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화집 <어수신화>의 편찬자 장한종이
그의 나이 38세 때인
병인년(丙寅年 : 1806년)에 벼슬을 하여
경상도 통영으로 내려갔을 때의 일이다.
당시 그는 어느 양반집 여종이던
순월(順月)이란 여인을
첩으로 삼아 함께 살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가 임신한 지
네댓 달 되었을 무렵,
그는 학질에 걸려
고생을 하다가 병이 낫지 않자
서울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그 뒤로 장한종은
한번도 통영에 내려가 보지 못했는데,
소문으로 들으니
순월은 그가 떠난 직후
임신했던 아이를 낙태시켰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대여섯 달이 지난 뒤
통영에서 올라온 사람에게 듣자니,
순월은 다시 다른 남자를 사귀어
그의 아이를 수태하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한편 장한종이 통영에 내려갈 때
함께 갔던 진용여(秦用汝)라는 친구는,
그 당시 통영에서 말순(末順)이라는 기생을
첩으로 들여 놓고 살았었다.
나중에 그도 서울로 올라오면서
말순을 데려올 처지가 못 되어
그대로 떼어 놓고 떠나왔다.
그런데 말순은 모시고 살던
진용여가 상경하자 절개를 지켜,
손님을 접대하라는 관장의 명령을 거역했다.
이 일로 인해 말순은 큰 벌을 받아
몇 차례 형장(刑杖)을 맞고 고통을 당하면서도
지조를 굳게 지켰다.
어느 날 밤 그녀는 마침내
통영 관아를 탈출해
서울로 올라와서는
천신만고 끝에
진용여를 찾게 되었다.
그는 사정이 어려웠지만
말순을 거두지 않을 수 없어
첩으로 데리고 살았다.
그러고 나서 어느 날,
장한종은 여러 친구들이 모인 곳에서
이 두 여인의 내력을
자세히 얘기하고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말순은 태장을 맞으면서도
끝까지 절개를 지키다
옛날에 섬기던 사람을 찾아 서울로 왔으니,
그 정절은 참으로 칭찬할 만한 일이로세.
그러나 말순은 좀더 세월이 지나면
진용여에게 분명 큰 짐이 될 것이네.
반면 내 첩으로 살았던 순월은
내게 걱정도 끼치지 않고 짐도 되지 않았으니,
순월이 말순보다 더 낫다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이에 사람들이 의아하게 생각하자,
장한종은 이렇게 설명하는 것이었다.
"어떤 사람이 남의 집 그릇을 빌려 쓴다고
가정해 보게.
이 때 만일 빌린 그릇이 파손되었을 경우에,
새 그릇을 사서 돌려주면
아무런 짐이 되지 않을 걸세.
이처럼 순월은 내 아이를 수태했다가
그것을 지워 없애고,
또 다른 사람의 씨를 받아
임신한 몸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으니,
내게 아무 짐도 되지 않게 해준 것이네.
정말로 순월은 청순하고 깨끗하지 아니한가?"
이 말에 거기 있던 사람들은 한바탕 크게 웃었더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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