讚耆婆郞歌
景德王 忠談師 表訓大德 -삼국유사 紀異 제2
[주]삼국유사의 성담론을 다시 소개한다.
지철로왕 때도 얘기한 바이지만 향가 설화 화자들은 왕의 음경 길이를 애기하는 걸 예사로 여겼던 듯하다.
말하자면 그 정도의 성담론은 금기사항이 아니었던 시대였다. 八寸이나 되는 음경 길이는 지증왕의 一尺五寸에
비하면 겨우 절반이 넘는 길이지만 결코 작은 고추가 아니다. 왕비가 無子하여 폐위한 걸 보면 굳이 그 길이를
따진 것은 후사(後嗣) 문제와 연결시키려 한 것으로 보인다. 지증왕 얘기에서도 음경이 너무 커서 배우자를
구하기 어렵웠다고 한 기록도 참고하기 바란다.
그런데 충담사를 불러들여 <안민가>를 받은 걸 보면 경덕왕대는 극도의 혼란기였고, 각간의 딸을 후비로
맞아야 할 만큼 왕권도 흔들렸다. 그러나 경덕왕은 행복했다. 하늘의 천제와 소통하는 표훈대덕과 충언을
아끼지 않는 충담사도 그의 신하가 아닌가?
서술 순서로 보면 <안민가> 다음에 바로 <찬기파랑가>를 소개하고바로 경덕왕의 "王玉莖長八寸"로 들어간다.
<안민가>는 아래창에 소개한 바 있다.
http://blog.paran.com/kydong/27235049
讚耆婆郞歌曰,
찬기파랑가에 이르기를,
咽-嗚-爾-處-米
露 -曉-邪-隱-月-羅-理
白-雲 -音-逐-于-浮-去-隱-安-攴-下
沙-是-八-陵-隱-汀 -理-也-中
耆-郞-矣-皃-史-是-史-藪-邪
逸-烏-川 -理-叱-磧 -惡-希
郞-也-持 -以-支 -如-賜-烏-隱
心 -未-際-叱-肹-逐-內-良-齊
阿-也, 栢-史-叱-枝 -次-高-攴 -好
雪-是-毛-冬-乃-乎-尸-花-判-也
열치매 ‘구름을 열치매
나토얀 리 나타난 달이
흰구룸 조초 떠가는 안디하 흰 구름 쫓아 떠가는 것 아닌가?‘
새파란 나리여해‘새파란 냇물에
耆郞애 즈시 이슈라 기파랑의 모습이 잠겨 있네!‘
일로 나리ㅅ* 재벽해일오(逸烏) 냇가 조약돌에서
郞애 디니다샤온 기파랑이 지니시던
마으매갓흘 좇누아져 ‘마음의 끝’을 좇으려 하네‘
아으, 잣가지 노파 아, 잣가지 드높아
서리 몯누올 花判이여. 서리를 모를 그대 모습이여!
王玉莖長八寸.
왕은 옥경(玉經)의 길이가 여덟치나 되었다.
無子廢之 封沙梁夫人.
아들이 없어 왕비를 폐하고 사량부인에 책봉했다.
後妃滿月夫人 諡景垂太后 依忠角干之女也.
후비인 만월부인의 시호는 경수태후이며 의충 각간의 딸이었다.
王一日 詔表訓大德曰
왕이 어느날 표훈대덕에게 말했다.
「朕無祜 不獲其嗣
“내가 복이 없어 아들을 얻지 못했으니
願大德請於上帝而有之.」
원컨대 대덕은 상제께 청하여 아들을 두게 하여 주오.”
訓上告於天帝.
표훈은 하늘에 올라가 천제께 고했다.
還來奏云
돌아와 아뢰었다.
「帝有言 求女則可 男則不宜.」
“상제께서 말씀하시기를, 딸을 구하면 가능하지만 아들이라면 불가하다 하옵니다.”
王曰「願轉女成男.」
왕: “원하건대 딸을 바꾸어서 아들이 되게해 주오.”
訓再上天請之.
표훈이 다시 하늘에 올라 상제께 청하니
帝曰「可則可矣 然有男則國殆矣.」
상제께서 말하기를,
“가능하기는 하지만 그렇게 하면 나라가 위태로울 것이다.”라고 하였다.
訓欲下時 帝又召曰
표훈이 하계로 내려오려고 할 때 상제가 불러 말하기를,
「天與人不可亂.
“하늘나라는 인간세상과 어지럽힐 수 없다.
今師往來如隣里 漏洩天機
지금 대사가 왕래하기를 이웃 마을처럼 하여 천기를 누설하니
今後宜更不通.」
오늘 이후로는 의당 다시는 교통하지 말라.”
訓來以天語諭之.
표훈은 지상으로 돌아와 천제의 말로 깨우쳤다.
王曰「國雖殆得男而爲嗣足矣.」
왕: “나라가 비록 위태로울지라도 아들을 얻어 후사를 삼으면 족하리라.”
於是 滿月王后生太子. 王喜甚.
그 후 만월왕후가 태자를 낳으니 왕이 기뻐하였다.
至八歲王崩. 太子卽位 是爲惠恭大王.
태자가 여덟살 때 왕이 세상을 떠나니 왕위에 올랐다. 이가 바로 혜공대왕이다.
幼沖故太后臨朝
왕의 나이가 어렸으므로 태후가 임조(臨朝)하였는데
政條不理 盜賊蜂起 不遑備御
정사를 잘 다스리지 못하여 도둑이 벌떼처럼 일어나 막아낼 수 없었다.
訓師之說驗矣.
표훈대사의 말이 증험이 있었다.
小帝旣女爲男
왕은 여자로서 남자가 되었으므로
故自期晬至於登位 常爲婦女之戱.
돌날부터 왕위에 오르는 날까지 언제나 부녀자의 놀이를 하였다.
好佩錦囊 與道流爲戱
비단주머니 차기를 좋아하고 도류(道流-도사)와 어울려 희롱하였으므로
故國有大亂
나라가 크게 어지러웠다.
修(註,終)爲宣德與金良相*所弑. *金良相:37대 선덕왕이 됨.
마침내 선덕왕과 김양상에게 죽음을 당하였다.
[주]삼국사기 신라본기 혜공왕 16년조에 의하면, 이찬 김지정이 반란을 일으키자 상대등 김양상이 이를
진압하고 또한 혜공왕은 난병에게 화를 당하였다고 한다.
自表訓後 聖人不生於新羅云.
표훈은 이후로 신라에는 성인이 출생하지 않았다고 한다.
4.讚耆婆郞歌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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