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귀토설화를 다시 읽어본다.

龜兎說話,『삼국사기』권41,열전제1,金庾信 上.

[설화 앞부분 요약]

선덕여왕 16년(642) 백제가 침공하여 신라군이 패배함.

이때 김춘추공의 딸 고타소랑(古陁炤娘)도 그 남편 품석(品釋)과 함께 전사.

김춘추는 고구려의 군사를 청하여 백제의 원수를 갚으러 고구려에 갔다.

어떤 이가 신라의 사자는 고구려의 형세를 염탐하려 온 것이니 죽여 후환을 없앰이 옳을 것이라 함.

그렇게 욕보일 수는 없어 마목현(麻木峴,聞慶)과 죽령(竹嶺)은 우리 땅이니 돌려 달라고 함.

김춘추“나라의 땅은 한 臣子로서 전단할 수 없으므로 감히 명령을 받들 수 없습니다.”

왕이 분노하여 그를 가두고 죽이려 하다가 미처 죽이지 않고 있었다.

춘추는 푸른 베 3백 보를 왕의 총신 선도해(先道解)에게 몰래 주었다.

도해가 음식을 준비해 와서 함께 술을 마시고 취하자 농담으로 말했다.

“그대도 일찌기 거북이와 토끼의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오.”

昔東海龍女病心 醫言

“得兎肝合藥 則可療也.”

옛날 동해 용왕의 딸이 심장에 병이 났는데, 의사가 ‘토끼의 간을 얻어 약에 섞어 먹으면

병을 고칠 수 있다’고 하였소.

然海中無兎 不奈之何. 有一龜白龍王言

“吾能得之.”

그러나 바다에는 토끼가 없으니 어찌할 수 없었소.

그 때 마침 거북 한 마리가 용왕에게 아뢰었다오.

‘제가 그것을 구할 수 있습니다.’

遂登陸. 見兎言

그리고 거북이는 마침내 육지로 나와서 토끼를 보고 말했소.

“海中有一島 淸泉白石 茂林佳菓 寒暑不能到

鷹隼不能侵 爾若得之 可以安居無患.”

‘바다에 섬이 하나 있는데, 거기에는 맑은 샘과 흰 돌이 있고 무성한 숲과

맛있는 과실이 있다. 추위와 더위도 없고, 맹금도 침범할 수 없다.

네가 갈 수만 있다면 근심걱정 없이 편안히 살 수 있을 것이다.’

因負兎背上 游行二三里許 龜顧謂兎曰

그리고 거북이는 토끼를 등에 업고 2-3리쯤 헤엄쳐 갔다오.

그제서야 거북이가 토끼를 돌아보며 말했다오.

“今龍女被病 須兎肝爲藥 故不憚勞 負爾來耳.”

‘지금 용왕의 딸이 병에 걸렸는데 토끼 간으로 약을 지어야 하기 때문에 이렇게

수고를 마다않고 너를 업고 오는 것이다.’

兎曰

토끼가 말했다오.

“噫 吾神明之後 能出五臟 洗而納之

‘아! 나는 천지신명의 후예인지라 오장을 꺼내어 씻어서 다시 넣을 수 있다.

日者 少覺心煩 遂出肝心洗之 暫置巖石之低

일전에 속이 약간 불편한 듯하여 간과 심장을 꺼내어 씻은 후에 잠시 바위 밑에 두었다.

聞爾甘言徑來 肝尙在彼 何不廻歸取肝

그런데 너의 달콤한 말을 듣고 곧 바로 오는 바람에 간이 아직도 거기에 있으니,

어찌 돌아가서 간을 가지고 오지 않으리오?

則汝得所求 吾雖無肝 尙活 豈不兩相宜哉?”

그렇게 하면 너는 구하려는 약을 얻게 되고, 나는 간이 없더라도 살 수 있으니

어찌 둘이 서로 좋은 일이 아니랴?’

龜信之而還 纔上崖 兎脫入草中 謂龜曰

거북이 그 말을 곧이 듣고 돌아갔는데, 언덕에 오르자 마자 토끼가 풀 속으로

뛰어들어가면서 거북에게 말했다오.

“愚哉汝也 豈有無肝而生者乎?”

‘어리석기도 하구나. 네놈은! 어찌 간이 없이 사는 놈이 있겠느냐?’

龜憫黙而退.

거북은 멍청히 아무 말도 못하고 물러갔다오.”

[설화 뒷부분]

춘추는 이 말을 듣고 그의 뜻을 알아 차렸다. 그는 왕에게 글을 보내 말했다.

“두 영(嶺)은 본래 대국의 땅입니다. 신이 귀국하여 우리 왕에게 이를 돌려 보내도록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미덥지 않다면 저 태양을 두고 맹세하겠습니다.”

왕은 그 때서야 기뻐하였다. 춘추가 고구려에 간 지 60일이 지나도록 안돌아오자 유신은 국내의

용사 3천 명을 선발하여 놓고 말했다.

“위기를 당하면 목숨을 내놓고, 어려움을 당하면 한 몸을 돌보지 않는 것이 열사의 뜻이라고

나는 들었다. 한 명이 목숨을 바쳐서 백 명을 대적하고, 백 명이 목숨을 바쳐서 천 명을 대적하고,

천 명이 목숨을 바쳐서 만 명을 대적한다면 천하를 마음대로 할 수 있다.

지금 이 나라의 어진 재상이 타국에 구금되어 있는데 어찌 두렵다 하여 일을 도모하지 않겠느냐?”

이에 모든 사람들이 말했다.

“비록 만 번 죽고 한 번 사는 일에 나아갈지라도, 어찌 감히 장군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겠습니까?”

유신은 마침내 왕에게 떠날 날짜를 정해주기를 요청하였다.

이 때 고구려의 간첩인 중 덕창이 고구려에 사람을 보내 이 사실을 고구려의 왕에게 알리도록 하였다.

고구려 왕은 전날 춘추의 맹세를 들었고, 또한 첩자의 말을 들은지라 그 이상 만류하지 못하고

후한 예로 대우하여 춘추를 귀국케 하였다.

고구려 국경을 벗어나자 춘추가 전송하러 나온 자에게 말했다.

“내가 백제에 원수를 갚기 위하여 고구려에 와서 군사를 요청하였으나,

대왕은 이를 허락하지 않고 도리어 땅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신하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전에 대왕에게 보낸 글은 죽음을 모면하려는 것이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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