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소총 제321- 좋은 첩의 의미 (買做新胎)

 

설화집 <어수신화>의 편찬자 장한종이

그의 나이 38세 때인

병인년(丙寅年 : 1806)에 벼슬을 하여

경상도 통영으로 내려갔을 때의 일이다.

 

당시 그는 어느 양반집 여종이던

순월(順月)이란 여인을

첩으로 삼아 함께 살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가 임신한 지

네댓 달 되었을 무렵,

그는 학질에 걸려

고생을 하다가 병이 낫지 않자

서울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그 뒤로 장한종은

한번도 통영에 내려가 보지 못했는데,

소문으로 들으니

순월은 그가 떠난 직후

임신했던 아이를 낙태시켰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대여섯 달이 지난 뒤

통영에서 올라온 사람에게 듣자니,

순월은 다시 다른 남자를 사귀어

그의 아이를 수태하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한편 장한종이 통영에 내려갈 때

함께 갔던 진용여(秦用汝)라는 친구는,

그 당시 통영에서 말순(末順)이라는 기생을

첩으로 들여 놓고 살았었다.

나중에 그도 서울로 올라오면서

말순을 데려올 처지가 못 되어

그대로 떼어 놓고 떠나왔다.

 

그런데 말순은 모시고 살던

진용여가 상경하자 절개를 지켜,

손님을 접대하라는 관장의 명령을 거역했다.

이 일로 인해 말순은 큰 벌을 받아

몇 차례 형장(刑杖)을 맞고 고통을 당하면서도

지조를 굳게 지켰다.

 

어느 날 밤 그녀는 마침내

통영 관아를 탈출해

서울로 올라와서는

천신만고 끝에

진용여를 찾게 되었다.

 

그는 사정이 어려웠지만

말순을 거두지 않을 수 없어

첩으로 데리고 살았다.

 

그러고 나서 어느 날,

장한종은 여러 친구들이 모인 곳에서

이 두 여인의 내력을

자세히 얘기하고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말순은 태장을 맞으면서도

끝까지 절개를 지키다

옛날에 섬기던 사람을 찾아 서울로 왔으니,

그 정절은 참으로 칭찬할 만한 일이로세.

 

그러나 말순은 좀더 세월이 지나면

진용여에게 분명 큰 짐이 될 것이네.

반면 내 첩으로 살았던 순월은

내게 걱정도 끼치지 않고 짐도 되지 않았으니,

순월이 말순보다 더 낫다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이에 사람들이 의아하게 생각하자,

장한종은 이렇게 설명하는 것이었다.

"어떤 사람이 남의 집 그릇을 빌려 쓴다고

가정해 보게.

이 때 만일 빌린 그릇이 파손되었을 경우에,

새 그릇을 사서 돌려주면

아무런 짐이 되지 않을 걸세.

 

이처럼 순월은 내 아이를 수태했다가

그것을 지워 없애고,

또 다른 사람의 씨를 받아

임신한 몸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으니,

내게 아무 짐도 되지 않게 해준 것이네.

정말로 순월은 청순하고 깨끗하지 아니한가?"

 

이 말에 거기 있던 사람들은 한바탕 크게 웃었더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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