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소총 제327화 - 거미줄이 그물로 보인다 (認網爲絲)

 

한 시골 노인이 있었다.

하루는 서울에 사는

친척 재상집에 다니러 갔더니,

나이가 많은 재상은

반갑게 맞이하여 매우 환대했다.

 

식사를 마치고 재상은 노인과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이렇게 묻는 것이었다.

"자네는 시골에서

특별히 어려운 고비 없이 살면서

원기를 돋우고 좋은 풍경을 접하며

세월을 보내니,

아마도 서울에서

아둥바둥 사는 사람보다

두 배는 근력이 좋을 걸세.

그런데 나이가 있으니 눈은 어떤고?

무얼 보는 데는 지장이 없는가?"

 

"그렇지요. 시골 생활이라

더러는 과식을 할 때도 있지만,

달리 약도 없으니 굶어서 조절을 하지요.

그리고 다른 건강도

서울 사람들보다 별로 나은 것은 없습니다.

다만 어려운 점은

시골이라 안경을 구할 수 없으니,

잘 보이지 않는 것은 그만

보지 않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답니다."

 

"그래, 안경이 귀하겠구먼.

자네 내 안경을 가져가서 쓰게나."

재상은 곧 자신의 주머니에서

쓰던 안경을 꺼내 주었다.

 

이에 노인은 안경을 얻어 뛸 듯이 기뻐했다.

시골에서 안경이란 말로만 듣던 것이어서,

노인의 눈에 맞건 맞지 않건 간에

그냥 보배로 여겼다.

 

시골로 내려가면서

노인은 남대문을 나서,

곧 필요하지도 않은데

그저 뽐내려고 안경을 꺼내 썼다.

그리고 사람을 만나면

일부러 눈을 들어

안경을 자랑하는 것이었다.

 

시골로 돌아와서도 노인은

마을 사람들에게 안경 자랑으로

세월을 보내다시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침

동네 잔칫집이 있어,

노인은 일부러 안경을 쓰고 갔다.

그리고 잔치에 온 손님들에게

하루 종일 안경 자랑만 했다.

 

해가 지고 잔치가 끝났다.

노인이 안경을 끼고 나오다가

울타리를 보니

마치 거미줄 같은 망이 있는데,

그 엮인 줄이

노끈처럼 크게 보이는 것이었다.

 

곧 노인은 거미줄이

안경으로 인해 크게 보이는 줄 알고

이렇게 말했다.

"역시 안경의 힘이란 대단한 것이로다.

저 울타리에 쳐진 거미줄이

노끈만큼이나 커 보이네, 그려."

이에 사람들이 모두 웃었다.

 

울타리에 걸려 있는 것은

실제로 거미줄이 아니었다.

그것은 어제 이 집에서

시루떡을 찌느라고 시루 바닥에 깔았던,

노끈으로 엮어 만든 그물을

울타리에 널어 말리느라

걸어 놓은 것이었기 때문이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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