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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97년,
성주이씨 문중에서 소장해 오던 '묵재일기' - 묵재 이문건(李文健, 1494~1567)이 30여년간 쓴 한문일기- 의 낱장 속면에서 의문의 한글로 씌여진 소설이 발견되었다.
이는 앞서 최초의 한글소설이라 불리는 허균의 '홍길동전'보다 100여년이나 앞서있는 한글문학작품으로 알려지며 학계에서 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설공찬전'이라 불리는 이 작품은 처음부터한글로 씌여진 최초의 작품은 아니었지만,

채수(蔡壽. 1449~1515)라는 사람이 쓴 한문소설을 국문으로 옮겨 적은 것이었다.

채수는 어렷을 적 귀신의 출현을 목격한 바 있다고 하는데, 그때의 경험이 이 작품에도

상당히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듯 하다.

이 소설은저승의 이야기를 빌어 현실을 비판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이런 내용 때문에,설공찬전은

중종 당시 금지도서로 분류되어 모조리 불태워지고 가진 사람은 문책을 당하였다 한다.

이 소설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빙의현상에 대한 아주 상세한 기술이 쓰여있는것과,

우리나라에서 귀신을 물리치는(이른바 퇴마) 의식에 대한 몇몇 단서와 그에 대한 직업(엑소시스트)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잠시 원문중 일부를 살펴보면,

정덕(正德) 무신년 7월20일에 (공침이) 충수의 집에 올 때였다. 그 집에 있던 아이가 행금가지 잎을 끌더니 고운 계집이 공중에서 내려와 춤을 추는 것이었다. 그 아이가 매우 놀라 제 집에 겨우 들어가니 이윽고 충수의 집에서 지껄이는 소리가 들렸다. 물어보니, 공침이 뒷간에 갔다가 병을 얻어 땅에 엎드려 있다 한참만에야 정신을 차렸으나 기운이 미쳐버리고 다른 사람과 다르더라고 하였다.

설충수는 그때 마침 시골에 가 있었는데 종이 즉시 이 사실을 아뢰자 충수가 울고 올라와 보니, 공침의 병이 더욱 깊어 한없이 서러워하였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느냐?하고 공침이더러 물으니, 잠잠하고 누워서 대답하지 않았다. 제 아버지가 슬퍼 더 울고 의심하기를, 요사스런 귀신에게 빌미될까 하여 도로 김석산이를 청하였는데, 석산이는 귀신 쫓는 사람이었다. 김석산이 와서 복숭아 나무채로 가리키고 방법하여 부적하니 그 귀신이 이르기를 나는 계집이므로 이기지 못하지만 내 오라비 공찬이를 데려오겠다 하고는 갔다. 이윽고 공찬이가 오니 그 계집은 없어졌다.

공찬이 와서 제 사촌아우 공침이를 붙들어 그 입을 빌어 이르기를 아주버님이 백방으로 양재(攘災)하시려 하시지만 오직 아주버님의 아들을 상하게 할 뿐입니다. 나는 늘 하늘가로 다니기 때문에 내 몸이야 상할 줄이 있겠습니까?하였다.

또 이르기를 왼새끼를 꼬아 집문 밖으로 두르면 내가 어찌 들어올 수 있겠습니까?하거늘, 충수가 그 말을 곧이듣고 그렇게 하자 공찬이 웃고 이르기를, 아주버님(숙부님)이 하도 남의 말을 곧이 들으시므로 이렇게 속여보았더니 과연 내 술수에 빠졌습니다하고 그로부터는 오며 가며 하기를 무상히 하였다.

공찬의 넋이 오면 공침의 마음과 기운이 빼앗기고, 물러가 집 뒤 살구나무 정자에 가서 앉았더니 그 넋이 밥을 하루 세번씩 먹되 왼손으로 먹거늘 충수가 이르기를, 얘가 전에 왔을 때는 오른손으로 먹더니 어찌 왼손으로 먹는가?󰡓하니, 공찬이 이르기를, 저승에서는 다 왼손으로 먹느니라라고 대답하였다. 공찬의 넋이 내리면 공침의 마음도 제대로 되어 도로 들어와 앉았더니, 그러므로 많이 서러워 밥을 못 먹고 목을 놓아 우니, 옷이 다 젖었다.

제 아버님에게 말하기를, 나는 매일 공찬이에게 보채여 서럽습니다하더니 그로부터는 공찬의 넋이 제 무덤에 가서 겨우 들이더니 충수가 아들의 병앓는 것을 서럽게 여겨 다시 김석산에게 사람을 보내서 오도록 하였다. 김석산이 이르기를, 주사(朱砂) 한냥을 사두고 나를 기다리시오. 내가 가면 영혼이 제 무덤 밖에도 나다니지 못할 것이다하고, 이 말을 많이 하여 그 영혼에게 들려주라고 하였다.

심부름 간 사람이 와서 그 말을 많이 이르자, 공찬의 넋이 듣고 대로하여 이르기를, 이렇듯이 나를 때리시면 아주버님 얼굴을 변화시키겠습니다하고 공침의 사지를 비틀고 눈을 뜨니 눈자위가 자지러지고 또 혀도 파서 베어내니, 코 위에 오르며 귀 뒤로 나갔더니, 늙은 종이 곁에서 병구환하다가, 깨우니 그 종도 죽었다가 한참만에야 겨우 기는 것이었다. 공침의 아버님이 몹시 두려워 넋을 잃어 다시 공찬이를 향하여 빌기를, 석산이를 놓아보내고 부르지 않으마하고 많이 빌자, 한참만에야 얼굴이 본래 모습으로 되었다.

설공찬전 속에 나타나는 빙의현상은 그 기괴함이 마치 영화 '엑소시스트'속의 흉측한 악마의 모습을 보는듯

생생하게 묘사되어있어, '스펀지'라는 TV프로그램에서 소개된 적도 있을 정도이다.

원문 중, 공침에게 빙의된 공찬의 혼이 공침의 몸과 마음을 괴롭히고 정신을 혼란시키며, 얼굴을 변형시켜

공침의 아비에게 공포를 주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는데, 이를 통해 빙의라는 현상이 현재뿐만 아니라 과거에도

비일비재하게 인간들을 괴롭혀 왔으며, 그 양상또한 크게 변화하지 않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빙의라는 현상이 다만 그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고, 우리 주변에서 매우 흔하게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은

현세의 여러 사건들을 통해서도 쉽게 알 수 있고, 요즘 인기리에 방영되는 여러 TV프로그램을 통해서도

그 실상을 알 수 있게 되었다.

빙의가 정신분열증과 같은 여태의 정신질환과 다른 점은, 빙의환자 본인이 자신의 이상을 인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친 사람은 자신이 미쳤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는 영화속의 대사처럼,

빙의된 사람은 빙의령의 영향이 사라졌을때 의식이 지극히 정상이며, 자신의 내면에 자신이 아닌

다른 무언가가 자신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주변에 도움을 청하기도 한다.

"설공찬전"속에도 그런 상황이 잘 묘사되어 있다.

빙의령이 발현되어 몸과 마음을 지배하게 되면, 경우에 따라서는 극심한 정서적 변화와

기억상실, 뇌파변형, 호르몬 이상(특히 도파민과 같은 신경전달물질의 분비가 정상인의 2~3배로 증가)은 물론 완전히 다른 인격의 성향을 드러내게 된다. 약하게는 말을 더듬는 증상에서부터 틱장애(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욕설이나 쓸데없는 말이 튀어나오는 증세), 신체마비 등이 함께 찾아온다.

빙의가 더욱심해지면 끈임없는 자해와 폭력을 일삼고, 알 수 없는 말을 끈임없이 지껄이며,

술이나약물을 과다복용하거나 폭식-거식증상이 나타나기도 하고,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하다.

특히 밤(자정에서 새벽이 이르는 시간대)에는 증세가 훨씬더 심해진다.

빙의가 별다른 조치없이 오래 지속되다보면 자신의영력이 쇠약해져 점점 자신의 혼을 잃어간다.

자기 영혼의존재 자체가 희미해져 가게 되는 것이다.

나중에는 자기 정신으로 있을 때조차 의식이 뚜렷하지 못하며,

점점 빙의령에 몸이 지배당해 회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매우 낮아진다.

"설공찬전"속의 엑소시즘

우리는 고대로부터 빙의를 치료하고 혼을 통제하는 어떤 지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지식이 언제, 어디로부터 전해져 왔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전 세계에서도 유일하게 우리의 무속 문화에

그 흔적이 남아있으며, 고대 갑골문과 같은 기록들에서도 이와 유사한 내용이 종종 등장하곤 한다.

극중 귀신을 쫏는 사람으로 등장하는 '김석산'이라는 사람은 말 그대로 엑소시스트이다.

김석산은 공찬이 빙의되기 전에 먼저 공침에게 빙의된 어떤 여자아이의 혼령을 내쫓는다.

이때 김석산이 사용하는 것이 복숭아나무 가지이다. 복숭아나무는 퇴마와 관련된 의식에 자주 등장하는 자연물이다. 왜 복숭아나무인가??라고 묻는다면 "알 수 없다"라고 대답하는 수밖에 없다.

왜 복숭아나무인지는 모른다. 다만 복숭아(특별히 천도복숭아)의 색깔이 후에 김석산이 사용하려하는 '주사(경면주사)'와 거의 똑같다는 점에서 복숭아나무가 어떤 상징적인 의미(귀신을 쫓는 붉은색)를 가지고 있지 않은가...하고 유추해 볼 수 있을 뿐이다.

그 다음에 등장하는 것이 경면주사 인데, 경면주사는 이 블로그에서 전에도 다룬 적이 있지만,

매우 특별한 광물이다. 황화수은을 주 성분으로 하는 경면주사는 핏빛처럼 깊은 붉은 빛을 띈다.

무속에서는 주로 곱게 갈아서 기름과 혼합해 부적을 그리는데 쓰는데, 그 정확한 용도와 의미를 아는 사람은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왜 이 물질이 귀신을 통제하는데 쓰이는지는 전혀 알 수 없다고 봐야한다.

다만 우리가 살고 있는 문명이 지금처럼 고도로 발달, 분화하기 이전에 존재하던 어떤 지식들 중 일부가

지금은 세속화된 무당들(블랙샤면)에게 그 사용법이 전수되었을 뿐이라고 추정할 수 있을 뿐이다.

아마도 아주 먼 옛날에는 단순히 부적에 쓰려고 이 광물을 사용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도장을 찍는 인주에 이 경면주사를 사용했던 것과, 도장 인(印)이라는 한자의 고대어원을 살펴보면

분명 이 물질이 영혼과 육신을 연결하는 어떤 의식에 사용되는 주요한 재료였다는 것만 추정할 수 있을 뿐이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다루겠음.)

각설하고, 설공찬전에서 등장하는 퇴마사가 경면주사를 이용해 귀신을 쫓으려 했던 것은 아마도

'부'를 그려 퇴치하려 했던것이 아닌가...하고 유추해 볼 수 있을뿐이다.

부적은 지금도 무속에서 흔히 사용되는 방법중 하나지만, 사용자의 믿음 여하에 따라 그 효과가 차이나기도 하고, 영험이 없는 무당이 그려준 부적따위는 아무 쓸모도 없는데다, 애시당초 부적의 사용이 아예 아무 효과도 없는 경우도 많다. 그만큼 우리 인간들의 영험이 쇠락하고, 자연과 신령, 영적믿음에서 멀어진 생활을 오래 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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