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소총 제322화 - 네 성은 여씨로다 (汝姓必呂)

 

한 선비가 멀리 여행을 가다가 어느 산골을 지나가게 되었다.

때는 마침 장마철이라 비가 오락가락하더니,

이 산골을 지날 무렵에는 계속 비가 내렸다.

 

이에 선비는 마땅한 객점을 찾아다니다가,

산속 외딴 곳의 한 오두막에

작은 방 하나를 얻어 유숙하게 되었다.

그 집은 나무를 베어다가 숯을 구워 파는 탄막(炭幕)이었다.

 

거기에는 이른바 '막창(幕娼)'이라고 하는 창녀가 있어 일을 돕고 있었다.

옛날에는 산속 탄막이나 산골 주막에 이런 '막창'이라는 창녀가 있어,

숯을 굽고 옹기를 만드는 홀아비나

지나가는 길손에게 잠자리를 제공하면서,

그 집안의 부엌일을 도와

밥을 얻어먹으며 살아가고 있었다.

 

선비가 며칠 동안 비에 갇혀 지내는 사이,

이 막창 여인과 자주 눈이 마주쳐 야릇한 눈길을 보내곤 했다.

그러다 선비는 이 여인을 불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고,

이삼일 지나서는 마침내 잠자리까지 함께 하게 되었다.

 

그러나 여인은 건장하고 힘센 남자들을 하도 많이 상대하여

그 음호(陰戶)가 마치 커다란 항아리 같았고,

몸집이 크지 않은 선비는 양근마저 작아,

그 작업을 하는 동안 도무지 마찰의 감각을 느낄 수 없었다.

 

이에 선비는 옛날에 배운 중국 송나라 시대의 문호인

소동파(蘇東坡)의 '적벽부(赤壁賦)'에 나오는

'묘창해지일속(渺滄海之一粟)'1)이라는 구절을 떠올리며 가만히 웃었다.

1)묘창해지일속(渺滄海之一粟) : 아득한 푸른 물결 바다 위에 좁쌀 한 알을 떨어뜨린 것 같다는 뜻으로 매우 작은 것을 나타냄.

 

그리고는 곧 일을 끝내고 여인에게 말했다.

"네 음호는 그야말로 넓게 트인 남발낭(南拔廊)2)이로구나."

2)남발낭(南拔廊) : 남쪽으로 길게 뻗은 복도.

 

이 말을 알아듣지 못한 여인이 아무 말이 없자,

선비는 잠시 물러나 앉았다가 또다시 이렇게 읊었다.

 

靑山萬里一孤舟

(청산만리일고주)

푸른 산 일만 리에 외로운 돛단배로다.

 

이 때 비로소 여인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소녀는 무식하여 글을 읽을 줄 모르옵니다.

그 '남발낭'이란

서울 근처에 어떤 지역의 이름인지는 잘 모르겠사오나,

소녀는 그 크기와 넓이 또한 알 수가 없사옵니다.

하지만 '靑山萬里一孤舟(청산만리일고주)'라고 읊은 구절은

참으로 못난 사내가 지은 글귀로 생각되옵니다."

 

이에 선비는 다소 부끄러워

한동안 입을 다문 채 말을 잇지 못하다가,

얼마 후 입을 열어 다시 여인에게 물었다.

"너는 정말로 말을 잘하는 여인이로다.

그런데 네 성씨가 무엇인지 알고 싶구나."

 

선비는 여인의 음호가 넓은 것을

어떤 글자에 비유해 놀려 주려고 물은 것인데,

여인은 쓸데없이 성씨까지 묻는다고 생각하여

언짢아하면서 대답했다.

 

"옛날 속담에 이런 말이 있지요.

'대나무를 보면서 그 대밭 주인의 이름을 묻는다'고요.

생원어른께서는 소녀를 그저 '막창'으로 알면 되었지,

무엇 하러 성씨까지 묻고 그러십니까?

생원어른은 아들이 태어나고 딸이 태어났을 때,

그 아이들의 외조부 성명까지 기록해서

꼭꼭 간수해 두시는지요?"

 

이같이 정곡을 찔러 대꾸하는 말에 선비는 매우 불쾌했지만,

그렇다고 화를 낼 수도 없어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리고 천천히 마음을 가라앉힌 뒤 다시 말했다.

"내 너를 겪어보니 위의 입은 작으면서

아래 입은 매우 크고 넓어,

필시 네 성씨가 '여씨(呂氏)'려니 하고 물어본 것이니라."

이러면서 선비는 여인을 쳐다보면서 웃었더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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