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소총 제413- 닭과 종이 망친 일 (高陽縣)

고양(高陽) 고을에

한 사족(士族)의 부인이 있었다.

 

이 부인은 일찍이

남편을 여의고 혼자 살다가,

나이 쉰이 넘어서야

지인의 소개로

재혼을 하게 되었다.

 

이에 부인이 거울을 보자,

피부는 이미

주름이 잡혀 쭈글쭈글하고

머리는 허옇게 세었으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첫날밤 새신랑이

이런 모습을 보면

무척 실망하겠지?

나 역시 부끄러울 테고.

그렇다면 저녁에는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새벽에 나와 버리면 되겠구나.

우리 집 수탉이

새벽에 큰소리로 잘 우니,

그 소리가 나면 얼른 나와야겠다.'

 

이렇게 작정하고

마침내 첫날밤을 맞으니,

얼굴을 보이지 않은 채

잠자리에 들어

그윽한 환애(歡愛)

기쁨을 맛보았다.

그러고서 잠이 들었는데,

그만 일이 잘못되고 말았다.

 

새신랑이 오니

집에서 일하는 어린 종이

암탉은 두고,

수탉을 잡아 국을 끓이고

반찬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런 사실을

까맣게 모르는 부인은

닭 우는 소리에 일어날 생각으로

마음 놓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어느새 동창이

훤히 밝아 버린 것이었다.

 

이에 눈을 뜬 부인은 당황하여

급히 옷을 챙겨 입으니,

신랑이 보고 이상하게 생각했다.

 

그러고서 자세히 보니

얼굴은 쭈글쭈글하고

머리는 허연 노파의 모습인지라,

신랑은 얼굴을 돌리면서

매우 불쾌해 했다.

 

방에서 나온 부인은

어린 종을 불러

닭이 울지 않은 까닭을 물으니,

이미 잡아서

국을 끓였다는 것이었다.

 

이에 부인은 크게 화를 내고,

막대기로 어린 종을 때리면서

하소연하듯 말했다.

"내 일을 망친 것은 닭이지만,

그 닭을 망쳐 놓은 것은

바로 네놈이로구나."

이러고서 슬퍼하니

모두 가엾게 여겼더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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