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소총 제202화 - 천하에 어리석은 자는 선비들이니라 (天下之癡者士類也)

 

어떤 선비가

금강(錦江)의 나룻배 안에서

전일 운우지정(雲雨之情)을 나누었던

공산(公山)1)의 기녀와 이별을 하는데,

1)공산(公山) - 공주의 옛 지명.

기녀가 통곡을 하며

물에 빠져 죽을 것처럼 하자

선비 또한 눈물을 흘리며

기녀의 등을 어루만지면서 달래었다.

"얘야, 얘야.

나 때문에 목숨을 버리지는 말아라."

 

그리고는 행낭(行囊)에서

수백 냥 값어치가 나가는

은주발을 꺼내

기녀에게 정표로 주었다.

 

강을 건너

선비와 작별하고 되돌아오는

나룻배 안에서

기녀는 언제 울었냐는 듯

장가(長歌)를 부르며

희희낙락하였다.

 

이를 본

기녀의 벗이 책망하였다.

"이별의 눈물이

채 마르기도 전에

태연히 노래를 부르다니

너의 정이라는 것은

믿을 수가 없구나."

 

기녀는 웃으면서

은그릇을 두드리며 말했다.

"통곡을 했던 것도

이것 때문이었고

노래를 부른 것 또한

이것 때문이었단다."

 

이 말을 들은 뱃사공이

박장대소하면서 말했다.

"천하에 가장 어리석은 자는

바로 선비들이지.

한 번 보고 그만 둘

과객(過客)을 위해

목숨을 버릴 창기(娼妓)가

세상에 어디 있을까?"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어떤 나그네가

시를 지어 조롱하였더라.

 

莫信娼妓墮水謀(막신창기타수모)

箇中可笑爲銀器(개중가소위은기)

至今留得沙工話(지금류득사공화)

天下癡者是士類 (천하치자시사류)

 

물에 빠져 죽겠다는 창기의 꾀 믿지 마오.

은주발을 두드리며 노래하고 웃으리니

지금도 뱃사공은 이야기한다네.

천하에 어리석은 자는 선비들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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