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소총 제205화 - 과연 누가 벼의 주인입니까? (何人稻主)

 

옛날 시골의 한 사내가

장가든지 십년이 가까워도

아내에게 태기가 없어

대를 이을 자식을 얻기 위해

여러 명의 씨받이 여인까지

가까이 해보았으나 허사인지라,

그제서야 사내는 자신에게

여인에게 뿌릴 씨가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낙심한 가운데

이 궁리 저 궁리 끝에

이웃 마을에 살고 있는

절친한 친구를 찾아가

대를 잇지 못하여

조상 앞에

면목이 없게 된 사정을

이야기 하고서,

자신의 아내와 합방하여

포태시켜 줄 것을 간청하자

이 민망한 부탁에

처음에는 몇 번이나

사양하던 친구도

간절하게 애원하는

사내의 부탁을

승락할 수밖에 없었다.

 

이윽고 친구와 약속한 날이

다가온 사내는

밤이 깊어갈 때

주안상을 들이라 해서

아내에게 몇 잔 억지로 권하여

크게 취기가 올라

깊은 잠이 들게 한 후

안방에 눕히고

집 밖에서 기다리는 친구를

조용히 불러들여

아내와 합방(合房)을

하도록 하였다.

 

아내는 바로 태기가 있어

배가 불러왔고

드디어 아들을

순산하게 되었으며,

이 아들은 무럭무럭 자라서

다섯 살에 벌써

글공부가 일취월장하여

인근에 신동(神童)으로

소문이 자자하게 되니

사내 부부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어

더욱 아들을

애지중지(愛之重之)하게 되었다.

 

그러나 사내의 부인과 합방하여

포태를 시켜준 친구는

이 신동 아이가

자신의 친아들임을 생각하며

항상 아깝고 애석하게 여기다가,

결국 고을 사또에게

아들을 찾아달라고

고하기에 이르렀다.

 

사또는 사내와 사내의 친구 등을

관아로 불러들여 문초를 한 바,

아들을 찾아달라고 고한

친구의 주장이

사실로 확인되기는 했으나,

대를 이을 자식을 얻기 위해

부득이하게 행한 일이었으며

친구가 비밀을 철저히 지키겠다는

약속을 어긴 점과,

그간의 기른 정을 내세워

신동 아들을

친구에게 내어 줄 수 없다는

사내의 주장이 워낙 드세어서

사또는 이를 어떻게

판결하여야 좋을지

난감하기만 하였다.

 

사또는 며칠간

궁리를 해보았으나

뚜렷한 묘책이 없어

신동으로 소문난

그 아들이 생각하는 바를

들어보기 위해,

사내와 사내의 친구

신동 아들 등을

다시 관아로 불러들여

신동 아들에게

그동안의 자초지종과

포태과정을 설명하고

어찌 생각하는지

아뢸 것을 명하였다.

 

그러자 신동 아들은

주저없이 사또에게 아뢰었다.

"사또 나으리!

어떤 농부가 봄이 되어

논농사를 시작하고자 하였으나,

볍씨 종자가 없어

이웃 친구에게서 이를 얻어다

못자리에 뿌린 후

모를 길러 모내기를 하였습니다.

그 후 벼가 논에서

탐스럽게 자라 익어 가는지라,

볍씨 종자를 빌려준

친구가 탐을 내어

농부의 논에서 자란 벼를

추수할 주인은

볍씨 종자의 주인이었던

자신이라고 주장하는데

과연 이 벼의 주인은

누가 되겠습니까?

사또께서 참작하여

판결해 주시옵소서."

 

이 말을 들은 사또는

그제야 무릎을 치며

신동 아들의 진정한 아비는

아이를 포태시킨

사내의 친구가 아니라

신동 아들을 기른 사내라 하는

판결을 내리게 되었더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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