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금소총 제324화 - 베개를 삼으려 책을 빌리다 (借冊爲枕)
옛날 한 선비가 친구들과 함께
북한산으로 가을 단풍놀이를 가게 되었는데,
마침 남대문 안에서 한 스님을 만났다.
이에 선비가 어느 절에 계시냐고 묻자,
스님은 태고사(太古寺)에 있다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선비는 다시 물었다.
"스님 절에는 자랑할 만한 고서(古書)가 있는지요?"
"저의 절에는 특별히 선비들이 볼 만한 책은 없고,
다만 '강목(綱目)' 한 질이 있을 따름입니다."
스님의 말에 선비는 좋아하면서 이렇게 당부했다.
"내가 그 책을 보고 싶으니
절로 돌아가시거든 6,7책만 빌려다
중흥사(重興寺)로 갖다 주셨으면 좋겠소.
내 오늘밤 중흥사에서 하룻밤 자게 될 것이요."
그래서 스님은 절로 돌아가
주지스님에게 사실을 이야기 하니,
"양반 선비가 그 책을 보고자 한다니,
가져다주면 반드시 읽고는 돌려줄 것이니라.
빌려 주도록 하라."라고 하면서
책을 빨리 갖다 주라고 했다.
이에 스님은 7권 책을 가지고 중흥사로 갔는데,
이미 저녁때가 되어 있었다.
선비는 가져온 책을 보고는 기뻐하면서
매우 신용있는 스님이라고 칭찬했다.
그 때 스님이 이렇게 물었다.
"선비님의 분부를 감히 어길 수 없어
이렇게 책을 가지고 왔습니다만,
벌써 밤이 깊어지는데
그 많은 책의 내용을
언제 다 보고 주무시려 그러십니까?"
"아, 아니오. 책을 읽으려는 것이 아니라,
내 늙어서 목침이 너무 딱딱하고 불편하여
책을 베개로 삼으려는 것이라오.
자고 나서 내일 아침 도로 가져가도록 하시오."
그러자 옆에서 듣고 있던 사람들은 배를 쥐고 웃었고,
스님은 아무 말도 없이 시무룩해 있었더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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