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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가 중 오리정 이별 대목

춘향가 중 오리정 이별 대목 - 김소희

<아니리> 방자 충충 들어오더니 "아 도련님 어쩌자고 이러시오 내 행차는 벌써 오리정(五里亭)을 지나시고 사또 께서 도련님 찾느라고 동헌(東軒)이 발칵 뒤집혔소 어서 갑시다."
도련님이 하릴없이 방자 따라 가신 후 춘향이 허망하야 "향단아 술상 하나 차리여라. 도련님가시는디 오리정에 나가 술이나 한 잔 듸려보자."

<진양조> 술상 차려 향단 들려 앞세우고 오리정 농림숲을 울며 불며 나가는디, 치마자락 끌어다 눈물 흔적을 씻치면서 농림숲을 당도허여 술상 내려 옆에다 놓고 잔디땅 너른 곳에 두 다리를 쭈욱욱 뻗치고 정강이를 문지르며 "아이고 어쩔거나. 이팔청춘 젊은 년이 서방 이별이 웬일이며, 독수공방 어이 살꼬. 내가 이리 사지를 말고 도련님 말굽이에 목을 매여서 죽고지거!"

<자진모리> 내행차(內行次) 나오난디 쌍교(雙轎)를 거루거니 독교를 어루거니 쌍교 독교 나온다. 마두병방(馬頭兵房) 좌우나졸(左右邏卒) 쌍교를 옹위하야 부운같이 나오난디 그 뒤를 바라오니 그 때여 이 도령 비룡같은 노새등 뚜렷이 올라앉어 제상(制喪) 만난 사람 모냥으로 훌쩍훌쩍 울고 나오난디 농림숲을 당도허니 춘향의 울음소리가 귀에 언뜻 들리거날 "이 얘, 방자야. 이 울음이 분명 춘향의 울음이로구나. 잠깐 가 보고 오너라." 방자 충충 다녀오더니, "어따, 울음을 우는디. 울음을 우는디, 울음을 우는디..." "아 이 놈아. 누가 그렇게 운단 말이냐?" "누가 그렇게 울겄소? 춘향이가 나와 우는디 사람의 자식은 못 보겄습디다."

<중모리> 도련님이 이 말을 듣더니 말 아래 급히 나려 우루루루루루.... 뛰여가더니 춘향의 목을 부여안고 "아이고 춘향아! 네가 천연히 집에 앉어 잘 가라고 말허여도 나의 간장이 녹을 텐디 삼도 네 거리으 떡 버러진데서 네가 이 울음이 웬일이냐!" 춘향이 기가 막혀 "도련님 참으로 가시요그려. 나를 아조 죽여 이 자리으 묻고 가면 영영 이별이 되지마는 살려두고 못 가리다. 향단아! 술상 이리 가져오노라." 술 한 잔을 부어들고, "옛소. 도련님 약주잡수! 금일송군 수진취(今日送君須盡醉:오늘 임을 보내니 실컷 취하여보자)니 술이나 한 잔 잡수시오." 도련님이 잔을 들고 눈물이 듣거니 맺거니. "천하에 못 먹을 술이로다. 합환주(合歡酒)는 먹으려니와 이별허자 주는 술은 내가 먹고 살어서 무엇허리!" 삼배를 자신 후에 춘향이 지환(指環)벗어 도련님께 올리면서, "여자의 굳은 절행 지환빛과 같은지라 니토(泥土)에 묻어둔들 변할 리가 있으오리까!" 도련님이 지환 받고 대모석경(玳瑁石鏡:거북 등껍질로 만든 거울)을 내어주며 "장부의 맑은 마음 거울빛과 같은 지라 날 본 듯이 네가 두고 보아라" 둘이 서로 받어 넣더니 떨어질 줄을 모르고 있을 적에, 방자 보다 답답하여라고. "아 여보 도련님. 아따 그만 좀 갑시다." 도련님 하릴없어 말 위에 올라타니 춘향이 정신을 차려 한 손으로 말고삐를 잡고 또 한 손으로 도련님 등자 디딘 다리 잡고 "아이고 여보 도련님 한양이 머다 말고 소식이나 전하여주오! " 말은 가자 네 굽을 치는디 임은 꼭 붙들고 아니놓네.

<자진모리> 저 방자 미워라고, 이랴. 툭 쳐 말을 몰아 다랑다랑 훨훨 넘어가니, 그때여 춘향이난 따라갈 수도 없고 높은 데 올라서서 이마 위에 손을 얹고 도련님 가시는디만 뭇두두루미 바라보니 가는 대로 적게 뵌다. 달만큼 보이다, 별만큼 보이다, 나비만큼, 불티만큼, 망종 고개 넘어 아주 깜박 넘어가니, 그림자도 못 보겄네.

<중모리> 그 자리 퍽석 주저앉더니 방성통곡 설히 운다. "가네, 가네, 허시더니 인자는 참 갔구나 .아이고 내 일을 어찌여. 집으로 가자 허니 우리 도련님 안고 눕고 노든 디와 오르내리며 신 벗든디 옷 벗어 걸든 데를 생각 나서 어찌 살거나. 죽자 허니 노친이 계시고 사자 허니 고생이로구나. 죽도 사도 못허는 신세를 어찌하면은 옳을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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