을 올렸다.

靈異旣著 遂出家爲僧 易名惠空

常住一小寺 每猖狂大醉 負簣歌舞於街巷 號負簣和尙

所居寺因名夫蓋寺 乃簣之鄕言也

이렇게 신령스럽고 이상한 영험을 나타낸 탓에 우조는 승려가 되어 이름도 고쳐

혜공(惠空)

이라 하였다. 스님은 작은 암자에 살았다. 매양 미친 듯 술을 마시고 거나하게 취하면

삼태기를 진 채 거리를 나돌아 다니며 노래하고 춤을 추었다.

이 때문에 그를 사람들은 부궤화상(負簣和尙)이라 불렀다.

또 그가 있는 절은 부개사(夫蓋寺)라 불렀데, ‘부개’는 우리말로 삼태기다.

每入寺之井中 數月不出 因以師名名其井

每出有碧衣神童先湧 故寺僧以此爲候 旣出 衣裳不濕

암자에 있는 우물 속에 들어가서는 몇 달이 지나도록 나오지 않는 일이 잦았다.

그래서 우물도 이름을 스님의 이름을 따서 붙였다.

우물 속에 있다가 나올 때면 푸른 옷을 입은 신동(神童)이 먼저 솟아 나왔기

때문에 사찰 승려들은 이것으로 스님이 언제 나올지 짐작하였다.

스님은 우물에서 나왔어도 옷은 젖지 있지 않았다.

晩年移止恒沙寺(今迎日縣吾魚寺 諺云恒沙人出世 故名恒沙洞)

만년에는 항사사(恒沙寺, 지금의 영일현(迎日縣) 오어사(吾魚寺)다.

세상에서는 항하사(恒河沙)처럼 많은 사람이 출세했기 때문에 항사동

(恒沙洞)이라 한다고 하였다)에 가 지냈다.

時元曉撰諸經疏 每就師質疑 或相調戱*

이때 원효(元曉, 617-686) 스님이 여러 불경(佛經)들의 소(疏)를 찬술(撰述)

하고 있었는데, 궁금한 점이 있으면 혜공 스님에게 가서 묻고

또 서로 장난을 치기도하였다.

調戱, 말로 서로 희롱함.

一日二公沿溪掇魚蝦而啖之 放便於石上

公指之戱曰 汝屎吾魚

어느 날 혜공 스님과 원효 스님이 절 앞을 흐르는 시내를 따라 가면서

물고기와 새우를 잡아먹고 돌 위에서 대변을 보았다.

혜공 스님이 그것을 가리키며 희롱조로 말하였다.

“그대가 싼 똥은 내가 잡은 물고기일 게요.”

故因名吾魚寺 或人以此爲曉師之語 濫也 鄕俗訛呼其溪曰芼矣川

그러므로 사찰 이름을 오어사(吾魚寺)*로 고쳐 불렀다.

어떤 이는 이 말을 한 사람이 원효 스님이라 하지만 잘못이다.

세상에서는 그 시내를 모의천(芼矣川)이라 잘못 부르고 있다.

吾魚寺, 경북 포항시 남구 오천읍 항사리 운제산에 있는 사찰

瞿旵公嘗遊山 見公死僵於山路中 其屍⺼逢脹 爛生虫蛆

悲嘆久之 及廻轡入城 見公大醉歌舞於市中

어느 날 구참공(瞿旵公)이 산에 갔다가 혜공 스님이 산길에서 죽어 쓰러져

있는 것을 보았다. 시체는 살이 부어터지고 썩어 구더기가 들끓고 있었다.

이 꼴을 본 그는 한참을 슬피 탄식하다가 말고삐를 돌려 성으로 들어왔다.

그랬는데 혜공 스님은 술에 만취해서 시장 안에서 노래하고 춤추고 있는

것이 아닌가.

又一日將草索綯 入靈廟寺 圍結於金堂 與左右經樓及南門廊廡

告剛司 此索須三日後取之

또 한 번은 풀로 새끼를 꼬아 영묘사(靈廟寺)에 들어가 금당(金堂)과 좌우에 있는

경루(經樓), 남문의 낭무(廊廡)를 묶더니 강사(剛司)에게 말하였다.

“사흘 뒤에 풀도록 하라.”

剛司異焉而從之 果三日善德王駕幸入寺

志鬼心火出燒其塔 唯結索處獲免

강사가 이상히 여겼지만 그 말을 좇았다. 과연 사흘 만에 선덕왕이 행차하여

절에 왔는데, 지귀(志鬼)*의 심화(心火)가 탑을 불태웠는데,

새끼로 묶어둔 곳만은 재앙을 면할 수 있었다.

志鬼, 신라 선덕여왕 때 사람. 여왕을 사모하다 야위어갔다. 여왕이 절에 불공을

드리러 갔다가 그 이야기를 듣고 그를 불렀다.

그러나 여왕을 기다리던 지귀는 탑 아래서 깜빡 잠이 들고 말았다.

그러자 여왕은 팔찌를 벗어 지귀의 가슴에 얹어놓고 갔다.

잠에서 깨 팔찌를 발견한 지귀는 잠든 사이 여왕이 다녀간 것을 알고 사모의 정이

불타 불귀신이 되었다. 이를 들은 여왕이 술사(術士)에게 주문을 짓게 하였다.

又神印祖師明郎 新創金剛寺 設落成會 龍象畢集 唯師不赴

朗卽焚香虔禱 小選公至

또 신인종(神印宗)*의 조사 명랑(明朗)이 금강사(金剛寺)*를 새로 창건하고

낙성회를 열었는데, 많은 고승들이 모였지만 유독 혜공 스님만 오지 않았다.

이에 명랑이 향을 피우고 정성스레 기도를 올렸더니 조금 후 스님이 왔다.

神印宗, 신인은 범어 문두루(文豆婁)의 번역. 신라의 명랑(明朗)이 632년

(진덕여왕 1) 당나라에 가서 법을 배우고 돌아와 세운 종파다)

金剛寺, 경북 경주시에 있던 사찰.

時方大雨 衣袴不濕 足不沾泥

마침 소나기가 쏟아지는 중이었는데, 스님의 옷은 전혀 젖지 않았을뿐더러

발에도 진흙이 묻지 않았다.

謂明朗曰 辱召懃懃 故玆來矣

혜공 스님이 명랑에게 말하였다.

“그대가 은근히 부르기에 왔소이다.”

靈迹頗多 及終 浮空告寂 舍利莫知其數

이처럼 스님에게는 신령스러운 행적이 자못 많았다. 세상을 떠날 때는 공중에

떠서 입적했는데, 사리(舍利)가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았다.

嘗見肇論曰 是吾昔所撰也

일찍이 스님이 <조론(肇論)>*을 보더니 말하였다.

“이건 내가 옛날에 지은 글이야.”

肇論, 후진(後秦)의 승조(僧肇)가 지은 책.

물불천론(物不遷論)과 불진공론(不眞空論), 반야무지론(般若無知論), 열반무명론

(涅槃無名論)의 넷으로 되어 있다.

삼론종(三論宗)에서 말하는 만유제법(萬有諸法)이 자성이 없어 공하지만

상대적 공이 아니고, 언어사려가 끊어진 절대적 묘공(妙空)이라는 이치를

말한 책.

乃知僧肇之後有也

이것으로 스님이 승조(僧肇)*의 후신인 것을 알 수 있다.

僧肇, 383-414. 중국 스님. 장안 사람. 구마라집 문하 4철(哲)의 하나.

讚曰

찬(讚)한다.

草原縱獵床頭臥

풀밭에서 마구 사냥하다 침상 위에 누웠고

酒肆狂歌井底眠

술집에서 미친 듯 노래하더니 우물 속에서 잠을 자네.

隻履浮空*何處去

한 짝 신발 남기고 공중에 떠서는 어디로 가셨는지

一雙珍重火中蓮

한 쌍의 귀하고 귀한 불꽃 속의 연꽃이로다.

隻履척리(-혜공이 죽은 후에 무덤에 남아있던 신발 한짝)

浮空부공(혜공이 죽은후 공중에 떠서 사라진 것을 이름)

[참고]심화요탑설화 또는 지귀설화로 알려진 <삼국유사>의 내용은 이 조항 속의

영묘사의 화재사건과 관련된 아래의 내용뿐이다.

又一日將草索綯 入靈廟寺 圍結於金堂 與左右經樓及南門廊廡

告剛司 此索須三日後取之

또 한 번은 풀로 새끼를 꼬아 영묘사(靈廟寺)에 들어가 금당(金堂)과 좌우에 있는

경루(經樓), 남문의 낭무(廊廡)를 묶더니 강사(剛司)에게 말하였다.

“사흘 뒤에 풀도록 하라.”

剛司異焉而從之 果三日善德王駕幸入寺

志鬼心火出燒其塔 唯結索處獲免

강사가 이상히 여겼지만 그 말을 좇았다. 과연 사흘 만에 선덕왕이 행차하여

절에 왔는데, 지귀(志鬼)*의 심화(心火)가 탑을 불태웠는데,

새끼로 묶어둔 곳만은 재앙을 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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