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금소총 제323화 - 사위를 가르치려다 두 번 골탕먹다 (一計兩狂)
한 사람이 사위를 보았는데,
성격이 너무 느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아 매우 답답했다.
하루는 장인이 조용히 사위를 불렀다.
"자네는 성품이 매우 느리고
아무 말이 없으니,
사람이 이러면 아무 일도 못한다네.
남자란 할 말이 없으면
허황된 얘기라도 꾸며내야지,
계속 침묵하는 것은 좋지 않단 말일세."
이 말에 사위는 일어나
넙죽 엎드려 절을 하면서,
"장인어른께서 그리 시키신다면
이후로는 그렇게 하겠습니다."
라고 공손하게 대답하고 물러갔다.
그러고 나서 며칠이 지났다.
어느 날 새벽에
장인과 사위는 함께 들로 나갔는데,
일을 하던 사위가 갑자기
슬그머니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그래서 장인은
무슨 볼일이 있어 갔으려니 생각하고
혼자 일을 했다.
이 때 사위는 급히 집으로 달려가
숨을 헐떡거리면서
장모에게 말했다.
"장인어른께서
방금 호랑이에게 물려갔습니다.
제가 쫓아가는 중이오니
장모님도 어서 저를 따라오십시오."
이 말을 들은 장모는 놀라
통곡을 하면서 따라 나섰다.
이 때 사위는
장모가 따라오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뛰어,
다시 일하고 있는 장인에게 달려가니
장인이 보고서 물었다.
"이 사람아, 일을 하다 말고
어디를 그리 급히 다녀오는고?"
"예, 장인어른.
집에 볼일이 있어 갔더니
온통 불이 붙어 다 타버렸습니다.
그 바람에 장모님도 돌아가셔서
장인어른께 알려 드리려고
황급히 달려오는 중입니다."
"뭐라고? 집에 불이 나다니?"
사위의 말에 장인은 놀라
어쩔 줄 모르고
울면서 집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었다.
이렇게 장인 장모는 둘 다 울면서
정신없이 달려가다가
중간에서 딱 마주쳤다.
"아니, 여보. 방금 사위가 집에 와서
당신이 호랑이에게 물려갔다 길래
이렇게 정신없이 달려가는 중인데,
어떻게 호랑이를 쫓고 화를 면하셨구려.
정말 다행입니다."
"뭐? 내가 호랑이한테 물려가?
그보다는 조금 전 사위가 달려와서,
집에 불이 나 다 타버리고
당신도 죽었다 길래
이렇게 달려가는 중인데 어쩐 일이요?"
"아니, 사위가? 불은 무슨 불이요?
집에는 아무 일도 없는데요."
그 때 사위가 어슬렁거리며 나타났다.
이에 장인 장모가 헛소리를 해서
사람을 놀라게 한다고 꾸짖자
사위가 말했다.
"지난번 장인어른께서 제가 말이 없다면서,
허황된 말이라도 해야 한다고 하시기에
오늘 거짓으로 꾸며 한 말인데,
장인어른의 가르침에 부합되지 않습니까?"
이에 장인은 한숨을 내시면서 다시 타일렀다.
"이보게, 자네가 하도 말이 없고
답답해서 그리 말했는데,
이렇게 깜짝 놀랄 말을 꾸며 하다니
안 되겠구먼.
차라리 침묵을 지키는 편이 낫겠어.'
그러자 사위는 다시
그 가르침을 따르겠다고 대답했다.
그러고 며칠이 지나
장인이 집에서 식사를 하는데,
옷자락이 화로에 덮여 불이 붙었다.
이에 장인이 뜨거워 옷을 벗어 보니
불이 붙어 타고 있는데,
사위는 뒤에 앉아 보고 있으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곧 장인은 화난 목소리로
사위를 향해 꾸짖었다.
"이 사람아,
자네는 내 옷이 타는 걸 뻔히 보고서도
가만히 있었단 말인가?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잖나?"
그러자 사위는 또
이렇게 불평하듯 중얼거렸다.
"말을 해도 꾸짖고
침묵을 지켜도 꾸짖으시니,
과연 어느 장단에
춤을 추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이후로 장인은 사위에게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더라 한다.
'고전문학 > 국역고금소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325화 - 개가죽을 썼다고 개에게 절을 하다 (拜犬皮服) (0) | 2016.08.04 |
---|---|
제324화 - 베개를 삼으려 책을 빌리다 (借冊爲枕) (0) | 2016.08.03 |
제322화 - 네 성은 여씨로다 (汝姓必呂) (0) | 2016.08.03 |
제321화 - 좋은 첩의 의미 (買做新胎) (0) | 2016.08.02 |
제320화 - 부친의 노망 고치기 (止父妄談) (0) | 2016.08.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