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금소총 제203화 - 추위에 신음하며 후회한들 소용없도다 (忍凍吟寒悔可追)

 

영남에서 고을살이를 하던 사또가

임기가 끝나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

문경새재(鳥嶺)에서 정을 통하였던

애기(愛妓)와 이별하는데

서로 붙들고 통곡하니

곁에 있던 노파가

또한 같이 통곡하는지라

 

사또가 이상하게 여겨 물었다.

"자네는 왜 우는가?"

"이 늙은 것이

저 기생이 이곳에서

정인(情人)과 이별하는 장면을

족히 스무 차례는 더 보았었지요.

예전에는 그리 슬퍼하지 않고

실날 같이 가는 눈물을

흘릴 뿐이더니,

오늘은 여러 갑절 슬퍼하여

통곡까지 하며

눈물 줄기가 대나무처럼 굵습니다.

사또께서 얼마나

방중술(房中術)이 훌륭하시고

정력이 절륜하시기에

저 기생의 마음을 그토록

사로잡으셨는지요?

이 늙은 것이 감동되고 부러워

부지불식중(不知不識中)

눈물을 흘렸사옵니다."

 

이 말을 들은

사또는 기뻐하며

옷을 벗어 노파에게 주었다.

 

이별을 마치고

문경새재를 넘어

한참 길을 가는데

풍설(風雪)이 치므로

추위를 견디느라 신음하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내가 할망구의 술수에 빠졌군.

그러나 후회한들 어쩌겠나?"

 

지나가는 어떤 자가 있어

이 광경을 보고

시를 한 수 지어 읊었다더라.

 

鳥嶺佳人泣別時(조령가인읍별시)

老婆何物亦啼爲(노파하물역제위)

解衣一贈緣心惑(해의일증연심혹)

忍凍吟寒悔可追(인동음한회가추)

 

새재에서 가인과 울며 이별할 적에

어떤 노파 또한 함께 울었네.

마음이 미혹되어 옷 하나를 벗어주고

추위에 신음하며 후회한들 소용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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